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야구
중화민국은 일본만큼 야구를 많이 즐기는 나라이다. 타이베이 등 대도시에는 아마추어 야구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며 주말이면 아침부터 야구를 즐기는 사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계절에 열리는 축구도 야구 못지않게 많이 즐긴다.
대만에서 야구의 인기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이는 대만 달러 500달러에 어린이 야구단이 도안에 들어갈 정도다. 참고로 대만의 리틀야구 실력은 아시아 최강의 수준을 자랑했다. 역대 리틀야구 월드시리즈 최다 우승국이 바로 대만인데 무려 17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세계적으로 명성을 널리 떨쳤으니 자국 화폐에 어린이 야구단 도안이 들어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그러나 1996년 이후 20년째 우승을 못하고 있다. 안습
국제적으로 왕첸밍이나 천웨이인 같은 메이저리거도 배출했고, 과거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의 강팀이기도 했다. 국제대회에서 나름 내세울 수 있는 성과라면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준우승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터지는 야구계의 대규모 승부조작사건으로 대만 프로야구 리그자체는 사실 인기가 크게 떨어진 상태이다. 이에 대해서는 해당 대만프로야구 항목 참조. 그래서, 대만 출신의 유망주들이 과거부터 긴밀한 관계를 취하고 있던 일본으로 어릴 때부터 유학을 가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물론, 과거 대만 프로야구가 출범되기 이전 시대에는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해서 이름을 날린 선수들도 있었긴 했지만 어쨌든 선수유출은 과거보다도 더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1]
국가대표팀에 대한 것은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 항목 참고. 의외로 대만 야구 팬들은 한국 야구에도 관심이 많으며 대만 프로팀과 아시아 시리즈 등의 대회에서 붙었던 팀들은 인지도가 어느 정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여지껏 대만 출신의 선수가 KBO리그에 뛴 적은 없다.[2]
2 축구
축구는 1950~60년대만 해도 아시아의 강호였다. 1954년 필리핀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을 5:2로, 1958년 도쿄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한민국을 3:2로 이기고 금메달 2개를 받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는 아시아의 동네북보다 약해졌다. 지금은 AFC의 최하위 수준 대회인 AFC 챌린지컵(국대)과 AFC프레지던트컵(클럽)이나 나가고 있는 신세다. 2011년에는 처음으로 프레지던트컵에서 자국 클럽인 파워컴퍼니가 우승을 차지했지만, 대회를 개최한 이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아시아 최정상급의 자리를 꾸준히 지켜오고 있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뚜렷히 대비된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것은 대만 축구 국가대표팀 항목을 참고할 것.
3 농구
농구도 아시아 동네북 수준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중국에게 101-50 정도로(!) 선전했지만, 카타르에게 98-37, 요르단에게 102-35 로 진 적까지 있다. 필리핀과 친선전에서도 81-42로 졌었다.
그런데...2010년대 최근에는 농구에도 투자를 해서인지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10년 아시아 18살 청소년 농구대회에선 중국-한국 다음으로 3위에 올랐는데,만만치 않은 상대인 이란을 이기기도 했으며 한국과도 9점차 패배라는 선전을 벌였다! 그리고 윌리엄 존스 컵에서 한국을 이겼으며 2013년 필리핀 아시아 농구선수권대회에서는 압도적 응원을 받던 안방팀 필리핀을 조예선에서 84-79로 이겼으며 예상을 뒤엎고, 중국을 96-78로 8강에서 탈락시켰다!! 비록 준결승전에서 우승팀 이란에게 60-79, 3,4위전에서 한국에게 57-75로 패배했지만, 확실히 예전 동네북 시절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겨우 2년만인 중국에서 열린 2015 남자 아시아 농구 선수권 대회에서는 카타르, 카자흐스탄, 레바논에게 모두 져서 13-16위 순위 결정전으로 나가 13위를 차지하면서 부침이 심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여자농구 쪽은 과거 중국, 한국과 비등할 정도의 실력을 가졌으며, IMF가 터져 여자농구팀이 반토막이 나던 시절에 대만리그로 진출한 유망주들이 몇몇 있었다. 요즘은 일본이 급부상한 상태에서 중국, 한국 그 다음 위치에 있다. 그런데... 아시아 여자 선수권 대회에서는 처음으로 4강에 오른 1986년 이후로 30년동안 14번동안 연이어 4강에 오르고 있긴 한데 3위가 최고성적으로 1번도 결승에 올라본 적이 없다. 게다가 2007년 대회부터 5회 연속 4위를 차지하는 중. 참고로 한국이 12번으로 최다 우승, 중국이 11번, 일본이 3번(1970년 우승 이후로 2013, 2015년 우승)하면서 3나라가 우승을 차지하는 가운데 대만은 우승이 없는 유일한 4강팀.
4 태권도
태권도가 제법 인기가 있다. 이는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천스쉰 선수가 태권도로 대만 정부 역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최초로 천스쉰 선수가 금메달을 땄음에도 국가연주와 국기 게양이 되지않아 해당선수는 물론이고 대만 전체가 울음바다가 됐다. 태권도에 관련된 드라마도 만들고, 태권도 물품 수입도 많이 한다고 한다.
아시안 게임 태권도에서도 강호로 금 11, 은 9,동 15개로 한국(70개), 이란(39개),중국(금 9개, 10개, 동 18개로 37개)에 이어 태권도 아시안 게임 메달 4위이다[3]. . 태권도라는 무술은 본디 중국무술 → 류큐 → 일본 → 한국을 거치며 개량된 것이니 대만의 태권도 열풍은 그야말로 동아시아를 한 바퀴 돌아간 것으로 볼 수도 있는 셈이다.
