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미코


1 역사상의 인물 卑彌呼

야마타이국의 역대 국왕
이름 불명히미코이요

생몰년도 ? ~ 247년 혹은 248년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등장하는 여왕. 한국식 한자 독음으로 '비미호'라 읽는데 이 쪽 이름도 자주 사용된다(동명의 웹툰 '비미호'도 있었다).

其國本亦以男子爲王, 住七八十年, 倭國亂, 相攻伐歷年, 乃共立一女子爲王, 名曰卑彌呼, 事鬼道, 能惑衆, 年已長大, 無夫壻, 有男弟佐治國. 自爲王以來, 少有見者. 以婢千人自侍, 唯有男子一人給飮食, 傳辭出入. 居處宮室樓觀, 城柵嚴設, 常有人持兵守衛.
그 나라()는 본래 또한 남자를 왕으로 삼았는데, 70 ~ 80년을 다스리다가 왜국에 난이 있어/왜국이 어지러워져서 서로 공격하고 정벌하여 오랫동안 서로 싸웠다. 이내 함께 한 여자를 왕으로 세우니, 이름을 히미코라고 한다. (그녀는) 귀도(鬼道)를 섬기고 사람들을 혹하게 했고 나이가 이미 오래 되었는데 남편이 없고 남동생이 있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돕는다. 왕이 된 이후로 본 적이 있는 자가 적었다. (여자) 시종 1,000여 인으로 하여금 시중 들게 하며, 오직 남자 한 사람만이 음식을 공급하면 말을 전하여 드나든다. 사는 곳은 궁실과 누각이고 성책을 삼엄하게 둘렀는데, 항상 병사를 두어 지키게 하였다.

삼국지 동이전의 기사를 옮겨 실은 것을 제외하면, 이외에 딱 한 군데에서 히미코에 대한 기사가 현전한다.[1]

二十年 夏五月 倭女王卑彌乎 遣使來聘
(아달라 이사금) 20년(173) 여름 5월에 왜의 여왕 히미코가 사신을 보내와 예방하였다.
삼국사기 아달라 이사금 본기

이 기록을 둘 다 신뢰한다면, 히미코는 173년 이전에 왕 자리에 올라 약 70여 년간 일본을 통치했다. 그러나 송나라 대 『태평어람』에 실려 있는 위략의 기사에 따르면 왜국 내의 전쟁은 광화 연간(178 ~ 184)에 있었다고 하므로, 히미코의 즉위 시점이 이보다 늦었을 수도 있다. 이후 명제 연간인 경초(景初) 2년(238)부터 중국에 조공하여 유명해졌다가, 정시(正始) 원년(247)에 죽었다.

正始元年 … 卑彌呼以死, 大作冢, 徑百餘步, 狥葬者奴婢百餘人. 更立男王, 國中不服, 更相誅殺, 當時殺千餘人. 復立卑彌呼宗女臺與/壹與, 年十三爲王, 國中遂定.
정시 원년 … 히미코가 죽자, 크게 무덤을 만들었는데 지름이 100여 보이고 노비 100여 명을 순장했다. 다시 남자 왕을 세우자, (왜)국 내에서 복종하지 않아 다시 서로 죽였는데 당시 죽인 사람이 1,000여 명이었다. 다시 히미코의 종녀 토요(臺與)/이요(壹與)를 세웠는데 13살에 왕이 되었다. (그러자) (왜)국이 따라 안정되었다.

묘사로 보아 히미코는 어떠한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왜인들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질적인 통치는 그녀의 남동생이 대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히미코의 권위는 후에 남성 왕이 세워지자 다시 난리가 일어났다가 여왕이 세워지자 진정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남성은 대체할 수 없는 어떤 권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편 그녀는 여러 국가들의 합의로 '함께 (왕으로) 세웠다(共立)'고 하므로, '왜국'은 단일체가 아니라 일종의 연맹체적인 국가였을 것이다.

왜국 중에는 대마국부터 시작하여 9개 국이 그 경로가 상세히 나와 있고, 21개국이 이름만 나열되어 있으며, 좀 멀리 떨어진 곳에 4개 국가가 존재하고 있다. 이 중 보통 앞의 30개 국가 중 29개 국이 여왕(女王国) 휘하에 속한 것으로 본다. 히미코가 중국에 접촉을 시도한 것은 왜 30국 중에 유일하게 여왕국에 저항하던 남쪽 구노국(狗奴國)과의 대립 때문으로 보이는데, 중국에서는 당시 기리영 전투 등으로 마한을 패퇴시키는 등 동방 지역에 대해 적극적인 군사 정책을 펴고 있었다. 이 때 히미코는 중국에게서 솔선중랑장 · 솔선교위 등의 직위를 얻어내고 황색 깃발 등을 받았다고 하여 군사적 권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여왕으로 있었던 야마대국/야마일국(邪馬臺/壹国, '臺'의 경우 やまたいこく)에 대해서는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이 대립 중에 있다. 아직 논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도쿄대학과 규슈대학 학자들은 규슈 지역설을 주장하고 교토대학, 오사카대학 학자들은 긴키 지역설을 주장한다. 이는 명문대학 사학과들의 자존심 대결이기도 하다. 그것보다 그냥 자기 지역 잘났다고 주장하는 거

