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삼성 블루윙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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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광주대구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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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원울산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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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전북제주포항
K리그 챌린지 구단 사라진 구단
2017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 리그 G조
35px
광저우 헝다
(Guangzhou Evergrande)
35px
수원
(Suwon)
50px
가와사키
(Kawasaki)

이스턴 SC
(Eastern SC)
수원 삼성 블루윙즈
SUWON SAMSUNG BLUEWINGS
전체이름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
법인명수원삼성축구단 주식회사
별칭청백적 군단 레알 수원
구단형태기업구단
소속 리그K리그 클래식
창단1995년 12월 15일
연고지경기도 수원시
홈구장수원월드컵경기장 (43,959명 수용)
모기업제일기획[1]
구단주김재열[2]
대표이사김준식[3]
단장박창수[4]
감독서정원
주장염기훈
부주장홍철, 신세계
상징색파란색, 흰색, 빨간색[5]
마스코트아길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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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기록
최다 출장이운재 - 343경기 (1996-2010)
최다 득점서정원 - 46득점 (185경기, 1999-2004)
최다 관중45,192명 - FC 서울 (2012년 4월 1일)
최다 연승8경기 - (1999년 7월 29일 ~ 8월 29일[6], 2008년 3월 19일 ~ 4월 26일)
최다 무패18경기 - (2008년 3월 9일 ~ 6월 28일)[7]
우승 기록
K리그 클래식
(4회)
1998, 1999, 2004, 2008
FA컵
(3회)
2002, 2009, 2010
리그컵
(6회)
1999[8], 2000, 2001, 2005, 2008
슈퍼컵
(3회)
1999, 2000, 2005
AFC 챔피언스 리그
(2회)
2001, 2002
아시안 슈퍼컵
(2회)
2001, 2002
A3 챔피언스컵
(1회)
2005
팬퍼시픽 챔피언십
(1회)
2009
유니폼
원정서드
메인 스폰서유니폼 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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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of Foot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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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클래식 우승
19971998, 19992000
부산 대우 로얄즈수원 삼성 블루윙즈안양 LG 치타스
200320042005
성남 일화 천마수원 삼성 블루윙즈울산 현대 호랑이
200720082009
포항 스틸러스수원 삼성 블루윙즈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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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우승
200120022003
대전 시티즌수원 삼성 블루윙즈전북 현대 모터스
20082009, 20102011
포항 스틸러스수원 삼성 블루윙즈성남 일화 천마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9]
1999-20002000-2001, 2001-20022002-2003
알 힐랄수원 삼성 블루윙즈알 아인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삼성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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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수원 삼성 블루윙즈서울 삼성 썬더스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삼성 갤럭시삼성전자 육상단삼성전기 배드민턴단
에스원 태권도단삼성생명 탁구단삼성생명 레슬링단삼성전자 승마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즌별 일람
199619971998199920002001
200220032004200520062007
200820092010201120122013
201420152016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구단[10]
막대한 자금력과 체계적인 시스템 구축으로 짧은 시간에 리그를 대표하는 강호로 발돋움한 클럽.
무능한 프런트반도 이고르 윤성효 헤이날도 루이스 에닝요에 의해 잘나가던 구단이 어디까지나 추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반면교사. K리그판 AC 밀란

1 구단의 역사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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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클래식 소속의 프로축구단. 연고지는 수도권[11] 경기도 수원시.
리그 순위에서 언제나 상위권에 위치했던 구단이며 관중 동원도 창단 이래 늘 리그 최상위권을 다투는, K리그에서 최초로 슈퍼클럽의 모습을 제시했던 클럽이다. 창단 당시부터 세계 축구계의 중심으로 가기 위한 목표를 삼고 모기업의 막강한 자금력과 1등주의에 기반한 팀내 성향으로 우수한 선수들을 모집해 리그 참가 첫 해 준우승과 창단 3년만에 리그 우승과 리그 2연패 + 전관왕, 2001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우승까지 하는데 불과 5년 남짓의 시간만이 걸렸을 뿐이다. 1998~99년의 수원은 리그 역사상 최강팀 중 하나로 여기에 견줄 팀은 1997년 부산 대우 로얄즈와 2001~2003 성남 일화 뿐 이다.

서포터즈는 그랑블루2009년 분리된 하이랜드 에스떼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2012년 5월 20일 울산 현대와의 홈 경기부터 프렌테 트리콜로라는 이름으로 단일화되었다.

47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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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억의 위엄. 그러나 이듬해 부터 운영비를 줄이기 시작했다. 이게 다 세제믿윤 때문이다

부유한 모기업을 두고 창단 직후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선수들을 대거 영입하곤 했기에 곧잘 K리그의 첼시, 레알 수원 같은 별명으로 불렸으나 서정원 체제에 들어선 지금은 지출을 줄이고 자생에 무게를 두기 시작하면서 옛말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윤성효 전 감독 시절부터 운영비가 줄어들기 시작, 2012 시즌~2014 시즌 3년간 꾸준히 연간 운영비가 줄어들었고 2015 시즌에는 2014년의 250억보다 줄어든 200억원의 운영비로 팀을 꾸려 나갈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기사 이는 한국프로축구연맹의 연봉공개 추진과 맞물려 삼성전자측에서 "투자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며 운영비를 삭감하기 시작한게 컸다. 관련 기사. 물론 삼성은 삼성인 만큼 선수단 연봉이나 구단 인프라는 좋지만 과거의 처럼 현금을 쏟아부어 거물급 스타를 대거 영입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12] 그리고 김현기 기자의 기사에 따르면 ‘모기업이 주는 예산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우승하는 구단’에서 ‘스스로 돈을 벌어 매출을 발생시키고 성적도 적절히 내는 구단’으로 바뀌려고 하는 중이라고 한다. 물론 이게 말 처럼 쉬운건 아니라서 아직까진 자생률이 20%가 될락 말락한 수준으로 아쉽다. 자생적으로 운영하려다가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할 지경이다

2013년까지 삼성그룹 전체를 http://marumaru.in/b/manga/60371 서울 삼성 썬더스 농구단와 함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를 대표하는 기업 구단으로서 삼성전자의 부회장이 대대로 구단주를 맡았다. 삼성전자 축구단이라는 법인명을 놓고 수원 구단을 비하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또한 법인명이란 어디까지나 재무제표에나 쓰는 이름에 불과한 만큼 큰 의미를 둘 필요가 없는 것이다[13]. 그런데 이제는 프로축구단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운영 주체가 삼성전자에서 삼성그룹 계열 광고 회사인 제일기획으로 바뀐다. 제일기획은 2014년 3월 19일 경영 위원회에서 수원 삼성을 인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일기획은 삼성전자가 보유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지분 100%를 인수할 계획이다. 인수 금액은 공개하지 않았다. 수원 삼성 축구단은 2014년 4월 1일자로 제일기획 소속이 되며 삼성전자는 수원 삼성 축구단의 후원사로 남는다. 관련 기사[14]

구단 이름에도 날개가 들어가고 홈 구장의 애칭도 빅버드라 그런지 다른 구단의 서포터들은 '닭(날개)'이라고 부른다. 공인 라이벌 지역야구단 생각나면 지는 거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마스코트인 아길레온(Aguileon)은 독수리(Aguila)와 사자(Leon)를 결합한 이미지...[15] 라고 구단 측에서 설명하고 있으나 누가 봐도 퍼런 닭처럼 생겼기 때문에 '닭'이란 별명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 팀들은 중요한 경기에서 수원을 만날 때마다 선수들에게 치킨을 먹인다고(...). 경기 후에 승리했을 경우 월드컵 경기장 앞 모 갈비 집에서 식사하고 가기도 한다.

