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웨인

미국의 연쇄살인범에 대해서는 존 웨인 게이시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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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John Wayne
본명Marion Robert Morrison
생년월일1907년 5월 26일
사망1979년 6월 11일
출생미국 아이오와 윈터세트
신장194cm
데뷔년도1926년
데뷔작1926년 Brown of Harvard
감독 데뷔작1971년 Play Misty for Me
자녀슬하 3남 3녀
종교개신교가톨릭(세례명 : 요한)

게리 쿠퍼와 더불어 서부극의 대부이자 상징적 존재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공화당파였던 배우

인생은 본래 녹록지 않다 by. 존 웨인

2 소개

194cm의 큰 키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이다. 20세기 폭스 영화사의 소품담당으로 일하다가 쩌리 B급 영화 전문 배우로 활약, 이후 존 포드 감독을 만나고 포드 감독은 그를 단역배우로 기용하다가 주연을 맡겼고 이후로 그는 승승장구한다.

대부분의 영화 내용이 지금 보면 뻔한 스토리의 서부극인데 모든 작품이 그런 건 아니다. 이를테면 그가 나온 영화에서 미국 원주민을 꽤 긍정적으로 그린 아파치 같은 영화도 있고 백인이 더 악랄하게 나오던 수색자(The Searchers/1956) 같은 영화는 할리우드 불멸의 걸작으로 꼽힌다. 수색자는 개봉 당시 욕 무지 먹고 매장되었다가 웨인이 죽고 난 뒤에서야 재평가되었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에는 백인이 악랄하게 나오는 경우를 받아들이기 어려워서인지 평이나 흥행은 참혹했다. 지금은 시대를 잘못 만난 걸작이라고 불리운다.

월간 플래툰지의 필진 니미셀은 웨인을 다른 장르의 영화도 서부극으로 만드는 사나이라고 할 정도다. 서부극이 아닌 전쟁영화, 혹은 서커스단의 단장(...)으로 나온 영화들도 서부극의 포스를 풍긴다. 심지어는 칭기즈 칸까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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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시절 날카롭던 모습.

게리 쿠퍼에 라이벌 의식이 있던 것으로 보이며 그가 출연한 '하이 눈'을 평가절하했다고 한다. 이후 자신과 같은 성향을 가진 하워드 혹스 감독과 함께 '리오 브라보'를 만든다. 참고로 혹스 감독도 하이눈 까. 그리고 후세에선 하이 눈, 리오 브라보 모두 걸작으로 평가 받고있다. (하이눈: IMDB 평점 8.2 / 썩은 토마토 평점 96%, 리오 브라보: IMDB 평점 8.1 / 썩은 토마토 평점 100%) . 25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쿠퍼의 최고 걸작으로 하이눈을 언급하면서, 자기에게 캐스팅 제의가 오지 않은 게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스파게티 웨스턴에 출연한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피자나 먹으려고 이탈리아로 갔냐?"라고 했다. 하지만 꽤 당찬 성격인 이스트우드는 되려, "선배는 그럼 늘 햄버거만 먹습니까?" 라면서 반격했고 웨인은 피식 웃으면서 물러났다고 한다.(월간 키노에서 할리우드 스타들 대사로 나온 바 있다.)

극우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공화당원이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제2차 세계대전 당시, 체중미달로 징병검사에서 불합격을 받자 몸무게를 늘려서 입대한 뒤, 준장으로 제대한 것과는 달리, 자신은 참전하지 않았다. 영화 이미지만큼의 강한모습이 아닌걸로도 보일수있지만 이미 그당시 배우자와 4자녀가 있는 가장이라 섣불리 참전하긴 무리라고 판단하여 징병유예를 요구했었다.

매카시즘의 찬성파로 까이기도 했고 인종차별주의적인 발언을 해서 물의도 빚었다. 1971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난 흑인들이 책임을 질 수 있는 교육을 받을 때까지 백인우월주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는 광할한 이 땅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부당하게 취했다는 느낌마저 들지 않고, 이 땅은 많은 사람들을 필요로 한데, 인디언들은 이기적으로 차지하려 하고 있다.고 말한 것. KKK 소속이거나 거기 간부와 잘 안다는 소문도 많았는데 그것만은 절대 아니라고 부정했다.

그래도 엘리아 카잔 등 일부 할리우드 인사들처럼 원래 좌파였다가 공개 전향은 아니기 때문에 정치적 성향 가지고 까이는 건 아닌 편이다. 게다가 카잔이 까이는 것은 단지 전향 때문이 아니라 밀고 때문이다. 매카시즘항목에도 보이듯이 실제로 밀고된 사람중에 공산주의에 깊이 관여했거나 소련의 스파이 활동을 한사람은 거의 없다. 즉 엘리아 카잔은 자신이 살기 위해 동료들에게 가짜 혐의를 덧씌워 팔아넘긴 것이다.

