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下鉄サリン事件, Tokyo Subway Sarin-Gas Att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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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때는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기분 좋게 맑게 갠 이른 봄날 아침이었다. 바람이 아직 차가워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모두가 외투 차림이었다. 바로 전날은 일요일, 그다음 날은 공휴일[1] - 즉,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평일이었다. 어쩌면 당신은 '오늘 하루는 쉬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당신은 휴가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당신은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고, 옷을 챙겨입고 역으로 향한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혼잡한 지하철에 몸을 싣고 회사로 향한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인생 가운데 구별할 수 없는 단 하루였을 뿐이다.
가발을 쓰고 가짜 수염을 붙인 다섯 명의 젊은 남자들이 갈개로 뾰족하게 갈아둔 우산 꼬챙이로 기묘한 액체가 든 그 비닐봉지를 찌르기 전까지는.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中
1995년 3월 20일 월요일, 일본에서 옴진리교가 일으킨 인류 역사상 최초의 화학물질을 이용한 대형도시권역에서의 대규모 지하철 테러 사건.[2]
세뇌한 광신도를 동원해 도쿄 지하철에서 독가스인 사린을 살포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일본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이름이 비슷하여 혼동할 수 있는데 절대 살인가스 살포사건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이 죽어서 살인가스[3]가 된 것 자체는 맞지만.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이 사건을 비롯하여 그간 옴진리교가 일으킨 각종 사건의 주범 혐의로 체포되었으며 옴진리교는 강제로 해산당한다. 하지만 아사하라 쇼코가 체포된 후에도 잔당들이 모여서 새로운 조직을 건설했다. 이 사건의 용의자들은 사건 발생 후 17년 가까이 장기 지명 수배되어 있었고, 2012년에 모두 체포되었다.
또한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테러사건으로도 항목에 올 수 있다.
2 배경
사카모토 츠츠미 살인사건, 옴진리교 국토이용계획법 위반사건,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 카메이도 악취사건 등의 온갖 대형 병크를 저지르던 옴진리교는 그 결과 이들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기 시작하면서 경찰 수사가 포위망을 좁혀 오자 압박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교주 아사하라 쇼코는 경찰의 수사력 및 관심을 분산시켜 궁극적으로 옴진리교가 조사받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지금까지와 수준이 다른 대규모 테러를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특히, 테러 대상으로 도쿄의 주요 관공서가 밀집된 지역 등을 골라 일본 정부를 일시적으로 마비시키는 것까지 노리고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미 이성적인 판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미 계속적으로 테러를 저질러 왔기 때문에 옴진리교는 요주 대상으로 찍혀있었다. 이 상황에 대규모 테러를 저지를 경우 오히려 제일 먼저 용의 대상으로 지목받기 쉽다. 역시나 이 사건이 터지자 옴진리교는 확실하게 몰락의 길을 걷는다. 결국 궁지에 몰리자 망상적인 발상으로 최악의 사건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3 사건
3월 20일 아침 8시, 옴진리교는 한창 직장인들과 학생들의 출근 및 등교로 바쁜 러시아워 시간대에 에이단 지하철이 담당하는 노선에서 총 5개 편성을 노려 차량에 대량의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 마루노우치선과 히비야선에 각 2편성, 치요다선에 1편성을 노렸는데, 이들 3개 노선의 공통점은 도쿄의 주요 관공서 밀집지역을 지난다는 것이다. 카스미가세키로 불리는 이 지역은 한국의 세종로와 비슷한 지역으로서, 이 지역에 위치한 주요 성급 부서만 해도 법무성, 후생노동성, 환경성, 경제산업성, 총무성, 국토교통성, 재무성, 문부과학성 등 8개에 이르며 또한 이들 부서의 산하기관이 수두룩하게 밀집해 있다. 당연히 통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고 그들을 핵심 타겟으로 노려 사린 가스를 살포했다.[4]
실행자들은 각각 2명씩 패를 이루어 한 명은 지하철에 탑승하여 사린을 담은 비닐봉투에 구멍을 내는 식으로 사린을 살포하고, 다른 한 명은 살포자를 태워 도망치는 운전수의 역할을 맡았다.
다음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 책에 나온 것을 기준으로 한 자세한 문건.
