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고르노카라바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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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국가가 미승인한 유엔 회원국이나 초소형국민체는 기재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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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르노카라바흐의 명목상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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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트 노가다? 끼워 맞추면 아르메니아

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 (아르메니아어, 레르나인 가라바그)
Dağlıq Qarabağ (아제르바이잔어, 다글르그 가라바그)
Нагорно Карабах (노어, 나고르노 카라바흐)

이란러시아 사이, 캅카스 지역의 아제르바이잔 영토 내에 있는 미승인국. 임시 수도는 스테파나케르트(Ստեփանակերտ, Xankəndi). 소련시절 면적 4,400㎢. 전쟁이후 영토확장에 성공하여 실제 나고르노 카라바흐 공화국(Լեռնային Ղարաբաղի Հանրապետություն, 레르나인 가라바기 한라페투튠)이 통치하는 영역은 11,500 km2, 인구는 약 14만 1천명(2010). 카라바흐 고원 지대(Нагорный Карабах)라고도 부르며, 역사적인 지명인 아르차흐(Արցախ)로도 불린다. (사실상 독립국이며 국제사회에선 아르메니아의 괴뢰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1 역사

1.1 소련 붕괴 이전

1921년 이오시프 스탈린이 이 지역을 멋대로 아제르바이잔에 넘겨줌으로써 불씨를 만들었다. 이는 주민 대다수가 무슬림인 아제르바이잔에 대한 우호적 조치를 통해 신생 터키 공화국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기 위한 정치적 고려 및 매우 강경했던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를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에 따른 결정이었다.[3] 1923년에 자치지역이 성립되었다.

1.2 나고르노 카라바흐 전쟁

1988년 2월 20일부터 1994년 5월 16일 사이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간에 일어났던 전쟁.

1988년 2월 20일, 카라바흐 고원 지방의 아르메니아계 인민대표들이 아르메니아 귀속 동의를 천명했다. 그러자 아제르바이잔은 자치주를 폐지해 공화국의 직할 통치하에 두었고, 숨가이으트(Sumqayıt)에서 아르메니아인 학살사건이 일어났다.[4]

1989년 12월 1일, 아르메니아 최고소비에트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아르메니아에 합병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서 17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인이, 아제르바이잔에선 35만 명의 아르메니아인이 추방당했다.

1991년 소련의 8월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공화국에 대한 장악력이 약해지자, 9월 2일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독립 선언을 한다. 11월 4일, 아제르바이잔은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경제 봉쇄로 대응했다. 같은 해, 아르메니아에서는 카라바흐 고원 지대의 아르메니아 귀속을 요구하는 시위가 수도 예레반에서 수 차례 터졌다.

소련이 붕괴한 뒤인 1992년에는 드디어 전쟁이 폭발하였고, 그 와중에 2월 25일에는 호잘르(Xocalı) 시에서 아르메니아인 과격파와 소련 군대가 아제르바이잔인을 학살한 호잘르 학살사건(Xocalı soyqırımı)이 벌어졌다.

1993년, 아르메니아 군대가 침공해 캘배재르(Kəlbəcər), 아그담(Ağdam), 퓌줄리(Füzuli), 재브라이을(Cəbrayıl), 잰길란(Zəngilan) 같은 아제르바이잔 남서부 주요 도시를 연달아 무력 장악했으며, 카라바흐 고원만이 아니라 아르메니아 국경과 인접한 아제르바이잔 영토도 점령했다. 이 때 점령한 영토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포함한 아제르바이잔 영토의 20%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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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승인국인 나고르노카라바흐 공화국(NKR)의 영역

체첸 반군과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까지 아제르바이잔 편에서 싸웠지만[5] 아제르바이잔은 전쟁에서 잇달아 패배했고, 그 바람에 대통령이 계속 바뀌었다.[6] 막판에 아제르바이잔은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이 했던 것처럼, 16세 이상은 무조건 동원하는 인해전술까지 펴기 시작했다[7].

