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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4월 9일,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이후 환호하는 모습혀가 파랗다? 그러나 이 사진이
이름 | Yunesky Maya Mendizula |
생년월일 | 1981년 8월 28일 |
국적 | 쿠바 |
출신지 | 피나르 델 리오 |
포지션 |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2010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WSH) |
소속팀 | 워싱턴 내셔널스 (2011~2013) 두산 베어스 (2014.7.25~2015.6.13) |
목차
1 소개
KBO 사상 12번째의 노히트 피처
2014년 7월 25일부터 한국프로야구 팀 두산 베어스에 합류한 외국인 선수로 2015년 전반기에도 두산에서 활약했지만, 2015년 6월 13일 웨이버 공시되었다. 출국일은 6월 15일.
2 경력
2.1 쿠바 리그
쿠바의 피나르 델 리오(Pinar del Río)[1] 팀 소속으로 2004-2005 시즌에 마무리 투수로 1.6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면서 리그 1위에 올랐다. 2005-2006 시즌에는 선발 투수로 전향했지만 7승 9패 3.79의 평균자책점으로 평범한 성적을 기록했다. 이후로는 중간계투로 활약하다가 2008-2009 시즌에는 다시 선발투수로서 13승 4패 2.22의 평균자책점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리그 최다승에 평균자책점 2위, 탈삼진도 119개로 2위를 했다. 참고로 이때 탈삼진 1위는 130개를 기록한 아롤디스 채프먼이었다.
6시즌 동안 쿠바에서 48승 29패 2.51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밖에도 2006년과 2009년 WBC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 투수로 참가한 적이 있다.
2.2 MLB 시절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끝난 후 그 해 여름 마야는 멕시코로 망명하려 하지만 실패했고, 결국 국가대표팀에서도 추방됐다. 같은 해 9월 쿠바에서 탈출해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했다.
망명한지 1년 후인 2010년 7월 말 워싱턴 내셔널스와 4년 간 총액 800만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 나이가 다소 많기는 했지만[2] 즉전감으로 평가받았기에 워싱턴에서는 금새 미국에서 적응해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맡아주기를 원했다. 실제로 워싱턴과 계약한지 1달만에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는 했지만, 메이저리그 3시즌 동안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1승 5패 ERA 5.80을 기록했다. 결국 부진한 성적으로 인해 2013 시즌 종료 후 워싱턴 내셔널스에서 방출되었다가, 2014년 1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2014년 트리플A에서 3승 3패 ERA 2.63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2.3 두산 베어스 시절
2.3.1 2014 시즌
2014년 7월 25일, 두산 베어스와 연봉 17만 5천 달러에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되었다. 시즌 도중 웨이버 공시되어 방출된 김창훈이 쓰던 19번을 사용하게 됐다. 크리스 볼스테드보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지가 관건일 듯하다. 마야가 넥센 히어로즈 전에 등판하면
8월 1일, 한화 이글스를 상대로 데뷔했다. 5이닝 동안 투구수 99개로 7피안타 2볼넷 5탈삼진 4실점 2자책으로 무난한 피칭을 했다. 2회 1사 만루에서 허경민의 다이빙 캐치로 실점을 막았지만, 3회엔 번트 수비 실책으로 만들어진 무사 만루에서 최진행, 김태균의 적시타와 김태완의 희생플라이로 4점을 내줬다. 남은 이닝은 무실점으로 막았다. 최고 149km/h에 이르는 직구와 커터성 움직임을 띄는 슬라이더로 타자들을 잘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8월 14일 넥센전에 등판했지만 넥센의 타선을 감당하지 못하고 4이닝 3피홈런 7실점으로 개털렸다. 팀은 만루찬스를 두번이나 말아먹은 끝에 2:8로 패배.
시즌 3경기에 출전하였는데 강정호에게 홈런 2개를 허용하였다(...)
8월 19일 문학 SK 와이번스전에 선발투수로 등판해 4.1이닝 9피안타 2BB 2K 4실점(4자책)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지 못한 채 강판되었다. 그분이 생각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팀은 트래비스 밴와트에게 한국 첫 패를 안기며 승리하였다.
8월 24일 잠실 NC 다이노스전에 선발로 등판, 7⅔이닝 8피안타 2사사구 4삼진 1실점(1자책)으로 호투했다. 그런데 팀 타선이 에릭 해커에게 1점만 뽑고 꽁꽁 묶이며 노 디시전으로 강판되어 첫 승에는 실패했다. 이 날 가족이 경기장을 찾았다고.
