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 U-20 월드컵/대한민국

1 1977 튀니지 대회

아시아지역 예선을 겸한 AFC청소년선수권 대회에서 8강에서 탈락해 2위까지 주어지는 본선행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2 1979 일본 대회

예선에서 이라크와 공동우승을 차지하며 처음으로 본선 진출을 이뤄냈다. 포르투갈, 파라과이, 캐나다와 함께 C조에 편성. 첫 경기 파라과이전에서 0-3으로 완패하며 혹독한 데뷔전을 겪었지만 다음 경기 캐나다전에서 이태호의 골로 1-0 승리를 거두며 사상 첫 승을 거두었다. 강호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선전. 총 1승1무1패로 포르투갈과 동률을 이루었으니 골득실에서 밀려 3위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주요선수로는 최순호, 이태호, 정용환 등이 있었다.

3 1981 호주 대회

예선에서 탄탄한 전력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무난하게 본선 진출권을 따내 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조편성이 OTL이었는데 브라질, 이탈리아, 루마니아와 한 조에 엮였다(...)

그러나 첫 경기부터 청소년 대표선수들은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를 4-1로 박살낸 것이다. 당시 한국축구의 세계에서의 위상을 생각하면 경악스러운 이변으로 받아들여질 만했다. 이때 최순호가 2골 2어시스트를 했는데 이 경기를 지켜본 유벤투스의 스카우터들이 최순호를 6년 동안 따라다니며 영입시도를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1]

그러나 이탈리아와의 대결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한국은 이어지는 루마니아전과 브라질전에서 연이어 0-1, 0-3 영패를 당하며 1승 2패로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성적표를 받아든다.설레었나? 게다가 이탈리아는 브라질,루마니아에게 0-1로 다 지면서 3전전패 조 꼴찌로 탈락했기에 한국이 거둔 1승도 의미가 많이 줄었다...

주요선수로는 최순호를 비롯 최인영, 백치수 등이 있었고 사령탑이 저 유명한 빠따박종환 감독이었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카타르가 아시아 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피파 대회 결승까지 오르는 이변을 보여줬다. 비록 결승에서 서독에게 0-4로 털렸지만.그리고 이 결과와 점수차는 18년뒤 일본이 재현한다

4 1983 멕시코 대회

저 유명한 4강 신화의 무대. 축구대표팀이 붉은 악마라는 별명을 얻은 계기.

동아시아 지역예선 준결승에서 북한에게 승부차기 3-5 패배로 최종 라운드 진출이 좌절...된 줄 알았으나 1982 뉴델리 아시안 게임 축구에서 북한이 쿠웨이트와의 준결승에서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심판을 때리며 폭력 사태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2년간 국제대회 참가 정지 징계를 받아 실격처리되면서 어부지리로 최종 라운드에 진출하였다.

지역예선 최종 라운드를 무패 우승으로 무난히 통과. 조별예선에선 개최국 멕시코를 비롯 스코틀랜드, 호주와 한 조에 편성되었다. 첫 경기 스코틀랜드전에서 의외로 무기력하게 0-2로 패하며 암운이 드리웠지만 최대 고비였던 개최국 멕시코전에서 후반 44분 신연호의 극적인 골에 힘입어 2-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반등을 시작[2], 호주전에서도 2-1 승리하며 스코틀랜드에 이어 조 2위에 올라 대회 참가사상 처음으로 녹아웃 토너먼트에 진출한다.

8강 상대는 훗날 성인대표팀의 천적이 되는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였다. 전문가들의 예상과는 달리 한국은 전반 내내 주도권을 잡고 우루과이를 가둬놓고 팼다. 결국 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얻으며 경기를 쉽게 풀어가는가 싶었으나 노인우가 찬 페널티킥은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나온다. 자칫하면 팀 전체에게 맥이 빠질 수 있는 위기였으나 박종환 감독은 하프타임 때 노인우에게 별다른 말 없이 그저 등을 토닥여 주었다고 하고[3] 그 덕인지 노인우는 후반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최전방으로 날카로운 패스를 배달하였고 이를 신연호가 마무리해 선취골을 뽑아냈다.

그러나 전반전에 상대를 몰아붙이며 많은 체력을 소모한 탓인지 실점 이후 한국은 수세에 몰렸고 골키퍼 이문영이 분투했지만 결국 후반전 25분에 동점골을 허용하였고 승부는 연장전에 돌입한다. 연장 전반 3분 우루과이에게 결정적 찬스를 내주었지만 루벤 소사[4]의 슈팅이 골대를 때리고 나왔고, 승리의 여신이 한국에게 미소를 지었는지 곧이어 신연호가 김종부의 크로스를 결승골로 연결한다. 결국 사상 최초로 FIFA가 주최한 세계단위의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이 경기가 열린 것이 한국시간으로 일요일 이른 아침이었는데 많은 국민들이 TV 앞에 모여 경기를 시청할 정도로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고 한다.

준결승 상대는 '최강' 브라질이었다. 브라질이 언제는 최강이 아니었겠느냐먄...지금 현재? 이 때의 브라질은 둥가베베투가 포진하고 있었던 진짜 최강전력이었다.[5] 하지만 겁없는 한국 선수들은 바로 그 브라질을 상대로 선제골을 집어넣는 패기를 보여주었지만 거기까지였고, 전반전에 동점골, 그리고 후반전 종료를 10분 남겨두고 역전골을 허용하며 승리 행진을 멈춘다. 그리고 체력적인 문제를 노출하며 3~4위 결정전에서도 폴란드에게 연장 접전 끝에 역전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한다.

이 대회는 국제 축구계에서 한국에 대한 인지도를 비약적으로 높였고, 투지와 조직력으로 똘똘 뭉친 한국의 전통적인 팀컬러가 외국 축구팬들에게 확실하게 각인된 계기가 되었다. 박종환 감독은 단숨에 국민영웅으로 떠오르고 빠따파워를지도력을 인정받아 훗날 성인대표팀 감독직을 맡기도 한다.그리고 1996년 아시안컵에서 이란에게 2-6으로 털리고 짤린다 하지만 이 때의 주축 선수들 중에는 성인 무대에서 생각보다 크게 포텐이 터진 선수가 없다는 것은 아쉬움을 낳는다.[6]

여담으로 이 대회 페어플레이 상이 한국에게 수여되었다.

5 1985 소련 대회, 1987 칠레 대회, 1989 사우디 아라비아 대회

4강 신화를 쓰며 청소년 레벨에서 계속된 선전이 기대되었으나 이어지는 세 번의 대회에서 연이어 지역예선에서 허무하게 3연광탈.

6 1991 포르투갈 대회

이 대회부터 연령 제한이 19세에서 20세 이하로 1살 높아졌다.

