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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전창진(田昌鎭) |
생년월일 | 1963년 5월 20일 |
국적 | 대한민국 |
출신학교 | 용산고 - 고려대학교 |
포지션 | 가드 |
신체사이즈 | 185Cm, 102Kg |
실업입단 | 1986년 삼성전자 농구단 입단 |
소속팀 | 삼성전자 농구단 (1986~1987) |
지도자 | 수원 삼성 썬더스 코치 (1998~1999) 원주 TG삼보 엑서스 코치 (1999~2002) 원주 TG삼보 엑서스/동부 프로미 감독 (2002~2009) 부산 kt 소닉붐 감독 (2009~2015) 안양 KGC인삼공사 감독 (2015) |
2003~2004, 2004~2005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 |||||
김 진(대구 동양 오리온스) | → | 전창진(원주 TG삼보 엑서스) | → |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
2007~2008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 |||||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전창진(원주 동부 프로미) | → |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
2009~2010, 2010~2011 한국프로농구 감독상 | |||||
유재학(울산 모비스 피버스) | → | 전창진(부산 kt 소닉붐) | → | 문경은(서울 SK 나이츠) |
목차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농구 감독.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성공을 거두며 대한민국 농구를 대표하는 명장으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별명은 호랑이. 예전 원주 삼보/동부 시절에는 치악산 호랑이였는데, 지금은 그냥 호랑이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이 강한 전술과 불같은 성격을 빗대어 표현하는 전창진 + 타짜 = 전타짜가 있다.
안티들에게 불리는 별명은 전돼지 혹은 치악산 멧돼지, 그걸 줄여서 치멧돼(단 치멧돼는 애칭으로 불릴 때도 있다.)
KT 부임 첫 시즌 부처님이란 별명을 잠시 얻었다. 인터뷰 왈 KT가 그동안 약팀으로 오래 있어서 선수들이 패배의식이 쩔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칭찬을 마구 날렸다. 원주 팬들은 KT 작탐을 보며 충공깽... 첫시즌 2위를 하고 나서부터 이제 부처따윈 없다. 선수들에게는 폭풍 어흥~... 심판도 예외없다. 강력한 배치기는 덤?
2 선수 시절
어린 시절에는 상당히 촉망받던 선수였다. 지금이야 몸이 불었지만, 어릴 때는 날렵한 슈터였다. 친구인 유재학과 함께 상명초등학교와 용산중을 다니며 초등학교와 중학교 대회를 모조리 평정했다. 친구 유재학은 경복고로 갔지만, 전창진은 용산고로 그대로 진학해 청소년대표도 하고, 고려대학교도 무난히 진학했다. 그리고 고려대를 졸업한 후, 삼성전자에 스카우트되어 선수 생활을 이어가나 싶었는데, 발목을 다치고 이 발목 부상이 악화되면서 그대로 은퇴. 실업 선수로서는 딱 1년 뛰고 은퇴했다.
3 프런트 전직
은퇴 후, 삼성전자 농구단의 주무 자리를 제안받아 주무로서 일하게 되었다. 프로농구 체제에서 주무는 팀 스케줄 관리 정도만 하지만, 실업 농구의 주무는 한 마디로 모든 잡일을 다 뒤치다거리하는 중노동이었다. 그런데 이 주무로서 전창진은 상당한 역량을 발휘한다. 최고의 프런트, 세계적인 프런트라는 찬사를 받으며 삼성전자의 주무로서 인정받은 것. 홍보, 운영, 사무, 트레이너 온갖 일을 다 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1991년 삼성 농구단의 동남아 전지훈련 지원 차 출장을 갔다가 홍콩에서 구단 총무이자 대학교 선배인 이왕돈 과장이 숙소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지자 그를 재빠르게 병원으로 이송하여 목숨을 건지게 한 적이 있다. 그 후 이왕돈씨의 아들 이광재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구선수가 되었고 원주 동부 프로미와 부산 kt 소닉붐에서 전창진의 제자로 플레이 하며 대를 이어 인연을 맺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동부는 이광재가 입단한 시즌에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4 지도자 생활
