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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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행정구역 변천사
남양도호부
(南陽都護部, 1413)
경기도 남양군
(南陽郡, 1896)
수원군
(水原郡, 1914)
화성군
(華城郡, 1949)

화성시
(華城市, 2001)
수원도호부
(水原都護部, 1413)
경기도 수원군
(水原郡, 1896)
수원시[1]
(水原市, 1949)
오산시
(烏山市, 1989)

1 삼국시대 ~ 남북국시대

현재의 화성시 영역은 역사적으로 수원(현 화성시 동부 : 병점, 동탄, 매송, 봉담, 정남, 양감, 향남)[2]남양(현 화성시 서부 : 남양, 송산, 서신, 마도, 비봉, 팔탄, 우정, 장안)의 2개 고을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고구려 때 수원은 매홀군(買忽郡), 남양은 당성군(唐城郡)이었다. 남양은 당항포(唐項浦) 또는 당항성(唐項城)이라 불렸으며, 군사적 요충지로서 신라고구려, 백제가 다툼을 벌인 곳으로 유명하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수원은 수성군(水城郡), 남양은 당은군(唐恩郡)으로 개칭되었다.

마한의 54소국 중의 하나인 모수국(牟水國)이었다. 이후 백제 땅이었다가, 고구려가 백제를 한강 이남에서 몰아낸 이후 매홀군(買忽郡)으로 개칭되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수성군(水城郡)으로 개칭되었다.

2 고려

수원은 태조 때 수주군(水州郡)으로, 남양은 충선왕 때 남양부(南陽府)로 개편되었다.

3 조선

조선 초기 수원도호부(현 수원시, 오산시, 화성시 동부, 평택시 서부)와 남양도호부(현 화성시 서부,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로 개편되었다. 수원도호부의 읍치는 현 화산동에, 남양도호부의 읍치는 현 남양읍에 있었다. 그러다가 정조 때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침인 현륭원(융릉)을 조성하기 위해 수원도호부의 읍치를 새로 축조한 수원화성, 즉 현 수원시 일대로 이전하였다. 즉, 정조 때까지 수원의 오리지널 중심지는 현 수원시 지역이 아닌 현 화성시 화산동 일대였다.[3] 1413년(태종 13년)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개편되어, 현재의 수원이란 명칭이 확립되었다.

조선 중기까지 한적한 촌락에 불과하던 수원은 정조(正祖)가 아버지인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무덤 영우원(永祐園)을 양주에서 수원의 화산(華山/花山)으로 이전하여 현륭원(顯隆園)으로 개칭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있던 수원부 치소와 시가지를 현재의 수원화성으로 옮겨버리고, 그 자리에 현륭원을 조성한 것. 그 때문에 연구가들이 옛 수원의 연구에 애를 먹고 있다. 현재의 화성시 화산동(안녕동, 송산동 일대) 지역이 바로 옛 수원의 중심지였다.[4][5] 그 와중인 1789년 광주유수부의 일용면[6] 과 송동면[7]을 편입하였다.[8]

이원(移園)과 함께 도시 방어를 위한 수원 화성과 왕의 능행차 시 묵었던 화성행궁이 건립되었다. 그리고 정조는 자신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수원에도 배치시키고, 상업을 발전시켰다. 수원 역시 도호부에서 유수부로 승격되어 대도시로 성장하였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종2품을 두던 유수부였지만, 수원유수는 정2품으로 한성부판윤과 동급이었다.[9] 그러나 정조의 죽음으로 수원은 쇠퇴하고, 정조가 수원에 베풀던 특권 역시 폐지되었다. 다만 유수부라는 지위는 박탈당하진 않았다...만 이마저도 1895년 행정구역 최악의 흑역사 23부제 시행으로 인해 인천부 수원군으로 강등된다(...)

구한말 수원군과 남양군으로 개편되었다. 다만 이포면(지금의 화성시 비봉면 일부와 남양읍 일부)은 조선 말기까지는 인천도호부의 월경지였다가, 1895년 행정구역 대개편 때 남양군에 편입되었다.

4 일제강점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원군과 남양군이 수원군으로 통합되었다. 이와 함께 현 안산시 상록구 일부[10]의왕시[11] 일대가 수원군으로 편입되었다. 기존 수원군과 남양군 시절의 수많은 면들도 통폐합이 이루어져, 일용면·형석면이 일형면[12]으로, 안녕면·용복면이 안룡면[13]으로, 태촌면·장주면이 태장면[14]으로, 동북면·어탄면이 동탄면으로, 산성면·청호면·문시면·초평면이 성호면으로, 음덕리면·둔지곶면·화척지면이 음덕면[15] 등으로 통합되었다. 이와 함께 원래 남양군 관할이었던 대부도, 영흥도 등 도서 지역은 부천군에, 종덕면·토진면·수북면·청룡면·감미면·율북면·포내면·승량면·숙성면·언북면·오정면·안외면·광덕면·가사면·현암면은 진위군에 편입되었다.

1931년 수원면이 수원읍으로 승격되고, 1936년 일형면, 안룡면, 태장면의 각 일부가 수원읍에 편입되었다. 이와 함께 일형면과 의왕면이 일왕면으로 통합되었다. 1941년 성호면이 오산면으로 개칭되었다.