지역예선 결승전에서 남북대결이 이루어졌고 한국이 승부차기 끝에 북한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 이 때 당시 노태우 정부가 북방정책을 펴던 시대적 배경의 영향을 받아 남북 단일팀 결성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7] 예선 1,2위팀이 단일팀으로 출전한 덕에 3위를 했던 시리아가 어부지리로 세계대회 출전권을 얻는다.[8]
한국과 북한은 '코리아'란 팀 명칭과 '한반도기'를 달고 대회에 출전했다. 남북단일팀이었지만, FIFA의 행정 절차에서는 남한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선수단 구성이 최대 쟁점이었는데 한국이 예선 우승팀의 어드밴티지로 18명의 엔트리 중 10명을 포함시키고 나머지 8명은 북에서 포함시키는 것으로 결론났으며 사령탑은 북한의 안세욱 감독이, 코치는 남한의 남대식 코치가 맡았다.[9]

조편성은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최악이었다. 개최국 포르투갈을 비롯 아르헨티나, 아일랜드와 한 조가 되었는데... 8년 만에 세계무대에 복귀한 붉은 악마들이 또 사고를 친다.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포체티노와 페예그리노가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를 잡은 것이다. 북한 조인철 선수가 후반전 종료 직전에 호쾌한 중거리슛으로 선제골이자 결승골을 넣었다. 타 팀들에 비해 조직력, 팀 케미스트리면에서 부족할 수밖에 없는 남북 단일팀이 강호 아르헨티나를 꺾었다는 영화같은 이야기에 전세계 언론이 주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아르헨티나는 이 대회에서 사상 최악의 기록을 차지했다....

이 여세를 몰아 타 팀들에 비해 비교적 전력이 약했던 아일랜드도 잡고 일찌감치 8강 진출을 확정지을 기세였으나 아일랜드에 선제골을 내주면서 끌려가는 경기를 하게 된다. 연이은 동점 찬스가 무산되며 남북한 축구팬들이 모두 애가 타고, 후반전 종료를 목전에 두고 송재익 캐스터가 "기적이 일어났으면 좋겠어요."라는 코멘트가 끝나기가 무섭게 북한 최철 선수의 극적인 동점골이 터진다! 이 골은 8강진출에 있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되는 골이었고, 결국 마지막 경기에서 포르투갈에 0-1로 패배했음에도 불구하고[10] 조 2위로 8강에 진출할 수 있었다. 반대로 아르헨티나는 포르투갈에게 0-3으로 참패하고 아일랜드와 2-2로 비기며 1무 2패. 최종랭킹 14위로 탈락했다. 이는 아르헨티나의 본선 U-20 대회 사상 최악의 성적이다.(본선 진출 탈락도 몇번 있지만)

8강 상대는 브라질이었는데 어째 항상 만나는 것 같다 조별예선에서의 선전을 본 남북한 국민들은 이번에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지만 무참하게 1-5로 패배하면서 단일팀의 활약은 8강에서 멈추게 된다.

단일팀에 선발되어 활약한 남한 선수로는 서동원, 이임생[11], 조진호, 강철 등이 있었다.

7 1993 호주 대회

지역예선에서 숙적 일본을 탈락시키는 쾌감을 맛보면서 진출. 잉글랜드, 미국, 터키와 한 조가 되었다.

첫 경기에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면서[12] 조별예선 통과 전망이 밝았으나... 남은 경기 두 경기에서 무를 두 개 더 캤다.(...) 3무로도 조 2위를 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존재하긴 하지만 이 때는 조 3위로 탈락.

별 특기할 만한 사항이 없던 대회이지만 큰 의미를 갖는 것이 3년 후에 출전할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의 주축이 될 선수들로 팀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최용수, 이기형, 김대의, 최성용 등이 이름을 올렸다.

8 1995 카타르 대회

지역예선에서 일본과 태국에 밀리며 광탈. 세계대회 근처에도 못 갔다.

9 1997 말레이시아 대회

특이하게 두 대회 연속 아시아권에서 대회가 개최되었고, 참가팀 수가 16개팀에서 24개팀으로 확대된 첫 번째 대회이기도 하다. 이에 따라 아시아에 네 장의 출전권이 배정되면서 본선 진출이 수월해졌다. 어차피 지역예선에서 상대팀들을 압도하면서 전승으로 본선진출을 확정짓긴 했다. 청소년 대표팀이 뜰 때마다 항상 나왔던 역대 최강의 전력 드립이 처음 나온 게 이 때 대표팀이다. 사실 대회 전까지는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했던 게 이관우, 박진섭, 심재원, 안효연, 김도균 등 기대주들이 한 세대에 몰려서 배출되었으니...

거기에 대회 전 가진 친선경기에서 우승후보인 강호 아르헨티나랑 1-1로 비겨 해볼만하다는 언론플레이까지 있었기에 그만큼 팬들의 기대가 컸던 팀인데, 문제는 죽음의 조에 당첨됐다는 것이다. 본선에서 지겹도록 만나는 브라질로도 모자라 앙리-트레제게 투톱이 포진한 프랑스[13]가 같이 엮여들어왔다.

그나마 첫 경기 상대인 남아공을 이기면 브라질, 프랑스에 밀려 조3위를 하더라도 와일드카드로 주어지는 16강행 티켓을 노려 볼 수도 있었으나 이 경기에서 0-0 고급무를 캔다.모든게 끝이야 그러나 언론들은 프랑스가 브라질에게 0-3으로 지는 걸 보고 '프랑스 해볼만하다' 따위의 기사를 써댔지만... 결과는 앙리와 트레제게에게 공평하게 두 골씩 선사하며 2-4로 패배. 마지막 브라질전을 이기고 봐야 16강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언론들은 '브라질 넘고 16강 간다'고 떠들어댔다.고만해 미친놈들아 결과는 브라질의 신성 아다일톤에게 6골을 허용하면서 3-10 기록적인 참패.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경기를 쿠칭 참사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브라질은 남아공을 2-0으로 이기며 3전전승 15득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브라질전 3-10 패배는 당시 기준으로 대회 역사상 최다점수차 경기 신기록이었다. 그러나 16강전에서 브라질이 벨기에를 같은 장소에서 10-0으로 영혼까지 털어주면서 해당 기록은 3일만에 갈아치워진다.브라질의 마지막 선물 벨기에한테도 쿠칭 참사인가 [14]

당시 주전이던 이관우는 꿈에서도 10골 먹던게 계속 나오더라며 몇해가 지나도 이야기했을 정도로 처절한 악몽같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10 1999 나이지리아 대회

지역예선인 U-19 아시아 선수둰 대회에서 일본을 두 번 연속으로 이기고 우승하며 무난하게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이에 따라 언론의 역대 최강 전력 드립이 다시 부활했다. 이동국-김은중 영혼의 투톱이 최전방에, 김용대가 최후방에 포진해 있었고, 고교축구를 평정한 천재 미드필더 듀오 김건형과 김경일이 중원을 이끌었다. 그 외에도 설기현송종국, 박동혁 등이 뛰었던, 전체적인 전력면에선 전 대회보다 낫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팬들의 기대치도 그만큼 높았지만...

감독은 조영증이었다.

포르투갈을 상대로 한 첫 경기에서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한국은 초반에 승부수를 띄우는 전략으로 맹공을 펼쳤지만 오히려 포르투갈의 카운터 한 방에 선제골을 얻어맞으면서 꼬이게 된다. 다행히 전반이 끝나기 전 주장 김건형의 중거리슛이 작렬하면서 동점으로 전반을 마칠 수는 있었지만 후반에 체력전에서 밀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후반전이 10분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바 망했어요 시망 사브로자에게 연속골을 얻어마자 1-3으로 패배한다.

