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롯왕

신약성경이나 역사 기록에 남은 헤롯(개신교†)/헤로데(천주교☧)라는 이름의 유대왕 또는 그 왕가. 그리스어로는 '헤로데스', 히브리어로는 '호르도스'라고 한다. 영어로는 Herod.

보통 아기 예수를 미리 죽이기 위해 애꿎은 어린애들을 학살한 헤롯왕으로 유명하지만, 사실은 대가 이어진 여러명의 동명이인이다. 성경만 따져도 무려 4명, 실제로는 6~7명이라서 착각하기 쉽다. 생각 없이 읽다가는 예수가 태어나기 전부터 서기 100년경까지 살아있는 장수만세가 되어 버린다! 물론 성경에서도 구별은 해준다.

그야말로 3~4대를 이어 등장하는 신약의 악역.

1 첫 번째 헤롯왕 - 헤롯 대왕(헤롯 1세)

BC 73년경 ~ BC 4년경 예리코.

이도메네아의 유력가문인 안티파테르(안티파텔)와 나바테아 왕국의 페트라(요르단강 동쪽)의 공주 키프로스의 둘째 아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유아대학살을 했다고 알려진 헤롯왕이다.

자세한 내용은 헤롯 대왕 항목 참조.

적자를 남기지 못한 채 세 아들(서자)들에게 그의 땅들을 나누어주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의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으며 이를 탐탁치 않게 여긴 아우구스투스가 이들의 왕의 지위를 인정하나 통치권을 박탈한다. 원소돋네

  • 헤롯 아르켈라오스 : 사실상의 적자. 유대, 사마리아, 에돔(이도메이아) 계승.
  • 헤롯 필립보(빌립보) 1세 : 아르켈라오스의 동복 동생. 아투레아(골란 고원과 베타니아), 트라코니티스
  • 헤롯 안티파스 : 갈릴래아와 페레아

아르켈라오스는 가장 넓은 땅을 물려받았으나 강압통치 때문에 6년만에 폐위되어 갈리아에서 죽었고, 다섯째 부인(측실)인 클레오파트라의 아들로 헤롯의 사망 때 갓난아기였던 필립보는 자식이 없이 서른 여덟에 죽어 대가 끊기게 된다.

현재 이스라엘에선 나름대로 대왕으로 칭송하는 편이다. 그가 유대인이 아닌 건 물론 다윗의 후손도 아니었음에도 말이다.[1]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면 대표적인 이유는 하나는 성서와 본문에서 나오듯, 성전을 재건축했기 때문이다.물론 재원은 국민들의 세금으로 마련했다만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 현지 취재를 할 때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기독교 나라에서 신약 성경을 근거로 헤롯 대왕을 비하하는 일 좀 집어쳤으면 한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이다. 사실 유대교는 로마 황제를 위해 제물을 바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제국 내에서 가장 높은 종교적 자치권을 누리고 있었고, 헤롯왕은 이를 보호하는 대표적 인물이었으니 그럴만도 하다.

2 두 번째 헤롯왕 - 헤롯 안티파스

BC 20 ~ AD 39.

첫 번째 헤롯왕의 아들. 루카 복음서에서 예수가 고통받을 때 등장하는 헤롯왕은 이 헤롯왕이다. 갈릴래아의 영주로, 형제들 가운데 가장 오래 살았고 왕권도 지킬 수 있었던 존재.

오순절 봉기를 진압하는 등의 강압정책과 티베리우스의 이름을 딴 티베리아스[2] 건설 등의 토목정책을 병행했다. 사해 동쪽 나바테아 왕국의 공주와 결혼했다 이혼하고, 이복 형제 아리스토부루스 4세의 딸이자 이복 형제 헤롯 필립보 2세[3]의 부인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이복형제라지만 조카딸이자 제수와 결혼한 셈. 이게 무슨 콩가루 족보냐 다만 이건 정치적인 계산이 들어있었는데, 헤로디아는 정통 유대인 왕조인 하스모니안 왕조의 후손이었기 때문. 정확히는 전 왕인 헤롯대왕과 하스모니안 왕조의 공주 미리암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리스토부루스 4세[4]의 딸이다. 어머니가 측실이어서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헤롯 안티파스에겐 나름 정통성 강화의 수단이었던 셈.

