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우승: 고려대 2차대회 우승: 고려대/한양대 3차대회 우승: 연세대 | → | 1995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우승: 고려대 2차대회 우승: 고려대 | → | 1996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우승: 연세대 2차대회 우승: 연세대 |
1 개요
1995년도 대학농구연맹전 및 기타 대학농구 대회들에 대해 소개한다.
대회 | 일시 | 우승팀 | MVP | 준우승팀 | 3위 | 4위 | 비고 |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 4월 | 고려대 | 전희철(고려대) | 연세대 | 명지대 | 경희대 | |
SBS초청 95 고교대학농구최강전 | 5월 | 고려대 | - | 한양대 | | | [1] |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 6월 | 고려대 | 김병철(고려대) | 연세대※ 한양대※ | - | 중앙대 | [2] |
전국체전 | 9월 | 고려대 | - | 중앙대 | | | |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 | 10월 | 고려대 | 현주엽(고려대) | 연세대 | 경희대※ 명지대※ 한양대※ | - | |
※ 각각 승패 동률로 공동순위
- 고려대가 사상초유의 시즌 5관왕을 달성했다!! 여기에 농구대잔치까지 우승했으면 화룡점정이었겠으나...(1995-96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2 대회결과
2.1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4월)
1995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항목 참조
- 1994-95 농구대잔치 8강 삼성전자와의 경기에서 선수생명을 위협받을만한 부상을 당한 서장훈은 갑작스럽게 미국 유학길에 올랐고[3], 역시 같은 경기에서 센터 구본근(2년,197cm)마저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뒤 여름까지 복귀하지 못하게되면서, 골밑이 강점이라던 연세대는 어느새 대학무대에서도 가장 낮은 골밑을 갖게되었다. 최희암 감독은 궁여지책으로 청소년대표팀 출신의 장신가드 김택훈[4](2년,193cm)을 센터로 기용하였는데, 이후 김택훈은 은퇴할때까지 계속 골밑자원으로 뛰면서 상당히 터프한 수비수로 바뀌게 되었다.
2.2 SBS초청 95 고교대학농구최강전 (5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당시 NBA 경기 중계, 길거리 농구대회 개최 등으로 국내 농구붐을 주도하던 방송사 SBS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대학농구의 인기에 편승하여 급조한 대회로, 참가팀 기준도 바로 직전 대회인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경쟁사의??)의 상위 6팀으로 선정하는 등 족보없는 대회였다. 한회만 열리고 사라진다.
- 참가팀: 고려대, 연세대, 명지대, 경희대, 건국대, 한양대 (1995 MBC배 전국대학농구대회 성적 순 상위 6팀)
- 6팀이 2조로 나뉘어 조별예선을 치른 후 각조 1위끼리 결승전을 별인다.
2) 조별 예선
순위 | A조 | B조 |
1 | 고려대 | 3 - 0 | 한양대 | 2 - 0 |
2 | 경희대 | 1 -1 | 연세대 | 1 - 1 |
3 | 건국대 | 0 - 2 | 명지대 | 0 - 2 |
3) 결승전
- A조 고려대와 B조 연세대가 결승에서 격돌하는게 SBS가 짠 각본이었으나... 미국 유학간 서장훈에 2학년 센터 구본근까지 빠지면서 골밑이 약점이던 연세대는 한양대 센터 이흥섭(4년,200cm)에게 무려 31점을 헌납하며 연장 접전끝에 패배한다. 덕분에 SBS가 또한번의 연고전이 열릴거라며 열심히 홍보했던 대회 결승은 시청률 폭망에 이르고, 1회를 끝으로 이 대회는 폐지된다.(;;;)
2.3 "원비배"[5] 대학농구연맹전 1차대회 (6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1995 서울 ABC 대표팀에 고려대 전희철, 현주엽, 연세대 우지원이 차출되어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못했다.
- 동국대가 1차,2차 연맹전에 모두 불참하였다.
2) 조별 예선
순위 | A조 | B조 |
1 | 고려대 | 5 - 0 | 연세대※ | 3 - 1 |
2 | 한양대 | 4 - 1 | 건국대※ | 3 - 1 |
3 | 명지대 | 3 - 2 | 중앙대※ | 3 - 1 |
4 | 경희대 | 2 - 3 | 국민대 | 1 - 3 |
5 | 홍익대 | 1 - 4 | 단국대 | 0 - 4 |
6 | 성균관대 | 0 - 5 | | |
※ B조 상위 3팀의 승패가 동률이라 골득실로 순위를 정하긴 했으나, 3팀의 상대전적이 모두 1승 1패씩이므로 정작 결선리그에서 세팀의 차이는 없었다.
3) 결선리그[6]
순위 | 결선리그 | 비고 |
1 | 고려대 | 5 - 0 | 우승 |
2 | 연세대 | 3 - 2 | |
한양대 | 3 - 2 | |
4 | 중앙대 | 2 - 3 | |
5 | 건국대 | 1 - 4 | |
명지대 | 1 - 4 | |
- 작년과 마찬가지로 선수층이 워낙 두터운 고려대에게 있어 전희철, 현주엽의 공백은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후보 빅맨 박재헌(3년,C,200cm)-박훈근(3년,F,195cm)-박준영(4년,F,195cm)이 지키는 골밑은 여전히 대학 최강이었다. 이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박재헌은 1995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표팀에 뽑히게 되고, 이로인해 U대회 대표팀에는 고려대 소속 선수가 무려 6명(신기성-김병철-양희승-현주엽-전희철-박재헌)이 뽑히게 되면서, 고려대의 자랑 중복스카웃을 널리 홍보한다.;;;
2.4 전국체전 (9월)
2.5 "LG반도체배"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10월)
1) 참가팀 및 주요 사항
- 동국대가 1차대회에 이어 연속 불참했다.
- 1992년부터 체육특기생을 선발하지 않으며 농구팀 해체를 예고했던 국민대는 이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학농구계를 떠났다. 왕년의 국가대표팀 센터 김성욱(前 현대전자)를 배출했던 명문팀의 마무리 치곤 매우 조용했다.
- 이 대회 직전까지의 성적(MBC배, 1차 연맹전)을 기준으로 농구대잔치 참가팀 6팀 중 4팀(고려대, 연세대, 명지대, 한양대)이 확정되었다. 남은 2장의 티켓을 위해 중앙대, 경희대, 건국대가 경쟁하는 구도였다.
2) 조별 예선
순위 | A조 | B조 | C조 |
1 | 경희대 | 3 - 0 | 고려대※ | 2 - 1 | 연세대 | 2 - 0 |
2 | 한양대 | 2 - 1 | 명지대※ | 2 - 1 | 중앙대 | 1 - 1 |
3 | 단국대 | 1 - 2 | 홍익대※ | 2 - 1 | 국민대 | 0 - 2 |
4 | 성균관대 | 0 - 3 | 건국대 | 0 - 3 | | |
※ 골득실차로 순위결정.