2008년 들어 구단의 엠블럼에 리그 참가 연도였던 1996을 창단 연도인 1995로 바꾸고 밑에 영문으로 SAMSUNG F.C.이라 적혀 있던 것을 SUWON으로 바꾸면서 지역 연고를 확고히 하려는 의지를 보여줬다.

여담으로 2014년을 기준으로 K리그 팀들 중 가장 마지막에 창단된 기업 구단이다(1995년 2월). 이후에 창단된 구단들은 모두 시민구단이었다. 하지만 2014년 4월 이랜드가 창단을 선언하면서 19년 만에 기업 구단이 창단하게 되었다. 충주 험멜은?[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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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첼시 FC와의 친선경기 광고

2 우승 기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K리그에 소속된 구단들 중, 가장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대회 우승횟수 우승년도
K리그 클래식4회1998, 1999, 2004, 2008
FA컵3회2002, 2009, 2010
슈퍼컵3회1999, 2000, 2005
리그컵 6회 1999[17], 2000 & 2001[18], 2005 & 2008[19]
AFC 챔피언스리그2회[20]2001, 2002
아시안 슈퍼컵2회2001, 2002
A3 챔피언스컵1회2005
클럽 수상
2001 AFC 올해의 클럽
2002 K리그 공로상
2003 K리그 올해의 페어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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컵이 매우 많군요

3 타 구단과의 관계

K리그를 대표하는 인기구단[21] 답게 수원과 라이벌로 엮인 구단이 많다.

3.1 FC 서울

BLUEWINGS[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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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伐북패정벌 곽희주는 필사적으로 아드리아누를 막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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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6시즌 수원이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내년에는 북패정벌대신 오리지널클라시코가 열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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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안양 LG 치타스라이벌 의식을 불태우며 이 두 팀이 붙는 경기는 '지지대 더비' 혹은 '1번 국도 더비' 등으로 불릴 정로로 유명했으며 당시 그랑블루는 안양과 라이벌 시절에 치토스(정확히는 체스터)를 미트스핀하기도 했다. 그 유명한 '오늘은 치토스 먹는 날'. 흠좀무.


마지막 안양전으로, 나드손의 3분의 기적으로 유명하다. 조광래의 씁쓸한 표정이 일품... 이 당시 수원 소속이었던 에닝요는 볼을 안양 벤치에다가 뻥 차는 등...

그러나 안양 LG 치타스가 서울로 연고이전하여 FC 서울로 바뀐 후에는 그런 거 없다. 각종 언론들은 수원과 서울을 일부러 라이벌 구도로 묘사하고 있으나, 절대 그런거 없다...[23] 라고는 하지만 하는 짓을 보면 천상 라이벌이다. 샤다라빠는 이 두팀의 관계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라이벌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라이벌'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서울과의 라이벌 구도 형성 과정을 살펴 보면 과거 안양과의 라이벌 구도를 이어받았고 그것을 언론에서 어느 정도 띄워주면서 형성되었다는 의견이 강하지만, 그보다도 FC 서울의 연고 이전 당시 K리그 서포터 집단 가운데 세력이 크면서 강성했던 그랑블루가 문자 그대로 극렬한(...) 반대와 비난을 퍼부어 댄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그랑블루는 패륜송을 만들어 부를 정도로 서울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해 왔고(지금도 해 오고 있으며 선수들도 구단 행사 같은 곳에선 부른다) 그것이 양 팀 서포터들 간의 앙금으로 남아 라이벌 구도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 과거 안양과의 라이벌 관계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수원 입장에서는 서울을 라이벌로 인정한다면, 안양 치타스와 FC 서울을 동일한 구단으로 보고 안양 시절 역사를 서울 역사의 일부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그랑블루 입장에서는 라이벌이 아니라고 결사 부인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서로 불편해진 관계에 또 한번 불을 당긴 건 세뇰 귀네슈 감독이 FC 서울에 부임하고부터였다. 당시 귀네슈 감독은 K리그 부임 이후 공격 축구를 표방하며 초반 무패 가도를 달렸고 다른 K리그 팀들이 지나치게 수비 지향적인 축구를 한다고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이런 발언에 대해 국내 감독들 가운데 제법 명망(?)있던 수원의 차범근 감독이 '귀네슈 감독은 아직 K리그에 대해 잘 모른다'고 정면으로 맞받아쳤는데, 이러한 설전 이후 벌어진 수원과 서울의 컵대회 대결에서 수원은 박주영에게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4:1로 참패(...)를 당하며 굴욕을 맛봤지만[24] 얼마 뒤 리그 경기에서는 서울 5만여 관중 앞에서 1:0의 승리를 거두며 설욕을 했다. 이후에도 양 감독은 경기마다 설전을 아끼지(?) 않으면서 두 팀 간의 라이벌 관계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이 두 감독은 서로가 추구하는 전술이나 스타일의 차이가 커 양 팀 간의 대결 구도를 더욱 볼 만하게 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귀 두 감독들의 대립 구도 속에서 양 팀 서포터들도 지지 않고(?) '안정환 사건'이나 '경기장 방화 사건'등을 일으키며 두 팀 간의 관계 악화(...)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북패를 때려 잡는 정의로운 이미지를 구사하려고 하지만, 프렌테 트리콜로 자체가 워낙 대규모 서포터즈인 관계로 사건사고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욕을 먹는 부분은 있다[25] 프렌테 트리콜로는 종종 과거 이름이던 그랑블루의 비하어인 '개랑' 내지는 서포터즈의 이름과 합친 '개랑블루'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무튼 앙숙인 양 팀의 경기이고 수원, 서울 모두 최고의 인기팀이라서 K리그 최고의 흥행 매치인 점은 부정할 수 없다. K리그 관계자들이 가장 기대하는 대박 경기. FIFA에서도 공식 홈 페이지에 Asia's Top Derby라는 제목으로 특집 기사를 냈을 만큼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K리그 대표 라이벌 더비로 인정받고 있다. 양 팀 서포터들 가운데서도 이제는 라이벌의 '실체'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다.[26]

2007년 4월 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더비에서는 무려 "55,397"명의 관중이 입장. 결승전도 아닌 정규리그 도중에 이 정도 관중이 들어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우리나라 프로 스포츠 사상 역대 관중 동원 기록 3위으로 남아있다.

