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와 모루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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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점이 모인 사각형이 모루(보병), 청색의 점이 망치(기병대).

1 개요

Hammer and Anvil Tactic. '아무리 강한 쇠도 모루에 대고 망치로 치면 발린다' 는 진리에서 착안한 군사 전술. 그 유래를 찾아들어가면 끝이 없을 정도로 오래된 포위전술이다.

모루(조공)란 저지부대로서 주로 보병을 말하고 망치(주공)란 실질적 타격을 가하는 기병대를 의미한다. 이는 보병대가 적을 저지하는 동안 기병대가 측, 후방을 타격하는 전술이 모루 위에 철을 얹고 망치로 때리는 행위와 비슷하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한마디로 정면에서 힘싸움 벌이는 사이 측면과 후방을 공격하여 적을 붕괴시키는 전술이다. RTS 게임에서 쓰는 "쌈싸먹기" 도 개념적으로는 망치와 모루와 유사한 전술이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개념을 잡아놓고 알렉산드로스 3세가 정립하였다. 알렉산드로스는 BC 334년 그라니코스 싸움, BC 333년 이수스 싸움, BC 332년 티로스 싸움에서 이와 같은 전술을 사용하였으며 모두 수적으로 불리함에도 페르시아[1]를 개박살내고 페르시아 공략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필리포스 당시 편제는 15개 기병대대(1대대당 200명) 3000명과 16열 16오 256명으로 구성된[2] 6개 중대로 이루어진 6개 대대의 중보병으로 이루어졌다(기타 척후병 등도 물론 존재함). 이후 한니발 바르카가 완성했다고 하며 현대전에도 계속 응용하는 불후의 전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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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전술은 알렉산드로스 3세나 필리포스 2세의 순수 창작은 아니며, 이 전술의 원형은 테베의 에파미논다스가 사용한 사선대형에서 찾을 수 있다. 에파미논다스는 레욱트라 전투에서 병력을 집중시킨 좌익(망치)을 중익과 우익보다 먼저 기동시켜 상대의 우익을 붕괴시킨 후, 한발 늦게 전진하는 아군의 중익과 우익(모루)와 협력하여 상대방의 중익과 좌익을 측면공격하여 당대 최강의 군대로 평가받던 스파르타을 격파한 바 있다.

2 역사

역사에 기록된 첫 등장은 알렉산드로스 3세의 이수스 대회전[3]에서 사용되었다.

다만 정면(모루)을 방어하면서 측-후방을 강타하는(망치) 전술은 이미 마라톤 전투에서도 사용되었고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만티네아 전투에서도 나타났다. 그것을 보-기 합동전술로 끌어올린 것이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3세로 이어지는 마케도니아군의 기본 전술이 되며 이미 필리포스 2세는 헬라 연합군과 벌인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효력을 증명해보인 바 있다. 즉 이소스 전투가우가멜라 전투는 망치와 모루 전술의 전형적인 형태가 나타나는 대표적인 전투이지 망치와 모루가 사용되는 최초의 전투는 아니다.

3 전술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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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스 대회전의 경우와 기본을 섞어서 간단히 설명하자면 알렉산드로스를 필두로 이루어진 그리스 연합군은 페르시아군에 비하여 약 절반의 수로 이루어져 수적으로 열세를 보였다. 단, 차이점은 그리스군의 경우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 일대를 평정하면서 살아남은 베테랑들이 주축이었으나 페르시아군의 경우는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징집병이었다.

즉 지휘관이 부대를 컨트롤할 수 있는 선택지 차이와 병사 개개인의 능력이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또한 기병의 비율이 그리스군이 좀 더 높았다. 따라서 알렉산드로스가 고안한 전술이 망치와 모루 전술이다.

먼저 팔랑크스로 이루어진 중장보병대는 '모루' 가 된다. 기병대는 '망치' 가 된다. 기병대는 측면으로 몰아서 배치되거나 혹은 양익 배치된다. 대개 기병력에서 열세가 있다면 일익 배치를 선호하고 기병력에 우세라면 양익배치하는 경우가 많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일익 배치 시엔 오히려 이쪽에서 측면 공격을 받고 우르르 밀려버릴 수 있으므로 반대쪽에는 기병의 활동을 방해할 수 있는 지형을 선택한다(주로 강이나 절벽). 혹은 파르살루스 전투처럼 기병을 견제할 수 있는 보병, 참호 등을 파도 좋다.