4.1 코치 경력
프로 출범 후에는 수비코치 자리를 처음 얻게 되는데, 그 배경에는 허재의 이적을 둘러싼 것이 있었다. 허재를 노리던 삼성이 허재와 가장 가까웠던 전창진을 코치로 임명하면서 허재 영입을 노린 것. 삼성은 허재 영입에 결국 실패했지만, 전창진은 이렇게 코치로 처음 발을 내밀게 되었다. 그리고 1999년 허재를 통제할 인물이 필요했던 TG삼보가 그를 코치로 영입하면서 원주 TG삼보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4.2 감독 생활
4.2.1 원주 TG삼보 엑서스/동부 프로미
2001-02 시즌 중반 성적 부진으로 김동욱 감독이 사임하자, 감독 대행으로 부임했고, 시즌 종료 후에는 정식 감독으로 승격했다. 마침 프런트에 용산고 선배인 최형길이 있어서 감독 자리를 얻는 것이 가능했다는 시각도 있었고, 실제로 전창진의 감독 능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표하는 사람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전창진은 신인 지명에서 뽑은 김주성의 활약, 절친한 후배인 허재가 팀을 장악해주고, 외국인 선수 데이비드 잭슨이 미쳐버리면서 PO에서 사상 최초로 정규시즌 3위가 우승을 차지하는 일을 저지른다.[1]
그 뒤로 모기업이 동부로 변했어도 전창진은 꾸준한 성적을 내면서 일약 명장의 반열에 오른다. 물론 전창진을 폄하하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왔던 말이 외국인 코치 제이 험프리스가 실제 전략을 짜고 전창진은 하는 것이 없다는 것. 그러나 이는 험프리스가 전자랜드 감독으로 가서 폭망하면서 쑥 들어갔다. 김주성 빨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적지 않았는데, 사실 김주성이 다쳤을 때, 6강 PO 진출에 실패하면서 사실처럼 보였다.[2] 하지만 2007-08 시즌 김주성이 복귀하고, 쩌리처럼 보였던 강대협, 표명일의 백코트를 가지고 2위와의 게임차가 2~7위와의 게임차보다 더 큰 그야말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런 말도 들어가게 만들었다.
4.2.2 부산 kt 소닉붐
2008-09 시즌을 마친 후, 계약기간이 끝나자 모기업의 소극적인 지원을 내심 아쉬워했던 전창진은 그 해 꼴찌 팀이었던 부산 kt 소닉붐으로 자리를 옮긴다. 그리고 여기서 팀을 단숨에 2등으로 만들면서 자신이 단순히 김주성 빨로 감독한 것이 아님을 완벽하게 증명했다. 그리고 이듬 해인 2010-11 시즌에는 아예 팀 창단 첫 정규시즌 1위까지 이뤘다. 다만, 두 시즌 모두 아끼는 후배인 허재와 강동희에게 각각 일격을 당하며 챔프전에 못 올라간 것이 흠이라면 흠. 어쨌든 KT에서의 성과로 전창진을 두고 선수빨이라고 하는 사람은 이제는 없다. 까는 사람은 이를 또 추일승 감독 시절 모아둔 풍부한 포워드층 덕택이라고 하지만, 추일승 감독 시절 KT는 그 포워드층을 오히려 쓸데없이 많다고 정리를 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걸 장점으로 승화시킨게 전창진 감독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다.
2011-12 시즌 종료 후 계약이 끝나서 다른 팀 이적 설도 나돌았지만, KT와 3년 간 재계약을 채결하면서 팀에 잔류했다. 이때 계약한 연봉이 당시 한국의 모든 스포츠 프로 팀 감독 중 최고액인 4억 5천만원을 받았다. 주전들의 줄부상과 찰스 로드와의 갈등 속에서 리그 3위로 마쳤고, 대체 용병을 몇번이나 데려올려고 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로드와는 불편한 공존을 이어갔다. 6강에서 로드가 폭발하며 4강으로 견인했지만, 그후 4강에서 KGC에게 광탈당한다.
