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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의 제2작전사령관 | ||||
2대 최영희 | → | 3대 장도영 | → | 4대 최경록 |
대한민국 육군의 참모총장 | ||||
13대 최경록 | → | 14대 장도영 | → | 15대 김종오 |
역대 대한민국 국방부 장관 | ||||||
11대 현석호 | ← | 12대 장도영 | → | 권한대행 신응균 13대 송요찬 |
張都暎
1 소개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시절의 군인. 한국의 내각수반이었다. 1923년 1월 23일 ~ 2012년 8월 3일.
2 일생
2.1 청소년기까지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동양대학에 재학하였다. 이후 1944년 일본 도요 대학 사학과를 수학했다.
학병으로 일본군 생활을 하였다. 장준하 선생과 함께 중국에 주둔했던 쓰카다 부대에서 근무하였다. 장준하 선생의 일본군 탈영과 독립운동 여정을 담은 수필 '돌베개'에 등장하기도 하는데, 책에는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모 장군이라고 칭하고 이름을 밝히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일본군 병사였던 그 모 장군은 일본인 고참병들이 남긴 음식을 혼자 먹기 위해 더러운 손을 밥그릇에 넣어 뒤돌아 혼자 먹는 추태를 보인다. 또, 조선인 탈주병이 생겨 부대 내에서 조선인들에 대한 눈초리가 사나워지고 생활이 고달퍼지자, 조선인들이 모여있는 내무반 안에서 조선인 동료들을 향해 칼을 뽑아들고는 "이제 또 누가 도망치겠느냐? 이제 도망가는 놈은 내가 찔러죽일테다!" 라고 호통치는 등 그 모습이 참 부끄럽기 그지없기 때문.(...)
2.2 8.15 광복 후 북한에서
광복 후, 평안북도 선천군으로 돌아와 모교인 신의주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후배 양성에 주력하였다. 그러다 1945년 11월 23일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이 발생한 이후 소련군정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반공인사 탄압이 강행됨에 따라 피신하여 월남을 결행, 서울로 내려왔다.
2.3 군인 시절
당시 미 군정청 군사고문으로 있던 이응준으로부터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라는 권고를 받고 1946년 2월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하였다. 1946년 3월 군사영어학교(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고, 육군참위(소위)로 임관했다.
1948년 여순 반란사건 당시 반란 가담자였던 박정희가 무기징역을 언도받자 백선엽 등에 의해 박정희 구명운동이 있었는데, 그는 적극 호응하여 박정희를 도와주기도 한다. 1951년 한국군의 대승으로 손꼽히는 용문산 전투를 지휘하였다.
제2공화국 출범 이후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발탁되어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했다. 5.16 군사정변을 앞두고 장면은 장도영에게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정보를 들었다고 하였다. 이에 장도영은 장면에게 결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며 그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정작 5.16 군사정변이 터지자, 이에 대해 적극적인 반대나 찬성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를 보여 사실상 군사정변을 방조했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본인은 훗날 자신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이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이에 대해 관련자들은 장도영이 몰랐을리 만무하다며 5.16 쿠데타 세력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기 싫으니 발뺌하는 것일 뿐이란 말도 있는데 머 판단은 각자 알아서.
2.3.1 5.16 군사정변과 반혁명 혐의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자신의 구명운동을 해준 장도영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있는데 뒷통수 쿠데타를 거행했다는 것에 대한 민심 이반을 우려한 박정희 세력에 의해 포섭되어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계엄사령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내각수반, 국방장관으로 추대되었다. 직책을 보면 알겠지만 명목상 박정희보다 더 높은 5.16 군사정변 주요인물인 셈. 현실은 얼굴마담
하지만 같은 해 6월 민심이 어느정도 수습되자, 정변 주체세력에 의해 숙청해임되고 8월 22일 중장으로 예편되었다.[1] 이후 박정희의 중앙정보부에 의해 '반혁명' 혐의로 기소되어 1963년 3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5월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났다. 직후 바로 미국으로 도피하듯 떠난다.
2.4 미국행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1969년 위스콘신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1993년부터 웨스턴미시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다.
2011년 5월 16일 플로리다에 거주하며, 치매와 파킨슨병으로 투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8월 3일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에서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3 대중매체
- 제2공화국(드라마) : 김동현. 그냥 저냥 미적미적하는 걸로 묘사되었다.
- 제3공화국(드라마) : 노주현. 아주 비열한(...) 인물로 다시 역을 맡았다. 더 ㅎㄷㄷ한 점이 있다면, 장도영이 전작보다 더 깎아내려진 3공화국의 경우, 장도영 본인이 직접 인터뷰한 장면이 당시에 방영되기도 했다. 그것도 주요 인물로.(...)
저러니 숙청당하지 - 야인시대 : 이경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