2차 대전 당시에도 상당히 많은 전시 선전영화에 출연했다. 그 중에서도 작품성이 존재하는 것은 "싸우는 해병 설영대"와 "플라잉 타이거스" 정도. 웨인 사후 이 작품에 "유황도의 모래"를 추가해서 3부작으로 컬러 작업을 해서 비디오 및 DVD로 출시되었다.

베트남 전쟁을 매우 지지하였기에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한 '그린베레'라는 영화를 감독하고 당연히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베트남전이 한창일 때 만들던 영화이자 실제 그린베레 대원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들었으니 베트콩은 무조건 악. 미군이 이기며 전쟁 홍보영화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하지만 정치성향을 제외하면 의외로 재미 있어서 유럽에서는 앞부분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정치성이 농후한 장면을 삭제한 채 개봉했다...

그런가 하면 이 영화 삽입곡인 '발라드 오브 그린베레'는 당시에 꽤나 유명곡이 됐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정작 그린 베레 대원들은 그노래 그다지 안좋아했다고한다. 당시 인기있던 곡 중 매우 드물게 군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으로 노래된 일종의 '애국'적인 내용으로 전사하는 그린베레 대원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기장을 아들 가슴에 달아주고 미국 최고의 그린베레 대원으로 만들어 달라'란 유언을 전해달라는 내용이다.

이 노래를 작곡하고 부른 배리 새들러는 그린베레 베트남 참전 용사이며 위 영화의 원작자인 로빈 무어가 이 곡을 취입할 수 있게 도와줬다고. 로빈 무어는 영화로 유명한 프렌치 커넥션의 원작자 이기도 하다. 가사는 1962년 베트콩에게 처형된 하와이 원주민 출신의 그린베레 대원인 제임스 가브리엘 2세를 추모하며 쓰인 것이다.

당시의 실제 그린 베레 대원들의 수기를 보면 가끔 이 영화와 존 웨인이 언급이 되는대, 영화는 그저 그랬지만 존 웨인은 멋있다 라는 반응이 많다도한다.

유황도의 모래는 49년작 흑백영화였다. 저걸 보고 자원입대한다는 건 굉장히 영화 마니아였다는 것이다. 아니면 옛날 영화들을 싸게 틀어주는 허름한 극장에서 봤을 수도 있다.

이 유황도의 모래는 일본군과 싸우는 미국군을 다루는 내용으로 저 병사의 후일담도 있다. 위문공연 온 배우에게 면박을 줬다는 이유로 나중에 정신적 압박을 받았다. 왜냐하면 병사들이 제일 신나는 때가 위문공연할 때인데, 그때 분위기를 깼으니...

웨인은 심지어 자신과 데이트를 한 여자들을 영화에 기용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말도 있었고 세금 탈세 혐의도 있다든지 여러 모로 안 좋은 일로 욕먹을 짓도 좀 저지른 바 있다.

성격도 좀 욱하는 면이 커서 자신과 비슷한 정치관을 가지고 탈세라든지 여러 모로 논란이 큰 후배 프랭크 시나트라와 사이가 안 좋았다. 한번은 웨인이 머무른 호텔에 바로 시나트라 일행이 머물며 신나라 잔치를 하는데 웨인이 잠 좀 자자고 짜증내자 시나트라는 경호원을 내보내 내쫓았다. 그러자 분노한 웨인은 의자를 갖고 와 그 경호원을 내리쳐 기절시켜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또 의자로 맞고 싶은 개색히 있냐? 라고 일갈하는 통에 시나트라는 깨깽...

그의 마지막 영화는 마지막 카우보이(1977/월간 키노에선 이 제목으로 소개되며 암으로 죽는 총잡이로 소개되었다.)였다. 이 영화에서 암으로 죽어가는 총잡이로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진짜 암으로 죽었다. 그래서인지 죽기 얼마전에 자신도 그걸 언급하면서 지인들에게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 고른 영화가 내 미래를 상징했을 줄 몰랐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마지막 카우보이는 돈 시겔 감독의 영화로, 한국에는 '최후의 총잡이'(원제 : The Shootist, 네이버 영화에서는 마지막 총잡이로 등록)란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DVD 이야기) 초반부에는 웨인이 찍었던 서부영화들이 조금씩 나온다. 하지만 주인공 J.B 북스(존 웨인)는 암으로 죽어가는 건 사실인데, 죽을 때 모든 원한관계를 정리하려고 총싸움을 하다가 기습으로(더블 배럴 샷건) 맞아죽는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제임스 스튜어트가 의사로 출연한다.

