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노동조합 |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
목차
1 개요
全國民主勞動組合總聯盟. 흔히 민주노총이라고 약칭한다.
대한민국의 노동조합 연합 중 하나. 한국노총과 더불어 한국 노동계의 거두(라지만 OECD 수준에 비하면 한국 노조 가입률은 현격하게 낮다).
70~80년대 내내 지속되어왔던 혹독한 독재 치하에서 노동운동가 전태일을 시발로 꾸준히 지속되어 오던 노동운동은 전국 단위의 조직망을 갖춘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오랜 숙원이었다. 이를 민주노조 설립 운동이라고 부른다.[1] 당시의 한국노총은 대한노총의 후신으로서 실질적인 어용노조의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는 복수노조 금지라는 법이 존재하고 있었고[2] 이로 인해 전국적인 노동조합을 만들려면 법을 개정해야만 했다. 90년대 초반 점차적으로 민주화되는 6공화국의 순풍을 타고 드디어 복수노조가 허용됨에 따라 전국적인 노동 조직을 만드는 것이 본격적으로 논의가 된다. 이때 한국 사회주의 정당을 설립하려는 사람들의 버프를 받아[3] 전국 단위의 노동 조직으로서 민주노총이 설립되기에 이르른 것이다.
95년 11월 전노협을 비롯한 민주 노조 운동을 하던 이들이 하나로 모인 조직이며 창설 당시에는 영 현시창이었으나 96년 노동법 날치기 항의 총파업(96-97 노개투 총파업)을 거치면서 합법적으로 인정받으며 급격히 세를 불렸다.
2014년 11월, 첫 임원선거를 조합원 직선제로 치루기로 했다.#
격주 토요일 두 차례 국민TV를 통해 토론회를 가진다.#
2014년 12월, 1차 경선에서 기호 2번 한상균과 게호 4번 전재환 후보로 좁혀지고 2차 경선이 치뤄지게 되었다. 12월 26일 개표결과, 1차에서 더 낮은 득표수를 얻었던 2번 한상균후보가 당선되었다. 기존 1,3번 후보 지지자들의 성향이 4번보단 2번에 가까웠기에 이루어진 결과로 보인다. 뱀발로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지지율을 보인 3번 허영구 후보는 이상하리만큼 제주도에서만 50%가 넘는 지지를 받았는데, 이는 민주노총 제주지부 자체가 허영구의 좌파노동자회와 유사한 지향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2 조직
금속노조, 전교조, 공공운수노조, 공무원노조가 가장 큰 세력이며 금속 노조에서는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노조가, 공공운수노조에서는 철도노조가 가장 강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대표 권영길을 비롯한 민주노총 핵심인물이 당권을 쥐고 있었는데다, 이들이 이끌었던 2004년 17대 총선 당시 정당 득표율 13%를 기록하고 두자리수의 의원을 확보하는 등 2000년대 초반의 민주노총은 정계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상층의 지도부와 현장 활동가와의 대립과 내부 정파의 갈등으로 인해 제 3노조 건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등 폐해가 많았다. 현재 최대파가 NL인 국민파인 것도 문제점으로 지목받고 있다. 물론 NL만 있는 건 아니다. PD가 멸종되었다는 의견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건과 민주노총을 혼동한 것인 듯. PD 계열 출신들이 많이 포진한 중앙파가 여전히 최소한의 세력은 유지하고 있으며 급진파인 현장파도 곳곳에 포진해있다.
문제는 기아자동차 뇌물 사태, 강간 미수 사건 등 대외적으로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사건들 대부분 국민파에서 터뜨렸다. 특히 위의 두 사건이 벌어졌을 때 중앙파와 현장파는 제대로 빡쳐서 보통 내부적으로는 비판을 자제하는 금기를 깨버리고 아예 국민파를 대놓고 깠을 정도였다.