8월 30일 마산 NC 다이노스전에 선발 등판, 6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 6탈삼진의 위력투를 펼쳤으나 7회말에 이호준에게 투런포를 허용했다. 7회초 두산이 대거 5득점했는데 곧바로 실점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나 다행히 방화조가 불을 지르는 일 없이 경기의 흐름을 내주는 일은 없었다. 이날 성적은 7이닝 2실점 7탈삼진 3피안타[3]로 지난 24일 잠실 NC전의 호투를 재현했다. 6번째 등판만에 드디어 한국 첫 승을 거두었다. 마운드 위에서는 침착하고 웃음기를 싹 뺀 모습이었는데 경기를 승리로 끝내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어 두산팬들마저 후련하게 해 주었다. 갈수록 발전을 거듭해[4]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9월 13일 사직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선발 등판해 7이닝 8K 1실점의 호투를 하며 시즌 2승째를 따냈다. 다만 9회말 이용찬이 1이닝 2실점의 불을 질러 하마터면 승리가 날아갈 뻔했다.
10월 4일 NC전에서는 완투패를 기록했다. 기록은 8이닝 5피안타 2볼넷 9탈삼진 5실점. 투구수도 113개로 나쁘지 않았다. 4회에 집중타를 맞으며 4실점했고, 8회에 이종욱에게 결승 솔로포를 맞아 팀이 5-4로 패배하며 완투패를 기록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삼진 9개를 잡을 정도로 위력적인 투구 내용을 보여줬고, 8월 말부터 눈에 띄게 성적이 좋아지고 무엇보다 이닝 소화력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인 요소이다.
10월 11일 잠실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등판하여 3.2이닝 동안 4실점 4자책점을 기록하고 강판되었다. 3회까지는 잘 막았으나, 4회에 4실점하며 무너졌다. 경기는 결국 두산이 8회초 10점을 내주는 등 미친듯이 털리며 2-15로 패배, 시즌 4패(2승)째를 적립했고, 4강 트래직넘버가 하필 LG에 의해 0이 됐다. 문제는 4실점을 할 때 LG측 덕아웃을 향해 욕설로 추정되는 손가락질과 언질을 주며 논란을 일으켰다. 아래의 욕설 파문 단락 참고.
시즌 후 60만 달러에 재계약하기로 하면서, 2015년에도 두산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2.3.1.1 벤치 욕설 파문
상위항목: 두산 베어스/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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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LG와의 경기 도중 LG가 4회에 스퀴즈 번트 2번을 대고 4득점째를 하자, LG측 덕아웃에 손가락질을 하며 무언가 언질을 주는 듯한 장면이 잡혀 벤치 클리어링이 벌어졌다. 두산 측에서는 이에 대해 다음 타자에게 빨리 나오라고 취한 제스처라 했으나, 사진에는 정확하게 가운데 손가락을 펴는 장면이 잡혀 설득력이 없다.
한 술 더 떠 두산에서는 스페인어 욕이 아니라 '빨리 나오라'는 제스쳐라는 말도 안 되는 실드를 치고 있다.
한편 LG측에서는 욕설을 들었다고 했는데 마야는 스페인어를 사용하기에 단정할 수는 없으나 [5], 상황과 제스처를 봤을 때 욕설이란 것이 중론.
이 때 LG의 플레이가 1이닝동안 스퀴즈 번트를 2번이나 대는 평범한 플레이는 아니었으나 두번째 스퀴즈를 댈 당시만 해도 3대2로 경기가 팽팽했고 타자가 타격보다는 작전수행 능력이 좋은 박경수였기 때문에 한점을 짜내는 플레이를 한건 어디까지나 작전상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동을 보인 것은 지나친 반응이며, 상대팀 덕아웃을 향해 욕설을 날렸다는 것은 실드의 여지가 없다. 결국 야구팬들에게 온갖 비판과 비아냥을 들어먹고 있으며, 법규형님이나 조카 신발내놔에 비교되는 처지에 이르렀다.