3.1 범인들
- 5명의 테러리스트(최종학력) ↔ 이들을 자동차로 데려다 준 운전수 -
하야시 이쿠오(케이오의과대학교) ↔ 니이미 토모미츠
히로세이 켄이치(와세다대학교) ↔ 키타무라 코이치
요코야마 마사토(토카이대학교) ↔ 토노자키 키요타카
토요다 토루(도쿄대학교) ↔ 타카하시 카츠야
하야시 야스오[5](코카쿠인대학교) ↔ 스기모토 시게로
- 범인들 체포, 처단 -
하야시 이쿠오 = 1995년 4월8일, 종신형[6]
히로세이 켄이치 = 1995년 5월16일, 사형
요코야마 마사토 = 1995년 5월16일, 사형
토요다 토루 = 1995년 5월16일[7], 사형
하야시 야스오 = 1996년 12월3일(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 사형
3.2 범인들의 승차 지점+시간, 피해 규모
테러리스트 | 승차 시간 | 승차지점 | 독가스 살포 구간 | 사상자 | 전동차들의 종점역 |
하야시 이쿠오 | 3.20 7:48 | 치요다선 기타센주역 | 센다기 → 신오차노미즈[8] | 지하철 직원 2명 순직[9] 지하철 승객과 직원 231명 중경상 | 국회의사당앞역 |
히로세이 켄이치 | 3.20 7:48 | 마루노우치선 이케부쿠로역 | 이케부쿠로 → 오차노미즈[10] | 지하철 승객 1명 사망 지하철 승객과 직원 358명 중경상 | 신코엔지역 |
요코야마 마사토 | 3.20 7:55 | 마루노우치선 신주쿠역 | 신주쿠 → 요츠야[11] | 지하철 승객과 직원 200명 중경상 | 국회의사당앞역 |
토요다 토루 | 3.20 7:59 | 히비야선 나카메구로역 | 나카메구로 → 에비스[12] | 지하철 승객 1명 사망 지하철 승객과 직원 532명 중경상 | 카스미가세키역 |
하야시 야스오 | 3.20 7:55 | 히비야선 우에노역 | 우에노 → 아키하바라[13] | 지하철 승객 8명 사망 지하철 승객과 직원 2475명 중경상[14] | 츠키지역 |
아래 도쿄지하철 노선도를 동시에 로딩해놓고 위 데이터를 맞춰보면
파일:도쿄사린가스노선도.jpg
다섯(5) 테러리스트가 도쿄지하철을 어떻게 파괴하려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도쿄는 대패닉에 빠졌다. 그나마 일선 부서의 발빠른 대처 및 숭고한 희생[15]으로 살포 지역의 무정차 통과 및 열차운행 중단 등의 조치가 이어졌고, 살포된 독가스가 사린이라는 것도 비교적 초기에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도쿄도 내의 각 병원에 사린 가스의 해독제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병원에 비교적 빨리 도착한 피해자들을 제외하면 추가 치료가 불가능해 대재앙이 발생할 뻔했다. 사린의 해독제로는 아트로핀과 프랄리독심(Pralidoxime, 2-PAM)이 쓰이는데, 프랄리독심은 유기인계 농약 중독의 치료제로 많이 쓰이는 물질이어서 대도시인 도쿄에는 물량이 얼마 없었다. 다행히 스미토모(住友) 제약회사에서는 이 프랄리독심을 생산하고 있어, 서일본 지역에 있는 아트로핀과 프랄리독심을 긁어모아 도쿄 지역의 병원에 공급해 사태가 크게 번지는 일을 막았다.
