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건하

1 축구 감독

?width=120 (클럽별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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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부
(경남 FC)
이영익
(대전 시티즌)
조진호
(부산 아이파크)
정갑석
(부천 FC 1995)
김병수
(서울 이랜드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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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훈
(성남 FC)
조덕제
(수원 FC)
송선호
(아산 무궁화)
이흥실
(안산 그리너스 FC)
김종필
(FC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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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이랜드 FC 감독
박건하 (朴建夏 / Park Kun-Ha)
생년월일1971년 7월 2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대전광역시
182cm
선수 경력이랜드 푸마 (1994~1995)
수원 삼성 블루윙즈 (1996~2006)
가시와 레이솔 (임대) (2000)
코치 경력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2007~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U-18 감독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군 코치 (2010)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U-23 코치 (2011~2012)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2016)
서울 이랜드 FC 감독 (2016~)
선수시절 포지션공격수 → 수비수
대표팀 기록21경기 / 5골
1996년 K리그 신인상
노상래
(전남 드래곤즈)
박건하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신진원
(대전 시티즌)
수원 삼성 블루윙즈 역대 주장
신홍기
(1999~2000)
박건하
(2001)
서정원
(2002)
서울 이랜드 FC 역대 감독
마틴 레니
(2014~2016)
박건하
(2016~)
-
수원 삼성 블루윙즈 10주년 베스트 XI
FW
샤샤
FW
나드손
MF
데니스
MF
김두현
MF
고종수
MF
김진우
MF
서정원
DF
최성용
DF
박건하
DF
이병근
GK
이운재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주년 레전드
18
박건하
13
산드로
14
서정원
22
고종수
29
곽희주
7
김진우
3
이병근
1
이운재
11
데니스
12
나드손

1.1 소개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멤버이자 간지폭풍의 세리머니[1]와 팀에 대한 충성심으로 유명한 선수.

서울 이랜드 FC 감독.

1.2 선수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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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우송 중학교 (당시 대전 동중학교)를 졸업했는데 중학교 2, 3학년 때 전국 대회에 나가 학교 선배인 이태호, 김삼수가 활약하던 시절 이후 오랜만에 학교를 우승으로 이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으나 당시 K리그에 있던 드래프트 제도에 반발,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당시 실업리그 최강 팀이었던 이랜드 푸마에 입단하여 활동했다. 1996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가 창단하게 되면서 프로 진출을 선언, 수원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게 되었다.

수원에서 뛰게 된 첫 시즌에는 '중고 신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꾸준히 활약, 34경기 출장 14골 6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2001 시즌까지 꾸준히 수원의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은근히 잔부상이 있었으며 수원의 공격수가 그동안 워낙 후덜덜해서[2] 박건하는 주로 No.3 공격수 정도로 취급받기도 했으나 타 K리그 팀들의 영입 제의가 있어도 꾸준히 수원에 대해 충성심을 바쳐오기도 했다. 2000년에는 수원에서 가시와 레이솔로 임대를 간 샤샤를 대신해서 3개월간 가시와로 임대를 갔다오기도 하였으나 수원으로 복귀하여 다시 활약하게 된다.

2002시즌을 앞두고 당시 수원 수비진의 부실화 및 박건하의 전체적인 공격수로의 폼 저하, 그리고 그의 수비수로서의 재능을 눈여겨 본 김호 감독에 의하여 중앙수비수로 보직을 변경하였는데 이것이 예상외로 대성공을 거두었다.[3] 비록 발이 느려졌긴 하지만 공격수 출신이라는 점을 이용, 공격수들의 심리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박건하의 지능적인 플레이는 당시 수원이 운용하던 포백에서 조성환이나 조병국과 같은 젊은 수비수들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

2005년에는 박주영과 몸싸움을 하다가 코뼈 부상을 당해서 안면 보호용 마스크, 일명 '타이거 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출장하기도 하였다. [4]

1.3 은퇴 이후

2006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고, 첼시 FC에서 연수를 받은 후 수원 삼성에서 코치 생활을 하였다.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감독을 거쳐 윤성효 감독 선임 때 같이 수원 코치로 승격하였다.

