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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명: Secale cereale
영어: Rye
프랑스어: Seigle
독일어: Roggen
일본어: ライムギ (ライ麦)
중국어: 裸麥
벼목 화본과(볏과)에 속하는 곡식의 일종. 일본어 명칭은 영어의 라이(Rye)에서 파생되었고, 한국에서도 라이보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터키와 주변 지역이 원산지로, 이후 유럽과 아시아 북부 여러 지역에 전파되었고, 특히 중부 유럽과 동유럽 지역에서 주요 작물로 재배되었다. 호밀은 밀과 비슷한 기후조건에서 생장이 가능한데, 밀에 비해 척박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므로 밀이 자라기 어려운 토양을 가진 지역에서 재배해왔다. 하지만 식감이 워낙 거칠고 맛도 밀에 비하면 떨어지는 편이라, 주로 동물 사료로 쓰거나 먹을 것이 궁한 빈민들이 죽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세 이후 서양에서 제분과 제빵 기술이 발달하면서 호밀가루로도 빵을 구울 수 있게 되었고, 이 호밀빵은 주로 북유럽[1]이나 동유럽, 러시아, 독일 북부 등지에서 많이 먹었다. 지금도 러시아와 폴란드, 독일[2]은 각각 세계 최상위권의 호밀 생산국들이며, 이들 국가에서는 밀빵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다양한 호밀빵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다만 호밀가루의 경우 밀가루보다 글루텐이 부족해 쉽게 부풀지 않는 특성 때문에 빵을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그로 인해 밀가루를 일정 비율 섞어서 반죽해 굽는 경우가 많다. 호밀가루로만 빵을 만들 경우 반죽을 천연 효모로 장시간 발효시킨 뒤 굽는 사워도 브레드(Sourdough bread)[3]나 호밀 입자를 거칠게 갈아 압축시켜 굽는 독일 등 북유럽식 품퍼닉켈(Pumpernickel) 둘 중 하나를 택하는 것이 보통이다. 둘 다 밀빵에서는 맛볼 수 없는 시큼한 맛이 나는데, 이 맛에 적응 못하고 GG치는 사람들도 많다. 흑빵은 러시아인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는 빵 중 하나이자, 우리나라의 김치와 라면같은 음식이다. 흰 빵과 달리 러시아흑빵은 호밀 냄새가 나며 시큼한 맛이 난다. 러시아인들은 이걸 고향의 맛으로 생각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이 있으면 추가바람.
특히 품퍼닉켈 계통 빵의 경우 시큼한 맛에 거칠고 묵직한 식감까지 더해져 있어서, 웬만큼 장기 체류하며 그쪽 음식에 익숙해진 사람이 아니면 쉽게 입에 대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 다만 치즈나 햄, 소시지, 야채, 피클 등을 넣고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거나 버터와 잼, 꿀, 혹은 누텔라 등을 발라서 먹으면 한결 낫고, 익숙해지면 시큼한 맛이 오히려 식욕을 돋우고 밀빵 먹는 것보다 든든하다고 해서 이것만 찾는 사람들도 있다. 귀리와 마찬가지로 섬유질이 풍부해 건강에 신경 쓰는 이들은 아예 밀빵 대신 이걸 일부러 상식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빵 외에 케이크나 과자도 만들 수 있는데, 특히 프랑스 북동부의 랭스를 원산지로 하는 팽 데피스(Pain d'épices)라는 케이크가 유명하다. 직역하면 향신료빵으로, 이름 답게 호밀가루와 꿀, 향신료를 섞은 사워도우 반죽을 오븐에 구워 만든다. 배합하는 향신료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주로 계피나 팔각 같은 강한 향을 가진 것이 쓰인다. 이 때문에 독일의 렙쿠헨, 폴란드의 토룬 등과 비슷한 맛과 향이 나며, 그 향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호불호가 꽤 극명하게 갈린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위스키의 일종인 라이 위스키의 주재료로 사용하며, 감자 대신 이걸로 만드는 보드카도 있다. 독일에서도 밀맥주(Weizenbier)와 비슷한 방식으로 호밀맥주(Roggenbier)를 빚어 마시기도 했는데, 맥주 순수령이 공표되고 나서 큰 타격을 받아 생산량이 급감했다. 물론 20세기에 와서 맥주 순수령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호밀맥주의 상업적 양조도 재개되었는데, 아직 독일 남부 바이에른을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만 마실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알코올 도수가 매우 낮아 청량음료로 취급되는 양조주인 크바스의 주원료로도 쓰인다.
호밀과 보리, 밀 등 화본과 식물에 균류의 일종인 자낭균류가 번식하면 맥각이 생기는데, 각종 알칼로이드가 생성된다. 여기서 합성한 게 마약의 일종인 LSD이며, 알칼로이드 성분을 자궁의 수축, 분만촉진, 지혈제 등의 용도로 사용하는데 주로 호밀에 맥각균을 접종시킨 것을 쓴다.
한국에서도 아주 오래 전에 전래되어 있는 곡식이지만, 식감이 거칠고 풍미가 좋지 못해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지 않아 수요가 없어 널리 재배하지 않았다. 이용 방법도 한정되어 있었고, 낱알을 그대로 식용하는 것 외에는 일부 지방에서 간장이나 된장을 만드는 등 발효식품 제조에 이용하던 것이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가축용 사료의 가격이 계속 오르자, 농한기 대체 사료 작물로 한국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특히 가을철에 벼를 수확한 논에 호밀 씨앗을 뿌려 농한기 동안 재배하다가, 다음해 5월경에 씨앗용으로 쓸 일부만 남기고 덜 여문 호밀을 베어 소의 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다만 식용으로 재배하기에는 아직 타산이 맞지 않아 재배 면적은 아직도 좁은 편이다.
한때 웰빙 바람이 불면서 한국에서도 호밀빵이 유행하기도 했다. 호밀빵을 사용한 햄버거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대부분 밀빵에 호밀을 아주 살짝 첨가했을 뿐이고 맛도 그냥 밀빵과 다를 바 없어서 이내 버로우 탔다. 다만 프랜차이즈 체인점이 아닌 몇몇 개인 베이커리 등에서는 진짜 호밀빵을 팔기도 하는데, 한국의 호밀 생산량과 수입량이 극히 적은 관계로 같은 무게의 밀빵보다 두세 배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