또한 노동운동 자체가 갈수록 축소되어가고 있는 탓에 활동가와 상근자들이 관료화되는 폐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비정규직과 같은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많다. 다만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산하 지회의 형태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민주노총 또한 이를 지원하는 등 민주노총은 사실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해 가장 큰 지원을 할 수 있는 단체이기도 하다. 물론 현실은 아래 비판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3 시위
다소 강경한 좌파 노선으로 기본으로 삼고 있기에 노동 문제 뿐만이 아니라 노동자와 서민의 삶에 깊게 얽히는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 파업과 시위가 잦은 편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조직력이 과거와 달리 현저히 떨어진 탓에 '뻥파업' 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매우 심각하여 노동자와 직결적인 문제인 비정규직이나 노동조합법 개정과 같은 문제에서도 말로만 총파업을 하고 있다.[4]
대공장의 임금 인상 파업은 민주노총 산하의 해당 공장 지부가 결정한다. 게다가 최근에는 이 또한 많이 줄어들었다. 전경들하고 시위 행위도 매 때마다 한다. 당연히 집회/시위 현장에서 이들의 깃발이 펄럭거리는 걸 많이 볼 수 있다. 국방부 퀘스트를 대체 퀘스트로 받았다면 자주 등장하는 몹/중간보스가 될 것이다. 그리고 금속노조 같은 준최종보스가 등장하면...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로 인해 현재 인천 도시철도 노조 같은 거대 공기업 노조가 탈퇴했으며 KT 노조도 탈퇴하였다. 다만 민주노총의 주장으로는 일련의 민주노총 관련 사건들과는 무관하게 원래 탈퇴하기로 되어있던 노조들이 탈퇴했고 가입한 노조 인원은 더 많다고 한다. 특히 현대 중공업 등의[5] 소위 '대기업 노조' 들의 민주노총 탈퇴 러시는 이미 기득권을 가진 노동자가 기득권을 가지지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투쟁을 원치 않기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 분신 사건과[6] 기아차 사내 비정규직 집회 사건[7]이다.
그리고 전국공무원노조와 같이 실정법과의 충돌로 인해 노조를 결성했음에도 불법으로 취급되는 사례와 노조 결성 및 조합원 조직이 극단적으로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거 결합하기 시작하면 실제 세력화가 어떻게 될 지는 모르는 일이다.
2010년 하반기부터는 거대 노조 대신 비정규직 노조 설립에 주력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특히 집중하는 분야가 서울 시내 주요 대학교에서 용역 업체를 거쳐 고용된 청소 인력 어르신들의 노조 결성 지원 사업으로 이를 통해 서서히 학내 노동 계층을 흡수하고 있다. 고용주인 대학 측과 원만하게 합의에 이른 예도 있고 대립 상황이 계속되고 있는 곳도 존재한다.
2013년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사건부터는 사람들의 공감대를 공론화하는 시위의 성향을 보이고도 있다. 팟캐스트 방송에 민주노총 방송을 올리는 등으로 알리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모습도 보이는 중으로 보인다. 그리고 늘 벌어지던 민주노총의 시위 방식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인지 폭력을 쓴다는 빌미를 주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시위 성향을 바꾸려 하는 모습을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이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계속 지켜봐야 할 모습으로 보인다.