자위대에서는 화학전 담당 부대(제101화학방호대)를[16] 중심으로 화학학교 교관 등이 파견되어 치료를 도왔다. 자위대중앙병원에서 파견된 의사가 이전의 간부연수에서 화학병기 대응 교육을 받았었고, 현장으로 파견될 때 연구자료를 가지고 와서 화학병기로 인한 테러라고 판단하고 병원에 아트로핀과 2-PAM을 투여할 것을 조언해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이 테러로 13명이 숨지고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사실 테러의 규모, 살포된 사린 가스의 양을 보면 이 정도에 그친 것이 다행이었다.[17]
4 가해자와 피해자
놀랍게도 이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 그러니까 지하철에서 가스를 살포한 이들은 일본 사회 전체 가운데에서도 엘리트로 불릴 만한, 고등 교육을 받고 전문지식을 가진 인물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해자들의 학력과 경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지요다 선에서 역무원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하야시 이쿠오(당시 48세)는 평판이 좋은 심장외과 전문의였다. 마루노우치 선에서 승객 한 명을 죽게 한 히로세 겐이치(당시 30세)는 와세다대학의 이공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한 사람이었다. 마찬가지로 마루노우치 선에서 이백 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요코야마 마사토(당시 31세)는 도카이 대학에서 응용물리학을 전공했다. 히비야 선에서 승객 한 명을 죽게 만든 도요타 도오루(당시 27세)는 도쿄대학 이학부의 응용물리학과 출신으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훌륭하고 우수한 연구실의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같은 히비야 선에서 무려 여덟 명의 승객을 죽게 만든 하야시 야스오(당시 37세)는 고가쿠인 대학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가해자들이 (아마도) 타깃으로 삼은 일본의 관료들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은 지하철 안 타고 자가용 타고 출근하겠지 무라카미 하루키를 다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지하철역에서 사린 가스를 마시고 호흡 곤란에 빠져 영문도 모른 채 격렬한 고통 속에서 목을 쥐어뜯으며 희생당한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하루하루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나는 책을 위해 사건 피해자들을 육십 명 넘게 인터뷰했지만, 반수 이상의 사람들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놀랐다. 실행범들에 필적할 만한 고학력자는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희생당하거나 부상당한 사람들은 전형적인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으며, 그에 반해 테러를 자행한 범인들은 만일 테러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면 국가와 사회를 지탱할 우수한 인재가 될 수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당시 일본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5 결과
옴진리교와 아사하라 쇼코의 의도와는 반대로 일본 경찰은 테러의 배후로 옴진리교를 지목해서 집중적으로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 들어오면서 결국 아사하라 쇼코는 옴진리교 본거지인 사티암에서 체포되었으며 사형 판결을 받고 현재 복역 상태에 놓여 있다. 그리고 옴진리교는 테러 단체로 지목되어 강제 해산되었다. 관련인은 도합 188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그중 13명이 사형 확정을 받았다.
독가스가 인간에 의해 개발된 이래, 전쟁이 아닌 테러 목적으로 대량인명살상을 위해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마지막)으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충격을 주었으며 세계 각국은 독가스 테러의 위험을 직시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한편, 옴진리교는 원래 사린 가스가 아니라 탄저병을 연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옴진리교의 기술력이 부족해서 탄저병을 포기하고 사린으로 전환했다. 탄저균 배양에는 성공,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살포를 하였으나, 악취만 남게 된 카메이도 악취사건이 벌어진다.[18]
사린 제조 프로젝트에 관여한 키쿠치 나오코(菊地直子)는 2012년 6월 3일 저녁, 카나가와현 사가미하라시에서 체포되었다. 키쿠치는 1996년에 타카하시와 함께 숨어 산 것으로 알려져 일본 경찰은 키쿠치가 타카하시의 행방을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이를 추궁 중이라고 한다.
히비야 선 구간에서 운전수 역할을 포함한 총 5가지 사건[19]에 관여했던 타카하시 카츠야(高橋克也)는 다른 범인들과 마찬가지로 지명수배 중인 상태였으나 2012년 6월 15일 도쿄 오타구(大田区)에서 타카하시가 잡히면서 사건 17년만에 드디어 모든 관계자가 잡혔다! 만세![20] 사건 전에도 만화를 좋아했던 터라 만화방에서 나오다 잡혔다고 한다. 잡히고 나선 아돌프 아이히만처럼 '나는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드립을 치고 있다. 그러더니 경시청 조사에서는 또 옴진리교에서 수행하고 싶다는 드립을 쳤다!!! 아무래도 끌려나와 복날 개 패듯이 맞아봐야 정신을 차릴 듯 싶다 또한 해당 기사에 따르면 체포됐을 때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의 사진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도주하는 17년 동안 반성이나 후회를 했을 가능성은 전무한 걸로 보인다.
