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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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Beeland Rogers, Jr.

1 개요

1942년 10월 19일 생.

예일대 역사학과, 옥스포드 발리올 컬리지 대학원 철학, 정치학, 경제학
앨러배마주 데모폴리스 카운티(Demopolis) 출생
(일간에는 로즈장학생으로 알려져있기도 하나 장학금을 받고 옥스포드 발리올 컬리지에사 수학한 바는 맞으나 로즈 장학금은 아니라고 본인이 사적으로 말씀 하셨다. 특이한 점은 아주 용감하게도 그렇게 받은 장학금을 등록기간 전에 짧게 주식에 투자해서 수익을 올린 것으로 책에 적혀있다. 본인의 말을 인용한 책에서)

미국의 투자자이자 저자.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의 공동창립자. 현재는 두 딸의 아버지로 은퇴 후 싱가포르에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가 월 스트리트의 다른 경쟁 애널리스트 중에서 가장 특이한 방식과 세계관으로 투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걸 자랑스러워하며 모험가(Adventurist)로 불리기를 바랐는데, "월 스트리트의 인디애나 존스"라는 별명은 자기가 만들었다.

조지 소로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짐 로저스를 동업자가 아니라 자신의 직원이었던 사람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또한 그는 뛰어난 애널리스트이지 뛰어난 투자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2 경력

어릴때부터 땅콩을 팔았고, 야구경기장에 팬들이 남기고 간 빈 을 주워 돈을 벌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에서 일하다가 1969년에 같은 회사에 있던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만들기 위해 사직했다. 퀀텀펀드는 그후 10년동안 4200%의 수익률을 거두었다. 1980년 겨우 서른 일곱에 은퇴전세계를 --당시 여자친구와 함께 BMW 오토바이를 타고다니며 여행했다. 그 후 콜롬비아 경영대학원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했다.

1998년에 그는 RICI(로저스 국제원자재지수)를 설립했다. 이 회사에서 발표하는 원자재 지수는 ELEMENTS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ETN으로 상장되어 있다.

세계 모든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고, 자신이 미국 특유의 개척모험정신이 있는 사람이라 믿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꺼려 할 만한 건 다 경험해보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처음이 되는 일이라면 흔쾌히 해보려는 편이라고.

3 투자관

  • 상품선물과 상품을 원자재로 쓰는 기업, 둘 중에서 상품선물에 투자하는 경우의 수익률이 높다.
  • 성공 투자자는 사실 대부분의 투자기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 좋은 투자처에 집중해야 많은 수익을 거둘 수 있다.
  • 상승장에서는 아무나 돈을 번다. 자신이 똑똑해서 수익을 냈다고 착각하지 마라.
  • 내가 산 종목이 우연히 폭등하는 행운을 바라지 말고 그런 종목을 미리 발견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해라.
  • 국채나 주식보다 원자재가 좋은 투자처다. 원자재 중에서는 농산물이 최고의 수익률을 낼 것이다.
  • 무슨 투자 상품이든 거품이 생겼다면 팔아라. 급등한 강남부동산을 팔고 강북의 부동산을 사라.
  • 해외 투자는 필수다.
  • 21세기아시아, 특히 중국의 세기가 될 것이다.
  • 북한, 가능하다면 미얀마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미얀마는 낮은 임금의 6천만 인구와 각종 천연 자원이 있기에 개발이 진행되면 최고의 수익을 낼 것이다.
  • 인도는 좋은 투자처가 아니다. 이상한 규제가 많다.
  • 한국은 너무 보호주의적이라 외국인에게 매력적인 투자처가 아니다.

4 현황

그는 2002년에 공식 복귀했고, 곧 FOX 뉴스를 비롯한 여러 경제방송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했다. 그는 방송에서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의 주식시장버블 대응이 또 다른 두가지 버블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나는 부동산버블이며 다른 하나는 가계부채라고 짚었는데, 결국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05년에 그는 그의 저서에서 원자재투자가 최고의 투자방법중 하나라고 밝혔다. 당시의 전통적인 투자방법론과는 다른 주장이었다. 2006년에 그는 미국의 금융회사들과 주택건설사들을 대량으로 공매도했다고 밝혔다. 2007년에 그는 투자대비 높은 수익률로 뉴욕의 저택을 1000만불에 팔고 싱가포르로 이사했다.