2011년 10월 3일 개천절에 빅 버드에서 벌어진 더비에서는 44,537명의 관중이 입장해, 월드컵 경기장 최초의 만석 기록을 세웠다. 약 6개월 뒤인 2012년 4월 1일에 펼쳐진 경기에서는 45,192명의 관중 수를 기록해 구단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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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0일 FA컵 16강전에서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수원이 2-0으로 완승했다. FC 서울에서는 스테보에 대해 반칙왕이라고 디스하는 동영상을 제작해 경기전에 페어 플레이를 하자고 수원을 도발했지만 시합 결과는... 게다가 거칠게 나온 것은 오히려 서울이었고 수원의 라돈치치는 이 경기로 8주 부상을 끊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경기를 난투극 운운하면서 막장으로 몰아가고 있지만 실제로 관전한 팬들입장에서는 그렇게 나쁜 시합은 아니었다. 김주영의 자책골(김주영은 수원 이적을 거부하고 서울로 이적한, 수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기분 나쁜 일을 범한 선수)이 경기 전 페이스북으로 서울을 북패라고 디스한 오범석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 등등 여러가지 이야기할 이슈가 많은 시합이었다.

윤성효 감독 시절까진 아무리 팀 상태가 안좋아도 서울만큼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서정원 감독 부임 이후 4년간 한번도 시즌 전적이 서울에게 앞선 적이 없다(...) 2013년에는 1승 1무 2패, 2014년에는 1승 3패, 2015년에는 1승 1무 2패로, 2016년에는 2무 1패다. 수원팬들이 서정원 감독에게 아쉬워하는 점 중 하나.

3.2 전북 현대 모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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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수원과 전북과의 악연의 한 축을 이루는 것이 바로 조재진이다. 조재진은 수원 출신이긴 했지만 2004년 5월 23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상대선수와 친목을 도모했다는 이유, 수원에서 나갈 때 뒤끝이 안좋았다는 등의 루머로 인하여 여러가지로 수원 팬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2004년을 끝으로 조재진은 J리그로 갔다. 그러던 중 조재진은 2008년 다시 J리그에서 전북 현대로 이적했고, 5월 5일 경기에서 동점골을 작렬시키고 수원 서포터에게 주먹감자를 먹이는 세레모니를 한다. 이에 격앙된 수원 서포터들은 다음 번 홈경기에서 조재진과 루머가 있었던 모 가수의 이름을 부르며 조재진을 도발했지만 조재진은 1골 1어시를 작렬시키며 팀을 5-2 승리로 이끈다. 그리고 나서 조재진은 전북 팬들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존재가 되었으니 설명이 必要韓紙?

또한 차범근의 악연들이 전북과의 관계를 이루는 축이 되었다. 최강희 감독은 울산 현대에서 뛰던 현역 말기에 차범근에 의해 강제로 은퇴를 강요당한 전적이 있다. 고참 선수와 젊은 신임 감독의 흔한 힘겨루기 중에 하나로도 볼 수 있지만, 어쨌든 최강희는 차범근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최강희는 수원의 김호 감독 시절 코칭 스태프의 일원이었으나 김호와의 불화 끝에 팀을 나갔다는 루머도 존재하고 있었다. 최강희가 국가대표 감독을 사임하고 전북으로 복귀하기전 전북 구단에서는 그동안의 노고를 감안해 조금 쉬었다 오라고 했지만 수원이 전북을 5-4로 꺾는 모습을 보면서 이 경기가 전북이 매수했다는 의심을 받는 경기였다는 게 함정 근데 이겼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빠른 복귀를 결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수원 소속이었던 선수가 전북에 가서 유난히 잘되는 경우가 많았다. 앞서 말한 조재진은 J리그에서 성장해서 전북으로 온 경우이긴하지만, 수원에서는 꽃을 피우지 못하던 에닝요, 루이스 등의 선수들의 포텐이 전북에서 터지는 경우도 많았으며 특히 루이스의 경우는 차범근 감독도 잡고 싶었지만 계약문제로 잡지 못하고 전북이 영입한 결과... 유독 이런 선수들이 수원에 골을 잘 넣는 경우가 많아 많은 수원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최강희의 전북 감독 부임 ~ 윤성효 경질까지는 수원 대 전북 전적이 심각하게 안습했었는데 2013년, 서정원감독 부임 이후 첫 해에 3승 1무를 찍으며 전북에게 매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2014년에도 1승 1무 1패로 팽팽한 전적을 기록했지만 정작 중요한 경기는 다 말아먹었다 성남전 제파로프 동점골이라던지 2015년에는 1무 2패로 탈탈 털렸지만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염기훈의 프리킥 선제골과 카이오의 역전골로 승리했다. 2016년 시즌에는 3경기에서 1무 2패의 열세.

원래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에두 가계악 논란(에두 문서 참조)과 전북 현대 모터스 심판매수 사건 이후로는 관계가 더 악화되었다. 애초에 공공의 적 이미지가 있었던 FC 서울보단 나은 관계였지만 이 사건 이후로 전북 현대가 떠오르는 공공의 적이 되면서 오히려 아이라이크사커 같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전북에 대한 비판으로 수원 팬들과 서울 팬들이 대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그리고 6월 15일 전북과의 원정 경기에서 전북 측 경호원과의 충돌,# 9월1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양측 서포터즈들의 충돌과 이동국-이종성사실 이건 별 것도 아닌데 등으로 인해 더욱 악화되었다. 이미 수원 서포터즈 측에서도 패륜송에 가사만 바꾼 매수송이 나오기까지 하는 등 이젠 두 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FC 서울에 맞먹는 증오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 듯.