이후 전투가 시작되면 아측(당연히 위 전술을 사용하는 쪽이 아측)의 기병들은 주변의 보병들과 함께(경우에 따라서는 기병들만 단독으로) 닥치고 전열을 이탈한다. 이렇게 하면 적 기병대 역시 아측 기병대를 따라 떡밥을 덥썩 무는데, 이때 따라오던 보병대와 소수의 기병대가 적 기병대를 묶어놓는다. 그 사이 아군의 주력 기병대는 적 전열의 뒤로 이동하게 되면 모루(아군 보병대)에 얹은 쇠(적군)을 치는 망치(아군 기병대)의 형상이 완성.

이후 망치가 쇠를 때리듯 측면(중앙을 치면 기병대가 포위된다)부터 야금야금 적의 보병대를 녹이면 적들이 앞은 막히고 뒤에선 말이 밟는 형세가 된다. 포위망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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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와 모루, 혹은 양익포위 전술의 완성이자 교과서인 칸네 전투도. 카르타고는 망치가 될 기병전력이 우위였기 때문에 이를 양익에 배치했으나, 모루가 될 보병전력이 로마에 비해 압도적으로 열세였다. 한니발은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보병전력을 一자가 아니라 앞으로 볼록 튀어나온 八자 모양으로 배치한 후, 서서히 뒤로 물리면서 로마의 보병대를 포위망 안으로 유인시켰다. 실제 한니발이 칸네전투 과정에서 직접 통제한 전력도 화려해 보이는 기병부대가 아니라, 전선 중앙의 보병 전력이었다. 이러한 계산된 퇴각전술은 자칫 진짜 패주로 돌변해 버리거나 압도적인 질량 앞에 찌그러져 버릴 위험성도 높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전술이 아니다. 칸네 전투가 수 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 포위전술의 이데아로 추앙받는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4 주의점

여기서 주의해야될 건 '모루' 가 튼튼해야 된다는 것. 망치로 쳤더니 쇠가 모루를 빠개면 답이 없다.[4] 즉 지휘관의 역량, 베테랑 군사들의 역량, 적군의 패닉이 3위일체가 되어야 일어나는 전술의 극치. 그래도 실제로 이 상황에서 모루가 박살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모루가 무너지는 경우는 기병이 돌아올 때까지 보병이 버티지 못하는 경우다. 이때 아군 쪽으로 피하면 되지 않나(완전 포위가 아니라 U자 포위니) 싶지만 팔랑크스란 어디까지나 정면이 생명이다. 고로 모루가 버티질 못하면 그냥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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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망치와 모루 전술이 실패한 예는 데르토사에서 하스드루발 바르카가 스키피오 형제를 상대로 싸운 회전에서 나타났다. 데르토사의 전투는 칸나이 전투 바로 다음에 스페인에서 벌어진 전투인데 하스드루발 바르카는 자신의 형인 한니발 바르카가 칸나이에서 썼던 전술을 그대로 흉내낸다. 그러나 로마 기병은 카르타고 기병을 맞아 수적열세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텼고 중앙의 카르타고 보병은 로마 군단병의 맹공에 돌파당해 다 같이 패주하는 비극으로 끝난다. 즉 유효한 전술이긴 하지만 아무 때나 성공하는 무적의 전술은 아니라는 것.

아군 기병 전력이 월등하면 이런 것 필요 없이 그냥 닥치고 찍어 누르면 된다. 그리고 이수스 전투에서 알렉산드로스 3세가 기병을 일익 밀집 배치한 것도 한정된 전장에서 기병전력의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물론 기병은 언제나 비싼 병과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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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망치가 돌파에 성공하지 못하고 모루를 때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르스크 전투. 당시 독일군 중부집단군 방면에 형성된 돌출부는 폭만 200km 이상일 정도로 매우 거대했고 이를 잘라내기만 한다면 하면 포위섬멸에 성공하는 상황이었지만, 독일군 북익이나 남익 모두 최종 목표인 쿠르스크는 커녕 그 절반까지도 가지 못하고 진격이 돈좌되고 만다.

