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프로 스포츠의 연간 진행되는 리그를 크게 2개로 나누어서 진행하는 리그. 축구협회가 일괄적으로 주관하는 축구리그의 승강제와 다르게, 리그가 각각 독립적으로 흥행을 운영해오면서 리그들이 각각 흥망성쇠를 거듭한 끝에 거대리그 2개가 남아 연합하여 양대리그 체제가 된 것이 보통이다.
NBA, NFL, NHL같은 단일리그[1]라도 팀 수가 20팀이 넘어가게 되면 컨퍼런스라는 큰 틀로 갈라서 양대리그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일상적이다. 단 NFL 이외의 컨퍼런스는 야구 메이저리그의 디비전 개념과 같이 지리적 분할이라는 점에서 양대리그와 차이가 있다. (MLB와 NFL은 해당 구별을 디비전 개념으로 실시) 양대리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리그 하나가 1년 동안 모든 팀이 유의미하게 홈/어웨이를 나누려면 현실적으로 20팀 이상[2]을 굴리는 것이 매우 불편하기 때문에 리그 크기를 제한하여 경기수를 나누기 위함이다. 또한 미국의 국토가 넓어 이동이 불편하며, 특히 플레이오프에서 특정 지역에 진출팀이 몰릴 경우 플레이오프 경기시간 조율의 문제도 있을 뿐더러,[3] 시청권역이 지역 팬덤에 묶여있어서 리그 전체의 흥행을 저해할 수 있는 점도 고려되어 있다. 4대 종목과 달리 경쟁리그 흡수의 전례가 없는 메이저리그 사커는 10개 프랜차이즈로 구성된 첫 시즌부터 동서 디비전과 8강 플레이오프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 야구
프로리그 운영이 양대 거대리그가 연합한 형태로 양대리그의 사전적 의미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진행되던 리그가 야구이다. 때문에 양대리그 하면 자연스럽게 야구리그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2.1 미국의 양대리그(메이저리그)
1876년 내셔널리그가 발족하고, 1901년 아메리칸리그가 발족한다. 1903년 아메리칸리그가 스스로 '메이저리그'임을 선언하고 내셔널리그가 이를 승인하여, 내셔널리그와 아메리칸리그의 우승팀이 월드 시리즈를 하여 최종 승자를 결정하는 방식으로 양대리그 체계가 만들어진다.
리그가 둘인만큼 리그별로 약간의 차이점이 있는데, 미국의 경우 내셔널리그에서 투수가 타격에 참가하지만 아메리칸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채택, 보다 재미를 위한 리그를 표방하고 있다. 다만 원래부터 아메리칸 리그에 지명타자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1973년부터 도입되었다.
또한 마이너리그에서는 AAA만 해도 월드시리즈와 비슷한 형식으로 (멕시칸리그를 제외한) 양대리그인 인터내셔널리그와 퍼시픽코스트리그의 챔피언이 격돌하는 Triple-A Baseball National Championship Game이 열린다. 게다가 수많은 여타 리그의 챔피언들이 붙는 시리즈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많은 편이다.[4]
2.2 일본의 양대리그(일본프로야구)
1949년, 요미우리 신문의 사장 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소유자인 쇼우리키 마츠타로(正力松太郎)가 프로야구를 6개 구단에서 8개 구단, 10개구단, 12개 구단으로 늘려서 미국을 모방하여 양대 리그를 만든다는 구상을 발표했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프로야구의 인기가 급성장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 요미우리 신문을 라이벌로 여기고 있던 마이니치 신문에서 프로야구 참가를 선언한다. 기존의 구단들은 고생해서 야구의 인기를 늘려놓았는데, 다른 기업에서 무임승차를 시도하는 것처럼 보여서 구상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반발이 나오게 된다. 정작 말을 꺼낸 요미우리 측도 프로야구를 자사의 홍보 수단으로 잘 이용하고 있었으며 사실상 요미우리가 야구계를 지배하는 상황이었는데, 라이벌인 마이니치가 끼어들어서 파이를 나눠먹으려 든다고 생각하여 맹렬하게 반대하게 된다.