최후의 옴진리교 재판인 타카하시 카츠야의 재판은 2015년 1월 16일 시작되어 2015년 4월 30일, 1심에서 구형 그대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본인은 뿌려진 것이 사린 가스인지 몰랐다고 하지만 재판장은 그가 "지하철에 위험한 독극물을 뿌리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17년간의 도주와 재판 중의 태도에도 갱생의 흔적이 없는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무기징역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하지만 타카하시 피고는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했지만 그가 요구한 아사하라 쇼코 사형수등의 증인 심문은 각하당하고 피고인 질문도 행해지지 않은채 1심의 무기징역을 지지한다며 9월 7일 도쿄 고등 법원에서 피고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런데 11월 27일, 도쿄 고등법원에서 키쿠치 나오코가 살인 미수 방조 등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받았다!!! 살인의 의도가 없었다는 재판정의 발언에 일본 현지는 충격의 도가니.무고한 사람 무죄 안 주기로 악명높은 일본 법정에서 이런 테러범이 무죄라니 당연히 검찰측은 상고를 진행중이다.
6 기타
일본의 유명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사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직접 사건의 피해자들을 취재한 인터뷰 내용을 모아서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옴진리교 신도[21]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약속된 장소에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언더그라운드의 인터뷰 중 '지하철 사린사건 피해자의 모임'의 상담 창구를 맡고 있는 나카무라 유지 변호사[22]는 일본의 경찰 조직과 사법 조직의 태만을 지적한다. 사건이 일어난 해 설날에 이미 요미우리 신문에서 본거지인 사티안이 있는 가미쿠이시키무라에서 사린 잔유물이 검출됐다는 기사가 나고 3월 6일과 13일[23], 두 번에 걸쳐 치안 상태 및 사린 가스 살포의 가능성에 대한 건의서가 제출되지만[24] 경찰은 설날로부터 3달이 넘도록 옴진리교의 조직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늦장 대응을 보여주며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 일본에서는 춘분이 공휴일이다. 항목 참고.
- ↑ 이긴 하나, 진짜 인류역사상 최초의 화학물질을 이용한 대형도시권역에서의 대규모 테러사건은 마츠모토 시 사린가스 살포사건이다. 평시에, 전시에도 사용에 제약이 많은 화학물질로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를 공격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이때 이미 옴진리교는 일본 정부체제를 전복시킬 음모를 준비해놓고서 사린독가스로 나가노 현 마츠모토 시를 공격했기 때문에 이 문제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라 할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옴진리교 문서 "음모" 항목의 2-2번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 ↑ 사실 사린가스 자체가 대표적인 신경계 독가스다. 군필자들이 화생방 정신교육 받을 때마다 늘 들었을 그 가스 중 하나.
- ↑ 평상시에는 출근 시간이 9시 30분까지였지만, 사건이 일어난 요일인 월요일에는 아침 일찍 조례를 하는 곳이 많아 사건이 일어난 시각 즈음에 출근하는 공무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옴진리교 내부에 이런 일본 정부 관청가의 내부사정을 잘 아는 자가 있었던 것이고, 옴진리교 문서 초반에 나와있듯이 옴진리교는 일본에서 정말 옴진드기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 ↑ 언더그라운드 책 362페이지에 의하면, 이 자는 교주 아사하라 쇼코로부터 스파이 의심을 샀다고 하며, 이것이 하야시 야스오를 과격파로 만들어, 후술하는 바대로 도쿄 지하철 히비야 선에 가장 큰 피해를 유발했다. 같은 피해를 당한 마루노우치 선과 치요다 선을 비롯하여 다른 도쿄지하철 노선들이 아침에만 운전승무를 정지하고 오후부터 운전승무를 재개한 것과 비교한다면 정말 엄청난 피해 규모이다. 또 이 자의 도주 중 행보도 엄청난 비판을 살 부분인데, 도쿄지하철 사린사건 후 장기간 도주하다 1년 9개월만인 1996년 12월 3일 오키나와 현 이시가키 시에서 오키나와 현경에게 체포됐을 때(출처), 하야시 야스오 이 자의 소지품에서 작은 불상이 나왔고 그 불상이 다름아닌 하야시 야스오 자신 때문에 사망한 지하철 승객들의 영면을 기도하기 위한 불상이었다고 한다. 자신이 사고 저질러서 수많은 지하철 승객들을 사망하게 만들어놓고도 뻔뻔스럽게 자신 때문에 사망한 지하철 승객들의 영면을 기도하기 위해 불상을 소지했다? 이건 완전히 병 주고 약 주는 꼴이고, 비판 엄청나게 살 부분이다.