2012-13 시즌엔 박상오를 내주고 신인픽 1순위인 장재석을 얻었지만, 김도수가 시즌 초반 부상 아웃을 당하고, 김영환과 양우섭을 LG의 오용준, 김현중과 바꾼 2대2 트레이드가 패망하는 등 다사다난했던 시즌을 보냈다. 자신이 이끄는 팀이 하위권에 있었던 적이 거의없었기 때문에 자주 멘붕한 장면을 연출했다.벤치에 주저 앉아 두손으로 가지런히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 지금 힘들어요' 결국은 시즌 9위로 마감, 막판엔 내년 신인 픽(김종규, 김민구, 두경민)을 위해 누가누가 탱킹을 잘하나 논란이 된 팀들 중 한팀이 되었다.
2013-14 시즌에 김현중이 부활을 노리며 오프시즌에 많은 훈련을 소화하며 전창진 감독의 기대가 컸지만, 시즌전 KCC와의 연습경기에서 타일러 윌커슨과 충돌로 이빨 4개가 부러지며 사실상 시즌 아웃 상태에 놓이고 백업 포인트가드인 김현수도 발목부상이 겹치면서 2번인 김우람과 조성민이 1번을 번갈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앤서니 리차드슨의 폭발적인 득점력과 김우람, 오용준의 높은(약 40%이상) 3점 성공률, 조성민의 포텐셜이 터지면서 시즌전 뚜렷한 전력 강화없이 약체로 평가되던 KT는 상위권을 유지하였고, 외국인 용병 브라이언트가 팀에 적응하지 못하자 과거 KBL과 인연이 깊은 아이라 클라크를 데려왔다. 팬들은 나이가 너무 많은거 아니냐면서 우려했지만, 클라크는 나이를 거꾸로 먹을수 있다는 걸 증명하였다.
그 전인 9월에 열린 드래프트에서 1순위 확률을 높였지만 뽑기 운 앞에 눈물을 흘리며 5순위로 한양대 포인트가드 이재도를 데려왔다. 재밌는건 작년 탱깅를 하지않고 최선을 다한 삼성이 4순위 탱킹의 최후.역시 정의는 승리한다!!!근데 더 심하게 탱킹했던 LG는 뭐지?? 이재도는 팀 전술 부분에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하며 출전 시간을 많이 얻지 못했다. 결국 주전 포인트가드의 부재로 3라운드가 끝나고 올스타전 전에 오리온스의 추일승 감독과 4대4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리차드슨, 장재석, 김도수, 임종일/전태풍, 랜스 골번, 김승원, 김종범)
오리온스에선 김동욱과 갈등이 있고, 주전 포인트가드를 이현민이 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쉬울것 없이 전태풍을 넘겼고, KT 입장에서도 무단이탈 이후 감독, 구단과의 불화가 있는 리차드슨을 정리했다. 대체로 두 팀 다 소득있는 트레이드였다가 주 평가였지만, 김도수 약물 파동이 터지면서 전창진과 프런트는 멘붕에 빠지고, 이에 대한 보상으로 다음 시즌 1라운드 신인픽을 내주면서 결과적으로 오리온스의 승리가 되었다.
후반기 들어서는 골번의 손가락부상으로 아이라 클라크가 거의 모든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다. 결국 시즌 막판 플레이오프를 위해 6경기 남기고 후안 파틸로를 영입한다. 대체로 반응들은 로드와의 불화를 겪었던걸 이유로 후안 파틸로 vs 전창진을 기대했지만, 파틸로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전창진 감독과 호흡이 의외로 잘 맞았다. 시즌을 5위로 마감하며 벌어진 4위 전자랜드와 플레이오프 6강전에선 전문가들은 조성민 vs 리카르도 포웰의 대결을 예상했지만, 농구 팬들은 그런 거 관심없고 오로지 찰스 로드 vs 전창진 감독 대결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하지만 모든사람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시리즈는 송영진vs이현호의 대결로 전개되었다. 나이 많은게 죄냐!? 노익장 무시하지 마라! 실제로 전자랜드에선 송영진을, KT에선 이현호를 거의 노마크로 두다시피 했다. 결국 송영진이 3점 슛과 야투가 터지면서 5차전 접전 끝에 kt가 4강에 진출하여 정규리그 1위 LG와 4강전을 치렀다. 그러나 4강 1차전에서 경기초반 심판의 판정에 강하게 어필한 것이(심판에게 강한 배치기를 시전. 주먹질 액션은 덤?)퇴장으로 이어졌다. 이런상황에 KBL 총재는 여전히 맛있게 팝콘이나 드셨다... 한심한 KBL! 그래서 한경기 출전 금지와 500만원 벌금의 징계를 받았다. 감독도 감독이지만 심판한테 징계 안주는 이유는 뭐냐?! 2차전을 김승기 수석코치가 대체로 치렀지만 LG에 패배.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결과적으로 그 판정 하나가 1차전과 2차전에 큰 영향을 주었고 3차전엔 조성민과 클락이 분투했지만 대패로 시리즈를 마감했다. 제퍼슨에게 욕을 먹었다고 흥분해 다시 배치기를 시전하나, 진짜 욕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 미궁 속으로...