3.3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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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과 대전 사이의 걸개 싸움.jpg

K리그에 1996년 수원이 9번째, 1997년에 대전이 10번째로 가입함으로써 서로 신생 구단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대전의 컨소시엄을 이루었던 계룡건설이 부도가 나고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기업들이 어려워지면서 구단의 재정도 많이 어려워졌고, 이는 상대적으로 강력한 모기업을 갖고 있었던 수원과 대비가 되었다. 그러던 중 당시 PC통신에서 수원 팬들이 대전 팬들의 어그로를 끄는 광역 도발들을 시전했고(이는 당시 1997년 수원과 대전의 모 경기에서 대전 선수의 도발성의 골 세레모니가 원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대전과의 관계 악화의 시발점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가 존재했기 때문에 대전이 수원을 이기기는 쉽지 않았고 수원은 대전에 대해 절대적인 우세를 점해왔다. 특히 '대전 킬러'로 불렸던 산드로, 고종수와 데니스의 존재는 대전이 버텨내기 쉽지 않았다. 물론 대전에도 이관우, 김은중과 같은 선수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양 측 서포터 간의 폭력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 것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특히 2001년 6월 24일 수원에서 열린 경기가 시발점이었다. 2-2였던 후반 막판 주심이 착각 끝에 수원 수비수 졸리에게 레드 카드를 뽑았는데, 졸리가 이를 무시하고 스크린 플레이에 참가했고 고종수는 왼발 프리킥으로 결승골을 터뜨린다. 결국 대전 선수단은 심판에게 강력히 항의하고 대전 서포터들이 경기장에 난입하면서 경기가 일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후 대전 서포터즈는 이 경기의 주심과 프로 축구 연맹 회장을 현상 수배하는 전단을 돌렸고 주심이 이들을 고소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러나 이후에 일어난 일들이 화룡점정을 찍게 된다. 한달 후인 7월 28일 수원종합운동장에서 대전 서포터들이 쇠 파이프등을 사용해 폭력을 행사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ㄷㄷㄷ 조폭 뺨친다... 사실 이날 발단은 수원 서포터들이 원정 서포터의 응원석을 점거한 데서 시작되었다. 수원 측은 대전 서포터가 지난 달에 난입한 일에 대해 사과를 받기로 했으나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자 원정 서포터 대상 입장료 할인, 지정 응원석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를 통보받고 도착한 대전 서포터들은 수원 측과 멱살잡이를 벌이고 쇠 파이프를 휘둘러 의자를 부수었으며 경기 후에는 주차되어 있던 차량 등을 파손하는 등 30여 분간 난동을 부리다가 결국 현장에서 체포되어 양 측 서포터즈 회장이 수원 중부 경찰서로 연행되었으나 대전 구단이 피해를 보상하는 조건으로 훈방되는 등 K리그의 흑역사로 남아 있는 사건을 만들었다.

그 이후로도 위에 서술되어 있는 사건의 뺨을 칠 정도로 과격한 마찰이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수원 서포터들은 대전 원정에서만큼은 긴장 아닌 긴장을 하고 떠나야만 했다. K리그/더비 매치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는 관계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서술되어 있는 정도로 평화로운 더비가 아니었다... 축구 수도 더비라는 것은 그나마 폭력적인 마찰이 줄어들었던 최근까지의 일이었고 2000년대 초중반의 이 두 팀의 관계는 적 그 이상이었다. 대전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된 이후 서로 만날 일이 희박해졌다. 이후의 2000년대 후반의 일은 K리그/더비 매치를 참조할 것.

대전이 놀라운 성적으로 K리그 챌린지를 씹어먹고 2015 K리그 클래식에 합류하게 됐다. 대전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승격한 만큼 수원은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게 됐다. 대전은 2015시즌에 극도로 부진하고 있지만, 전반기 유일한 1승은 수원에게서 따냈다.

하지만 대전이 2015년 K리그 클래식에서 12위로 강등되면서 빨라야 2017년에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2016년에 만나려면 FA컵 외에는 사실상 답이 없는 상황.

3.4 성남 FC

마계대전 참조. 라이벌 치고는 선수 이적이 잦다.

3.5 FC 안양

K리그/더비 매치오리지널 클라시코 참조.

3.6 포항 스틸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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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결정전 승부차기에서 김병지의 슛을 막아내고 포효하는 이운재

2004년 챔피언 결정전이 유명하다. 당시 전기 리그 우승팀과 후기 리그 우승팀 간에 연말에 결전을 벌였는데, 전자가 포항, 후자가 수원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당시 이 두 팀에는 당시 국가대표 골키퍼인 김병지와 이운재가 최후방을 지키고 있었다. 실제 경기도 이들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고, 포항과 수원에서 벌어진 1, 2차전 모두 무승부로 끝났다. 2차전이 끝난 직후, 챔피언을 결정하기 위해 바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하지만 연장전에도 결판이 나지 않았고, 결국 승부차기까지 가게 되었다. 그러나 승부차기 조차도 팽팽하게 진행되었고, 포항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병지였다. 하지만 김병지의 슛은 이운재에게 막혔고, 키퍼들의 싸움이 되었던 2004년 K리그 챔피언 결정전은 이운재의 승리로 끝났다.

그 이후 2014년까지 포항 원정에서 5-0, 3-0 패배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2014년 시즌 첫 포항 원정 경기에서
2-1로 역전패 당했지만 홈에서 4-1 승리, 2-1 승리등 홈 경기에서 완전히 압도했고 2014년 마지막 포항 원정이자 K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산토스와 정대세의 골로 징크스를 깼다.

2015년 전적은 2승 1무 1패로 수원이 우세한 전적을 기록했다.

3.7 울산 현대

수원의 리그 참가전부터 울산에서 견제가 심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두 모기업인 삼성과 현대의 라이벌 의식 때문에 이는 수원이 리그 참가 이후에도 모기업의 영향으로 라이벌로 묶이곤 했다.

더군다나 수원은 1996년 리그 참가 당시 신생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르는 저력을 과시한다. 당시 챔피언결정전의 상대가 바로 울산 현대. 수원은 울산 종합 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조현두의 골로 1-0으로 승리를 거두며 우승에 한발짝 다가서게 된다. 이대로 수원이 우승하면 신생구단이 참가하자마자 바로 우승하는 엄청난 일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나... 수원은 홈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3-1로 패하며 울산에게 K리그 우승컵을 안겨주게 된다.[27] 2차전은 레드 카드가 다섯 장이나 나올 정도로 굉장히 거친 경기였으며, 당시 윤성효는 선수 생활에서 처음으로 레드 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 이후 수원은 1998년 챔피언결정전에서 울산을 꺾고 우승하며 설욕. 한편 96년 당시 울산 소속으로 우승을 경험했던 신홍기는 1997년 수원으로 이적, 1998년 수원에서 또다시 K리그 우승을 경험하는 흔치 않은 커리어를 쌓게 된다.[28]

2000년대 들어서도 잊을만하면 양 팀은 충돌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 빅버드에서 열렸던 수원-울산 경기. 이 경기에서 울산 서포터들은 '서포터' '김호 감독' '삼류 심판' 등의 팻말을 붙여 닭을 투척#했고, 수원의 한 서포터는 경기장에 난입하여 울산의 김현석에게 폭행을 가하는 등 버라이어티한 모습이 펼쳐졌다. 자세한 건 포스팅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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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천수가 '삽질개천수'라는 팻말을 보고 셋째 손가락을 들어올렸던 것도 수원 서포터와의 사이에서 있었던 일.

