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2차 대전 당시 승전국으로 유엔의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꿰찼던 왕년에 날리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사실상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2014년 현재 중화민국의 정식 수교국[1]은 22개 나라밖에 없다. 그마저도 계속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돈지랄 경제적 지원 및 개발 조건으로 나날이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중화민국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정말 몇 나라 없게 됐다. 아시아[2]에선 대한민국을 끝으로 이젠 수교국이 전멸했고, 유럽에서는 바티칸 하나 뿐이다. 그 밖에 나머지 나라들도 죄다 약소국,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이런 나라도 있었어?'라고 할 4년에 한번씩 올림픽 개회식에서나 나오는 나라 투성이. 현재 대만과 수교국가에서 가장 영토가 큰 나라가 파라과이(40만 평방km) 인구로는 부르키나파소(약 1,600만)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중화인민공화국도 중화민국 때문에 몇몇 나라와 수교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또는 단교하기도 하고). 대한민국에게 유엔 회원국 중 국교가 없는 나라는 다섯 손가락 안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인 것에 비해 중화인민공화국은 꽤 많고 중화민국은 말할 것도 없다. 한반도와 비교하자면, 같은 분단 상황이어도 남북한은 동시 수교를 허용하기 때문에 수교에 걸림돌이 적다.
2 수교국 목록
중화민국의 수교국은 다음과 같다.
- 유럽 - 바티칸 (1개)
- 오세아니아 - 키리바시, 나우루, 솔로몬 제도, 투발루, 마셜 제도, 팔라우 (6개)
- 중남미 - 벨리즈, 도미니카 공화국, 아이티, 온두라스, 과테말라, 파라과이,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파나마, 세인트 루시아, 세인트 키츠 네비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12개)
- 아프리카 - 스와질란드, 부르키나파소, 상투메프린시페 (3개)
현재는 수교 관계가 아닌 국가에도, 일단은 '대표부'라는 뭔가 어정쩡한 이름으로 사실상 대사관 업무를 대체하는 형태가 대부분인데, 보다 자세한 내용은 위키백과를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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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에서 푸른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바로 대표부가 존재하는 비공식 관계를 가진 국가이고, 녹색이 수교 관계인 국가들이다. 회색은 수교 관계도 없고 대표부 등을 통한 비공식 관계도 없는 나라들이다. 대표부에 대해서는 타이베이 대표부 참고.
대한민국은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외교부 직속으로 두고 있다. 미국의 대사관격인 미국재대협회(American Institute of Taiwan)나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교류협회(交流協會)는 각각 국무부와 외무성을 대리해서 영사업무를 보는 비정부기구(정확하게는 반관반민 성격)인 걸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즉 표면적으로나마 비정부기구의 탈을 쓴 미국과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은 대놓고 정부 기관으로서 대표부를 세워 놓은 셈.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대만의 중화민국을 실질적인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꽤 많은 편이다. 당장 대만을 미승인국 취급하는 미국도 대만과의 관계에서 중국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인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역시 대만과 어느 정도의 밀월트랙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 이런 상황까지 대놓고 부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보는지는 몰라도 정식 승인이 아니면 모른 척 한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양국은 2015년 현재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나 양안 간 교류확대는 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형태의 대표부는 아니고, 중화민국은 대만 해협양안관광여유협회(台灣海峽兩岸觀光旅遊協會)라는 이름의 기관을 베이징에 두고[3], 중화인민공화국은 해협양안여유교류협회(海峡两岸旅游交流协会)라는 기관을 타이베이에 설치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대표부는 상대 국가에 대한 관광 진흥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본격적 외교관계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철천지 원수였던 두 정권 간의 관계가 이 정도로까지 발전한 게 어디냐만은...
한편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홍콩과 마카오에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臺北經濟文化辦事處)'라는 이름의 사무처를 두고 있는데 일반적인 외교 관계에서의 영사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일단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므로 중화민국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이고 따라서 이들 기관은 중화민국 외교부가 아닌 중화민국 행정원 대륙위원회 산하 기관이지만,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영국,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시절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교류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4] 홍콩과 마카오 역시 중화민국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을 두고 있다.
