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 국내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파인 굴이 몇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이 남한 방향으로 판 땅굴이다. 학교 등에서 판문점을 방문할때 반드시 들리는 코스.
사실 지질학이나 땅굴이나 벙커 갈아엎는 기술의 발전 및 북한의 경제난 등으로 인해 갈아넣을 인적자원도 고갈되다보니 땅굴의 위험성은 점점 떨어지고 있는지라, 이보다는 차라리 An-2 침투가 같은게 더 현실성 있는 위험이라고 할 정도.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바로 답이 나온다. 연대 단위의 인원과 중전차를 통과 시킬만한 규모의 땅굴을 남한 사람들 몰래 파고, 남한이 수십년 동안 모르게 출구를 위장하고, 땅굴이 무너지지 않게 수십년 동안 계속 유지보수를 해야 하며 그러한 과정을 미군의 정찰 자산에 탐지되지 않는 땅굴을 팔 수 있겠는가? 가성비에 대해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
현재까지 발견된 북한이 판 남침용 땅굴은 총 4개이다. 그러나 땅굴 관련 제보는 2013년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2개가 더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고, 심지어는 최소 20개 이상이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기도 했다. 국방부에서는 이에 대해 대변인 브리핑으로 반박했다.[1]
이런 음모론 단체 중에는 남침 땅굴을 찾는다는 남침땅굴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곳이 있어서, 여기 소속으로 예비역 공군 장성인 한성주라는 인물이 활동하다가 명예훼손죄로 국방부에 고소당했다(...) 차마 예비역 장성을 깜빵에 넣기는 거시기했는지 이 사건은 기소유예 처분으로 종결되었지만 군은 재발 시 엄중하게 법적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요런 식으로 유튜브에 동영상까지 올린다. 그런데 사용한다는 도구가 다우징 로드(...)[2] 그러나 유튜브 동영상 댓글을 보면 그에게 껌뻑 속는 작자들이 많다. 책까지 썼는데 가관이다. 참고한 사이트가 고작 통일미주신문(박근혜 대통령이 야당의원이던 2002년 북한가서 김정일과 웃으며 사진찍은게 몰카 때문에 협박당해서 한 것이라고 주장하던 배 아무개라는 재미 사이코 가 만든 1인 신문...) 기사라든지... 땅굴이 부산까지 연결되어 있음에도 이명박이나 박근혜까지 빨갱이가 되어 있다느니 그야말로 미친 소리를 책에서 쓰고 있다. 덤으로 저 사이트 보면 알겠지만 한성주는 광신도로 종교적으로 미친 책자도 여럿 냈다. 이들의 음모론적 땅굴 우기기는 홍혜선이란 엽기적인 극단주의와 연결되서 2014년 12월 전쟁설로 퍼져나갔고, 여기에 낚인 수백여명이 서울역에서 촛불집회하고 어쩌고 생쇼하다가 모든 재산 정리하고 해외로 피난가는 상황까지 초래했다. 이 문제를 취재한 그것이 알고 싶다 972회 '노아의 방주'편(2015-02-07)에 이들 땅굴 사기꾼들이 다우징 로드가지고 땅굴찾는답시고 생쇼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나와서 엄청난 비웃음을 듣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연히 이들은 그 어떠한 반성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소개
제1땅굴을 제외한 다른 땅굴은 안보관광코스의 일부로 개발되어 있다. 가볼 사람은 해당 문단을 참고하자.
2.1 제1땅굴
1974년 11월 15일. 대한민국 육군 제25보병사단 담당 구역인 연천군 고랑포에서 동북방 8km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첫 번째 땅굴은 너비 90cm에 높이 1.2m, 깊이 지하 45m, 길이 약 3.5km에 달하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 땅굴의 위치는 서울에서 불과 65km 거리에 위치해, 1시간에 1개 연대 이상의 무장병력이 통과할 수 있고 궤도차를 이용하면 중화기와 포신(砲身)도 운반할 수 있는 규모의 땅굴이다.
땅굴 발견 후 15일째인 11월 20일 한국 육군·해병대 2명과 미 육군·해군 6명 등 8명으로 편성된 공동 수색조가 땅굴의 구조와 제원을 정밀하게 조사하기 위해 땅굴 안에서 수색작전을 전개하던 중 군사분계선 남쪽 300m 지점에 이르렀을 때 조선인민군 육군이 매설한 부비트랩을 건드려 폭발사고가 일어났다. 이 폭발로 작업 중이던 우리 해병대 김학철 소령과 미 해군 장교 로버트 맥퀸 벨린저(Robert MacQueen Ballinger) 중령이 사망했고, 미 육군 5명과 한국 육군 1명 총 6명이 부상당했다.