5 유리한 이유

훗날 팔랑크스 전술은 도태되어 사라졌지만 망치와 모루 전술 자체는 유효했기에 계속 살아남았다. 특히 망치와 모루를 이용한 이중포위를 완성시킨 칸나이 전투에서는 정면과 측면에서 밀려드는 부대의 "질량" 때문에 포위된 쪽은 가해지는 힘의 방향쪽, 즉 U자나 O자 포위의 중앙으로 밀려서 과다밀집 상태에 빠지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도 무리. 굳이 예를 들자면 반죽을 사방에서 누르면 위로 쑥 솟는 것을 상상해보자. 사람은 위로 못 솟으니 빽빽한 공간에 밀리게 되는데 이쯤되면 칼도 휘두르기 어렵다. 칸나이 전투가 딱 이런 꼴이고 한니발 바르카가 노린 것도 이런 것.

또한 빽빽하지 않아도 포위당한 것 자체로 전투력이 저하되는데 그 이유는 포위 당한 쪽의 바깥쪽 둘레는 포위한 쪽보다 짧다. 이렇게 접촉된 면적의 차이는 포위당한 병사들이 그들보다 많은 수의 적과 접촉하게 되며 따라서 일대일이 아닌 1 대 2, 1 대 3의 싸움을 해야 하는 병사들이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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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면 위 그림이 그런 상황을 설명해 주는데 흑점들이 빨간점들에 의해 포위된 상황이다. 흑과 적색의 점들은 각각 22개씩으로 동일하다. 따라서 두 세력은 같은 군사력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그런데 포위당한 흑점은 포위한 빨간점에 비해 훨씬 좁은 길이로 싸워야 하며 그로 인해 22개 중 14개의 점들만 전선에서 싸우게 된다. 그에 비해 빨간점은 22개 점들 모두 전선에서 싸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14개의 흑점 중 8개의 흑점은 1대 2로 싸우는 불리한 처지가 되며 전투가 계속 진행된다면 이들 흑점들은 곧 무너질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안에 대기하고 있던 흑점이 무너진 흑점을 대신해 바깥쪽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신한 흑점도 마찬가지로 1대 2의 상황에 몰릴 것이며 따라서 이들은 곧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단 포위가 된다면 포위 당한 쪽이 포위한 쪽에 비해 훨씬 불리한 상황 속에서 전투를 해야한다. 망치와 모루 전술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위의 수적 우위에 대한 설명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병력 규모가 커지면 내원과 외원의 길이 차이의 비가 작어져 외원의 수적 우위가 거의 사라진다. 예를 들어, 내원의 100X100의 규모의 부대가 전열이 크게 무너지지 않는다면 완전 포위 시에도 직접 교전상태인 부대의 비율이 잘 쳐줘도 400:404=100:101이 되어 전세를 결정할 만한 차이가 되지 못한다.[5] 또한 위의 설명이 사실일 때 포위당한 측이 사전에 열 사이의 공간이 어는 정도 확보된 상태라면 오목한 대형을 취하여 포위하는 측에 대해 오히려 실 교전병력에서 수적 우세를 취할 수 있다.[6] 하지만 지금까지의 수 많은 전투사에 대한 기록을 보면 포위당한 측에서 오목한 대형을 취하려는 시도를 한 것을 발견하기 어렵다. 또한 교전 직전의 부대는 오목한 대형을 취함으로써 실 교전병력의 수적 우위를 쉽게 확보하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런 시도 역시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전투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에서 대부분의 부대는 거의 일괄적으로 직선의 대형을 유지하고 있다. 오목한 대형은 안 들어가면 그만이다. 학익진은?

포위의 효과는 부대의 측면공격 및 후방공격에 대한 방어의 취약성, 사방이 공격받음으로써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부대 지휘의 어려움, 공간이 제한됨으로써 유동적인 전투상황에 대응한 기동의 어려움으로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7] 사방이 공격 받음으로서 느끼는 심리적 부담과 같은 맥락으로,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과 이것이 사기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직선의 전열을 맞대고 싸우는 경우 패색이 짙어지면 도망가면 그만이지만그나마 살 가능성이 있지만, 완전 포위당했을 경우 글자 그대로 도망갈 곳이 없어진다. 꼭 죽거나 죽을 정도의 치명상이 아니라도 싸우다가 전투 불능이 된 경우(체력을 완전 소진하거나, 무기/방어구가 파손되거나, 눈/손/팔/다리 등에 데미지를 입었거나), 보통 상황이면 뒤를 보고 달려서 목숨은 건질 수 있는 반면 포위된 상황이라면 붙잡혀서 끔살되거나 노예로 팔리지 않도록 아군이 분전해주기를 빌 수밖에 없어진다. 그래서 정말 살기 위해 죽도록 싸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적들이 도망치기 좋도록 공격하기 좋은 방향으로 포위를 풀어주는 장군들도 있었다.[8]

