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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박람회기구(BIE) 홈페이지
1 개요
Universal Exposition의 줄임말로 흔히 Expo라고 한다.[1] 우리나라에서는 과거에는 일본의 명칭을 그대로 들여 온 만국박람회라고 불렀으나, 중간에 세계박람회라고 고쳐서 부르다가 나중에는 엑스포 쪽을 일반적으로 더 널리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일본에서도 과거 명칭 대신 국제박람회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
2 상세
1791년에 있었던 "노동의 자유에 관한 선언"으로 중세 유럽으로부터 내려오던 길드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지역적 폐쇄성이 사라지며 각 지역의 산업 발전 정도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나게 되면서 이러한 기술적 발전을 한 데 놓고 비교하는 자리가 필요해졌다. 이러한 요청에 힘입어 1798년에 제 1회 산업박람회가 열렸고, 이것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알려진 엑스포의 시초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더 큰 규모로 박람회를 개최하려다 여러가지 사정이 겹쳐서 개최가 늦춰지자 1851년 영국이 선수쳐서 유리궁전을 짓고 개최한 박람회를 실질적인 '세계박람회'로서의 시초로 꼽는다. 이 때를 기점으로 자국의 선진 과학 문명의 산물을 통해 국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다.
올림픽과 월드컵과는 달리 엑스포는 초창기 부터 화려한 시작을 했다. 자국이 얼마나 발전되었고 선진화되었는지 과시할 절호의 기회였고 각 나라의 과학적, 예술적, 문화적인 걸작들이 출품되어 한 자리에 모이는 세계 교류의 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각국의 국가원수들이 직접 나서서 엑스포 개최를 도모했고 이것이 자존심 싸움으로 까지 번져 1937년 파리 엑스포 때는 독일[2]과 소련은 자국의 파빌리온을 서로 마주본 채로 상대방 보다 높고 거대하게 만들려 했다.
1900년 파리 엑스포 때는 무려 2천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는데 당대 인구로 미뤄볼때 엄청난 수준이다[3] 그리고 엑스포의 영향력은 막강해 와인 등급[4] 과 세계 도량형 기구가 엑스포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1904년 올림픽은 원래 시카고에서 개최하려 했으나 나중에 세인트루이스로 변경했는데 이유가 세인트루이스에 엑스포가 개최중이라 거기에 모인 관람객들에 편승하려고(...). 한마디로 세계박람회 근처 작은 운동회가 올림픽인, 지금의 위상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자 너도나도 엑스포를 개최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혼란[5]을 수습하고자 파리에 국제박람회기구(국제박람회사무국, BIE)가 설립되었고, 이에 의해 공인받은 엑스포만이 공식적인 국제 행사로서의 '세계박람회'가 되었다.[6]
엑스포가 창시될 당시에는 각국의 국력 과시의 장이자, 인류 문명의 성취를 확인하는 장으로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 미국을 제외한 각국 경제의 피폐 및 과학 문명에 대한 회의로 인해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그러나, 1967 몬트리올 엑스포 및 1970 오사카 엑스포의 성공으로 엑스포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새로운 중흥기를 맞게 되었다. 국력 과시의 장에서 대중에게 희망을 주는 교육의 장으로서 새로이 자리매김하게 된 것.
그러나 그 과정에서 미국식 상업주의의 영향은 세계박람회를 마치 흥행을 위한 테마파크인 양 변질되게 한 측면도 있으며, 20세기 중반 이후의 많은 엑스포가 환경의 보호나 그 유사한 것을 주제로 삼고 있으나 실상은 엑스포 개최지 주변의 개발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대부분[7]이고, 빠르게 발전된 정보 통신수단으로 인해 엑스포의 의미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경우도 많고 극단적으로는 행사 개최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박람회는 관광객 유치 내지는 경제발전을 목적으로 꾸준히 유치 경쟁이 존재하고 또 개최되고 있다. 특히 유럽 지역의 경우 박람회 문화가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8] 엑스포가 자주 유치되고 또 개최된다.
3 종류
세계박람회는 앞에서 언급한 대로 세계박람회기구(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에 의해 개최 주기 및 품격이 관리된다. 1996년 이후 시행된 현행 규약에 의하면 세계박람회는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주제로 하는 등록박람회와 특정 분야을 대상으로 하는 인정박람회의 두 가지로 나뉜다.[9]
등록박람회(Registered Exhibition, World Expo)는 1800년대부터 존재하던 만국박람회의 전통을 계승한 엑스포이다. 5년 간격으로 '0'과 '5'로 끝나는 해에만 개최되고 최대 6개월 동안 열릴 수 있으며, 전시규모는 무제한(!)이다. 주제가 있지만 일반적인 주제로 충분하며, 다양한 분야의 전시를 하게 된다. 또한 참가국이 각자의 비용과 설계로 전시관을 건립한다.