5 대한민국

1949년 수원읍이 수원부(시)로 떨어져 나가면서, 수원군의 잔여 지역이 화성군으로 개칭되었다. 이와 함께 음덕면이 남양면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오산면이 오산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 일왕면, 태장면, 안용면의 각 일부를 수원시에 편입시키면서 수원시의 영역을 대폭 넓히는 데 일조하였고(...), 일왕면 중 수원시에 편입되지 않은 나머지(구 의왕면 영역과 동일)는 의왕면(현 의왕시)으로 명칭을 환원하고 시흥군으로 넘어갔다. 태장면과 안용면은 태안면으로 통합되어 훗날의 태안읍, 지금의 병점 일대가 되었다. 1970년 수원시 내에 있던 화성군청[16]을 오산읍으로 이전하였다. 1983년 반월면 초평리, 월암리가 시흥군 의왕읍에 편입되었다. 1985년 태안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 반월면 일부(현 안산시 상록구 일동, 이동, 사동, 본오동 등)가 신설된 안산시에 편입되었다. 1987년 매송면 금곡리, 호매실리가 수원시에 편입되었다. 1989년 오산읍이 오산시로 승격되어 분리되었다.

1995년 반월면이 안산시[17], 군포시[18], 수원시[19]에 분할 편입되어 사라지고, 태안읍 영통리, 신리, 망포리 일대가 영통신도시로 개발되면서 수원시에 편입되었다. 지금까지 보면 알 수 있듯이 수원시에 계속 땅 많이 뜯겼다.(...) 아낌없이 주는 화성 물론 수원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고, 수원시와 화성군 자체가 원래 같은 지역이었으니... 1997년경에 전체 인구 16만 명에 유일한 읍인 태안읍이 5만 명이 넘지 않자, 화성군에서 생활권이 같은 장안면과 우정면을 합쳐 삼괴읍을 만들고 시 승격을 하려고 했으나, 행정자치부의 반려로 무산되었다. 1998년 봉담면이 봉담읍으로 승격되었다.

2000년 화성군청이 남양면으로 이전하였다. 2001년 화성시로 승격되면서, 시청이 있는 남양면이 남양동으로 전환되었다.[20] 2003년 우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6년에는 태안읍이 폐지되고 동으로 전환되었으며, 2007년 향남면이 향남읍으로 승격되었다. 2014년 10월에는 남양동이 남양읍으로 전환되었다.[21] 2015년 1월 2일 동탄2신도시 개발지인 동탄면 영천리·오산리·청계리·중리 일부·산척리 일부·방교리 일부가 동탄4동으로 분리, 신설되었다. 법정동은 영천동, 청계동, 오산동이다.
  1. 사실 승격 당시(8.14)에는 수원부(水原府)였지만 바로 다음 날(8.15) 부를 시로 바꾸었다.
  2. 사실 여기뿐만 아니라 오산, 현 수원시 모두 수원 고을이었다. 중심지는 원래 화성시 화산동 일대였으나, 조선 정조가 수원화성을 축조하면서 수원읍(현 수원시)으로 옮겨갔다.
  3. 오늘날 수원대학교가 화산동 바로 옆인 봉담읍에 있다.
  4. 즉, 정조의 수원화성 축조 이전까지 오리지널 수원의 중심지는 현 수원시가 아닌 화성시 화산동 일대였다. 거꾸로 수원화성은 화성시에 없고 수원시에 있다. 마침 오리지널 수원의 중심지 근처인 화성시 봉담읍에 수원대학교가 있다. 또 봉담은 수원생활권이다 통합을 해야하는건가
  5. 옛 수원군 지역을 전체적으로 보자면 현 화산동 일대가 중심지에 가까우며, 현 수원시의 영역은 과거 수원군의 북동쪽 끝에 가깝다. 사실 수원시에는 옛 용인군이나 광주유수부의 영역이 끼여 있으며, 어떻게 보면 현 화성시가 수원시보다 과거 수원군의 영역을 더 많이 간직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6. 현재의 장안구 영화동, 조원동, 송죽동, 정자동, 파장동
  7. 현재의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 송라리, 원리
  8. 견아상입지여서 성남시광주시서울특별시 강남구강동구 등 성남/광주권 지역이나 서울 강동권 지역과는 연계성이 거의 없다. 당시 송동면은 광주군 북방면, 성곶면, 월곡면과 접했고, 일용면은 의곡면, 왕륜면에 접했으며, 이 지역들은 모두 인접한 타 군으로 편입되었다.
  9.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수원광역시를 사실상 수원특별시로 승격, 취급한 셈이다.
  10. 구 안산군 대곡면·북방면·성곶면. 1914년 수원군 편입 이후 반월면으로 통합. 1906년 이전에는 이 지역까지도 광주군 관할이었다.
  11. 구 광주군 의곡면·왕륜면, 편입 이후 의왕면
  12. 현 수원시 장안구 및 권선구 구운동·서둔동
  13. 현 화성시 화산동·기배동 및 수원시 권선구 평동·세류동
  14. 현 화성시 태안동·진안동·반월동·능동 및 수원시 팔달구 우만동·지동·인계동, 권선구 권선동·곡선동, 영통구 원천동·매탄동·영통동·태장동
  15. 현 화성시 남양읍
  16. 화성행궁 앞 지금의 후생병원 자리에 있었다. 군청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
  17. 안산시 상록구 반월동
  18. 현 군포시 대야동
  19.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
  20. 정확하게 말하면 도농복합시로 승격하기 위한 조건으로 도시형태를 띤 동이 하나 이상 있어야 했는데 태안읍은 분동을 반대했고 결국 남양면으로 군청도 이전해왔으니 남양면도 발전할 것이라고 남양면 주민들을 설득하여 남양동으로 전환한 것이다.
  21. 한국 행정사상 유일하게 동이 읍으로 자진 격하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