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한민국의 도로명
대한민국에 있는 도로명으로 아래와 같은 북성로가 전국에 있다.
- 대구광역시 중구 북성로(北城路) : 1.1 참조.
-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북성로 : 1.2 참조.
- 경상남도 밀양시 북성로(北城路) : 밀양읍성의 북문이 있던 지역에서 유래한 도로명.
- 경상북도 경주시 북성로(北城路) : 사적 제96호인 경주읍성의 북쪽을 통과하는 도로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북성로(北城路) : 옛 읍성의 북쪽 도로.
전반적으로 성(城)의 북쪽 방면과 관계되어 있다.
1.1 대구광역시 북성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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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로 입구[1] | 북성로 전경 |
北城路
일제가 대구 읍성 북쪽 성벽을 허물고 난 후에 생긴 1.14km의 도로이다.
대구광역시 중구 대구역사거리 대우빌딩뒷편[2] 에서 달성공원 입구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며 행정구역으로는 북성로1가와 2가를 합쳐서 북성로라고 하며, 통상적으로 북성로라고 하면 이 도로를 중심으로 밀집한 상업지역인 북성공구골목을 뜻한다. 북성로의 역사는 대구군수 겸 경상북도 관찰사 서리인 친일파 박중양이 1907년에 대구 읍성을 허물고 난 자리에 도로를 만들고 그 위치에 일본인 상점들이 입점하면서 시작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이 거리는 목욕탕, 재목소, 양복점, 조경회사, 백화점[3] 등의 상업과 식당, 영화관 여관 등의 유흥이 함께 공존하는 문화거리로 발전을 하여 6.25 전쟁 이후까지 문화거리로 이어졌다. 아직도 당대의 모던 보이들이 자주 찾던 캬바레나 다방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며, 백화점이 있던 장소도 있다. 특히 이곳에서 놀던 유명한 한량으로 구상, 유치환, 이중섭, 조지훈같은 양반들이 있다.[4] 주로 6.25 전쟁 때 피난온 문인이나 예술가의 주요 근거지가 있었으며, 이들이 차를 마시며 음악을 듣던 다방이 50여년의 세월끝에 문을 닫아 안타깝게 한 바도 있다. 특히 대한민국1호 음악 감상실인 녹향이 근처에 있다.
북성로가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바뀐 것은 1947년경 8.15 광복 이후 근처에 주둔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폐공구들을 모아서 팔기 시작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철물을 다루는 상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지금의 공구골목이 되었다. 유통단지가 생기면서 일부 상인들이 떠났지만 그 빈자리를 새로운 상인들이 이어받으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일제 수탈의 상징과도 같은 거리지만 반대로 항일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한 우현서루(友弦書樓)[5] 가 있어서 일제의 수탈과 항일의 역사가 공존하던 곳이다. 큰 간판에 가려져서 안보일 뿐이지 당시에 지은 적산가옥이 많이 남아있는 곳이다. 대구읍성상징거리조성사업의 일환으로 북성로·서성로 근대건축물 입면개선사업[6]을 추진하며 여러 주인을 거치면서 심하게 훼손된 적산가옥을 원형을 되살리면서 복원하기를 유도하고 있다.# 현재 이러한 적산가옥들을 중심으로 카페와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들고있다.
하나의 거리지만 낮과 밤에 따라 두 가지 모습으로 거리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도 북성로가 가진 개성 중의 하나이다. 낮에는 공구골목이지만, 밤에는 싼 가격의 술안주로 즐길 수 있는 북성로 우동과 돼지불고기가 유명하다. 6.25 전쟁 전후로 형성된 포장마차들의 주요 메뉴로서 연탄에 구워낸 돼지불고기와 우동이 제공되며, 싼 가격에 술과 안주를 즐길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공구골목 끝자락에서부터 바로 길 건너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옆으로 난 길에 2015년 7월 현재 16여개의 포장마차가 있다. 북성로 우동 돼지불고기는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에 소개되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1909년에 남방순시 중에 대구에 방문했을 때 지나갔던 어가길이며, 옛 순종황제 어가길이라는 이름으로 대구근대골목투어 상품으로 개발하는 중이다.[7]
일제강점기때 부유한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8.15 광복 때 일본인이들이 급하게 도망치면서 훗날 되찾기 위해 땅속에 묻었다가 찾아가지못한 금괴가 있다는 소문이 있다.[8] 이 소문을 믿고 건물주에게 건물값까지 주면서 파해쳤다가 헛탕친 사람도 있다.안습 그리고 2015년에는 도로정비사업을 하다가 불상이 나와서 공사가 중단되고, 공사구간 전체에 대한 문화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여담이지만 삼성그룹의 전신인 삼성상회 터가 북성로에 있다. 그래서 그런지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아직도 풋내기 청년으로 취급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국수팔던 병철이가 말이야
대구읍성을 기반으로 둔 상업지역 중 대구시의 탁상행정으로 직격타를 맞고 있는 지역이기도하다.