사실 존 웨인 영화의 정리판은 앞에서 언급한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보면 된다. 시대와 함께 쓸쓸히 퇴장하면서 영웅으로 남기를 거부하는 인물은 존 웨인 최고의 연기력을 보여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오렌지 카운티 공항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서 존 웨인 공항으로 불린다. 이 분이 말년을 보낸 곳이 공항 근처의 뉴포트 비치였기 때문.

  • 홍콩계로 미국에서 활동중인 조이럭 클럽, 슬램댄스의 영화감독 웨인 왕은 바로 존 웨인 영화를 좋아하던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정작 자신은 존 웨인 영화 싫어하는데...라며 쓴 웃음 지은 적도 있다고 한다...
  • 빈센트 반 고흐를 유난히 싫어했다. 영화에서 고흐역을 했던 커크 더글라스에게 "그딴 미치광이역은 왜 했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고, 화가이기도 한 배우 안소니 퀸은 이 말을 듣고 치를 떨었다고 한다.

대체 역사 소설 타임라인-191 시리즈에서는 잠깐 언급만 된다... 대체역사 세계에서 2차 멕시코 전쟁의 영웅이자 현직 대통령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전문배우로 북부에서 활약 중. 본편에서는 실명으로 언급만 돼서 자세한 사항을 모르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위에서도 언급됐다시피 그의 사망 원인은 이다. 영화를 촬영한 무대였던 미국 황무지/사막지대가 당시 미군이 실험을 한 장소들과 가까웠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당시에는 잔류방사능에 의한 후유증이나 발암에 대한 인식이 미비했다.

그러나 존 웨인 자신은 이러한 소문을 믿지 않았고, 그저 하루에 6갑을 피우는 자신의 흡연량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고 믿었다. 그게 더 합리적으로 보이는데

일각에선 존웨인의 무덤이 비석만 있는 빈 무덤인 상태고, 워싱턴 DC 지하벙커에 냉동인간 상태인 존웨인이 안치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도 이를 주제로 방송을 한적이있다.

3 작품들

존 포드 감독의 첫 유성 서부극. 존 포드 영화의 상징적인 장소인 모뉴먼트 밸리가 처음 등장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통해 존 웨인은 이전의 B급 이미지를 탈피하고 서부극의 아이콘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존 포드는 한 파티에서 존 웨인을 만나 이 영화를 준비하는데 주연배우로 누가 좋겠냐고 물었을때 존 웨인은 "글쎄요..."라며 말을 흐렸지만 존 포드는 "자네가 해"라고 해서 존 웨인이 놀랐다고 한다.

존 포드 감독의 영화로, 코만치족에게 납치된 조카 '데비'를 찾는 삼촌 '이든'(존 웨인 분)의 여정을 담은 서부극이다. 이 영화는 기존의 서부극이 가지고 있던 '선한 백인과 악한 미국원주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허물고, 두 인종/문화권을 비교적 동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서부극의 두 아이콘인 존 포드와 존 웨인이 만나, 이런 진보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사실은 꽤 고무적이다. 상영 당시에는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현재는 존 웨인은 물론, 존 포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미국영화연구소는 이 영화를 '최고의 서부극' 1위로 꼽았다. 영화사 전체에서 최고의 작품을 뽑을 때도 종종 거론된다.

존 포드 감독이 1952년 아카데미상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한 작품. 기존의 서부극에서 보여진 존 웨인의 거친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

  • 리오 브라보

하워드 혹스 감독 영화. 폐쇄된 환경에서 적을 상대하는 건 훗날, 존 카펜터의 분노의 13번가에서 오마주한다. 아마추어가 아닌 전문가를 찬양하는 성향의 하워드 혹스가 하이 눈을 보다 주인공이 주위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만들었다고 한다.

  • 알라모

존 웨인이 직접 제작, 감독, 주연을 겸한 작품이다.

  •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

자신의 인생이었던 서부극 자체에 대한 회고록이자 서부극 시대에 대한 종언. 훨씬 후에 나온 클린트 이스트우드용서받지 못한 자와 비견될 수 있는 작품이다.

  • 황색 리본을 한 여자

존 웨인이 한 눈이 먼 방탕한 보안관으로 등장한다. 이 영화로 그는 1970년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다. 2010년 코엔 형제가 리메이크 하였다. 물론 코엔형제 리메이크작은 영화의 리메이크가 아닌 원작소설의 영화화. 코엔형제가 어렸을 적 이 69년 작을 보긴 했지만 별로 기억나지 않는다고...

  • 하타리

존 웨인이 동물 사냥꾼으로 등장하는 1962년작 영화이다.

  • 형사 맥큐

하드보일드 영화가 대세가 되자, 나온 영화. 존 웨인은 잉그램을 들고 적을 잡는 탐정으로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패러디였으나, 애니메이션화되면서 초상권 문제로 존 웨인의 패러디로 변경되었다. 사실 괴짜가족의 국회의원은 존 웨인 입장에서는 고인드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