이 전쟁에서 아제르바이잔이 크게 열세를 보인 이유는 아르메니아 쪽에선 경험이 풍부한 보병 위주였던 반면 아제르바이잔 쪽에선 바쿠 유전에서 석유채취하던 공병 출신들이 많았던 점도 있고, 미국과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란은 자국 북부 아제르바이잔인의 분리 움직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아르메니아편에 가까운 중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은 실상 고립된 상태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아주 잠깐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의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으로도 진격한 적이 있었는데, 터키 국경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보니 아제르바이잔의 혈맹인 터키가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에서 당장 철수하지 않으면 터키가 아르메니아와 전면전을 벌일 것이라 경고하며 터키군을 아르메니아 국경으로 이동시키자 바로 철수했다. 그래서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이 전쟁의 포화에서 별 영향이 없었던 것. 나히체반 자치공화국은 터키의 개입으로 전쟁의 포화는 면했지만, 대신 실상 아르메니아편에 선 중립국 이란 덕분에 본국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동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아제르바이잔으로서는 1993년, 남부 소수민족인 탈리쉬족이 한때 일방적으로 자치를 선포했던 악재도 겹쳤다.

1994년, 러시아와 프랑스가 중재에 나섰다. 로베르트 코차리얀이 아르메니아 대통령에 당선되고, 5월 5일 비슈케크 조약으로 정전(停戰)하였다. 전쟁은 사실상 아르메니아의 승리라는 게 중평. 동원된 총병력은 아르메니아측 2만(아르메니아군 8000, 나고르노카라바흐군 1만) 대 아제르바이잔측 4만2천(아프간, 체첸 의용병, 터키 장교 등 1500~2500명 제외)으로 아제르바이잔이 훨씬 많았는데도 전사자는 아르메니아측 4,592명에 아제르바이잔측 2만5천~3만 명이었다. 민간인 피해는 아르메니아인 1500명 가량 사망에 아제르베이잔 700명 가량 사망. 아르메니아 난민은 50만 가까이였고 아제르바이잔 난민은 70만 정도였다.[8]

1.3 휴전 이후

양국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1992년 이래 러시아, 미국, 프랑스가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틀 안에서 회합을 거듭했으나 별 성과가 없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양쪽 모두 나름 정당한 요구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아제르바이잔은 이미 설정되어 있던 자국 영토의 온전성 회복을, 아르메니아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른 아르메니아 민족의 통일성 회복을 요구했기에 이 두 가지 요구가 평행선을 달려 타협이 불가능했다.

전쟁 때 아제리인 주민이 난민이 되어 도망간 아그담(Ağdam) 같은 도시는 여전히 유령도시로 있다.

2014년 8월, 이 지역에서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 충돌이 다시 시작했다.#

2 주민

2010년 현재 나고르노 카라바흐 지방의 인구는 약 14만 1천 명으로,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의 인구는 그 중 5만 3천 명이다. 민족별 구성은 소련 붕괴 이전에는 인구의 약 74%가 아르메니아인, 25%가 아제리(아제르바이잔)인으로 집계되었으나,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때 이 지역의 아제리인은 모두 난민이 되어 떠나고, 지금은 아르메니아인 95%, 기타(쿠르드인, 아시리아인) 5%이다.

3 상징물

3.1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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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6월 2일에 제정되었으며 아르메니아의 국기를 기반으로 도트 노가다 하얀색 V자 모양의 톱니 문양이 계단처럼 그려져 있는 건 아르메니아 전통적인 융단에서 나왔으며, 아르메니아의 영토에서 삼각형 모양으로 분리된 지역임을 뜻한다.

3.2 국가

기악판

보컬판
제목은 "아르차흐[9]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아르메니아어: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아자트 우 안카흐 아르차흐)"

아르메니아어 가사한국어 해석
Ազատ ու անկախ Արցախ,
Քո տուն-ամրոցը կերտեցինք,
Պատմությունը մեր երկրի,
Մեր սուրբ արյամբ մենք սերտեցինք։
아르차흐는 자유와 독립을 원하리.
우리 모두가 지은 요새가 있네.
우리의 피와 우리의 조국은,
역사 속에서 남으리라.
Դու բերդ ես անառիկ,
Բարձունք սրբազան, վեհ անուն,
Մասունք աստվածային,
Քեզնով ենք հավերժանում։
너는 난공불락의 요새이니,
신성한 봉우리이자, 고귀한 이름의
신이 내리신 은총이요.
너로 하여금 우리는 존속하노라.
Դու մեր լույս հայրենիք,
Երկիր, հայրենյաց դուռ սիրո.
Ապրիր դու միշտ խաղաղ,
Մեր հին ու նոր Ղարաբաղ։
너는 하늘이 주신 조국이자
우리의 고향, 우리의 사랑이다.
평화 속에서 살아가리라
우리의 오랜 카라바흐에서.
Քաջերն ենք մենք հայկազուն,
Մռավ ենք, Քիրս ենք ու Թարթառ,
Մեր վանքերով լեռնապահ՝
Անհաղթելի մի բուռ աշխարհ։
우리는 자랑스러운 하이크와
므로브, 키르스, 타르타르의 후예이다
높은 산 속 수도원 아래
우리에게 맞설 자 그 누구도 없나니.