2011년 1월 4일 서정원 코치가 국가대표팀 코치로 옮기게 되어 비어버린 올림픽 대표팀 코치 자리를 채우게 되었다.관련기사 참고로, 그와 같은 시기에 수원 매탄고(수원 U-18팀) 코치로 고종수 코치가 영입. 어차피 세상, 돌려먹고 나눠먹어 아름다운 세상 아닌가?

2013년 홍명보호가 출범하면서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었고, 동아시안컵, 브라질 월드컵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워낙에 결과가 안좋아 선수단이 단체로 욕먹던 와중에도 이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감독 교체 후 사퇴가 유력했다. 이후 슈틸리케호에서도 2015년 AFC 아시안컵까지 코치로서 남아있게 되었다. 외국인 감독으로서 국내 축구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코치가 필요한 이유였다.

그리고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이루는 성과를 올리자 그런대로 까방권은 얻게 되었고 이후 김봉수 골키퍼코치와 함께 계약 연장을 하며 국가대표팀 코치로서 잔류하게 되었다.

1.4 서울 이랜드 FC 감독

2016년 6월 성적부진을 이유로 경질된 마틴 레니의 후임으로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으로 선임이 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년까지 2년 6개월이다.

현재 서울E의 전신은 아니지만 이랜드 푸마에 속해있었던 것이 잠시 화제가 되었다.

7월 3일 부천 FC와의 잠실 홈경기에서 첫 승을 거두었다.

1.5 선수 이력

시즌출장득점어시
1996년34경기14골6어시
1997년16경기0골4어시
1998년22경기0골2어시
1999년39경기12골6어시
2000년19경기6골4어시
2001년30경기4골4어시
2002년29경기2골0어시
2003년31경기0골0어시
2004년31경기0골0어시
2005년26경기1골0어시
2005년26경기1골0어시
2006년15경기0골0어시

트레이드 과정에서 꽤 개그스런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2000년 당시 팀 개편을 하던 수원이 당시 K리그 특급 용병 사샤를 가시와로 먼저 보냈다[5]. 사샤와 매우 친하게 지냈던 박건하는 매우 아쉬워 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는데, 얼마 후 박건하도 가시와로 임대 갔다.(...) 그러다 J리그에서 적응하지 못하던 사샤가 수원에서 데니스와 트러블을 일으켰던 황선홍과 맞트레이드 되면서 두 사람은 다시 아쉬운 작별을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박건하도 다시 수원으로 돌아왔다.(...) 덕분에 둘 다 상당히 멋쩍은 반응이었다고. 박건하는 사샤보고 '이제 너 얼굴 보는 것도 질림ㅋ'라는 반응을 보였다.

2 하얀거탑의 등장인물

박건하(하얀거탑) 항목으로.

3 국산 만화 의 박건하

박건하(짱(만화)) 항목으로.
  1. 골을 넣은 후 에릭 칸토나가 자주 보여준 깃 올리기 세레머니를 하였다.
  2. 그와 함께 뛴 공격수들로는 샤샤, 데니스, 황선홍, 비탈리, 미하이 등 그야말로 K리그를 정ㅋ벅ㅋ한 선수들이 넘쳐난다.
  3. 김호 감독은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대전 시절 정성훈에게도 수비수 전향을 권했다가 거부당했고 정성훈은 대전을 떠나 부산에서 공격수로서의 재능을 만개했다.
  4. 김태영이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은 이후에 8강전부터 썼던 그 마스크이다.
  5. 이는 1999년 시즌 부산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사샤가 핸들링 결승골을 넣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안 그래도 괴물같은 전력으로 K리그 각팀 팬들로 부터 원성을 사고 있었던 상황에서 이 사건으로 거의 공공의 적 급으로 팬심이 격앙되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