반면, 인정박람회(Recognized Exhibition, International Expo)는 등록박람회에 비해 규모가 작은 박람회이다. 즉, 등록박람회가 열리는 사이에 개최되며 최대 3개월만 개최가능하고, 전시규모는 25만㎡ 이내로 제한된다. 명확한 주제가 있어야 하며, 모든 전시는 그와 관련된 것에 한정된다. 각국의 전시관은 개최국이 건설하여 제공한다.
이처럼 엑스포를 두 가지 형태로 구별하게 된 이유는 결국, 돈 문제(...)이다. 새로이 엑스포를 개최하고자 하는 국가에서는 바로 전회 엑스포보다 더 큰 규모의 엑스포를 개최하고자 하게 되고 따라서 갈수록 엑스포의 규모는 커지게 된다. 규모가 커서 나쁠 것이 뭐가 있나 싶지만, 이것이 반복되면 규모에만 신경쓴 나머지 행사 자체의 품격(...)이 떨어질 수 있으며, 엑스포를 개최할 수 있는 나라가 한정되게 되는 사태에 이른다거나, 엑스포를 치르는 나라가 거덜나는(...) 일을 맞게 되어버려 장기적으로 엑스포 행사 자체의 운명에 약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대규모 박람회는 각국이 에너지를 충전했다가 5년에 한 번씩만 열 수 있도록 하되, 굳이 엑스포가 너무 개최하고 싶어 죽겠다면 엑스포 열게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예요 인정박람회로서 제한된 규모로 개최할 수 있도록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것이다.
1993 대전 엑스포의 경우 세계박람회기구에서 인정박람회로 취급하고 있지만, 위의 개정된 규약 시행 전인 1993년에 개최된 관계로 규모면에서는 위 분류에 정확히 들어맞지는 않는다.[10] 2012 여수 엑스포의 경우 개정된 규약 시행 후에 개최되는 인정박람회로서 위 분류에 정확히 들어맞는다.[11]
2017 엑스포는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개최되는데 서아시아 최초의 엑스포이다. 유치전 당시 라이벌이 벨기에의 리에주 밖에 없어서 수월하게 엑스포를 따냈다.
2020 엑스포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개최하면서 아랍권 처음으로 열리게 되었다. 이 다음 엑스포 할 나라 돈 무진장 깨지겠네
부산은 2030년 엑스포 유치에 도전장을 내민 상황. 이전의 대전과 여수에서의 엑스포는 인정 박람회였지만 부산이 도전하는 2030 엑스포는 등록박람회이다.[12] 만약 유치 성공한다면 한국은 최초로 등록박람회를 개최하게 된다. 현재 부산시는 엑스포가 구도심의 재개발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된다는 것에 주목해 구도심인 영도 일대가 유력한 부지로 거론되고 있다. 또한 강서의 대저도 주목받고 있다. 주변에 김해국제공항이나 KTX 구포역, 남해고속도로가 인접해 접근성이 우수하고 에코델타시티, 항공클러스터 같은 대개발 사업과 시너지를 낼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또한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로 일본인 관광객 유치도 수월하게 이루어 낼 수 있다.
현재 사업부지 선정을 위한 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다만 관광객 유치는 성공했지만 막대한 빚을 안게된 여수의 사례를 보면 처신 잘해야 할듯...
2016년 7월 20일, 부산시는 2030년 등록박람회를개최하기 위해 정부에 유치 계획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했다고 밝혔다.[13]
4 역대 엑스포
BIE 기준 구분 |
등록박람회(World Expo) |
인정박람회(International Expo) |
1933 BIE 의정서 이전 세계박람회 |
다 빨간색이다...