4 비정규직 문제와 비판
현재 한국에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응과 관련해 가장 입김이 센 단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진보 정당들의 의석수가 한 자리이고 한국노총 같은 경우는 비정규직과 관련하여 전면적인 행동을 벌일 의사가 거의 없기 때문. 여기서 수십 만의 노동자가 어쨌든 최소 형식적으로라도 결합해 있는 민주노총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하지만 그만큼 비정규직 문제 관련하여 비판도 많이 받는 편이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보다도 이미 기득권을 가진 대공장 노동자 중심의 운동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진보 세력 내부에서는 사회 운동성을 표방한 민주노총이 임금 인상 등의 이슈에만 매몰된 나머지 대규모 연대를 하지 못한다는 비판 역시도 많이 있다. 이는 민주노총 내부에서조차 제기되는 문제이며 현재 이 문제로 인해 민주노총 내부 세력간 의견 충돌이 심한 편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양한 원인이 지목되는데 대공장 노동자의 이기주의, NL 세력인 국민파가 통일 운동에만 관심 가지고 나머지 현장 노동자들의 어려움은 외면하는 것, 그리고 노조 상근자들의 관료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위의 원인들은 상당량 맞다. 사실상 민주노총의 가장 강력한 근원지는 금속노조이고[8] 이들 대부분이 대공장 노조 소속이다. 그런데 말 그대로 대공장, 이미 기득권을 가진 노동자이기에 약자인 비정규직으로 투쟁을 진행하기에 노조원들의 인식 자체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9][10] 여기에 최대 숫자를 자랑하는 NL 지도부의 경우 선 통일, 후 노동 문제 해결의 인식이 있어 이를 적극적으로 재조직화하는 것에 다소 소극적인 편.
아무튼 현재는 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에 직면한 것과 비정규직 문제가 갈수록 심화됨에 따라 국민파도 학교 내 비정규직 문제 등 비정규직 분규 현장에 나서게 됐다. 2011년 들어서는 2011 홍익대학교 청소·경비노동자 농성에서 주목받기도. 그런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태가 잠시 일단락되기 무섭게 홍익대 경비노동자들(홍경회)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지원금을 꿀꺽한 데다 비협조적인 노동자들에 대해 개별적으로 위협하는 등의 병크를 저지르는 바람에 결국 참다 못한 경비 노동자들이 홍경회 노동 조합이라는 독자 노조를 결성해서 이탈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애꿎은 학생들에게까지 피해가 갈 행위를 노동자들에게 강요한 사실도 드러나 공분을 사기 시작했다. 즉 민주노총 지부의 독선으로 되려 노조 간에 불신과 반목을 낳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5 한국노총과의 관계
한국노총과는 라이벌 관계지만 중요한 시국사건이 있을때는 공조를 하기도 한다. 공조와 와해가 반복되는 상황이 많았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을 아무 생각 없는 인간들로 보고 민주노총은 한국노총을 어용 노조로 보고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 진압 당시 민주노총에 대한 강경진압을 문제삼아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서 탈퇴를 선언하는 등 기본적으로 노조간 갖는 유대성향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1940년대 후반 혼란한 해방정국의 공간에서 사회주의 계열은 전국농민조합총연맹(전농)과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을 결성하여 움직였고[11], 1947년 9월의 총파업을 경험한 극우 보수 진영에서는 "우리도 노동조합이 필요할 것 같다" 라는 시각에 의거, 대한노총을 만들게 된다. 대한노총은 대한독립촉성협회의 직접적인 산하 조직이었고 대한노총의 형성에는 이승만과 김구가 직접적인 관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한국노총의 활동은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사실상 어용노조였다. 비록 1960년대와 1970년대 내내 일부 좌파 노동 운동가들이 한국노총에 침투한 적이 있지만 크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심지어 노총 지도부의 허락 없이 행동했다는 등의 이유로 제명되기도 했다.[12] 이러한 상황이니 민주노총은 어용 노릇을 하던 한국노총을 좋게 볼 리가 없다.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노협 자체가 어용노조가 들어선 사업장에서 어용노조를 몰아내거나 어용노조의 구조를 재편하여 민주화시킨 노동조합에 근간을 두고 있다.[13]
다만 2008년 이후 전반적으로 노조를 억압하는 분위기가 있어 서로 힘을 합치려 하는 듯(...) 했는데 결국은 훼이크로 드러났다.[14] 마는, 2015년도 임금피크제와 2016년도 성과연봉제 도입 등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혁에 대항하기 위해 양대노총이 연합하고 양 노총 위원장들이 포옹(...)하는 모습도 보인다. 양 노총의 소통을 이루어낸 정권의 위엄.. 오오
6 관련 사건들
6.1 공무원 노조
2009년 9월 23일 공무원 통합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여부 찬반 투표가 가결되어 정부에서는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을 정치적 중립 의무의 위반으로 간주하여 대응을 준비 중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에 정치 자금을 주고 있다(민주노총은 민주대연합 민주노동당을 공식적으로 비판적 지지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 중립을 요구하는 공무원이 정당에 자금을 주는 단체에 들어가면 어쩌란 말야!'[15] 라는 이유.