일부 두산 팬들이 마야의 행동을 빅 볼 성향이 강한 메이저, 마이너에서 뛰었기 때문에 양상문의 작전이 나쁘게 보였을 수도 있다고 실드를 치고 있지만, 실제로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라고 작전 없이 풀스윙을 돌리는 것은 절대로 아니고, 때로는 KBO보다 훨씬 세밀한 작전이 즐비하게 나오는 곳이기 때문에 실드가 될 수 없다. 거기다가 2연속 스퀴즈가 경기가 완전히 기운 후반부에서 큰 점수차에서 일어난 작전이 아니고, 3:2의 팽팽한 경기에서 우위를 잡기 위한 스퀴즈였기 때문에 소위 '메이저리그'의 시점에서도 욕설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설령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가 빅 볼 성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KBO에 이적한 이상 마야는 KBO 소속의 선수가 되고, 당연하지만 그 선수를 위해 작전을 포기할 이유는 없다. 또, 백번 양보해서 그 플레이가 화가 날 만한 플레이라고 하더라도 덕아웃을 향해 직접적으로 욕설을 하는 선수는 없다. 만일 마야가 마이너리그나 메이저리그에 있을 때 같은 작전을 당했다면 과연 욕설을 했을까? 메이저에서 했으면 당장 마이너 강등
이 날 두산의 불펜이 8회 무너지며 1이닝동안 10실점을 하며 팀의 입장에서도 마야의 행동은 경솔하고 과격한 반응에 불과했다. 결국 게임은 15-2로 패하고, 두산은 이 날 패배로 4강 트래직 넘버가 소멸했으며, 마야 개인적으로도 시즌 4패와 엄청난 비판에 직면하며 팀과 개인 모두에게 씁쓸한 하루가 되었다.
당일 베이스볼 투나잇에서도 허구연 위원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141011 마야의 행동에 KBO 차원에서 봐도 심각한 문제라고 언급하는 등 꾹 참으면서 비판적인 총평을 내렸다.
그래도 경기 다음 날 마야 쪽에서 양상문 감독에게 찾아가 직접 사과를 했고, 양 감독이 사과를 받아들였으니 일단 사건은 일단락된 셈.
불암콩콩코믹스에서는 정상아닌 회담(...)으로 패러디했다.
이후 두산 팬들 사이에서 자조적인 별명으로 "마법규"라는 별명이 생겼다. 근데 어찌 손가락 모양이 모 인터넷 사이트에서 유행하는 제스처와 비슷하다...
2.3.2 2015 시즌
3월 28일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여 6이닝 4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경기 초반 고전하면서 4실점했지만 강판되지 않고 경기를 6회까지 끌고가며 탈삼진을 8개나 잡아낸 것은 긍정적인 부분.
4월 3일 롯데와의 경기 때 선발등판했다. 7이닝 동안 108구를 던지며 5피안타 2볼넷 7탈삼진 2실점으로 퀼리티스타트를 기록했지만 타선이 침묵해서 패전투수가 되었다.(...)
4월 9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136구를 던지며 KBO 통산 12번째, 외국인 선수로서는 두번째로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6]. 본인 인생 최초의 노히트 노런이라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참고로 외국인 선수로써 첫번째 노히트 노런을 달성한 사람은 찰리 쉬렉이다.응? 둘 다 욕쟁이? 이 등판 이후에 다음 로테이션을 한번 거를 예정 무려 136개나 던졌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한다. 포상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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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한국시리즈 7차전 우승 세레모니라 카더라 그리고 실제로 두산은 우승했다. 마야가 없어서 그렇지...혀가 왜 파랗지?
로테이션을 거른 이후인 4월 21일 공교롭게도 마야는 넥센과, 그것도 앤디 밴 헤켄과 또다시 맞붙게 되었는데, 노히트에 모든 힘을 쏟아부었던 마야는 리매치에서 1회와 2회에만 유한준[7]에게 3점 홈런과 만루홈런을 두들겨 맞으며 거짓말같이 제대로 복수를 당하고 만다. 이 날의 기록은 3이닝 11실점으로 패전투수.
5월 8일 어버이날 한화전에서는 5⅔이닝 동안 92구를 던지며 9피안타 5사사구 5탈삼진 7실점했다. 평균자책점은 5.84로 치솟았다.
5월 14일 SK전에서 7:1로 앞서가는 경기를 6회에만 5실점 하면서... 승리를 놓쳐버렸다. 물론 뒤에서 점수를 내준 불팬진이 말아먹었지만 타선이 7점이나 뽑아줬는데 주자가 나가면 난타당하며 6실점한 마야가 승리투수의 자격이 있다고 볼수도 없다.이미 노히트노런의 까방권은 다 날려먹었다
5월 20일 삼성전 520 대첩에서 3회에만 9실점을 하며 강판당했고, 두산 타선은 경기가 끝날때까지 이 9점조차 올리지 못했다. 노히트 노런의 포스는 어디가고 이제 흔한 나올때마다 얻어터지는 투수가 되어가고 있다 팀은 6-25로 대패하고 말았다.
