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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소개하는 페이지.
목차
1 개요
AKB48은 기수별 오디션, 팀 시스템, 멤버 인기투표 총선 등의 다양한 시스템으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자매 그룹인 SKE48, NMB48,HKT48,NGT48 등에도 적용된다.
2 소속사
AKB48은 모든 멤버가 한 기획사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멤버마다 소속사가 다를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결성 초기에는 모든 멤버들의 매니지먼트 및 그룹 운영 업무를 모두 office48에 위탁하는 형태로 운영했지만, 그룹의 규모가 커질 것을 대비하여 2006년 AKS라는 별도의 회사를 세워 office48이 맡던 업무를 이관하였다[1]. 그리고 2007년 이후로 매니지먼트의 용이 및 인지도 강화를 위해서 멤버 개개인이 각각의 연예기획사에 소속되는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룹 자체의 소속사는 AKS이며, AKS는 극단, 멤버는 극단 단원이라는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극장 공연을 비롯하여 멤버의 선발 및 이동, 제명 등의 모든 결정은 AKS가 주관한다.
2012년 이후, 구체적으로는 AKB48 12기생 이후로는 거의 모든 멤버가 AKS에 소속된 형태로 바뀌고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AKS 측이 멤버들의 관리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있다. 소속사 측에서도 AKB48 현역 멤버에 대해 메리트를 못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있다. 수십 차례의 악수회, 극장 공연 일정으로 인해 개인 소속사 측에서 매니지먼트를 쉽게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컨대 그룹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그룹 소속사와 개인 소속사가 다른 체제가 각 회사에게 매우 불편한 시스템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AKB48 출신 졸업생들의 경우 사정이 다른데, 이미 AKB48 활동을 통해 인지도와 팬덤을 쌓은 상태이며 이미 졸업했으므로 AKB48로서의 악수회, 극장 활동에 묶일 이유도 없으므로 충분히 메리트가 있다. 이 때문에 2012년 이후로는 AKB48에 소속된 상태에서 개인 소속사로 이적하기보다는 AKB48을 졸업하고 나서 각자의 활동 영역에 맞는 개인 소속사를 찾는 경우가 늘고 있다. 성우를 지망하던 사토 아미나가 유명 성우 사무소인 오사와 사무소로, 이와타 카렌이 대형 배우 사무소 호리프로로 이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만년 비인기 멤버였던 모리카와 아야카 역시 졸업 후 규모 있는 모델 사무소인 '스타레이 프로덕션'으로 이적했다.
AKS가 300명에 달하는 모든 멤버를 1:1로 전담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속 사무소가 따로 없는 경우에는 불우한 대우를 받으며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한국이나 미국과 같은 수입 분배계약이 아닌 소속사에서 월급을 받는 시스템인 일본 연예계에서 좋은 사무소를 잡지 못한다는 건 치명적. 일례로 에이스였던 마에다 아츠코의 경우 정확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연봉이 4천만엔(한화로 4억 8천만원 정도이다.)정도로 알려져 있었고[2], 특별히 소속사가 정해지지 않은 비인기 멤버는 햇빛도 안 들어오는 극장에서 뺑뺑이를 돌아도 10만 엔(한화로 140만 원 정도. 일본에서 평일에 편의점 알바를 해도 10만 엔은 넘게 받는다.)정도의 월수입이 생길 뿐이다. 아키모토 사야카가 방송에서 공개한 바에 따르면 고정 월급은 (사무소마다 다르겠지만) 대략 20만엔 내외라는 듯 하다. 그 외에는 개인 활동 등에 따른 보합제(인센티브)라는 듯. 단, 미성년 멤버는 더 적다는 듯 하다. 아이돌이 용돈벌이니
한편 자매 그룹의 경우, SKE48과 HKT48은 일부 멤버를 제외하고 전부 AKS 소속, NMB48은 전부 요시모토 소속이다. SKE나 HKT의 경우 AKB와 마찬가지로 졸업 후 개인 소속사를 찾는 경우가 많다. NMB의 경우 요시모토 퇴사 후 2년간 연예계 활동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요시모토에 그대로 남는 소수의 멤버가 아니면 연예계 은퇴를 하는 경우가 많다.