- 1995년도 전승 및 농구대잔치 전승우승을 통해 기존 자신들의 연승기록이었던 49연승에 도전한다던[7] 고려대는, 2차대회 개막전에서 다른팀도 아니고 "홍익대"에게 어처구니없이 패하면서 연승 행진이 멈추고 만다. 현주엽이 발목부상이긴 했지만 다른 멤버들이 건재했음에도 190cm을 넘는 선수가 한명밖에 없는 단신군단 홍익대에 패한 것은 고려대 선수들의 방심이 심했다고 밖에 말할수 없는 결과였다. 홍익대는 2차전에서도 농구대잔치 진출을 노리던 건국대마저 격파, 오랜만에 결선에 진출하는듯 했으나 마지막 경기에서 명지대에 대패하며 골득실차에 밀려 예선탈락하고 만다.
3) 결선리그[8]
순위 | 결선리그 | 비고 |
1 | 고려대 | 5 - 0 | 우승 |
2 | 연세대 | 4 - 1 | |
3 | 경희대 | 2 - 3 | 공동 3위 |
명지대 | 2 - 3 |
한양대 | 2 - 3 |
6 | 중앙대 | 0 - 5 | |
- MVP: 현주엽(고려대)
- 우수선수: 김훈(연세대)
- 기록 부문별 1위
- 득점: 조우현(중앙대)
- 리바운드: 김동언(한양대)
- 어시스트: 김태진(명지대)
- 수비: 구병두(중앙대)
- 현주엽은 대회 개막전 연습경기에서 발목부상을 크게 당했음에도 출전을 감행하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 부상은 결국 발목을 잡아 현주엽은 11월에 열린 "범태평양 대학농구대회" 대표팀에서 중도 이탈해야만 했고 1995-96 농구대잔치 초반 경기들에도 빠져야만 했다.
- 건국대가 예선탈락함에 따라 자동으로 경희대와 중앙대가 남은 농구대잔치 진출권 2장을 따냈다.
- 1995-96 농구대잔치 진출팀(가나다순): 경희대, 고려대, 명지대, 연세대, 중앙대, 한양대
2.6 1995-96 농구대잔치
1995-96 농구대잔치 항목 참조
팀명 | 최종성적 | 전적 | 비고 |
고려대 | 3위 (4강진출) | 16 - 2 | 정규리그 1위 (13-0) |
연세대 | 4위 (8강 진출) | 10 - 7 | 정규리그 3위 (8-5) |
중앙대 | 6위 (8강 진출) | 7 - 8 | |
명지대 | 8위 (8강 진출) | 7 - 8 | |
한양대 | 10위 | 5 - 8 | |
경희대 | 12위 | 3 - 10 | |
3 시즌 결산
| 연맹전/MBC배/전국체전 | 농구대잔치[10] |
우승 | 준우승 | 4강 | 6강 |
고려대 | MBC배/SBS초청/1차/2차/체전 | | | | 3위(4강) |
연세대 | | MBC배/1차※/2차 | | | 4위(4강) |
중앙대 | | 체전 | 1차 | 2차 | 6위(8강) |
명지대 | | | MBC배/2차※ | 1차 | 8위(8강) |
한양대 | | SBS초청/1차※ | 2차※ | | 10위 |
경희대 | | | MBC배/2차※ | | 12위 |
건국대 | | | | 1차 | |
※ 공동순위
4 1995년 졸업반 선수들의 행보
전희철[11] | 198 | F/C | 고려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99-02)-전주KCC(02-04)-서울SK(03-08) | 11 |
김병철[12] | 185 | G | 고려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오리온(97-98, 00-11) | 13 |
우지원[13] | 193 | F | 연세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SK(97-98,99-01)-서울삼성(01-02)-울산모비스(02-10) | 13 |
김희선[14] | 186 | G | 중앙대 | 삼성전자 | 수원/서울삼성(97-98,00-03)-안양SBS(03-05)-부산KT(05-07) | 9 |
김훈 | 190 | G/F | 연세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SK(97-00)-안양SBS(01-03)-인천전자랜드(03-05)-창원LG(04-07)-안양KT&G(06-07) | 10 |
김동언 | 195 | C | 한양대 | 기아자동차 | 부산기아(97-02)-전주KCC(02-03)-인천전자랜드(03-05)-창원LG(04-07)-인천전자랜드(06-07) | 10 |
정재헌 | 193 | C | 명지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신세기/SK(97-99,00-03)-울산모비스(03-05) | 9 |
정진영 | 184 | G | 건국대 | 현대전자 | 대전현대(97-98)-광주골드뱅크(99-00)-울산모비스(00-04)-창원LG(04-05)-인천전자랜드(04-05) | 8 |
조성훈 | 185 | G | 명지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신세기/SK/전자랜드(97-04) | 8 |
허남영 | 198 | C | 중앙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99-00)-창원LG(00-01)-서울SK(00-05) | 8 |
김용식 | 187 | G | 건국대 | 기업은행 | 광주나산/여수코리아텐더/부산KT(97-98,99-04) | 7 |
지형근 | 190 | F | 한양대 | 산업은행 | 원주나래/TG(97-98,00-05) | 7 |
석주일 | 190 | F | 연세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97-98)-서울SK(99-03) | 6 |
김광운 | 181 | G | 경희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00-01)-안양SBS(01-03) | 5 |
이현주 | 185 | F | 한양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00)-창원LG(00-02) | 5 |
정재훈 | 184 | G/F | 한양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00-02) | 4 |
이흥섭 | 200 | C | 한양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원주나래/TG(97-00) | 4 |
구장환 | 191 | F/C | 경희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97-98,99-00) | 3 |
박영진 | 191 | F | 경희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00) | 3 |
김승민 | 182 | G | 고려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9) | 3 |
배상우 | 192 | F | 성균관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9) | 3 |
박준영 | 195 | F | 고려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8) | 2 |
전병준 | 182 | G/F | 국민대 | 동양제과(창단멤버) | 대구동양(97-99) | 2 |
이주열 | 188 | F | 단국대 | 대우증권(창단멤버) | 인천대우(97-98) | 2 |
정성조 | 182 | G | 동국대 | 삼성전자 | 수원삼성(97,98-99) | 2 |
5 그때 그 선수들
항목이 개설되지 않은 4학년 선수들을 위주로 소개한다.