4 현황과 전망

나고르노 카라바흐는 독립국이나 아르메니아와의 통합을 추진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의 격렬한 반대와 지역의 질서 붕괴를 우려하는 이웃 국가 및 강대국들의 염려 때문에 현상 유지 중이다. 최악의 가능성은 아제르바이잔이 카라바흐 고원의 무력 탈취에 나서는 것이고,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언젠가 무력으로 되찾을 것임을 천명한다. 그러나 러시아가[10][11] 아르메니아에 군대까지 주둔시키니 진짜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아르메니아가 나히체반을 비롯하여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여러 곳을 자국 영토로 주장하고 있어 아르메니아가 아제르바이잔에게 전쟁을 걸 가능성까지 있다. 물론 이것도 러시아가 반발할 가능성이 커서 못하겠지만.

하지만 국제적인 미승인국으로서 러시아도, 아르메니아도 이 나라를 인정하지 않으며[12], 아르메니아 영토라고 못 인정하는 상황에서 아르메니아에게 전적으로 모든 걸 의존한다. 아르메니아에 붙어있는 아제르바이잔 영토를 덤으로 점령하기 전에는 영토가 아제르바이잔 안에 있어서 모든 걸 비행기를 통한 수송으로만 풀어야만 했다. 육상은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강력하게 막았기 때문.

이 땅들은 1994년의 정전 협정에 의해 지금까지 나고르노카라바흐 측이 점유 중이다. 이렇게 아르메니아로 통하는 길을 뚫은 덕에 육로로 맞닿았지만, 전쟁 중에 수도 스테파나케르트 인근의 공항이 부서져 거꾸로 비행기로 진입할 수가 없었게 되었다. 복구공사를 마치고 공항을 완공하였으며 국영항공사까지 설립했음에도 항공운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제르바이잔 측에서는 이 지역에 민간 공항이 개장하면 그곳을 비행하는 항공기를 격추하겠다고 위협해서 과연 언제 정상적인 비행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미승인국이라서 세계은행의 투자도 막혀있기에 제대로 된 공업시설이나 여러가지를 갖추기가 어려운 실정.

아제르바이잔과 터키가 더불어 보복으로 원유 및 가스 파이프관 및 철도선을 일부러 아르메니아를 비켜가고 조지아를 통하여 빙 돌아서 연결하게 하면서 아르메니아는 막대한 이득을 날려버렸다.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르메니아에게 모든 것으로 경제적 의존에 매달리는데, 러시아도 승인하지 않고 원유국인 아제르바이잔 눈치도 생각하면서 지원하지 않고 있다. 아르메니아는 그다지 자원도 없고 해외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이 해주는 경제적 이득에 많이 기대는 상황이다. 아르메니아로선 좀 더 경제적으로 해외 투자를 늘리고 싶어도 더 시장이 엄청난 유라시아 튀르크계 나라들의 형님 격인 터키 때문에 힘들다. 그 덕에 아르메니아는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독이 든 빵이자 애물단지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러시아는 이 전쟁을 도운 댓가로 아르메니아에 러시아군을 장기간 주둔시켰으며 아르메니아의 대러시아 군사적,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졌다. 노골적인 친러정책 강요에 아르메니아에서도 2012년 반러 시위가 벌어졌으나 유로마이단같이 대놓고 갈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이 둘러싼 상황(조지아도 두 나라에게 경제적으로 많이 기대는 터라 아르메니아에게 선을 긋고 있다)에 뭐라고 말 못하는 상황이다. 2015년 1월에는 아르메니아 규므리에 주둔하던 러시아군이 탈영하여 아르메니아인들을 쏴죽이고 강간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러시아 군사재판으로 징역 5년형을 내리는 처벌에 그치기도 하고, 러시아가 독점하는 전기세를 갑자기 16% 올리는 등 행패를 부려 아르메니아에서 반발하고 시위도 벌어졌으나 정부는 시위를 필사적으로 뭉개버렸다. 아르메니아로서는 러시아가 떠나면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에게 박살날 뿐이라 더러워도 참아야 하는 상황이다.