다른 경기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말리가 예상을 깨고 우루과이를 꺾었기 때문에 2차전에서 우루과이를 꼭 이겨야만 16강 진출을 기대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 시작 3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하고... 이 때부터 우루과이의 극악의 잠그기+침대축구 신공이 시작된다.[15] 87분 동안 잠그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결국 골을 뽑아내지 못하고 0-1로 패배한다. 가장 분통 터졌던 잠그기 기술(?)은 "코너 플래그에 공 세워놓고 필드 등지고 서서 공 못만지게 몸으로 막기"... 우루과이 돼지감독 개객끼

마지막 경기상대는 포르투갈마저 잡은 돌풍의 팀 말리였는데 말리는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지은 상태였고, 앞서 열린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양 팀이 암묵적으로 합의하고 무재배를 해서 손잡고 16강에 진출하고 한국은 탈락이 확정된 입장이었기 때문에 서로가 약간 느슨한 상태에서 경기가 진행되었다. 이 경기에서 나희근이 2골을 넣었고 이동국, 설기현이 한 골씩을 넣어 말리를 4-2로 꺾으며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여담이지만 말리는 조1위로 16강에 진출한 여세를 몰아 4강까지 파죽지세로 올라가 결국 3위로 대회를 마감하는데, 이 대회를 통틀어 말리를 상대로 승리한 팀은 대회 우승팀 스페인[16]과 한국밖에 없었다.

이 대회에서 특기할 만한 부분은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반면,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이끈 일본이 미국, 잉글랜드, 포르투갈, 멕시코, 우루과이를 연달아 격파하며 결승까지 진출했다는 점. [17] 비록 결승에서 차비 에르난데스, 카시야스 등이 뛴 스페인에게 위에 나온대로 18년전 이 대회 결승에서 카타르와 똑같은 점수차인 0-4로 털리며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지만. 당시 2002년 월드컵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기 때문에 국내팬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더군다나 일본은, 한국이 조별리그에서 만나서 패배한, 강호 포르투갈과 우루과이를 보란듯이 무너뜨렸다.
성인 대표팀 허정무호의 연이은 한일전 패배와 엮여서 일본축구는 계속 발전하는데 왜 한국축구는 이 모양이냐는 비판여론이 일게 된다. U-23 올림픽 대표팀은 1999년 9월에 열린 한일전에서 1-4의 충격패를 당한다. 또한 다음 해인 2000년 U-19 아시아 선수권에서 4강진출조차 하지못해 2001년 U-20월드컵에 나가지도 못했다. 아시아에서조차 이 모양이라는 비난은 곧 2002년 FIFA 월드컵에서 자칫하면 큰 망신을 당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유로컵 2000대회에서 공동개최국인 네덜란드는 4강까지 진출한 반면, 다른 개최국인 벨기에는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2002월드컵에서 한국과 일본이 저렇게 극과 극으로 될 전망이 크다는 분석이나 평이 나온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둔 당시, 일본 축구는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U-20, U-23, A대표팀 모두를 맡았다. 한국은 허정무 감독이 U-23, A대표팀을 맡았고, U-20은 조영증 감독이 맡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허정무 감독의 한국은 조별 예선에서 탈락, 필립 트루시에 감독의 일본은 8강 진출을 한다. 그리고 2000년 AFC 아시안컵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끈 A대표팀이 기대 이하의 졸전끝에 탈락하고 필립 트루시에의 일본은 우승컵을 거머쥔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의 경기력을 두고 TV토론회가 열릴 정도로,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경기력이 형편없다는 위기감이 형성된다
. 이런 배경으로 축구협회의 당시 정몽준 회장은 월드컵을 대비해서 세계일류급 외국인 명장을 데려오기로 결정했고, 결국 한국을 오대영으로 털었던 콧수염난 할배를 데려오게 된다.

또, 이 대회때 KBS의 TV중계를 시청했던 시청자들은 캐스터와 해설자의 깨알같은 나이지리아 디스(...)를 감상[18]할 수 있었다. 호텔 샤워기에서 흙탕물이 나온다든지, 문맹률도 높고 실업률도 높다는 의미로 "말하자면, 반은 백수고 반은 까막눈이에요"라든지 하는 드립은, 이를테면 시망 만나서 시망 하고 있는 경기를 보는 잔재미였다.

그리고 말리에 대한 호칭도 "이번 조 최약체 말리 (첫 경기전)", "이변을 일으킨 말리 (첫 경기 후)", "아프리카의 다크호스 말리(두 번째 경기 직후)", "강호 말리 (한국vs말리 경기 전)" 등으로 변모하였다.

11 2001 아르헨티나 대회

지역예선인 이란에서 열린 2000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4강 안에만 들면 세계대회 출전권을 얻을 수 있었는데 중국에게 지고[19] 이라크와 비기는 졸전 끝에 광탈하여 아르헨티나 대회에 참가도 못했다. 그리고 중국은 아르헨티나 대회에서 아시아 나라에서 유일하게 16강에 진출 이천수, 박지성, 최태욱, 김정우, 김영광, 조재진, 김동진. 조병국 등 화려한 멤버가 출전했지만...이게 진짜 역대 최강전력인데? 하지만 이 멤버들은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8강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기도 한다.

한편 전대회 준우승을 거둔 일본은 조예선에서 1승 2패로 조 꼴지로 탈락했다. 그리고 한국은 14년 뒤 이 결과가 재현되어 이 대회에 또 나가지 못하게 된다.

12 2003 UAE 대회

박성화 감독이 청소년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2002 월드컵 개최 분위기와 더불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월드컵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이는 유망주들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역대 청소년 대표팀 중 언론 노출도나 관심도 면에서 2년 후 세대와 더불어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세대일 것이다.[20] 평일 저녁에 하는 비공식 평가전이 매번 꼬박꼬박 공중파로 생중계될 정도였으니... 그 과정에서 최성국, 정조국, 김동현, 여효진 등이 차세대 스타로 주목받게 된다. 선수 이름에 취소선이 있다는건 기분 탓은 아니다. 지역예선에서 연이어 극적인 경기를 하면서 사우디와 일본을 꺾은 것도 이 세대의 인기상승에 한몫했다.[21]