실제로 대한민국 국가공무원법에는 "공무원은 정당에 가입할 수 없으며 정당 관련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법학에서는 이게 끝이 아니며 법조문을 해석하는 과정도 필요한데 여기에는 의견 대립이 있다.[16] 이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명분도 되었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 선출직인 '정무직 공무원' 인 만큼 좀 애매하다는 평가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정부는 2010년 3월 출범식을 가진 공무원노조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출범식에 참여한 공무원 전원을 징계하기로 했다. 기사 보기.
2011년 4월 9일 민주노총은 김완주 전라북도지사의 딸의 결혼식장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버스 파업 해결을 촉구하며 김 지사의 지인들에게 욕설과 폭력을 가한 것이 알려져 이 사건의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게다가 김호서 전북도의회 회장은 민주노총 조합원에게 폭행당했고 도지사의 일부 지인들의 차량의 타이어가 훼손되고 하객들과 충돌이 일어나는 등의 문제도 일어났다. 이번 시위는 법적으로도 자녀의 결혼식장에서 진행되는 집회의 경우 이미 법원에서 집회금지처분을 내렸던 판례가 있었는 데다 윤리적으로도 용납하기 힘들기 때문에 민주노총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기사 보기.
6.2 경찰 민주노총 진입 사건
철도 민영화 논란 | ||
KTX 자회사 설립논란 | 2013년 전국철도노동조합 파업사건 | 경찰 민주노총 본부 진입 사건 |
2013년 12월 22일, 경찰이 파업 중인 철도노조 지도부가 민주노총 본부에 숨어있다고 보고 지도부를 강제 구인하기 위해 당시 민주노총 본부가 입주해있던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에 위치한 경향신문사 건물에 강제 진입했다. # 오전 9시에 체포영장 집행을 발표한 뒤 10시 5분에 진입했다. 오전 11시에 경찰이 1층 현관문을 부수고 건물 안으로 진입했으며 오후 늦게 경향신문사 옥상까지 진입했다. 그러나 철도노조 간부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66개 중대 4000여 명의 경찰과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 및 시민 몇백 명이 충돌했고 민주노총 소속 노조원과 통합진보당 관계자 100여 명이 연행되었다.
민주노총에 공권력이 투입된 일은 1995년 민주노총이 설립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게다가 민주노총 압수수색 영장 신청이 기각된 것으로 알려져 공권력 남용 논란이 일었다. # 민주노총은 이번 일은 부당한 공권력 행사이며 철도노조 탄압에 맞서 28일 총파업을 하겠다고 밝혀 상당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
경찰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숨어있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체포영장의 정당한 집행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경향신문사와 민주노총에 손해를 변상하기로 했다. # 경향신문은 자사 기자의 출입을 막은 것과 영장 집행전 사전 통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에 강하게 항의했다. #
경찰은 민주노총 앞에서 30일까지 집회가 신고되어있었는데 집회 개최를 막아 집해방해죄 논란[17], 교통방해 논란에도 휩싸였다.
현재 영장의 집행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검찰, 경찰, 여당은 '철도노조 지도부가 숨어있었다고 본 상태에서 체포영장의 집행을 위해 지도부를 찾기 위해 들어간 것이 정당하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위법이자 노동탄압이다' 는 입장인데 문을 손괴하여서까지 타인 건물에 진입하는 행위가 적법한지, 철도노조 지도부가 건물에 숨어있었다고 볼 수 있었는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경찰이 이 날 아침 영장을 제시하기 전 철도노조가 빠져나간 사실을 미리 통보했다고 하며 민주노총은 경찰이 옥상에 들어오자 철도노조 지도부가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렸기 때문이다.
