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px 신라의 역대 국왕 | ||||||
5대 파사 이사금 박파사 | ← | 6대 지마 이사금 박지마 | → | 7대 일성 이사금 박일성 |
시호 | 지마 이사금(祗摩泥師今) / 지마왕(祗摩王) | |
성 | 박(朴) | |
휘 | 지마(祗摩) / 지미(祗味) / 기미(祇味) | |
생몰년도 | 음력 | ? ~ 134년 8월 |
재위기간 | 음력 | 112년 ~ 134년 8월 (22년) |
1 개요
신라의 제6대 왕. 칭호는 이사금. 파사 이사금의 장남이다. 어머니는 허루 갈문왕(許婁葛文王)의 딸인 사성부인(史省夫人) 김씨(金氏)이고 비(妃)는 김마제(金摩帝)의 딸 애례부인(愛禮夫人)[1]이다.
2 생애
3 즉위 이전
신라 초기는 아직 장자계승이 확정되지도 않아 왕위 순서가 복잡한데, 박지마는 아버지 박파사의 태자로서 비교적 순조롭게 성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아들이 없어 다음 왕위는 삼촌에게 넘어갔다.[2]
4 재위
재위기간 동안에는 일단 백제와는 즉위하자마자 사신을 보내 동맹을 맺고, 주로 덤비는 가야를 갈궜다. 먼저 115년 2월에 가야가 남쪽 변방에 쳐들어와 노략질하자 그 보복으로 115년 7월에 친히 병력을 이끌고 황산하(지금의 낙동강 하류, 양산시 물금으로 추정)를 건너 가야를 공격했지만 숲에서 가야군 복병을 만나 몇 겹으로 포위당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1년 뒤 116년 8월에는 부대를 둘로 나눠 1만 이상을 동원해 다시 친정했지만 이번에는 가야가 성문을 닫고 우주방어를 하는 통에 장마까지 와서 별 소득 없이 군사를 되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동해를 건너오는 일본 군세[의 침략에는 주로 당하는 편이었다. 121년 4월에 왜가 동쪽 변경을 침략, 또 122년 4월에는 왜가 쳐들어온다고 하는 소문에 서라벌 사람들이 모두 산골짜기로 튀어버려서 왕이 일일이 사람을 보내 헛소문이라고 내려오라고 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123년 3월에 결국 일본과 화친해 이 때부터는 거의 80년 가까이 일본군이 신라에 쳐들어오는 기록이 없어진다. 일본에 히미코가 여왕에 올랐을 때 신라는 다다음 왕인 아달라 이사금이었으니, 중국 측 기록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을 참고하면 지마이사금 때가 대강 히미코가 등장하기 전에 있었다는 일본의 혼란기였기 때문에, 내부사정이 복잡해 대한해협 건너편까지 신경쓸 상황이 아니게 됐을 수도 있다.
일본과 화해한 후에는 그동안 별 말이 없던 북방의 말갈족이 자주 쳐들어오기 시작한다. 125년 1월과 7월에 두 번 쳐들어와 약탈을 하자 백제에게 지원군을 요청해 이들을 물리치기도 했다. 이렇게 백제와는 사이가 좋았던 편.
134년 8월에 아들 없이 죽었다. 그런데 족보에는 아들이 있다고 되어 있으며, 족보가 신빙성이 낮은 기록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 후대 기록과 교차검증하면 손자가 있다... 아무튼 왕위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아들이 아니라, 유리 이사금의 장남이자 지마 이사금의 삼촌인 일성(逸聖)이 왕이 되었다고 삼국사기에는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삼촌이란 작자는 당연하겠지만 아버지보다 나이가 더 많으니(…) 그가 바로 일성 이사금이다. 일성 이사금 문서에서 자세히 써 있지만, 유리 이사금의 아들은 박아도고 박아도의 아들이 일성 이사금이라는 설도 있다.
그 놈의 이름 말고는 특이한 점은 없고 천재지변이 좀 있었다. 황충(곤충)이라든가 서리라든가 우박이라든가 홍수라든가 가뭄이라든가 전염병이라든가 화재라든가 지진이라든가 하나씩 골고루(…) 그 외에 일식과 혜성의 기록도 몇 차례 있다. 참고로 지금이야 단순한 천문현상인 걸 다들 알지만 전근대시대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식과 혜성이 별로 좋지 않은 징조로 여겨졌다. 서양에서 이런 미신이 깨진 것도 16세기나 되어서야였다. 에드먼드 핼리 문서 참조.
5 그 외
- 최상단에도 써 있지만 성이 박씨이므로 본명은 '박지마'. 제8대 국왕 아달라 이사금 박아달라와 함께 이름의 묘한 어감이 주목받기도 한다. 거기에 더해 왕까지는 못 오르고 갈문왕까지만 올라 인지도는 낮지만 다음 왕인 일성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박아도'[3]도 있다(...)
6 삼국사기 기록
一年冬十月 지마이사금이 즉위하다
二年春二月 시조묘에 제사지내다
二年春三月 백제가 사신을 보내오다
三年春三月 우박이 보리를 상하게 하다
三年夏四月 큰 비가 내린 뒤 사면을 단행하다
四年春二月 가야가 남쪽 변경을 침범하다
四年秋七月 가야를 친히 정벌하다가 황산하에서 퇴각하다
五年秋八月 가야를 치다가 큰 비 때문에 중단하다
九年春二月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지다
九年春三月 서울에 전염병이 돌다
十年春一月 이찬·파진찬·아찬을 임명하다
十年春二月 대증산성을 쌓다
十年夏四月 왜인이 침입하다
十一年夏四月 왜군의 침공 소문으로 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十一年秋七月 메뚜기 피해로 기근이 들다
十二年春三月 왜국과 강화를 맺다
十二年夏四月 서리가 내리고 금성 동쪽의 백성들 가옥이 연못으로 변하다
十三年秋九月 일식이 일어나다
十四年春一月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입하다
十四年秋七月 말갈의 침입을 백제의 도움으로 물리치다
十六年秋七月一日 일식이 일어나다
十七年秋八月 꼬리가 긴 살별이 하늘에 뻗치다
十七年冬十月 지진이 일어나다
十七年冬十一月 천둥이 치다
十八年 파진찬 옥권을 이찬으로 삼다
二十年夏五月 홍수로 가옥이 떠내려가다
二十一年春二月 궁궐의 남문이 불타다
二十三年夏六月 봄과 여름에 가물다
二十三年秋八月 왕이 죽다
- ↑ 지마가 부인을 얻은 일화가 고대의 왕치고는 비교적 자세하게 남아있다. 아직 태자이던 시절 아버지 파사 이사금과 호수가에서 사냥을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들린 잔치에서 그녀를 만났고, 반면 마제의 상급자인 허루(許婁)의 딸은 태자가 별로 관심이 없어했다. 아랫사람의 딸이 오히려 태자의 관심을 받자 허루는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이걸 뒤에서 보던 파사왕이 마제의 딸은 황후로 삼고, 마제의 상급자인 허루는 멋진 연회를 열어 주었다는 공으로 대신 각간급의 높은 관직을 줘서 위로했다는 것.
- ↑ 일성 이사금 문서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지만 나이차 문제로 삼촌이 아니라 실은 중간에 한 사람이 빠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단 삼국사기 기록상으로는 삼촌이다.
- ↑ 경상도 사투리 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