휴전선 남방한계선을 불과 800m 남겨놓은 완전 최전선에 위치하는 관계로 지금까지 공식 발견된 땅굴들 중 유일하게 일반인에게 개방되지 않고 있다.
- 육군중사 구정섭 - 군사분계선 남측을 순찰하던 중 지표면에서 증기가 새어나오는 것을 육군일병 이상록이 발견했고, 이에 구정섭 중사가 이상이 있음을 직감하고[3] 굴토 작업을 명령했다. 이에 북한측 초소에서 약 300여발의 기관총 사격을 가해왔으며, 아군 측도 응사하면서 약 1시간 15분 동안 교전이 벌어졌다. 이로 인해 아군 육군 병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했으며, 구정섭 중사에게 을지무공훈장, 이상록 일병에게 충무무공훈장, 분대원 7명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수여되었고 1계급 특진 등의 포상이 주어졌다.
- 지하 터널 - 발견 직후에는 땅굴이라는 말대신 지하 터널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보도에서도 지하 터널이라고 표현된다. 地下+ tunnel의 합성어였던 까닭에 땅굴이라는 간단하고 알기 쉬운 말로 바꾼것 같다.
2.2 제2땅굴
1975년 3월 19일. 육군 제6보병사단 담당 구역에서 발견된 제2땅굴은 해외에서 수입한 현대식 굴착장비를 이용해 지표 45m 아래의 단단한 화강암을 뚫어놓은 것으로, 제1땅굴보다 규모가 더욱 컸다. 철원군 북방 13㎞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광장까지 갖추어 놓았고, 출구는 세 갈래로 나누어 놓았다. 1시간에 1만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으며, 차량ㆍ야포 등과 함께 전차까지 통과할 수 있는 규모이다.
우리군은 3개월간 45개의 시추공을 뚫어 땅굴의 존재를 확인했으며, 땅굴 수색과정도중 북한의 부비트랩을 건드려 국군장병 7명이 전사하기도 했다.[4]
지금은 철원군에서 운영하는 안보관광코스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반인도 구경이 가능하다. 고석정에서 출발하는 코스와, 백마고지역에서 출발하는 코스 2가지가 있다. 둘 다 유명한 철원 노동당사와 월정리역이 코스에 들어 있다. 총 소요시간은 3시간 정도.
2.3 제3땅굴
1978년 10월 17일에 발견된 제3땅굴은 제2땅굴과 거의 같은 규모이다. 판문점 남방 4㎞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이다. 게다가 역대 북한의 땅굴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겨우 44㎞에 불과하다!) 땅굴이었기 때문에 발견 당시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다.
이 땅굴의 발견을 소재로 '똘이장군 : 제3땅굴편'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제3땅굴은 1974년 남한에 간첩으로 침투하였다가 자수한 김부성이 개성 근처에 머물면서 땅굴 파는 일을 했었다는 증언에서 수색을 시작해서 발견한 것이다.
파주시에서 운영하는 안보관광코스의 일부이기 때문에 역시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 여기는 코스가 2가지인데 둘 다 제3땅굴이 들어 있다. 출발은 임진각이나 도라산역에서 한다. 전체 소요시간은 코스마다 다르지만 약 3시간 내외. 특히 제3땅굴은 셔틀승강기가 설치[5]되어 있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관람이 가능하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조하자.남한에 관광지 만들어주는 북괴. 땅굴 팔때마다 관광지로 변신
여담으로 전두환과 약간 연관이 있는 장소이기도 한데, 전두환이 제1보병사단의 사단장인 시기에 땅굴이 사단 위수지역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영전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이 땅굴 발견의 공로(?)가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2.4 제4땅굴
78년 이후로 더 이상의 땅굴이 발견되지 않다가, 1990년 3월 3일에 발견된 제4땅굴은 양구군 동북방 26km 동부전선 비무장지대의 지하 145m 깊이에 폭 2m, 전체 길이가 2,052m나 뻗어 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무려 1,502m나 남쪽에서 발견되었다. 제4땅굴은 북한이 전 전선에 걸쳐 남침용 땅굴을 굴착하였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 헌트(HUNT) 소위 - 제4땅굴 발견 과정에서 산화한 군견(軍犬). 육군 제21보병사단 소속 수색탐지견 헌트는 수색팀의 선두에서 폭발물 탐지 중 화약 냄새를 맡고 북한군이 설치해둔 목함지뢰로 달려가 폭사했다. 헌트의 희생으로 1개 분대원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고 소위로 추서된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북쪽을 바라보는 모습의 동상이 제4땅굴 옆에 세워졌다.