3.8 수원 FC

현재 K리그에 있는 연고 라이벌중 하나이다. 수원FC가 2013년에 K리그 챌린지에 진출하게 되면서 최초이자 유일한 연고더비 였지만, 2015년 서울 이랜드가 창단하면서 현재는 유이한 연고더비가 되었다[29]. 하지만 수원삼성과 수원 FC의 전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팬들은 서로를 아직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FA컵에서 3차례[30] 만났었지만 리그에서는 2015년까지 만난 적이 없다. 둘이 만날려면 수원 삼성이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하거나 수원 FC가 K리그 클래식으로 승격해야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2015년에 수원 FC가 시시 곤잘레스를 영입하면서 현재 선두권 싸움을 하는 만큼 잘하면 2016년에는 K리그 클래식에서 수원 더비가 성사될 가능성이 생겼고, 결국 부산 아이파크와의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1-0 승리, 2차전 2-0으로 승리하여 수원 FC가 승격. K리그 클래식 최초의 지역 더비가 확정되었다!

둘 간에 상대 전적은 수원 삼성이 3승 1무[31]를 거두었다

지금까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 수원 FC 두 팀에서 둘 다 뛰어본 선수로는 수원 FC 수석코치를 맡고 있는 조종화 코치, 서울 이랜드에서 뛰고 있는 이상기, 선문대를 졸업하고 입단하자마자 수원 삼성에서 수원 FC로 1년간 임대갔었던 김종우 등이 있다.

2016년 5월 14일 옛 홈 경기장인 수원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K리그 첫 로컬더비에서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2:1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 날 블루윙즈 서포터들은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종합운동장까지 걸어서 원정길을 떠났고 수원 FC의 홈인데도 원정팀인 블루윙즈 서포터들의 함성이 더 크게 들렸다.[32]

4 시즌별 일람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즌별 일람
199619971998199920002001
200220032004200520062007
200820092010201120122013
201420152016

5 유소년 시스템

유소년 시스템
U-18 팀매탄고등학교
U-15 팀매탄중학교
U-12 팀수원 삼성 블루윙즈 U-12
U-10 팀수원 삼성 블루윙즈 U-10

6 사건/사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사건사고 참고.

7 시설 및 장비

7.1 경기장

수원종합운동장, 수원월드컵경기장 참고.

7.2 클럽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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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클럽하우스
준공일2006년 6월
소유주삼성전자[33]
위치경기도 화성시 반월동 412번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1부지
건설비용약 90억 원(2005년 기준)
시설연면적 1,623평(지하 2층, 지상 3층)
천연잔디 구장 3면

완공 당시 국내 최고의 클럽하우스였으나 현재는 그 자리를 전북 현대 모터스 클럽하우스에 넘겨줬다. 구단과 모기업의 위상에 비해 클럽하우스가 늦게 만들어진 편으로 늦은 대신 유럽 명문팀들의 클럽하우스들을 철저히 벤치마킹하여 만들어졌다.

클럽하우스 건립 전에는 삼성전자 수원사업장 내 숙소를 사용하고 연습은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의 연습구장에서 했기에 거리가 멀어 훈련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으로 인해 2005년 9월 삼성전자 화성사업장 내의 연습구장 위치 부근에 현재의 클럽하우스를 건설하고 2006년 6월 29일 선수들이 입주했다. 선수들이 최적의 컨디션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하는데 초점을 둔 설계로 라커룸과 훈련장-샤워장으로 이어지는 동선을 최소화하고 안락한 공간 확보, 대회의실, 휴게실, 식당, 사우나실,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등의 첨단 시설을 갖춤으로써 선수들이 훈련에 필요한 모든 사항을 클럽하우스 내에서 충족시킬 수 있도록 시공되었다. 클럽하우스 입구 로비에는 그동안 수집한 우승 트로피와 유니폼 등을 전시해 구단 역사를 한눈에 볼수 있게 했다.

특별히 합숙을 해야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유부남 선수들은 클럽하우스 근처 동탄쪽에 집을 구해서 훈련이 있을때에 출퇴근하는 형식이고 미혼 선수들만 클럽하우스에서 생활한다.

2012년에는 클럽하우스에서 팬즈데이를 진행하여 팬들에게 공개했고, 2013년에도 일부 팬들들을 초청해서 공개했다. 이후에 클럽하우스 명칭을 팬들에게 공모한 적이 있었는데 마땅한 이름이 없었는지 없던 일이 되었다.

클럽하우스 뒷편에 삼성전자 육상단 숙소와 훈련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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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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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치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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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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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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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트 트레이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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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이 쓰는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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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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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7.3 재활시설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서 재활치료를 담당한다.

7.4 차량

프로선수단 버스는 기아 그랜버드를 사용하고 있고 그 외 유소년이나 기타는 현대 에어로 버스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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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유니폼

수원 삼성 블루윙즈/유니폼 항목 참조.

8 캐치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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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푸른 도전! 승리 수원!
  • 2015~2016: Home of Football

9 기념 로고

  • 1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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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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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영구결번

수원 삼성 블루윙즈 영구결번
No. 38
윤성효
  • 1998년 윤성효 은퇴 후 비공식적으로 영구결번 형식을 취해 아무도 달지 않았으며 팬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하지만 2008 시즌에 김현준이 38번을 달고 뛰었고 이에 팬들이 "뭥미?"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이후 윤성효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다시 영구결번으로 확정되었다. 프런트가 영구결번인걸 잊고 사는듯
  • 이 외에 2014년 PSV 에인트호번과의 친선 경기에서 박지성을 명예 선수로 등록하면서 등번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줬다.

11 선수단

11.1 코칭스태프 명단

2016 시즌 코칭스태프 명단
직책이름영문 이름국적생년월일
감독서정원Seo, Jung Won30px1970년 12월 17일
수석코치이병근Lee, Byueng Keun30px1973년 1월 28일
1군코치최성용Choi, Sung Yong30px1975년 11월 14일
1군코치고종수Ko, Jong Soo30px1978년 10월 30일
GK코치신범철Shin, Bum Chul30px1970년 9월 27일
피지컬코치반델레이Wandereley Pessoa30px1964년 3월 16일
플레잉코치곽희주Kwak, Hee Ju30px1981년 10월 5일
스카우터조현두Cho, Hyun Doo30px1973년 11월 23일
스카우터김대의Kim, Dae Eui30px1974년 5월 30일
스카우터김성근Kim, Sung Keun30px1977년 6월 20일