의경이 훔친 커피믹스.
민주당(2013년)(현 더불어민주당)의 김광진 의원과 민주노총이 경찰청장에게 보낸 커피믹스.
동서식품(맥심 커피믹스의 제조사) 노조에서 철도노조에게 보낸 커피믹스. '공권력이 다시 오면 커피믹스 나눠주며 조용히 돌려 보내세요'라고 적혀 있다.
패러디 짤방 1.
패러디 짤방 2.
그 와중에 경향신문 사옥에서 커피믹스 박스 하나가 도난 당하고 투입된 의경 소행인 것이 들키면서 투입되서 커피믹스 하나 체포했다는 비아냥을 듣고 전경을 까는 패러디 짤방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민주노총 측에서 의경들에게 "에라이, 이거 먹고 떨어져."라는 식으로 커피믹스를 조공하는 굴욕을 선사한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는 이 사건에 대해 국제기준 위반이라고 밝혔다.#
12월 25일, 부위원장 및 수색명단에 있던 몇몇 노조원들이 조계사에서 은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26일 철도노조 위원장은 민주노총으로 돌아갔다고 하며 27일 사무처장은 민주당사로 피신하는 등, 철도노조 지도부는 여러 장소로 분산하여 피신하고 있다. 한편 경찰은 노조 지도부의 기민한 움직임에 세 번이나 당하면서 당황하고 있다. [18] #
6.3 민주노총 4·24 총파업
첫 조합원 직선제 위원장 선거에서 당선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국면에 투쟁을 전개'하자는 전재환 후보측의 주장을 '준비된 투쟁'을 외치다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한 '투쟁 대기론’이라고 말하며 '2015년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조합원 51.6%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총파업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된 한상균 위원장은 "2015년은 국가 선거가 없는 해로, 공무원연금과 간접고용, 민영화 등 박근혜의 탄압이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질 시기다."라며 3년의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총파업 조직에 뛰어들었다. 그리하여 2015년 3월 21일 ~ 4월 8일 총파업에 대한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하였으며, 65.11% 투표율에 찬성 361,742표, 반대 63,813표, 무효 1,413표로 84.35%라는 높은 찬성율로 가결되었다.
민주노총이 내건 4·24 총파업의 4대 목표는 다음과 같다.
△‘더 쉬운 해고, 더 낮은 임금, 더 많은 비정규직’을 노린 박근혜 노동자 죽이기 정책 분쇄(노동시장 구조개악 폐기)
△공적연금 강화 및 공무원연금 개악 중단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및 노조법 2조 개정,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
총파업이 목전에 다가오자 학생, 청년단체, 시민사회, 교육계 등 각계각층의 총파업 지지선언이 이어졌다.
2015년 4월 24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17개 지역에서, 민주노총 추산 69만 조합원 중 26만 9천여명이 파업에 동참하였고, 전국적으로 7만명이 시위에 동참하였다. 정부 및 경제계는 총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여 엄정 대처를 못박았으며, 민주노총은 5월 1일 노동절을 거쳐 6월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노사정 대타협이 결렬된 후 정부의 일방통행에 들러리 설 수 없다며 불참을 선언했던 민주노총과 달리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노총도 투쟁을 예고하고 있어 양대노총의 연대가 이루어 질 지 주목된다.