그는 그때부터 아시아시장의 성장성에 주목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상의 부의 중심은 19세기 유럽에서 20세기 미국으로, 이제 21세기에는 중국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논리. 이런 논리대로라면 중국으로 이사를 해야 되겠지만 환경오염과 의료수준때문에 싱가포르를 선택했다나. 하지만 인도 공화국의 성장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이다.

현재 아시아에 사는 가장 유명한 월 스트리트 출신 투자가이기 때문에[1] 한국에도 여러 경제 관련 회의의 대표연사로 몇 차례 방문했었고 아마도 향후 10년간은 더 2년에 한 번은 방문 계획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역사적으로 제 1외국어는 경제력이 강한 나라의 언어였으므로 스페인어, 불어같은 지나간 언어를 공부하지 말고 경제강국이 될 중국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5 여행

은퇴 후 세계 여행으로 여행 기네스북 기록을 갱신했다. 그 여행의 공식 명칭은 밀레니엄 어드벤처[2]로 그에게는 두 번째 세계 여행이었다.그 여행을 통해 그는 당시 34세의 약혼녀 페이지 파커(Paige Parker)에게 세계 일주를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아주 실용적 목적이 없는건 아니었는데 자신이 앞으로 투자해야 할 원자재에 대한 세계 동향을 알기 위함이었다. 그는 당시 세계일주를 하면서 목재(종이만드는 목재), 설탕 등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후술하듯 금은방을 자주 들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00년 이후 금값은 폭등을 시작했고 2009년 즈음가서는 그의 예상대로 수십년간 변함없던 금값이 10년 사이 5~6배 올랐다.

당시 무얼로 여행하고 싶냐고 약혼자에게 묻자 파커는 "스포츠 카"라고 답을 했고 짐 로저스는 메르세데스 벤츠 사의 노란색 SLK 두 대와 G wagon(지 바겐) 두 대를 구입해서, 캘리포니아의 메르세데스 전문 튜닝 회사에 맡켰다. 그렇게 해서 G wagon의 보디 위에 노란 SLK 자체를 얹은 특이한 자동차가 탄생했고 그 뒤에 캐링 카로 또다른 SLK 트렁크만 분리해서 만들어 세계 일주 내내 스포츠 카 뒤에 희한한 캐링 카를 붙이고 다녔다. 다른 G wagon은 여행 내내 고용한 Videographer들이나 각국 통역 수행원들이 타고 다니면서 길 안내를 하게 했다고. 그는 다른 월 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과 다르게 과소비를 좋아하지는 않아서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구입한 차가 저 메르세데스 4대였다.

5.1 한국 여행

한국도 그 일정 중에 있던 나라로 중국에서 한 달간을 머문 뒤 2000년 5월 9일 석가탄신일 이틀 전에 인천에 도착했다.

자동차 입국 문제로 세관에서 장시간을 보내자, 이렇게 외국인들의 입국에 어려움이 있는 걸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몹시 폐쇄적이고 인종차별주의적인 나라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그렇게 생긴 차를 몰고 오면 이상하게 보이는건 사실이다

그는 한국 도착 첫째날 경복궁에 갔으며, 한국 여행 둘째 날, 석가탄신일이어서 짐 로저스, 페이지 파커, 그들의 비디오그래퍼 도미닉 그리고 미국 상공회의소에서 나온 한국인 대변인과 함께 조계사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로저스는 -안동시-경주시-부산광역시까지의 7일동안 여행하였다.