3 UN에서의 축출
1945년부터 한때는 UN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지만 [5], 1971년 10월 25일 중화인민공화국(이하 중국)이 UN에 공식 가입하게 되면서 UN 총회의 투표 결과에 따라 결국에는 중화인민공화국에게 상임이사국 자리를 내줘야 했고 UN에서도 자의반 타의반으로 탈퇴하게 되었다. [6]
더 안습인 것은 당시 UN 총회에는 중화민국 축출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상임이사국 지위 획득을 지지하는 알바니아의 결의안과 그것을 반대하는 미국의 안이 동시 상정되었는데, 미국의 우방인 서방 국가들(캐나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도 다수가 알바니아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미국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예견되기도 한 결과다. 프랑스의 경우만 해도 이미 1960년대에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했다.
당시 미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권리는 포기하되 대만(Taiwan) 지역의 주권국가로서의 회원국 지위는 유지하는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알바니아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중화민국이 스스로 이를 거부함으로서 무산되었고, 직후 UN 총회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의 합법적 권리 회복을 골자로 하는 '제2758호 결의'가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로 통과되고 그 직전에 중화민국이 스스로 UN 탈퇴 선언을 함으로서 중화민국은 UN 상임이사국 지위는 물론 회원국 지위를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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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UN 총회 직전에 자진 탈퇴를 선언하면서 내려오는 저우수카이(周書楷, 주서해)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장의 모습
중화인민공화국은 언제나 자신들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국가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와, 이 원칙에 따라서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 영토의 일부분소말리아와 소말릴란드 기믹,이라는 해석을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양쪽과 모두 대사급 외교관계를 가지는 나라는 없다. 무조건 둘중에 한곳만 선택해야 한다.
현재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맺고 중화민국과 관계를 끊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공식적으로는 타이완 또는 '중화 타이베이'라는 표기를 쓰고 있다. 물론 중화민국과 관계를 가질 때는 중화민국이라고 하지만. 과거 한국을 비롯하여 냉전 초기 중화민국과 외교관계를 유지했던 반공국가들 가운데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중공(중국공산당)'[7]과 대비하여 '자유중국'(Free China)이라 하기도 했다.따지고 보면 38년동안 어용선거로 계엄령 통치를 한 일당독재가 자유국가라니... 그러나 지금은 현실은 시궁창(...).
이러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중화민국(자유중국)을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하고 국교를 맺어온 한국에게도 이것이 커다란 정치적, 외교적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특히 한국전쟁의 일방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던 중화인민공화국(중공)이 UN에 가입하고 그것도 상임이사국이 됨으로서 한국전쟁 휴전협정이 무효화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국 사회에 밀어닥치기도 했다. 이러한 대내외적 불안감은 10월 유신을 통한 박정희 종신집권에 이용되었다.
4 역대 정부별 정책 비교
장제스 총통 시절까지만 해도 2차대전 승전국,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 정부임을 강조하는 '정통-반공 외교'를 펼쳐나갔다. 또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신흥 독립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지원을 제공하는 '선봉 계획' 추진하기도. 하지만 1971년 유엔 축출을 시작으로 주요 우방 국가들이 하나둘씩 단교하면서, 이는 빛을 잃어 나갔다.