그리고 영어권 전쟁관련 서적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수도 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flank와 outflank이다. 이들 단어들과 함께 양익포위로 시작된 완전포위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적의 일익만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전황을 유리하게 만들었다는 식의 설명이 이어지는데(개요의 그림만 봐도 일익포위를 묘사하고 있다.) 포위의 효과가 포위시의 외원과 내원의 길이 차이에 따른 수적 우세라면 이 경우에 그 설명력이 더욱 떨어진다.

현실의 병사들은 RTS 게임의 유닛들처럼 죽을때까지 맞고 쏘는 초인(?)들이 아니다. 부상이나 장비 파손으로 무력화되기도 하며 전황이 극히 불리해지면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 그리고 대게의 경우 한쪽 방향의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최대의 전투력이 나온다. 팔랑크스, 전열보병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각개전투를 벌이는 현대에 와서도 엄폐물 뒤에서 싸우기 때문에 측후면을 잡히면 불리해진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뒤통수가 서늘한 채로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외출할 때 가스불을 껐는지 기억이 안 나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자신은 모루를 상대로 잘 버티고 있더라도 양익, 혹은 단익이 돌파돼 자기 뒤통수가 칼을 맞을 위험에 처해진다면 순식간에 전투력은 떨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포위 위험에 처해 있고 정돈된 철수가 불가능할 때 차선책은 원형진, 혹은 방진을 구축해 뒤통수의 안전을 확보하고 외부의 구원이 올 때까지 버티는 것이다. 이게 성공한 경우가 1951년 2월 벌어진 지평리 전투이다.

6 현대전에서의 망치와 모루

망치와 모루 전술은 현대전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전술이지만 고대의 전투(근접전)보다 피아간 거리가 늘어난 관계로 쓰긴 더 어렵다. 겨우 수 ㎞에 불과한 고대 전장에 비해서 현대 전장은 이미 수십~수백㎞ 단위로 스케일이 커졌으니... 하지만 개별 전투/전술 규모를 넘어 작전술/전략 단위에서는 망치와 모루, 혹은 포위섬멸전 개념은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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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의 프랑스 전역 역시 망치와 모루 전술의 고전 중 하나. 영불 연합군은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전략 상 최우익인 벨기에 방면이 망치, 알자스-로렌 지역이 모루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전쟁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개전 초 독일의 B집단군이 네덜란드/벨기에 방면으로 공수부대를 투입하는 등 공세에 나서자 예측이 맞았다고 판단하고 주력부대들을 B집단군 방면으로 밀어넣었다. 그 사이에 주력인 A집단군과 클라이스트 기갑집단이 아르덴 숲 지역을 통과, 영불해협까지 내달리면서 포위를 완성한다. 보통은 상대의 공세를 받아내는 수세적인 역할을 하기 마련인 모루도 적극적으로 공세에 나서며 상대의 전력을 흡수, 포위된 전력의 규모를 더 키우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 특이한 점.

그 외 독일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키에프 포위전, 스몰렌스크 포위전 등 거대한 포위전을 여러번 성공시키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강군(强軍)의 이미지를 확립한다. 그러나, 망치를 뒷받침해 포위망을 닫을 보병전력의 기동력 부족으로 포위망 안에 갇힌 소련군 상당수의 탈출을 허용했다는 것이 옥의 티. 하지만 탈출을 허용하면서도 소련군에 입힌 인명손실이 수 십만 단위라는 것이 함정

