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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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멘어: Saparmyrat Ataýewiç Nyýazow(사파르므라트 아타예비치 느야조브), Türkmenbaşy(튀르크멘바시으)[1]
러시아어: Сапармурат Атаевич Ниязов(사파르무라트 아타예비치 니야조프)
영어: Saparmurat Atayevich Niyazov

1940년 2월 19일 ~ 2006년 12월 21일
임기 : 1990년 11월 2일 ~ 2006년 12월 21일

"나는 개인적으로 거리에 있는 내 초상화와 동상들을 보는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국민이 원하는것이다."

겸손 돋네 # 자기 사진을 싫어하는 이의 표정

1 개요

투르크메니스탄자칭 국부이자 종신독재자. 다만 흔한 악질 독재자들과 달리 기행을 좋아하긴 했어도[2] 사람의 선을 넘지 않은 점은 다르다. 말하자면 괴짜

그는 튀르크멘 국민의 우두머리라는 뜻의 아타튀르크 터키 국민들이 화낼라... 튀르크멘바시으(Türkmenbaşy)라고 스스로를 자칭했다. 원래 자신을 아타튀르크멘(Atatürkmen)으로 칭했는데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터키 정부가 항의해서 바꿨다는 일화가 있다. 이슬롬 카리모프 등과 더불어 막장 독재자로 유명하다. 다만 사람을 적극적으로 죽이거나 한 건 아니고 워낙 무개념스러운 기행을 많이 한 것이 크다.

1940년 투르크메니스탄 아할 주 그프자크(Gypjak)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소전쟁 와중에 전사하고 1948년의 아시가바트 지진으로 어머니와 형제도 잃어 고아원에서 생활을 했다. 이후에 먼 친적에게 맡겨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속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에 입학하였고, 1962년 공산당에 가입하게 된다. 1967년에 박사학위를 땄고 이후에 승승장구하여 만 45세때인 1985년 투르크멘 SSR 공산당 서기장이 되었고, 5년간 서기장으로 재직하다가 1990년 투르크메니스탄 SSR의 초대 직선제 대선에서 압승을 거둔뒤에[3] 소련 붕괴 이후에 독립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적어도 이 시기까지는 똘끼가 있어보이는 사람은 아니었고, 오히려 밑바닥에서 독립국의 초대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 니야조프의 행동에 고삐를 쥘 주체가 사라지면서 니야조프는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그 이후부터 우스꽝스러운 기행이 시작되었다...

2 독재자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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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김일성?
그의 그 유명한 황금 동상. 대통령궁의 한복판에서 를 바라보며 돈다. 해시계 # 실제 높이 # 다른 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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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두개가 아니다! # # # 실제 높이 2

그리고 독립이후에 서기장 시절의 자신을 기리기 위해 투르크메니스탄 서쪽의 항구도시 크라스노보츠크(Красноводск)를 튀르크멘바시으로 개칭하는가 하면 고등교육 과정을 2년으로 단축시켜 버리고 학교를 반으로 줄였으며 1993년 이후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의사, 교사를 해고했다.[5] 이에 전문인력이 부족해져서 군인의사 일을 할 지경이었지만 그는 이를 의료비를 절감한 혁신적 정책이라 자화자찬했다. 근데 이정도면 뭐 평범한(?) 독재자...

자기 부모 생일을 각자 국경일로 정했다. 지 애비 생일은 아버지의 날, 어미 생일은 어머니의 날 국경일로 정한다든지.

투르크메니스탄의 기후를 캐무시한 채 1000명이 들어갈수 있는 얼음궁전을 지으라고 명령했으며 실제로 수도 아시가바트 외곽의 산악 지대에 얼음 궁전을 짓기 위한 조사가 실시되었다.

거기에 멜론을 무지 좋아 해서 매년 8월 둘째주 일요일을 멜론의 날이라고 기념일로 만들었다.링크.기념일 더 있으면 좋지 뭐 뭐, 변명이라고 하자면 저 동네에서 생산 되는 머스크멜론이 덩치도 크고 씨알도 굶직한데, 안에 과육은 달달한 크림과 같은 짙은 풍미로 꽉차있어 장난 아니게 맛 있으며, 구소련권 전역에서 인기 많은 특산품이긴 하다.머, 먹어보고 싶어!! 본격 투르크메니스탄 멜론 홍보 글

2002년 그는 1년을 8달로 한 이상한 역법을 창시했고 자신이 태어난 달(9월)과 자신의 부모 이름을 달 이름으로 쓰는 등 온갖 이상한 기행을 벌였다. [6]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같은해 2월 18일 자신의 62번째 생일 기념 행사때 62세에 죽은 무함마드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명목으로 모든 국민은 62세가 되는 날 정부수당과 함께 3일 간의 휴가를 갖게 될것이라고 선언했다.

