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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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련 문서 :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독재자
  • 통상
  • 본명
    • 아랍어: إبراهيم ابن عواد ابن إبراهيم ابن علي ابن محمد البدري السامرائي
    • 한국어: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함마드 알-바드리 앗-사마라이
    • 터키어: İbrahim İbn Awad İbn İbrahim İbn Ali İbn Muhammed el-Badri es-Samarray
    • 영어: Ibrahim Awwad Ibrahim Ali al-Badri al-Samarrai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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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캠프 부카에 수용되었을 당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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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자칭 칼리프로 등장했을 당시의 모습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1971년 7월 28일생)[1]이라크 사마라에서 태어난 종교인이자 테러리스트이다. 현재는 테러조직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수괴이자 자칭 IS의 칼리프이다. 당연히 자칭이므로 정통성 같은건 있을리 없다.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그의 가명은 이른바 지하디스트 네임(Jihadist name)이라 불리는 작명법이며 아랍의 반군들이 아랍어 이름으로 아부 ~ 를 쓰고 그 뒤에 출신지를 붙여 알 ~ 이라는 방식의 이름을 쓴다. 오마르 알 시샤니라는 이름은 체첸 출신의 오마르(가명)이라는 식. '바그다드의 아부 바크르'라는 뜻이다.[2]하지만 알 바그다디의 고향은 바그다드가 아닌 사마라다. 사마라는 주민 대부분이 수니파지만 시아파 성지가 있는 도시라서 충돌이 끊이지 않는다. 그가 이름을 바그다디로 한 이유는 성년이 되어서 학위를 따고 생활한 곳이 바그다드였기 때문으로 추측되고는 있으나 확실한 것은 없다.

2011년 10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알 바그다디를 특수 분류 테러리스트로 지정했으며 그의 생포, 혹은 사살과 직결되는 정보에 1,000만 달러[3]의 현상금을 걸었다.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지만 적대 관계인 알 카에다 역시 알 바그다디의 목에 2,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럼 어디다 신고해야 하죠? 미국이 이득 아님? 100억 받고 초호화안전가옥 vs 250억 땡푼만 받기

죽어도 곱게 못죽을 A급 전범 확정.

2 생애

2.1 출생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이라크사마라(سامَرّاء‎)에서 1971년에 태어났다. 본명은 '이브라힘 이븐 아와드 이븐 이브라힘 이븐 알리 이븐 무함마드 알-바드리 앗-사마라이'.[4] # 그의 부족은 사마라에 있는 알-부 바드리(البو بدري) 부족이다. 알-부 바드리 부족은 사도 무함마드(محمد)의 후손으로서 원래 메디나(اَلْمَدِينَة)에 살았으나 1700년대에 사마라로 이주하였다. 즉 알 바그다디는 본인이 주장하는 대로 무함마드의 후손이 맞다. 하지만 무함마드의 후손은 굉장히 많기에 이는 별 특별한 요건이 되지는 못한다. [5] 그의 가족들 중에는 종교인들과 교수들이 많았다.

2.2 유년기

의외로 그는 유년 시절 부끄러움을 많이 탔으며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축구를 좋아했다. 물론 현재는 축구를 서구 불신자들의 스포츠라 생각하여 매우 혐오한다. 그러면서 IS 어린이 대원들에게는 참수된 머리로 축구공을 삼아 축구를 하게 시킨다.

2.3 청년기

이브라힘은 어린 시절을 사마라에서 보냈다. 그가 18살부터 바그다드(بغداد)에서 살게 된 건 그의 대학 때문이었다. 하즈 이브라힘 알리 알바드리(Haj Ibrahim Ali al-badri)라 불리던 교수 겸 자신의 할아버지[6] 의 조언에 따라 이브라힘은 국립 바그다드 이슬람 대학교(현 국립 이라크 대학교)[7]에서 이슬람학에 대한 학사와 석사와 율법 샤리아(شريعة)에 대한 박사 과정을 마친 뒤 2000년 초에 결혼을 했고 2003년에 첫 자식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바그다드에 있는 성원 옆에 살았다. # 그와 성원에서 만나서 자주 알고 지냈던 이라크인 아부 알리(أبو علي)에 따르면 그는 매우 예의가 바르고 말수가 적었다고 한다. 또한 축구를 잘 해서 그들의 메시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한편 아부 알리는 바그다드에서 영국인 기자와 이브라힘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창문을 전부 가렸고 동생에게 바깥의 망을 보게 시켰다. 왜냐하면 밖에서 시아(شيعة)파 민병대들이 수니파 주민들 사이에서 IS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색출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브라힘의 삼촌마저 이라크에 살다가 바그다디의 친척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가서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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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 알리는 영국인 기자에게 자신이 바그다디가 2004년에 침략해온 미군한테 잡혔을 때 이라크 남부 시아파 도시 바스라(البصرة)에 있었던 부카 강제 수용소(Camp Bucca)에서 찍은 사진을 정보통신망에서 봤었다고 말했다. 해당 사진은 현재 천만 달러 현상 수배의 사진이 되었다. 그는 사진 속의 바그다디가 안경을 안 쓴 것 말고는 자신이 기억하는 얼굴과 똑같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바그다디의 시력이 매우 나빴기 때문에 그는 안경을 쓰고 다녔었다고 한다.