다만 막대한 물자를 소모하는 현대전의 특성상 굳이 적군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보급선만 끊어도 충분히 효과를 보인다. 적군의 후방에 강하병을 떨어트리는 공수작전도 크게 보자면 망치와 모루 개념이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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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에서 가장 유명한 적용 사례로는 걸프 전쟁 당시 다국적군 사령관 노먼 슈워츠코프가 실시한 헤일메리 기동작전(Hail Mary Play)이 있다. 슈워츠코프는 해병대 병력 등을 이용해 이라크군을 점령한 쿠웨이트 영토 안에 고착시킨 뒤, 20만 미군 지상병력과 장비를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라크 영내를 통해 수백㎞를 기동시켜 쿠웨이트에서 후퇴하는 이라크군의 주력을 성공적으로 포위, 섬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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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전술 단위에서는 시위대와 전경대의 대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민주화 이전에 시위가 심할 때 볼 수 있었는데 총기소지 및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는 사회 특성상 냉병기 위주인 고대식 전투가 재현된 것이다. 무거운 장비를 갖춘 일반 전경대는 '모루' 역할을 담당하고 기동대(백골단)는 좌우에서 밀어닥치는 '망치' 역할이다. 별로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아무튼 고대전의 전개 양상을 이렇게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것이다(…).따지고 보면 전쟁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말이다.. 전쟁은 그나마 정규군끼리 혹은 정규군 vs 반란군 끼리의 싸움이기라도 하지, 저건 진짜 노답

전경대와 시위대 모두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80년대에는 전경대에 대항하는 사수대 조직이 시위대에 있었다. 이 집단은 시위대 쪽의 중보병. 전투력 좋은 시위대로 구성된 사수대를 앞세워서 각목과 쇠파이프로 전경대 대열을 뚫는것이 목표였다. 혹은 소규모 집단으로 산개해서 게릴라처럼 전경대의 대열을 무너트린다. 왜냐하면 80년대에는 가두시위 자체가 허가가 안 났고, 가두시위의 목적인 거리로 나가서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알리는 행동을 하려면 무조건 전경대를 뚫어야 했으므로.[10] 이런 경우는 망치와 모루 전술에서 쇠의 위치를 강화시킨것이라 할 수 있다.[11]

피구를 할 때도 쓰인다고 한다

7 대중문화 속의 망치와 모루

7.1 Europa Universalis 3

군대를 만들 때 보병과 기병을 적절히 섞어서 배치해야 하는 이유이다. 보병만 배치하면 돌격 능력이 떨어져서 적에게 피해를 잘 입히지 못하고, 기병만 박아넣으면 기병이 방어력이 뛰어난 적 보병진에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제 풀에 사기가 떨어져 후퇴해버리는데, 두 병종을 섞으면 보병이 적 보병을 상대하는 사이 기병대가 적 보병진의 측면을 공격하여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한 부대에서 보병이 기병보다 많을 때는 기병도 보병의 방어력 보너스를 같이 받고(모루), 기병 4개 연대까지는 추가로 측면 공격(Flanking) 보너스를 받는다(망치).

7.2 은하영웅전설

은하영웅전설 등의 게임에선 측면, 후면 장갑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방어력 높은 함대를 정면에 배치해서 막다가 적 후방으로 우회한 함대를 닥돌시키면 2~3개 함대라도 방향만 잘 맞으면 1분만에 갈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7.3 창세기전 시리즈

흑태자그라테스 대회전에서 사용해 실버 애로우 연합을 격멸했다고 하는 '사선대형' 으로 후일 클라우제비츠가 이 전술을 개량해 광정면우회기동이라는 전술로 재탄생시켜 제피르 팰컨이 승리했다.

7.4 폴라리스 랩소디

휘리 노이에스왕자의 땅 병탄을 막기 위해 출전한 두 노장(브라도 켄드리드, 바스톨 엔도)은 어떠한 의사소통 없이도 서로의 의중을 파악하여 휘리 노이에스를 몰아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퓨아리스 4세는 이를 망치와 모루에 비유하였다.