14~15시즌 비시즌엔 골밑이 약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FA를 노렸지만 실패, 사인&트레이드로 제자인 동부의 이광재를 데려오고 김현중과 김종범을 내주었다. 오리온스에 1라운드 지명권까지 내주었고 외국인드래프트에서 7번쨰로 뽑은 마커스 고리를 퇴출, 테렌스 레더로 교체한 뒤 전자랜드와 트레이드를 해 애증의 로드를 다시 데려왔다. 조성민은 국가대표로 활약했지만 발목 부상으로 수술이 불가피해서 2-3라운드까지 출전을 하지 못했으며, 선수들의 노쇠화는 덤. 3년 재계약 마지막 해인 올해 성적이 필요했지만, 초반 8연패에 빠지며 위기에 빠졌으나 2년차 가드 이재도의 활약으로 분위기를 반전, 다시 중위권으로 치고 올라갔다. 조성민의 복귀 와 상무 선수들의 제대란 반등의 요소가 있었지만 부상자 속출로 어려운 상황.
결국 2014-15 시즌을 23승 31패 7위로 마쳤고, KT가 전창진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하면서 6년에 걸친 그의 KT 감독 생활은 막을 내렸다.
4.2.3 안양 KGC인삼공사
그러나 바로 몇주 뒤, 안양 KGC 인삼공사의 새 감독에 선임되었다. # 이 과정에서 코치진이나 통역관 등도 자신이 데려오는 인물들로 기용해달라는 전창진 감독의 요구 때문에 잠깐 안양 구단과 이견충돌이 있었으나 곧 수용되어 계약도 문제없이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2015년 5월 25일 승부조작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가 이뤄졌으며 곧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다.
2015년 8월 4일 자진사퇴를 했다. 등록유예 마감 기한인 8월 14일까지 해결이 안될거 같아서 스스로 했다고 한다.
5 감독 스타일
5.1 장점
수비 전술을 짜는 데 일가견이 있다. 동부의 수비력을 만들어낸 인물이 바로 전창진. 체력을 중시해서 매년 오프시즌 마다 죽도록 산악체력 훈련을 시키고, (태백훈련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훈련은 선수들 모두가 벌벌 치를 떤다.) 역시 한국농구는 산을 뛰어야 하나?...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중시하는 농구 전술을 짠다. 동부에서는 김주성을 축으로 한 공격과 수비 전술을 보였다면, KT에서는 김주성같은 선수가 없기 때문에 전 선수들이 움직이는 포워드 중심의 모션 오펜스를 구사하면서 자신이 상황에 맞춰서 전략을 짤 줄 아는 감독임을 보여줬다. 반면 엄청나게 뛰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타 팀에 비해서 크다. 시즌 1~3라운드까지는 잘 가다가 4라운드 넘어가면서부터 체력이 급감하는 모습들을 자주 연출하며 시즌 막판엔 무기력한 경기를 가끔 한다. 기본적으로 수비를 중시하는 감독으로 수비 전술은 상당히 잘 짰다.[3]
외국인 선수 조련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제스퍼 존슨과 찰스 로드가 대표적인데, 타 팀에서 저평가 받은 제스퍼 존슨을 2라운드 순위로 뽑았지만 그 해 최고의 외국인상을 받고 팀도 정규 시즌 2위를 찍는다. 로드 역시 11시즌 정규리그 우승에 큰 보탬을 하게 된다. 13시즌 파틸로를 데려와서 인삼 때와는 다른 패스 플레이를 하게 바꿔놓았다. 외국인 선수들을 한국농구와 팀 스타일에 맞게 바꾸기란 쉽지 않다. 외국 선수들은 유럽 리그나 중국 리그보다 수준 낮은 한국 농구를 무시하는 경향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배우거나 자신들을 한국농구 스타일에 맞게 바꾸는 것에 인색함을 드러낸다. 그런 부분을 이 호랑이 감독은 넘어가질 않는다. 보통 감독들은 경기 중에 외국 선수가 엉뚱한 플레이를 하거나 잘못하면 교체하거나 무시하거나 그냥 할 거 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 넘어가지 않고 바로 욕을 한 바가지 시원하게 날려주신다...... 인격모독?! 비슷하게 화 내는 감독들도 있지만 전창진 감독을 따라올 순 없다. 결국 시즌 중간에 어떤 외국인 선수들이든 간에 한 번은 크게 갈등이 충돌한다. 로드 같은 경우는 아주 심하게 갈등한 대표적인 케이스.