5 골프
2011년 1월 대만의 22세 여자골퍼 청야니가 15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지키던 신지애를 제치고 LPGA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다. 한국선수가 바글바글한 LPGA에서 한국선수를 제치고 차지한 1위라 한국에선 공공의 적 포지션[4]이었고 그 뒤로 무려 109주 동안 여자골프 세계랭킹 1위를 지켰던 여자 골프 최강자였다. 그러나, 2013년 미국에서 열린 LPGA 13개 대회서 10위권에 단 2회 올라갔을 뿐…커트 탈락도 2번이었으며 50위 바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런 부진 속에 청야니는 2년만인 2014년 7월에는 세계랭킹 46위까지 떨어졌다. 당시 청야니와 2위 최나연의 랭킹 판정 포인트 차이는 최나연과 랭킹 180위 선수의 차보다 컸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2014년 6월까지는 한국 여자선수 박인비가 58주 넘게 세계 랭킹 1위를 차지하면서 이제 청야니는 한국에서도 듣보잡으로 전락했고 대만 여자골프계는 그 뒤를 이을 다른 선수가 아직은 없다.
6 바둑
대만기원이 있으나 대만의 바둑 밑바닥은 정말 씨가 말라버렸다. 대만 기업들이 여력이 없어 대만 바둑대회 후원을 거의 끊어버려서 대만의 바둑 기전은 1년에 12개(1달에 1개)도 안 되는 8개 대회에 불과하다. 한 나라의 바둑 기전은 1달에 1개 대회 정도는 결승전까지 열려야 유지될 수 있는데 대만의 바둑은 정말 급속도로 퇴화해버린 것. 그래서 대만기원에 있는 프로 기사들은 세계 랭킹 상위권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은 대만기원과 해봉기원 간의 갈등이 오래되어 서로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이다. 결국 대만 바둑계가 전부 망해버리고 난 다음에 두 단체 간 통합이 의결되어 양 기원이 전부 해산하고 신 대만기원을 결성하고 대만기원(구)과 해봉기원이 지부로 내려갔다.
우칭위안, 린하이펑 등 중화민국이 대륙에 있던 시절부터 일본에 건너간 바둑 기사들이 있고, 2000년대에도 자국 바둑 현실에 절망하고 일본기원이나 한국기원으로 이민가는 대만 바둑기사가 엄청 많다. 왕리청, 왕밍완, 장쉬 九단도 대만에서 일본으로 건너갔고, 셰이민 같은 여류기사들도 당장 지네 나라를 등지고 일본으로 가서 성적을 내고 있다. 셰이민은 현재 일본 여류바둑계 1인자이자 세계 여류바둑계 3위(위즈잉 - 최정 - 셰이민)이다.
대만 내에서 제일 실력이 뛰어났던 기사는 남자에서는 저우쥔쉰 9단, 여자에서는 헤이자자 7단이다.
2016년 현재에는 위리쥔 初단을 대한민국에 유학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키워서 바둑 광고에 써먹으려는 등의 노력을 하고있다.
7 e스포츠
세계적으로 무난한 실력을 보인다. 우선 국민적으로 게임의 인기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자체 스타크래프트 2 프로리그도 있다(TeSL). 대표 프로게임 구단으로는 스타크래프트 2 플레이어 강초원, 이동녕, 원이삭이 있는 yoe Flash Wolves와 리그 오브 레전드 시즌2 월드 챔피언십 우승팀 Taipei Assassins과 리그 오브 레전드 2015 시즌 월드 챔피언십 8강에 진출한[5] ahq e-Sports Club와 앞서 언급한 yoe Flash Wolves의 LoL팀이 있다.
대만의 e스포츠는 한국에서 특히 고평가 받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인 한국의 롤 팀들이 차례차례 점멸늑대에게 박살났기 때문. 다만 이상할 정도로 한국팀에게만 강한 것이어서 한국에서만 고평가 받고 있는 중.
2015년 대만정부에서 e스포츠를 정식스포츠로 인정하였다.- ↑ 중화민국 국적자 중 최고의 야구 스타는 왕전즈(오 사다하루)지만 그는 중일 혼혈이고 도쿄에서 음식점을 하던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선수 유출 사례로 볼 수 없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도 중화민국 국적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본 측이 귀화를 압박했지만 모두 거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사실그 의 아버지는 대만인이 아니라 중국 대륙 본토 저장 성 출신이다. 그가 선수로 뛰던 때는 국제대회에서 프로선수가 뛸 수 없는 때였다. 그래서 중화민국 야구대표팀에서 활약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유학가서 고교 대학을 졸업하여 드래프트에 지명되면 외국인선수로 분류되지 않는다.
- ↑ 중화민국 국적자가 뛴 적은 있다. 화교 출신으로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에서 뛰었던 소소경이 주인공. 그러나 그는 '대만' 출신이 아니며, 한국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은지라 외국인 선수로 간주하지 않았다.
- ↑ 타국의 금메달이 많아진 이유는 한국의 독주가 예전보다 약해진 이유도 있지만 남녀 각 8체급 중 한 나라가 6체급씩만 참가할 수 있다는 규정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국은 아무리 잘해도 금메달 4개를 다른 나라에 줘야 하기 때문.
- ↑ 공공의 적 포지션이었다지만 그와 별개로 청야니는 어릴때부터 국제대회에서 한국 선수들과 여러번 만나면서 사적으로는 사이가 좋았다고 전해진다.
- ↑ 이는 4대리그라고 불리우는 북미, 중국보다 나은 성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