- ↑ 언더그라운드 책을 보신분은 아시겠지만 이 자도 조유 후미히로 못지않게 옴진리교의 파괴범죄와 거리를 둬 왔던 자라고 한다. 그리고 체포된 후 그야말로 옴진리교의 모든것을 다 폭로했고
어차피 도쿄지하철 요요기역과 카스미가세키역 직원 히시누마 츠네오(Hishinuma Tsuneo) 씨와 타카하시 카즈마사(Takahashi Kazumasa) 씨의 유족분들(특히나 타카하시 카즈마사 씨의 사모님 타카하시 시즈에(Takahashi Shizue) 씨와 장녀(長女) 타카하시 미유키(Takahashi Miyuki) 씨)에게는 이같은 사죄가 씨도 안먹히겠지만전(全) 피해자들에게도 거듭 반복적으로 사죄하며 경찰 검찰 법원 공안조사청 중앙정부 지방정부 전체의 옴진리교 강제수사에 적극 협력해 일본 경찰 검찰 법원이 앞장서서 본래 사형 구형됐던것을 종신형으로 감형해준 유일한 사례로, 현재 치바 현 형무소에서 복역중이며 피해자들을 염불하며 책을 저술하고 있다고 한다. 그 책 인지세를 피해자들에게 기부해주고 있는 것.병 주고 약주는 꼴이긴 하지만 하야시 야스오보다는 양반인듯 - ↑ 히로세이 켄이치, 요코야마 마사토, 토요다 토루 등 3명이 일괄체포된 1995년 5월16일은, 공교롭게도 교주 마츠모토 치즈오가 체포된 날이기도 하다. 동시에, 옴교주 체포에 반발한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도쿄도청 소포폭탄사건을 저지른 날이기도 하다.
- ↑ A725K 아비코 발 요요기우에하라 행.
- ↑ 대한민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지하철 직원 2명이 바로 타카하시 카즈마사(Takahashi Kazumasa) 씨와 히시누마 츠네오(Hishinuma Tsuneo) 씨다. 출처는 1995년 3월 21일 연합뉴스 and 1995년 3월 20일 연합뉴스.
- ↑ A777 이케부쿠로 발 오기쿠보 행.
- ↑ B801 신주쿠 발 이케부쿠로 행.
- ↑ B711T 나카메구로 발 토부동물공원 행.
- ↑ A720S 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책 361페이지에서부터 이에 대한 자세한 언급이 나온다. 하야시 야스오의 테러 공격에 이렇게 많은 사망자와 중경상자가 발생한 것은 이 A720S 전동차에서 모두 발생한 사망자와 중경상자가 아니다. 사린 가스를 살포당하고 츠키지 역에서 스톱해버린 A720S 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를 뒤따라오던 A621T 기타카스카베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가 핫초보리 역에서, A785K 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가 카야바초 역에서, A666S 토부동물공원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가 닌교초 역에서, A750S 기타센주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가 코덴마초 역과 닌교초 역 사이에서, A738S 타케노츠카 발 나카메구로 행 전동차 등이 코덴마초 역에서 줄줄이 스톱했을 때, A750S 전동차에서 하차하여 승강장에서 대기 중이었던 전(全) 승객들과, A750S 전동차를 뒤따르던 A738S 전동차에서 하차하여 승강장에서 대기 중이었던 전(全) 승객들이 코덴마초 역 승강장에서 대규모로 사린 가스를 흡입하고 일제히 쓰러지면서 피해가 커졌기 때문이다. 이 승객들을 쓰러지게 한 독가스가, A720S 전동차가 코덴마초 역에 스톱했을 때 이 전동차의 승객들이 발로 차서 코덴마초 역 승강장으로 버린 팩에 있던 독가스였다! 문제는 A720S 전동차의 승객들이 발로 걷어차서 버린 사린 가스 팩 개수도 무려 3개였다! 다른 4명이 각각 2팩씩 살포했는데 하야시 야스오만 3팩을 살포했다는 점에서, 팩 하나당 독가스 분량이 900밀리리터였다는 점에서 참혹한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이게 하나 더 있는데, 하야시 이쿠오, 요코야마 마사토, 히로세이 켄이치 3명은 독가스 팩에 구멍을 작게 뚫었고 일부는 뚫지 못하기까지 한 반면, 토요다 토루는 독가스 팩 2개를 다 구멍냈고, 하야시 야스오도 독가스 팩 3개를 다 구멍내면서 가장 많이+가장 크게 구멍을 냈다! 최종적으로 이 사건은 도쿄 지하철 여러 노선들 중에서도 히비야 선에 가장 큰 피해를 유발했다 → 총 사망자 9명(8+1), 총 중경상자 3007명(2475+532).