배우는 것에 인색하지 않고, 지도자로서 비교적 열린 태도를 취한 것도 성공의 한 요인이다. 감독 초년기에는 전술을 잘 몰라서(!) 연세대의 전성기를 이끈 최희암 감독에게 찾아가 전술이나 선수 관리 요령을 묻고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제이 험프리스 같은 코치를 통해서 전술도 가다듬었고, 나중에 자신만의 철학이 만들어진 후에도 후배 코치들과 의논해서 전략을 짜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선수들을 엄하게 굴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랜 프런트 생활 때문에 선수들이 심리를 잘 알아서 정작 사생활에는 관대한 편이라고 한다. 오히려 선수들 여자친구까지 챙기면서 일상에서는 편하게 대한다고. 프런트의 생리도 잘 알기 때문에 KT 시절 막판이었던 14-15 시즌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처럼 보였었지만, 그 외에는 특별한 갈등도 없었다. 식당 아주머니까지 챙겼었다고 하니까 말 다한 셈. 아울러 프런트 생활하면서 기자들과도 친분도 두텁고, 실제로 기자들에게 가장 인터뷰를 잘 해주는 감독이라고 한다. 아울러 가까운 후배들이 상당히 많은 감독. 허재가 그를 따르는 것은 유명하고, 강동희와도 한 때, 2010-11 PO 때문에 사이가 잠시 틀어졌다가 지금은 다시 화해했다고 한다.
5.2 단점
흠이라면 심판 판정에 대해 죽일 듯이 따지는 점. 시즌 중에 양복 자켓을 집어던지는 일이 자주 있다. 13시즌엔 kbl 최초로 심판까지 배치기로 밀쳤다. 그런데 이 점은 감독이 적극적으로 항의를 하지 않으면 심판들이 감독을 호구로 알고 판정을 지들 멋대로 하는 경우들도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적지 않다. 그 매너 좋다는 강을준 감독의 LG는 재임기간 내내 심판의 호구 취급을 받았다.(...) 기싸움. 이렇게 산으로 가는 심판들의 판정으로 인해 한국 농구감독들은 타리그 감독들보다도 더 어필하게 된다. 하지만 원인이야 어찌되었던 감독들이 욕하고 옷 던지고 하는 모습을 팬들이 좋아할 리 없다. 무능한 KBL.
