선종(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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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宗

1 개요

중국에 온 서역승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불교의 종파. 선종 내에서는 인도에서 법맥이 이어져 중국에 전래됐다고 보지만, 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이 많다. 자세한 것은 달마 항목 참조. 선종은 이후 6대 조 혜능에 의해 발전하였다.

선종의 출현으로 신라말의 혼란은 더더욱 가중되었는데, 신라계 중앙귀족들은 왕실의 지원을 받는 교종을 신봉했다면 삼한계 지방귀족들은 신라의 신라인우대정책에 반발하여 중앙에대한 악감정으로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다는 사이비적 교리를 지닌 선종을 추종하게되었고, 그중 궁예는 선종의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다는 교리를 바탕으로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는 상황에 이르게된다.

그렇게 스스로 미륵불이라 자처하던 궁예가 타락하고 멸망하게되자, 고려에서는 국가의 지원을 받는 호국불교 교종을 국가이념으로 삼아 선종을 박해하였는데 그중 대각국사 의천선종을 매우 증오하여 조선 연산군의 파불에 가까울지경으로 선종을 사문난적이라 표현하며 박해를 가한다.

허나 선종은 누구나 부처가 될수있다는 사이비적 교리로 시작한 이단이였지만 12세기 후로 동아시아국가들은 성리학을 국가이념으로 삼게되면서 왕실의 불교지원이 끊기게 되고 이로 정통 교종이 몰락하면서 선종만이 살아남게되었다.

선종은 종파 면에서는 대승 불교의 한 갈래로 분류되며, 대승불교와 같이 '불성(佛性)'을 중요시한다. 초기 불교에서는 불성을 찾는 것이 절대적인 목표가 아니었다. 초기 불교에서 그나마 불성에 가장 가까운 개념은 '열반으로 가는 데 필요한 순수한 마음' 정도가 전부라고 한다. 일부 학자들은 불성을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표현한 것이지, 특정한 존재론적 개념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인도 불교에서 별 인기가 없던 불성 개념이 동아시아 등지에서 크게 확산된 데 기여한 경전은 법화경이라고 한다.

선종은 수행법도 후대에 생겨난 몇 가지[1]를 제외하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심념처 수행을 기반으로 하는 등 여러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한국 선종의 대표인 조계종에서도 대승불교의 경전인 금강경을 소의경전(근본경전)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 불립문자(不立文字)[2], 견성오도(見性悟道)[3]를 중심 가르침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교종과 비교되며, 그래서 참선과 수행을 중심으로 한다. 사실 등장부터 수행과 직관을 중시하는 것이 도교 등 타 종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으며, '염화미소'라는 유명한 선종의 일화가 등장한 경전 <대범천왕문불결의경>은 위경이라는 설이 주류인 등 교종 계통의 불교와 많은 배치점을 보여 성향에 따른 분류에서는 교종과 따로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불교는 힌두교 등과 함께 인도 계통 종교로 묶인다.

한국사에는 신라가 삼국 통일을 이룬 후 도의선사에 의해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종 전체로 봤을 때 제일 먼저 들어온 시기는 서기 8세기 후반에 신행대사가 단계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북종선을 들여온 것이 최초다. (도의선사는 우리가 잘 아는 돈오=즉각적 깨달음을 강조하는 남종선을 들여왔다.)

선종이 들어오던 서기 820년대, 이 시기는 한국사의 3대 반란으로 칭해질 만큼 기세가 무시무시했던 그 유명한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던 시기고 그 규모는 신라 9주 중 4주를 점령할 만큼 막강했으나 상당히 빨리 진압된다. 거기다가 일부 주에는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공로로 7년간 면세[4]의 혜택을 주었을 정도다. 그 정도로 이 시기까지만 해도 신라 정부의 여력이 충분하고 권위도 있었기 때문에 민중들 입장에서도 권위에 의지하지 말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북종선은 말할 필요도 없이 더 주목받지 못했다.

때문에 도입되던 당시에는 선종이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신라 말기인 서기 890년대 이후, 흔히 말하는 국가 막장 테크 시기에 9산 선문이 소율희 등 몇몇 호족들의 지원을 받고 성장하면서 보편화되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신라 정부는 선종과의 제휴를 시도했다. 이유는 선종을 통해서 떨어지는 권위를 다시 세우려고. 물론 호족의 지원이 더 커서 선종 측은 이를 거절했다. 일본에는 남송을 통해 12세기경 유입되었다.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성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굳이 기독교에 비유하자면 가톨릭교회라틴어 성경에 질린 평민 신자들이 마르틴 루터독일어 성서에 폭발적으로 반응한 것과 비슷한 원리이다. 간단하게 말해 원효대사의 정토종보다도 파격적인 효과를 불러온다. 그 때문인지 '무식한' 호족과 무신정권기의 무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5] 때문에 최충헌 시기 지눌과 같은 승려가 무신정권의 지원을 받아 성장했다고 한다.

호족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는 선종을 지원할 경우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쉬웠다는 점, 그리고 교리가 그들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선종은 교종과 달리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일종의 열린 교리를 내세웠는데, 이를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면 도 누구나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이는 풍수지리와 함께 자신들의 봉기를 정당화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반면 교종(특히 화엄종)은 권위를 강조하기 때문에 현 신분제도를 정당화 하는 경향이 커서 왕실과 귀족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고려 중반기가 되면 교종과 선종을 합치려는 노력이 자주 일어나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왕족 출신의 의천이 만든 천태종(교종 중심의 통합)과 지눌 국사의 조계종(선종 중심의 통합)이다. 지금의 한국 불교는 조계종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굳이 따지자면 교종보다는 선종에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교단의 완전한 통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티베트 불교원나라를 거쳐 들어와 불교계의 사치가 심해진다. 경천사 10층 석탑이나 다포식 건물의 화려한 장식은 이런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러자 보우가 남아있던 9산 선문의 전통을 임제종의 이름 아래 통합하려 했으나 좌절되었다.