하지만 마이니치에 이어서 프로야구에 가입하려는 구단이 잇다랐고, 한신 타이거즈(당시 오사카 타이거즈)가 마이니치 측에 붙으려고 하면서 신구단 가맹 찬성파가 일시 우위에 섰으나 거인-한신 전의 인기 등을 고려하여 한신 타이거즈가 반대파로 돌아서면서 찬성파와 반대파가 4:4. 이렇게 비등비등한 상황이 돼버리자 분열이 오히려 가속돼버린다. 그 결과, 신구단 반대파 4구단+3개 신구단의 센트럴 리그, 신구단 찬성파 4구단+3개 신구단의 퍼시픽 리그로 분열하게 된다.
일본의 경우도 센트럴리그에서 투수가 타격에 참가하며, 퍼시픽리그는 지명타자 제도를 도입하여 리그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상대적으로 센트럴리그에 비해 인기가 떨어지는 퍼시픽리그의 약점 때문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실력은 퍼시픽리그 팀들이 더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퍼시픽리그 6개 구단의 적극적인 투자(지역밀착 전략 도입, 인터넷으로 전경기 생중계, 공동 마케팅 회사 설립 등)로 현재는 두 리그 인기의 격차가 많이 줄어든 상태다.
일본은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 챔피언이 붙는 일본시리즈에서 전일본 챔피언을 가리며, 정규리그 우승팀 확정후 남은 경기의 김이 빠지는 걸 막기 위해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도입하였지만,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못한 팀이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하는 사태가 발생하자[5], 이후 정규리그 우승팀에게 1승 어드밴티지+전 경기 홈경기라는 특권을 주고 있지만, 이 제도는 수많은 일본인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다.[6]
2004년말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가 경영부진 끝에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합병될 당시에는 요미우리 구단주 와타나베 쓰네오 등의 몇몇 구단주 중심으로 11개팀, 혹은 1개를 더 줄여 단일리그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결국 선수회장 후루타 아쓰야 주축의 선수 파업 및 반대 여론, 그리고 신흥 인터넷 자본의 가담(라쿠텐과 라이브도어의 치열한 경쟁 끝에 라쿠텐에 프랜차이즈가 주어졌다)을 통해 12구단 및 양대리그 체제가 존속되었다.
2014년에는 일본프로야구 구단수를 16개로 확대하자는 떡밥이 투척되었다(일본프로야구 문서 참고). 그렇다면 양대리그가 각각 8개 구단으로 편성되므로, 각 리그가 1990~2012년의 한국프로야구(8구단) 규모가 된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니 계획이 확정되면 추가바람.
2.3 대한민국의 양대리그(한국프로야구)
국내에서도 1999~2000년 두 시즌 동안, '드림리그'[7]와 '매직리그'[8]라는 양대리그 제도를 채택하여 리그를 운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망했어요
허나 리그별로 차이점이 없는데다가 양 리그간 실력차가 너무 심하게 난 탓[9]에 2001년부터 다시 단일리그로 전환되었다. 사실상의 흑역사. 태생적으로 지명타자제에 대한 논쟁이란게 없이 무조건 단일리그로 편성된 만큼 현재 체제에서 양대리그 시행은 절대로 안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심지어 "남북통일이 되어야 가능하다."는 의견까지 있다.
양대리그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이미 단일리그로 존재하는 리그를 굳이 두개로 쪼갠다고 흥행에 도움이 될 리가 없고 전력 불균형으로 인한 흥미감소, 불평등 문제만 생길 것이며, 외국의 양대리그는 흥행을 위해서 쪼개진게 아니라 애초에 다른 리그로 존재하다 흥행을 위해 교류가 이뤄진 형태이므로 인위적인 리그분할은 억지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양대리그 출범시 장점으로 거론되었던 인터리그 흥행의 경우 애초에 8개구단 체제를 나눠 놓았더니 전체 경기의 절반 이상이 인터리그라는 기형적인 리그 편성이 초래되었다. 99시즌에는 자리그 상대로 팀당 20경기, 상대리그 상대로 팀당 18경기였다. 문제는 한 팀이 상대해야 할 팀의 수가 당연히 자리그 팀보다 상대리그 팀이 한 팀 더 많기 때문에 계산해 보면 자리그 경기는 60경기(20×3=60), 인터리그는 72경기(18×4=72). 2000시즌에는 아예 매치업당 19경기로 편성하면서 각각 57경기, 76경기가 되었다. 2000년도엔 이름만 양대리그였지 사실상 단일리그와 똑같았기 때문에 양대리그로 나눈 의미가 전혀 없었다.