3 팀 제도와 연구생
AKB48의 정규 멤버들은 A, K, B, 4로 나뉜 네 개의 팀 중 하나에 들어가서 활동한다. 각 팀에는 각 팀의 컨셉에 맞게 짜여진 독립된 공연 세트리스트가 주어진다. 이 세트리스트에 따라 아키하바라의 AKB48 전용 극장에서 공연을 한다. 정식 멤버가 아닌 연구생 멤버들은 연구생 전용 공연을 올리거나 정규 팀의 공연에 불참자가 나올 시 대역을 서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정식 멤버로 승격되면 4개의 팀 중 하나로 편입된다.[3]
2012년까지는 각 팀의 정원이 16명으로 고정되었기 때문에, 연구생들이 승격하려면 우선 정규 멤버 중 졸업자가 나오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반면 인기가 없는 정규 멤버들은 굳이 그룹을 나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4] 그대로 버텼고 그래서 정규 팀의 자리는 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연구생이었던 9~11기생들은 제때 승격을 하지 못하는 불운을 겪었다.
결국 2012년 여름 팀의 정원제를 없앴다. 팀 인원은 17명 이상이지만 AKB48의 공연 세트리스트나 싱글 곡들의 안무는 16명을 기준으로 짜여졌기 때문에, 정규 멤버 중 누군가는 자신의 포지션을 갖지 못하고 다른 멤버의 대타를 서주는 '고정 언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것은 심하게 말하면 인기가 없는 멤버들, 혹은 운영진의 마음에 들지 않는 멤버들이 제발로 안 나가자 운영진 측에서 짜낸 고육지책인 것이다.
AKB48의 연구생은 데뷔 전까지 합숙소에서 살며 데뷔만을 기다리는 우리나라 연예 기획사의 연습생들과는 달리 정식 멤버로 데뷔하기 이전에도 각종 예능 프로그램이나 공연 출연, 잡지 화보 촬영 등의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다. 비록 정규 멤버는 아니지만 여러 활동을 하기 때문에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월급도 받는다. 이런 면에서는 쟈니스의 쟈니스 주니어와 비슷하다. 몇몇 연구생은 소위 '병풍'으로 불리는 비인기 정규 멤버를 뺨치는 인기를 얻기도 한다. 이론적으로는 연구생이 비인기 정규 멤버를 앞서서 정규 멤버의 자리를 빼앗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은 연구생들 뿐만 아니라 정규 멤버들에게도 충분한 긴장을 주기 위해 고안되었다.
타시마 메루, 야부키 나코, 타나카 미쿠 등 일부 인기가 좋거나 운영진들로부터 기대를 받는 연구생들은 연구생 시절부터 센터를 서고 수 개월 지나지 않아 승격을 하는 등, 연구생과 정규 멤버 사이의 격차는 가면 갈수록 없어지고 있다. 특히 AKB48은 물론 자매 그룹 모두 팀 정원제가 해제되면서, 연구생들의 승격 기간이 짧아질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2년 넘게 연구생 신분이었던 멤버들. 링크가 안 걸린 멤버들은 승격을 하지 못한 멤버들이고, 굵은 글씨는 2015년 2월 8일 기준으로 연구생 신분인 멤버들이다.
3년 10개월: 이누즈카 아사나(SKE 4기)
3년 06개월: 이시다 유미, 우노 미즈키, 니시자와 루리나(이상 NMB 2기)
3년 04개월: 오기노 리사(SKE 5기)
3년 01개월: 오오야 시즈카
2년 06개월: 이시다 하루카, 미즈노 호노카, 타카야마 리코(NMB 3기)
2년 05개월: 우치다 마유미, 후카가와 마이코
2년 02개월: 아베 쿄카(HKT 1기)
2년 01개월: 미우라 아리사
2년 00개월: 이즈타 리나, 코바야시 마리나, 후지타 나나
팀 체제의 변천사에 대해서는 AKB48/역사/팀 구성 항목을, AKB48 및 자매그룹의 기수에 대해서는 AKB48/기수 비교표 항목을 참고.
3.1 그룹 및 팀 구성
- 총감독 : AKB48을 포함한 48그룹 전체를 통솔하는 직책. 1대 총감독은 다카하시 미나미 이며, 2015년 12월 8일 10주년 기념공연 이후 2대 요코야마 유이가 이어 총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 캡틴 : AKB48 내 각 팀의 리더. SKE48은 캡틴 대신 리더라는 명칭을 사용하며, 그룹 전체의 리더를 캡틴이라 부른다. SDN48은 팀이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 명이 그룹 전체의 캡틴을 맡았었다. [5]
- 센터/에이스 : 팀의 중심이 되는 구성원. AKB48의 에이스는 마에다 아츠코였고 마에다가 졸업한 이후 오오시마 유코로 넘어갔고, 오오시마도 졸업한 현재는 와타나베 마유가 에이스로 활동하고 있으며 각 팀에도 에이스가 따로 있다. 각 팀의 캡틴(리더)는 에이스를 겸임하지 않는 게 보통이지만 SKE48의 팀KⅡ만큼은 타카야나기 아카네가 리더와 에이스를 동시에 맡았던 적이 있었다. 원래 무카이다 마나츠가 센터 포지션이었지만 도무지 인기를 못 얻는 사이에 타카야나기가 센터까지 먹은 것. 무카이다는 인기를 점점 높여가고 있었지만, 팀셔플로 인해 팀S로 이적했다. 그런도중, 5회 총선거 이후로 스다 아카리가 급 성장 하면서 에이스 포지션을 얻었다.