5.1 건국대
- 장석환(4학년,G,180cm): 대경상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 1시즌
- 대경상고 3학년때 이흥섭(200cm,C), 이종호(180cm,G)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전국대회 4강만 3차례 올랐다. 외곽슛이 좋은 단신가드로 정진영과 함께 팀 공격을 이끌었고, 1994-95 농구대잔치 출전 시 정규리그 3점슛 5위에 오르기도 했다.
- 졸업 후 최강 기아자동차에 입단했는데, 기아가 KBL 원년시즌 준비에 집중하느라 1996년도 대회들을 거의 포기하면서, 허재,
강동희 등 주전들을 대신해 출장기회를 잡았지만 별다른 활약은 하지 못했다. KBL 원년시즌 개막후엔 단한게임도 뛰지 못했고, 시즌 종료후 군에 입대했다가 은퇴했다.
- 정진영(4학년,G,184cm): 광신상고 졸. 현대전자-대전현대(97-98)-광주골드뱅크(99-00)-울산모비스(00-04)-창원LG(04-05)-인천전자랜드(04-05). 8시즌
- 김용식(4학년,G,187cm): 부산동아고 졸. 기업은행-광주 나산/골드뱅크/여수 코리아텐더/부산 KT(97-98,99-04). 7시즌
- 부산동아고 3학년때 허남영(197cm,C)과 콤비로 활약하며 추계연맹전 우승을 따냈다. 건국대 진학후 저학년때엔 장신 자원이 드문 팀 사정상 나름 장신이었던 김용식이 골밑 수비까지 맡는 경우가 많았고, 변청운, 황문용이 입학한 뒤 원 포지션으로 복귀, 장신가드로서 에이스 정진영과 함께 팀을 농구대잔치까지 이끈다.
- 기업은행과 고난의 나골코 시절 군복무 기간을 제외하고 박상욱(200cm,C), 이병률(196cm,C)과 함께 묵묵히 팀을 지켜온, 클러치 상황에 강했던 장거리 슈터였다. 커리어 대부분 식스맨으로 뛰었으며 특히 1997-98 시즌에는 우수 후보선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군복무 복귀한 뒤 3년간 하위권에만 머물고(9위->8위->7위) 재정난으로 훈련장소도 없는 팀의 최고참으로서 후배 선수들을 이끌었고, 02-03 시즌엔 플레잉코치로 뛰며 "헝그리군단" 여수 코리아텐더의 플레이오프 4강 진출에 공헌한다.
- 팀이 KTF로 매각된 2003년 은퇴하여 2009년까지 부산 KTF 코치로 추일승 감독을 보좌하였다. 2012년부터 현재까지 중국 길림성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다.
- 황문용(2학년,F,191cm)
- 변청운(2학년,C,192cm)
- 박영진(2학년,G,182cm)
- 손창환(1학년,F)
- 신현식(3학년,C,196cm)
5.2 경희대
- 박성배(3학년,G,180cm)
- 김광운(4학년,G,181cm): 삼일상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00-01)-안양SBS(01-03). 5시즌
- 돌파와 스피드, 파워를 고루 겸비한 단신 공격형 가드로 삼일상고 시절 선배 최명도와 함께 팀을 2차례 전국대회 4강(1990년 동국대총장기, 1991년 협회장기)에 올려놓았고, 경희대 진학후 1학년때부터 주전으로 뛰며 고교선배 최명도와 자줏빛 군단의 백코트를 이끌었다. 경희대 1학년이던 1992년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 U-18 대회 대표팀에 서장훈(당시 휘문고 3학년), 현주엽(당시 휘문고 2학년), 추승균(당시 부산중앙고 3학년), 김택훈(당시 홍대부고 2학년) 등과 함께 선발되어 중국에 이은 대회 2위에 오르기도 했다.
- 동양제과 창단멤버이자 주전 포인트가드를 꿰차며 첫 대회인 코리안리그를 제패하는등 활약했으나 애초 리딩보단 공격력에 장점이 있었던 선수였고, KBL 원년시즌 대구 동양 오리온스가 외인선수로 가드 토니 매디슨(188cm)을 선발하면서 후보로 밀렸다.[15] 2년차이던 1997-98 시즌엔 주전 1번을 맡아 8.2득점-1.6리바-1.9어시로 활약, 팀을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4강으로 이끈뒤, 당시 박광호 감독의 리빌딩 플랜에 따라 김병철, 드래프트로 뽑은 신인 박재일과 함께 상무에 입대한다.[16] 2년 후 00-01 시즌 김병철, 박재일과 함께 복귀하며 1시즌 전 먼저 복귀한 전희철과 함께 다시금 대구 동양 돌풍을 일으킬것으로 기대를 받았으나.... 대구 동양은 시즌내내 고질적인 포인트가드 부재 문제에 시달리면서 시즌 최하위로 추락했고, 이는 시즌전 주전 1번감으로 꼽혔던 김광운의 부진도 한몫했다. 김병철과 마찬가지로 대학내내 2번으로만 뛰던 선수에게 1번을 맡기다보니 공격은 늘 삐걱거렸고, 00-01 시즌 당시 대구 팬들은 모든 선수가 1:1만 하는 꼴사나운 농구를 봐야만 했다.[17] 시즌 종료후 안양 SBS와의 2:2 트레이드[18]를 통해 안양 SBS 스타즈로 이적한 김광운은 2년간 식스맨으로 더 뛴 후, FA 계약 결렬로 은퇴했다.
- 손규완(3학년,F,186cm)
- 구장환(4학년,F/C,191cm): 대구계성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97-98,99-00). 3시즌.
- 대구계성고 출신 단신센터. 경희대 시절 외곽슛이 좋은 빅맨 장창곤과 빅맨 콤비를 이루며 주전센터로 뛰었고 10리바 이상을 곧잘 잡아내던 탄력좋은 빅맨이었으나, 하드웨어의 한계탓에 연세대, 고려대의 엘리트 빅맨들만 만나면 존재감 자체가 없어지기도 했다;;
- 대우증권 창단멤버로 입단, 주전 4번으로 정재헌(193cm, 명지대 졸)과 함께 대우증권의 골밑을 지켰다. 1997년 KBL 원년시즌 개막전에선 우지원, 김훈과 함께 인천 대우 제우스의 선발 베스트 5로 출전하는 영광을 누리지만, 정작 시즌에서는 정재헌에 밀려 이후 계속 후보 빅맨으로만 뛰었다. 97-98 시즌 종료 후 우지원, 석주일과 함께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한 뒤, 00-01 시즌 복귀하였으나 고작 11경기만 뛴 후 은퇴했다.
- 2009년부터 현재까지 충주고등학교 농구 코치를 맡고 있다.
- 강혁 (1학년,G,187cm)
- 박영진(4학년,F,191cm): 목포상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00). 3시즌.