다만 2군리그인 퓨처스리그에서는 기존 프로야구단의 2군에 상무 야구단과 경찰청 야구단까지 가세하는 구조라 지역구분에 따라 남부리그, 북부리그로 나누어 양대리그제를 시행하고 있다. 인기가 높지 않은 2군에 전국단위 이동으로 비용을 늘릴 이유도 없으므로,[10] 이 경우 일반적인 양대리그보다는 지역별 디비전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2015년부터 한국프로야구 1군은 10구단 체제가 되는데 양대리그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는데다 팀이 홀수로 나뉘어 일정을 짜기가 애매하게 되는 문제가 있어서 양대리그의 시행은 어려워보인다. 만약 한국프로야구가 혹시라도 12구단 체제로 확대된다면 현재의 일본프로야구와 동일해지므로 양대리그를 재도입하자는 떡밥이 점화될 가능성이 있다. 안 그래도 10구단 체제 돼서 선수 수급 문제로 구단들이 난리인데 그럴라면 일단 북한이랑 통일되던가 천만관중은 돌파해야 할거 같은데
3 E스포츠
3.1 개인리그
스타크래프트 판에서는 조금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데, 스타판에서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온게임넷의 스타리그와 MBC게임의 MSL을 통칭한다. 대회의 수가 많았던 초기에는 쓰지 않았던 말이나 GGTV의 스타워즈 리그, 게임TV(겜TV)의 겜티비 스타리그, iTV의 랭킹전이 폐지된 후 MSL이 스타리그급의 위상을 지니게 되면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타크래프트 방송권 분쟁,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등의 이유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하락하자 2011년 ABC마트 MSL을 끝으로 MBC게임의 폐국과 함께 MSL이 종료되면서 스타크래프트의 양대리그 체제는 끝이 나고 말았다.
이후 스타리그가 스타크래프트 2로 전향함에 따라 2010년 출범한 곰TV의 스타크래프트 2 리그인 GSL과 양대리그 체제를 이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곧 2013년에 WCS 체제 통합이 이루어지고 동시에 온게임넷 스타리그가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으면서 다시 단일리그 체제가 되었다. 그러다가 2015 시즌부터 SPOTV GAMES에서 WCS 스타2 개인리그인 Starcraft 2 StarLeague을 출범하면서 또 다시 양대리그 체제가 부활하게 되어 스타 2에서의 양대리그는 한국 내 WCS 공인리그인 GSL과 Starcraft 2 StarLeague를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다음은 스1, 스2 양대리그 모두에서 좋은 성적 이상을 거둔 프로게이머 명단이다. 스1의 경우 온게임넷은 99 프로게이머 코리아 오픈부터 tving 스타리그 2012까지, MBC게임은 MSL의 전신으로 인정받는 KPGA 투어부터 ABC마트 MSL까지 기록했다. 스2의 경우 온게임넷은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2, WCS 산하로 치러진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만 해당되며, 곰TV의 GSL은 TG삼보-인텔 GSL 오픈 시즌 1부터, SPOTV GAMES의 Starcraft 2 StarLeague는 NAVER Starcraft 2 StarLeague 2015 Season 1부터 측정했다.