11.2 선수 명단

2016 시즌 선수 명단
번호이름영문 이름포지션국적생년월일
1노동건No, Dong GeonGK30px1991년 10월 4일
3양상민Yang, Sang MinDF30px1984년 2월 24일
4이용래Lee, Yong RaeMF30px1986년 4월 17일
5박현범Park, Hyun BumMF30px1987년 5월 7일
6연제민Yeon, Jei MinDF30px1993년 5월 28일
7이상호Lee, Sang HoMF30px1987년 5월 9일
8조원희Cho, Won HeeMF30px1983년 4월 17일
9조동건Cho, Dong GeonFW30px1986년 4월 16일
10산토스Natanael de Souza Santos JúniorFW30px1985년 12월 25일
12고차원Ko, Cha WonFW30px1986년 4월 30일
13김건희Kim, Gun HeeFW30px1995년 2월 22일
14카스텔렌Romeo Erwin Marius CastelenFW30px1983년 5월 3일
15구자룡Ku, Ja RyongDF30px1992년 4월 6일
16이종성Lee, Jong SungDF30px1992년 8월 5일
17김종우Kim, Jong WooMF30px1993년 10월 1일
18김종민Kim, Jong MinFW30px1992년 8월 11일
19장현수Jang, Hyun SooFW30px1993년 1월 1일
20백지훈Baek, Ji HoonMF30px1985년 2월 28일
21양형모Yang, Hyung MoGK30px1991년 7월 16일
22권창훈Kwon, Chang HoonMF30px1994년 6월 30일
23전현욱Jeon, Hyun OukMF30px1992년 3월 16일
24고승범Ko, Seung BeomMF30px1994년 4월 24일
26염기훈 (주장)Yeom, Ki HunMF30px1983년 3월 30일
27은성수Eun, Seong SooMF30px1993년 6월 22일
28문준호Moon, Jun HoMF30px1993년 7월 12일
29곽희주Kwak, Hee JuDF30px1981년 10월 5일
30신세계 (부주장)Sin, Se GyeDF30px1990년 9월 16일
31이상욱Lee, Sang WookGK30px1990년 3월 9일
32강성진Kang, Seong JinDF30px1993년 3월 26일
33홍철 (부주장)Hong, ChulDF30px1990년 9월 17일
34곽광선Kwak, Kwang SeonDF30px1986년 3월 28일
35최주용Choi, Ju YongDF30px1996년 11월 8일
36김진래Kim, Jin RaeDF30px1997년 5월 1일
37유한솔Yoo, Han SolDF30px1997년 7월 26일
39민상기Min, Sang GiDF30px1991년 8월 27일
40이정수Lee, Jung-sooDF30px1980년 1월 8일
41김선우Kim, Sun WooGK30px1993년 4월 22일
66오장은Oh, Jang-EunMF30px1985년 7월 24일
70조나탄[34]Johnathan Aparecido da Silva‎FW30px1990년 3월 29일
77장호익Jang, Ho IkDF30px1993년 12월 4일

11.3 임대, 군 복무중인 선수

12 역대 주요 선수

  • 바데아: 수원 창단 멤버로,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뛰었으며 강렬한 프로 의식으로 수원 선수들의 귀감이 되었다. 김호가 칭찬할 정도로 대단한 선수였다. 지고도 웃는 동료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하며, 필드, 날씨에 따라 축구화를 다르게 신는 등 당시 수원 선수들에게 프로란 어떤 것인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1998년 이후 J리그로 이적했다.
  • 이광종: 수원 창단 멤버, 창단 후 수원의 1호골을 기록했다.
  • 고종수: 한때 수원 팬들 등에 22번이 도배되게 한 적이 있던 앙팡 테리블.
  • 박건하: 수원 창단 멤버, 신인왕출신.
  • 이병근: 수원 창단 멤버, 오래 수원의 뒤를 지켜오던 수비수.
  • 서정원: 안양 LG 치타스와의 더비를 만든 주역. 그만큼 수원에서 사랑받던 윙어. 이제는 감독이다!
  • 이운재: 수원 창단 멤버, 국대 팬들한테는 까이지만 수원에서는 다르다.
  • 김진우: 수원 한 팀에만 충성을 바친 원 클럽 맨. 단단한 수비형 미드필더.
  • 정용훈: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요절한 선수. 빠른 발이 인상적인 선수여서 포텐을 기대하던 팬이 많았기에...
  • 윤성효: 화려하진 않지만 강한 투쟁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했으며 패스와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뛰어났던 선수. 前 감독. 지금은 욕먹는다. 세제믿윤.
  • 올리: 수원 초창기 용병 중앙 수비수. 현재 슈테아우아 부쿠레슈티의 감독으로, UEFA 챔피언스 리그에 나가기도 했다.
  • 가비: 올리와 같은 루마니아 출신 선수. 패스가 좋았던 플레이 메이커.
  • 비탈리: 1999 시즌 당시 샤샤와 투 톱을 이뤘던 선수. 득점은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같은 팀의 데니스와 함께 10어시스트로 도움왕에 오른바 있다.
  • 데니스: 2001 시즌 K리그를 박살낸 고-데-로(고종수-데니스-산드로) 트리오의 일원이다. 성남으로 이적한 후 이성남으로 개명하며 한국 귀화.
  • 샤샤: 1999년도에 가공할 만한 득점력으로 수원의 전관왕에 매우 큰 공헌을 한 선수. 득점왕을 했으나 신의 손 사건 때문에 MVP는 안정환이 가져갔다. 신의손 사건만 없었어도 MVP는 샤샤가 탔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다. 다만 샤샤는 커리어의 상당 기간을 부산과 성남에서 쌓아서 수원 팬들에게는 상대적으로 이미지가 적은 편이다. 공교롭게도 한국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펠릭스 호세[35]와 같은 해에 종목은 달라도 둘 다 똑같이 전성기급 활동을 펼쳐, 그야말로 프로스포츠 외국인 선수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힌 인물로 평가받는다.
  • 에두: 나드손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K리그 사기 유닛 공격수. 분데스리가 샬케 04로 이적해서 케빈 쿠라니헤페르손 파르판이라는, 리그에서 손꼽히는 공격수들 사이에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그리고 UEFA 챔피언스 리그 인테르전에서, 그것도 인테르의 홈인 주세페 메아차에서 2골 작렬. 그것도 에가 보는 앞에서. 탈 아시아급 용병임을 전 세계에 알렸다. 현재는 FC 도쿄, 전북 현대 모터스, 허베이 종지를 전전하다 브라질로 귀국함.
  • 마토: 일명 '통곡의 벽'이자 뛰어난 킥력과 헤더로 10골을 넣기도 한 공수겸장의 수비수. 2008 시즌 종료 후 J리그 오미야로 이적했으나 2년 만에 복귀했다.
  • 뚜따: 키도 크고 드리블도 좋았으며 득점력도 꽤 좋았던 선수.
  • 나드손: '원 샷 원 킬'이라는 별명의 작고 빠른 공격수. 브라질 U-18대표 출신. 특히 2004년에 수원이 리그 우승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지라 외국인 선수 최초로 K리그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야말로 수원 팬들에 있어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라 할 수 있는 선수다.
  • 마르셀: 나드손에 많이 묻혔지만 나름 괜찮은 활약을 보여줬다. 2011년에 반도 대체 선수로 왔으나 2004년과는 달리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보여준 채 방출.
  • 산드로: 고-데-로 트리오의 일원. 고데로의 최전성기였던 2001 시즌 때 최연소 득점왕에 올랐다.
  • 김대의: 성남에서 이적해 온 이후 쭉 수원의 왼쪽 측면을 든든하게 책임진 선수. 현재 매탄고 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 리웨이펑: 중국 국가 대표 등에서 보여준 더티 플레이를 일삼는 거친 이미지 때문에 처음 영입될 때만 해도 수원 팬들마저 우려하던 선수였으나 그러한 이미지를 지워버리고 좋은 실력을 보여주었으며 무엇보다 팀에 대한 헌신으로 수원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 스테보: 2011년 중반에 영입되어 2년 간 수원의 최전방을 책임진 선수. 골 결정력도 준수했지만, 무엇보다 구단과 팬에 대한 사랑과 그 표현이 매우 뛰어나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다. 특히 2013년 7월 3일 대전 시티즌과의 홈 고별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하고 후반 교체 후 관중석에 올라가 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모습은 수원 팬이라면 눈물이 고일 만한 명장면. 그러나 현재는 전남에서 뛰고 있다.