6.4 민주노총 울산본부장 성폭력 사태
2015년 7월 16일,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의 강성신 본부장이 임기를 2달여 남겨두고서 돌연 사퇴하고 연락을 끊었다. 또 20일에는 러닝메이트였던 이채위 부본부장과 김중희 사무처장도 비대위 체제 운영개시의 형식으로 자진사퇴했다.# 이에 대해 본부 차원에서는 개인적인 일이라고만 할 뿐 별 말이 없자 많은 이들이 처음에는 내부 알력다툼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추측했지만, SNS를 통해 강 본부장이 떠난 이유는 성폭력[19]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결국 23일에는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는 중앙집행위원회에 강 본부장의 자진사퇴 이유를 성폭력으로 규정했다고 공식 보고하였고#, 다음날인 24일 민주노총과 울산본부의 웹사이트에는 본부와 강 전 본부장, 김 전 사무처장의 사과문이 게재되었다.민주노총울산지부언론기사
당연하게도 좌우 가릴 것 없이 언론에서는 융단폭격중이다. 특히 지역언론과 보수 일간지들에서는 과거의 다른 사건들과 묶거나 공격적인 어조로 게재하는 등 노동계 전체의 신뢰도와 도덕성이 떨어졌다고 비판 중. KBS울산울산MBC 촬영ubc경상일보 / 조선일보데일리안 일단 사과문에 따르면 강 전 본부장은 '피해자 요구에 따라서' 최소 3년간 공직를 하지 않고, (게시일로부터)3개월 이내에 성폭력 예방 교육을 10회 이상 이수하겠다고.
6.5 1차 민중총궐기 폭력시위 논란
민주노총이 주체가 되어 벌여진 1차 민중총궐기 시위 당시 경찰 기물을 파손하고 경찰관을 폭행하는둥 폭력 행각을 벌인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폭력물품을 미리 구비하여 지급하고 노조원들에게 참여를 강요했다는 혐의도 받고있는상태. 1심에서 집회내 폭력와 교통 도로법위반 집시법위반 관련하여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유죄를 받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6.6 메갈리아 지지 논란
한석호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이 페이스북의 글 중에서 때론 폭력에 맞서는 폭력이 필요했듯 때론 혐오에 맞서는 혐오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에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알다시피 혐오를 혐오로 맞선다는 것은 사회적 갈등만 증폭만 될 뿐더러 현대 민주사회가 가지는 다양한 방법들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폭력 대 폭력, 혐오 대 혐오는 주목을 받을 수 있지만 그 후폭풍은 감당이 안되는 것이 정석이다.
경제가 고도화되있고, 민주주의 사회가 정착된 일본에서 적군파가 폭력을 통해 혁명을 일으켰지만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후폭풍은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치적 무관심이라는 결과를 가져왔고, 일본의 우경화를 가지게 되는 원인 중 하나이다.
7 가맹 노동조합
-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 전국공공운수노동조합
- 전국공무원노동조합
- 전국교수노동조합
- 전국금속노동조합
- 전국대학노동조합
- 전국민주연합노동조합
-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 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
-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 전국언론노동조합
-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 전국교직원노동조합
- 전국민주화학섬유노동조합연맹
- 전국IT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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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두노총
- ↑ 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담아낸 영화로는 <파업전야>가 있다. 인터넷 데이터베이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 복수노조 금지라는 것 자체가 외국에는 없는 이야기다. 프랑스에만도 한 직장에 여러 개의 노조가 존재할 수 있고 스페인은 대표하는 노동자 수가 백만이 넘는 전국적인 노조가 3개에 달한다.
- ↑ 이 당시의 진보 정당은 민중당이었다. 놀랍지만 이 당시에도 진보 정당이 존재했다! 그리고 이 당시 민중당의 핵심 인물이 바로 이재오, 김문수였다. 아...
- ↑ 총파업을 결의했음에도 4시간 한정 파업을 벌인다던가 산별노조 단위로 총파업을 결의해 놓고 현장에선 대규모 정규직 노조가 이를 투표를 통해 부결시킨다던가.
- ↑ 현대중공업노조는 민주노총에서 자의로 탈퇴한 것이 아니라 징계를 받아 제명된 것이다. 후술된 사내하청 노동자 분신 사건과 관련된 행태로 2004년 9월 15일 금속산업연맹(현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88% 찬성으로 영구제명되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제명 결정 보름 후인 10월 1일 탈퇴 발표를 했다.