양대 리그에서 모두 빼어난 성적을 거둔 선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골든마우스 수상자인 박성준이 MSL에서는 4강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금뱃지 보유자 김택용도 온게임넷에는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스타리그 우승자인 한동욱, 김준영 같은 경우에는 MSL 본선 진출 경력 자체가 없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는 한동안 GSL만이 존재하다가 온게임넷이 스타리그를 스타 2로 전환했지만 스타 2로는 스타리그가 단 두 번밖에 치러지지 않았으며 그마저도 2013 WCS Korea Season 2, 옥션 올킬 스타리그 2013은 GSL과 함께 WCS Korea에 통합되어 치른 리그라 양대리그로서의 의미가 떨어지다 보니 양대리그로서의 취지가 애매해졌다. 그로 인해 사상 최초로 GSL과 SSL에서 모두 우승을 달성한 김도우를 스타 2 첫 양대리그 우승자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온게임넷에서 스타 2로 두 번만 치른 스타리그의 우승자인 정윤종, 조성주가 훗날 모두 GSL과 SSL에서 각각 우승을 달성하면서 무언가가 미묘한 상황이 되었다. [16]
워크래프트 3의 경우에도 온게임넷의 워3 프로리그와 MBC GAME의 워3 프라임리그를 양대리그 체제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온게임넷에서 2004년을 끝으로 워3 프로리그를 중단하고, 그나마 남아있던 프라임리그도 워3 프라임리그 맵 조작 사건으로 인해 2005년을 끝으로 공중분해되면서 사실상 국내에서의 워3 공식리그는 끝이 나고 말았다.
3.2 팀단위 리그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에는 온게임넷에서 진행하는 프로리그와 MBC게임에서 진행하는 팀리그가 팀 단위 양대 리그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2006년 KeSPA에 의해 협회에서 주관하는 프로리그로 통합되었다. 여기서 생긴 논란은 프로리그 중계권 사태참조.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감소와 KeSPA 소속팀이 연이어 해체하고, e스포츠 연맹이 출범하면서 2013년 현재 두 단체의 소속팀이 7팀으로 균형을 맞추게 되자, KeSPA와 연맹의 양대 팀단위 리그로 리그를 꾸려나가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KeSPA 소속 팀과 연맹 소속 팀들이 서로 대결하는 리그는 아직 없다. e스포츠 연맹이 프로리그 같은 팀단위 리그보다는 개인리그에 더 중시하다 보니... 다만 해외 게임단인 EG-TL이 게스트 자격으로 프로리그에 참가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연맹팀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2014년 프라임, IM, MVP의 협회 가입에 이어 2015년 프로리그부터는 마지막 연맹팀이었던 스타테일도 참전하면서 연맹과 협회의 구분은 사라지게 되었다.
스타크래프트와는 달리 기본적으로 팀 단위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는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가 출범할 때부터 라이엇 게임즈가 1지역 1리그 정책을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초창기의 프로리그와 팀리그와는 달리 양대리그 구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로 인해 2016년부터 롤챔스 중계에 뛰어든 SPOTV GAMES에서 새로운 리그를 만들지 못하고 2016 코카-콜라 제로 LOL Champions Korea Summer부터 OGN과 중계권을 나눠먹게 되면서 OGN이 일궈 온 리그를 공짜로 나눠먹는다며 팬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 NBA는 ABA, NFL은 AFL, NHL은 WHA라는 경쟁리그를 흡수합병하여 단일리그가 된 케이스다.
- ↑ 판타지리그 해보면 잘 알 것이다. 대체로 단일 구분으로 풀리그 돌리는 임계점이 20팀. 이런 편의 때문에 풀리그 내에서도 디비전이라는 세부구분을 또 가진다. 이 모든 것이 경기수 분배의 효율 문제 때문. 이때문에 승강제를 실시하는 유럽축구에서도 한 디비전이 18~20개 팀으로 구성되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 이 문제가 직접적으로 터진게 1989년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인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vs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월드 시리즈 3차전이 지진크리로 취소된 사태.
- ↑ 참고로 미국은 TOP 유망주가 총출동하는 퓨처스게임과는 별도로 마이너리그 레벨별로 각자 올스타게임까지 펼친다. 한국처럼 2군 올스타전을 모두 감독 추천으로 가는 것도 아니고 팬들이 많이 참여하는 선발방식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AAA, AA의 경우 올스타전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40인 로스터에 포함되어 마이너에 옵션된 신분인 경우도 많기 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만간 빅리그 팀의 콜업을 받을 선수라고 보면 된다.