- NMB48의 팀N 또한 1집 절멸흑발소녀의 센터 와타나베 미유키가 호텔사건에 휘말려 근신처분 동안 캡틴인 야마모토 사야카가 인기와 센터와 에이스와 캡틴 겸직을 취해버렸다. AKB48/총선거/4회에서 결과는 순서대로 순위를 얻었지만 반론은 NMB48에서 더블에이스로 띄워지는 두 사람이라도 상위권에 랭크되어야 한다는 NMB오타들의 열원이 그렇게 표현된 것뿐이라는 말이 많다. 다만 2월24일 대조각으로 인해 이게 모두 무색해져 버렸다.
각 팀의 캡틴과 부캡틴, 센터는 2016년 현재 다음과 같다.
3.2 조각 (팀 셔플)
조각(組閣)이란 내각을 조성한다는 뜻인데, AKB48에서는 첫 팀 셔플이 이루어진 2009년 콘서트 이름이 '조각 축제'였으며 이후로 팀의 멤버를 섞어 개편하는 것을 조각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주요 멤버의 졸업 등으로 팀의 밸런스가 깨졌다고 판단될 때 시행되고 있으나 너무 잦은 팀 셔플로 인해 팀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팀의 색깔을 확립하는데 가장 중요한 오리지널 공연 세트리스트가 나오지 않아 유명무실한 팀 셔플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각 그룹별 팀 셔플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졌다.
- AKB48 (AKB48/역사/팀 구성 문서도 참고)
- 2005년~2010년: 초대 팀(팀 A, 팀 K, 팀 B)
- 2010년~2012년: 1차 팀 셔플(AKB48 104 선발 멤버 조각 축제) (다카하시 팀 A, 아키모토 팀 K, 카시와기 팀 B, 오오바 팀 4)
- 원래 2009년 이 팀 체제로 활동을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신 공연 준비 등으로 인해 늦어져 2010년 중순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AKB48 전성기의 팀 구성으로 많은 팬들이 기억하는 팀 체제이기도 하다. 오오바 팀4는 한 발 늦게 2011년 여름 결성되었다.
- 2012년~2014년: 2차 팀 셔플(AKB48 in TOKYO DOME 1830m의 꿈) (시노다→요코야마 팀 A, 오오시마 팀 K, 우메다 팀 B, 미네기시 팀 4)
- 팀4가 일시 해체되었고, 16명의 팀 정원 체제가 사라져 극장 공연의 스타팅/벤치 멤버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그 외에도 자매 그룹간의 겸임, 해외 이적 등 많은 변화가 있었다. 미네기시 팀4는 한 발 늦게 2013년 8월 결성되었다.
- 2014년~2015년: 3차 팀 셔플(대조각) (다카하시 팀 A, 요코야마 팀 K, 쿠라모치 팀 B, 미네기시 팀 4)
- 2015년: 4차 팀 셔플(봄의 인사이동) (요코야마 팀 A, 미네기시 팀 K, 키자키 팀 B, 다카하시 팀 4)
- SKE48
- 2008년~2013년: 초대 팀 (히라타 팀 S, 타카야나기 팀 KⅡ, 우메모토 팀 E)
- 2013년~2014년: 1차 팀 셔플(SKE48 2013년 봄콘) (나카니시 팀 S, 타카야나기 팀 KⅡ, 마츠이 팀 E)
- 2013년 초, 짧은 시기에 10명에 가까운 멤버가 그룹을 떠남에 따라 팀 셔플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1년만에 대조각이 이루어졌다.
- 2014년~: 2차 팀 셔플(대조각) (미야자와 팀 S, 후루카와→오오바 팀 KⅡ, 스다 팀 E)
- NMB48
- 2011년~2014년: 초대 팀 (야마모토 팀 N, 시마다 팀 M, 카미에다 팀 BⅡ)
- NMB48의 초기 팀 구성은 1기생 위주의 팀 N에 지나치게 치우쳐있다는 평을 받기는 했지만 2013년 들어 시마다 레나, 타카노 유이, 무라세 사에 등의 멤버가 악수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등 팀 M이 어느 정도 성장했고 팀 BⅡ도 막내 팀으로서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등 긍정적인 면모도 있었다.