- 목포상고 출신의 단신센터로, 경희대 입학후 장창곤, 윤영필, 구장환 등에 밀려 출장기회가 많지않았으나, 동양제과 입단 후 센터 전희철의 블루워커 파트너로서 기회를 잡기 시작했다. KBL 원년시즌엔 무려 주전 스몰포워드로 뛰며 전문수비수로서 활약했는데, 원년시즌 평균 스틸이 1.0개에 달했다. 그러나 다음 시즌 무릎부상을 크게 당하며 출장기회가 급감, 겨우 3시즌만에 선수생활을 접었다.
5.3 고려대
- 신기성(2학년,G,180cm)
- 김병철(4학년,G,185cm): 용산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오리온(97-98, 00-11). 13시즌.
- 양희승(3학년,F,195cm)
- 전희철(4학년,F,198cm): 경복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99-02)-전주KCC(02-04)-서울SK(03-08). 11시즌.
- 현주엽(2학년,C,195cm)
- 김승민(4학년,G,182cm): 부산중앙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9). 3시즌.
- 1991년 전국체전 은메달을 딴 부산중앙고의 정통 포인트가드로 92학번 가드랭킹 3위로 꼽혔지만, 고려대 진학후 4년간 윤호영, 신기성 등에 밀려 출장기회 잡는것 조차 힘들었다. 윤호영이 졸업한 1993시즌 반짝 선발로 나와 고려대가 5년만의 대학연맹전 우승컵을 드는데 일조하지만, 이후 장신슈터로 전환한 신입생 양희승이 주전으로 올라서면서 슈팅가드였던 김병철에게 주전 1번 자리를 내주고 벤치로 돌아간다.[19] 이듬해엔 94학번 가드랭킹 1위 신기성까지 입학하면서 김승민의 출장기회는 완전히 사라졌고, TV 중계때 "점퍼입고 작전판 들고 있는" 모습이 익숙해져버린다. 동기들(전희철/김병철) 잘둔 덕에 동양제과 창단멤버로 입단했으나, 역시 기회를 얻지 못했고 98-99 시즌 대구 동양의 치욕의 32연패 때에도 출전시간을 잡지 못하며,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
- 주희정(1학년,G,182cm)
- 박규현(3학년,G,185cm)
- 박훈근(3학년,F,195cm)
- 박준영(4학년,F,195cm): 휘문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 2시즌.
- 고교 때만 해도 1년 후배 서장훈, 윤제한과 함께 휘문고의 리즈시절을 이끌었던 고교 랭킹 2위의 포워드였으나, 하필이면 입학 동기가 랭킹 1위 전희철(!)이어서 꼼짝없이 벤치워머로 있어야 했고
오성식, 이상민의 틈바구니에서 4년 내내 벤치를 지킨 김성헌이 생각나는 건 기분 탓일거다, 전희철의 국가대표 차출을 틈타 한 차례 고연전에서 서장훈과 매치업하는 기회를 잡았으나, 서장훈 앞에서 인유어 페이스 덩크를 시도하다가 보기 좋게 블락을 당하는 등의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줘 쓸놈쓸 박한 감독에게 찍혔고, 이 후 무릎부상까지 입으면서 4년 내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만 경기에 출장하다가 졸업반 때는 김승민과 마찬가지로 전희철/김병철의 오마케(...)로 동양제과 창단멤버로 입단하는 굴욕을 당한다.
- 고려대 4학년이던 1995년, 애니메이션 헝그리 베스트 파이브의 주제가를 고려대 선수들이 불렀는데, 뮤직비디오 첫 장면의 5명 중 현주엽이 있어야할 자리에 웬 첨보는 애가 노래를 하고 있어 팬들의 원성을 받았는데, 그게 박준영이었다. 걍 4학년이라 자리마련해준듯;;;
5.4 국민대
마지막 체육특기자였던 92학번 3인방이 졸업하면서 농구부가 해체되었다.
- 김형태(4학년): 상산전자고 졸.
- 전병준(4학년,G/F,182cm): 명지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9). 2시즌.
- 현 WKBL 용인 삼성 블루밍스 코치.
- 배성우(4학년,C,202cm): 대신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 1시즌.
5.5 단국대
- 김동수(4학년)
- 김정인(3학년,F,190cm)
- 이주열(4학년,F,188cm): 전주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97-98). 2시즌.
- 양준호(3학년,C,197cm)
- 곽기완(3학년,C,200cm)
5.6 동국대
MBC배에만 참가하고, 1차,2차연맹전에 모두 불참하였다.
- 정성조(4학년,G,182cm): 마산고 졸. 삼성전자-수원삼성(97,98-99). 2시즌.
- 김기정(3학년,F,186cm)
5.7 명지대
- 득점력이 엄청났던 원조 듀얼가드. 상산고(현 상산전자고) 창단 이래 최고의 에이스로 2학년때 추계연맹전 우승 및 MVP, 3학년때 협회장기 우승과 MVP를 석권했는데, 이 두번의 우승이 현재까지 상산전자고의 유이한 전국대회 우승이다. 명지대 진학 후 조성원과 "조-조 쌍포"를 이루며 약체였던 명지대를 1993년도 대학 4강(연세-중앙-고려-명지)으로 이끌었고, 1993-94 농구대잔치에서도 맹활약했지만 아깝게 전체 9위로 8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했다. 90년대 초 대학농구 판도는 연세-고려-중앙의 확고부동한 3강에 명지-경희-한양-건국대가 4중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조성원의 졸업 이후 조성훈은 경희대 최명도(180cm,G), 한양대 추승균(192cm,F), 건국대 정진영(184cm,G) 등과 함께 학교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올라서게 된다. 살짝 부진했던 3학년때는 라이벌들(경희-한양-건국)에 밀려 농구대잔치에 나가지 못했으나, 이후 절치부심하여 4학년때 다시 에이스로서 대폭발, 명지대를 1995년도 대학 4강과 1995-96 농구대잔치 8강까지 진출시킨다. 1년 후배 김태진(184cm,G), 2년 후배 표명일(182cm,G)을 받으며 슈팅가드로 이동한 조성훈은 원래 장점이었던 득점력을 맘껏 뽐낼수 있었고, 특유의 "다리벌려 폴짝슛"을 연거푸 꽂으며 우지원, 김훈이 건재한 연세대와 실업강호(였던) 삼성전자를 연파, 대학 돌풍에 합류하게 된다.