그는 이천시를 방문했을 당신 현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를 사용하려 했으나, 열 장이 넘는 카드 중 사용 가능한 카드가 한 장도 없어 크게 실망했다. 또한 이태원동에 있는 현금자동지급기에서 고작 한 장의 신용카드만 현금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걸 보고 당황해했다. 당시 그에겐 아멕스Amex, 다이너스Diners, 디스커버리Discovery, 체이스 맨하탄Chase Manhattan 등 대표적인 미국 신용카드가 있었지만 한국은 해당 카드들이 통용되지 않았다.

이후 2008년 11월 오세훈 서울시장의 초대로 국제금융컨퍼런스의 연사로 방문했다. 당시 '2008 서울국제금융컨퍼런스'는 여의도를 세계금융중심지로 발전 시키겠다는 국가적정책의 일환으로 홍보를 위한 목적도 강했는데, 그래서 "한국주식 10월 중순부터 매입" "중국, 일본 보다 금융 중심에 설 것"이란 립서비스도 하나 던져주고 갔다. # 당시 그는 자신의 숙소 롯데호텔 소공동에서 블룸버그 통신과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때 방한 당시 롯데호텔 지하의 호텔금은방에서 친구에게 줄 은수저 세트와 자신의 첫 딸에게 줄 금으로 된 양을 구입했다.

그리고 2009년 매경지식포럼으로 다시 한국을 방문하였다.

6 사생활, 버릇

전자기기에 능숙하지는 않지만 노트북을 항상 켜두고 각종 지수나 데이터 들이 계속 노트북에 들어오는 대로 확인을 하는 편이라고. 블랙베리를 사용하는데, 그는 2013년 고려대 경영대학에서 있던 강연회에서 어느 현대증권직원분이 왜 삼성 갤럭시를 쓰지 않고 블랙베리를 쓰느냐는 멍청한 질문에 자신은 블랙베리도 잘 쓰지 못한다고 답을 했다. 하지만, 여성이었던 그 청중에게 자신의 명함을 그 자리에서 건네주었고 그 뒤 다른 청중들도 그에게 명함받기에 경쟁에 들어갔다. 물론 자기 친구에게는 그들 중에서 항상 먼저 챙기고 명함도 막 줬다고 한다.

일 년 내내 유럽, 아시아, 미국을 돌아다니며 초청연사로 강연을 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여론에 자신의 입지를 넓히는 그는 체력을 위해 거의 매일, 여행지 호텔에서도 조깅을 한 시간 정도 꼭 하며 체력관리를 한다.

연설을 할때 꼭 준비해야할 것이 있는데, 당분을 바로 섭취할 수 있는 초콜렛류의 과자(특히 키캣)과 캡을 따지 않은 콜라 2캔과 얼음이 담긴 유리잔이라고 한다. 물이 없더라도 콜라는 반드시 준비해주어야한다. 콜라가 없잖아 짐 로저스는 어딜 가더라도 콜라만큼은 꼭 마시는데, 예순을 넘긴 중노년의 나이라서 그런지 연설이 끝날 무렵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어 하기 때문. (물론 연설은 능숙하고 간결한 단어를 쓰면서도 특유의 핵심은 잘 찌르며 전달력이 좋다.) 거기에 기자회견까지 하게 되면 꼭 콜라다. 초콜렛 류는 평상시에 먹지는 않지만, 연설을 할 경우에는 반드시 준비해주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나게 짜증을 낸다나.

그는 자신이 인기가 많고 유명하다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누군가가 사인을 부탁하고 사진촬영을 부탁하면 흔쾌히 해주는 편이고, 사인은 주로 밀레니엄 어드벤쳐 때 부터 제작해서 가지고 다니는 그와 그의 아내, 튜닝한 메르세데스 SLK 사진에 해준다.

그의 모험심에 대해서 다른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애널리스트인 피터 린치가 저서에서 묘사하길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중 가장 모험가이고 특이하게 투자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하였다. 바로 그가 은퇴하고 BMW 모터사이클로 세계일주하러 떠난다고 직접 말을 들은 일화를 언급하는 부분에서이다.
  1. 물론 그보다 20살 차이나는 조지 소로스의 동업자였다는 명성이 그를 더 유명하게 해주지만.
  2. The Millenium Adven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