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臺城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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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JSA 인근에 위치한 마을.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옛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이며 모든 행정 업무는 장단출장소에서 처리한다. 자유의 마을[1]이라고도 불린다.

정전협정에 따라 남방한계선 이북에 조성한 유일한 남측 마을이다. 2015년 4월 기준 49세대 총 207명이 거주 중. 조금만(400미터) 북쪽으로 올라가면 판문점이 있고, 바로 코앞에는 북한 인공기가 보이며, 북한 기정동 마을도 육안으로 흐릿하지만 볼 수 있다(800미터 거리). 덤으로 재미없기로 유명한(...) 대남방송도 들을 수 있다.[2]

휴전협정 당시 거주했던 주민들과 그 자손들만이 거주할 수 있으며, 여기에 해당한다 하더라도 1년 중 8개월 이상을 대성동에서 살지 않으면 주민권이 박탈당한다(학업이나 병원 입원 등 때문에 피치 못할 경우는 예외다.). 즉, 주거와 주거 이전의 자유가 제한된다. 남성이 외지인 여성과 결혼한다면 주민으로 남을 수 있지만 여성이 외지인 남성과 결혼한다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3] 다만, 여성이 외지인 남성과 결혼하더라도 주민권을 유지할 수 있는 예외적인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외지인 남성이 데릴사위로 들어가는 것이다. 외지인 남성이 데릴사위로 들어가서 입주하게 되면 그 때부터 현지인으로 간주되기 때문. 하지만 데릴사위를 들이는 게 허가되는 조건이 처가 쪽이 아들이 없는 경우(즉, 처가 될 현지인 여성에게 오빠나 남동생이 없는 경우)에 한정되며 그마저도 바로 OK인 게 아니라 까다롭게 심사를 거치고 나서야 겨우 허가가 난다. 그래서 대성동 마을에 데릴사위로 들어간 외지 출신의 남성은 휴전 협정 이후로 현재까지 통틀어서도 단 2명밖에 없다.

2 상세

주민 대부분은 농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으며 마을 주위는 군부대 아니면 농경지다. 경작권이 주어지지만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가질 수 없다. 북한의 도발이 심했을 때에는 농사 짓는데 경호원으로 대한민국 육군 병력(대성동은 JSA 대대 관할이다)이 따라가기도 했다. 그리고, MDL과 너무 가까워서인지 조선인민군 육군들이 대성동 주민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한 적이 꽤 있다(실제로 납치한 적이 있다).[4][5] 2012년 10월에는 탈북자 단체의 대북선전 풍선 날리기를 핑계로 북한이 ‘임진각 군사적 타격’을 위협하는 바람에 마을의 모든 주민이 잠시 벙커 신세를 지기도 했다.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육군 민정경찰이 가구별 인원을 점검하고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통행이 금지된다. 이 통행금지를 어기면 1차 위반시 경고, 2차에는 7일 추방, 5차 위반이면 주민권이 박탈되며 듣기만 해도 숨막힌다... 그나마도 주민이 아닌 경우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만 출입이 가능하다. 다만 밤중에 병이 나거나 돌발적인 사태가 일어나 나가야 할 일도 있고 돌아와야 할 일도 있으므로 그럴 때는 부대와 연락하고 오간다. 또한 사람이 죽으면 외부 조문객이 들어와야 하는데 규칙대로라면 장례식이 다 끝난 후에나 조문할 수 있지만 예외는 있다.

만약 UN군에게 행패를 부리면 해당 주민은 4개월간 추방을 당하는데 이는 사실상 주민권 박탈을 의미한다. 또 이장은 주민들이 선출하여 뽑지만 UN사령관의 직권으로 이장을 파면할 수 있다.

문산 버스정류장에서 신일여객 93번 따복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데 마을로 들어가려면 패스라는 출입증이 필요하고 군부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나마 이 버스도 하루에 세 번만 오간다. 생활용품을 사려면 문산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가구마다 자동차를 소유하게 됐는데, 그것도 생활형편이 나아져서고 마을이 생기고 나서 처음엔 마을 밖으로 외출할 수 있는 기회가 일주일에 단 한 번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엔군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에 들어와 생필품을 나눠주기도 했다고. 1972년 마을버스를 기증해 버스 운행이 일주일에 세 번으로 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버스가 매일 한 번씩 다니다가 횟수가 늘어 지금은 하루 세 번 문산터미널까지 왕복한다.

