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민국/경제

동아시아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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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민국의 경제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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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23,551,000 명2016년, 세계 55위
경제 규모(명목 GDP)5,088억 달러2016년, 세계 23위
경제 규모(PPP GDP)1조 1,260억 달러2016년, 세계 22위
GDP 성장률1.5%2016년, 세계 148위
1인당 명목 GDP21,607 달러2016년, 세계 36위
1인당 PPP GDP47,812 달러2016년, 세계 21위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38.2%2016년, 세계 129위
무디스 국가 신용등급Aa32013년, 4등위
피치 국가 신용등급AA-2016년, 4등위
S&P 국가 신용등급AA-2012년, 4등위

1 개요

"러시아제든 미국제든, 부품은 죄다 대만제야! 그리고 우리 물건은 다! 이렇게! 고쳤어!"

- 영화 아마겟돈에 등장하는 러시아 우주인 래프 대령, 기계를 고친답시고 두들겨 패며(...)

경제규모에 비해 대기업이 상당히 많은 나라. 2011년 기준 5대 기업체의 매출이 전체 GDP의 50%를 차지한다. 참고로 스위스는 70%, 한국의 경우는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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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대기업은 대만중유공사로 만약 우리나라 기업이었다면 삼성전자 다음으로 매출이 큰 기업이 되었을 거다. 세계 제1의 파운드리인 TSMC슈퍼 을가 2위. 그 다음 자리는 애플제품 하청업체로 널리 알려져 유명한 폭스콘이 3위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세계 2차대전 직후 동아시아에서 일본, 영국령 홍콩과 말라야(현재의 말레이시아)에 이어 4번째로 1인당 GDP가 높았던 지역. 그 뒤 국민당이 중국 본토에서 긁어모은 금은보화들을 엄청나게 가져오고, 부유층들도 공산당을 피해 같이 이주했기에 경제적 성장의 기반이 되는 자본금은 충분한 상황이었다. 1955년 유엔 아시아극동위원회[1]가 발간한‘아시아 극동 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타이완은 1948~1954년 연평균 12%의 경제성장율로 당시 아시아 지역에서 필리핀에 이어서 2위 였을 정도. 1970~1980년대 당시 유례없는 경제성장으로 결국 1980년 칠레를 1인당 GDP에서 추월하는 성과를 올리기까지 하였으며, 전후 역사상 상대적 정점이던 1989년도에는 그리스를 최초로 돌파하였다. 그 뒤 1993년~2002년까지 그리스보다 1인당 GDP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였다[2]. 이 경제성장의 결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계속되는 화폐가치 하락으로 말미암아 2004년 결국 미달러로 계산되는 1인당 GDP를 한국에게 추월당하였다.

다만 PPP로 환산한 1인당 GDP는 준수하다고 볼 수 있다. 명목 환율로 환산했을 때의 GDP와 두 배 넘게 차이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드문 현상이다.원인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분명하고 이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만 달러가 실제 구매력에 비해서 굉장히 저평가되고 있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대만 사람들의 실제 생활 수준이 명목 GDP가 말해주는 것보다 높음을 의미한다. 또 반대로 외국인들이 관광하기에 굉장히 좋다는 뜻도 된다. 대만의 물가는 대만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고만고만한 수준이겠지만, 외국인들이 자기네 통화로 환산했을 경우에는 무척이나 저렴해진다. 사실 너무 저평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중국 본토의 눈치만 없다면 무역업에서 꽤나 차익을 남길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3]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임금침체로 2012년 현재 대학교 졸업 후 받는 초봉의 평균은 월 22624대만달러(약 월 80만원)# 그리고 평균 연봉은 연간 438768대만달러(약 1650만원)#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대한민국의 40% 수준이다. 현재 임금은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시 1990년대보다 낮은 수준이며, 현재 말레이시아에 추월당할 가능성이 크다.[4] 대만의 저출산 문제가 왜 한국보다도 심각한지 이해 가능[5] 사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1990년대 들어 대만기업들의 중국 진출러시가 일어나서 중국에 공장을 차리는 경우가 워낙에 비일비재했던데다가 대만 자체가 노조가 별로 활성화되지 않았던 터라서[6] 임금상승이 장기간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대만의 화폐 가치가 심각하게 저평가되고 있는 현상과 대만은 1인당 해외 순자산이 많은 편이며(일본의 2배에 가깝다. 세계 5위 정도) 상대적으로 근로소득을 크게 보충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물론 반대로 공공임대주택같은 제도가 잘 갖추어져있지 않기 때문에[7] 소득수준에 비해 집값은 월등히 비싸며 젊은층들 사이에서 대만 출산율 저하의 원흉으로 손꼽히기도 한다.