13 역대 감독

순번이름재임 기간경기 수승률
1김호1996~2003 (8년)312153778249%
2차범근2004~2010 (7년)241102697042%
3윤성효2010~2012 (3년)9748242549%
4서정원2013~5020121840%

14 홈 관중 관련 통계[36]

연도평균 관객 수주말평일최다 관객 수최소 관객 수리그 성적
199614,589[37]16,85012,53435,2085,130준우승
19978,1279,5735,85420,1971,5275위
199816,77820,34911,86936,456[38]1,765우승
199919,91621,63118,03027,525[39]8,425우승
200013,98115,34912,02825,0334,8645위
200115,24416,56512,47233,3114,5123위
200220,40624,42316,38942,2803,6553위
200311,86413,3949,65224,8693,4853위
200421,28921,66020,42438,1636,637우승
200519,14521,66710,32033,4799,7319위
200620,30623,28815,08638,5265,873준우승
200722,74425,18520,03241,8198,2362위(PO 탈락)
200822,37724,92018,24541,04412,318우승
200918,17418,58312,44935,05810,20610위
201026,18242,37718,2417위
201124,02144,53713,0044위
201220,26545,1929,2274위
201317,68918,94914,96137,8794,8615위
201419,01922,37711,46529,3186,527준우승
201513,16529,0466,538준우승

15 에피소드

16 흑역사

  • 노래 : 세상에서 제일 가는 믿음직한 윤성효 보며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 나의 윤성효...(세제믿윤 송)
  • 1999 시즌 : 대한화재 컵에서 샤샤의 신의 손으로 우승해 논란. 정규 리그 결승전에서는 부산에 문제 없이 승리. 정작 1999년 수원은 K리그 역대 최강의 스쿼드 중 하나로 꼽힌다. 그만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그런 최강급 스쿼드로 정상적인 플레이를 해서 이겼으면 문제가 없었겠지만, 어떤 각도로 어떻게 살펴봐도 연장전 결승골이 샤샤의 손에 맞고 들어갔으니 까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스포츠 신문들도 축구 까기 인형 모드로 1면에다 큼직하게 반칙 사진을 싣는 등 대놓고 깠다.
  • 2006 시즌 : 전반기 당시 그랑블루에서 차범근 감독과의 면담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을 정도. 하지만 후반기에 극적인 반전으로 챔피언 결정전까지 나갔다.
  • 2009 시즌 : 누가 봐도 흑역사...
  • 2010 시즌 : 전반기 순위표에서 대전 시티즌보다 밑에 있었을 정도면...
  • 2011 시즌 : AFC 챔피언스 리그 알 사드와의 경기 난투극, 설레블.
  • 2013 시즌 :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리그에서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 2016 시즌 : 9월이 시작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10위다. 이젠 K리그 챌린지로의 강등이 더욱 가까이 왔다.

16.1 블루윙즈폰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모기업의 주도하에 야심차게 준비한 재고떨이 마케팅으로 당시 삼성전자의 주력 스마트폰인 옴니아 II옴니아 팝을 기반으로 2010년 3월 블루윙즈폰을 출시했다. SK텔레콤과 연계해 통신사는 SKT로만 쓸수 있었으며 스펙 자체는 기존 옴니아와 동일했다. 기존에 출시한 옴니아와 다른 점이라면 블루윙즈 어플 내장, 블루윙즈 테마, 블루윙즈 일정 등 지금와서 보면 일반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구현할수 있는 기능이었지만 당시 팬들은 이 마케팅에 혹해 구매한 호갱 팬들이 많았다. 삼성스포츠단 내 다른 구단들도 있는데 굳이 수원만 이런 마케팅을 한 것은 아마도 가장 팬층이 두터운 것과 모기업이 삼성전자라서 이뤄질 수 있었던 듯. 또한 세계적으로도 단일 스포츠팀 전용 스마트폰은 유례가 없다는 점이 한몫한 것도 있는 걸로 보인다. 하지만 옴니아폰의 악평이 자자했기에 당시 갤럭시 S 출시를 앞두고 재고소진의 목적을 마케팅이라는 허울좋은 껍데기에 씌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같은 달 후속작인 갤럭시 S를 공개하고 3개월 뒤에 판매를 시작해 이걸 산 팬들을 호구로 만들었다.