규슈 지역설은 규슈가 초기 야요이 시대의 중심지였으며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왜국으로 가는 경로가 구야한국에서 규슈에 도착할 때까지 3,000리인 반면 규슈에서 움직인 거리는 2,000리[2]에 불과하므로, 규슈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으며 그 방향도 남쪽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규슈에서는 한 대의 거울이 많이 발굴되었는데, 이는 거울이 종교적 용도로 세습되어 사용된 것으로 제작 연대보다 오랜 기간 뒤에 매장되어 일어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긴키 지역설에서는 '야마타이(邪馬臺)'가 긴키 중심의 '야마토'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며, 이는 긴키 지역에서 발굴된 위나라의 삼각연신수경[3] 등으로 뒷받침된다. 히미코가 얻어온 거울은 어디까지나 위나라의 거울이었으므로 이것이 히미코가 조공하여 얻어온 거울이라는 것이다. 한편 삼국지 동이전은 김해에서 대마도로 가는 경로를 '동남쪽'이 아닌 단순한 '남쪽'으로 기록하는 등 동남향이 남향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으므로, 이에 맞춰 방향을 교정하면 왜국으로 가는 경로는 남쪽이 아닌 세토 내해를 거치는 동남향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최근 긴키 지역(오사카, 나라 부근)에서 히미코의 시기에 해당되는 도시 유적이 발견되어 규슈 지역설을 흔드는 주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한편 일본 최초의 관찬사서 「일본서기」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230 ~ 240년대의 기록을 살펴보면 진구 황후가 히미코를 덮어버리려고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단 진구 황후는 히미코를 비롯해 토요의 연대도 흡수했으며, 심지어는 근초고왕이 등장하는 4세기까지 이주갑인상으로 싸그리 커버해버리고 있다. 이 부분은 「일본서기」 초기 기록의 연대학에 있어서도 거대한 설정구멍을 만들게 된 원인.

당시 역사 편찬자들은 '중국에 조공한' 그녀를 군주의 자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4]이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그들은 중국한국의 사서 기록을 잊고 있었다... 때문에 저 규슈 지역설과 긴키 지역설은 에도 시대부터 히미코 관련 기록이 야마토 왕가를 기록한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와 얽혀 아라이 하쿠세키와 국학자들 등이 열심히 싸우던 주제 중의 하나였다.

한편 히미코는 무녀이면서 군주였다는 사실로 인해 일본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의 실존 모델이었다는 의견도 있다.이 의견에 따르면 아마테라스가 남동생의 행패 때문에 동굴에 숨었다가 다시 나온 이야기는 개기일식, 또는 부분일식을 의미하는 것이며 현대 천문학의 성과를 토대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히미코가 죽은 해에 일몰녁에 일식이 있었고 이요가 즉위한 해에 일출 때 일식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을 토대로 추측하면, 히미코의 죽음과 함께 일몰에 태양이 사라지는 일식이 일어나자 고대인들이 공포에 휩싸여 내전이 일어났고, 히미코의 종녀인 이요가 즉위할 즈음에 일출의 일식이 일어났다는 기적으로 인해 그녀의 권위가 인정되고 내전이 진정된 것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이 일본 신화에 변형, 인용되어 히미코-이요가 아마테라스로 등장하고 상기와 같은 신화가 생겼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물론 아직까지는 가설의 영역.

또한 마쓰모토 세이초는 히미코가 구노국과의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지고 타살당했다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다. 근거로써 제시한 것이 《삼국지》 부여전의 "곡식이 익지 않으면 왕에게 죄를 돌려 왕을 죽여야 한다고까지 했다"는 기록인데, 고대의 제정일치 사회에서 군주는 통치자이자 한 명의 제사장이었고, 사제로써 필요한 '영험한 능력'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던가, 가뭄이나 기근 같은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던가, 전쟁에서 패배한다던가 하는 일이 생길 경우에는 '장로'로써 책임을 지고 죽어야 하는 관습이 있었고, 히미코 또한 구나코쿠와의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물어 장로이자 제사장으로써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가설일 뿐이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위인으로 꼽혔는데 설문자의 99%가 히미코가 누구이며 무엇을 했는지 알았다고 한다. 그외에 가장 만나고 싶은 일본 위인에서 3위[5], 같이 술을 마시고 싶은 위인에서 4위를 했다.[6]

1.1 변용

2 비트매니아 IIDX의 곡 卑弥呼

자세한 사항은 卑弥呼 참조.


3 이 이름을 사용하는 동명이인

  1. 참고로 한길사판 이강래 역주 삼국사기는 이 기사에서 '卑彌乎'를 그대로 '비미호'라고 번역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항목에서 말하는 '히미코'에 익숙하고 일본어 독법을 잘 모른다면 헷갈릴 수 있다.
  2. 육로 700리, 이외에 수로 30일/수로 30일과 육로 30일에 걸쳐 1,300리
  3. 삼각형 무늬와 신, 짐승 등의 얼굴을 그린 금속제 거울
  4. 그래서 70년씩이나 나라를 다스린 군주이되 정식 천황은 아닌 '황후'로 깎아내린 것
  5. 1위가 사카모토 료마, 2위가 오다 노부나가.
  6. 여기서는 1위가 사카모토 료마, 2위가 오다 노부나가, 3위가 쇼토쿠 태자다. 2위는 취중에 말실수 한번으로 목 잘릴지도 모르는데 담이 크다 ㄷㄷ
  7. 이 처자의 조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