- 동기 정재헌과 함께 신생팀 대우증권의 창단멤버로 입단한 조성훈은 신생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게 되었는데, 우지원, 김훈 등 슈터들이 많은 팀 구성에 본인 득점을 먼저보던 가드 조성훈까지 끼면서 대우증권은 그저 기복심한 양궁농구팀이 되었고 실업리그 및 1996-97 농구대잔치에서 연이어 중위권의 성적에 머물고 만다. 이에 당시 최종규 감독이 KBL 원년시즌 외국인 선수로 포인트가드 마이클 엘리어트를 뽑았고, 거기에 부상까지 겹치며 조성훈은 원년시즌 벤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고 정규리그 단 6경기 출장(총 21경기)에 그친다.[20] 2년차에는 1,2번을 넘나드는 키 식스맨으로서 활약하며 경기당 20분 이상의 출장시간을 가져갔고, 우지원이 공익근무로 빠진 1998-99 시즌에는 주전 슈팅가드로서 스테이시 보스먼(190cm,G)과 백코트를 이루어 11득점-3.9리바-2어시-1.1스틸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 이때 인천 대우 제우스는 사상 최고성적인 정규리그 3위를 차지했다. "인천 신세기 빅스"로 간판을 바꾼[21] 1999-2000 시즌엔 주전 포인트가드를 맡았으나 부상으로 시즌 절반정도를 날렸고 소속팀은 시즌 꼴찌로 추락한다.[22] 이후 몸상태가 호전되지 않으면서 벤치멤버로 완전 전업, 4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 데뷔 이후 KBL 원년시즌부터 8시즌을 인천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로서, 은퇴 후 지금까지 인천 전자랜드 유소년 농구단에서 일하고 있으며 현재 유소년팀 감독을 맡고 있다.
- 만약 부상이 없었고, 득점력 좋은 1번이 선호되는 현대 농구에서 뛰었다면 좀더 대우 받았을만한 선수였다.
- 대학시절 엄청난 노안으로 유명했는데, 농구대잔치 TV 중계에서 스코어 자막이 뜨기전까지 조성훈이 있는 명지대를 실업팀인줄 착각하는 초중딩들이 꽤 있었다;;;[23] 팀메이트 정재헌까지 웬 아저씨 둘이 뛰는걸로 보일 정도였다.
- 아들인 조휘웅군은 키가 199cm(!!)로 삼선중 시절 양재민(199cm, 스페인 또레로도네스 주니어), 신민석(198cm, 군산고) 등과 함께 1995 자카르타 U-16 아시아선수권 우승멤버였으나, 고교 진학후 농구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 최훈석(1학년,F,180cm)
- 윤제한(3학년,F,192cm)
- 정재헌(4학년,C,193cm): 강원사대부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신세기/SK(97-99,00-03)-울산모비스(03-05). 9시즌.
- 193cm의 단신이지만 몸빵과 주먹, 뜬금 3점슛을 주무기로 초창기 대우의 골밑을 지키던 센터. 특히 당대 최고의 외국인 센터였던 제이슨 윌리포드의 몇 안되는 천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 93학번 윤제한(192cm), 94학번 박재일(190cm)과 함께 지키던 명지대의 골밑은 비록 높이는 낮았으나 활동량에 있어선 최고 수준이었고, 조성훈, 최훈석 등의 3점슛 실패를 롱 리바운드로 잡아내는데 귀재였다. 조성훈-정재헌이 다니던 시절 명지대는 연세-고려-중앙의 3강구도를 위협하는 팀이 되었고, 4학년때이던 1995-96 농구대잔치에선 삼성전자 등 실업팀들을 제치고 8강까지 진출했다.
- 신생팀 대우증권의 창단멤버로 입단, 1996-97 농구대잔치까지 팀의 주전센터로 뛰었고, KBL 원년시즌에도 외인 네이트 터브스(196cm)과 함께 팀의 골밑을 사수하며 KBL 원년시즌 올스타전에 출전하기도 했다. 1997-98 시즌엔 골밑 파트너가 백인센터 알렉스 스텀(202cm)으로 바뀌었지만 정재헌의 활약은 더 좋아졌고, 동시에 원래 거칠었던 디펜스는 더욱 거칠고 지저분해졌다(;;). 그 유명한 제이슨 윌리포드와의 충돌이 바로 이 시즌의 일로, 경기 중 충돌과 몸싸움까지야 이해해줄수 있다고 쳐도, 윌리포드 얼굴에 침을 뱉은 건 도를 넘어도 한참 넘는 행동이었다. 난장판 경기가 끝나고 승리팀 수훈선수 인터뷰(!!)를 하게된 정재헌은 "용병들이 다신 국내선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할겁니다"라는 인터뷰를 남겼고, 농구팬들의 분노와 실망은 엄청났다. 당시 스포츠신문
기레기 대부분이 윌리포드가 더 잘못했다는 식으로 기사를 써댄 반면, PC통신 게시판들은 정재헌의 더러운 플레이와 심판의 무능력을 비난하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사태의 원흉 정재헌은 비매너 플레이에 대한 징계로 달랑 50만원(;;)의 벌금에 1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98-99 시즌엔 장신 포워드 외인 카를로스 윌리엄스(198cm)를 파트너로 맞아 루키 센터 이은호와 번갈아가며 평균 20분 가량 출전했고, 장신 외국인선수가 외곽을, 단신 토종선수가 골밑을 맡는 다소 특이한 조합으로 인천 대우는 98-99 시즌 정규리그 3위에 오른다.[24] 공익근무요원 복무 후 복귀한 00-01 시즌엔 성장한 후배 이은호에게 밀려 후보신세가 되고, 01-02 시즌 이후엔 그 이은호마저 조니 맥도웰에게 밀리며 걍 다같이 벤치워머가 된다. 이 시점부터 대부분의 구단들이 4,5번 자리 모두를 외국인선수로 기용하는 상황이 되면서, 토종 빅맨, 특히 정재헌 같은 단신에 평범한 운동능력의 빅맨들은 4번 포지션의 테크니션 외인들(ex> 마르커스 힉스, 리온 트리밍햄 등)을 막지못하면서 아예 자리를 잃었다. 02-03 시즌 종료후 FA가 된 정재헌은 연봉 7천만원에 서울 SK 나이츠와 계약하나, 시즌 개막 전 울산 모비스 오성식과 1:1 트레이드되어 다시 이적하게 된다. 울산 모비스에서도 외인들은 물론 회춘한 노장 이창수에 마저 밀리며 출전시간이 아예 실종, 04-05 시즌 종료후 은퇴했다.
- "돌쇠"라는 별명답게 플레이가 무척 투박했다. 주전급으로 뛰던 프로 첫 3년간 평균 파울이 3.6->3.7->3.5개일 정도로 거친 수비를 자랑했고, 소집해제후 복귀시즌엔 평균 12분 출장하는데 평균 파울은 3.3개였다;;;
- 표명일(2학년,G,182cm)
- 황인성(2학년,F,185cm)
- 박재일(2학년,F,190cm)
- 장영재(1학년,C,196cm)
5.8 성균관대
- 허훈(3학년,F,186cm)
- 배상우(4학년,F,192cm): 용산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9). 3시즌.