레프토리아 회전 이후 70을 바라보는 두 명장이 단 한번의 의견교환도 없이 완벽한 망치와 모루를 만들어냈다. 다벨의 폭진을 막기 위해 기병 돌격의 최강자 서 브라도가 모루가 되었고 다벨의 군세를 꺾기 위해 방어전의 대가 바스톨 엔도가 망치가 되었다. 이렇게 자리가 뒤바뀌어 모두가 걱정하고 있을 무렵 오히려 바스톨은 다벨 본토 공략에 나서 다벨군을 끌어왔고 그를 막기 위해 달려온 다벨 8군단을 가로막으며 모루가 되었다. 그리고 그 직후 서 브라도가 최강의 기병군단 록소나의 기병대를 이끌고 다벨군의 뒤를 후려쳤다. 작중에서 그야말로 기적같은 위업이었다고 말하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 평생 단 한번 마주친 라이벌끼리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완벽하게 모루와 망치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심지어 휘리는 둘이 모이면 옛날처럼 둘이서 견제하느라 힘이 빠질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사람은 젊었을 때부터 라이벌이어서 하이낙스와 대적할 때는 서로 견제하느라 일을 그르칠 정도였었다고 한다. 플로라의 증언에 의하면 '저 바보들은 서로 공을 다투다가 자멸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서 만난 두 사람은 아무런 의견교환도 없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경험과 연륜의 힘은 무서운 거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전술은 파국을 맞이했다. 우선 휘리의 기책에 의해 '모루' 역할을 맡은 사르토니아 군이 큰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뒤늦게 난입한 서 브라도가 아직까지 '모루'에 의해 붙잡혀 있던 다벨군을 분쇄하는 대신 휘리를 찾아 너무 깊숙히 들어가버린 것이다. 거기에 서 브라도가 휘리와의 때아닌 일기토에서 전사하기까지 하면서 굳게 믿고 의지하던 지휘관을 잃은 록소나 기병대가 붕괴함은 물론이고 록소나 군의 지원을 기대하다가 적절한 철수 시기를 놓친 사르토니아군이 거의 전멸하기에 이른다.

7.5 토탈 워 시리즈

냉병기 시대의 전쟁[12]을 시뮬레이션 한 게임의 특성상, 플레이의 기본 중 기본이 된다.

특히, 측후면을 공격당하면 사기가 떨어지고, 사기가 떨어지면 병사들이 전의를 잃고 도주하며, 사기가 떨어져서 도주하는 부대가 생기면 그 옆의 부대도 그 영향으로 또 사기가 떨어져서 도주하는 식의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게임 시스템상, 측후면을 확보한 것이 어느쪽인지 여부가 대부분의 전투의 승패를 정할 정도로 중요하다. 따라서 별다른 이유[13] 가 없으면 망치와 모루 전술을 채용하는 것은 필수에 가깝다. 물론 적 장군의 지휘력이 뛰어나고, 사기가 높은 병과들이라면 이것만으로 모랄빵이 나지는 않지만, 측후방에서 기병 돌격을 받으면 기병돌격에 대한 창의 저지력이나 방패 보너스를 전혀 받지 못하는 결과, 순식간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하고, 결과적으로 전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된다.

당연히 적도 같은 생각을 하므로, 이를 저지하기 위한 다양한 전술이 동원된다. 강이나 절벽 등의 지형을 통한 기병의 우회 저지, 기병의 이동을 방해하는 울타리 설치, 우회하는 적 기병을 저지하기 위한 보병의 매복, 측후면을 포위당할 것을 대비한 방진형태의 부대 배치, 적 기병이 도착하기 전에 빈약한 적 보병진을 짓밟는 정면돌파, 우회하다가 만난 기병대간의 전투 등 망치와 모루에 관련된 모든 상황을 겪어볼 수 있다. 사실 이건 멀티에서나 일이고 캠페인에선 그런 거 없다

7.6 월드 오브 탱크

게임 내에서는 측면 우회(Flanking)라고 흔히 부른다. 방어력이 좋지만 둔한 중전차가 맞붙어서 전선을 형성하면(모루) 기동성이 좋은 중형전차나 전투 경전차가 측후면을 우회하여(망치) 장갑이 얇을 수 밖에 없는 옆구리와 뒤를 때리는 식이다. 당연히 서로 측면을 때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측면이 뚫리는 것을 저지하려는 중형전차끼리의 교전, 이런 중형 전차를 멀리서 저격하여 견제하는 구축전차 등이 긴밀하게 연계되어야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

