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 마스터 시스템

세가 마스터 시스템으로 발매된 게임소프트의 목록에 대해서는 세가 마스터 시스템/게임 목록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3세대 게임기
패밀리 컴퓨터SG-1000슈퍼 카세트비전재믹스
SG-3000
세가 마크 III아타리 7800아타리 XEGS
세가 마스터 시스템
width=30%
가정용
width=60%width=90%width=50%
width=30%width=30%
휴대용
width=20%width=50%
확장형
width=40%width=55%
미출시교육용
넵튠#s-3플루토#s-12width=45%


일본어 : セガ・マスターシステム
영어 : Sega Master System
약칭 : SMS


일본판 세가 마크 III

북미에서 발매된 세가 마스터 시스템 & 파워 베이스

마스터 시스템 II (북미판)

1 개요

1985년 세가에서 내놓은 8비트 게임기. SG-1000의 후속기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모델은 문서명이기도 한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지만 본래 이 기종의 이름은 '세가 마크 III'였다. 기본적으론 동일한 시스템이므로 함께 설명하며 세가 마크 3는 이 문서로 리다이렉트된다.
비슷한 시기에 닌텐도 패미컴과 경쟁했다. 성능 자체는 2년가량 늦게 나왔던만큼 패미컴보다 우위에 있었으나,[1] 서드파티 영입면에서 크게 밀리면서 사실상 상대가 되지 못하였다.[2] 당시 세가는 그야말로 현금 장사이던 아케이드 시장이 주력으로 가정용 콘솔은 어디까지나 부업 취급이었다. 그래서 서드파티 영입에도 닌텐도만큼 적극적이지 않았고, 콘솔 점유율 경쟁에도 그다지 열의가 없었다. 심지어 당시에는 타사에서 자발적으로 세가 쪽에 소프트웨어 컨버젼과 관련된 계약을 상담하러 찾아가면 세가 담당자가 시큰둥하더라는 증언이 있을 정도. 여기엔 당시 소프트웨어 라인업을 가능한 세가 자신들의 손으로 채운다는 이상하고 미련한 원칙과 함께 콘솔 사업부를 깔보던 아케이드 사업부의 영향도 있었다는 얘기가 있다[3].그리고 이렇게 자급자족으로 자사 하드를 채우려는 방식은 닌텐도가 물려받게 된다 아무튼 메가드라이브로 콘솔 사업에 적극적이 되기 이전의 세가의 콘솔 사업은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괴이한 행태를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세가를 좀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라는 것을 다들 안다

2 버전

2.1 세가 마크 III

1985년 10월 20일 발매. '마크 III'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 기기가 SG-1000, SG-1000 II에 이어 나온 세가의 3번째 게임기였기 때문. 애초에 이 제품의 형번은 SG-1000M3로 SG-1000 시리즈임을 명확히 하고 있지만 성능면에서는 SG-1000과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파워업하여 별도의 기기로 인정받는다. 컴퓨터로 따지면 MSX1과 MSX2의 관계를 생각하면 대강 비슷하다. 제품의 외형 역시 SG-1000 II의 디자인을 답습하고 있다.

SG-1000의 설계를 강화하여 CPU, 사운드 계통은 그대로 사용하고 그래픽을 집중적으로 강화하였다. 원래 SG-1000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의 VDP인 TMS9918A를 사용했는데 이 칩은 저렴한 가격에 그럭저럭 쓸만한 성능을 내주는 비디오칩이라서 MSX, Sord M5, 토미 퓨타 등 당대의 게임 퍼스컴들에 널리 채용되기는 했으나 경쟁기였던 패미컴에 비하면 적은 컬러, 제한된 스프라이트 기능, 하드웨어 스크롤의 부재 등으로 눈에 띄게 열세를 드러냈다. 이에 세가는 야마하에 주문하여 TMS9918A과 상위호환성을 가지면서 TMS9918A가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한 315-5124라는 칩을 세가 마크 III에 장착했는데 이로서 SG-1000과의 호환성을 유지하면서 패미컴과 경쟁할 수 있는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다.