가는 데만 관문이 3개가 있고 처음 들어가는 데도 '평화의 다리' 라는 다리를 건너가야 하는데 평화의 다리에는 바리케이트가 쫙 깔려있고 중간에 육군 초소가 있다(...). 평화의 다리에 처음 들어갈 때도 육군 헌병이 차를 멈추게 하고 신분증 검사를 한다.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이라지만 딱히 뭘 하지는 않는다. 그냥 지키고 있는 것일 뿐. 헌병이 경계를 선다.)에는 '평화의 마을 대성동' 이라는 큰 표지판이 있는데 여기까지 들어왔으면 알겠지만. 도대체 어느 평화의 마을이 들어가는데 바리케이트를 깔아놓은 다리를 건너겠는가? 물론, 마을 안은 고요하고 평화롭긴 하다(...)

마을로 들어오면 UN군에 자신이 방문했다는 것을 신고해야 한다. 방문자가 있을 경우 군인들이 집에 찾아와서 방문자를 확인한다. 다만 외부인이 이 마을을 출입하려면 일주일 전에 신청을 한 후 신원 확인을 거쳐야 가능하다. 들어와서 지형 조사를 할 수가 없다보니 차량 내비게이션도 여기에서는 먹통이 된다고 한다. 같은 이유로 네이버 지도나 다음 지도에서도 이 마을은 로드뷰를 제공하지 않는다.

마을 안에 유일한 교육시설인 대성동초등학교가 있다. 1967년 개교. 원주민 자녀는 한 자리 수지만 파주시 이곳저곳에서 학생을 끌어모아 간신히 학교를 유지하고 있다. 학생이 30명인데 교직원이 무려 17명인 무서운 학교.[6] 학생 수가 적어서 1대 1 교육이 이뤄지는 데다 영어특성화학교로 지정돼 있어 해마다 외부 학생 신청자가 많다. 대성동초등학교 졸업(예정)생은 서울특별시중학교에 배치받을 수 있는 특혜를 주고 있다. 물론, 중학교부터는 원주민 자녀는 문산에서 통학해야 한다.
최근에는 근처 미 육군기지의 미군을 끌어들여 원어민 영어교육을 시킨다고 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졸업생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UN군사령부중립국감독위원회의 각국 장교들이 졸업식에 대거 참석하는 풍경이 매년 뉴스에 나온다. 마을 주민이 아닌 학생과 교직원은 학교 담 밖을 나갈 수 없으며 심지어 공놀이 하다 공이 담 밖으로 넘어가도 주워올 수 없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전혀 안 그런 것 같지만, 살벌한 동네다. 마을 안에도 군인이 있고 버스 타고 가다가 잘 보면 위장해놓은 초소같은 게 보이기도 한다. 농지로 가는 길에도 월남하는 군인들을 안내하는 표지판, 전화무전기 등이 설치되어있다. 즉, 전쟁 나면 0.1초만에 날아갈 동네이다.

또한, 이곳을 방문할 때 반드시 파란색 손수건을 창문으로 펄럭이게 해야 하는데 안 달면 총 맞아도 뭐라 못한다고 한다. 사실 저 파란색 손수건은 DMZ 출입 차량이라면 해놓아야 되는 건데 보통 파란색은 한국군 계통(유식하게 말하면 민정경찰 계통), 하얀색은 UN군사령부, 빨간색과 노란색은 조중 연합군이 써먹는다. 그리고 중립국감시위원회는 저 4색이 들어간 깃발을 달아놓으며 이 깃발은 중립국감시위윈회의 마크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으로 넘어가는 차들을 보면 빨간색 깃발을 단 한국 번호판을 단 트럭들이 보이기도 한다.

대성동 주민들은 투표일에 모두 함께 마을 밖으로 외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대성동 마을 사람들의 투표율은 매번 거의 100%에 이른다. 투표권이 주어진 것도 1967년부터다. 초기 14년간은 참정권이 제한된 채 살아왔다.

3 의무 면제 혜택

한편, 대성동 주민들은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면제된다. 대성동마을은 정전협정 제10항에 의해 국제연합군사령관에서 관할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따라,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지며, UN사령관(한미연합사령관이 겸직)이 관할하고 UN의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7] 즉, 군대 안 가고 세금도 안 낸다. 별것 아니지만 TV 수신료도 면제다. 하지만, 대성동 주민은 휴전협정 당시 DMZ 안쪽에 살던 사람들과 그 자손으로 한정되고 위에 있는 것처럼 여러 불편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딱히 형평성 논쟁은 없는 듯하다. 바로 앞에 북한군이 살고 있다고 상상한다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특혜니까 아니, 북한군만 문제가 아니라...