이라크 전쟁으로 대회가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참가한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은 슈틸리케 감독이 이끈 독일에 2-0 완승을 거두는 예상 외의 승전보를 보내 온다. 이 승리에 언론들은 '한국축구의 미래는 밝다'라며 설레발을 시전하지만... 독일과의 대결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한국은 이 경기 이후 세 경기에서 내리 패배한다(...) 파라과이 상대로 0-1 패, 미국 상대로 0-2패. 특히 미국과의 경기에서는 서로가 이 상태로 경기가 끝나도 16강에 진출하는 상황이 되자 두 팀 모두 공격할 의지가 전혀 없이 수비진영에서 볼만 돌리는 막장축구를 보여줘서 인터넷으로 폭풍까임을 당했다. 이러한 평가는 그날 경기를 제대로 보지도 않은 사람이거나 단순히 이기지 못한것에 대한 질책을 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경기는 정말 상식이하의 편파판정이었다. 시종일관 심판은 불리한 판정을 내렸고 두골 모두 편파판정이었다. 페널티킥도 그렇고, 필드골 또한 그전에 공이 라인을 넘어 아웃되었는데 그대로 진행했고, 뒤지고 있는 상황의 한국에게 경기를 지연시킨다면서 옐로우카드를 주기도 했다. 결국 토너먼트 진출을 위해서 그러한 선택을 할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16강전이 하필이면 한일전으로 치루어졌다. [22]단두대 매치 FIFA 주관 세계 대회 본선에서 한일전이 성사된 첫 사례이다. 이 경기에서 최성국이 선취골을 넣었지만,동점골, 골든골을 얻어맞고 1-2로 패배한다. 이에 또 일본과 비교당하면서 대차게 까이는 것으로 대회를 마무리한다. 그런데 한국을 이긴 일본은 8강에서 브라질을 만나 4-1로 털렸고 브라질이 결국 대회 우승.

당초 기대에 비해 성과는 시원찮았던 세대. 그리고 특히 승부조작 가담자들이 많은 세대조작 세대이기도 하다. 특히 이 친한 동료선수들을 이리저리 포섭한 것으로 추측된다.

13 2005 네덜란드 대회

많은 사람들이 박주영의 팀으로 기억하고 있는 세대. 박주영 신드롬[23]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이 때 청소년 대표팀에서 박주영의 활약은 엄청났다. 지역예선에서 6경기 6골을 퍼부으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24] 지나치게 박주영 의존도가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있으면 그 기량을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팀을 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세대의 경우 리마리오 김승용의 날카로운 크로스, 백지훈의 볼배급 등이 박주영을 뒷받침하였다.

본선에서는 브라질, 스위스, 나이지리아와 한 조가 되었다. 브라질은 몰라도 스위스, 나이지리아는 충분히 해 볼 만한 상대라고 언론에선 또 설레발을 떨었지만 첫 경기 스위스전을 1-2로 역전패하면서 데꿀멍(...) 신영록이 선제골을 넣었지만 곧이어 4분 간격으로 연속골을 얻어맞으며 순식간에 승리를 내줬다.[25]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경기 나이지리아전에서는 전반전 초반에 선제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지만, 후반전 종료 직전에 박주영이 전매특허인 오른발 프리킥으로 동점을 만들고 오오 주님요 오오 추가시간에 백지훈이 각이 별로 없는 위치에서 날카로운 왼발슛으로 역전골을 터뜨렸다. 한국축구 역사에서 극적인 승리를 꼽으라면 빼놓을 수 없는 명승부이다.[26]

비록 마지막 상대가 이기기는 벅찬 브라질이긴 하지만 최소 비기면 와일드카드로 16강행을 바라볼 수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이지리아와의 대결에서 모든 힘을 쏟아낸 한국은 우째 이거 좀 익숙한 패턴이다 브라질에게 이렇다할 힘을 써 보지 못하고 0-2로 무난하게 졌다. 결국 1승 2패를 거둬 조 3위로 탈락. [27] 언제는 조편성 운이 좋았느냐만서도 이 대회 준우승팀 나이지리아, 3위 브라질과 한 조가 된 것이 뼈아팠다고 볼 수 있다.

여담인데 일본은 이 대회에서 2무 1패를 거두고도 16강에 올랐다. 물론 이는 1위 네덜란드가 3전전승, 베냉과 호주가 똑같은 2무 1패를 거두면서 골득실차로 앞서 2위를 거둔 일본이 진출한 거였다. 반대로 중국은 터키를 2-1,우크라이나를 3-2, 파나마를 4-1로 모두 이기고 3전전승으로 16강에 오르는 이변을 낳았다. 1989년 사우디아라비아 대회에서 이라크가 아르헨티나를 1-0,스페인을 2-0,노르웨이를 1-0으로 이기며 조 1위로 8강에 오른 뒤로 아시아 나라가 조예선에서 3전전승을 거둔 건 16년만이었다.그리고 여태껏 2번 뿐이다 더불어 이 기록은 피파 주관 대회에서 3번뿐이다.(나머지 하나는 2013년 FIFA U-17 월드컵에서 일본이 3전전승을 거둔 것. 상대가 튀니지,러시아,베네수엘라로 행운의 조라는 평이긴 하지만.. 그리고 셋다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리고 시리아도 이탈리아를 2-1로 이기며 3전전승인 콜롬비아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그리고 16강에서 시리아는 브라질에게 0-1, 중국은 독일에게 3-2, 일본은 모로코에게 1-0으로 지며 한국을 빼고 16강에 오른 아시아 3나라 모두 16강전에서는 1실점차로 패해 탈락했다.

14 2007 캐나다 대회

조동현 감독이 박성화 감독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는다. 지역예선 성적은 3위. 준결승에서 일본에게 승부차기로 석패한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도 경기 내용은 일본을 압도했기에 축구팬들은 이 세대가 비록 박주영 같은 슈퍼스타는 없지만 팀 전체로는 전력이 더 탄탄한 것 같다며 기대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이 세대는 이청용, 신영록, 고명진 등 10대 중반에 학교를 중퇴하고 일찌감치 프로에 입문하여 일종의 조기교육을 받은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체력과 투지 위주였던 종전의 대표팀과는 달리 기본기와 개인기, 전술적인 움직임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 위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축구팬들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색깔의 대표팀에 많은 기대를 가졌다.

조편성은 제발 그만 좀 만났으면 좋겠는브라질, 미국, 폴란드와 한 조로 편성되었다. 수비의 주요자원이었던 박정혜, 안현식이 부상 및 컨디션 난조로 아예 스쿼드에서 제외되거나 경기출전이 어려운 상태가 되는 등 수비라인 구성에 어려움이 많아서 기성용최철순이 센터백 땜빵을 봐야 했다. 골키퍼 역시 그동안 주전이었던 조수혁의 몸상태가 완전치 못해 김진현이 나서야 했다.

첫 경기 상대는 미국이었는데 한국은 상대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슈팅수를 기록하는 등 경기를 지배하고도 신영록의 골로 1-1 무승부에 만족해야 했다. 이겨야 할 상대를 이기지 못한 대가는 브라질과의 바로 다음 경기에서 드러나는데 파투의 두 골을 포함해 세 골을 연이어 내주면서 0-3으로 끌려가게 된 것이다. 뒤늦게 각성한 한국은 후반 38분에 심영성, 44분에 신영록이 연속골을 넣으며 추격을 시작했고 막판에는 브라질을 거의 가둬놓고 패는 수준으로 몰아붙였지만 결국 2-3으로 석패했다.