인생을 12년 주기로 나눈 니야조프 분류법에 의하면 노년층은 85세에서 시작하며 73세는 지혜의 나이 61세는 영감의 나이이다어째 거꾸로 가는것 같다 니야조프는 자신이 쓴 시에서 자신을 투르크멘의 정신이며 황금시대를 가져온 구세주로 자신을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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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에 얼굴은 기본이었다.

그가 집권하던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의 국가 첫 소절은 "Türkmenbaşyň guran beýik binasy", 그러니까 "튀르크멘바시가 세운 위대한 건축물"이라는 가사[7]로 시작되어 노래 시작되자마자 독재자 찬양이 나오는 가사였다. 다행히 2006년 그가 죽은 후 가사가 바뀌었다.

국영TV에서 시시때때 이 인간 얼굴이 엄청나게 자주 비쳐졌던건 기본, 한국인 여행자가 여기 가서 화장실만 가도 화장실에까지 이 인간 사진이 걸려서 경악했다는 증언도 있다.[8]

기상청일기예보에 실패해 그에게 비를 맞게 했다고 월급이 반토막이 났고 목이 안날아간게 다행이다 현재 대통령인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보건장관으로 재직했을 당시 의사와 간호사들의 월급이 연체중이라는 이유로 똑같이 몇 개월간 월급을 받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본격 함무라비 법전의 재림또한 그의 카레이싱을 위해 도로는 항상 비워져야 했다.

3 루흐나마

그걸로도 부족해서 이 인간은 튀르크멘바시(튀르크멘의 아버지)임을 자칭했다. 그리고는 경전을 썼다! 궁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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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수도 아시가바트에 있는 루흐나마 기념비

그는 루흐나마[9](라는 불쏘시개 경전을 써 정식 교육과정에 포함시키고, 모스크에도 배치하며, 운전면허 시험에서도 암송하게 했다. 이에 따라 시험시간은 16시간까지 늘어났다. 그리고 2006년 그는 터키력 신년을 축하하는 행사에서 "누구나 루흐나마를 한 번만 읽으면 지혜로워지며 새벽과 일몰 때 등 하루 세 번 읽으면 신비한 존재를 인식하게 되어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 이는 내가 알라께 여쭤본 일이다" 라는 희대의 망언을 했다.이 희대의 망발은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었다. 허경영

더 엽기적인 건 이 책을 세계 40여 나라에 수출까지 했다(정확히는 무상 수출!?)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2007년 번역되어 나왔는데 3권짜리 두툼한 책자로 권당 4만원에 가까운 값이었다. 왜 경전을 돈주고 파냐 사우디아라비아를 본받으라 그리고 이걸 꾸란, 성경과 더불어 3대 성서라고 자랑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건 출판사측에서도 팔려고 내놓은 게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 정부로부터 한국어판 출판의뢰를 받아 찍어낸 것 뿐이다. 그러니까 출판사로써는 그냥 한국어 번역료와 기타 출판에 필요한 제반비용을 받아 책을 인쇄해준 것 뿐이다. 사실 한장한장이 유용한 불쏘시개여서 4만원이라카더라

이런 막장 노릇에 다른 이슬람 나라들이 당연히 반발했다. 이 나라 이름이나 국기를 봐도 이슬람 절대 다수 나라임에도 이러면 곤란하지 말입니다. 이웃 나라들도 죄다 독재자 투성이지만, 그래도 그들조차도 이렇게 지가 경전을 쓰네 뭐네 이럴 정돈 아니라서 그들도 엄청 비웃었다고 한다. [10]

하여튼 니야조프는 "다른 거 다 필요없다, 이것만 읽고 외우고 공부해라"라고 초중고, 대학까지도 세뇌시키듯 강요했다. 이거 잘 외우고 잘 이해하면 장학생으로 우선 선발권을 가졌으니 뭐 할 말 다했다. 게다가 이거 읽으면 천국에 간다고 사이비 종교 교주 노릇까지 하셨다.

4 기행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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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그는 수술로 인해 금연했는데 이를 계기로 전국에 금연령을 내려버렸다. 이 금연령은 지금도 여전히 실행 중이라 흡연자들은 외출하기 전 집안이나 차 안에서 미리 담배를 피운다고 한다.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자의 글을 보면 이 나라에서 담배를 어떻게 태우는지 나와 있다. 그래도 담배의 해악을 생각하면 그나마 잘한 것 중 하나이긴 하다.

