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國交斷絶
국가간 외교 관계에서 한때 외교관계를 맺어왔다가 그 관계를 모두 끊겠다는 외교용어이며, 단교(斷交)라고도 한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 헤어져!
보통 이러한 극단적인 일이 일어나는 경위는 두 가지다.
- 양국 간의 감정이 루비콘 강을 건너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막장상태에 치달을 때. 보통 이런 경우에는 전쟁의 전주곡이 될 개연성이 높다. 또는 전쟁을 한바탕 치룬 후 단교하기도 한다. 전쟁 중에도 채널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쟁 중 단교하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 다른 국가가 쟤랑 같이 놀면 재미없을 줄 알아!하고
협박압박을 넣어서 단교하는 경우.네토라레
후자의 경우에는 20세기 후반 들어서 중화민국이 이걸 당했다. 그것도 100번 가까이... 후새드. 자세한 건 중화민국/외교 참조.
한때는 외교관계를 맺어왔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 나라들의 정치 및 사회상황 등이 바뀌거나 이변 등이 일어나거나 관계가 악화되는 시점에서 단교 여부가 결정되며 경우에 따라 국민간의 적대감정에 따라서 단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간 외교가 단절 될 경우 경제, 사회, 문화 등에도 그 영향을 미치게 되어서 외교관계는 물론, 민간분야의 교류까지 끊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고 나라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교류국가가 아닌 적대국가나 무관국가로 분류하게 된다. 예외는 대만처럼 맘먹고 끊어버린 것이 아니라 중국의 요구 등으로 국교단절을 택했을 때. 이 때는 민간교류에는 손대지 않는다.
다른 용어로 외교단절이라는 말도 있는데 국교단절과는 달리 국방 등 긴밀한 분야까지는 완전히 단절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보다 좀 낮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때문에 국교단절과는 달리 사회, 문화 등에 있어서는 영향이 적은 편으로 알려져있다.
대한민국의 국교 단절은 대부분 남북한 외교 대결이 격렬하게 진행되던 1960~70년대에 수교국 정부가 사회주의 정부로 교체돼서거나, 친북한 성향을 보이거나, 혹은 북한과 외교 관계를 체결할 경우 많이 나타났다.
한일단교 떡밥은 한일관계가 악화될 때마다 잊을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떡밥. 마찬가지로 중국과 일본에서도 중일관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일단교 떡밥이 나온다. 물론 경제적으로 상당히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는 이 3국이 실제로 단교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희박하다. 일반적으로 넷 우익이 특정 아시아 운운하며 단교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2 사례
취소선이 그어진 경우는 다시 재수교를 한 국가.
2.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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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타니(1964년): 1978년 재수교 -
콩고(1965년): 1990년 재수교 -
마다가스카르(1972년): 1993년 재수교 -
토고(1974년): 1991년 재수교 -
베트남 공화국(1975년): 이쪽은 나라가 망해서…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는 현재 수교 중이다. -
캄보디아(1975년): 크메르 루주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단교. 1997년 재수교 -
베냉(1975년): 1990년 재수교 - 쿠바: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혁명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국유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미국의 입장에 이어 단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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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과 외교 관계를 맺자 단교. 이후 아우구스트 피노체트의 군부 쿠데타로 군사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국교 재개 -
아프가니스탄(1978년): 군사 쿠데타로 친소 정권이 들어서면서 단교. 1991년 소련이 붕괴되고 1992년 친소 정권이 붕괴된 직후에도 무자헤딘 내전과 탈레반 정권 수립 등 국내의 혼란한 상황으로 복교를 못하고 있었다가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되자 2002년 다시 재수교하였다. -
세이셸(1980년): 1995년 재수교 - 중화민국(1992년): 한국이 중화인민공화국 측과 수교를 맺을 때 중화인민공화국 측에서 대만과의 외교 단절을 요구하였고, 한국에서 이를 수용하였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국교 단절 상태지만, 비공식적인 국가 간 교류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대만 관계 참고
2.2 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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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지(1987년, 2002년 재수교 추정)
- 1987년 대한항공 858편 폭파 사건으로 단교.
