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위 항목 : 대한민국 국군/인물, 불교/인물
대한민국 육군의 제1야전군사령관 | ||||
35대 정승조 | → | 36대 박정이 | → | 37대 박성규 |
박정이(朴正二) | ||
200px | ||
1952년 ~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기간 | 1976년 ~ 2011년 | |
임관 | 육사 32기 | |
최종계급 | 대장 | |
최종보직 | 제1야전군사령관 |
대한민국의 군인. 前 제1야전군사령관. 박정희가 아니다.
1952년 생. 충남 홍성 출신으로, 평택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6년 육사 32기로 임관했다. 종교는 불교다.
이분도 김관진 국방장관과 김태영 전 국방장관처럼 육사 기수 중에 1명만 선발하는 독일 유학 시험에 합격, 독일 육사에 가서 졸업까지 하고 왔다. 기사.
강한 책임감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업무 처리로 정평이 높으며 부하들에게도 포용력 있는 선 굵은 지휘관으로 명망이 높다. 주요 보직으로 육본 정책조정과장, 13공수여단장, 수방사 참모장, 20사단장, 합참 작전부장, 수도방위사령관,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지금의 군사지원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FM 군인이지만 덕분에 전속부관들은 알게 모르게 힘들었다고 한다. 예외없는 오전, 오후 단체 구보, 기상전 명상 같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인해 존경심이 들 때가 많지만 그래도 수행하는게 보통 일은 아니라고..[1]다만, 권위나 강압이 아닌 솔선수범에 의한 리더십이었기에 어디 하소연 할 때도 없었다고 한다. 포스타는 아무나 다는게 아니다.
파일:Attachment/pjy2.jpg
2010년 4월 4일 서울 용산구 대한민국 국방부 청사에서 당시 중장이었던 박정이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이 피격으로 침몰한 천안함 인양작전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과거 천안함 폭침사건 원인 조사 과정에서 민·군 합동조사단의 군측 단장으로 과학적 조사를 이끌어낸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이 때 백령도 해상에서 북한의 어뢰 추진기를 수거하여 천안함 폭침이 명백한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2010년 4월 30일 국회 국방위에서 있었던 천안함 침몰 원인 규명 회의당시,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의 '군번줄 발언' 중 인식표를 차고 있다고 손든 몇 안되는 장성으로 유명하다(사진 왼쪽의 손을 든 두명의 장성중 오른쪽). 당시 회의에 있었던 질의 답변도중 이진삼 의원은 군인들의 기강문제를 거론하며 이상의 합참의장과 김성찬 해참총장에게 차례로 "군번줄을 찼느냐"고 질문했다. 그들은 "착용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이어서 뒷쪽에 배석해있던 26명의 장성 및 영관급 장교들에게도 "군번줄 차고 있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물었다. 이때 박정이 장군은 인식표를 차고 있다고 손든 서너 명의 장성 중 한명이었다.
영상의 '19초 부분'부터
600px
육군 제1야전군사령관에 취임한 박정이 대장이 부대 장병들을 사열하고 있다.
2010년 6월 같은 육사 32기 동기이자 당시 1야전군사령관이었던 정승조 대장이 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보직을 이동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천안함 사건에서의 공로 등이 반영되어 같은 달 16일 대장으로 진급과 동시에 제1야전군사령관으로 영진하였다. 현재와 같이 북한의 무력도발로 인한 긴장감이 고조되는 시기에 전방 야전군사령관으로선 제격이란 평가다.
2011년 하반기 대장 인사에서 3사 출신 박성규 중장이 진급 및 후임 1야전군사령관에 내정되었다. 이에 따라 박정이 장군은 1년 4개월간의 재임기간 동안 현장 작전종결태세를 확립하고 완벽한 통합상황조치체계를 정립한 후, 36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예편했다.- ↑ 전속부관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전속부관의 업무 강도는 모시는 상관의 생활 패턴과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