이브라힘이 바그다드에 살던 시절에 만났던 또 다른 이웃에 따르면 그는 미군의 침공 이전에 이미 보수적인 살라피스트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길거리에서 열린 결혼식에서 남녀가 함께 손을 잡고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들에게 '어떻게 남녀가 이딴 식으로 함께 춤을 출 수 있냐', '비종교적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었다고 한다. 결국 이브라힘은 소리 지르며 화를 내서 그들 남녀가 춤을 못 추게 만들어 버렸다고 한다. 미국의 공격(이라크 전쟁)이 시작되기전까지 사마라의 '이맘 아흐마드 이븐 한발' 모스크에서 교리를 전했다. 그는 특히 걸프전 이후로 오사마 빈 라덴, 아부 무함마드 알 마크디시(Abu Muhammad al-Maqdisi)의 살라피즘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2.4 성전에 입문하다

바그다디의 친구 아부 알리에 따르면 그가 성전, 즉 지하드(جهاد)를 하게 된 계기가 매우 사소한 것이었다고 한다. 2003년에 미국이 사담 후세인(صدام حسين)이 독재하는 이라크(العـراق)를 침공하자 후세인과 같은 종파이자 침공 이후 권력을 잃은 많은 수니파들이 미국에 불만을 품게 되었다. 그러자 이브라힘 알 바드리의 집주인이자 바그다드에 있던 성원의 주인이었던 사람이 이브라힘보고 자신이 가입한 신생 이슬람 정당에 가입하자고 권유를 하였다. 허나 정당은 비종교적이라고 생각했던 바그다디가 이를 거절했고 그 뒤 집주인과 바그다디 사이의 갈등이 커져서 바그다디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다.[8]

이브라힘은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그의 전공인 이슬람 율법 샤리아 박사 학위를 살려서 수니파 무장 단체 '자마아트 자이시 아흘 알 순나 와 알 자마아트[9][10]안에 있는 샤리아 위원회에서 활동하다가 미군한테 붙잡혀서 2004년 2월부터 12월까지 이라크 남부 시아파 도시 바스라(البصرة)에 있었던 부카 강제 수용소(Camp Bucca)에서 생활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바트(البعث)당 이라크군 포로들을 만났고 그들과 친해졌다. 바그다디가 부카 강제 수용소에서 만났던 이라크군 장교들은 훗날 그가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أمير, 사령관)로 재직할 때 수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이 점이 이브라힘을 이전의 지도자들[11]과 다르게 만들어줬다. 저들은 미군이나 신생 이라크군 기지를 습격할 줄은 알았지만 점령할 줄은 몰랐다. 만약 바그다디 치하의 이라크 이슬람국가마저 습격만 할 줄 알고 점령할 줄 몰랐더라면 이들은 국가가 아니라 떠돌이 무장 단체 혹은 테러 단체 그 이상을 뛰어넘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바트 당 출신 장교들의 도움을 받아서 이브라힘의 이슬람 국가는 영토를 점령하고 또 그 점령지를 탈환하려는 정부군으로부터 점령지를 지켜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2004년에만 해도 이브라힘은 불과 30몇살의 청년에 불과했던 데다가 총을 잡고 싸우는 무장 단체 대원보다는 그냥 사이비 이슬람 학자의 성향이 더 강했기 때문[12]에 미국 국방부는 그를 테러범으로 분류하는 대신에 그냥 민간인 수용자로 분류했었다. 그리고 그는 10개월 만에 감옥에서 석방되었다. 당시에는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본격적으로 악이 깨어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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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라힘은 감옥에서 나온 뒤에 전사들의 협의회(مجلس شورى المجاهدين)라는 무장 단체들의 연대 조직에 가입했다. 전사들의 협의회는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가 주도한 알 카에다 조직과 현지 저항 조직들이 힘을 합친 곳이었다. 그는 거기에서도 전공을 살려서 율법 해석과 자문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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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자르카위 사망 이후에 전사들의 협의회가 이라크 이슬람국가 건설을 선포하자 거기에서는 이라크 이슬람국가에 속한 각 주[13]들이 율법을 제대로 집행하고 있는지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이브라힘은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였던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에게 충성 맹세를 했고 사마라와 디얄라에 살고 있었던 자신의 부족원들에게도 충성 맹세를 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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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가 미군과 이라크군의 합동 작전으로 전사하자 이브라힘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라는 가명으로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아미르(총사령관)가 되었다.