다만 이런 이혼과 재혼은 결국 헤롯 안티파스에겐 독이 되었는데, 분노한 첫 장인인 나바테아 왕국의 아레타스 4세가 쳐들어 왔고(서기 37년), 로마에 구원을 요청했으나 시리아 총독 비텔리우스는 매우 천천히 진압에 임했다고 한다. 이 때 그는 굴욕적인 패배를 맛본 후 헤로디아와 아그리파의 갈등에 따라 자기 조카 헤롯 아그리파의 참소로 인해 로마 황제 칼리굴라에 대한 반역죄로 왕위에서 쫓겨나, 형이 쫓겨난 유배지 갈리아에서 숨을 거둔다. 이 때문에 흔히 죄 없는 요한을 죽인 대가로 악몽에 시달리다 영화도 잃고 죽었다고 전해진다. 솔직히 예수와 요한을 함께 욕보였는데 이 정도면 성경에서 약소한 편이다.[5]

그리고 세례자 요한이 헤로디아와의 결혼으로 헤롯왕을 비판했다가 감옥에 갇히고 목을 베여 죽는데, 마태오 복음서마르코 복음서에 따르면 이 때 헤로디아와 딸이 주요하게 개입한걸로 나온다. 아아 막장 가정 당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AD 37년경 ~ AD 100년경)에 따르면 그 딸은 헤롯 필립보 2세의 친딸인 살로메였다고 한다. 성경에는 살로메가 매혹적인 춤을 춰 의붓아버지에게 호감을 샀고, 그 때 어머니와 상의 하여 쟁반에 요한의 목을 가져오기를 요구했다고 나온다.[6][7]. 이게 무슨 고어물!

복음서에서는 예수의 죽음 이후로 추정되는 요한의 죽음의 선후가 반대다. 그래서 오히려 헤롯이 예수를 두고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부활 두 번할 기세. 이 대목은 헤롯이 가지고 있던 죄책감 등을 반영한다는 해석이 있다. 실제로 마가복음에선 헤롯이 요한의 의로움을 알고 보살펴주고 그의 말을 즐겨들었다는 대목이 존재한다. 다만 헤롯이 살로메에게 한 맹세 때문에 억지로 죽였다고 나온다

루카 복음서에서는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들어와 마침 붙잡힌 예수를 만나 그를 조롱하며 기적을 일으켜 보라며 떠보나, 예수가 듣지 않는 등 대놓고 악역으로 나온다.[8] 외경에서는 본시오 빌라도와 달리 손을 씻지 않으며, 십자가 형을 주도하기도 한다.[9] 여기에 헤롯의 막장, 사치 이미지가 결합하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에서는 아주 코믹하게 나온다. (1973년판 영화) (2002년판 영화) 딱 한 파트 나오지만 의외로 까메오 격의 주요 배우가 나오는게 특징으로, 30년을 거치면서 점차 복장이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 틱하게 변하는 게 특징. 많은 바리에이션이 있다.


잭 블랙2006년에 자선공연으로 헤롯을 맡았다! 왕의 패기

3 세 번째 헤롯왕 - 헤롯 아그리파스 1세


BC 10년 ~ AD 44년.

두 번째 헤롯왕 안티파스의 조카이자 첫 번째 헤롯왕의 손자.

어려서 로마에서 살면서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등 로마 황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 교분을 이용하여 헤롯 안티파스를 칼리굴라에게 참소하여 몰아내고 유대 왕 자리를 빼았았다(AD 41년경). 사마리아도 함께 다스렸다고 한다.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는 등 초대 교회를 박해한 헤롯왕은 이 헤롯왕.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정통파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정책에다가, 키가 크고 얼굴이 준수하게 생겨서 백성들에게는 인기 있는 왕이었다고 한다. 당시 유대인들은 외모를 중요시 여겼기 때문에 얼굴만 보고 여호와 같다며(!!) 추종했다고. 사울이냐.

사도행전 12장에서는, 티레와 시돈 사람들이 그에게 사람이 아닌 신의 목소리라며 외칠 때 그 영광을 하느님에게 돌리지 않았기 때문에 벌레에 먹혀 죽는다. 역사 기록에서도 건강하다가 갑자기 급사했다고 한다. 여하간 비명횡사전대.

소설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의 주요 등장인물이며, 클라우디우스와는 애증 관계로 마지막까지 얽혀있다. BBC 드라마에선 어렸을때부터 등장해 쾌활하고 유머러스한 모습을 보여준다. 클라우디우스와 친구 관계로 붙임성있는 성격 덕분에 아우구스투스 등의 호감을 산다. 아우구스투스가 "신 하나만 가지고 뭐 되겠냐"는 식으로 놀리자 "신 하나만 가지고도 고생이라 더 이상의 신은 못섬겨요"라는 식으로 자신의 일신교 신앙을 재치있게 변호하는 식.