대만의 외환보유고는 3~4위를 달리며, 금 보유고는 12위이다. 사실, 이는 대만의 경제규모와 국가규모에 비하면 대단한 수준이며, 심지어 2010년에는 금이 필요이상으로 많기 때문에 더 이상 금 보유고를 늘리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8]

한편, GDP 대비 채무 또한 비교적 낮은편이나 2010년대 들어 크게 증가하고 있다. 2006년 GDP 대비 채무 비율은 34%로 한국과 비슷한 정도였으나 2012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IMF 통계에서 41.7%로 급증하였고 CIA 통계에서 2012년 GDP 대비 공공 부채 비율이 39.2%로 재정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 되고 있다. 참고로 한국은 2016년에 국가채무 40%대에 진입한다.# 한국뿐 아니라 금융위기 이후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이 채무가 상승한 상태다.

2 경제 변천

2.1 식민지 시기

타이완 섬은 청일전쟁에서 청이 패하면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곳을 점한 일본은 이 곳을 무역 거점으로 삼아 일본 - 동남아 - 인도 - 유럽을 연결하는 무역 창구로 활용하였다. 식민지 시기 초기에는 이러한 무역업 이외의 특별한 산업이 발달하지는 않았다.

1920년대 초중반 일본의 중화학 공업화가 진전되면서, 일본의 경공업이 타이완 섬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타이완 섬은 일본의 식료 공업품이나 생활 필수품 등과 같은 경공업 제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주로 농업과 그중에서 특산품인 사탕수수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산업이 특화되어 이를 위한 원료가공산업과 중소규모의 공장들이 많이 설립되었다. 이 과정에서 경공업 기반이 다져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경공업을 담당하던 기업들 상당수가 규모가 작은 기업들이었기 때문에 중소기업 위주의 산업 체계가 형성되게 되었다.

한편 30년대 말부터 일제의 대륙 침략이 본격화되게 됨에 따라 타이완 섬의 산업이 재편되게 된다. 당시 조선은 만주와 중국 지역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과 중화학 공업품을 집중적으로 생산하는 역할을 맡았고, 타이완은 중국 남부 지역과 동남아시아 지역 일부의 전쟁 수행에 필요한 군수품과 중화학 공업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타이중 지역을 필두로 중화학 공업 단지가 조성되었으며, 여기서 생산된 제품은 광저우, 홍콩 지역을 통해 대륙으로 공급되게 된다. 물론, 이전 시기부터 담당해오던 경공업 제품의 공급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타이완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2.2 국부천대 이후

일제 패망 이후 꿈도 희망도 없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나면서 타이완 섬은 중화민국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타이완 섬은 식민지 시기 조선과 만주와는 달리 비교적 온건한 통치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단물만 쏙 빼먹는 식의 식민지배가 아닌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식민통치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과정에서 일제의 패망 이후 기술 전수와 산업 시설의 잔존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 섬으로 쫓겨오는 과정에서 중국의 수많은 기업가들이 타이완 섬으로 함께 오게 되었다[9][10]. 이러한 물적, 인적 자원의 결합에 따라 중화민국은 고속 성장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던 것이다.

이러한 기반은 당시 주변 국가의 상황과 많은 차이가 났던 것이다. 일단, 중국 본토의 경우 국공내전으로 전국이 황폐화가 되었고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사실상 국가가 마비되는 사태가 빚어졌다. 또한 이 시기를 거치면서 산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어 90년대 중반까지도 상당한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한반도의 경우도 비슷했다. 전쟁 으로 많은 수가 유실되긴 했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일제가 남겨둔 대규모의 중화학 산업 단지가 남아있었고, 49년까지 일본인 기술인력이 억류되어 기술 전수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기반이 어느정도 닦여 있던 상황이었다. 반면, 남한의 경우에는 이렇다할 산업 시설이 전무했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대내외적 환경의 유리함으로 중화민국의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또한 70년대 초반까지는 중국=중화민국이라는 공식이 통했기 때문에 국제 사회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이 당시 벌어들인 외화로 미국과 서유럽의 무기를 마구 지르기까지 했었다.

80년대 초반부터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가 급속히 개선되면서 일본으로부터 첨단 공업 분야의 투자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초기에는 일본 기업의 하청을 받는 형식이었으나 점차 일본 자본에서 독립한 기업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두된 기업들이 바로 TSMC, ASUS와 같은 세계적인 규모의 첨단 산업체들이다.