이에 따라 마지막 폴란드전을 반드시 이겨야 되는 불리한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전반 종료 직전 폴란드의 역습에 선제골을 내주면서 벼랑끝에 몰린다. 이 경기에서도 슈팅수는 폴란드의 두 배 가까이 달할 정도로 주도권을 잡고 공격찬스를 만들어 나갔으나 이번에도 결정력 부족이 발목을 잡았고, 이상호가 동점골을 뽑아내긴 했으나 1-1로 경기가 종료되어 2무 1패로 허무하게 탈락.

2005년, 2003년 대회에 마찬가지로 기대에 못미친 성적이기는 하지만 감독의 독특한 전술과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들이 어우러져 이른바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드문 청소년 대표팀 세대였고, 이 중 많은 선수들이 곧바로 85~86년 형들을 제치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팀에 바로 소집되기도 한다. 하지만 베이징 가서는 졸전에 졸전을 거듭하여 이탈리아에게 3:0으로 털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 세대를 시작으로 U-20 대표팀은 매 대회마다 대형 선수들이 나오는 대박을 터트리게 된다.

15 2009 이집트 대회

아시아 지역예선은 전 대회를 지휘한 조동현 감독이, 그리고 본선에서는 홍명보 감독이 지휘봉을 맡았다.

지역예선에서는 UAE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28]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조2위로 8강에 진출, 8강전에서 어려운 상대 일본을 만나게 되었다. 세계대회 출전권을 놓고 단두대 매치가 벌어진 것. 고전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전반전에 유지노가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를 유리하게 끌고 갔고, 후반전에 조영철과 최정한이 연속 쐐기골을 터뜨리며 3-0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다. 본선진출을 확정지음과 동시에 일본을 탈락시키는 일석이조의 경기. 그러나 준결승 우즈베키스탄전에서 전반전 상대 프리킥이 수비수 맞고 굴절되어 어어 하는 사이에 내준 선제골을 따라잡지 못해 0-1 허무하게 패배하여 우승에는 실패.

이후 대한축구협회는 이 연령대 팀을 추후 2012 런던 올림픽에 나설 연령대로서 집중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장기적 플랜의 일환으로 홍명보 감독을 선임한다. 홍명보 감독은 이승렬, 고대앙리박희성 등을 발탁한 것을 제외하고는 전임 조동현 감독이 만들어 놓은 팀의 구성을 큰 변화 없이 유지시키며 자신만의 팀컬러를 만들어 나간다.

본선에서는 독일, 카메룬, 미국 등 만만치 않은 조편성을 받아들었다. 첫 경기 카메룬전을 이겨야 수월하게 16강 진출이 가능했을 텐데 문제는 카메룬전에서 심각하게 무기력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0-2로 완패한 것. 이 경기 후 인터넷 게시판의 반응은 참혹했는데 그 전 세대들과 비교하며 역대급 골짜기 세대라는 평가가 주를 이루었고 홍 감독에 대한 비난도 심각해서 축구협회와의 연줄로 감독을 맡아서 팀을 망치고 있다는 소리까지 나왔다.

궁지에 몰린 홍명보 감독은 2차전 독일전에서 모험을 거는데 이범영, 이승렬, 조영철, 김동섭 등 카메룬전에서 부진한 주전선수들을 과감히 배제하고 대신 김승규, 서정진, 김민우 등을 투입한 것이다. 이러한 극약처방이 효과를 거두었는지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선제골을 내주었지만 후반전 김민우가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려 1-1 무승부를 거두어 16강행 희망을 이어갈 수 있게 된다.

3차전 미국전에서 반드시 이겨야 16강에 진출한다는 결연한 각오로 임한 덕인지 김영권, 김보경, 구자철의 연속골로 의외로 간단히 3-0으로 승리를 거두고 16강에 진출한다.[29]

16강 상대는 A조에서 이탈리아를 제치고 조2위로 진출한 파라과이였다. 여담이지만, 파라과이 감독 이름이
아드리안 코리아( Adrian Coria )였다...
역시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나 대표팀은 이번에도 3-0으로 압승. 김보경이 한 골을, 김민우가 멀티골을 넣었다. 남북 단일팀의 8강진출 이후 18년만의 8강이었으며 토너먼트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1983년 멕시코 4강신화 이후 최초였다.

8강 가나전에서는 대회 내내 부진했던 원톱 경쟁자인 박희성김동섭이 나란히 한 골씩을 넣으며 분전했지만 가나의 강력한 화력에 수비라인의 실수까지 겹쳐 2-3으로 석패한다. 한국의 상승세를 꺾은 가나는 준결승과 결승에서 헝가리와 브라질(승부차기로 4-3)을 연파하면서 아프리카 팀으로는 최초이자 (2023-08-04 10:32:58까지)유일한 U-20월드컵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같은 해 나이지리아에서 열렸던 U-17 월드컵에서 U-17대표팀의 8강 진출과 더불어 한국축구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밝게 한 대회였으며 이 대회에서 활약한 구자철, 홍정호, 김영권, 윤석영, 김보경 등은 홍명보 감독의 조련 아래 꾸준히 홍명보호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2012 런던 올림픽에서의 동메달 신화에서도 주인공이 된다.[30]

16 2011 콜롬비아 대회

2009년 U-17대표팀을 이끌고 세계대회 8강이라는 쾌거를 이룬 이광종 감독이 그대로 윗 연령대를 맡게 된다. U-17 대표팀 당시 연령대는 92년생들이었고 이 세대는 91년생들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팀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지동원, 석현준, 남태희, 손흥민 등 우수한 공격자원들이 많이 포함된 세대로 주목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결과부터 얘기하자만 소속팀과의 조율문제 등으로 인해 이 넷은 모두 U-20 월드컵 무대에 서지 못한다. 지동원은 그나마 아시아대회를 뛰긴 했다.

아시아 예선 조편성부터가 강호 이란, 호주와 한 조에 편성되어 가시밭길이 예상되었지만 이란전에서 의외로 수월하게 2-0 승리를 거둔 덕에 2승 1무, 호주에 골득실에서 밀린 조2위로 8강에 진출한다.

문제는 조2위로 진출하는 바람에 옆조 1위인 일본을 또 만났다는 것이다(...) 두 대회 연속 본선진출을 놓고 단두대 매치. 전반전에 일본의 맹공에 연속 실점하며 전반 30분까지 0-2로 벼랑 끝에 몰렸으나 그 시점부터 전반전이 끝나기 전까지 불과 15분 사이에 김경중황도연, 정승용이 연속골을 퍼부으며 3-2로 역전승.역시 일본에겐 역전승이 제맛 마침 이 한일전을 앞두고 지동원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올해 일본을 꺾고 본선진출 티켓을 따낸다면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인터뷰를 해서 팬들 사이에서 개념이 제대로 박힌 선수로 인식되었고 역전승의 쾌감도 두 배가 되었다. 2년 전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을 제물로 삼아 U-20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냈다. 그러나 이번에는 준결승에서 역대급 전력을 구축한 북한에게 발목이 잡히며 세 대회 연속으로 4강에서 탈락.

