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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元雄
1944년 03월 08일 ~
1 개요
1944년 중국 충칭 시에서 조선의열단 김근수 지사와 여성 광복군 전월선 여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8.15 광복 후 가족들과 충청남도 대전부에 정착하였다. 대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6.3 항쟁에 참여하였다가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졸업 이후 민주공화당 사무처 직원 공채에 합격하여 당료로 근무하였다.[1]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고 민주정의당이 창당되자 민주정의당 사무처 직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이 후 민주자유당을 탈당, 꼬마민주당에 합류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전직할시 대덕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자유당 이인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국민학교 명칭이 일제강점기의 잔재라며 초등학교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1995년 김대중이 정계복귀하여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할 때 따라가지 않았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대덕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민주연합 이인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노무현, 김정길 등과 통합추진국민회의를 조직하였고 하로동선이라는 고깃집도 공동 경영하였다. 1997년 3김 정치 청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의 보수적 노선에 반발했으며 이 문제로 국회 본회의 도중 김용갑과 설전을 벌였다.[2]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을 탈당하여[3] 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고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를 간접 지원하였다. 2003년 개혁국민정당을 탈당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6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윤리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선진당 김창수 후보와의 세번째 대결에서 패배하고, 제5회 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 범야권 단일후보로 출마했으나 3위로 광탈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었다.
이 후 재야에서 활동하던 중, 2015년 진보적 NGO 활동가, NL계 통일운동가 등과 함께 '민주통일정치포럼'을 창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3월 13일 '민주통일연합 창당추진위'를 발족시키며 상임대표로 활동 중이다.
2 선거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직할시 대덕구) | 민주당 | 33,393(42.41%) | 당선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광역시 대덕구) | 통합민주당 | 26,090(32.25) | 낙선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광역시 대덕구) | 한나라당 | 29,034(34.19) | 당선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광역시 대덕구) | 열린우리당 | 47,062(50.75) | 당선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대전광역시 대덕구) | 통합민주당 | 21,331(30.05) | 낙선 | |
2010 |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대전광역시장) | 민주당 | 137,751(23.28) | 낙선 |
- ↑ 김원웅은 2001년경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당시만 해도 박정희를 타도의 대상으로 보지는 않았고, 오히려
사꾸라유진산이나정신적 대통령윤보선보다는 비전이 있는 사람으로 생각해서 공화당을 선택했다고 술회했다. - ↑ 2001년 6월 남북 관계를 놓고 당이 너무 대결구도로 몰아간다는 김원웅의 발언에 김용갑이 "잘 돌아가는 당에 왜 찬물을 끼얹느냐? 그러려면 나가!"라고 일갈하자 이에 발끈한 김원웅이 "내가 왜 나가! 낡은 사람들이 나가야지!"라고 맞받아친 것. 여기서 낡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상상에 맡긴다.
- ↑ 여담으로 이 당시 조선일보 만평을 보면 이회창 당시 대통령 후보를 비롯한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앓던 이가 빠졌다!"면서 김원웅 의원 탈당식을 성대하게 열어주는 것으로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