- 2014년~: 1차 팀 셔플(대조각) (야마모토 팀 N, 야마다→후지에 팀 M, 카미에다 팀 BⅡ)
- HKT48
- 2012년~2014년: 초대 팀 (아나이 팀 H)
- 2014년~: 반 바꾸기(HKT48 큐슈 7현 투어) (아나이 팀 H, 오오타 팀 KⅣ)
- HKT48은 2012년 팀 H가 결성된 후 무려 2년 넘게 새 팀이 결성되지 않았었다. 2014년 초 큐슈 투어 콘서트에서 팀 KⅣ를 결성하여 각 팀에 1기생과 2기생을 섞어서 배치했다. 세 달 후 48 그룹 전체 대조각에서 일부 멤버가 이적하고 연구생이 승격하여 팀이 완성되었다.
- NGT48
- 2016년~: 초대 팀 결성 (키타하라 팀 NⅢ)
- JKT48
- JKT48은 2015년 3월 일부 멤버의 팀이 변동되었으나 팀 셔플이라고 불릴 정도의 규모는 아니었다.
4 선발 멤버 및 이벤트
정규 멤버만 50여 명에 달하는 많은 인원이 한 번에 활동할 수는 없으므로, 매 싱글마다 20여 명의 선발 멤버가 선택되어 싱글의 표제곡을 부른다. 나머지 멤버들은 커플링 곡이나 기타 수록곡을 부르지만, 음악 방송에 나오는 건 타이틀곡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AKB48의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것은 이 20여 명의 선발 멤버들 뿐이다. 선발 멤버의 수는 보통 16명에서 18명으로 정해지지만 싱글마다 차이가 있다. 가장 선발 멤버가 적었던 곡은 <夕陽を見ているか?>의 10명 선발이고, 반대로 가장 선발 멤버가 많았던 곡은 <真夏のSounds good!>의 36명 선발이다. 보통 총선거 싱글에서는 선발 멤버가 늘어나고는 한다.
선발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된 것은 메이저 데뷔 싱글인 <会いたかった>이다. 기존에 발매된 인디즈 싱글 두 장에는 팀A 멤버 20명이 전부 참여했지만[8], 팀K가 생긴 이후에는 수가 많아져서 멤버들을 모두 참가시킬 수 없기 때문에 두 팀에서 멤버들을 골라서 선발로 내보낸 것이다.
선발 멤버는 자매그룹의 멤버를 포함해서 뽑는다. 즉 자매그룹을 포함한 정규팀의 멤버 153명 중에서 뽑히는 셈이다. 하지만 이 153명중에서도 선발은 오직 보통 18명까지밖에 되지 못한다. 이 선발 라인업은 자매그룹 포함 48계열 그룹들의 최고 인기멤버이자 핵심 멤버들이라고 볼 수 있다. 보통은 AKB48의 핵심멤버들과 자매그룹의 최고인기멤버 1~2명들만이 선발에 뽑히게 된다. AKB48 초창기에는 이 선발멤버가 자주 바뀌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바늘구멍같은 선발멤버도 굳어져버렸다. 그렇기 때문에 에이스 멤버 육성을 위해서 운영진이 일부러 밀어주는게 아니라면, 다른 멤버들은 선발에 진입하기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선발로 들어가는 또 다른 두 방법으로 1년에 각각 한번씩 열리는'총선거 진입'과 '가위바위보 대회'가 있다.
간혹 인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선발에서 배제되는 멤버도 있다. 예를 들어 아키모토 사야카는 다양한 예능 방송에서 활동하면서 인기 뿐만 아니라 대외 인지도도 높지만,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는 <RⅣER> 싱글 이후로 아키모토 사야카를 선발에 넣지 않고 있다. 한편 사토 아미나는 1회 총선거에서 8위에 들 정도의 인기 멤버였으나 이후 총선거로 인한 선발을 제외하면 선발에 단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4.1 총선거
총선거에 대해서는 AKB48/총선거 항목 참고.
한국의 일반인들이 AKB를 안다면 아마 총선거 때문일 것이다. AKB의 선발 멤버는 대부분의 경우 운영측에서 팬들의 지지도와 어른의 사정을 고려하여 임의로 선출하지만, 12번째 싱글인 <10年桜> 발매 이후 팬들의 참여로 이루어지는 '선발 총선거'를 시행하였다. 2009년부터 시작하여 현재 7회까지 개최.
4.2 가위바위보 대회
자세한 내용과 대회 기록은 AKB48/가위바위보 대회 항목 참고.