소설에서는 훗날 클라우디우스가 황제가 되고 나서 메시아 전설을 이용해 동방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키려 하지만 때이른 죽음으로 사망한다. 죽어가면서 클라우디우스에게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편지를 남긴다. 이로서 클라우디우스는 어려서부터 알던 친구들을 모두 잃었으며 결국 메살리나에게 매달리는 계기가 된다.

4 네 번째 헤롯왕 - 헤롯 아그리파스 2세


서기(AD) 27년경 ~ 94년경 혹은 100년 이전.

세 번째 헤롯왕의 아들로 헤롯 아그리파 2세라고도 한다.
헤롯 왕가의 마지막 왕으로, 사실상 영주(prince)정도로 분류한다.

아버지가 죽을 때 겨우 17세였기에 4년간을 더 로마에서 머물렀다가, 헤롯 5세(칼시스)가 죽자 왕위를 계승하러 갈릴래아로 왔다. 사도 바울이 잡혀서 로마로 압송되기 직전 복음을 전하는 헤롯왕은 이 헤롯왕이다. 바울이 죄가 없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당연히 그리스도교인이 되지는 않은 듯하다. 요세푸스를 후원하고 AD 50년대 네로 등에게서 영토를 더 할양받는 등 영화를 누렸으며, 헤롯왕가 치고는 70세까지 장수했다. 하지만 무자식으로 대가 끊겼으니 안 될 거야.

그는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폈고, 유대 반란(AD 66~73)을 겪으면서도 초기엔 로마에 저항하는 것을 그만두라고 군중들 앞에 나와 설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에 비해 신망이 높지 않아, 열심당의 결론이 결국 강경한 봉기로 이어지자 진압에 앞장서는 등 분란은 끊이질 않았다. 서기 100년인 트라야누스 때까지 살았다는 기록도 있으나, 흔히 향년 70세 사망에 근거해 95년경 사망설을 정설로 한다. 여하간 헤롯 아그리파스 2세를 마지막으로 130년의 헤롯 왕조는 끝나게 된다.

유대 봉기와 헤롯 왕가의 몰락으로 예루살렘과 유대교는 그야말로 전례 없는 철퇴를 맞았고, 예루살렘이라는 이름마저 일시적으로 사라지게 된다. 이것이 1세기 로마의 가장 특이한 준자치 지역이던 헤롯 왕가 유대 왕국의 끝이었다.

그 외 북유대왕으로 헤롯 대왕의 아들 아리스트블루스 4세와 칼시스(헤롯 5세, AD 48년 졸)이 따로 있었다. 정말이지 복잡한 족보다.
  1. 이두메 출신이다. 이스라엘인의 조상인 야곱의 형으로 알려진 에서의 후손
  2. 티베리아스는 갈릴래아의 주도로 지금도 번성하는 도시다. 흠좀무.
  3. 헤롯 2세라고도 한다. 헤롯 대왕과 동명이인 미리암의 외아들로 흔히 보에투스라고 한다. 아버지의 지위는 계승하지 못했으며 헤롯 빌립보 1세와 동일인물이란 주장도 있다.
  4. 하스모니안 왕조의 후손이라 아버지인 헤롯 대왕에게 처형당했다.
  5. 외경에 의하면, 요한의 목을 달라고 한 헤로디아의 딸은 갈리아에서 얼음 위를 걷다가 얼음이 무너지면서 물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얼음의 날카로운 면에 그만 목이 잘리고 만다
  6. 그러나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로디아와 그녀의 딸의 춤에 대한 기록은 없다. 아마 요한의 죽음이 민간으로 전해지면서 당시 민간에서 안 좋게 본 헤로디아 모녀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는 루머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고, 성경에도 그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7. 오해와 달리 헤롯이 근친상간 돋게 살로메에게 네 어미의 자리도 주리라 라고 한적은 없다. 헤롯이 한 말은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이다.
  8. 대신 흥미롭게도 루카 복음서에는 요한을 베는 과정과 살로메의 이야기가 안 나온다. (베었다는 것은 사실로 나온다.)
  9. 자기가 다스리던 갈릴리(갈릴래아) 출신이니 더욱 깔봤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