또 건강이 악화되자 국민들이 내게 기도를 많이 해 힘들다며 기도를 줄이라고 국민들에게 권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덤으로 길거리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 역시 여전히 실행중인데, 당연히 이것도 사람들은 몰래몰래 잘 어기고 있다.

2001년엔 국민 정서에 맞지 않는단 이유로 본인 정서가 아니라?? 발레오페라도 금지, 2003년금니장발을 금지했으며 2005년 , 힙합아..안 돼!!힙찔이가 또;;, 더 나아가 투르크메니스탄 국민의 예술성과 가창력을 저해한다는 이유로 립싱크까지 금지했다. 그거 하난 잘했네? 대중문화에서 자신을 풍자하고 비난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덤으로 인터넷도 금지시켜서 투르크메니스탄에 PC방이 문을 열게 된건 니야조프가 죽어서부터였다. 러시아어교육인 경우는 니야조프시절에 폐지되기도 했다가 2008년부터 부활되었다.

이 때문에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에선 그래도 재미는 있는 러시아TV를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물론 이걸 막을려고 했지만 얼마 안 가서 죽었다.

여자 뉴스 앵커들은 방송할 때 화장을 금지했다. 이유는 '투르크메니스탄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기 때문에 화장할 필요가 없다'였다. 본격 쌩얼 강제 공개?

또한 서울부심 지방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며 지방의 도서관을 폐지하기도 했고 지구온난화로 갈 곳을 잃은(?) 동물들을 위해 전 국토의 90% 가까이가 사막인 투르크메니스탄에 동물원을 건설하기도 하였다. 아아 자비로워라. 나는 황량한 사막의 대통령, 동물들에게는 따뜻하겠지 같은 해 12월 16일에는 신임 석유.가스장관을 임명하여 향후 6개월 안에 영어에 능통하지 못하다면 해임시켜버리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거기에 진료를 받으려면 수도까지 오는것이 합당하다며,수도 외부에 있는 모든 병원을 폐쇄시켜버렸다.와포루냐.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특이한 공항"을 짓겠다고 아슈가바트 국제공항의 관제탑을 터미널 뒤에 지어 관제사들 시야를 가려놓고 "보기 좋다"고 말했다.


이렇게.

물론 공항 이름도 자기 이름을 붙여 사파르무라트 튀르크멘바시 국제공항(Saparmurat Turkmenbashy International Airport)으로 바꿨다. 이 모든 돈지랄이 엄청난 광물 및 가스, 석유 등 자원이 가득했기에 가능했다.

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는 의외로 나쁘지 않았는데, 일단 자원 배분을 그럭저럭 잘 하는 축에 속했고[11], 옆동네 개새끼와는 다르게 노골적으로 사람을 마구 잡아 죽이거나 하지 않았다는 점도 반영됐다. 그러나 아무리 먹고살게 해줬어도 막장 독재는 독재인지라, 사람들이 영리해지면 안된다고 하여 일부러 우민화목화산업에 총력을 가해 사람들에게 목화산업체에서 일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정보 차단을 위하여 각종 해외 뉴스와 통신은 죄다 금지했다.

어째 한 짓들을 보거나 한 말들을 듣다보니 이 말이 절로 나온다

5 사망과 사후

하지만 이런 우상화 속에서도 그는 암살을 두려워해 삼엄한 경비 속에서 지냈는데, 그 덕택에 국민들의 손에 죽지 않고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대신 심장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응급처치를 받지 못했다. 결국 그는 2006년 허망하게 죽었다. 그야말로 스탈린과 똑같은 최후였다. 그런데 당시 소문으론 당시 2인자였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보다못해 일부러 응급조치를 못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잘했네

어찌됐든 그가 죽고나서 2인자이던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정권을 잡았다. 그도 독재자의 길을 담습하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지만, 그나마 니야조프보단 훨씬 낫다는 평. 니야조프의 온갖 금칠 동상을 부수고 루흐나마도 치우고 검열도 완화시키고 대중문화 금지도 풀어버리면서 니야조프는 대중문화로 비웃음과 풍자로 실컷 매도당하고 있다.

베르디무하메도프가 다시 황금동상을 세운다고 하는 것으로 봐선 추모열기는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지만 그게 베르디무하메도프 본인의 것이라는 소문도 있다.