- ↑ 승객들을 1명이라도 더 대피시키기 위해 사린 가스 살포 지역에 남아 대피 작업을 하다 숨진 역무원도 있다.
- ↑ 훗날 2001년 중앙즉응집단소속 중앙특수무기방호대가 된다.
- ↑ 무라카미 하루키 언더그라운드 책 264페이지에서 그나마 이 정도에 그친 사유를 거론하고 있다. 구명구급센터 의사 겸 토호대학 의학부 사이토 토루(Saito Toru) 조교수님의 주장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자신의 추측이지만 다섯(5) 테러리스트가 액체 사린독가스에 아세토니트릴을 섞어 휘발속도를 늦추고 그 사이에 도주할 시간을 확보했는데, 액체 사린가스에 아세토니트릴을 섞으면서 사린가스로서 농도가 30% 이하로 떨어졌고, 아세토니트릴이 섞인 사린독가스가 지하철전동차 안에서 기화하면서 겨자 및 고무타는 냄새를 풍겼는데 그러면서 느린속도로 기화해 그 사이에 사린가스 살포 사실이 파악돼 앞서 거론한대로 그나마 신속한 사고처리가 실행될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순수한 100% 농도의 사린은 일단 기화하면 냄새도 없고 휘발속도도 대단히 빨라 가스를 살포한 자(다섯(5) 테러리스트)도 즉사했을것이고, 옴진리교가 시간을 갖고 순도 100%로 사린가스를 제작해 지하철전동차에 살포했다면 5,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사망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 ↑ 1993년 6월 27일과 7월 2일 두 차례,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있던 옴진리교 지부가 (정확하게는) 탄저균의 배양에는 성공했지만, 이를 도쿄 고토구 카메이도 지역에 살포하는 과정에서 고압 분무기를 사용하는 바람에 탄저균이 모두 사멸해버리고 악취만 남게 되었다(출처 : 일본어 위키백과 카메이도 악취사건 문서 및 1995년 3월 22일 MBC 뉴스데스크).
- ↑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 메구로공증인사무소 사무장 납치 감금 치사 사건, 도쿄도청 소포폭탄사건, VX를 사용한 2건의 살상.
- ↑ 이로서 옴진리교 특별지명수배 대상이었던 3명(키쿠치 나오코, 타카하시 카츠야, 히라타 마코토)이 모두 잡혔다. 1990년대, 2000년대 일본에 여행 다녀오신 분이라면 아마 이 지명수배 포스터를 지겹게 봤을 것이다. 우습게도 이 중 다른 사건에 연관되었던 히라타 마코토(平田信)는 2011년 12월 31일 도피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변호사와 상담 후 자수했다. 그리고 2012년 1월 1일, 즉 자수한 지 하루 만에 본인임이 확인되어 최종적으로 체포. 다만 이 자수 과정에 좀 경시청의 병크가 돋보였다. 옴진리교 항목 참고.
- ↑ 사건의 직접적인 가해자들이 아니라 주로 前 신도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 ↑ 사카모토 츠츠미 변호사와는 사법연수원 동기이다.
- ↑ 사건이 일어나기 딱 일주일 전이다.
- ↑ 이 두 차례 건의서를 제출한 분이 바로 타키모토 타로(Takimoto Taro) 변호사이다. 3월 6일에는 "치안 상태에는 문제가 없는가"라는 제목으로, 3월 13일에는 "옴진리교가 사린 가스를 살포할 가능성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경찰청장과 검찰총장 앞으로, 그리고 경시청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