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말 그대로 유목, 유목민 혹은 유목민족들이 세운 나라들.
역사상 최초의 유목민족은 스키타이족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그보다 이전에 키메르라고 불리는 집단이 지금의 카프카스 산맥 부근에서 활약했다. 이 키메르족은 나중에 스키타이족의 압력 때문에 지금의 터키인 소아시아 반도와 유럽으로 도주하는데, 일부 학자들이 키메르족이 훗날 서유럽의 주민인 켈트족이 된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기원전 8세기 경부터 만주족의 청나라가 세워지는 서기 17세기 무렵까지 이들은 동서양을 통틀어 최강의 무력 집단이었다. 유목 생활을 하면서 그 당시 전쟁의 중요한 소양인 기마술과 궁술, 투창술 등을 대부분의 유목민들이 자연적으로 갈고 닦았기 때문이다. 즉 유목민들은 타고난 기마전사였다. 사실 기마전사가 되지 못한 사람은 다 굶어죽거나 잡아먹히거나 화살맞고 죽었다는 쪽에 더 가깝지만 농사가 주업인 정주민들이 기마술과 궁술에 일부러 시간과 자원을 투자해서 배워야 하는것과 비교하면 유목민족은 처음부터 강력한 기병전력을 갖추고 전쟁을 시작하는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투인원의 대부분이 숙련된 기병인 장점을 이용한 스웜 전술같은 강력한 전법들도 창안되어 유목민족은 당대 최강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화약 무기의 발달과 정주국가들의 발전으로 인해 판세는 뒤집혔는데, 농업으로 인한 인구부양면에서는 정주 국가들이 유목 국가와는 비교도 할수 없을정도로 효율적이었기에 유목 제국은 인구수에서 열세에 놓일수밖에 없었으며,[1] 거기에 정주민 병사 개개인이 중무장하기 시작하고, 총기를 개인에게 지급해주는 제도까지 갖춰지자 기병의 몰락과 더불어 그 기병이 주전력인 유목제국도 몰락했다.
이들이 침략전쟁을 벌여댄 이유는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식량"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목에서도 알 수 있겠지만, 대다수 유목민족이 정주민족이 되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활동하던 지역이 스텝, 사막 등 농업에 부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족은 육류를 제외하고 곡물과 같은 식량을 생산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유목민족은 인구를 지속적으로 불리는 것이 어려웠고 다른 민족에게 영향을 크게 끼칠만한 고유 사상이나 문화를 발전시키는 것도 매우 어려웠다.[2] 결국 대다수의 유목민족은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자연히 정주민족에게 흡수되고 말았다.
가끔씩 역갤 등지에서 도는 떡밥으론 "유목제국들이 정주민에게 흡수당했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당장에 "중국의 문화는 모두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이식해준 것"이라는 해괴한 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역사적으로 사실도 아니거니와 쑨원의 해석을 따라 중국과 청나라의 관계를 "식민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중국인들에게 이런 소리를 했다간 그저 돌 맞는다. 게다가 이는 청나라 황실이 중국 대륙을 점령한 뒤 일차적으로 노력했던 일이 "우리 문화를 이식하겠다"가 아니고 "어떻게든 우리가 중화문명의 올바른 후계자라고 우겨봐야겠다."였다는 역사적 사실로 봤을 때도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아야 할 수 있는 소리다.[3]
괜히 청나라가 들어서자마자 명나라 때 흥하던 양명학을 신나게 때려잡으면서 "정통 유교를 복원하겠다."고 난리를 쳤던 게 아니다. 물론 만다린이 만주족 관료들의 발음을 표준으로 삼았다던가 하는 영향은 있었지만 이 정도 영향은 원나라 때도 자주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시의 몽골 황실이 중국인들에게 문화적으로 동화됐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다. 마르코 폴로의 영향일지도
게다가 역시 유목민으로 시작된 튀르크인들도 오스만 제국 시절, 유럽을 뭉개는 와중에도 정작 유럽의 현지 문화에 대한 태도는 청나라 만주족이랑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가령 오스만 제국은 나중에 우리가 바로 로마 제국의 후예라고 자부하기까지 했고 실제로도 고대 로마를 연구하는 데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
지금은 터키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일부, 러시아, 몽골, 북아프리카, 중동,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이나 호주 원주민 등을 제외하면 대부분 정주민들에게 흡수되어 사라진 상태다. 그나마 저 나라들도 유목민이 남아있거나 유목민의 후예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정도지 이미 그 나라들의 주류 세력은 도시에 사는 정주민들로 대체되었다.
2 역대 유목제국들의 명단
- 키메르
- 스키타이
- 사르마티아
- 사카
- 흉노
- 훈족
- 선비족
- 오환족
- 파르티아
- 강족
- 알란
- 아랍인
- 오스만 제국
- 유연
- 사타족
- 당항족
- 에프탈
- 아바르
- 불가르
- 마자르
- 쿠만
- 하자르
- 돌궐 혹은 튀르크
- 설연타
- 토욕혼
- 위구르 제국
- 키르기스
- 거란
- 여진족
- 몽골
- 티무르
- 만주족
- 준가르
- 오이라트
- 타타르
3 관련작품
- ↑ 유목 제국 초창기에도 그랬지만 농사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정주민과의 인구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면서 버틸수가 없다! 유목제국들도 이 사실을 몰랐던것은 아니어서 몽골 제국 같은 경우에는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의 정주민들을 적극적으로 징병해서 군대에 포함하는 식으로 병력 불리기를 시행했지만 그 자신들이 인구 불리기에 비효율적인 유목 생활을 고수하는 한 이나마도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결국 막판에는 유목제국 그 자신들도 끝내 정주민이 되어 정주국가 체제에 흡수당하게 된다.
- ↑ 특히 힘 있는 자가 최고인 약육강식의 문화를 버리지 못한것도 몰락의 큰 원인이었다. 정주민족들은 안정된 정치체제와 행정체계를 통하여 발전할수 있지만 유목민족은 약육강식의 부족제 때문에 왕위를 둘러싼 세력다툼이 걸핏하면 일어나 정치가 안정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내분이 발생하여 이는 유목제국이 자멸하게 되는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 ↑ 다만 인터넷 등지의 어그로들만 이런 소릴 했던 건 아니고, 학자들 중에서도 이런 인식을 가지고 문화권을 구분한다면서 중국과 만주, 그리고 연해주 등 러시아 영토 일부를 한 문화권으로 퉁쳐놓는 짓을 한 학자가 한 명 있기는 했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중국인들 대다수는 "만주"라는 단어에 그다지 좋지 않게 반응하며 지역 구분으로도 "둥베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만주"라는 단어에 고토 개념을 덧씌우며 환상을 갖는 일부 한국인들과는 정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