또다른 흠이라면 선수들에게 가하는 무시무시한 막말. 이게 작전타임 도중 중계 화면으로도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좀 너무 심한 편이라서 팬들이 비난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실제로 자신도 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제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말대로 실천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는 외국인 선수들에게도 예외가 아니며 특히 12시즌에 보였던 찰스 로드에 대한 디스는 도를 넘어섰다. 찰스 로드 때문에 올 시즌 다 망쳤다. [4][5]
또한 경기를 너무 쉽게 포기하는 경향도 있다. 2012년 10월 20일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경기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작전타임을 부르지 않았다. 1쿼터 경기력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태업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건 이런 모습을 보여준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것. 그래서 붙은 별명이 전토토.[6]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본인도 전토토라는 별명을 알고 있다고 한다(...). 이 행동으로 인해 구단으로부터는 엄중 경고, KBL으로부터는 벌금 500만원의 징계를 먹었다.(감독 변명 왈 포기한 경기 다음경기 승률이 좋다고.....하지만 팬들은 이런거 좋아하지않는다.나름 플레이오프에선 이게 약간의 장점으로 작용한다. 플레이 오프는 단기전이기 때문에 질꺼 같으면 .....과감히 버리고 체력을 비축하거나 대파 당하게 되면 자신들의 약점이 잘드러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추어 보완하고 대비한다.) 이게 왜 문제냐면, 농구의 타임 아웃은 리그의 중요 수입원인 중간광고와 직결되기 때문에 이걸 안부르면 광고주들 엿먹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래서 NBA에선 아무리 게임 분위기가 좋건 나쁘건 1쿼터에 한번은 불러줘야 한다. 아예 룰이 경기 시작 후 9분안에 부르지 않으면 심판이 임의로 타임아웃을 시키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KT시절 부각된 또 다른 약점은 신인 육성과 트레이드인데, 2009년에 단행한 1라운드 지명권을 안양 KT&G 카이츠의 나이젤 딕슨과 바꾼 트레이드[7], 2011-2012시즌 이후 포인트가드와 베테랑 슈터를 보강하기 위해 벌인 김영환, 양우섭과 창원 LG 세이커스의 김현중, 오용준을 트레이드 시킨 것, 박상오를 사인 앤 트레이드로 서울 SK 나이츠가 지명한 장재석과 트레이드 한 것, 12~13 시즌에 서울 삼성 썬더스와 한 용병 대리언 타운스와 브라이언 데이비스의 트레이드 모두 별로인 결과로 나타난 것 또한 좋지 못한 부분. 지속적인 트레이드 실패로 인한 선수층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그가 떠난 후 11~12시즌부터 삼성이 겪고 있는 문제점들이 KT에 고스란히 나타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3-14 시즌에도 깜짝 트레이드를 했는데 당장 이득을 보진 못했다. 기자들은 전태풍이 내년 계약 1년 남은 것과KCC시절에도 3년동안 한번만 산악훈련에 참가하였는데 설마 전태풍을 KT 태백훈련 데려갈려고?13시즌 끝으로 드래프트에 좋은 선수들(양희종, 김태술, 함지훈, 이광재 등등)이 많이 나오는것, 신인 드래프트에 좋은 신인들(이승현과 김준일 등)이 많이 나오는 것을 이유로 내년 시즌을 위해 리빌딩 들어간거 아니냐는 의심을 하였다. 그리고 김도수의 약물 논란으로 인해 1차 신인 지명권을 날려버렸다. 자세한 계약은 아직 발표를 안했으나, 이후 마지막 오리온스와의 6라운드 대결에서 추일승 감독과 악수를 거부하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이유에 대해 말들이 많았는데 당시 그럴듯한 소문 내용은 오리온스가 내년 시즌 1라운드 1픽을 뽑게 되면 보상으로 오리온스의 포워드 중 한명을 보상으로 내주는 걸로 계약했다는 내용이었다. 내년엔 신인 드래프트가 1위, 2위팀을 제외한 모든 팀이 동률이기 때문에 오리온스 입장에선 훨씬 이득인 셈. 이 소문이 사실이라면 당연히 전창진 감독은 최진수를 보상선수로 선택하게 될텐데 최진수가 이번시즌을 끝으로 상무 입단 신청을 했다. 5라운드까지는 악수했는데 최진수 상무 신청 날짜 이후 전창진 감독이 화났다는 루머가 있었는데 결론적으로 오리온스가 KT의 1라운드 지명권를 갖고 그 대신에 KT는 오리온스의 2라운드 지명권을 갖게 됐다.
트레이드 결과는 말 그대로 망했어요. 전태풍이 KT 특유의 많은 패턴농구에다가 특히 오리온스에서 평균 출전 시간이 20분 내외였기 때문에 KT에와서 체력에 문제가 발생했고, 결국 야투율과 자신감까지 떨어지게 됐다. 외국인 골번은 손가락 부상으로 거의 뛰지 못하고 시즌 마지막 6경기 남기고 플레이오프를 위해 파틸로를 영입한다. 반면 고양 오리온스는 장재석, 임종일, 김도수, 앤써니 리차드슨을 받아 막강한 포워드 라인업을 구축하였고 장재석이 포텐 터지면서 오리온스는 상승세를 타고 도장깨기를 시전했다.