- ↑ 참고로, 특권을 주고도 또 이 사태가 터졌다. 우승한 팀은 치바 롯데 마린즈로, 주니치보다 더 나쁜 성적으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 ↑ 주로 전통적 강팀에서 이런 말이 많이 나온다. 하위에서 허우적댔던 팀들은 반대가 적은 편. 수많은 일본인이라는 것도 인기 좋고 우승을 많이 해왔던 자이언츠나 포스트시즌에서 상위 시드를 먹고도 떨어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팬들이 다수일 수 있다.
- ↑ 당시 소속팀은 해태 타이거즈, 두산 베어스, 현대 유니콘스, 롯데 자이언츠(롯데 자이언츠는 99년에는 드림리그 소속, 2000년에는 매직리그 소속이었다.).
- ↑ 당시 소속팀은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는 1999년 시즌이 끝난 뒤에 해체하고, 2000년 시즌에는 SK 와이번스가 참가했다.), 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는 99년에는 매직리그 소속, 2000년에는 드림리그 소속이었다.).
- ↑ 드림리그가 너무 강세였다. 99년 매직리그 1위팀인 삼성 라이온즈의 승률은 0.562였고, 드림리그 2위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승률은 0.591였다. 2000년엔 더 심화돼서 매직리그 1위팀인 LG 트윈스의 승률은 0.515로 드림리그 3위인 삼성 라이온즈의 0.539보다도 낮았다. 이 정도면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거의 2부리그.
- ↑ 심지어 남부리그와 북부리그 챔피언끼리 붙어서 치르는 경기, 즉 2군판 한국시리즈에 해당하는 경기조차도 없다.
- ↑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
- ↑ 동시기 진행된 양대리그를 모두 우승한 경력이 있음
- ↑ 이 명단에서 유이하게 최고 성적이 준우승이다. 즉, 스타 1 시절 양대리그 결승을 모두 올랐는데도 우승을 못해본 사람은 홍진호 뿐이라는 것.
- ↑ 홍진호와 함께 양대리그 결승을 모두 올랐음에도 우승을 못한 케이스. 다만 아직 현역으로 뛰는 이상 커리어에 우승을 추가할 가능성은 남아있다.
- ↑ 10회 이상 진출자 중 유일하게 4강이 최고 성적으로 결승 진출 경험이 없다.
- ↑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외부적 상황으로 인해 스타크래프트2 리그 자체가 격랑속에 휘말렸던 것이 크다. 게다가, 블리자드가 스타크래프트2 이후 e-스포츠 체계화를 꾀하면서, 시즌이 연간시즌의 개념보다 "특정 버전간 시즌"의 개념을 우선적용하면서 양대리그라고 해도, 자유의 날개 버전 시즌 한정으로 제일 난국의 상황이 벌어졌던 것. (자유의 날개 버전으로 양대리그의 시작은 HOT6 GSL Season 4가 기점인데, 엄밀히 말하면 옥션 스타리그 2012는, 문자 그대로 자유의 날개의 제일 끝물에 진행되었기에 정윤종이 여기서 우승하고 그 당해 GSL이었던 HOT6 GSL을 우승했다 해도 우승자의 지위가 김도우보다 높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다.) 즉 양대리그는 오히려 군단의 심장 버전 시즌이 되어서야 어느정도 체계화되고 안정화가 되었다는 점을 보면 (즉 조성주의 양대리그 지위가 애매하다는 것도 의미한다. 옥션 스타리그 2013은 WCS Korea의 한 세트 속에서 열린 단일 대회였기 때문에 블리자드의 표현대로 이때는 GSL과 스타리그 어느쪽을 우승하던 상관 없던 상황이었다는 거다.) 이 점에서 김도우의 양대리그 우승은 정윤종이나 조성주보다는 공신력이 부여되는 셈. 게다가 공허의 유산이 발매되면서 김도우는 단일 버전(군단의 심장)으로 양대리그를 제패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