5 선발과 비선발의 벽 사이에서
기본적으로 1년 다섯 번의 싱글 발매 중에서, 총선거와 가위바위보 선발 각각 한 번씩을 제외하고 운영이 밀어주는 선발 멤버를 결정하는 AKB48의 선발멤버 결정 구조 상 연구생임에도 불구하고 선발에 뽑히는 행운의 멤버가 있고, 정규멤버임에도 불구하고 선발에 단 한 번도 뽑히지 못한 안습한 멤버도 있다. 첫 번째 가위바위보 싱글인 チャンスの順番이 이러한 불균형을 어느 정도 해소시켜주긴 했으나, 여전히 선발과 비선발의 넘사벽은 존재한다. 다음은 지금까지 선발에 한 번도 뽑히지 못한 AKB48 정규 멤버들. 굵은 표시는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멤버이다.
- 1기생 : 우사미 유키, 오리이 아유미, 호시노 미치루, 와타나베 시호, 마스야마 카야노, 코마타니 히토미[9]
- 2기생 : 우에무라 아야코, 타카다 아야나, 이마이 유우, 하야노 카오루
- 3기생 : 이노우에 나루, 카타야마 하루카, 사오토메 미키, 나카야 사야카, 노구치 레이나, 마츠오카 유키, 요네자와 루미
- 4기생 : 사에키 미카, 나루세 리사
- 5기생 : 코하라 하루카[10]
- 6기생 : 노나카 미사토
- 7기생 : 스즈키 마리야
- 8기생 : 전원 선발경험 없음
- 9기생 : 모리 안나
- 10기생 : 이즈타 리나, 후지타 나나, 나카마타 시오리
- 11기생 : 코지마 나츠키, 스즈키 시호리, 모리카와 아야카
- 12기생 : 오오모리 미유
- 13기생 : 오오시마 료카 제외 전원
- 14기생 : 우치야마 나츠키, 하시모토 히카리, 마에다 미츠키
사실 14기생은 삼총사에게 푸쉬가 몰려서 나머지 멤버들은 인기를 얻는건 고사하고 주목 받기도 힘든 상황이긴 했다. - 15기생 : 이이노 미야비, 이치카와 마나미, 오오카와 리오, 코미야마 하루카, 사토 키아라, 타츠야 마키호, 타니구치 메구, 후쿠오카 세이나
- 드래프트 및 기타 오디션 선발 멤버 : 카와모토 사야 제외 전원
6 졸업 제도
AKB48의 시스템은 선배 구성원들이 활동하다가 졸업한 자리를 후배 구성원들이 채워서 활동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 제도의 장점은 기존 그룹의 틀을 깨지 않고 반영구적으로 그룹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종신독재 4기까지의 모닝구 무스메는 실제로 졸업 제도를 통해서 그룹의 인기를 오래 지속해나갔다.
그러나 AKB의 경우 이 졸업 제도가 2010년 이후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왜냐면 졸업을 하는 멤버가 없기 때문. 아무리 그룹 내에서 인기가 없다고 해도 일단 AKB48의 멤버라는 사실 자체가 연예 활동에 득이 되면 되었지 실이 되지는 않기 때문에 본인이나 소속사[11]나 쉬이 졸업을 하지 않으려 한다.
실제로 AKB가 본격적인 인기를 얻은 이후 한동안 AKB에서 세대교체 문제가 제기되던 2012년 중반까지 AKB를 자기 발로 떠난 멤버는 오노 에레나, 오쿠 마나미, 그리고 마에다 아츠코 3명뿐.[12]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SDN48을 만들어서 나이가 있는 멤버들을 이적시켰지만 SDN48은 무리한 성적 노출로 인해 이미지가 나빠지고 대중은 고사하고 오타쿠들의 지지도 받지 못했다. 결국 사실상의 정리해고 식으로 해산.[13]
선배들이 나가질 않으니 후배 구성원들에게 돌아오는 기회는 적을 수밖에 없다. 결국 AKB48 운영진은 정규 구성원 수를 늘려서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는 고육지책을 마련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AKB48의 4번째 팀인 팀4였고, 팀4가 해체된 이후에는 팀당 16인의 멤버제한을 해제하여 연구생들이 졸업 멤버의 빈자리와 무관하게 승격할 수 있도록 했다.[14]
사실 졸업 제도에서는 어떻게 해도 초기 구성원보다 후기 구성원이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의 아이돌 지망자들도 노기자카46이나 HKT48 1기 오디션을 보려고 하지 AKB48 13기 오디션을 굳이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15] 7기와 9기가 2, 3기의 비선발 멤버보다 인기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하냐고 물을 수 있는데, 걔네가 2, 3기였으면 미디어 선발은 유이항 파루루 찐빵 이런 멤버들이었을거다.