몇 번 대량실점을 하면서 5월 20일 경기 끝난 후 기준으로 방어율이 7.47 에 달한다. 노히트노런 포함 잘 던져준 경기가 몇 경기 있기 때문에 기회는 좀 더 줄 것으로 보이지만 이 정도면 용병의 평균자책점으로는 아니 사실은 그냥 토종 선발 투수로도 낙제점. 이 상태가 계속 지속된다면, 작년에도 몇 경기 정도 잘 던지다가 퇴출된 그리고 자기가 KBO에 오게 만든 용병의 전철을 밟을수도 있다.
다음 등판인 5월 26일에는 평소 강했던 NC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예 동정의 여지가 없이[8] 1.2이닝 7실점으로 탈탈 털렸다. 이쯤되면 이미 선발로써의 역할은 아예 상실한 듯. 좀있으면 대체 용병 물색 소식 들려올 듯
결국 김태형 감독이 한계에 다다랐는지 그 다음경기에서도 못하면 2군이나 퇴출을 할 수도 있다고 경고를 했지만, 그 다음 등판인 5월 31일 심지어 타선이 LG와 더불어 최하위권인 KT전에서도 5이닝도 못 채우고 4이닝 5실점하며 또 털렸다.
두산 팬들 사이에서는 퇴출 여론이 높고 코치와 프런트도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퇴출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새용병 영입할 돈이 아까워서 의외로 세이버스탯은 썩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BABIP이 0.366으로 비정상적으로 높다. 규정이닝 투수중에 압도적인 1위. FIP는 4.46으로 리그 11위이다. 좋지는 않지만 유희관의 FIP가 4.28인 것을 감안하면 나쁜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운이 나쁘고, 불운땜에 정줄이 나가서 더 안좋은 피칭을 하는 악순환으로 볼 여지도 충분히 있다. 허나 경기중 보여지는 모습이나 .350을 넘는 비정상적인 피안타율, 1.6을 넘는 whip를 볼 때, 구위가 너무 안좋아서 안타도 많이 맞고, 그로 인해 babip fip 등이 다 올라가는 것으로 보인다. 결론적으로, 운의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는 구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6월 6일 현충일 넥센전에서는 투구수 114개 동안 4⅔이닝 동안 8피안타 4볼넷 3탈삼진 4실점 (4자책)을 기록했다. 이러다가 2군 내려가든가 퇴출당하게 생겼다.
6월 12일 NC전에서는 5이닝 7피안타 3볼넷 4탈삼진 2실점을 기록하면서 그래도 꽤 잘했다. 하지만 이 경기는 이현승, 오현택, 윤명준의 삽질로 승리를 날려먹었고 이 경기가 마야의 한국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다음날인 6월 13일 NC전을 앞두고 퇴출되었다. 새로운 투수 용병은 앤서니 스와잭이며 이날 허준혁도 호투를 하면서 두산은 마야를 방출했지만 선발 걱정은 안하게 됐다. 이젠 마무리가 걱정
공교롭게도 찰리 쉬렉도 2015년 6월에 퇴출되면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두 외국인 투수가 공교롭게도 같은 달에 모두 퇴출되고 말았다.
방출 이후에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참여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는듯.
여담으로, 시즌 막바지에 두산 베어스가 넥센과 0.5경기 차로 3위를 차지해 와일드카드전을 피하고 준플레이오프에 직행하자 두산 팬들로부터 노히트노런이 없었다면 와일드카드전을 치러야 했을 거라며 추앙받고 있다(...). 물론 농담.
2.4 방출 이후
2016시즌을 앞두고 LA 에인절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스프링 캠프에서 10이닝 동안 단 1자책점만 기록하는 무난한 활약을 보였으나 개막전 25인 로스터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개막을 앞두고 트리플 A로 내려갔다.
3 기타
별명은 마법규, 흥야, 잘할 때는 마왕 등이 있다. 노히트 노런 때 잠시 마왕이라고 많이 불렸으나 그 다음은...