또 빅맨을 잘 키워내지 못한다는 단점도 있다. 전창진은 가드 출신으로 아주 짜임새 있는 플레이를 원했고(KT 와서 했던 영입한 가드들은 포인트 가드에 비중을 맞추고 있다. 그 예가 김현중, 전태풍), 그 때문에 포인트가드에 아주 큰 비중을 두고 있기 때문에 빅맨들은 나쁘게 말하면 병풍 신세가 된다. 빅맨들에겐 아주 단순하면서도(몸싸움 리바운드 수비+중거리슛) 확실한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개인기가 좋은 빅맨들은 스타일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아주 단순한 플레이를 보이는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다. 실제로 윤호영 같은 경우도 전창진 밑에서는 별로 좋은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다가 감독이 바뀌자 날아다니면서 결국 MVP를 차지하였고, 장재석 역시 1년 이상 부진을 겪다가 오리온스에 가자마자 좋은 모습으로 날아다녔다. 결국 전창진 감독이 추구하는 빅맨 스타일이 장재석과 안 맞았던 부분이 부진의 원인이 되었다. 전창진 감독이 추구하는 빅맨스타일은 딱 송영진인데, 장재석은 본인이 기술자라고 할만큼 개인기가 좋은 선수다.(2미터 빅맨이 그렇게 날렵하기 힘들다.) 대학 때도 드라이브 인을 자주 하는 모습을 보였고, 드리블도 곧잘했다. 하지만 kt에서 바라는 스타일은 외곽 슛을 갖추고 리바운드 확실하게 잡아주고 2대2 플레이 등, 화려한 빅맨보단 기본기가 충실한 빅맨을 원했다.
반면 가드들은 잘 키워낸다. 양우섭, 김현수, 김우람(KCC에서 방출된 이 2군선수는 성공스토리의 주인공 신데렐라가 됐다.KT에서 비시즌때 프로에 남기 위해 엄청난 양의 훈련을 소화해냈다고 한다.), 오용준(대학때는 슛이 좋았지만 프로에선 이렇다할 큰 활약을 못하고 식스맨으로 활동했는데 13~14 시즌에 가장 많은 출전시간을 소화하며 조성민의 세컨 슈터로 활약한다.역시 한국농구는 비시즌에 산을 뛰어야 하는건가), 본격 재활용 전문 감독으로 등극 조성민 등이 있는데 특히 조성민은 추일승이 KTF시절 8순위로 지명해서 데뷔 당시 좋은 체력과 근성을 바탕으로 수비전문 선수로 활약하였지만 지금처럼 슛이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다. 전창진 감독은 조성민의 슈팅시 하체 밸런스가 무너지는 걸 2년에 걸쳐서 교정하면서 30%대였던 3점 성공률이 13~14시즌 들어와서 40%를 넘겼다. 12~13시즌이 끝나고 타팀들이 FA 시장에서 조성민에게 더 높은 가격에 러브콜을 보냈지만 전창진 감독의 설득으로 KT와 재계약, 그리고 13~14시즌에 포텐이 터지면서 정규리그 MVP후보로 오르게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 농구의 대표 슈터로 자리잡았다.
6 승부조작 무혐의
2015년 5월 25일 오후, SBS의 단독보도를 기점으로 승부조작 의혹이 터졌다.
경찰은 전 감독이 베팅과 승부조작 전 과정을 주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전 감독의 지시를 받고 지인들에게 수익금 배분을 약속한 뒤 자금을 마련한 혐의로 일당 4명 중 2명을 이미 구속했다. 경찰은 전 감독 등에게 도박 자금 3억 원을 빌려줬다는 사채업자의 진술을 받아내고 당시 거래 내용을 담은 차용증도 확보했다. 이 사채업자는 “전 감독이 베팅할 경기를 (우리에게) 직접 알려줬고, 해당 경기에서 후보 선수들을 경기 (승패를 가를) 막판 시점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승부를 조작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도박자금이 송금될 때 사용됐다는 전 감독의 차명 계좌도 조사하고 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진 않았지만, 그 동안 잦은 규칙 위반으로 벌금을 납부한 이력이 있고 불법 스포츠토토 운영자와 친하게 지내고 대포폰을 사용하며 KBL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것을 이유로 결국 승부조작 혐의로 수사를 받던 전직 선수 박성훈과 같이 무기한 KBL 등록 자격 불허 조치되었다. 설령 승부조작 여부가 사실이 아니더라도 한국 농구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이상 복귀는 사실상 요원한 일이 되었다.