SG-1000으로 나왔던 소프트웨어를 모두 사용할 수 있었고 당시 세가가 밀었던 카드형 롬 매체인 '마이 카드'[4] 슬롯도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위에서 이야기한 '세가 게임기의 게임은 세가가 만든다'는 괴상망측한 서드파티 배제 정책 덕분에 소프트웨어는 패미컴에 비해 크게 부족했고 이는 시장에서 패미컴에게 압도적으로 참패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다만 반대로 애프터 버너 2, 아웃런, 시노비 등 아케이드에서 히트했던 세가의 게임은 마크 III로만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세가는 아케이드를 통해 고정팬이 많았던 업체였기 때문에 저런 엉터리같은 정책과 소프트웨어 부족에도 불구하고 망했어요까지는 가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당대의 세가가 가진 저력을 보여주는 일면이기도 하다.

2.2 세가 마스터 시스템

1986년 6월에 북미 지역에 발매된 세가 마크 III의 개량버전. 1987년 10월에 일본에도 역수입되어 출시되었다. 외형은 마크 III와 크게 다르지만 내부적으로는 크게 차이가 없으며, 일본판은 옵션으로 장착된 FM 음원 기능을 내장시키고 연사 기능을 추가한 정도의 마이너 체인지 버전이다. 북미판과 이를 베이스로 한 수출판에는 FM 음원 기능이 빠져있다. 이름인 '세가 마스터 시스템'은 패밀리 컴퓨터북미판 명칭인 '닌텐도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의식해서 지은 이름으로, 마스터 시스템이 원래 수출용으로 나온 기종임을 알 수 있다. 국제적으로 유명한 버전도 이 버전이라서 세가 마크 III보다는 마스터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마스터 시스템의 북미/유럽판과 일본판은 팩 생김새와 팩을 꽂는 슬롯이 다르다. 국내의 삼성 겜보이는 해당 문단에서 후술하겠지만 언제? 일본판 사양에 가깝게 되어 있어 카트리지 슬롯도 북미/유럽판이 아닌 일본판을 따라갔다. 또한 북미나 유럽판의 경우 몇몇 게임 타이틀 일러스트는 심플한 느낌을 자랑한다. 마스터 시스템을 쓰는 유저도 잘 모르던 사실이지만, 팩이 아닌 카드(마이카드라고 불렀다)로 게임을 구동할 수도 있었다. 국내에도 마이카드 포맷의 게임이 발매되기도 했지만 일본에서도 망한 마이카드가 국내에서 흥할리가 없으니 그리 보기 쉽지는 않았다.

롬팩을 꽂지 않고 게임기를 가동시킬 경우 전원을 끄고 롬팩을 꽂으라는 일본어 메시지가 3D 영상과 함께 뜬다(이때 나오는 배경음악은 스페이스 해리어의 배경음악). 희한하게도 정발된 겜보이에서도 일본어 메시지 부분은 수정되어 있지 않았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던 걸까? 게임팩을 빼앗긴 국딩들은 부모님 없을 때 이걸 보면서 회한의 시간을 보내야했다. 그리고 옛날에는 이걸 오래 보고 있으면 숨겨진 게임이 나온다는 떡밥이 돌았다.[5]

2.3 세가 마스터 시스템 2

1990년에 발매된 컴팩트 버전. 크기가 줄어들고 리셋버튼과 아무도 안쓰는 마이카드 슬롯은 제거되었다. 미국, 유럽, 한국, 브라질 등지에만 발매되고 일본 국내에서는 출시되지 않았다. 1990년이면 이미 세가가 메가드라이브에 올인하고 있을 때라...