콜롬비아에서 열리는 U-20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비록 유럽파들의 합류는 불발되었지만[31] 대신 김경중, 백성동, 윤일록 등의 알짜배기 자원들로 팀이 구성되었다. 골짜기 세대라는 소리는 2년 전보다 더 많았지만 매니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네임밸류는 떨어질지 몰라도 내실을 살펴보면 절대 골짜기가 아니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첫 경기 말리전에서 김경중장현수의 연속골로 2-0으로 완승을 거두면서[32] 이 팀에 대한 평가가 좋아지기 시작했고, 강호 프랑스전에서도 김영욱이 멋들어진 직접 프리킥을 골로 연결시키며 후반 막판까지 1-1로 대등히 맞섰다. 그러나 수비진의 집중력이 급속도로 떨어지며 연속실점을 허용하며 1-3으로 아쉽게 패배한다.

마지막 경기 콜롬비아전에서는 골키퍼 노동건의 실수로 전반전에 일찌감치 선제골을 허용했고,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며 0-1로 패배, 팬들로부터 폭풍까임을 당했다. 애초에 골짜기 세대라고 까다가 말리전, 프랑스전에서 선전하며 '제법 잘 하네?' 하면서 여론이 반전되려는 찰나에 졸전을 보여주면서 모아둔 까임 게이지가 한 큐에 터진 것.[33]

어쨌든 조3위 와일드카드로 16강에 합류하긴 했는데 16강 상대가 스페인이었다. 이스코, 마르크 바르트라, 오리올 로메우, 카날레스, 파체코, 코케, 크리스티안 테요 등 당시에 이미 성인무대에서 활약하던 선수들이 다수 포함된 스페인이 16강 상대로 결정되자 팬들은 골짜기 세대인데 운도 지지리 없다며 아예 기대를 접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정작 경기가 시작되자 선수들은 스페인을 상대로 갑자기 펄펄 날기 시작했다. 콜롬비아전에서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량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긴 했지만 한동안 한국축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투지넘치는 플레이로[34] 그 격차를 극복하며 스페인의 파상공새를 120분 동안 막아냈다. 연장전 후반 막판에 한국 골문을 향해 날아가던 공을 장현수가 몸을 날려 걷어내는 장면에서 울컥한 축구팬들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승부차기에 돌입하게 되고, 양 팀 모두 두 번째 키커까지는 실수없이 성공했으나 스페인 세 번째 키커 코케가 실축하여 한국 벤치에는 화색이 돌았으나 곧바로 한국의 세 번째 키커 이기제도 실축(...)설레어라 얍 일곱 번째 키커까지 팽팽했던 양 팀의 승부차기는 한국의 여덟 번째 키커 김경중이 실축을 하면서 스페인의 승리로 돌아간다.

비록 스타플레이어들이 다수 소집되지 못하고 대회 도중 부상자도 많았고[35]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주어진 여건 하에서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국민들에게 감동도 선사한, 결과적으로 나름 좋은 추억을 주었던 세대였다. 우승 후보를 상대로도 끝까지 포기하지않고 멋지게 잘 싸워준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여담으로 이 대회 우승에 도전했던 스페인은 한국과의 16강전에서 진을 다 빼버리는 바람에 바로 다음경기인 8강 브라질전에서 승부차기로 탈락했다(...)

17 2013 터키 대회

이광종 감독이 계속해서 지휘봉을 잡았다. 이 세대도 어김없이 초반에는 골짜기 세대 소리를 들었다.트렌드가 역대 최강전력에서 골짜기 세대로 넘어간 모양이다 아시아 대회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이라크를 상대로 무득점 무승부, 두번째, 세번째 경기에서는 각각 태국중국에 진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2승 1무를 기록했지만 이라크에 골득실에서 밀려 조2위로 8강에 진출하여 불리한 대진이 우려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란이 걸렸다. 사실 이번에도 8강에서 일본을 만날 뻔 했는데 옆 조에서 이란이 1위 일본이 2위를 했다.일본 거르고 이란[36]

경기내용은 전반전 2분만에 문창진이 선제골을 넣으며 경기가 쉽게 풀리는 듯 했으나 반격에 나선 이란이 29분에 동점골을 삽입. 그러나 그 후 이광훈-김승준-권창훈이 연달아 득점에 성공하며 이란을 4-1로 털었다. 특히 이광훈의 결승골로 승기를 잡은 후 파상공세에 나서는 이란을 상대로 철퇴축구를 구사하며 역습 두 방으로 카운터를 연타로 때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한편, A조 2위를 기록하며 8강에서 한국 대신 이라크를 만난 일본은 1:2로 패배하며 3대회 연속으로 고배를 마셨다(...)

준결승에서는 우즈베키스탄과 4년만에 같은 길목에서 리턴매치가 이루어졌는데 3-1 승리를 거두며 오랜만에 결승에 진출하여 우승컵에 도전하게 된다. 결승전 상대는 첫 경기 상대팀이기도 했던 이라크.수미쌍관? 그런데 불행하게도 전반전에 이라크에게 선제골을 내준다. 그 후로는 축구팬들의 예상대로 본격 침대축구 가동. 그러나 한국 선수들은 평정심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이라크 골문을 두드려 대고 결국 후반전 추가시간에 문창진[37]의 득점으로 침대를 깨부쉈다응징했다.[38] 그리고 연장전에 이어 승부차기에 돌입하는데... 한국 선수들은 침착하게 모두 성공시킨 반면, 이라크의 2,3번째 키커가 나란히 실축하며[39] 한국이 2004년 대회 이후 8년만에 아시아 정상에 오른다.

터키에서 개최되는 U-20 월드컵 본선에서 한국 대표팀은 새로운 기록을 갖게 되는데 2002 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FIFA 주최 국제대회에서 톱시드를 배정받은 것이다. 이 대회부터 시드배정 규칙이 바뀜에 따라 한국은 아시아 챔피언 자격으로 톱시드를 배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3월 26일에 가진 조추첨에서 한국은 B조에 편성, 쿠바·포르투갈과 한 조가 되었으며 나머지 한 자리는 아프리카 19살 이하 대회 4강 진출팀인 가나·나이지리아·이집트·말리 중 한 팀(우승팀 제외)이었다.(아프리카 쪽은 조추첨 당시 대회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쿠바는 북중미 대회 4위로 겨우 진출하여 이번 대회 최약체급으로 분석되고 있다. 다만 포르투갈은 지난 대회 준우승까지 차지한 팀이라 가장 힘든 상대가 될 전망이다. 물론 아프리카 4강팀들 모두가 청소년 대회에서 상당한 선전을 하던 팀이라 무시할 팀이 아니긴 하다. 3월 30일 아프리카 대회가 끝나고 진행된 별도의 추첨에서 나이지리아(3위)가 한국과 같은 B조로 들어가게 되었다.

나이지리아도 청소년 월드컵에서 유달리 강하기에 무시할 수 없지만 U-17대회를 브라질과 같이 최다 우승국가인 반면에 U-20대회에선 준우승 2번(1989,2005)만 거뒀다. 그렇긴 해도 2011년 전대회 8강 진출같이 이 대회도 여전히 무시못할 상대라 한국으론 꽤 힘들 상대가 될 듯. 게다가 아시아 예선에서 팀 주축으로 하드캐리를 하던 문창진이 허리 디스크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우려가 컸다.