2009년에 북성로를 가로지르던 중앙대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바뀌면서 북성로1가의 일부지역이 잘려나갔으며, 중앙대로를 기반으로하던 상인들과 중앙대로쪽의 입구를 주 출입구로 쓰던 상인들은 입구와 출구가가 동시에 사라져버리면서 충격에 빠졌다.북성로를 때려잡자의 시작 매출에도 직격타를 맞았으며 상당수의 상인들이 정든 가계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6년인 지금까지도 정상적으로 차를 돌릴 수 조차 없는 막다른 길로 남아있다. 이로 인해 상인들이 떠나간 자리에 젊은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자 침체된 대구시가 부숴버린 북성로에 젊은 예술가들이 활기를 넣는다며 자축했다. 그리고 중앙대로를 이용하던 사람들이 북성로를 가로지르는 종로를 우회도로로 이용하면서 북성로가 심각하게 혼잡해지고있다.
2012년에 대구읍성 상징거리 조성사업을 하면서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고 가로등을 설치하는 공사를 하였는데 북성로에 대한 이해없이 가로등을 심어서 상인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사실 북성로는 고질적인 주차난에 허덕이는 지역이다. 공영주차장이나 유료주차장은 이미 포화상태이며 파는 물건의 특성상[9] 화물차의 주차가 빈번하고 주차시간이 길기 때문에[10] 어떻게해서든 최대한 갓길에 주차를 많이 할 수 있게 공간을 만들어주는편이 교통흐름에 효과적임에도 대구시는 북성로에 갓길을 만들고 건물쪽이 아닌 도로쪽 또는 갓길 중간에 가로등을 설치하고, 가로수를 식재하는 바람에 3~4대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2~3대밖에 주차할 수 없게되면서 오히려 이중주차가 발생하는 원인을 대구시에서 만들어버렸다.
2016년에 와서는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가계 앞에 주차가 반드시 허용되어야하는 상황, 양 옆으로 적산가옥이기 때문에 도로를 확장할 수 없는 좁은 길, 길에 비해 과도한 통행량, 그리고 포화상태인 주차장 등 북성로의 상황에 대한 이해없이 대구시에서 근대골목투어상품[11] 개발을 위해 무리하게 불법주정차 단속을 시행하여 상인들의 강력한 항의를 받았다. 이에 대구시는 단속차량을 이용하는 것을 넘어 북성로 전역에 방범용 CCTV로 위장한 6개의 주정차단속카메라를 야밤에 몰래 설치하였다. 강력한 뒷통수를 맞은 상인들은 조기를 게양하고 항의하였고,# 결국 대구시는 주정차를 20~30분까지는 허용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으나, 상인들은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라며 합의를 거부하였다.[12][13] 주차문제에 치명적인 상인들로서는 주정차단속카메라에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 밖에 없다. 대구시에서는 북성로가 혼잡하고 주차민원이 많아서라고 하는데 과거에 비해 북성로의 도로상황이 많이 개선되었으며, 대부분 차선 밖 갓길에 주차하기 때문에 불법주차때문에 혼잡하다는 대구시의 주장은 설득력이 낮다.순종 미화 골목을 만드는데 거추장스러워서는 아니고?[14]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처럼 대박날 가능성도 희박한 이토 히로부미가 일제의 침탈로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 순종황제를 끌고 남방순시를 한 것[15]을 기념하하는 특화골목을 만들기 위해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 공구골목의 정체성을 훼손하겠다는 것은 억지다.[16] 북성로는 재개발을 해야할만큼 쇠락해서 죽은 골목이 아니라 여전히 왕성한 상업활동을 하는 곳임을 기억하자.