그리고 졸업 시스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팬들이다. AKB48의 팬덤은 서로 경쟁하는 총선거 시스템 탓에 특이하게도 다른 아이돌의 팬덤보다 개인 팬 성향이 강하다. 즉 대부분의 팬들은 AKB48이라는 그룹 자체가 좋다기 보다 그 안에 있는 특정 멤버를 좋아하는 개인팬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그룹을 졸업하고 새로운 멤버가 들어오는 것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끝까지 남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세대교체가 되어서 그룹이 유지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룹이 망하더라도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가 남아주는 것을 팬들이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2013년 들어서는 고참급 멤버들의 졸업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타노 토모미, 시노다 마리코, 아키모토 사야카등 선발급 멤버들부터 니토 모에노, 나카야 사야카같은 중진급 멤버들도 줄줄이 졸업했다. 졸업한 멤버들 대부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아이돌로서 활동하는데 한계가 왔기에, 여배우나 가수, 성우 등 다른 직업으로 전업하기 위해 떠난 경우가 많았지만, 물론 개중에는 기나긴 병풍생활에 견디다 못해 졸업을 택한 경우도 있었다[16].
그러나 본진인 AKB에서는 졸업자들이 나와도, 자매그룹에서 더 많은 인원들이 보충되고 있는 상황이라 예전보다 AKB선발의 문턱은 점점 더 높아지고만 있다.[17]
7 악수회
AKB48/악수회 항목 참고.
8 극장
- AKB48/세트리스트 문서도 참고.
AKB48의 전용 극장이 위치한 아키하바라 돈키호테 건물.
AKB48의 가장 큰 콘셉트는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이다. 이 콘셉트의 중심이 되는 것은 매일 상시 공연이 진행되고 멤버들이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전용 극장이다. AKB48과 그 자매 그룹들은 각자 본거지에 전용 극장을 운영하는데, 일부 휴관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 공연을 진행한다. 입장료는 일반 남성 3,100엔(한화 38000원 정도) / 일반 여성 2,100엔(한화 27000원 정도) / 초등학생 ~ 고등학생 2,100엔 / 미취학 아동 무료[18]으로, 공연이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은 넓게 잡아도 2008년 정도까지나 해당되었던 말이고 AKB48이 국민적 아이돌이 된 2013년 현재에는 극장 공연을 보기가 매우 힘들다. 극장의 규모는 각 자매 그룹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3백석 정도로, 콘서트장중 가장 작은 사이즈인 '라이브 하우스'수준에 불과한데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은 넘쳐나기 때문에, 신청을 해놓고 당첨이 되어야 표를 구할 수가 있다. 비교적 경쟁률이 낮은 연구생 공연도 당첨되기는 하늘에 별따기. 해외 관광객들을 위해서 원거리 특별 추첨 제도도 운영하고 있지만 이것도 결코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만나러 갈 수 없는 아이돌'이라는 비아냥도 듣는다. 그 점을 고려해서 DMM이라는 웹사이트에서 유료로 인터넷 중계도 한다.
AKB48의 주요 컨셉 중 하나가 극장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AKB48의 주 수입원도 극장인 건 절대 아니다. 사실 전용 극장에서의 공연이라는 시스템은 다카라즈카정도 수준이 아니면 애초에 흑자를 볼 수가 없는 구조이다. 전용 극장의 규모는 200석에서 300석 사이의 작은 규모이고 관람료도 2~3천 엔에 불과해서, 매일 극장을 꽉 채워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입장료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수익이 적은 것에 비해 공연에 들어가는 비용은 매우 크다. 공연 한 번에 투입되는 100여 명의 스태프에 대한 인건비, 극장 공연에 참가하는 멤버에게 지급되는 공연 수당[19]이 매번 들어간다. 여기에 극장의 유지 보수비와 임대료도 감안해야 한다. 게다가 같은 공연만 계속해서 반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새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데, 새 세트리스트를 준비하려면 곡, 가사, 의상, 스튜디오 녹음, 안무, 조명 등 돈이 들어갈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48그룹 극장 총지배인 토가사키 토모노부에 따르면, 한 세트리스트를 제작하는데 3000~4000만 엔 정도가 든다고 한다[20]. 객관적으로 봤을 때 수익을 보고 하는 장사라고 보기가 힘들다. 굿즈 판매, DMM 중계 수익 등으로 적자를 메꾸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수익이 얼마 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AKB48은 데뷔 초기부터 매일 극장 공연을 했을 뿐만 아니라 4개월에서 6개월마다 새 세트리스트를 공개했다. 당시의 AKB48로서는 당장 수익을 내는 것보다는 세트리스트를 빨리 교체함으로써 오타쿠들이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컨텐츠를 제공하고, 극장 공연을 통해 멤버들의 이름을 오타쿠들에게 인지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팬덤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AKB는 싱글 10만장대를 찍던 시절에도 흑자가 아니었고 SKE48의 경우 <パレオはエメラルド> 즈음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AKB48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한 2010년부터는 극장 공연보다는 CD, DVD, 방송 출연, 외부 콘서트 등 활동 범위가 넓어졌고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경로도 많아졌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극장 공연이 후순위로 밀려났다. 2~3년 넘게 같은 공연을 반복하는 팀이 있는가 하면 오리지널 공연을 아예 받지 못한 팀도 있다. 반면 한 번 발매하면 100만 장 넘게 팔려나가는 CD 싱글에 대한 투자는 커져서, 커플링이 4~5곡으로 늘어나는 등 음반의 규모가 매우 커졌다.