2012년에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자 그는 자신의 부하들 중에서 시리아 출신 대원들을 불러 모은 다음 그들을 시리아로 보냈다. 이들이 만든 조직이 바로 알 누스라 전선이다. 알 누스라 전선은 그 뿌리가 뿌리인지라 알라위파 포로들을 전부 참수하는 만행을 선보여서 자유 시리아군까지 욕 먹게 만들었다. 어쨌든 정부군과 자유 시리아군이 점령하지 못한 시리아 영토들은 알 누스라 전선이 점령하게 되었다.

한편 2013년에는 이라크에서도 시아파 총리인 누리 알 말리키의 폭압 정책에 반발하는 수니파들의 반정부시위가 일어났고 이라크 수니파 지역의 무장 투쟁은 더 거세졌다. 바그다디는 알 누스라 전선의 영토가 탐이 나서 알 누스라 전선이 이라크 이슬람국가의 일부였다고 선언한 뒤 알 누스라 전선과 이라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통합시켰다. 그러자 한때 바그다디의 부하였던 알 누스라 전선 총사령관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는 이에 반발하면서 알 카에다 총사령관 아이만 알 자와히리에게 일러바쳤고 알 자와히리는 알 바그다디보고 그만 하라고 명령을 내렸으나 알 바그다디가 이를 무시하고 그냥 이라크 이슬람국가 군대보고 알 누스라 전선 군대를 공격하라고 시켰다.

결국 알 누스라 전선은 조직원의 8할과 시리아 동부의 라카와 데이르 알 조르 등을 내주고 시리아 북서부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8할의 조직원들은 전부 이라크 이슬람국가가 흡수했고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나라 이름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로 갈아치웠다.

2.5 칼리프를 자칭하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가 거세진 2014년을 틈타 안바르 주와 니나와 주 사막에 있던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의 군대는 팔루자를 점령해버렸고 점점 세력을 다시 키워가서 2008년에 잃었던 라마디히트(Heet)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끝내 2014년 6월에 모술과 히트와 티크리트를 함락하자 자만심이 높아진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는 스스로 칼리프 국가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이라크 시리아을 떼어버리고 '이슬람 국가'로 나라 이름을 갈아치우고 국가 원수 직함도 아미르에서 칼리프로 갈아치웠다. 아미르는 그냥 총사령관을 뜻하지만 칼리프는 모든 무슬림들의 종교적 정치적 지도자를 의미한다. 다른 종교로 따지자면 교황황제를 겸하겠다는 뜻. 이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나 알 카에다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마저 IS를 욕하기 시작했다.

한편 바그다디는 칼리프 자체 취임 이후 모술에서 설교를 하고 영상을 통신망에 유포하였다. 연설 전문. 그가 한 말을 절대 믿어서는 안되며, 연구목적 등으로 쓸 사람도 주의해서 다룰 것.

IS는 이라크와 시리아 뿐만 아니라 리비아 동부의 데르나라는 해안 도시도 점령했다. 데르나 점령에는 리비아 출신 토착 극단주의자 뿐만 아니라 IS에서 보낸 전사들도 많이 공을 세웠다. 안사르 바이트 알 마크디스[14], 준드 알 칼리파[15] 등의 단체들도 바그다디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그 밖에 사우디랑 예멘이 있던 극단주의자들이 충성을 맹세한 것 가지고 자기가 동부 리비아, 시나이 반도, 알제리, 사우디아라비아, 예멘을 주로서 IS에 신설했으며, 이들의 충성 맹세를 전부 받아들이겠다고 선언했다. 이 때 녹음한 음성은 11월에 정보통신망에 공개되었다.

그 뒤 12월에는 전 부인 사자 알 둘라이미가 바그다디와의 관계에서 낳은 딸과 함께 레바논에서 붙잡혔다고 나왔다. 둘라이미 집안도 극단주의자 집안이라 사자의 아버지는 알 누스라 전선과 이슬람국가에서 활동하다 전사했고 형제 한 명도 자살 폭탄 공격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위조 여권으로 레바논에 들어가 잡힌 것. 이라크 내무부에 따르면 둘라이미와 바그다디는 이혼했으며, 현재 바그다디의 부인은 이라크 여자 한 명과 시리아 여자 한 명으로 총 두 명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슬람교에서 이혼은 '알라께서 허락은 하셨지만, 허락한 행위 중 알라께서 제일 싫어하는 행위'로 해석한다.