1차전 쿠바전에서 전반 7분만에 실점했지만 권창훈의 페널티 킥 동점골에 이어 류승우의 역전골로 2:1 역전승을 거뒀고, 최대 고비로 예상되었던 포르투갈전은 류승우의 대회 2호골과 김현의 골로 2:2로 비겼다. 나이지리아전에서는 피지컬 측면에서의 압도적인 차이를 실감하며흑동생들 실제 나이와 장맛은 며느리도 모른다고 한다 0:1로 패배하여 조 3위에 그쳤지만 1승1무1패 승점 4점으로 조3위치고는 나쁜 성적이 아니라서 무난하게 조3위 팀들 중 성적이 좋은 팀들에게 주어지는 와일드카드를 차지하여 16강에 진출했다. 뭐 어찌됐든 간에 이 16강으로 대한민국의 FIFA 주관 대회 3대회 연속 1R 통과(2009~2013)라는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 U-17 여자 대표팀이 기록한 FIFA 주관 대회 2대회 연속 1R 통과 기록(2008~2010)을 3년만에 갈아치운 건 덤이다.

16강전 상대는 C조 1위를 기록한 콜롬비아로 결정되었다.1:0으로 앞서가고 있던 상황에서 종료 직전에 골을 내주며 연장에,더 나아가 승부차기에 돌입하지만 골키퍼 이창근의 결정적인 선방과 상대편 키커 발란타의 니가가라 8강실축으로 8강에 진출!2009년 이후 4년만에 또 8강에 가게 되었다.8강 상대는 아시아 예선과 결승에서 맞붙은 적이 있는 이라크. 언론들은 4강이 다가왔다고 설레발쳤으나 이라크랑 아시아 대회에서 2무로 승부차기 끝에 이겼던 걸 생각하면 어려운 상대였다. 이라크와의 8강전은 비록 패했지만 경기 내용만큼은 역대급 명승부를 연출했다. 이라크도 중동 특유의 더티 플레이는 전혀 하지 않았으며, 비교적 깔끔하게 경기를 운영했다. 연장전까지 3:3으로 비겨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그리고 4:5.... 3번째 대결에서 한국이 울어야 했고 30년만의 4강진출은 좌절됐다. 이라크는 아랍권 나라로서는 2번째(처음은 1981년 카타르가 거둔 준우승)이자 사상 처음으로 이 대회 4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라크는 4강전에서 우루과이에게 승부차기에서 패하여 대망의 결승전 진출은 이루지 못했다.그리고 우루과이도 결승에서 프랑스에게 승부차기로 패했다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인 류승우가, 대회 직후 분데스리가BV 보루시아 도르트문트팀으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기도 했다.

18 2015 뉴질랜드 대회

김상호 감독이 이끄는 19세 대표팀은 미얀마에서 열린 2014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에게 덜미를 잡혀 조3위로 예선탈락하면서 본선 진출에 실패하였다. 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팀이자 2013년 터키 대회 8강까지 올라가고 2017년 대회 개최국인 한국으로서는 망신 중 망신이다. 더불어 2000년 이란 대회에서 4강에 들지못했던 이후로 14년만에 또 재현하며 월드컵 대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다.

다만 2003년 월드컵 대회부터 2013년 월드컵 대회까지 꾸준히 나오던 나라가 한국과 스페인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망신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 그리고 스페인도 유럽예선에서 덜미를 잡혀 한국과 마찬가지로 2015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 다만 아쉬운 게 2000년 이란 U-19 대회같은 경우, 이란에서 열린 대회인만큼 이라크라든지 그 쪽 팀에게 더 고전한 게 이해가 갔지만 이번에는 중국과 일본[40]에게 덜미를 잡힌 게 좀 더 아쉬운 결과일 듯.

19 2017 대한민국 대회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한다. A조에 편성되어 개막전을 치른다.하지만 그 때만큼 흥행하기는?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력 확인과 인재 발굴 겸 2016년 바레인에서 개최된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에 참가했다. AFC는 이미 U-20 월드컵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 출전하는 한국이 시드권 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냈을 경우를 대비해, 월드컵에 자동 진출하는 한국이 가진 또 하나의 출전권을 가질 팀을 정하기 위한 와일드카드 전까지 계획했는데.... 결과는 한국이 조별리그 탈락을 하며 복잡한 생각을 할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모 스포츠 뉴스 앵커는 '내년 월드컵이 걱정된다'며 디스했고,[41] 결국 감독인 안익수는 성적 부진을 이유로 해임되었다.