2012년 8월 31일, 헝가리 당국이 아제르바이잔 정부로부터 처벌한다는 약속을 받았다면서 2004년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군사학교에서 같이 언어 연수를 받던 아르메니아군 장교인 구르겐 마르가랸(사망 당시 26세)을 도끼로 살해한 죄[13]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던 아제르바이잔군 대위였던 라밀 새패로프(Ramil Səfərov,1977~ )를 수형자 이송 협약에 따라 아제르바이잔으로 이송했는데 아제르바이잔 정부가 새패로프 대위가 도착하자마자 즉시 석방시키고 소령으로 진급까지 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Ramil_Safarov_killer_baku1.jpg
아르메니아 시위대가 들고 있는 저 사진에서 당연히 왼쪽이 가해자 새패로프. 오른쪽은 피해자 마르가랸. 사후 훈장 수여 및 소령 진급이 추서됐다.

분노한 아르메니아의 세르지 사르키샨 대통령은 즉각 헝가리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으며, 두 나라 사이에 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번 건은 하도 병크라 아제르바이잔을 편들어주는 나라는 없다고 봐도 좋을 듯. 하지만 겨우 1명이 죽은 사건이라 그런지(...) 국제적으로 별다른 관심이 없다. 아제르바이잔은 여전히 배째고 있고 터키나 주변 나라들은 모른척하거나 별 반응이 없다. 러시아나 이란에선 잠깐 비난했지만 유로마이단같은 훨씬 크나큰 주변 상황 때문에 미국이나 다른 유럽 나라들에서는 이 사건은 묻혀지고 있다. 물론 아르메니아계 미국인들은 항의시위를 벌이고 미국 정계도 일단 비난했다. 백악관안전보장회의 대변인 토미 비에터(Tommy Vietor)는 오바마 대통령은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라밀 사파로프가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그를 사면해 준 것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했다며, 사파로프에 대한 사면 결정은 역내 긴장 완화와 화해를 증진시키기 위한 현재의 노력에 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미국 측의 실망을 아제르바이잔 측에 전달하였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토미 비에터는 “미국 측은 헝가리 정부가 사파로프를 아제르바이잔으로 송환한 조치에 대한 해명을 요청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산하 민스크그룹의 공동 대표인 러시아와 프랑스는 이 사안을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협약한 자원 개발에 피해가 갈까 별다른 비난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도 곧 유로마이단이나 다에쉬같은 문제로 묻혔다. 이란도 비난했지만 가해자 새패로프가 시아파 무슬림이라... 결국 새패로프는 잘 살고 있고, 이렇게 잊혀져버렸다.

아제르바이잔은 무안단물석유가 있고 아르메니아는 항구도 지하자원도 없는 데다가 사방이 적국인, 그야말로 암울한 상황이니 문제다. 아르메니아는 사실상 미국 가서 성공한 아르메니아인 동포들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나라다. 그런데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그 근면성으로 성공을 이루어냈고 부유한 걸로 유명하지만, 그 분야 선배인 유대인들과 경쟁하는 사이이고, 아르메니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아르메니아와 이스라엘은 별로 사이가 안 좋다. 위에 서술하듯이 러시아에게 군사적, 외교적으로 의존하지만 러시아는 저렇게 행패를 부리는 상황. 더불어 산유국과 그지 깽깽이 나라와의 군비경쟁은 도저히 못 성립하므로 나고르노카라바흐의 운명이 그닥 밝지만은 않다.

2016년 4월 2-5일, 나고르노 카라바흐의 영유권을 놓고 접촉선에서 아르메니아 군과 아제르바이잔군 간의 충돌이 일어나 아제르바이잔군 95명이 사망하고 헬기 1대가 격추당했으며, 아르메니아 군 역시 88여명의 사망자와 120명의 부상자, 전차 6대, 야포 15문을 손실했다.