현재에는 중전차의 전면장갑을 그냥 뚫어버릴 수 있는 고관통 포가 많아졌기에 모루가 멀리서 박살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며 양팀간 실력차이가 나게되면 방어가 약한곳을 찾아낸뒤 중형전차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울프팩을 시전해서 적 방어선을 뚫어버리는 소련식 종심교리 비슷한것[14]에 밀리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워썬더라면 폭격기, 공격기가 신나게 울프팩을 찢고 모루도 찢는다
  1. 페르시아제국 역사를 계승한 이란에서는 한번도 페르시아라는 말을 쓴 적이 없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으나 유럽 역사가들이 페르시아라고 불러 국제적으로도 그러하다. 그러나 이것을 따지고 들자면 핀란드도 그리스도 한번도 자기들을 그렇게 부른 적이 없으니... 사실 한국도 일본도 유럽인들이 멋대로 붙인 코리아와 재팬이라는 이름으로 국제적인 통용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모든 곳에 재팬이라고 써도 올림픽 대표팀 유니폼에는 니폰이라고 써있다.
  2. 마케도니아 보병대를 이루는 방진(方陣, Palanx)의 기본단위를 말하며 산티그마(Santigma)라고 한다.
  3. 참고로 '회전' 이란 대규모 야전을 의미. 한자 그대로 '모여서會 싸움을戰 벌인다' 는 뜻이다. XX 회전 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19세기 이후로는 대규모 야전이 사라지고 광범위한 전선 여러곳에 걸쳐 며칠에서 몇 달 동안 교전을 벌이는 전투 양상이 나타났기 때문에 회전이라는 표현을 쓴다.
  4. 이런 경우가 아측에서 성공하면 소위 혈로를 뚫었다고 표현한다.
  5. 물론 어차피 그래봐야 수적 우세 외의 다른 단점들은 그대로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서 일반적으로 포위한 쪽이 유리하다.
  6. 단, 공간과 부대 배치의 제약이 있어 상대가 더 유리한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포위를 하면 공격을 마음대로 하기 쉽지만 포위를 당한 쪽은 어느 한 쪽에서 수적 우세를 점한다고 해도 다른 약한 부분을 상대방이 마음대로 공략하기 쉽다.
  7. 보급의 어려움도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공간적 제한도 큰 요소인데 사지에서 포위를 당하거나 부대 배치가 이상하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거의 망했다고 보면 된다.
  8. 과거의 병법을 보면 많은 장군들이 적에게 약간의 희망을 주는 게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9. 앞에서 싸우는 본대가 모루, 보급선 끊어먹는 공수부대가 망치. 근데 이 경우는 공수부대가 적 본대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념이 약간 다르다. 공수부대가 요충지를 선점하고 버티는 와중에 본대가 분단된 적을 털고 나서 구원하러 오기도 하니 오히려 공수부대가 모루 역을 맡는다고 볼 수도 있다.
  10. 이 당시에는 전경 방어벽이 대학교 정문앞에 세워졌다. 그래서 정문에서부터 화염병투척 등 데모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1. 여담으로 당시 학생운동 좀 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의외로 화염병은 공격용 무기로는 잘 안쓰였다고 한다. 취급도 위험했고, 사실상 시위대도 전경대와 제대로 맞붙어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었기 때문에 대부분 뒷쪽의 일반학생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 요량으로 사수대가 작정하고 위협용으로 던졌다고 한다. 그러다 공격용 무기로 전환하기는 순식간인건 함정 혹은 데모를 시작하며 학생 대열이 학교 정문을 나올 때 사용했다. 정문에서부터 경찰 대열이 막고 있기에 일단 화염병을 던져 거리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자세한 사항은 각 해당항목 참조.
  12. 근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엠파이어: 토탈 워나폴레옹: 토탈 워의 경우는 화기가 전장을 지배하던 시대이긴 했으나, 그래도 아직은 보병의 일제사격 후 착검돌격이나 냉병기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기병대가 존재하는 등, 냉병기가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13. 고지를 선점하여 궁병을 다수 배치한 다음 적이 먼저 올라오다 지치기를 기다린다거나, 공성전/수성전 등
  14. 방어선 간을 보는 1파, 울프팩으로 충격을 줘서 뚫어내는 2파까지는 비슷하지만 월탱 게임 시스템상 방어선을 뚤어낸 2파가 그대로 돌파를 시전하지 제 3파까지 돌입하는 경우는 별로 없으므로 뒤에서 쪼고있던 구축이랑 저격충이 전진하는게 제 3파라 카더라 제파식 전술과는 차이가 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