  • 마트와 슈퍼조차 없어 모든 것을 자급자족해야 한다.(대신 마을에서 공동관리하는 직판장을 운영한다)
  • 식당도 없다.
  • 병원도 없어 아프면 육군 헬기 신세를 지고 병원에 가야 한다.
  • 건축 당시 건축물대장에 등재하지 않은 탓에 주민들에게 집에 대한 소유권이 없어 집이 낡아도 보수를 못 한다.
  • 일일이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인터넷 연결이나 건물 증·개축도 못한다.
  • 체제 선전을 위해 건물들이 북한 쪽에서 잘 보이도록 북향으로 지어진 탓에 여름에도 보일러를 틀어야 될 정도로 춥다. 겨울에도 온수가 안 나와 찬물로 샤워해야 하는 지경.
  • 그 외에도 모든 기반시설이 80년대 이후 새로 지어지지 않아 매우 낙후되어 있다.

....이런 형편이니(...) 아마도 "병역&납세 둘 다 면제받고 대성동에서 살기 VS 병역&납세 둘 다 이행하고 일반 동네에서 살기" 하면 대부분은 닥치고 후자를 택할 것이다. 북한을 공격한다 그나마 2015년 7월부터 경기도와 중앙정부, 각 유관기관이 나서 마을을 새롭게 단장하는 '대성동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건물 보수부터 통신 시설, 환경 디자인, 농업용수 수도시설 설치까지 완전히 뜯어고친다고 하니 그 부분은 좀 나아질 전망이다.

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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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냉전 시절에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의 인공기 깃대와 대성동 마을의 태극기 깃대의 높이를 서로 높이는 병림픽 경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게 별 쓰잘데기 없는 짓이라고 판단한 남한측이 먼저 그만두면서 이 병림픽 경쟁이 끝났다고 한다. 도덕 교과서에도 실려있었던 일화이다. 덕분에, 태극기인공기나 굉장히 높은 곳에 크고 아름답게 매달려 있다. 그래서, 기정동 깃대는 약 160m에 달하는 그 높이로 인해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었지만... 2015년 9월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기게양대는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의 것으로 170m 왕좌를 내주었다. 국기봉 위에 달린 공모양 장식물은 성인남성 두명 정도 들어갈 크기라고 한다

기정동 마을은 현재 거주자가 거의 없어 유령 마을 수준이다. 저기 살면 다 탈북할테니까

여기 게양되는 태극기는 깃대가 높다보니 비바람에 찢어지는 경우가 있어서 일정 기간마다 새 태극기로 교체해주는데, 그 비용은 파주시에서 전액 부담하고 있다. 태극기 크기가 매우매우 큰데, 북한 인공기에 비해서 무게는 굉장히 가볍다고 한다
  1. 이 쪽은 북측의 기정동을 포함해서 부르는 말.
  2. 2016년 들어 대북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됨에 따라 대남 방송을 아침부터 새벽까지 틀어놓는다. 소음공해가 가공할 수준.
  3. 출가외인이라는 전통에 따라 마을에서 정한 규칙이라고 한다. 성차별로 보일 수 있기에 철폐하면 안 되냐는 생각이 들겠지만,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면제 제도를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예를 들면, 마을 주민인 여성에게 거액의 돈을 주고 서로 짜고서 20세 전후의, 영장이 나오기도 전의 나이에 위장결혼한 뒤 면제를 받은 후 곧바로 이혼한다든가...)어쩔 수 없다고.
  4. 물론 납치하겠다고 대놓고 말하는건 아니고 조선인민군이 대성동을 해방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그 해방은 해방이 아닌 거 같은데 혹시 害謗을 말하는 거 아닌가?
  5. 害: 해칠 해, 謗: 헐뜯을 방. 즉 해치고 헐뜯는다 하여 해방이다.
  6. 비슷한 실정인 군내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42+12명에 교직원 16명이다.
  7. 그래서 대성동 마을에서 범죄가 발생했을 시 범죄자를 한국 경찰이 체포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곳이 치외법권지대는 아니며, 대성동 주민이 범법 행위를 하면 일단 대성동에서 추방되는 형식을 거친 후, 한국영토에서 체포하는 형식으로 범죄인 인도절차가 진행되고 나서 대한민국 법률에 의하여 규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