다만, 교종과 선종이란 표현은 조선 세종대왕 때에 와서야 보편화된 것이다. 화엄종, 법상종을 비롯한 경전을 중시하는 4개 종파는 교종으로, 나머지는 선종으로 분류되었다. 신기한건 천태종이 선종에 들어갔다. 천태종은 크게 분류하면 교종이고 정확히 분류하자면 밀교적 성향이 많이 포함된 교종이다. 한국에서 이런 특이한 분류가 생긴 건 과거 의천이 불교 교단 통합 운동을 할 때 선종 계열 종파들을 천태종 쪽으로 흡수시켰기 때문. 당연하지만 이때 의천의 정책에 반대하여 통합하지 않은 선종 종파들도 있었다.

수행 방법에 따라 묵조선과 간화선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묵조선은 좌선을 중심으로 하며, 당장 깨달음을 추구하기보다는 자기 마음 속에 내재된 자성에 모든 것을 의지하는 방식이며, 조동종 쪽의 수행법이다.[6] 반면 간화선은 특정한 하나의 화두(話頭)에 대한 강한 의심을 통해 한 순간에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표로 하며, 임제종의 방식이다. 한국의 선종은 대부분 임제종의 영향을 받아 화두 수행을 하는 곳이 많다.

베트남에서도 선종이 전해지는데, 중국 선종의 3대 조사 승찬과 함께 수행하던 인도 승려 비니타루치(Vinitaruci)가 베트남에 선종을 처음 전파했다고 한다.

참고로 마하가섭 존자가 1조고 28조가 보리달마이며 고려말 태고보우 선사가 57조이고 조선시대에 67조 환성지안 조사가 유배 뒤 법을 전하지 못해[7] 맥이 끊겼으나 현재 그 맥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계열이 꽤 있다.

다만 그 선종의 맥이 한국에 전해졌기 때문에 한국 선종은 선종의 적자라 할 수 있다.

2 선종의 교파

  • 북종선 - 현재는 대가 끊겼다.(...) 점진적인 깨달음을 중시한다.
  • 남종선 - 순간적인 깨달음을 중시한다. 현재 남아 있는 선종은 전부 남종선 계열.
    • 위앙종
    • 임제종 - 이른바 '간화선(看話禪)을 중시하는 종파, 현대 한국의 조계종도 이쪽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에서도 조동종에 비해서는 2인자 취급이라지만 잇큐씨 이야기등 꽤나 많은 족적을 남겼다.
      • 황룡파
      • 양기파
    • 조동종 - 일본에서 가장 큰 선종 종파이기도 하다. 또한 티베트 불교와 함께 서구권에 가장 먼저 들어간 불교도 이 일본식 조동종이다.
    • 운문종
    • 법안종
  • 우두선 - 우두법융(牛頭法融) 선사로부터 비롯된 교파. 교리나 수행법 면에서는 대승불교의 중관학파의 것과 크게 차이가 없다. 당나라 초기에 대가 끊겼다.

3 일본 선종

일본의 선종의 경우 가마쿠라 막부 시대에 도겐(道元) 등에 의해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불교의 한 종파로써 크게 융성하였다. 한국과 달리 묵조선이 주류인 점도 특징. 특이한 점은 일본의 선종이 다도건축(예:긴카쿠지), 가레산스이 정원 등 문화적인 면에 있어서 크게 영향을 줬다는 점이다. 인테리어 등에서 말하는 젠 스타일(Zen style)의 젠이 선종의 선이다.

일본 조동종과 임제종은 각각 도쿄 그랜드호텔[8]하나조노 회관(花園会館)[9]이라는 숙박시설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조동종의 경우 절 안에서 수행하는 승려들 중 짬(?)이 가장 많은 승려를 수좌(首座)로 부르며 이를 인정하는 의식을 법전식(法戦式)이라고 부르는데 그 분위기가 정말 이름 그대로 살벌하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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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임제종의 화두수행 등.
  2. 문자로는 도를 설명할 수 없다는 뜻.
  3. 진리는 스스로 개인적인 심적 체험을 통해 깨닫는 것이라는 뜻.
  4. 이 단어를 강조하는 이유는 890년 이후에 일개 지방의 독립선언도 못 막는 안습한 상황과 너무 대비되기 때문이다.
  5. 이 표현은 조금 비약이긴 하다. 교종은 본래 문벌귀족 사회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무신정권으로 문벌귀족 사회가 무너지자 이들을 지원했으며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6. 물론 묵조선이라고 화두수행을 아주 안 하는건 아니다.
  7. 제자 스님이 깨달았음을 인정하고 일종의 후계자로 삼는 행위. 인가라고도 한다.
  8. 사실 이곳에 조동종 본부 사무소가 있기도 하다. 절대로 후쿠이에 있는 에이헤이지나 요코하마에 있는 소지지(総持寺)가 아니다! 일본 내 다른 불교 종파들과도 꽤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9. 케이온에도 등장한다. 케이온!/무대탐방 문서 참조
  10. 주지승과 짬 많은 일반 승려가 화두를 서로 나누는데 마치 싸우듯이 화두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