2.4 기타

132개의 게임을 내장하고 외장을 변경한 '마스터 시스템 에볼루션', 30개의 게임을 내장하고 컨트롤러와 본체를 일체화시킨 '마스터 시스템 포터블' 같은 제품도 있지만 브라질에서만 출시되었다. 세가의 브라질 대리점 역할을 하는 기업인 '테크토이'에서 발매.

3 사양

CPUNEC μPD780C-1 8비트 3.58MHz (NTSC) / 3.55MHz (PAL)[6]
메모리메인 메모리 : 8KB 8비트 3.03MHz XRAM/SRAM
비디오 메모리 : 16KB 16비트 5.37MHz(NTSC) / 5.32MHz(PAL) VRAM
그래픽야마하 YM2602(세가 315-5124) 10.74MHz[7] 또는
NEC UPD9004G(세가 315‑5246) 10.74MHz[8]
사운드야마하 YM2413[9]
Texas Instruments SN76489 3.58MHz[10]
사용 매체8KB~32KB(마이 카드)
128KB~4MB(롬 카트리지)
크기318㎜×145㎜×52㎜(세가 마크3)
365㎜×170㎜×70㎜(세가 마스터 시스템)
256㎜×172㎜×81.5㎜(세가 마스터 시스템 2)

전반적으로 SG-1000의 하드웨어를 확장시킨 설계. 64색중 32색 동시출력으로 인해 그래픽 성능은 당대의 8비트 게임기 중에서 상당히 뛰어난 편이며 FM 사운드 역시 아케이드 기판이나 가정용 컴퓨터의 확장음원에서 사용하던 것을 들고 왔기 때문에 경쟁기인 패미컴보다 그래픽/사운드 성능이 우월했다. 발색 능력이 패미컴 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8비트 게임이면서도 스프라이트에 16비트 처럼 그라데이션 처리를 한 것이 많았고, 그 덕분에 8비트에서 16비트로 넘어가는 과도기 단계의 그래픽을 가진 게임이 많았다.

다만 FM 사운드의 경우 설계미스로 게임 카트리지에서 FM과 PSG 채널을 동시에 사용하면 PSG 측에 노이즈가 끼는 현상이 있어 게임에서는 동시에 사용하지 않았다고 한다.[11] 거의 유일하게 동시 사용한 것은 바이오스에 내장된 스페이스 해리어의 BGM이라고. 비슷한 사운드 계통(YM2413+PSG)을 사용했던 MSX의 경우에는 FM+PSG를 사용한 게임이 흔히 보이는데 비해 대조적인 현상이다.[12]

4 해외에서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

콘솔 게임기의 주 소비 국가인 일본과 북미에서는 당시 패미컴(NES)이 대박을 치고 있었으므로 세가 마스터 시스템은 별로 성공을 못 거둔 편이다[13]. 대략 시장 셰어의 10% 정도를 차지했다고. 그러나 유럽, 남미 등의 지역에서는 크게 성공하여 전세계적으로는 1000만대 넘게 팔아서 세가 새턴보다 세계 누적 판매량이 많았다! 유럽시장은 당시 닌텐도 유럽지사가 시장을 거의 방치하다시피 했던 상황이라서 이 게임기가 무혈입성을 했던 것이고[14] 남미에서는 브라질에서만 약 500만대를 팔아치우는 기염을 보였는데 브라질은 자국산 상품을 보호 하기 위해 수입 제품에 상당한 관세를 부과 했으나, 세가는 브라질 현지 기업인 Tectoy와 제휴하여 브라질 현지에서 생산을 하여 브라질산 제품이라고 판매하여 관세를 피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브라질 시장에서 닌텐도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해외 시장에서의 성공 덕분에 손자뻘인 세가 새턴을 넘어 증손자뻘인 세가 드림캐스트가 나오기 직전인 1997년까지 12년간 공식적으로 신작 게임들이 출시 되었는데(1997년에 와서는 90%정도가 브라질에서 출시되었다), 이는 닌텐도 패미컴(1983년~1994년) 보다도 신작 게임이 발매되었던 기간이 더 긴 것이다.