팬들은 아키모토 야스시의 작업 스케줄 때문에 밀려서 극장 공연 발표가 늦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극장 공연이 안 나오는 하나의 원인일 뿐이다. 극장 공연을 만드려면 의상 디자인, 편곡[21], 조명 연출 등 돈이 들어갈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여기에 외주 작사가까지 쓰면 돈이 더욱 들어간다. 반면 극장 공연을 새로 써도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22]
사실 냉정하게 판단해보면, 똑같은 세트리스트만 주구장창 울궈먹어도 오타들은 표를 못 구해 아비규환인 상태니 운영측에서 이를 개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거나, 혹은 우선순위릉 저~~~뒤로 제쳐두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골이라고 욕해도 언제나 극장은 만석이다 못해 티켓을 구하지 못하고 주변을 배회하는 오타쿠틀이 한트럭이니까.
극장 공연을 보는 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일로, 가벼운 마음으로 아키하바라에 들러서 표만 끊으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선 별도의 예매 사이트에 가입을 한 후, 보고자 하는 공연에 관람 응모를 해야 한다. 응모를 해서 당선이 되면 당일 공연 시작 전 30분 전까지 극장에 가서 신분증 등을 통해 본인 확인을 한 후 티켓을 구입한다.
다만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이, 극장구경을 가면서 뮤지컬이나 음악방송 수준의 무대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극장공연의 퍼포먼스 수준은 중학생 학예회와 엇비슷한 정도다. 애초에 48사단 대부분의 멤버가 '가수'나 '댄서'로서 제대로 된 스펙을 갖춘 경우가 없고 운영의 트레이닝이라는 것도 그저 모아놓고 각자 안무를 단순암기시키는 것 뿐이다[23]. 당연히 노래도 립싱크가 대부분. 그냥 어린 소녀들이 방긋거리면서 공연하는 걸 구경한다는 데 의의를 두는 게 좋다.
9 드래프트
AKB48/드래프트 항목 참고.- ↑ office48은 이후 일반적인 연예기획사로 업무를 전환. 시마다 하루카, 미야자와 사에 등의 AKB48 멤버를 비롯한 여러 연예인들이 office48의 자회사인 플레이브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 있다.
- ↑ 월급은 일정하지가 않다. 기본급 + 인센티브제라서 많이 활동하면 많이 나오게 되고, 적게 활동하면 적게 나오게 된다.
- ↑ 본래는 연구생도 '팀 연구생'이라는 소속이 있었으나, 2011년 팀4가 결성된 이후 '팀 연구생'이라는 이름은 사라졌다.
- ↑ 아무리 그룹 내 비중이 적다고 해도, AKB48의 멤버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과 무명 연예인과의 차이는 크다.
- ↑ SDN48 리더는 AKB48 팀 K출신 노로 카요.
- ↑ 2014년 2월 24일 대조각축제에서 새로 생긴 직책
- ↑ 2016년 3월 4일 미야자와 사에 졸업 콘서트에서 부활한 직책
- ↑ 단 <スカート、ひらり> 싱글에서는 일곱 명의 멤버에게만 솔로 파트가 주어졌다. 이 일곱 명의 멤버를 선발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서 선발은 아니다.
- ↑ 선발 제도는 会いたかった 싱글에서 처음 도입되었다. 그 이전에 발매된 인디즈 싱글 두 장은 1기생 21명 전원이 노래를 부르긴 했지만, 그 때는 선발 제도 자체가 없었다.
- ↑ SDN48 시절을 포함하면 선발 경험이 있다.
