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들즈브러 FC감독 | |
"아이토르 카랑카" 데 라 호즈 ("Aitor Karanka" de la Hoz) | |
생년월일 | 1973년 9월 18일 |
국적 | 스페인 |
출신지 | 비토리아 |
포지션 | 수비수 |
신장 | 181cm |
소속팀 | 빌바오 아틀레틱[1](1992~1994) 아틀레틱 빌바오 (1993~1997) 레알 마드리드 (1997~2002) 아틀레틱 빌바오 (2002~2006) 콜로라도 래피즈 (2006) |
지도자 | 스페인 U-16 (2008~2010) 레알 마드리드 수석코치 (2010~2013) 미들즈브러 FC 감독 (2013~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U-21 (1993-1996) 스페인 U-23 (1996) 스페인 (1995) 바스크 (1994-2004) |
1 개요
아이토르 카랑카는 전 축구선수이자 현 미들즈브러 FC의 감독이다. 제 2의 주제 무리뉴로 꼽히고 있으며, 지도 방식과 전술 면에서 무리뉴와 비슷한 점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 시절에는 아틀레틱 빌바오 와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뛰는 등 상당히 준수한 수비수로 평가받았다.
2 선수 시절
지역 연고팀인 데포르티포 알라베스의 유스팀에서 축구를 시작한 카랑카는 이후 바스크의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로 팀을 옮겼고, 1992년 2부 리그인 세군다 디비시온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루며 프로 데뷔를 했다. 93년에는 1군 선수로 정식 승격하게 되어 프리메라 리가에 첫 발을 디딛게 되었는데, 이는 카랑카의 실력을 눈여겨본 명장 유프 하인케스의 선택이었다.
빌바오에서 3시즌 동안 100경기에 출전하며 입지를 다진 카랑카는 이후 1997년 은사 하인케스의 뒤를 따라 세계 최고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였다. 레알 마드리드에서는 주로 백업 및 로테이션 선수로 기용되었으나, UEFA 챔피언스 리그에는 33경기를 출전하였고, 특히 99/00 시즌 발렌시아 CF 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팀의 3-0 완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02/03 시즌에는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정책에 의해 입지가 좁아지자 고향 팀 빌바오로 복귀하였다. 03/04시즌 빌바오의 UEFA 컵 결승전의 진출에 기여하였다. 이후 2006년에는미국 MLS로 진출을 선언하였고, 콜로라도 래피즈로 이적하여 팀의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결승전 진출에 힘을 보탰다. 1시즌을 보낸 후 선수 생활에서 은퇴하였다.
3 감독 시절
2010년 레알 마드리드의 감독으로 부임한 주제 무리뉴의 수석 코치로 발탁되어 무리뉴의 곁에서 3년의 시간을 함께했다. 특히 무리뉴는 스페인 언론과의 마찰이 심해 기자회견에 자주 불참하였는데, 이 때 카랑카가 무리뉴를 대신하여 기자회견을 진행하였다. 무리뉴가 징계로 부재 시 감독 대행 역할을 맡으며 팀을 지휘하였다. 비슷한 성격을 지닌 카랑카를 무리뉴는 크게 신뢰하였고, 2013년 무관에 따른 책임을 지고 상호 합의하에 레알 마드리드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첼시 FC의 감독으로 부임할 때 카랑카를 데려가고자 했으나, 카랑카는 본인의 꿈이었던 감독직에 도전하기 위해 거절하고 구단의 요청에도 불구 레알 마드리드를 떠났다.
2013년 11월 13일 카랑카는 팀의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질된 토니 모브레이의 뒤를 이어 잉글리시 챔피언십 리그의 미들즈브러 FC의 감독직에 취임했고, 10일 후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1-2 패배를 당하는 것으로 감독 커리어를 시작했다.리그에서 13승9무9패를 기록하며 시즌을 12위로 마무리했다. 시즌 도중 선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카랑카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2015년에는 프리미어 리그승격 플레이오프에서 브렌트포드 FC에 5-1로 완승을 거두었으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노리치 시티 FC와의 최종 경기에서 0-2로 패하며 승격이 좌절되었다. FA컵에서 맨체스터 시티를 이기며 16강에 올라 아스널을 만나서 아쉽게 패배했고, 리그컵에서는 리버풀과 정규시간 무승부로 승부차기까지 가는 접전 끝에 양 팀을 합쳐 30명의 선수가 키커로 나서는 진풍경을 연출한 뒤 탈락했다.
2015년 8월 7일 카랑카는 구단과 4년 재계약을 맺었고, 팀의 선두권을 이끌며 승승장구를 보이는 듯 했으나 2016년 3월 11일 갑작스레 구단과의불화를 발표하며 훈련장을 떠났고 구단에서의 미래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며 미들즈브러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는 듯 했다. 하지만 구단 측과 화해 후 다시 감독직으로 돌아왔고, 리그에서 가장 많은 승리(26승)를 거두며 2위로 프리미어리그 직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우승팀 번리와도 승리 횟수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