- 약체 of 약체였던 팀 성적탓에 대학시절까진 완전 무명이었다가 동양제과 창단멤버로 실업선수 생활을 시작하면서 급 이름을 알리게 된다. 실업 첫 대회인 코리안리그에서 3-4번을 오가는 블루워커로 활약한 덕분에 전희철-김병철이 공격에 집중할 수 있었고, 창단 첫 대회에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1996-97 농구대잔치까지도 기회를 많이 얻었으나, KBL 출범 후 출장시간이 급감했고, 식스맨 자리도 박영진(191cm, 경희대 졸)에게 밀리며 3시즌만 뛰고 은퇴했다.
5.9 연세대
미국 유학길에 오른 서장훈과 팀 이탈후 현대전자에 입단해버린 2학년 김수환[25](F,191cm)이 빠지면서, 빅맨진에 공백이 생겨버렸다. 이를 메우기위해 연세대는 청소년대표팀 리딩가드였던 김택훈을 본격적으로 빅맨 포지션에 뛰게한다.
- 황성인(1학년,G,180cm)
- 김훈(4학년,G/F,190cm): 대전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SK(97-00)-안양SBS(01-03)-인천전자랜드(03-05)-창원LG(04-07)-안양KT&G(06-07). 10시즌
- 우지원(4학년,F,193cm): 경복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SK(97-98,99-01)-서울삼성(01-02)-울산모비스(02-10). 13시즌.
- 김택훈(2학년,F/C,193cm)
- 구본근(2학년,C,197cm)
- 조동현(1학년,G,186cm)
- 조상현(1학년,F,188cm)
- 석주일(4학년,F,190cm): 휘문고 졸. 대우증권-인천대우(97-98)-서울SK(99-03). 6시즌.
5.10 중앙대
- 김희선(4학년,G,186cm): 강원사대부고 졸. 삼성전자-수원/서울삼성(97-98,00-03)-안양SBS(03-05)-부산KT(05-07). 9시즌.
- 구병두(2학년,G,187cm)
- 조우현(1학년,F,190cm)
- 신종석(2학년,F,193cm)
- 이은호(2학년,C,196cm)
- 이세범(3학년,G,180cm)
- 김병천(2학년,G,180cm)
- 한규현(3학년,F,188cm)
- 허남영(4학년,C,198cm): 부산동아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99-00)-창원LG(00-01)-서울SK(00-05). 8시즌.
- 김용식과 함께 부산동아고의 1991년 추계연맹전 주역이었으나, "센터사관학교" 중앙대에 진학하는 바람에 정경호, 조동기, 안병익 등 선배들은 물론 이은호, 박도경 등 후배들에게도 밀리며 4년내내 후보였다. 오히려 실업팀 동양제과 창단멤버로 입단한 뒤 기회를 잡기 시작해, 골밑 몸싸움을 싫어하던 전희철의 골밑 파트너로서 궂은 일들을 떠안으며 이흥섭을 밀어내고 주전 센터로 자리매김 한다. KBL 출범 후에도 대구 동양의 주요 식스맨으로 자주 출전했으나, 공익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99-00 시즌부터 대구 동양도 두 외인을 모두 4,5번으로 구성하면서 출장시간이 급감한다. 00-01 시즌을 앞두고 창원 LG[26]로 트레이드 되었다가 시즌 중 다시 서울 SK[27]로 이적하였고 이후 서울 SK에서 총 5시즌을 보낸뒤 은퇴했다.
- 선수 말년을 함께 보냈던 문경은 감독, 전희철 코치와 함께 2011년부터 현재까지 서울 SK의
문응력;;;코치진을 이루고 있다.
5.11 한양대
- 정락영(2학년,G,183cm)
- 이현주(4학년,F,185cm): 대전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00)-창원LG(00-02). 5시즌.
- 이상영과 더불어 한양대의 전문 3점 슈터로 가끔씩 매섭게 터지는 슈터였다. 3학년이던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한양대가 최강 기아자동차를 격파할때 추승균과 함께 맹활약하기도 했고, 1995-96 농구대잔치 정규리그 고려대 전에서도 역시 폭발하며 대회 전승가도를 달리던 최강 고려대를 거의 잡을뻔하기도 했다. 신생팀 동양제과의 창단 멤버로 첫 참가한 코리안리그 실업농구연맹전에서 양철콤비와 함께 주전 3번으로 뛰며데뷔 무대에서 우승을 따내는 돌풍에 일조했고, KBL 원년시즌에는 대구 동양의 쏠쏠한 식스맨으로서 경기당 3점 0.84개를 꽂기도 했다. 군복무 후 복귀한 98-99 시즌엔 주전멤버들(전희철, 김병철, 김광운)의 군입대 공백 속에 대구 동양 오리온스의 세계신기록 32연패 일원으로 이름을 남겼다.(;;;)
- 이상영(3학년,F,188cm)
- 추승균(3학년,F,190cm)
- 이흥섭(4학년,C,200cm): 대경상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원주나래/TG(97-00). 4시즌.
- 대경상고 3학년때 팀을 3개 대회 4강(대통령기, 쌍용기, 종별선수권)으로 이끌었던 장신센터(2m)로, 꽤나 기대를 받으며 한양대에 입학했지만 마른 몸매와 부족한 공격 스킬 탓에 큰 영향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래도 4년간 묵묵히 한양대의 골밑을 지키며 1년 후배이자 에이스 추승균을 보좌(;;)하였고, 3학년이던 1994년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에선 대학최강 고려대를 격파하며[28] 모교에 우승트로피[29]를 가져다 주었고, 본인은 대회 MVP[30]에 올랐다. 포스트업 등은 기대할수 없었지만, 적어도 대학레벨에선 압도적인 높이 덕분에 리바운드와 블록에서 쏠쏠한 활약을 펼쳤고, 괜찮은 기동력에 간간히 터지는 중거리슛까지 갖추어 한양대 시절 4년내내 주전센터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특히 1995-96 농구대잔치 예선 한양대-고려대 전에서 경기 막판 중거리슛을 꽂으며 당시 전승팀이던 고려대를 상대로 3점차로 승리를 가져가는가 싶었으나, 경기 종료직전 전희철의 3점슛 시도를 무리하게 막다가 그만 파울;;;을 범했고, 전희철이 자유투 3개를 다 넣으며 연장전에 가서 결국 패배하기도 했다.