1970년대 / 1980년대 장징궈 총통 시대에는 정부, 민간을 망라한 국력 전체를 외교에 동원하는 '총력외교', 중국의 정통성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 및 발전을 추구하는 '탄성외교'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최대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단교에도 불구하고, 대표부 형식의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미국의 경우 <대만관계법>의 제정으로 비공식적이나마 방위공약을 확보했다. 아울러 기존의 중화민국 대신, '차이니즈 타이페이'란 명칭으로 아시아 개발은행(ADB),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유력 국제기구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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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리덩후이 총통 시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무실외교'를 표방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흥 경제성장국으로서 대만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여 해외 지지를 확대하고, 고위 당국자들의 대외 활동도 확대하여 그동안 위축되었던 대외 활동에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나마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리콴유 수상과 회견하고, 1995년에는 대만 총통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8] 대만의 민주화, 양안관계 발전 등에 대해 연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수교국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도 했지만, 이를 경계한 중국의 외교적 고립 획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1992년에 아시아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던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교한 것이 대만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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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민진당 출신으로 처음 당선된 천수이볜 총통은 '다원외교'를 내세웠다. 무역, 민간, 인권 등의 여러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가치 지향적 외교를 통해, 대만의 독자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성공하였고, 유엔 재가입 신청도 그동안의 '중화민국' 명의에서 '대만' 명의로 바꿔 추진했다. 그러나 천수이볜의 분리독립 추구를 극도로 경계한 중국의 방해로 수교국은 도리어 3개국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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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취임한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활로외교'를 주창했다. ECFA 성립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화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생존 공간 확보를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양해 아래 그동안 무산되어 온 일부 국제 기구(예: 세계보건회의[WHA],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한 옵서버 참가 자격을 확보했다.
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초의 양안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잉주 총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의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기구 참여 확대 협조를 주장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 회담에서 시진핑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대한 참여 허용에 대해서만 언급하여 대만 측을 적지 않게 실망시켰다.[9]
2015년 현재 중화민국은 자유무역협정인 TPP에 가입을 추진 중이다. TPP 가입에 대해서는 중국 국민당 외에 친민당,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등 범람연맹 - 범록연맹 구분없이 일종의 활로가 되기 때문에 위 아 더 월드로 찬성하고 있어 2016년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를 통해 집권하는 차기 총통은 이를 계속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되고 나서 UN 재가입이 다시 타력을 받고 있다. #
5 스포츠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는 중화민국이 반(反) 수카르노 세력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측이 참가승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참가가 좌절되기도 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경우 이슬람교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정치성향 때문에 참가를 금지시켰다.
IOC는 이에 대해 아시안게임 개최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지만 사실 IOC에서 이걸 가지고 올림픽 참가를 왈가왈부하다간 인도네시아와 뜻이 맞은 아랍 나라들의 반발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러나 당시 아시안게임연맹(AGF) 위원장의 국가이던 인도 공화국과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를 비난하면서 인도에서는 대놓고 1962년 아시안 게임을 횟수에서 빼버리고 비공인 대회로 하자!!까지 했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대회를 강행했으며 결국 중화민국과 이스라엘이 불참처리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역도연맹은 이 대회의 해당 종목을 인정하지 않고,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당시 육상과 역도는 불참하였다. 일부 나라는 올림픽에 나갈 만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들을 참가시키기도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IOC에서 제명당했다. 입경고가 아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정권이 수립된 후 IOC에 복귀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때는 중화인민공화국에 우호적이었던 자유당의 피에르 트뤼도 정부의 성향 때문에 '중화민국' 국호를 내세운 올림픽 참가를 금지당하는 불운도 겪었으며, 결국 중국의 압력으로 1984년 동계 올림픽[10]부터는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라는 어쩡쩡한 국명으로 참가하고 국기 역시 공식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 를 사용하지 못하고 타이완 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을 대신 사용해야 하며, 시상식 때도 청천백일기와 삼민주의 대신 중화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매화기) 깃발과 국기가(國旗歌)가 대신 연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도 자국의 국기를 볼 수도, 국가를 들을 수 없던 중화민국 선수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인 일이 여러번 있었다.