순종에 대한 미화 논란이 커지자 대구시에서는 사실은 어두운 역사에서 교훈을 깨닫게 하는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취지라며 설득력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17] 대구시가 자랑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공구골목을 순종이 이토 히로부미에 이용당한 것을 기념하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도 그렇고, 비판은 커녕 미화하는 게시물 밖에 없는 것도 그렇고, 사업을 진행하는 방법도 그렇고 여러가지의 의미로 충공깽하다. 오마이뉴스에서도 순종]을 미화한다며 깟다.]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에서 억지로 만든 의미[18]를 가지고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어서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조기게양 사태는 일단은 어느정도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며, 주정차단속카메라를 이용한 주정차 단속은 한 달 유예기간을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일부 구간에 유리를 까는 계획이 있다고 한다.
1.2 창원시 북성로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에서 시작하여 마산회원구 회성동까지 이어지는 도로. 소위 말하는 북마산을 관통하여 내서읍까지 이어지는 도로이다. 시점부터 서마산 IC 사거리까지는 왕복 4차선, 서마산 IC 사거리부터는 왕복 6~8차선이다.
내서읍과 마산 시가지를 이어주는 주요 도로로 서마산 IC 주변으로 헬게이트가 열리는 경우가 잦다. 그래도 최근에는 도로 확장과 쌀재터널 개통, 석전교 사거리 지하차도 개통 등으로 그나마 덜해진 편이다.
2 자매품(?)
- ↑ 중앙대로가 대중교통전용도로로 바뀌면서 이곳이 북성로의 공식 입구가 되었다.
일방통행 도로라서 출구가 없다. - ↑ 여기에서 서쪽으로는 북성로, 남쪽으로는 동성로이다.
- ↑ 미니카이 백화점은 대구 최초의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백화점이다.
- ↑ 수능 때 한번쯤 만나뵐 수도 있는 분들이다.
- ↑ 민족시인 이상화 선생의 조부인 이동진 선생이 1905년 만들어 장남 이일우 선생에게 지역의 인재를 가르치도록 하여 애국지사 150명을 배출하였다. 위기감을 느낀 일제가 1911년에 강제로 폐쇄시켰지만 애국부인회로 명판을 바꾼 후 1921년에는 교남학교를 설립하여 우현서루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지금은 대구은행 북성로지점으로 쓰이고있다.
- ↑ 북성로·서성로 일대의 1960년대 이전 근대건축물을 대상으로 건물의 외관을 원형에 가깝게 보존하여 리모델링을 하면 건물외관 공사비용의 80% 내에서 최대 4000만원을 지원하는 사업
- ↑ 순종에 대한 미화 논란이 있다.
- ↑ 사실 이런 소문은 일본인들이 밀집해서 살았던 동네마다 있었던 소문이이다.
- ↑ 스텐봉은 4m, 6m이 기본이고 슬라이딩레일은 4m, 모터나 펌프의 경우 장정 두 사람이 들기도 힘들며, 타일은 크기에비해 무게가 상당하고 깨지기도 쉽다. 가볍다 하더라도 물건을 들고 공용주차장으로 걸어가는 것이 불가능한 제품들이 대부분이다.
- ↑ 주차해놓고 여러곳의 상점에 들리는 경우가 많고, 원하는 물건을 찾는 것에서부터 갯수까지 직접 물건을 보고 상인과 상담을 하면서 정해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들어 단순히 경첩이 필요하고 해서 무작정 북성로에 오면 맨붕에 빠지게됀다. 경첩 한가지만 해도 가짓수가 수백에 이르기 때문
- ↑ 옛 순종황제 어가길
- ↑ 주정차단속카메라가 있다면 일단 주차를 꺼리는게 통상적인 반응이다.
- ↑ 물건을 예약해놓고 온 것이 아니라면 손님이 오자마자 바로 갯수 세려서 실어도 최소 20분이다. 위에서 서술했듯 물건들이 크고 아름답다.
- ↑ 대구시에서 근대골목투어상품으로 재미를 보자 대구시 전체를 관광지로 만들기위해 소상인들을 내쫒아내고 먹자골목을 찍어내고 있다.
- ↑ 순종이 자발적으로 온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와 이완용의 계획으로 이루어졌고, 흉흉해진 민심을 잡기 위해서라면서 지나간 길은 일본인 상업지역이다.
- ↑ 북성로에 구국의 길 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이겠다고 한다.
매국의 길이 아니라? - ↑ 홍보 게시물은 여전히 순종과 남방순시에 대한 미화로 가득하다.
- ↑ 순종 미화 시설물을 만들어놓고 비판이 커지자 사실은 까는건데? 라며 변명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