- 신생팀 동양제과 입단시 전희철의 좋은 골밑 파트너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대학시절 더 무명이었던 허남영(196cm, 중앙대 졸), 박영진(191cm, 경희대 졸) 등에게 오히려 주전 센터자리를 뺏기고 말았다. KBL 원년시즌에선 더 안습(ㅜㅜ)으로 함량 미달센터였던 로이 해먼즈(201cm)에 밀려 시즌 내내 달랑 1게임 출전했을 뿐이었고, 플레이오프에선 총 3경기에 나와 4강전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와의 경기에서 깜짝 출장해 결승 블록을 기록하기도 했으나 역시나 안습의 존재감을 보였다. 이후 1997-98 시즌 개막 직전 원주 나래 블루버드로 트레이드[31] 되면서 장신센터가 없는 원주 나래에서 그나마 출장기회를 잡기도 했지만, 이듬해 비슷한 스타일의 백업센터
이면서 키는 더 큰;;정경호(202cm)가 영입되면서 비중이 공기화...되며 3시즌 후 은퇴했다. 현재 원주 동부 프로미의 총괄 매니저를 맡고 있다.
- 전 국가대표 포워드 이규섭(고려대-서울 삼성)의 친형이다. 둘이 4살 터울이라 고교는 물론 대학시절에도 마주칠 일이 없었고, 동생이 KBL에 데뷔하기 직전인 99-00 시즌을 끝으로 이흥섭이 은퇴하면서 끝내 한무대에 서지 못했다.
- 강기중(2학년,G,180cm)
- 정재훈(4학년,G/F,184cm): 송도고 졸. 동양제과-대구동양(97-98,00-02). 4시즌.
- 단신 3점슈터로 역시 동양제과 창단멤버였다. 은퇴 후 WKBL 구리 금호생명 코치, 대구 오리온스 2군 코치, 코치를 거쳐 2011-12 시즌부터 현재까지 창원 LG 세이커스 코치를 맡고 있다.[32]
- 구리 금호생명 코치 시절 지도했던 홍정애(182cm)와 사제지간으로 만나 2010년 결혼에 골인, 이환우(현 부천 KEB하나은행 감독대행)-권은정(전 현대산업개발 선수)에 이어 2번째 KBL-WKBL 선수 커플이 되었다.
- 지형근(4학년,F,190cm): 광주고 졸. 산업은행-원주나래/TG(97-98,00-05). 7시즌.
- 광주고 3학년때 팀이 협회장기 4강에 오르긴 했지만 1년후배 양희승의 맹활약에 묻혔고, 대학시절엔 추승균을 제외하고 가뜩이나 무명군단이던 한양대에서도, '이런 선수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던 선수였다. 오히려 산업은행 입단 후 팀의 얇은 로스터 덕분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으며, 팀이 나래이동통신에 매각된 후엔 강병수(190cm), 김영래(192cm)의 백업으로 주로 빅맨포지션에서 출전하곤 했다. KBL 출범 후 돌풍의 팀 원주 나래 블루버드의 식스맨으로 2시즌을 뛴 후, 1998년 김병철, 김희선, 박재일 등과 함께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 제대 후 원주 TG[33]로 복귀, 평균 출장시간 10분도 안되는 만년 후보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던 중, 2002-03 챔피언결정전 6차전에서 그야말로 깜짝 활약을 펼치며 원주 프랜차이즈 사상 첫 우승에 공헌하기도 한다.[34] 이때의 활약 덕분에 지형근은 원주 TG와 재계약했으나, 같은 활약을 다시 보여주진 못했다;;;;
- 김동언(4학년,C,195cm): 송도고 졸. 기아자동차-부산기아(97-02)-전주KCC(02-03)-인천전자랜드(03-05)-창원LG(04-07)-인천전자랜드(06-07). 10시즌.
- 키는 크지 않았지만 타고난 힘에 서전트 80cm에 달하는 탄력을 자랑하던 센터로, 기대를 받고 한양대에 입학한데 비해 대학시절 크게 활약하진 못했고, 이흥섭과 교대로 출전하는 경우가 많았다.(부실한 센터진 덕분에 추승균이 4번을 봐야했다;;) 4학년때인 1995 대학농구연맹전 2차대회에선 이흥섭 대신 주전으로 나와 1경기 23 리바운드를 잡는등 활약, 대회 리바운드왕을 거머쥐었고 이 활약을 바탕으로 11월 열린 "범태평양 대학농구대회" 대표팀에 이름을 올린다.
- 부산 기아 입단후엔 클리프 리드 등 외인 선수들 등쌀에 만년 벤치신세였고, 그마저도 특급 백업센터인 김유택, 조동기에 밀리며 출장기회 잡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김유택이 은퇴한 직후인 00-01 시즌 팀에서 미국으로 빅맨 캠프를 보내주는등 기대를 받으면서 잠깐이나마 기용시간이 늘었으나, 이듬해 임영훈(193cm), 장영재(197cm) 등이 영입되면서 다시 백업의 백업 신세가 되었고, 02-03 시즌을 앞두고 전주 KCC 이지스와의 3:3 트레이드[35]에 끼어 전주로 이적했다. 이후 매 4시즌간 3번 더 트레이드되면서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36] -> 창원 LG 세이커스[37] -> 다시 인천 전자랜드[38]에서 뛰고 2007년 은퇴했는데, 경기당 10분 이상 뛴 시즌은 00-01 시즌이 유일할 정도로 존재감은 미미했지만, 타고난 힘과 몸집 덕분에 외인 수비 역량을 인정받으며 한양대 92학번 동기들 중 최다인 통산 10시즌을 뛰었고, 이는 92학번을 통틀어도 김병철, 우지원(이상 13시즌), 전희철(11시즌)에 이어 4번째로 많은 기록이다.
5.12 홍익대
- 배길태(2학년,G,182cm)
- 이석희(3학년,G,183cm)
- 김영구(3학년,G,187cm)
- 이규철(2학년,F,190cm)
- 이정환(3학년,C,195cm)
- 전일우(2학년,G,182cm)
- 홍창의(2학년,G,182cm)
- 최경훈(2학년,C,196cm)
- ↑ 당시 실로 엄청났던 대학농구의 인기에 편승하여, SBS에서 창설한 대회로, 4월 MBC배 대회 성적 기준 상위 6팀(고려대, 연세대, 명지대, 경희대, 한양대, 건국대)이 참가하였다.
- ↑ 고려대 전희철, 현주엽, 연세대 우지원이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어 1995 서울 ABC에 참가하였다.
- ↑ 나름 NCAA 1부인 산호세 주립대학교라 한국인 최초로 미국 대학농구 무대에 이어 NBA까지 밟을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이런저런 문제들로 단 한게임도 출전하지 못하고 이듬에 연세대로 복귀한다. 서장훈 항목 참조.