- 1973년 수교. 쿠데타로 우익 군부 정권이 들어서자 1977년 대사관에 방화하고 일방적으로 공관 철수. 1990년대 이후로 북한에서 아르헨티나에게 관계 재개를 희망한다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아르헨티나에서는 관계 재개 전에 대사관 방화사건 배상, 미납 곡물대금 지불 등을 먼저 이행하면 관계를 재개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외교 항목 참고.
- 1970년대에 외교 관계를 맺었다가 단교. 2001년에 국교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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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로(1983년, 이후 재수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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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1983년, 2007년 재수교)
- 대한민국 국빈 일행이 미얀마에 방문했을 때 북한 측에서 테러를 벌였다. 하필이면 그 장소가 미얀마의 성지급 장소인 독립운동가 아웅산의 묘소였다는 게 문제. 이 사건으로 미얀마는 물론 친북 관계였던 제3세계의 일부 국가들마저 북한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참고.
- 1974년 수교. 그러나 2014.2.17. 발표된 UN 인권보고서가 북한이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국민을 노예로 전락시키며, 굶주리게 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것과 관련하여, 2014.2.19부로 단교#
2.3 해외
- 대만과 서방 대부분의 국가들. 자세한 사항은 중화민국/외교 참조
- 1945년 불가리아에서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당시 권위주의 독재를 펼치던 안토니오 살라자르 포르투갈 총리가 국교를 단절했으나 1974년 포르투갈에서 카네이션 혁명으로 새 정권이 수립되자 같은 해 다시 재수교하였다.
- 2004년 헝가리에서 아르메니아 장교 G. Margaryan을 살해한 아제르바이잔 장교 R. Safarov를, 헝가리측이 사면하고 본국으로 송환해버린 처사에 대해 아르메니아가 항의하여 2012년 단교한 것임.
- 2016년 1월 4일과 8일에 이뤄졌다. 게다가 자국 유학파 출신인 시아파 성직자가 억울하게 처형[1]당한 건에 대해 이란에서 항의해서 단절한 거면 이해가 가는데, 사우디가 단절했다. 뒤이어 바레인과 수단,소말리아등 중동,아프리카의 수니파 이슬람 국가들도 이란과 단교. 다만 이란 군중들도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하여 국교단절의 명분을 제공한 점에서 귀책사유가 있다.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 지도자들은 외국 공관을 습격하는 걸(1979년 미국, 2011년 영국) 권장 내지 용인하다시피 했는데 이번에는 역풍을 크게 맞은 셈. 다만 사우디 포함 수니파가 미쳐돌아가면서 서방 내부에서 불신이 엄청나게 강해지고, 그나마 합리적인 이란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변수이기는 하다. 일각에서는 이란의 핵협상 타결로 인한 제재 해제가 사우디에 위기감을 주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분석도 있다. 가뜩이나 석유 값이 떨어져서 경제적 타격을 입었는데 그 동안 석유를 많이 못 팔던 이란이 제재 해제로 석유를 팔기 시작하면 석유 값이 더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 더군다나 정상국가화된 이란이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할 것 역시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우디 이란 분쟁 참조.
2.4 역사
- 1598년 임진왜란 종전후 국교를 단절하였으나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도요토미 가문이 실각하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장악,에도 막부를 수립하자 조선 통신사를 통해서 다시 국교를 재개했다.
- 대한민국 - 일본
-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1955년 국제사회에 복귀했으나, 1965년 한일협상 타결 때까지 한국은 일본과 수교하지 않았다.
3 관련 문서
- ↑ 이게 국가반역을 꾸미거나 사람을 죽이거나 해서 처형된 것이 절대 아니다. 시위 벌였다고 처형했다! 어지간히 막장인 독재정권들도 하지 않는 짓을 저지른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