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말말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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粟末靺鞨

渤海,本粟末靺鞨附高麗者,姓大氏。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은 이들이며 성은 대 씨다


신당서

1 개요

말갈의 분파로 발해의 성립에 큰 영향을 미친 종족 집단이다.

2 발해 이전의 역사

494년, 물길부여를 점령한다. 고구려 북부에 위치한 옛 부여 지역에 정착한 물길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나중에 속말말갈로 불린다. 5세기에는 백산말갈과 더불어 고구려에 가장 먼저 복속했다. 이는 직접 지배가 아니라 성곽이나 거점 등으로 간접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와 당의 마지막 전쟁에서 속말말갈은 고구려와 함께 당에 맞서 싸우고, 고구려 유민과 함께 영주로 강제 이주당한다. 후에 대조영의 세력이 발해를 건국할 때 걸사비우등 속말말갈도 함께한다. 그러나, 추장 돌지계[1]로 대표되는 일부 속말말갈 세력은 고구려 복속에 반발해 수나라에 투항하기도 했다.

3 발해와의 관계

3.1 속말말갈 ≠ 발해

당나라 구당서에서 발해 건국자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임이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발해 풍습은 속말말갈보다 고구려나 거란의 것과 비슷했다고 서술되었다. 또한 최근에는 당이 의도적으로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지우고 속말말갈에서 이어진 것처럼 기술했다는 견해도 있다.

혈통과 민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속인주의적 역사관을 가진 역사학자들은 구당서를 바탕으로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주장한다. 이와 관련된 문제는 동북공정 문서를 참조.

3.2 속말말갈 = 발해

당나라의 신당서에는 발해가 본래 속말말갈이라고 한다. 걸걸중상과 걸사비우 등 건국의 주체가 말갈이고, 고구려 유민들이 말갈의 땅에 모인 것으로 서술된다.

신라고려는 대체로 속말말갈이라는 집단이 발해를 건국한 것이라고 봤다. 신라의 최치원은 사불허북국거상표(謝不許北國居上表)에서 "발해는 속말말갈의 후신"이라며 멸시했다.

신이 삼가 살피건대, 발해(渤海)의 원류(源流)는 고구려(高句麗)가 망하기 전엔 본시 사마귀만한 부락(部落)으로 앙갈(鞅鞨)의 족속이었는데 이들이 번영하여 무리가 이뤄지자 이에 속말(粟末) 소번(小蕃)이란 이름으로 항상 고구려를 좇아 내사(內徙)하더니, 그 수령 걸사우(乞四羽) 및 대조영(大祚榮) 등이 무후(武后) 임조(臨朝) 때에 이르러, 영주(營州)로부터 죄를 짓고 도망하여 문득 황구(荒丘)를 점거하여 비로소 진국(振國)이라 일컬었나이다. 전문 출처

이러한 생각은 고려의 역사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시대에 쓰인 삼국사기삼국유사, 제왕운기는 발해를 속말말갈로 분류해 한국사의 방계 국가로 해석했다.[2]

  1. 나당전쟁에서 매소성 전투의 당나라 지휘관인 이근행은 이 돌지계의 아들이다.
  2. 단, 고려는 스스로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발해가 다루기 껄끄러운 존재라는 부분도 감안할 필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