- ↑ 1993년 아시아 청소년선수권에서 리딩가드로 뛰면서 대한민국팀을 중국에 이어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이때 멤버가 김택훈-추승균-현주엽-서장훈 등이었다.
- ↑ 일양약품에서 만드는 그 음료 이름 맞다. 대학연맹전 최초의 타이틀 스폰서였다.
- ↑ 예선에서의 전적을 가지고 간다. A조에서는 고려대가 예선전적 2승, 한양대가 1승 1패, 명지대가 2패를 안고 갔고, B조 상위 3팀은 모두 1승 1패씩을 안고 갔다.
- ↑ 1995년도 대학농구대회들에서 전승하고, 농구대잔치까지 전승우승하게되면 딱 50연승의 기록이 세워지는 상황이었다.
- ↑ 예선에서의 상대 전적을 안고 갔다.
- ↑ 플레이오프 종료까지 전체 MVP는 김유택.
- ↑ 총 14팀 참가
- ↑ 고려대 2학년이던 1993 자카르타 ABC 대표팀에 처음 선발되어 2002 부산 아시안게임까지 10년간 대표팀에 뽑혔다.
- ↑ 실업 1년차이던 1997 리야드 ABC 때 첫 선발되어 2003 하얼빈 ABC까지 대표팀에 뽑혔다.
- ↑ 연세대 4학년이던 1995 서울 ABC 때 첫 선발되어 1996 애틀랜타 올림픽, 1997 리야드 ABC에 출전했다.
- ↑ 상무 시절 1998 그리스 세계선수권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같은해 열린 방콕 아시안게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 ↑ 근데 토니 매디슨도 정규리그 득점 3위에 오를 정도로 본인 공격 위주였던 가드란게 함정;;;
- ↑ 팀동료 전희철, 허남영, 박준영은 공익근무로 입소
- ↑ 하지만 다음시즌부터는 동국대 출신 무명 포가 한명이 합류하면서 "안구정화"가 되는 농구를 감상할수 있었다.
- ↑ 대구 동양 get: 위성우, 김도명 <-> 안양 SBS get: 김광운, 정구근
- ↑ 이후 1993-94 농구대잔치 내내 고려대 주전라인업은 김병철-양희승-이지승-전희철-박재헌이었다. 거기다 감독이 주전 뺑뺑이 전문 박한;;;
- ↑ 부상 회복 후 출전한 6강 플레이오프에서 맹활약 하며 당시 정규리그 3위팀 원주 나래를 거의 잡을뻔하기도 했다.(최종 2승 4패로 탈락)
- ↑ IMF 사태로 대우증권이 농구단을 매각, 신세기통신이 인수했다.
- ↑ 물론 조성훈의 공백보다는, 당시 팀 에이스였던 외인 카를로스 윌리엄스(195cm,F/C)의 부상공백이 컸다.
- ↑ 그땐 유니폼의 팀명도 한자로 "明知"라고 큼지막하게 써놓는 바람에...
- ↑ 하지만 플옵 6강전에서 6위팀 수원삼성의 센터 버넬 싱글턴에게 골밑을 완전히 털리며 업셋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 ↑ 부산중앙고 시절 현주엽의 라이벌로 불렸던 그 선수다. 훗날 상무 입대-의가사 전역 테크트리를 탄 뒤 복학해 춘계연맹전에 출전했으나, 현대의 이적 동의서를 발급받지 않은 사실이 발각이 되어 영구제명되었고, 훗날 유야무야 해제되었으나 그는 고교 시절의 기량을 되찾지 못하고 신인 드래프트에도 지명받지 못한 채 수련선수로 프로 무대에 도전했으나 끝내 쓸쓸히 은퇴한다.
- ↑ 정구근과 1:1 트레이드
- ↑ 중대 후배인 박도경과 1:1 트레이드
- ↑ 전희철, 현주엽이 국대에 빠졌지만, 신기성-김병철-양희승-박훈근-박재헌 등 남은 멤버들도 여전히 대학 최강급이었다.
- ↑ 고려대와 공동우승
- ↑ 역시 고려대 이지승과 공동수상
- ↑ KBL 출범이후 1호 트레이드였다. 원주 나래 get: 이흥섭, 이창욱(188cm, F) <--> 대구 동양 get: 이인규(187cm, G)
- ↑ 대구 오리온스 시절부터 김진 감독을 따라다니고 있다.
- ↑ 팀명칭만 변경되었다. 애초에 나래, 삼보, TG의 모기업은 같았다.
- ↑ 2002-03 시즌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른 원주 TG는 원주에서 열린 5차전에서 정규리그 1위팀 대구 동양 오리온스를 잡으며 3승 2패로 챔피언에 한발 다가가긴 했지만, 연장승부였던 5차전에서 주전 포인트가드 허재가 갈비뼈 부상을 당하면서 이탈했고 루키 김주성의 체력이 고갈되면서 대구에서 열리는 6,7차전의 전망은 매우 어두웠다. 6차전 게임 시작후 1쿼터 종료때까지 대구 동양이 24점을 넣는 동안 원주 TG는
양경민의 3점슛 하나만 달랑 넣는데 그치며 3:24로 압도되었고, 빡친 전창진 감독은 실책과 난사만 일삼던 주전 가드 김승기, 데이비드 잭슨을 모두 빼고 그 자리에 지형근, 신종석(193cm) 등 후보들, 그것도 포워드들만 기용하는 깽판(;;)을 놓는다. 주전들 정신교육 차원에서 후보들만 내보낸 거였는데, 5명중 가드가 한명도 없어서 2쿼터 부터 포워드 지형근이 1번을 보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런데...1쿼터 내내 주전멤버들이 고생하던 대구 동양의 지역방어를 포인트 포워드로 빙의한 지형근이 안정적인 패스웍으로 깨며 오픈찬스를 배달했고, 여기에 또다른 식스맨 신종석이 갑자기 종석타임 보여주며 3점 4방(4/4)을 꽂아넣어 게임은 급속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형근은 수비에서도 김승현의 테크닉에 뚫리지 않으면서 2쿼터 내내 대구 동양을 3점으로 막아, 순식간에 게임을 원점으로 되돌려버렸다!!! 벤치에서 반 포기상태이던 전창진 감독은 급히 주전들을 준비시켰고, 벤치에서 각성한 주전들은 3쿼터부터 다시 맹활약!!! 결국 원정경기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기적같은 상황을 연출하게 되었다.
- ↑ 전주 KCC get: 표명일, 송태영, 김동언 <-> 울산 모비스 get: 김태진, 이상영, 구본근
- ↑ 홍사붕과 1:1 트레이드
- ↑ 인천 전자랜드 get: 정진영, 김재훈 <-> 창원 LG get: 김훈, 김동언
- ↑ 시즌 중 조건없이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