5.1 스포츠 대회 유치 시도
추락하는 외교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인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2009 가오슝 월드 게임을 개최하였고,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였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과 2024 하계올림픽 유치를 노리기도 했었다. 2011년과 2013년에 프로야구 아시아 시리즈를 대만에서 개최하였으며, 그 중 2011년 대회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프로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국제올림픽위원회나 FIFA 등도 결국 중국 본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중화민국으로써는 가능성이 없다. 결국 2018아시안 게임도 인도네시아의 수도인 자카르타가 유치하게 되었다. 게다가 중화민국은 중도에 포기하여 최종 경쟁 후보조차 오르지 못했다. 2024 하계올림픽도 2014년 개최를 포기하였다.지못미. 그나마 2030 엑스포를 노릴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국내에서 개최했던 월드 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국기와 국가를 정식으로 올리지 못하고 '꼼수'를 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단 경기 출전 자체는 여타 국제대회와 마찬가지로 중화 타이베이 명의로 하고, 대신 시설물에 걸어놓는 개최국 표식만 비로소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쓴 것. 그래도 이게 어디냐
6 이것만은 유리?
6.1 종교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의 종교의 자유가 인정될 처지가 아니라서 종교인들의 국제대회만큼은 중화민국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화민국도 사실상 세계 주요 종교들에게도 매력적인 나라가 아니기에 그것마저 힘들듯 하다. 세계의 4대 종교 중 중화민국에서 종교 인구 숫자가 3% 이상 되는 종교가 단 하나도 없다.
일본의 신불융합처럼 대만에는 대만식의 불교와 혼합된 도교가 존재하는데,대만의 미아오에 가 보면 월하노인과 부처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정식 도교라고 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정식 불교라고 보기에도 힘들다.(무엇보다 대만에도 정식 불교가 있다) 아무튼 저러한 대만식의 도교+불교가 혼합된 종교가 대만에서 가장 대중적인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대만에서 ~~미아오(묘,廟)라고 되어있는 곳은 전부 저 대만식 종교의 사원이다.)
4대 종교 중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각각 2%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정교회는 이보다 교세가 더 적다. 그나마 개신교는 한국 국적의 선교사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는 편이지만, 가톨릭은 사제의 숫자가 성당의 숫자보다 적어서 1명의 사제가 2~3개 성당, 심하면 공소를 포함하여 10개 이상을 맡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만의 한 교구(타이중 교구)는 1990년 이후 단 한 명의 사제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한국은 1년에 사제가 전국적으로 100여 명 이상 배출이 되지만, 대만은 1년에 사제를 2~3명도 배출 못한다. 그리고 이게 7개 교구를 전부 합친 숫자다. 대만 전체 가톨릭 사제 중 대만 국적을 가진 이가 반이 안 된다. 또한 가톨릭도 20세기 중후반까지는 대만에서 선교를 하면서 중국어가 능통한 사제들을 키우다가 중국으로 넘어가서 선교할 방침을 세웠었으나, 이마저도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거나 중국 지하 교회를 활성화 시키는 방향으로 선교 정책을 대선회해 대만 가톨릭 교회는 사제가 더욱 부족해졌다. 정교회는 2001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휘하 남아시아 관구의 지원을 받아 겨우 다시 설립되었으며, 사제는 외국인 단 한 명이고, 신자들도 아직까지는 서양인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슬람은 1% 미만의 점유를 보인다. 일단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타이베이에 있는 지하철 역들 중 큰 규모의 역에 기도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6.2 여행
중화민국의 여권은 중화인민공화국 여권보다 위상이 매우 높다.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국가 숫자만 비교해도 중화인민공화국이 고작 50개국에 불과한 반면 중화민국의 여권은 164개국이나 된다. 물론 세르비아[11]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중화민국 국민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혹은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서방 국가 대부분이 중화민국에 대해서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준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국 대륙을 무기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과시하고는 있지만 삶의 질 자체는 여전히 한참 멀었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불법 체류하려는 중국인이 많은 반면, 중화민국의 경우는 중국 대륙에 비해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불법 체류율이 낮기 때문.