5 한국에서의 세가 마스터 시스템

5.1 오크스판 세가 마크 III

1988년 11월에 '한국오크스'라는 회사에서 세가 마크III를 국내에 수입 판매한 적이 있었다. 일부 컴퓨터 잡지 등에 광고를 내기도 했지만 게임 콘솔에 대한 인식이 아직 부족하던 시절이었고 홍보와 유통망의 부족으로 별로 팔리지 않아서 몇달만에 금방 잊혀졌다.# 이때는 게임기 보다는 키보드[15]를 주변기기로 내세우면서 게임도 할 수 있는 가정용 8비트 PC로 홍보 하였으나, 가정용 8비트 시장은 이미 MSX나 애플2 호환기들이 꽉 잡고있다보니... 어찌보면 마케팅 포인트를 잘못 잡은 셈. 그로 인하여 한국오크스판 세가 마크III는 현재 굉장한 레어 아이템. 그리고 그 오크스판 세가 마크III의 국내 유통사는 '하이콤'이라는 업체인데, 이후 삼성전자 게임의 국내 총판으로 전환했다.

국내 정발 게임팩 중에서 삼성마크가 아닌 세가마크가 붙은게 오크스판 팩이다.

5.2 삼성 겜보이

국내에서도 세가 마스터 시스템이 정발되었다. 삼성전자에서 1989년 4월에 삼성 겜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해서[16] 대만산 패미클론이 범람하기 전까지 한때 모든 게임 콘솔을 겜보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히트했다. [17] 삼성 겜보이는 일본판 세가 마스터 시스템을 베이스로 만들어져서 카트리지 단자가 일본판과 동일하며 자동 연사버튼과 3D 안경 단자를 탑재하고 있으나 FM 음원 지원은 빠져 있다.

당시의 한국 게임기 시장은 대우전자의 재믹스가 1985년 출시된 이래 장기간 시장 지배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홍콩이나 대만을 통해 패미클론이 소량 들어와있는 상태였다. 그 밖에도 PC 엔진, 세가 마크 III도 들어와는 있는 상태였지만 여기까지 가면 그야말로 레어템. 이런 상황에서 삼성이라는 대기업을 통해 정식발매된 겜보이는 시장을 크게 뒤흔들었고 많은 회사들이 게임 콘솔 사업에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오죽하면 당시의 경쟁사였던 현대전자가 삼성 겜보이의 성공에 자극받아 북미판 NES를 들여오면서 묻어가기를 시전해서 '현대 컴보이'라고 작명을 했을 정도.


당시 삼성 겜보이 광고. 오라! 오라! 겜보이다!

겜보이가 시장에서 성공하자 삼성전자에서는 환타지 스타, 화랑의 검(원제: 검성전), 알렉스 키드 등의 게임들을 한글화해서 발매를 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고[18] 게임의 유통도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졌다. 후계기인 메가드라이브가 나오자 자국인 일본에서는 세가 마스터 시스템용으로 더 이상의 신작이 발매되지 않았는데, 마스터 시스템이 아직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남미와 유럽에서는 대마계촌이나 소닉 더 헤지혹 1같이 메가드라이브로 발매된 게임을 마스터 시스템으로 다운이식해서 발매하였고 그것을 삼성전자에서 수입하여 국내에 출시하기도 했다.

국산 게임의 여명기에 가장 국산 게임이 활발하게 개발되었던 게임 콘솔 역시 겜보이였다. 척박한 환경이었지만 아기공룡 둘리, 개구장이 까치, 장군의 아들, 수호천사 등 국내에서 자체 개발한 게임들이 나오기 시작했었다. 동시대의 일본 게임들에 비하면 퀄리티가 부족했고 장풍 2처럼 노골적으로 유명 게임들을 표절한 티가 나는 흑역사급 물건들도 있지만 현재 우리 게임산업의 뿌리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다.