5 원예전문 엑스포
세계원예박람회 목록 | |||
연도 | 개최국가 | 개최도시 | 비고 |
1960년 | 네덜란드 | 1960 로테르담 엑스포 | |
1963년 | 독일 | 1963 함부르크 엑스포 | |
1964년 | 오스트리아 | 1964 빈 엑스포 | |
1969년 | 프랑스 | 1969 파리 엑스포 | |
1972년 | 네덜란드 | 1972 암스테르담 엑스포 | |
1973년 | 독일 | 1973 함부르크 엑스포 | |
1974년 | 오스트리아 | 1974 빈 엑스포 | |
1980년 | 캐나다 | 1980 몬트리올 엑스포 | |
1982년 | 네덜란드 | 1982 암스테르담 엑스포 | |
1983년 | 독일 | 1983 뮌헨 엑스포 | |
1984년 | 영국 | 1984 리버풀 엑스포 | |
1990년 | 일본 | 1990 오사카 엑스포 | |
1992년 | 네덜란드 | 1992 헤이그 엑스포 | |
1993년 | 독일 | 1993 슈투트가르트 엑스포 | |
1999년 | 중화인민공화국 | 1999 쿤밍 엑스포 | |
2002년 | 네덜란드 | 2002 하를레메르메이르 엑스포 | |
2003년 | 독일 | 2003 로스토크 엑스포 | |
2006년-2007년 | 태국 | 2006-07 치앙마이 엑스포 | |
2012년 | 네덜란드 | 2012 펜로 엑스포 | |
2016년 | 터키 | 2016 안탈리아 엑스포 |
6 기타 트리비아
일본의 만화에서는 1970 오사카 엑스포(오사카 만국박람회)가 자주 등장한다.[14]
개최기간이 3주에서 6개월[15]로 제한되는 관계로, 커다란 비용을 들여 건설한 박람회 시설의 사후 활용이 중요하다. 대체로 임시시설물로 건축되어 철거되는 것이 일반적이나 예외적인 경우도 있는데, 1993 대전 엑스포의 시설물의 경우 '엑스포 과학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반 정도의 시설물을 영구시설물로 남겨 테마파크를 구성했으나 결국 대전광역시의 악성 적자 컨텐츠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교훈(?)을 살려 2012 여수 엑스포의 전시관들은 대부분 철거될 예정.현재는 주제관, 국제관, 스카이타워, 아쿠아리움만 남아있다. 그러나 아쿠아리움과 스카이타워는 그럭저럭 돌아가지만 주제관과 국제관은 영 아니올시다인 상황.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는 1993 대전 엑스포나 1970 오사카 엑스포의 영향으로 열렸다 하면 흥행에 대성공하는 일종의 황금알 낳는 거위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예컨대 일본의 경우 4번의 공인 박람회[16]를 개최하였으나 1970 오사카 엑스포를 능가하는 흥행을 거둔 바는 없으며, 1985년 츠쿠바 엑스포의 경우 츠쿠바 학원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그야말로 초딩 눈높이 엑스포를 표방했다가 제대로 망했어요 루트를 타며 현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17]
7 관련 항목
- ↑ 다른 말로 World('s) Fair라고도 하는데, 엑스포 쪽이 워낙 유명해져서 이제는 거의 대부분 Expo라고 표기한다.
- ↑ 운수부 장관 알베르트 슈페어가 설계함.
- ↑ 당장 인구가 당시에 비해 훨씬 증가하고 열린 2012 여수 엑스포의 관람객이 약 800만이다. 1900년의 파리 엑스포가 관객을 약 2.5배 더 불러 모은 셈.
- ↑ 프랑스 보르도와인을 박람회에서 홍보할 목적으로 1855년에 그랑크뤼클라세(등급제)를 제정하게 되었다
- ↑ 올림픽은 참가자들의 비용을 주최측에서 지원하지만 세계박람회는 원칙적으로 각 참가국에서 알아서 비용을 대야 한다. 그렇지 때문에 마구잡이로 엑스포가 열리게 되면 돈이 들어서 참가하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체면상 참가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 ↑ 그 외의 경우는 아무리 '엑스포'나 '박람회'라는 명칭을 써도 그냥 지역 행사에 불과하다. 대한민국을 예로 들자면 고성군 공룡 엑스포 같은 경우
- ↑ 오사카 세계박람회는 물룬 심지어 미국에서 개최된 낙스빌 엑스포도 마찬가지이다.
- ↑ 박람회라는 것을 보러 가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들이 주로 유럽인이고, 유럽에서 열리는 엑스포가 그들이 관람하기는 가장 편할 수 밖에...
- ↑ 이외에 A1 박람회라 불리는 원예전문 엑스포가 있다.
- ↑ 전시공간 규모가 현행 인정박람회에서 허용되는 규모의 두 배에 해당하는 50만㎡
- ↑ 따라서 전시공간의 규모가 대전 엑스포보다 작다.
- ↑ 등록박람회가 곧 엑스포라고 할 수 있는데 과거 여수도 등록박람회를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뒤 인정박람회로 전환했다.
- ↑ 부산시, 2030부산등록엑스포 유치, 정부에 공식 신청 관련 기사
- ↑ 일본 만화인 짱구는 못말려에서 시대 박물관에 70년대 전시관에 나오는데, 그 당시 딱히 우리나라에서 진행한 박람회 행사가 없었기 때문에 국내판에서는 70년대 서울에서 열린 국제 박람회로 얼버무려 나온다. 하지만 가끔 대전 엑스포로 로컬라이징되기도 한다.
- ↑ 인정박람회는 3개월
- ↑ 오사카(등록 박람회), 오키나와, 츠쿠바, 아이치
- ↑ 참고로 1970년의 기록은 2010년에 상하이 엑스포에서 깨졌는데, 워낙 많은 인구의 내수시장이 든든히 받쳐 준 결과였다.
- ↑ 이름만 엑스포지 세계박람회기구의 공인을 받은 엑스포가 아니다.
취향타는 주제를 BIE가 미쳤다고 받아줄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