반대로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비자를 요구하지만 중화민국에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외국 국적도 많다. 애초에 중화인민공화국은 자국 체제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것 같다고 판단될 경우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중화민국은 이미 민주주의 체제가 잘 정착된 국가이므로 최소한 서방 국가에 대해서는 거리낄 게 없어서 그렇다.
7 미래
중화민국의 입지는 나날이 좁아지고 있다. 게다가 2000년~2008년에 걸친 민주진보당 통치기간의 분리주의적·탈중국적 성향이 강해진 탓에 중국의 압박도 심해져[12], 그대로 가다가는 중국에 그대로 흡수되거나 홍콩과 같은 일국양제 형태가 될 것이라는 예측마저 그럴싸하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다. 심지어는 2008년 5월에는 대만 정부가 파푸아뉴기니와 수교를 맺도록 다리를 놔주겠다는 외교 브로커에게 거액을 사기당하기까지 했다(…).
파라과이에 좌파정부가 들어서면서 한때 중국과의 수교를 고려했으나, 2008년 국민당 정부가 재집권하면서, 중국과의 수교국 숫자 늘리기 쟁탈전은 일단 휴전된 상태다. 대륙측도 이 휴전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대만과 수교 중인 일부 국가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끊고 자신들과 수교하겠다고 한 제안을 에둘러 거절했다. 파라과이가 대만단교-중국수교를 하려던 계획도 중국의 거절로 무산된 상태. 단, 감비아는 대만과 단교를 했다. 역시나 중국의 수교 제안 거절로 인해 중국 국가 승인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 수교국 쟁탈전 휴전이 차이잉원 정권에서 유지될지 끝날지는 두고 봐야 한다. 일단 차이잉원 본인도 이쪽에 대해 2016년 당선인 신분에서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취임하고 나서 수개월이 지나야 본격적인 양안 간 움직임이 나올 듯.
하나의 중국에 따른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 중 하나만 수교하는 상황이 깨지려면 꽤 영향력 있는 나라가 중국과 관계가 나빠질 것을 각오하고 대만과 수교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럴만한 힘을 가진 나라는 미국 뿐이지만, 미국도 현실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보니 예전처럼 중화민국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중화민국이 존속함으로써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서태평양에서 중국을 상대하기 편해진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의 7대 군구 중 하나인 난징군구의 군사력은 대부분 대만 병합을 목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만이 병합되어 중화민국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이 군사력은 모두 분쟁지역인 센카쿠 열도 및 남중국해 분쟁 지역에 투입될 수 있어 미국 입장에서는 서태평양에서 중국을 상대하는 것이 이전보다 어려워진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의 국력 차이가 넘사벽이 되고 미국에서도 가끔씩 대만을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됨에도 불구하고 아직 대만에 대한 방위 보장을 규정한 대만관계법이 유지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육지로 연결되어 공세가 목적일 경우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국력이 강한 것도 아니고, 인구 구조가 낙관적인 것도 아니어서[13] 대만의 가치는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보다 낮을 수밖에 없다. 이는 중화민국의 존속 가능성을 암담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중화민국의 외교는 주로 타이베이 대표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고, 수교국의 증가는 고사하고 더 단교하지 않기만을 바라야 할 듯. 오죽하면 외교부가 단교부라는 오명을 썼을까.
다음 표는 주요 연도별로 중국과 대만의 수교국 숫자를 비교한 것이다.
연도 | 중화인민공화국 | 중화민국 | 비고 |
1969년 | 44 | 67 | |
1971년 | 66 | 54 | 중국 UN가입, 중화민국 UN탈퇴 |
1975년 | 106 | 26 | 장개석 사망 |
1979년 | 120 | 22 | 미국-중화민국 단교 |
1985년 | 133 | 23 | |
1992년 | 156 | 29 | 대한민국-중화민국 단교 |
2000년 | 166 | 29 | |
2007년 | 170 | 23 | |
2013년 | 170 | 22 | 감비아-중화민국 단교[14] |
2016년 | 171 | 22 | 감비아-중화인민공화국 수교 |
8 미수복 영토 주장과 몽골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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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이 주장하는 미수복영토, 분쟁지역[15]현재 중화민국이 주장하는 영토를 실효지배하는 다른 국가는 14개국에 이르고 있다.[16] 꿈은 큰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대륙 지구의 행정구역은 중화민국/미수복지구 문서 참고.