2015년 12월 19일, 전창진 감독이 무혐의 처분 받았음이 한 언론에 의해 보도되었다.[8] 다만 언론보도 링크와 같이 그 어느 언론에서도 무혐의 처분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무혐의 처분의 구체적 사유에 대해서는 알기 어렵다. 31일 점프볼 기사에 따르면 해당 내용은 확실한 근거가 없는 것으로 관계자에 따르면 명확한 결론이 아직 나지 않았다고 한다.'다사다난!' 2015년 한국농구 10대뉴스
자세한 내용은 2015년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 항목 참고.
2016년이 반이 넘게 지나도록 소식이 전혀 없는데 기사에 따르면 기존 담당검사가 인사발령을 받으며 검사가 바뀌면서 지난해 말 발표 예정이던 수사가 다시 재검토 상태로 들어갔다고 한다. 또한 이번 사건의 담당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전담하고 있어서 사실상 업무가 중단된 상황이라고 한다. 변호사 측에 따르면 이런 사건이 장기화되는건 일반적이라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라고.
결국 무혐의 처분 되었다. 기사- ↑ 참고로 5차전에서 계시원의 실수로 시간이 15초나 흐르지 않은채 경기가 그대로 진행되는 오작동 사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류는 정정되지 않았고 오리온스 입장에서는 이것만 아니었으면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통한의 기억으로 남게되었다.
- ↑ 그런데 어느 팀이나 에이스가 빠졌을 때 전력이 급감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국내 감독들 중 지도력에서 가장 이견이 적을 유재학도 우승한 06시즌 직후 주축 선수들이 빠지자 바닥을 헤멨다. 솔직히 팀의 기둥이 다쳤을때 6강 실패했다고 선수빨이라고 몰아붙히면 선수빨 아닌 감독이 거의 없다.
- ↑ KBL의 대표적인 테크니션 전태풍도 KT의 팀 수비가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했었다. 실제로 전태풍이 KT에 상당히 약했다.
- ↑ 전창진의 스타일상 팀플 용병을 추구하는데 찰스 로드는 그런 면에서 전창진과 맞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겠지만, 한 선수에게 책임을 전부 떠넘기는 극단적인 발언은 인격모독이라고 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다.
- ↑ 리차드슨과의 갈등은 감독의 카리스마보단 선수 내적인 부분과 kt구단에 외적인 부분의 충돌로 빚어졌다. 리차드슨은 독실한 크리스찬이라 아내가 셋째 출산하자 무단으로 선수단을 이탈, 결국 kt는 리차드슨 없이 경기를 치뤘다. 구단과 감독인 이에 실망해 트레이드를 감행한다.
- ↑ 상대팀에게 배팅하고 경기는 일부러 지는 승부조작을 한다는 의미. 단, 이것은 팬들 사이에서 이런 스포츠정신이 없는 것을 비꼬아서 비판하는것. 실제로 스포츠토토의 경우 선수,감독,코치 본인들은 물론 그들의 가족이 할 경우에도 처벌이 된다.
- ↑ 다만 이 부분은 이정현의 성공 이후 평가받는 부분. 실제로 당시에는 약점을 메우는 트레이드 라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딕슨이 KT에서 저조했고(딕슨은 2005-06시즌 중도에 KT(당시는 KTF)에 합류해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과체중을 이기지 못한 부상으로 플레이오프에는 함께 하지 못했다. 다시 KBL로 왔을 때는 여전한 부상 우려와 1인 출전제로 바뀌면서 활용에 제약이 따랐기에 저조했던 것.), KT&G에서 2순위로 의외로 지명된 이정현의 성공때문에 평가받는 부분.
- ↑ 무혐의 처분을 경찰이 내렸는지 검찰이 내렸는지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기각했다는 점에서 검찰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