부상을 입었다고 한다! 다만 미 국방부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시리아에 있는 은신처에서 여성 성노예들을 개인 소유물처럼 가둬 놓고 살았다고 보도했다. 게다가 여성들을 성폭행하였는데, 피해 여성 중에는 납치된 이라크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10대들 뿐 아니라 2년 전 IS에 납치됐다가 2015년 초 숨진 것으로 확인된 20대 미국인 인권활동가도 있었다고 한다.

2.5.1 사망설?

여러 보도들에 의하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는 공습에 의해 사살되었고, 시신이 확인되었다는 기사가 있다. 다만 아직 생사여부는 불명인 상태지만. 2015년 11월 파리 테러가 바로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에 의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2016년 10월, 독극물을 이용한 암살 시도가 있었고 그 결과 알 바그다디와 측근 세명이 중태에 빠졌다고 한다.#

3 평가

알 카에다에서는 철천지 원수로 여긴다. 시리아 내전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알 누스라 전선의 세력 대다수를 먹튀하고 순식간에 주도권을 뺏아가버렸으며, 이에 자와히리는 알 바그다디와 해결점을 찾고자 밀사를 시리아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밀사로 간 아부 칼리드 알-수리와 그의 일행이 2014년 2월 23일에 IS의 비밀경찰 조직 암니에 의해 암살되는 일도 벌어져서 그냥 관계가 개판이 되어 버렸다. 여담으로 이 일이 있고 얼마 후 시리아 암니의 책임자 아부 오베이디 알 마그리비는 처형을 당했다.

터키 정부의 입장과는 별개로 터키 국민들은 아주 나쁘게 보지는 않는다. 정확히는 서구화된 도시민들은 IS의 잔학무도한 극단적 행동을 싫어하지만, 시골이나 이슬람 정서가 강한 곳은 심지어 좋아하기도 한다. 아무리 서구화를 국시로 추진하였더라도 같은 무슬림으로서의 동질감이 있는데다가 터키 독립전쟁의 기억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구 유럽 국가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IS와 알 바그다디를 터키 독립전쟁과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생각외로 많다. 이놈들이 터키에서 테러를 저지르기 시작하자 다들 IS의 진면목을 알고, IS와 더불어 난민들 사이에 섞여들어온 IS조직원들 덕분에 선량한 시리아 난민들까지 일부 민족주의자들의 차별을 겪고 있다.

광범위하게 퍼진 근거없는 음모론 중 하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특수 훈련을 받은 특급 공작원(...)으로 간주된다. 음모론에 의하면 알 바그다디는 알 카에다를 약화시키고 전 세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한 곳에 모아서 서구 군대가 한번에 전멸시켜버릴 수 있게 하고, 지나친 악행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진저리를 치도록 만드는 데에 최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마지막은 성공한 것 같다.

단순히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에서부터, 바트당과의 제휴로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순식간에 국가급으로 성장한 실력을 대단하다고 여기는 평가까지 양극단을 달린다.

수니파 일각에서는 영웅 대접을 하기도 했으나 요르단 조종사 포로를 잔인하게 살해하는 사건을 벌이면서부터 서서히 등 돌리는 이들도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게 어디까지나 같은 수니파 무슬림을 죽여서[16] 근데 이것도 율법상 모순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에 여론이 바뀌는 것일 뿐, 그들 시각에서는 '이단'인 시아파와 '이교도'인 비무슬림들이 죽어나갈 때는 보수적인 율법학자들이 암묵적으로 침묵했던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끔살당한 요르단 공군장교 포로인 무아트 알 카사스베의 아버지나 그 부족들도 맨 처음에는 IS를 그리 나쁘게 여기지 않고 미국에게 반감을 가졌으며 잡힌 아들을 풀어달라고 부족 홀로 교섭하려고 할 정도였다. 물론 아들이 분살당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걸 본 아버지는 "IS는 악마다! 모든 이슬람이, 아니 전세계가 저 악마들을 물리쳐야 한다"며 부족과 함께 맹렬한 반대파로 돌아섰다. 다른 수니파 국가들도 제 멋대로 교리를 해석하는 놈들은 이슬람이라고 논할 자격도 없다 라면서 등 돌리는 중.