5.3 삼성 겜보이 2/알라딘보이

겜보이의 성공으로 삼성전자는 이듬해인 1990년, 메가드라이브도 '삼성 수퍼 겜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했고 일본에서는 발매되지 않았던 컴팩트 버전인 마스터 시스템 2도 '삼성 겜보이 2'라는 이름으로 들여왔는데 겜보이 2에는 알렉스 키드 한글판이 내장되어 있던 것이 특징.[19] 그런데 일본에는 마스터 시스템 2가 발매되지 않았고 기존의 삼성 겜보이는 일본판 카트리지를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삼성 겜보이 2도 당연히 일본판 카트리지를 사용하는 형태로 만들어져있었는데 그덕에 겜보이 2/알라딘보이가 유일하게 일본판 팩에 대응하는 마스터 시스템 2라고 한다.

1992년 즈음해서 삼성전자의 교육용 컴퓨터 브랜드를 '알라딘'으로 통일하면서[20] 수퍼 겜보이는 '슈퍼 알라딘보이'(...)가 되었고 겜보이 2의 이름도 '알라딘보이'라는 좀 괴악한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알라딘보이의 후기형은 색상이 동사에서 발매된 유아용 컴퓨터 피코처럼 하늘색/보라색 투톤색상으로 바뀌었고 AV단자(컴포지트) 기본지원 및 메가드라이브용 패드가 동봉되었다. 다만 알라딘보이 후기형(하늘색/보라색 투톤)의 영상단자는 이전 모델과 호환되지 않는다.