  1. 그랬는데 왜 유벤투스 입단을 못 했느냐고 의아해하는 위키러들을 위해 각주로 첨언하자면 최순호는 당시 병역법에 근거 병역특례를 받은 상태였다. 당시에는 아시아 연령별 대회 우승도 병역특례 대상이었기 때문. 군대 안 간 건 행운이지만 군면제가 아니라 엄연히 병역특례였기 때문에 해당 종목에서 5년간 그것도 국내에서 종사해야 했고, 그래서 유벤투스가 아무리 적극적으로 오퍼해도 국내에 묶여 있어야 했던 것. 때문에 최순호는 세월이 지나 이걸 영원히 잊지못한다면서 두고두고 아쉬워 하고 있다.
  2. 참고로 멕시코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조 최하위로 탈락
  3. 빠다박종환 감독의 평소 성격을 감안하면 이건 정말 대단한 일화이다.
  4. 훗날 우루과이의 스타플레이어로서 '골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는 그 선수 맞다.
  5. 이들은 훗날 1994년 미국 월드컵에 핵심 멤버로 참가해, 브라질의 대회 우승에 기여한다.
  6. 신연호, 김판근, 이기근 등이 나름 활약했지만 전 대회 최순호만큼 탑급으로 성장한 선수는 없다. 가장 극단적으로 기대에 못미친 경우는 김종부.
  7. 이미 탁구에서 단일팀이 결성됐었던 것도 순조로운 단일팀 구성 진행에 한 몫을 했다. 영화 <코리아>의 소재가 된 바로 그 사건.
  8. 시리아는 이렇게 출전한 세계대회에서 우루과이를 이기고 잉글랜드 상대로 무재배를 하면서 깜짝 8강에 진출한다.
  9. 하지만 말로만 단일팀이었지 선수들끼리 매우 서먹서먹했다고 한다. 게다가 식사도 따로 하고 자유시간에도 서로 어울려 말도 하는 것도 없었다고 한다.
  10. 이것도 대단한 선전인 것이, 이 때 포르투갈 팀은 루이스 피구, 후이 코스타, 주앙 핀투, 아벨 사비에르 등이 포진한 포르투갈의 황금세대였다. 이 경기 이후 결승까지 올라 브라질을 승부차기 끝에 결국 대회 우승을 차지하게 되는 팀이다.그리고 11년 후 한국의 16강 진출의 희생양이 되는 팀이기도 하다.
  11. 1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퇴장당한다(...)
  12. 상대 자책골로 앞서나가다 후반 막판에 동점골을 허용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13. 저 투톱뿐만 아니라 윌리암 갈라스, 니콜라 아넬카, 윌리 사뇰, 필립 크리스탕발, 은별이미카엘 실베스트르가 있던 팀이었다.
  14. 후일담이지만 브라질은 8강전에서 리켈메가 이끌던 아르헨티나에게 2-0으로 덜미를 잡혀 탈락. 브라질을 잡은 아르헨티나가 결국 우승한다. 그래도 겨우 8강까지 브라질은 무려 25득점 2실점이라는 후덜덜한 골득차를 기록했는데 한국과 벨기에를 상대로 모두 20골을 기록한 탓이 컸다.우습게도 대회전 브라질을 대비하여 아르헨티나랑 경기를 해 1-1로 비기고 대회 해볼만하다고 했던 한국 언론...
  15. 많은 축구팬들이 침대는 과학입니다 침대축구 하면 중동만 떠올리지만 사실 침대축구의 원조는 굳이 침대축구를 할 필요가 없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두 팀을 제외한 남미팀들이었고 그 중 우루과이가 선두주자 격이었다.
  16. 챠비 에르난데스가 주축
  17. 조별리그 첫경기 카메룬전은 1-2로 패배.
  18. 그런데 이것때문은 아니겠지만 당시 나이지리아 관중들은 한국선수 이름에 이름이 죄다 3글자 밖에 없냐며 웃었다고 국내 기사로 나오기도 했다. 참고로 이런 개최국 디스는(?) 2000 시드니 올림픽 지역예선 바레인전에서도 경기장 시설이 엉망이라느니 똑같이 중계당시 나온 바 있다.
  19. 이 경기에 출전했던 중국의 수비수 두웨이는 훗날 셀틱에 입단할 때까지 훌륭한 떡밥으로 써 먹는다.마! 니 박지성 이겨봤나! 그러나......
  20. 단 2년 후 세대는 박주영 한 선수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된 반면 이 세대는 여러 명의 스타플레이어가 동시에 공존했던 팀이었다.
  21. 사우디를 상대로 한 준결승전에선 1-1 대치상태인 후반 43분 이종민의 결승골로 승리, 결승 일본전에선 연장전 정조국의 골든골로 승리.
  22. 한국은 조3위, 일본은 조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23. 심지어 MBC에서 월드컵 응원하는 것처럼 연예인들을 보내서 박주영과 청대를 만나 응원하려다가 방해한다고 욕을 바가지로 퍼먹는 일도 있었다.
  24. 그러나 아시아 지역예선에서나 깡패짓했지 같은 대회 출전한 월클유망주메시라던가 세스크라던가 요렌테라던가 존 오비 미켈이라던가들에 비하면 수준이 확실히 딸렸다. 앞서 언급된 최순호와 달리 유벤투스 스카우터가 박주영을 보고 유럽에 저런 애들 널렸다고 평가절하하기도 했고, 당시 psv감독이던 히딩크 감독 역시 직관하고도 영입의사가 없었다. 국내언론에서만 박주영이 득점왕 후보라는 둥 설레발쳐댔지만
  25. 사실 국내언론들이 스위스를 너무 얕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때 스위스는 아스날 듀오로 불리던 필립 센데로스와 요한 주루를 비롯어째 지금은 둘 다 영 아니지만 트란퀼로 바르네타, 요한 폰란텐, 레토 지글러 등으로 라인업이 구성된 탄탄한 전력의 팀이었다. 2002년 유로 U-17대회를 우승하고, 바로 직전 해 유로 U-19대회 4강에 든 대부분의 전력으로 구성된 팀이기도 했다. 나이지리아, 브라질에 대해 아래 주석에 첨언하겠지만, 한국은 한마디로 죽음의 조에 배정된 것.
  26. 여담으로 우리에게 진 나이지리아는 이 경기 이후 승승장구하면서 결승까지 진출한다. 비록 웬 괴물한테 썰리면서 우승에는 실패하지만,
  27. 여담으로 브라질 역시 승승장구하면서 4강까지 진출한다. 비록 아르헨티나의 대회 우승과 함께 득점왕, mvp도 쓸어간 그 괴물에게 나이지리아보다 한 발 앞서 썰리면서 결승 진출은 하지 못했지만. 심지어 남미예선에서도 브라질은 그 우주괴수한테 결승골을 얻어맞고 패했다.
  28. 1-0으로 이기는가 싶더니 후반전 추가시간에 1분 간격으로 동점골과 역전골을 얻어맞았다.
  29. 이 경기와 이어지는 16강전 파라과이전은 이 대회뿐만 아니라 3년 후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는 홍명보호에게 있어서 터닝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경기였다.
  30. 여담으로 이 때 기성용의 경우 A대표팀에서도 활약하고 있어 혹사 논란도 있었고, 기성용을 중심으로 팀 전술을 갈아엎고 새로 짜야 하는 부담도 있어 U-20 때에는 선발되지 않았다.
  31. 지동원은 EPL 적응문제, 손흥민, 남태희는 소속팀에서 차출 불허, 석현준은 수원컵에서 기량을 테스트해 봤지만 이광종 감독이 기대 이하라고 판단.
  32. 이 경기는 콜롬비아 현지에서 갑자기 폭우가 내리면서 예기치 않게 경기가 한 시간 정도 늦게 킥오프되기도 했다.
  33. 이 경기의 부진은 현지 보고타가 거의 백두산 높이와 맞먹는 고지대인데 이런 곳에서 세 경기를 연속으로 뛰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상대 콜롬비아 선수들은 익숙한 환경이기에 펄펄 뛰어다닌 모습과 대조된 것도 상대적으로 우리 선수들이 더욱 부진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34. 마침 이 날은 성인 대표팀의 삿포로 참사가 있던 날이어서 국대 선수들의 무기력한 플레이와 대조되어 더욱 찬사를 받았다.
  35. 황도연, 임창우 부상. 주전 골키퍼 노동건은 몸상태가 완전하지 못해 처음 두 경기는 백업 골키퍼 양한빈이 출전.
  36. 사실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한일전이 치열하긴 하지만 아시아 축구팬들 입장에서 축구만 놓고 볼 때 아시아 최고의 라이벌은 아마 한국과 이란일 것이다. 아시안컵에서의 지긋지긋한 인연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이나 올림픽 예선에서도 꼬박꼬박 한국과 이란은 사이좋게 붙어다녔다. 이란 애들은 얼마 전까지도 1996년 아시안컵에서의 6-2를 우려먹다가, 2010 남아공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이 박지성의 골로 손수 이란을 탈락시키자 데꿀멍...
  37. 조별예선 중국전부터 시작해서 4경기 연속 득점
  38. 이때 문창진이 골을 넣자 이라크 응원진에서 멘붕하는 모습이 중계방송에 잡혔다.
  39. 가래스 상윤의 작두 해설이 백미. 한번 보자.
  40. 체력 거덜난 한국 이기고 복수했다고 존나좋군...하다가 8강에서 만난 북한에게 패배해서 4연속 세계대회 진출 실패의 금자탑을 쌓았다.
  41. 그도 그럴것이, 월드컵까지 고작 7개월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