4 어록

  • '쿠란이 우리를 인도하고 칼이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이다.
  •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였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슬람은 전쟁의 종교다.출처
  • "전 세계 모든 무슬림에게 IS로 이주할 것을 명한다, 이주할 수 없다면 현재 있는 곳에서 싸우라."
  •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본다면 도와 주십시오.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멈추게 하십시오. 내가 신에게 복종하는 한 내게 복종하십시오.[17]

5 관련 항목

  1. 1937년 생의 사담 후세인이나 1957년 생의 오사마 빈 라덴에 비하면 많이 젊은 나이이다. 2016년 기준으로 따져도 아직 50살도 안된 나이이다. 물론 1984년 생의 젊은 독재자도 있긴 하다.
  2. 아부 바크르라는 이름은 아랍권에서 거의 '태조'급의 상징성을 갖기 때문에 아랍권의 명성있는 왕족이나 부호, 지하디스트들은 자신을 어느 지역의 태조, 즉 아부 바크르로 자칭하는 경우가 흔하다.
  3. 100억원이 넘어가는 액수다. 그런데 1,000만 달러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국 대통령과 동일한 수준의 초호화 안전가옥+종신경호가 따라올 수밖에 없다. 여담으로 한국의 故 황장엽에게도 국무총리 이상 수준의 경호가 제공되었었다.
  4. '사마라 출신으로 바드리 부족에 속한 무함마드의 아들 알리의 아들 이브라힘의 아들 아와드의 아들 이브라힘'이라는 뜻이다. 즉, 이름은 '이브라힘'이고, 성은 '알-바드리'이며 이는 바드리 부족의 소속임을 의미한다. 앗-사마라이는 '사마라의', 즉 사마라 출신이란 의미이니 곧 사마라 출신으로 바드리 부족에 속한 이브라힘이라는 뜻이다.
  5. 다만 애초에 무함마드의 직계 남계 후손은 없다. 아내가 12명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뽕빨물에서 나오는 하렘을 생각하면 곤란하다. 대부분 왕건마냥 결혼동맹 차원이나 복지 차원에서 아내로 맞아들인 과부였던 터라...그나마 얻은 아들 압둘라와 카심, 이브라힘 세 명 모두 어려서 죽었다. 결국 흔히 무함마드의 후손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무함마드의 딸 파티마와 4대 칼리프 알리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인 하산과 후세인의 후손들이나 무함마드와 함께 초기 이슬람 성립에 참여한 그의 친족들의 후손들이다.
  6. 여담으로 이브라힘에게 살라피즘 교리를 개인적으로 전수해준 인간이다
  7. 바그다드가 아닌 팔루자라는 소리도 있다
  8. 한편 그 집주인은 이브라힘의 악명이 알려지자 복수를 당할까 봐 두려워서 이라크를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9. 'جماعتِ جيش أهل السنة والجماعة, 한국어로 번역하면 수니파 군사 회의
  10. 여담으로 이 조직은 창설 초기부터 적에게 협력한다고 의심되는 민간인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11.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أبومصعب الزرقاوي‎), 아부 우마르 알 바그다디(أبو عمر البغدادي)
  12. 근데 이것도 좀 그런게 이브라힘은 엄연히 테러 조직에서 자칭 샤리아 판사로써 온갖 린치에 가담한 인물인데 그냥 둔 것도 이상하다.
  13. 2006년에 이라크 이슬람국가가 선포된 이후 이들은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짜로 모술, 팔루자, 라마디, 바쿠바, 바그다드, 사마라 같은 수니파 도시들의 일부를 장악하였다. 허나 미국이 이라크 이슬람국가에 반발하는 수니파 부족들에게 돈을 주고 무기를 전해준 뒤 이라크 계몽 위원회라는 친미 수니파 조직을 창설하자 수니파들 사이의 반목으로 인해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2년만에 대부분의 점령지를 잃고 사막으로 후퇴해야 했다. 어쨌든 이라크 이슬람국가는 국가 행세를 하기 위해 장관들도 두고 행정 구역도 만들었다.
  14.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의 주범이다. 현재 ISIL 산하에 들어가 단체명을 시나이 주(州)로 변경.
  15. 프랑스 등산객 참수사건의 주범. 마찬가지로 ISIL에 충성함.
  16. 그것도 율법상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불태워 죽이는 방식으로 죽였다.
  17. 초대 칼리프이자, 이 인간 이름의 원형이 된 아부 바크르가 주변 사람들의 추배에 의해 칼리프 자리를 받아들이면서 했던 말이기도 하다. 원래는 '나는 신도, 예언자도 아닌 평범한 사람이기에 신의 길에서 벗어난 결단을 내릴 수 있으니, 내가 옳은 길을 가도록 도와달라'는 대단히 겸허한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