우습게도 살아생전에는 그다지 국제적으로 알려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저런 막장이라도 미국이나 러시아에게 대들지 않으며 중립적으로 외교를 벌인 탓에 미국 언론에선 우고 차베스랑 다르게 살아 생전 그를 그다지 비난하지 않았던 데다 이슬롬 카리모프처럼 극단적인 탄압을 하지 않는 등, 적당히 서방 눈치를 봤기 때문이다.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친러시아적인 태도를 보인 탓에 미국 우익언론이 독재자라고 신나게 보도하던 거랑 대조적이다. 물론 지식인들은 비웃으며 풍자했지만. 죽은 다음에서야 더 국제적으로 '이런 놈이더라~' 하는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뭐, 복지따윈 신경도 쓰지않으면서도 핵만드네 하고 도발도 여러차례 벌이는 김씨왕조와는 달리, 이 사람은 국제적으로 딱히 도발을 한 건 없고 자국민을 마구 죽이거나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수십만 단위로 수용소에 넣지도 않았고, 복지정책도 어느정도 펴기는 했기에 인간으로 보면 의외로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저 제 안방 안에서 오로지 권력과 숭배만을 탐했기 때문에 또라이 기인, 괴짜 정도로만 알려졌을 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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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 인간의 특이한 업적(?) 가운데 하나가 아할 테케(Akhal-Teke)라는 투르크메니스탄 순종 말 보호에 이바지한 점이다. 참고로 이 말은 중국사에 기록된 한혈마. 바로 그 말이다.

스탈린은 이 말을 싫어하고 관심을 두지않아 하마터면 멸종할뻔했던 걸 과거 소비에트 연방 시절 공산당 간부로서 니야조프가 보호에 무척 힘썼기에 멸종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하여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척 아름다운 이 말 겉모습을 더 애지중지했다는 비아냥도 있긴 하지만. 고자 상병도 그렇고 독재자들은 사람목숨 보다 동물목숨이 더 가치있나 보다 그리고 이에 보답하듯 신임(?) 독재자 베르디무하메도프를 경마[12]도중 낙마시켜 버렸다. 독재자를 처단하는 진정한 애국마(馬)

  1. 직역시 튀르크멘의 머리라는 뜻.
  2. 후술하지만 그가 따라한 건 김씨왕조가 하는 짓의 겉보기 뿐이다. 실질은 많이 달랐다. 깔 거리가 많기는 마찬가지지만 최소한 인간을 포기한 김씨 3대와 동급 취급하는 건 무리. 다만 막대한 자원이 넘치던 여유가 있던 점을 감안해야 한다..북한 혹부리 왕 김일성도 70년대 초반만 해도 소련의 막대한 지원 속에 먹을 게 넘쳐나서 민중들에게 그다지 반감이 없었던 걸 생각하면...그리고 니야조프가 어디까지나 이후 김씨왕조 3대 쓰레기들에 견줘서 낫다고 봐도, 독재자이고 항목에 나오듯이 우민화 정책 및 반대파 숙청은 똑같기 때문이다.
  3. 다만 단독출마였다는점은 감안해야한다.
  4. 그리고 이는 게임 트로피코에서 쓸데없이 훌륭하게 구현되었다.
  5. 이 부분은 약간의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이, 구소련권 국가들의 엘리트들은 오늘날까지 러시아에서 교육을 받고, 러시아어를 사용하여 학문적 종속관계에 놓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투르크멘인들은 가장 강력히 러시아화를 반대한 민족이기도 하다. 또한, 이와 비슷한 정책은 오직 투르크메니스탄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역시 독립하고 자국어만 사용하게 했다가 전문인력 부족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독립 당시 카자흐인이 전국 인구의 50%도 차지하지 못했던 카자흐스탄은 국가 마비 상태까지 가서 결국 포기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이 정책을 유지한건 변명의 여지가 없는거 아녀?
  6. 이 역법은 2008년 결국 폐지되었다.
  7. 참고로 니야조프가 직접 쓴 가사다.
  8. 화장실에서 볼일 보는데 떡 하니 저 인간 사진이 윗 벽에 걸려있으니 이건 대체 감시당하는 기분이라고 기분나빴다고... 빅 브라더?
  9. 영혼을 뜻하는 아랍어 루흐(ruh)와 페르시아어로 편지 또는 책이라는 뜻을 가진 나메(nameh)의 합성어이다 직역하자면 영혼의 책
  10. 그래도 짝은 짝이라고 서로 사돈 맺고 엄청 연결되곤 했다...
  11. 실제로 투르크메니스탄은 구소련권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그럭저럭 나라꼴이 괜찮은 축에 속한다.
  12. 우상화를 위해 본인이 직접 참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