- ↑ 당시 하청 노동자가 회사의 탄압에 못 이겨 분신을 한 사건인데 이 당시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이를 쌩까는 행태를 보여 분신 노동자가 이를 비판하는 내용을 유서에 남긴다. 이 일로 인해 현대중공업 노조는 민주노총 내에서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게 되고 민주노총에서
탈퇴제명. - ↑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인데 기아차 사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집회가 있었다. 이때 집회 중인던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 대오를 사측 용역 깡패들이 공격, 곧바로 정규직 노조 노동자들이 등장해 이들을 물리쳤지만 여기서 대반전. 그 후 바로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조와 연대 대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유인 즉슨 "여기는 우리 공장이다".
- ↑ 이는 금속이 사실상 한국의 제조산업 중 핵심 산업인 것에 기인한다. 전교조 같은 경우는 숫자는 많지만 파업 등의 대규모적인 영향을 행할 만한 위치는 아니고 공공운수연맹의 경우 아직 약간 성근 느낌이 있으며 금속에 비해 아직 한국에서 핵심적인 사업은 아니다. 이 상태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같은 거대 이슈에 압박을 가할 만한 세력은 거의 금속노조가 유일하다. 이쪽에서 일이 터지면 정부도 쌩까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 ↑ 이러한 현상은 호황기 당시 미국 대기업 노조에도 나타난던 현상이었다. 물론 아직은 사회 운동을 경멸하던 수준까지 이르렀던 당시 미국 노조만큼 민주노총이 막장가도인 건 아니다.
- ↑ 민주노총하면 다들 비정규직 등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이 충만한 노동자들만 있을 거 같지만 그런 사람은 민주노총 내에서도 소수다.
- ↑ 물론 이 당시 남로당원들이 다수 끼어있었다는 복잡한 역사가 존재한다.
- ↑ 1970년대 후반 당시 이런 식으로 노동 운동을 했던 사람이 현재 수구 우익으로 전향한 한국 논단의 편집장 김정강이다. 그는 놀랍게도 박정희 정권 기간 내내 맑스주의자로서 서울대 재학 시절 신입생 OT에 집행부로서 인민모와 인민복을 입고 연설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회주의 락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부운! - ↑ 게다가 복수노조 금지 조항 때문에 제2노총이 들어서려고 해도 '한국엔 이미 전국적인 노동 조합이 있는데 왜 만듬?' 이라는 대답만 정부에서 돌아오는 바람에 민주노조 건설 자체가 80~90년대 노동 운동권의 빅 이슈이자 아젠다였다.
- ↑ 애시당초 한국노총은 현재 노동권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조차 거의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 태생상 정부에 저항하는 민주노총과 같이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
- ↑ 그런데 이 당시 한나라당에 기부를 한 교장 급의 교직원은 솜방망이 처벌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에 만 원을 당비로 낸 교사는 해임 처분을 받아 법 적용이 불공정하게 이루어젔다는 비판이 존재했다.
- ↑ 그런데 해당 조항은 교직원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 조항과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인 정치적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공무원도 정당 가입 정도의 정치적 활동은 할 수 있는 국가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
- ↑ 일단 경찰에서는 별도의 집회로 판단했던 모양이다.
- ↑ 사실 철도노조의 기민한 움직임 보다는 섣불리 체포할 수 없는 정세가 한몫 거들었다고 봐야한다. 외부에 있지 않으면 체포하기에 꺼림직스럽고 그렇다고 체포를 하자니 여론악화가 두려우니 결정권이 상당히 위에까지 올라 갈테니...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결정권은 위로 올라갈 수록 시간이 걸리며 또 자신의 정치생명이 걸려있어서 정보가 들어오더라도 결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 ↑ 단순 성폭행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