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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 | 주장(州章) |
자를란트 주의 위치 | |
국가 | 독일 |
시간대 | (UTC+1/+2) |
주도 | 자르브뤼켄 |
1 개요
Saarland, 자를란트 주
독일의 연방주 중 하나로, 도시주를 빼면 가장 작은 크기의 주이다.[1]
2 역사
원래 이 곳에 거주하던 민족은 게르만족이 아닌 켈트족이었다. 이후 이 지역을 정복한 로마 제국에 의해 벨기에 속주로 편성되었고 이주해온 로마인과 원주민인 켈트족이 어울려 살았다. 이후로 프랑크 왕국과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와 접경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30년 전쟁 이후로 프랑스는 이곳에 여러번 공격을 감행했다.[2][3]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은 이 지역을 프랑스 영토의 일부분으로 삼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몰락 이후 빈 회의를 통해 이 지역은 삼등분되어 프로이센 왕국과 바이에른 왕국, 올덴부르크 공국이 각기 나눠가져갔다.
이후 나폴레옹 3세시절이었던 프랑스는 1870년 이곳을 공격함으로서 보불전쟁을 시작했다. 전쟁은 프랑스의 패배로 끝났고, 자르 지역은 이 전쟁의 결과 세워진 독일 제국의 일부분이 되었다.
자르(Saar)라는 독립된 지역 개념은 1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뒤에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국제연맹에 의해 감독되는 자치지역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다. 자르 지역의 풍부한 석탄, 철강석 등의 자원 때문에 프랑스는 침략국 독일의 영토인 이 지역을 자신의 영토로 삼고자 했고, 영국의 동의까지 이끌어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의 제동으로 한발 물러서 1920년부터 15년간의 국제연맹 관할이 결정된다. 당연히 이러한 조치는 독일 국내에서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면서 자르의 독일 복귀에 대해서는 나치당부터 사민당까지 한 목소리를 내기에 이른다. 국공합작?
베르사유 조약 이전까지 자르 지방은 프로이센, 바이에른, 올덴부르크의 영지로 나눠어져 있었고, 이 지역을 총칭하는 특별한 지명은 없었다. 때문에 베르사유 조약에서 이 지역을 지칭하기 위해 이곳의 지리학적 명칭을 사용하여 자르분지(Saarbecken)지역(gebiet)이라고 지칭했고 여기에서 자를란트(Saarland)라는 지명이 확립되어 갔다.
자를란트는 명목상 국제연맹 관할이었지만, 사실상 프랑스의 관할이었다.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식민지인 출신 위주로 구성된 군대를 진주시켜 자르 지역에 주둔시켰으며 이 지역의 석탄과 철강을 사용했다. 또 자르 지역을 프랑스에 동화시키기 위해 프랑스어 공립학교를 설치하고, 1923년부터 프랑스 화폐만을 사용하도록 하였고, 1925년 1월 10일에 프랑스 관세 지역에 통합시키는 일들을 했다. 그에 반발한 이들이 1925년 6월 19일에 주도 자르브뤼켄에서 4만여명 규모의 독일 영토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자르 지역의 모든 정당은 독일로의 귀속을 지지했다.
국제연맹의 관할이 종료되는 시점인 1935년 1월 13일 독일로의 귀환 문제를 놓고 주민투표가 실행되었고, 자르 주민들은 91%의 지지율[4]로 독일로의 복귀를 결정했다.[5] 히틀러와 괴벨스는 이 결과를 당연히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용했고, '조국의 품에 돌아온 자르'는 많은 독일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좋은 선전거리가 됐다.
2차 세계대전의 극초반에 프랑스와 영국 연합군이 일시적으로 이곳 자르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형식상이나마 자신들이 폴란드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대략 10km 가량을 전진하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요새화된 기지로 돌아온다. 이후 프랑스 침공이 독일의 승리로 끝난뒤 자르 지역은 일시적으로 알자스-로렌과 같은 행정구역으로 편입되기도 했으나, 독일이 패망한 후 이 지역은 미국 관할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이곳의 풍부한 석탄과 철강 자원은 독일의 침략행위로 인해 반드시 해야 할 필요가 있던 전후산업복구에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는 이곳을 프랑스의 영토로 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종전 후 자르는 미군 관할지역 내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프랑스는 자르 보호령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냉전 등의 격화로 상황이 여의치 않게 돌아가자, 프랑스는 아예 자르를 공화국으로 독립시키자는 안을 서독 정부에 제안했고 이에 대한 합의를 받아냈다. 그리하여 1953년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으나 기각되었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독일의 경제 성장을 긍정적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 후 1955년에 독일로의 귀환여부를 놓고 펼쳐진 주민투표에서 자르 주민들은 독일로 복귀를 결정했고, 1957년 자를란트는 독일의 16번째 연방주로 가입하게 되었다.