식민지기 까지는 사탕수수와 농업을 중심으로하는 가공 산업이나 경공업,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갖췄기 때문에 중소기업 위주의 발전모델로 보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는 1970~80년대 정부주도하에 중공업 육성이 이루어져 대자본과 대기업군이 형성되었다. 앞서 상술했듯이 그 때문에 대기업의 독과점율은 한국보다 높은 편이다.

2.3 2000년대 이후

성장 가도를 달려오던 중화민국의 경제는 2000년대 이후 침체되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출산율이 2명아래로 떨어지고 이게 현재까지 이어져오면서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전되고 세계 시장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독립 문제가 심각한 갈등을 유발하면서 내부 역량을 까먹는 요인이 되었다.

대만의 국가 경쟁력은 아직은 버티고 있지만, 현재의 상황이 이어진다면 머지 않아 일본과 비슷한 현상을 겪게 될 것으로 보이고 있다.

결국 2008년 부터 중심이던 중소기업들이 줄줄히 도산되어 나가다가 2015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며 심각한 경제침체 상태. 삼성 애플 같은 나라 경제의 안전빵을 대줄 대기업도 없어 더더욱 미래가 어둡다.

3 증권거래소

4 중앙은행화폐단위

5 산업별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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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 Made in Taiwan
미국의 어느 지잡대를 떠올리면 지는거다

5.1 IT

중화민국IT 산업이 발달하고 각종 컴퓨터 부품 관련 회사들이 산재한 국가이기도 하다. 특히 메인보드 시장은 대만 소재 회사들이 꽉 잡고 있는데, ASUS, GIGABYTE, MSI 등 3대 메이저[11]는 물론, ASRock, BIOSTAR, ECS, Foxconn, Jetway 등등이 모두 대만 소재 회사다. 그 외에도 ACER, BenQ, 라이트온, 그리고 폰 제조사로 유명한 HTC, 칩셋 전문 제조사 Realtek을 비롯한 수많은 하드웨어 제조사들이 있다. 대만에 있는 회사는 아니지만 세계 외장 그래픽 카드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NVIDIA대만 사람인 젠슨 황(Jen-Hsun Huang)이 미국으로 건너가 세운 회사이다.

또 각종 컴퓨터 부품 관련 기업이 발전한 나라답게, 세계 최대의 독립 반도체 파운드리 업체인 TSMC(Taiwan Semiconductor Manufacturing Company)도 대만 회사다. 이 파운드리의 업체의 주요고객은 AMD(ATI), NVIDIA, VIA, 브로드컴 같은 '팹리스' 기업들. 고객의 대부분이 세계적인 회사들. 이 TSMC의 사정에 따라 신형 CPU나 신형 그래픽카드의 출시 자체에 차질이 생기거나, 가격이 널뛰기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2010년에도 TSMC가 엔비디아의 주문을 우선하여 AMD-ATI가 준비하던 28나노 공정의 신형 그래픽카드 계획이 틀어져 버린 사례가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공공의 적 취급. 파운드리 시장에서 만큼은 매출 1위일 정도로 좋은 평가를 받긴 하지만 역시 다들 대기업이 아니라서 대기업에게 시장을 빼앗기거나 대기업끼리 손잡거나 하면 줄줄이 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대만 중소기업들을 다 눌러버린다면 세계 전자 시장에 차질이 오므로 몇몇 컴덕후들은 쓸데없이 거대해지는 대기업들을 까기도 한다. 2011년 초에 일어난 IBM삼성전자의 협력도 이런 식으로 까이기도 했다.

IMF 사태로 실직자가 된 대한민국 기술자들을 대거 스카웃해서 관련 기술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이야기가 있다.(하이닉스반도체 매각관련 문서에서 언급)


세계 AP 점유율 2위인 미디어텍도 대만의 반도체 개발,설계 회사이다.

세계에서 메인보드를 비롯한 각종 주요 부품을 독점적으로 생산하고 있어서인지 IT 부문의 국가경쟁력은 1위인 미국에 이어 2위이며, 1999년 IT부문 국가경쟁력 집계 시작이후 2위에서 높아진 적도, 낮아진 적도 없다.[12]

반도체 회사 중 하나인 VIA의 경우 1990년대 말에 인텔병크를 틈타 맹공격을 퍼부었던 회사다.[13] 하지만 인텔이 제동을 걸면서 현재는 버로우.

디스플레이 산업의 주요 생산국가 중 하나로 Foxconn을 자회사로 둔 혼하이 그룹이나 AUO 등이 있다. 최근 몇년간 각국 LCD 산업의 치킨 레이스로 2011년 대부분의 회사가 적자로 허덕이고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샤프-혼하이, 소니-AUO 처럼 일본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들 중에서는 컴퓨터용 DVD/블루레이 재생 프로그램인 PowerDVD로 잘 알려진 사이버링크(Cyberlink)가 유명하다. 사이버링크는 2010년대 들어서 네로 버닝 롬코렐의 이지CD 크리에이터같은 기존의 레코딩 프로그램을 강력하게 위협하는 Power2Go를 내놓아 확대하고 있으며, 2015년 현재 CD/DVD/블루레이 라이터를 사면 대부분 별 말 없으면 파워투고를 번들 레코딩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있다.