17 수원삼성블루윙즈 갤러리

수원삼성블루윙즈 갤러리
  1. 삼성그룹의 계열사로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광고, 마케팅과 프로스포츠단 운영을 맡고 있다.
  2. 제일기획 스포츠사업총괄 사장으로 이서현의 남편이자 이건희 회장의 둘째 사위다.
  3. 전 삼성전자 부사장으로 실질적인 구단주 역할을 맡고 있다.
  4. 제일기획 상무
  5. 서포터즈의 이름인 프렌테 트리콜로( 전선)의 뜻과 연관이 있다.
  6. 정규리그+컵대회
  7. 정규리그+컵대회
  8. 아디다스컵, 대한화재컵 2개 대회 우승
  9.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으로 우승기록은 AFC 챔피언스 우승기록으로 계승되며 수원은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시절 마지막 우승팀이 되었다.
  10. 자꾸 과거형으로 바꾸는 위키러가 있는데 최근 관중수가 줄긴 했지만 여전히 전북현대, FC서울과 함께 K리그에서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11. 연고지는 수원시이지만 팬들의 구성을 보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수원 시민들 뿐 아니라 용인, 화성 등 수원 주변 경기도 지역, 서울의 강남 3구 거주자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옛 비칭이 수원 2중대인 이유도 인천이 창단되기 전 수원을 응원하던 많은 인천 거주 수원팬들이 주축이 되어 인천 서포터를 구성했기 때문.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강남역, 잠실역, 사당역에서 수원으로 출발하는 광역버스와 신분당선에서 수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12. 그리고 2014년부터 삼성그룹 전체가 스포츠에 대한 투자를 줄이기 시작했다. 대한축구협회 스폰서에서도 빠졌고 대한레슬링협회의 후원도 2013년을 끝으로 종료된 상태다. 2014년에 서울 삼성 썬더스용인 삼성생명 블루밍스가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이어서 삼성전자제일기획으로 넘어간 것도 몸집 줄이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대두되고 있다.
  13. 게다가 기업명이 비하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문화는 K리그 전체로도 좋지가 않다. 기업들이 수백억씩 쓰면서 구단을 운영하는 이유는 "모기업 광고" + "세제혜택" + "사회환원" 차원에서 운영하는 건데 기업명이 들어간다고 비하적인 표현이라고 주장한다면 그 어떤 기업이 리그에 돈을 풀고 팀을 창단할까?
  14. 이후 삼성전자 소속이었던 남자농구단, 삼성생명 소속이었던 여자농구단, 삼성화재 소속이었던 배구단 그리고 야구단까지 모두 제일기획에서 운영을 맡게 됐다.
  15. 그리폰이라고 불리는 신화 속 동물이다.
  16. 충주 험멜은 여태까지 K리그 참가만 안했을뿐 이미 1999년에 창단된 팀이다.
  17. 아디다스컵, 대한화재컵
  18. 아디다스컵
  19. 삼성 하우젠컵
  20. AFC 챔피언스리그 전신 "아시안클럽 챔피언십" 시절에 우승
  21. 그러나 2016년에 이르러 지속적인 성적 부진과 프런트들의 삽질로 인기가 FC서울, 전북현대에게 추월당했기 때문에 "대표하는 인기구단"이라는 말이 "대표했던 과거의 인기구단"이 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2. BLUE는 수원의 상징색이자 팀명에 들어간 단어로 수원을 지칭하고 WIN은 단어 그대로 이긴다는 뜻, GS는 FC 서울의 모기업인 GS그룹 즉 FC 서울을 지칭한다. 마치 FC 서울이 GS그룹 소유로 넘어간다는걸 예상이라도 한듯 절묘한 팀명이 아닐수 없다.
  23. 현재 수원에서 인정하는 라이벌은 대전 시티즌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FC 안양이 창단되어 그 팀도 라이벌 반열에 들어갈 것 같았지만 라이벌이 아닌 동맹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팀 때문에.
  24. 컵대회라고는 하나 양 팀 모두 베스트 멤버를 총출동시키며 경기를 치렀다.
  25. 타 지지자구단 보다 규모도 큰데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이런 저런 사고가 많았던지라 첫 우승 때 흥분에 못 이겨 경기장 밖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을 다 때려 부셔 구단이 차 값 물어준 적도 있었고, 2006년 FC 서울의 홈 구장인 상암에서 방화 사건을 일으킨 후 즉각적인 사과와 후속조치의 미비로 빈축을 샀으며 2008년 전북과의 경기에선 조재진의 야유방법으로 조재진과 스캔들이 있었던 백지영을 끌어들여 논란을 일으켰다. 참고로 이때 지지자연합 수뇌부의 대응은 '백지영에게는 미안하지만 조재진은 까야 하는 존재'로 요약된다.
  26. 물론 여기에는 서로 상대방이 악역을 맡아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27. 울산의 첫 K리그 우승
  28. 신홍기는 울산에서 수원으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울산과 마찰을 겪어 울산 올드팬들에게는 배신자 취급을 당하고 있다.
  29. 물론 서울 더비는 아직이다. FC 서울이 K리그 클래식에서 하위 스플릿조차 한 번도 없는 반면, 서울 이랜드 FC는 챌린지 중위권에 머물러 있다.
  30. 수원 FC가 프로화 되기전인 수원시청 축구단 시절에 만났었다. 마지막 경기는 2011년이다.
  31. 1무는 2005년도 FA컵에서 나왔는데 1:1로 비겼지만 결국에는 승부차기에서 수원 삼성이 이겼다.
  32. 이날 프렌테 트리콜로는 과거 구호였던 수원 삼성과 종합운동장 시절 썼던 몇가지 응원가들을 다시 쓰면서 여기가 과거 우리집이었다는걸 상기시키는듯 했다.
  33. 구단 소유가 아니고 구단이 삼성전자로 부터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다.
  34. 스포르트 헤시피에서 임대.
  35. 99년에 골든글러브 탔다.
  36. 리그+리그컵 기준으로 FA컵은 산정치 않았다.
  37. 챔피언 결정전 2차전 기록 누락.
  38. 챔피언 결정전 2차전 Vs. 울산
  39. 챔피언 결정전 2차전 Vs. 부산
  40. 전재운을 전북에 조공하고 받은 선수. 영입 당시 장신(196cm)의 타겟 맨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2년 동안 골 하나 못 넣는 초라한 성적을 남기며 방출되었다. 지금은 경산에서 축구 교실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41. 루이스 임대 종료 후 영입한 선수. 안 그래도 루이스가 전북에서 포텐 터진 것 때문에 욕먹는데 얘 때문에 더 욕먹는다(...). 팬들은 주로 루카스 오일(...)이라고 깐다.
  42. 수원에서 적응에 실패한 후 전북으로 이적해서 전북의 판타스틱 4로 활약하였다. 수원 시절 루이스를 윙어로 써서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차붐은 루이스가 보여준 전북에서의 포텐 폭발로 인해 엄청 까였다. 사실 루카스를 영입할 때까지만 임대 형식으로 데리고 있다가 임대종료가 되었다.
  43. 수원 시절 등록명이며, 수원에서 가비고종수라는 두터운 공격형 미드필더 주전 자리를 뚫지 못해 방출된 후 몇 년 지나서 대구로 이적할 때는 에닝요로 등록. 대구에서의 활약으로 전북으로 이적했다. 역시 판타스틱 4의 일원이며 루이스와 같은 이유로 욕먹는다.
  44. 2014 시즌 수원 수비의 중심인 헤이네르와 이름만 비슷한 잉여 공격수.
  45.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었으나 교체 출장할 때마다 손정탁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절망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게다가 2014년에 부상을 입어서 STC에서 재활을 받는 동안 재활 훈련에 임하는 태도가 매우 불성실하여 수원 구단에 의해 임의 탈퇴 처리되었다. 임의 탈퇴 때문에 국내 리그에서는 입단이 불가하여 결국 태국 3부 리그로 이적했다가, 2015 시즌부터 내셔널리그 용인시청 소속으로 뛰고 있다. 수원 드래프트의 저주에 한 획을 그은 그냥 전봇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