중화민국은 청나라의 계승을 주장한 만큼, 몽골 역시 자신의 영토로 보고 있다. 몽골이 독립하게 된 계기는 적백내전때 소련에 점령 된 것으로, 소련은 자국의 위성국으로서 몽골의 독립을 보장해준 것이다. 중화민국은 소련 때문에 몽골의 독립을 인정하였다가 소련과 단교한 후 이를 취소하였다. 따라서 중화민국은 몽골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아왔으며 냉전 시대 땐 비공식 관계조차도 없었다. 몽골 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나라이고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거 중화민국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상 서로에 위협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대륙 중국을 굴복시켜야 위협이 되는 말든 할텐데 실제로는 소 닭 보는 관계였고 둘 다 중국이라는 부담스러운 이웃을 두고 있는 사정으로 인해 비공식 외교 관계를 개시하여 2002년 상호 대표부를 세웠다. # # 역시 적의 적은 나의 편
그리고 현재 (외)몽골은 중화민국의 이른바 '대륙지구'에서 빠져 있다. 법이 개정될 때 대륙지구를 '중공(중국공산당) 치하에 있는 지구'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2012년 중화민국 행정원 대륙위원회는 "국민정부가 몽골의 독립을 승인했으며, 현재 몽골이 국제사회에서 주권국가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중국의 영토에서 몽골을 제외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9 중화민국이 단교(...)를 당한 안습한 연도[17]
- 볼드체는 주요국. 대신 대표부를 설치한 나라는 ♤표시
- 1949년 단교 : 소련[18], 루마니아
- 1950년 단교 : 영국♤,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스웨덴♤,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인도 공화국♤, 인도네시아♤[19], 이스라엘♤, 노르웨이♤
- 1951년 단교 : 파키스탄
- 1955년 단교 : 유고슬라비아, 네팔, 아프가니스탄
- 1956년 단교 : 이집트, 시리아, 예멘
- 1957년 단교 : 스리랑카
- 1958년 단교 : 이라크, 모로코
- 1959년 단교 : 기니, 수단
- 1960년 단교 : 쿠바
- 1962년 단교 : 라오스, 우간다
- 1964년 단교 : 프랑스♤, 콩고 공화국
- 1970년 단교 : 캐나다♤, 칠레♤, 적도기니, 이탈리아♤
- 1971년 단교 : 오스트리아♤, 벨기에♤, 카메룬, 아이슬란드, 이란, 쿠웨이트♤, 레바논, 리비아♤, 나이지리아♤, 페루, 산마리노, 시에라리온, 터키
- 1972년 단교 : 아르헨티나♤, 오스트레일리아♤, 콩고 민주 공화국, 다호메이 공화국(현 베냉), 그리스♤, 자메이카, 일본♤, 룩셈부르크, 마다가스카르, 멕시코♤, 뉴질랜드♤, 토고, 서독♤
- 1973년 단교 : 스페인♤
- 1974년 단교 : 브라질♤, 가봉, 말레이시아♤, 베네수엘라
- 1975년 단교 : 보츠와나, 필리핀♤, 포르투갈♤,
남베트남[20], 태국♤ - 1977년 단교 : 요르단
- 1979년 단교 : 콜롬비아, 미국♤
- 1980년 단교 : 에콰도르
- 1983년 단교 : 코트디부아르
- 1984년 단교 : 아랍에미리트♤
- 1985년 단교 : 볼리비아
- 1988년 단교 : 우루과이
- 1990년 단교 : 사우디아라비아♤
- 1992년 단교 : 대한민국♤
- 1994년 단교 : 레소토
- 1995년 단교 : 모나코
- 1996년 단교 : 니제르
- 1997년 단교 : 바하마
- 1998년 단교 :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기니비사우, 통가
- 2001년 단교 : 마케도니아
- 2003년 단교 : 라이베리아
- 2004년 단교 : 바누아투
- 2006년 단교 : 차드
- 2007년 단교 : 코스타리카
- 2008년 단교 : 말라위
- 2013년 단교 : 감비아
쓰고보니 정말 답이 없다 한번 당하기 힘들다는 단교만 94번 당했다.(...) 6개국만 더 단교하면 100번 단교!