5.2 오토바이

아시아 국가들에서 오토바이가 국민 교통수단으로 이용된다는 점은 모두가 잘 알고 있고, 대만도 이쪽에서는 무시 못 할 노하우를 가진 국가다. 최근 국내에도 폭풍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SYM제 바이크들이 바로 대만 출신이다.

5.3 자전거

이런식으로 자전거 업계도 대만계 회사가 휘어잡고있다. 가장 큰 생산기업으로는 GIANT , 그뒤로 MERIDA가 있으며 유럽, 미국 자전거 회사도 극소수의 상위 모델만 자국에서 생산하고 나머지 생산은 위 기업들에게 맡긴다. 한국의 고가브랜드인 첼로도 MERIDA에서 만들고 있고... (IMF시절 한국 자전거공장은 모두 폐쇄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OEM만 하는게 아니라 자사브랜드로도 판매하기때문에 엄청난 부품 구매력과 제품 생산력으로 한국에서도 가격경쟁력이 상당할 정도.

6 관련 항목

  1. Economic Commission for Asia and the Far East (ECAFE)
  2. 참고로 이후 그리스의 1인당 GDP가 유로화로 뻥튀기(...)되며 뒤쳐졌다가 그리스 경제위기가 터지고 난 후인 2014년 다시 대만이 그리스의 1인당 GDP를 추월했다.
  3. 다만 소매상들이라면 몰라도 규모가 있는 기업 입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줄 모르니 자제하는 게 좋다.
  4. 2014년 기준으로 말레이시아의 대졸 초봉과 대만의 대졸 초봉이 비슷한 수준(대만이 약간 높다). 다만 양국 간 대학 진학률 차이도 고려해야 하긴 하다.
  5. 심지어 2009년과 2010년에는 합계출산율이 0명대에 진입하기도 했다(...) 지금은 이보다는 다소 회복(그래도 1.1~1.2명대...)
  6. 한국도 노조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지않고 노조가입률도 10%를 겨우 넘는 수준이지만 대만은 더 하다.
  7. 홍콩은 그나마 임대주택을 국가에서 저가로 보급하기라도 하지 대만은 그런거 거의 없는 수준이다.
  8. 대만의 이러한 결정이 나온데엔 복잡한 이유가 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직후 대만 경제 부처에서는 금을 대량으로 매입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세계의 금값 폭등이 촉발되었다. 이후 대만은 금값이 폭등한 후에 금을 다시 매도하여 막대한 이익을 보았다. 이 이익으로 대만의 외환보유고는 4위에서 3위로 단숨에 도약하였다. 이러한 대만 정부의 행태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고 이러한 비난에 굴복하여 대만 정부는 앞으로 금 매입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실 국가 자산 중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을 때 금 값의 변동이 크면(금 값이 오를 지라도) 국가 경쟁력에 위해를 주기 때문에 금 매입을 중단한 대만정부의 판단은 시의 적절했다고 여겨진다.
  9. 복잡한 사정은 제쳐둔다 해도 중국은 양무운동으로 대한제국보다 근대화, 자본주의화가 빨랐다.
  10.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금과 달러가 타이완으로 유입되었으며, 이러한 힘으로 중화민국은 90년대 초반까지 외환보유고 세계 3~5위권을 항상 유지했었다.
  11. 이 세 회사의 모든 매출액은 인텔 매출액의 절반을 약간 상회한다.인텔은 괴물
  12. 타이베이 101로 인한 마천루의 저주 때문에 많이 밀린 건 사실이지만, 아직도 건재한 편이다.
  13. 바로 램버스 D램과 i820 칩셋 때문이다. 최대 800MHz까지 고속으로 속도를 낼 수 있는 램이었지만, 문제는 램버스 D램 값이 너무 비쌌다는 것. 1999년 800MHz짜리 기준으로 이 램 하나가 대한민국 돈으로 100만원이 넘어갔다.(여담으로 주로 팔린 사양은 700MHz 사양이었다) 램버스D램은 안정성이 꼭 필요한 서버급이면 몰라도, 가정용에 장착하기에는 너무 비쌌다. 당시 인텔은 PC133 SD램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고, 이 때 기다렸다는 듯이 비아에서 694X로 인텔에게 제대로 강펀치를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