- ↑ AKB48은 구성원들마다 소속사가 다 다르다. 이 때문에 각 구성원의 소속사와 AKB48을 운영하는 AKS 사이에 마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하다.
- ↑ 하지만 이것도 마에다를 제외하면 자발적이고 발전적인 의미의 졸업이 아니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노 에레나의 경우에는 남자친구(소문으로는 쟈니스 소속 A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AYABIE라는 비주얼락 밴드 보컬이었다. 현재 해산.)와의 비밀교제가 적발되어 해고되었다는 게 지배적이고(BUBKA에서 운영측이 졸업 후 교제 프리쿠라와 파파라치가 도는 걸 암묵적으로 용인하였고, 실제로 넷상 유출 사진에서도 남자와 같은 옷을 입은 것이 목격되었다. 참고로 저 부브카라는 황색지는 모 유명 성우의 스캔들을 파헤친 잡지기도 하다.), 오쿠 마나미는 역변으로 인한 인기 하락과 본인의 모티브 부족으로 졸업크리.
자세한 건 가위바위보 리얼 영상을 보세요 - ↑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일본의 아이돌 오타쿠들은 지나친 성적 노출을 꺼려하는 편이다. 만화영화 오타쿠와는 또 성향이 다르다.
- ↑ 하지만 기존 극장공연의 세트리스트는 여전히 16인 기준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인기 멤버 16인 이외에는 언더 멤버로 분류되어 대타로만 들어갈 수 있다. 언더 멤버는 어찌보면 공연 출연 여건이 보장되는 연구생보다도 불리한 위치.
- ↑ 이 때문에 AKB48 오타들은 도쿄 외 지방을 둔 SKE, NMB, HKT에 대해선 어느 정도 호의적이나, 노기자카46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도쿄에서 활동을 펼치기 때문에 두산 베어스 갤러리 사람들이 엔씨 다이노스를 '엔씨foot'이라 부르는 것처럼 정말 좋지 않게 본다.
- ↑ 소속사 빵빵한 인기멤버들의 경우 AKB에 남아있는 것 보다는 졸업해서 개인활동에 매진하는 편이 훨씬 낫다. 일단 마에다 아츠코가 나름 성공적으로 여배우로 안착한 상황이라, 다른 멤버들도 졸업에 대한 공포가 많이 사그라든 모양.
- ↑ AKB48 소속이 되어 선발멤버가 되면 다른 그룹 선발멤버들 보다 좋을지는 모르겠다만 SKE,NMB,HKT도 단순히 지방 아이돌이 아니라 메이저 아이돌이기 때문에 AKB48 선발멤버란 메리트가 그리 크지도 않다.
- ↑ 미취학 아동 1명당 일반인 보호자 1명이 동석해야한다.
- ↑ 인기멤버와 비인기멤버의 공연수당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인기멤버는 개인의 스케쥴 시간을 빼서, 그 시간에 극장공연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그만큼 수당을 챙겨준다고.
- ↑ 뭐가 그렇게 많이 드냐 싶겠지만, 한국 아이돌이 디지털 싱글 하나 낼 때도 천만 원 단위는 거뜬히 들어간다. AKB48 극장의 경우는 곡만 해도 16곡에 의상도 16명*3~4세트고 안무도 복잡한 군무로 짜야되니 돈이 만만치 않게 들어갈 것이다.
- ↑ 곡이 1000곡이나 쌓여있다고 해도 뼈대, 즉 멜로디만 있는 것이다. 실제 극장 곡으로 쓰려면 편곡을 거쳐야 한다.
- ↑ 사실 극장공연으로 수익을 내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티켓가격을 올린 다음 공연빈도를 확 늘리고 세트리스트별 곡들을 셔플하고 싱글 발표곡들을 섞어서 짜깁기한 개량형 셋리를 늘려 레파토리를 불리면 된다. 혹은 다카라즈카처럼 아얘 전용극장을 몇천명이 수용 가능한 홀급으로 키우거나. 문제는 도쿄에 몇천명 수용가능한 전용공연장을 만들거나 임대하는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대부분의 멤버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인 이상 극장공연 횟수를 늘리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티켓가격 인상의 경우에도 팬들의 큰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으니...
- ↑ 막말로 오타들이 '저 애는 퍼포먼스가 좋아!'라고 극찬하는 멤버도 한국인 기준으로 볼 땐 흔해빠진 고등학교 댄스동아리 수준인 경우가 허다하다. 일본은 한국처럼 아이돌의 가수로서의 트레이닝에 무게를 두지 않는데다 48사단은 일본에서도 그 정도가 심하기로 이름난 곳이라 엄청난 하향평준화가 이뤄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