10 관련 항목
- ↑ 중국이 분단되기 전 중화민국과 수교한 이후, 그 수교를 계속 이어간 나라는 바티칸과 파나마. 다른 나라는 어찌되었든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한 후에 수교한 것이다.
- ↑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통상적인 아시아를 말한다.
- ↑ 나중에는 상하이에도 설치했다.
- ↑ 이나마도 홍콩의 판사처의 경우 영국이 1950년에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해버렸기 때문에 '중화여행사'라는 안습한 이름으로 1966년에 설립되었다가 2011년에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격상시킨 것이다.
- ↑ 중화민국은 1949년 12월 이전까지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륙의 정통 정부였으니 UN 창설시에는 이게 당연했다. 지금도 UN 헌장의 창설 국가 목록을 보면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이 명시되어 있다.
- ↑ 이 시기 수교국의 절반이 날아가 외교부가 단교부로 불릴 정도였다.
- ↑ 중국을 그저 "대륙을 점거하고 있는 중국 공산주의 도당"으로 여겼다. 본토를 중국으로 쓰기보다는 중공으로 썼다 . 90년대 이전까지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 방식.
- ↑ 모교인 코넬대학의 초청을 명목으로 했다.
- ↑ AIIB의 경우, 이미 대만에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가입명으로 제시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중국이 거부한 바 있었다.
- ↑ 이미 1980년 올림픽부터 적용되었으나 이 해의 동계 올림픽에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불참하였으며, 하계 올림픽은 다른 나라의 집단불참에 동참하여 나타나지 않았던 것
- ↑ 코소보 문제 탓에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한 사람의 입국을 아예 차단한다.(...)
- ↑ 민진당은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대만인이다. 중국은 미수복영토가 아니라 별개의 국가다. 라고 주장하는 본성인의 지지를 받는 정당이다. 심지어는 우리는 한번도 중국이었던 적이 없었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청나라에 복속된 시기에 대해서는 일본이나 포르투갈 등에 의해 지배되었던 시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창당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과격하여 중화민국의 대만 통치가 외세의 점령이라고 주장했을 정도이며 지금도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꽤 존재한다. 국공내전 패배로 대륙에서 도망쳐 온 중국 국민당과 외성인들 입장에서는 민진당 천수이볜 총통의 당선 자체가 당황스러운 일.
- ↑ 중화민국의 출산율은 1.11명으로 출산율이 바닥을 기는 한국과 일본보다도 낮다. 그리고 동아시아 국가가 다 그렇듯 이민도 잘 안 들어온다.
- ↑ 현재까지 마잉주 정권 시절의 유일한 단교국. 2016년 3월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를 맺었다.
- ↑ 중화민국이 주장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실효지배하는 지역이 여기선 누락됐다. 자세한 것은 백두산 참조.
- ↑ 스프래틀리 군도와 백두산 포함.
- ↑ 단 이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다. 중화민국과 처음부터 수교하지 않았고 대륙과 수교한 것을 여기 올려놓은 경우가 있어서
- ↑ 소련의 후계 국가인 오늘날의 러시아 연방과 중화민국은 서로의 지역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 ↑ 한번 지워졌던 분야인데, 수카르노가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바로 즉시 수교한 나라 중 하나가 중화민국이다. 1945년 독립선포 즉시 수교했다가 1950년 단교.
- ↑ 이쪽은 나라가 망하는 바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