어릴 적 친구와 볼보이를 하면서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한국에 온 두 번째 쿠바 출신 야구 선수로, 두산의 오퍼를 받은 후 KBO 최초의 쿠바 출신 용병이었던 친구 프랜시슬리 부에노(전 한화 이글스, 당시 캔자스시티 로열스 소속)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행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영입한 후 문제가 하나 생겼는데 마야가 쿠바 출신인지라 미국 생활을 했음에도 영어가 안 된다는 것.[9]왠지 이 양반과 외국인 대행으로[10] 운영되던 배구단의 사례가 생각난다 스페인어만 쓸 수 있어서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 궁여지책으로 영어와 스페인어 구사가 다 되는 호르헤 칸투가 마야와 소통하기로 했다고 하는데 여러모로 의사소통에 우려가 드는 상황이다. 더스틴 니퍼트도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고는 하나.... 스페인어 - 영어 - 한국어 3중 번역? 만약에 송일수 감독이 끼어들면 어떨까? )두산 어학당 출범?? 가족오락관 고요 속의 외침 그리고 양의지와 심판은 어리둥절... 통역이 왔는데 경기 지연을 적용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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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두산의 통역사는 영어, 일본어를 모두 구사한다고 하나, 중간에 투수코치가 끼면 어차피 피곤하다. 한영 통역과 한일 통역이 동일인물이라는 것을 빼면 별로 과장도 아닐듯(...) 그렇다고 4개국어 되는 통역을 구하기도 쉽지는 않아 보이니 통역사 둘이 필요할 듯하다.
다행히(?) 8월 6일에 면접을 봐서 스페인어 통역을 구했고 7일부터 합류했다고 한다.이제 감독만 한국말 잘하는 사람(...)으로 바꾸면 모두 해결된다. 그리고 바꿨다.
2014년 10월 스포티비와 인터뷰를 했다.
안산 OK저축은행 러시앤캐시의 배구 선수이자 같은 탈출 쿠바인인 시몬과 친하다고 한다. 쿠바 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는데, 시몬의 한국에서의 배구 경기를 우연히 본 마야가 수소문해 7년만에 연락이 되었다고. 시몬이 팀을 우승으로 이끈뒤 2015년 4월 9일 경기에 시구자로 등장, 친구의 투구를 경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날 마야는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 절친이 시구하고 경기를 끝까지 지켜봐준 날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고 하여 이 시합 이후 두산 팬들은 닥치고 시몬 찬양중. "구단아 뭐하냐 시몬한테 시즌권 당장 안 주고" 드립부터 시작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하는 시몬의 여권을 당장 훔치러 가자는 드립까지 나왔다.[11]- ↑ 호세 콘트레라스, 알렉세이 라미레즈, 그리고 메이저 경력은 없지만 오랜기간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한 페드로 루이스 라조도 이 팀 출신이다. 마야는 라미레즈와는 한솥밥을 먹었다.
- ↑ 한때 같은 팀 동료이자 동갑내기인 알렉세이 라미레즈는 마야보다 2년 더 일찍 메이저리그로 왔다. 비슷한 시기에 메이저리그로 온 아롤디스 채프먼보다 7살 더 많아, 마야가 계약할 당시에도 채프먼보다는 덜 주목받았다.
- ↑ 이날 두산 투수진은 경기 내내 마야의 3피안타밖에 내주지 않아 NC에게 시즌 최소안타 경기를 안겨줬다.
- ↑ 중계진은 예전과 같은 공이지만 타자들에게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공을 던졌다고 평했다
- ↑ 대응했던 양상문 감독은 호세, 가르시아 등의 히스패닉 계 선수들과 롯데에서 몇년동안 같이 있었다. 호전적인 선수들이 장난스럽게한 욕을 듣고 마야가 한 스페인어 욕 정도야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개연성은 있다.
- ↑ 아울러 두산 출신 선수로서는 OB시절 장호연에 이어 두 번째이다.
- ↑ 마야의 노히트 경기 당시 마지막 타자였다.
- ↑ 이전처럼 아쉬운 수비가 있었던것도 아니고 그냥 볼넷이나 깨끗한 안타로 장작을 차곡차곡 쌓고 2루타와 홈런으로 멸망했다.
- ↑ 미국의 일부 대도시들은 스페인어를 공용어로 쓰는 덕에 그다지 영어를 배워야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이 현상은 남부 지역에서 더 심하다.
- ↑ 그나마 LIG의 손정식 코치 겸 통역은 옛날 남미 쪽에서 살았는지라 다행.
- ↑ 우연이겠지만 OK저축은행 배구단과 두산 야구단의 응원단장은 동일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