5 관광과 출입국

카라바흐 공화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 국적자를 대상으로 입국 전 사전비자를 요구한다.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에 있는 카라바흐 공화국 대사관에서 당일치기로 발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사실상 도착비자 제도를 운영 중이라 할 수 있는데 유효한 여권을 들고 국경 검문소에서 입국신청서를 작성 후 수도 스테파나케르트에서 거주등록 절차를 밟으면 비자발급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곳에 입국해서 여권에 나고르노카라바흐 스탬프가 찍히게 되면 사전에 아제르바이잔 외교부의 허가를 받은게 아닌 이상 아제르바이잔 입국이 평생 불가해진다고 한다. 여권을 바꾸면 어떨까? 동일 여권으로 아제르바이잔을 출입할 일이 있을 경우 비자 발급시 반드시 별지에 비자를 받고 싶다고 요청하여야 한다. 그것말고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쌍방에서 상대국 입/출국 스탬프만 찍혀 있어도 국경에서 눈빛이 달라진다

아르메니아 를 통해서만 출입국이 가능한 상태이며, 대중교통 국제선의 경우 아르메니아 예레반 - 고리스 - 스테파나케르트 노선의 미니버스(6시간 30분 소요)만이 유일하다. 2016년 1월 기준으로 하루 1대, 오전 7시에 예레반 버스터미널에서 마슈르카를 운행한다

수도 스테파나케르트를 중심으로 각 지방도시 행 버스가 있으며 (외국인의 경우 버스티켓 구매시 국내선임에도 비자여부를 검사한다.) 스테파나케르트 내에선 시내버스가 야간까지 활발히 있는 편이다.

미승인국인 만큼 카라바흐 내에서 국제로밍이 되는 통신사는 거의 없으며 현지 통신사인 KT(Karabakh Telecom)을 이용하는 편이 편리하다.
  1. 나고르노 카라바흐 및 인근 7개 지역
  2. [[1](아제르바이잔 정보, 이유는 미승인국 문서 참고)]
  3. 소련에서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상당히 강했으며, 소련 해체 이전까지 내부 주요 민족 문제 중 하나였다. 스탈린 시절 아르메니아 민족주의는 당연히 매우 강경하고 강력했으며, 이 아르메니아 민족주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라라트산을 터키 영토로 인정했다.
  4. 그런데 이에 대하여 당연하지만 두 나라의 사건에 대한 평이 다르다. 아르메니아는 당연히 아제르바이잔이 자행한 잔악한 학살이라고 비난하고,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계의 폭동으로 아제르바이잔인들의 인명 피해가 생겨 진압한 것이라고 서로 다르게 주장한다...
  5. 전투원이 한명이라도 아쉬웠던 아제르바이잔에서 찬밥 더운밥 안 가리고 받아들였다.
  6. 외부의 눈에는 그게 그거 같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아르메니아보다 인구와 영토가 2배나 큰 대국이다.
  7. 실제로 아제르바이잔은 대대적 반격으로 퓌줄리와 호자밴드(Xocavənd) 시를 되찾기는 했다. 캘배재르 탈환 작전은 실패했지만
  8. 출처는 위키피디아, The Caucasian Knot: The History and Geopolitics of Nagorno-Karabagh,Gefährliche Töne의 "Frozen War" 등.
  9. 나고르노 카라바흐
  10. 1995년부터 규므리(Гюмри)에 제 102기지를 설치해 5000여 명의 러시아군 병력이 주둔하며 S-300과 MiG-29로 무장했다. 원래 25년 기한이었지만 2010년에 메드베데프의 방문 때 49년(만료기간 2044년)으로 연장했다.
  11. 소련 이후 아르메니아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군은 철수했으나,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으로 아제르바이잔과 터키의 양면 봉쇄를 돌파할 방법이 없었던 아르메니아와, 반러로 돌아선 조지아를 견제하고 CIS지역에서 군사적 영향력을 보존하려던 러시아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러시아를 아르메니아를 지원하니 아제르바이잔에서는 러시아에의 감정이 당연히 좋을 리가 없다. 아제르바이잔 가발라 지역의 러시아군 미사일 조기경보용 레이더 기지도 주둔 기한 연장을 거부당하고 2012년 말 운용을 정지했다.
  12. 압하지야, 남오세티야, 트란스니스트리아만 이 나라를 인정한다. 이곳 문제를 안는 아르메니아로서는, 이곳을 승인하지 않은 채로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미승인국을 승인하면 (형평성 문제도 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압하지아, 남오세티아 등을 승인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워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아르메니아는 코소보, 압하지아, 남오세티아 등은 물론, 팔레스타인도 승인하지 않는다. 관련기사 또는 사설1(영어), 관련기사2(영어), 팔레스타인의 국제승인문제(영어위키백과) 참조.
  13. 그것도 잠을 자고 있는 걸 도끼로 수십번 난도질해 끔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