6 토막상식

  • 삼성 겜보이 용으로 MSX용 게임이 컨버전되어 나온 것이 있다. 소싯적에 겜보이로 요술나무, 양배추 인형, 꿈대륙 어드벤처 등을 해봤다거나 하는 기억이 있는 경우라면 이 경우. 원래 마스터 시스템의 전신인 SG-1000MSX1과 하드웨어 구성이 비슷하고, 세가 마스터 시스템에서 하위호환 형태로 구동이 되기에[21] 이에 착안해서 재미나를 비롯한 몇몇 회사에서 MSX용 게임들을 SG-1000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개조해서 단품 혹은 합팩형태로 삼성 겜보이용으로 출시했던 것이다. 당연히 불법. 몇몇 게임에서 1 PLAYER with KEYBOARD라는 말이 있었던 것은 원래 MSX용 게임이라서 그런것. (MSX는 엄연히 컴퓨터이다)
    • 이런 부류의 소프트웨어는 SG-1000의 하드웨어에 맞춰서 개조한 것을 하위호환 기능으로 구동하는 것이지만 MSX 규격의 최소 메모리 용량(8KB)보다 SG-1000의 메모리(1KB)가 적어서 정작 SG-1000에서는 안돌아가고 마스터 시스템에서만 돌아간다고 한다(...). 마스터 시스템의 메모리는 8KB.
    • 재미나에서 만든 몇몇 국산 게임(용의 전설, 사이보그 Z)도 이런 이유로 똑같은 게임이 재믹스와 겜보이 양쪽으로 나와있고 그래픽이 완전히 동일하다.
  • MSX의 사운드 확장장치인 'FMPAC'(MSX-Music)에 영향을 줬다는 설이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YM2413칩은 마스터 시스템의 FM 사운드와 동일한 칩인데, 일설에는 파나소닉에서 FMPAC 개발 당시 컴파일(게임 회사)의 사장 니이타니 마사미츠에게 자문을 구했는데 컴파일은 이미 마스터 시스템용으로 게임을 만든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YM2413을 사용할 것을 추천했고 채택이 되었다는 것. 사실 여부는 알기 어려운 이야기이나 실제로 컴파일은 FMPAC 초기부터 지원작을 내며 푸시를 줬었고 MSX와 마스터시스템 양쪽으로 다 나온 컴파일 게임은 사운드가 똑같다.
  1. AVGN 록키 편에서 게임은 깠지만 그래픽은 대단하다며 놀라기도 했다.
  2. 몇몇 타사에서 만든 게임 이식도 세가에서 했는데, 이 게임기에서 나온 타사 게임 이식판에서는 타이틀 화면에 Reprogrammed Game (년도) SEGA라고 적힌 것들이 많다. 다만 실제로는 이식 작업을 하청한 회사가 따로 있는 경우도 제법 있다.
  3. 한참 아케이드 사업이 활황이던 시절엔 아케이드 사업부에서 콘솔 사업부로 옮겨가면 좌천이라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4. PC 엔진의 휴카드와 비슷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른점은 PC 엔진은 휴카드만 쓰고, 세가 마크 III는 팩이 기본에 덤으로 카드가 딸린 것. 유통비 절감을 위해서 세가가 꽤 밀었지만 결국 망했다(...).
  5. 다만 북미, 유럽판 마스터 시스템에는 Snail Maze라는 미로 게임이 바이오스 내에 숨겨져 있다. 전원을 끄고 롬팩을 넣으라는 메시지가 나올 때 위+1+2 버튼을 누르면 진입 가능.
  6. Zilog Z80A 상당품. 세컨드 소스 형식으로 NEC에서 생산한 것이다.
  7. 세가 마크3 및 세가 마스터 시스템에 내장. Texas Instruments TMS9918a 커스텀. 64색 중 32색 동시 출력, 최대 64개 스프라이트 표시, 256×224 / 256×192 / 248×192 해상도 지원
  8. 세가 마스터 시스템2에 내장
  9. FM 음원. 9채널 또는 6채널 + 5 타악기.(마크3는 별매. 일본판 전용. 유럽/북미판은 없음.)
  10. PSG. 모노 3채널 + 1 노이즈.
  11. 실제로 FM사운드와 PSG를 동시 지원하는 게임의 경우 FM 사운드를 기반으로 게임을 돌리면 효과음도 모두 FM 사운드를 사용한다. (단, 보이스의 경우 PSG)
  12. 다만 상술하였듯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서, 유저 단위에서 해킹으로 구현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동영상에 나오는 소닉 1은 원래 FM 지원 게임이 아니었다!
  13. 대신 북미에서는 후속기인 메가드라이브가 크게 성공.
  14. 그래서 일본, 북미판 게임이 더이상 출시되지 않은 시점에서도 세가 새턴이 출시되기 직전까지 유럽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게임이 몇개 나왔다.
  15. 세가 SG-1000 마크2용 키보드인 SK-1100이라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세가 마크3도 하위호환이 가능하다보니 이 점을 이용한것으로 보이다.
  16. 이 작명 덕에 게임기 이야기를 할 때 게임보이와 무지하게 헷갈린다.
  17. 이 현상은 훗날 닌텐도 DS가 유행하자 사람들이 휴대용 게임기를 닌텐도라고 일컫었던 것으로 재현된다.
  18. 오늘날의 매체와 달리 당시의 롬팩 매체는 롬 용량의 제약 때문에 한글화가 훨씬 어렵다. 게임기 자체에서 한글을 표기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도 있어서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었다고 한다.
  19. 그래서 알렉스 키드 한글판을 에뮬레이터로 구동할 경우 롬파일 자체가 바이오스이기 때문에 바이오스 형식으로 로드해야한다.
  20. 그런데 광고를 보면 알라딘이 아니라 램프의 지니가 나온다(...) 이렇게
  21. 이 때문에 에뮬레이터에서 사용하는 SG-1000 롬파일은 확장자가 .sg로 따로 분류돼있다. 마스터시스템용은 .sms. 당연히 SMS만 플레이 가능한 에뮬레이터의 경우 이 .sg 파일을 구동하는건 불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