3 지리
주의 남서쪽 영역에 흐르는 모젤 강의 지류 자르 강을 경계로 프랑스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룩셈부르크와도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라인란트-팔츠주와 마주하고 있으며 주 면적 전체의 1/3이 산림으로, 산림이 울창한 것으로 유명한 독일 내에서도 가장 숲이 발달해있다.
4 사회
4.1 인구
100만명에 조금 못 미치는 인구수로 독일 내에서도 가장 사람이 적게 사는 곳 중 하나인데, 바이에른 주와 함께 가톨릭의 세력이 가장 두터운 주이다. 전반적으로 주도 자르브뤼켄을 포함하여 도시는 프랑스와의 국경지대에 발전해있기에 사람들도 국경지대에 주로 몰려사는 편.
4.2 정치
전반적으로 기민당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곳이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중반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기민당이 주정부에서 여당 자리를 지키고 있다.
4.3 경제
1873년 세계 최초의 현대식 제철소로 건립되어 유럽 산업화의 상징물로 유명세를 떨쳤던 푈클링어 제철소(Völklinger Hütte)[6]가 이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을 정도로 과거에는 석탄 및 철강 산업이 지역 경제의 근간을 이루고 있었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이들 산업이 유럽 내에서 점차 사양세를 걷게되면서 지역 성장동력도 함께 둔화되어 현재까지도 독일 내 구서독 지역들 중에서 물가 및 소득수준 등의 경제력이 가장 떨어지는 편이다. 그래도 구동독 지역들보단 약간 높은 수준이긴 한데, 이웃한 중남부 지역들의 경제력이 넘사벽인건 함정(...)
사정이 이렇다 보니 1990년대 들어서 부터 주정부 차원에서 반도체, 전자, 컴퓨터, 바이오 등의 첨단 산업분야를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위해 세제 혜택 등을 내세우며 기업체 및 연구소 투자 유치에 힘을 쏟고 있다. 이의 결과물들로서 1990년대 후반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유럽연구소가 자르브뤼켄에 설립되어 자를란트 대학교와 함께 공동연구를 수행하며 한독간 학술연구교류의 교두보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독일 보쉬 렉스로스에서 Industry 4.0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프로젝트의 연구를 위해 자르브뤼켄 인근 홈부르크 공장에 최첨단 생산시스템을 대규모로 투자해 운영중이다.
4.4 문화
전통적으로 독일과 프랑스의 접경지대이며 프랑스가 자신들의 영토로 하고자 최근 몇 세기 동안 많이 노력했던만큼,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가 병존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대체로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2차 대전 이후 연합군이 독일 전역을 점령했을 시기 프랑스군은 침략했다가 패전한 독일의 요인들에게 불어를 교과과정상 제2외국어[7]로 지정할 것을 요구한 만큼[8] 전반적으로 독일인들은 프랑스어를 많이 구사할 줄 아는 편인데, 이 지역은 상술한 역사적인 배경까지 겹쳐셔 거의 모든 주민들이 불어를 구사할 줄 안다. 아예 최근에는 주정부차원에서 자를란트를 늦어도 2040년대까지는 이중언어 구역으로 만들겠다는 프로젝트를 발표했을 정도이다.
5 같이 보기
- ↑ 2012년 기준으로 면적은 2500 제곱 킬로미터이며 인구는 약 100만 명 정도.
- ↑ 대대적인 공격만 1635, 1676, 1679, 1734년 무려 네 차례.
- ↑ 이는 루이 14세를 비롯한 당시 부르봉 왕가의 왕들이 라인강을 프랑스의 국경선으로 삼는 팽창적 영토확장 정책을 추구했던 것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 ↑ 8%는 현재 상태인 국제연맹 관할하의 자치구역 상태 유지를 원했으며 1%는 프랑스로의 편입을 지지.
- ↑ 여담이지만 1933년 나치의 집권 이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많은 반나치주의자들이 나치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이곳으로 이주를 해왔는데, 이들은 국제연맹의 관할이 연장되기를 소망했다고 한다.
- ↑ 1986년 경영난 및 시설 노후화를 이유로 문을 닫았고, 이후 인류 최초의 현대식 제철소라는 가치를 인정받아 199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자를란트의 대표 관광지로 활약중이다.
- ↑ 제1외국어야 당연히 영어.
- ↑ 소련과 미국은 언어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체제인 공산주의 및 자유주의 선전에 관심을 더 기울였고,영국군은 영어가 이미 제1외국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