여기도 양구군에서 운영하는 안보관광 코스의 일부이기 때문에 일반인 관람이 가능하다. 자세한 것은 여기를 참조하자.
그리고 이 땅굴은 인민군 육군 대위 신중철이 물고 온 땅굴이다. 이 땅굴을 폭로해서 일약 스타가 된 신중철은 한국 육군 장교로 특별 임관, 국군정보사령부에서 복무하여 대령까지 진급했으나 교통사고 조처 미숙으로 예편당한 후 2001년 중국으로 잠적했다. 혹자는 그를 현지에서 만나 귀국을 종용했지만 거부했다고 하며 다른 누군가는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지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본래 이중간첩의 사명을 띠고 침투한 것은 아닐지라도 특수정보부대에서 12년간 복무한 만큼 이용 가치는 있으니 북한이 포섭했을거라는 게 대체적인 평. 얼마 안 되는 가능성으로 중국 쪽에 포섭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제4땅굴은 땅굴치고는 상당히 조잡한 편이다.
2.5 제5땅굴
남굴사에서 자주 우려먹는 떡밥이다. 이들이 주장해대는건 일명 연천 땅굴. "북한이 판 땅굴인데 김대중이 북한을 위해서 자연 동굴로 밀어붙였다." 라고 개드립친다. 그리고 이 떡밥을 문 지만원은 2002년도에 강연에서 연천 땅굴론을 주장했다.[6]결국 법정까지 갔으나 근거 부족으로 불인정 판결이 났다. [7]
이와 별개로 제5땅굴 굴착 작전은 실제로 있으나 이 문서에서 공개되기는 어려우므로 패스.
3 장거리 땅굴의 현실적 문제
자세한 것은 땅굴/북한/현실적 문제 문서 참조.
4 탈북용 땅굴
이 쪽은 신빙성이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인하여 생존의 위협으로 땅굴을 타고 가서 탈북하는 경우도 종종 있긴하다. 주로 군인들이나 그 지역 주민들이 대표적으로 하도 북한이 빈곤하게 사니까 이에 너무나 살기 힘들어 땅굴 루트를 타는 경우도 극소수 존재한다.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땅굴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div></div>- ↑ 물론 북한에 의한 또 다른 땅굴의 존재 가능성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일부 단체에서 내놓는 음모론 성격이 짙은 땅굴 발견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국방일보 2014년 12월 8일자 기사 참고.
- ↑ '다우징 로드는 애초에 사기성이 짙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물건이다.' 따라서 저게 땅굴일 가능성은 0.000001퍼센트도 안된다!
- ↑ 구정섭 중사는 월남 파병 경험이 있어 직감적으로 땅굴임을 의심했다고 한다.
- ↑ 1975년 4월 8일. 이후 5월 28일엔 또 1명의 전사자가 생겨 제2땅굴 수색 과정에서 총 8명이 희생당했다. 현재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다.
- ↑ 유료다. 임진각에서 출발하는 경우 출발시간대에 따라 도보관람과 셔틀사용관람으로 구분되는데 2013년 5월 28일기준으로 셔틀승강기사용은 3천원을 더 내야 한다.
레알 돈셔틀도보관람도 새로이 넓직한 출입로를 만들어 놓고 왕복거리라고 해봐야 1㎞ 남짓 정도라 크게 힘들건 없지만 경사도와 더불어 지하 73m 깊이로 매우 습기찬 곳이라 건강에 이상이 있는 사람(고혈압이나 천식, 비만등)은 조심하는게 좋다. 덧붙이자면 임진각에서 출발시 두가지 코스가 있는데 가장 짧은 2시간30분 코스의 경우 도라산역-도라산전망대-제3땅굴-통일촌을 거치는데 이동시간빼고 각 지점마다 15분-15분-1시간-15분정도의 시간을 준다. 특히 주의할점은 군사구역이므로 사진촬영에 조심할 것. 군사시설과 도라산전망대에서의 북쪽지역 촬영은 절대 엄금이다. 1사단 병력들이 매의 눈으로 감시하다가 적발시 바로 달려와 경고하며 이미 찍은 사진들을 조사해서 위반사진은 즉시 삭제하도록 종용한다. - ↑ [1]27:50
- ↑ 물론 땅굴주장을 하는 남굴사측에선 "법원도 북한의 지령을 받는 좌경분자들이 침투했으니 당연한 판결이다. 법원 개혁이 필요하다." 라고 주장하지만(...)
니들 머리부터 개혁시켜라.만물종북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