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왕국

  • 이 문서는 고대 영국의 앵글로색슨 칠왕국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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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고대 7왕국

동앵글리아

머시아

노섬브리아

웨식스

에식스

켄트

서식스
당시 7왕국의 통상적인 강역도.

七王國, Heptarchy.
기원후 5세기 고대 앵글로색슨족브리튼 제도에 세운 7개의 왕국.

1 개요

편의상 잉글랜드 지방의 고대 왕조들을 7왕국이라고 한데 모아 부르지만, 이것은 시대 구분을 위해 일곱 왕국이 칠령팔락하던 시기를 일컫는 표현일 뿐 실제로는 각자 개별적인 왕국들이었다. 7왕국이란 표현은 12세기에 최초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일곱'을 뜻하는 그리스어 εφτά(에프타)와 "통치하다"는 뜻의 그리스어 ἄρχω(아르호)의 합성어 (Εφταρχια) Heptarchy의 등장을 의미한다. 다만 이 영단어가 보편적으로 사용된 것은 16세기 이후부터다.

2 등장 배경

410년, 반달족훈족에 밀려 로마 제국의 국경을 침범하자 당시 로마의 속주였던 브리타니아를 지키기 위해 주둔하던 로마군[1]이 본국으로 파병되면서 치안 공백이 발생, 켈트족인지 아닌지 논란이 거센 [2] 픽트족 해적들이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넘어 브리튼 북동해안지대를 초토화하고, 색슨해적들은 브리튼 동남해안지대를 초토화시키고, 아일랜드 해적들은 브리튼 서부해안지대를 초토화시켰다.

이에 브리튼인들은 바다 건너 쥬트족 용병대장 헹기스트 호르사 형제를 고용하여 함께 해적들과 맞서 싸웠으나, 곧 쥬트인들이 비옥한 땅 브리튼 섬을 탐내게 되어 본토 북해연안 일대에서 대군을 호출해 본격적인 정복 전쟁을 펼친다.

쥬트 이주민들은 처음엔 브리튼인들과 공조하였지만 이내 브리튼인과 반목하여 켄트왕국을 세웠고 뒤이어 같은 게르만계 색슨족, 프리지족, 앵글로족도 이 정복 활동에 동참하게 되고 웨식스, 서식스 머시아 노섬브리아 등 자신들의 왕국을 건국하여 약탈과 정복을 행했다. 이렇게 하여 흔히 아는 앵글로-색슨 민족과 그들의 칠왕국이 등장, 켈트인과 브리튼인을 웨일스콘월, 그리고 바다 건너 브르타뉴 지방으로 쫓아내게 된다. 더불어 이 과정에서 앵글로 족으로부터 잉글랜드라는 지역명이 탄생했다.

3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

잉글랜드를 정복한 칠왕국은 이후 상호 간의 공조, 정복활동을 반복하며 잉글랜드의 패권을 다퉜다. 보편적으로 일곱 왕국을 굴복시킨 왕국은 아일랜드의 지고왕처럼 브리튼의 지배자, 브리튼왈다(brytenwalda)로 불렸으며 나머지 왕국들을 종속, 명목상 종속국들에게 봉토를 수여하는 형태로 주종관계를 유지했다. 최초 5세기에는 남부 서식스가 잉글랜드의 패권을 잡았고, 이후에는 7세기 초 번영한 동부의 패자 동앵글리아, 7세기 중엽 펜다 왕과 8세기 오파 왕 시절 번영한 중서부의 패자 머시아, 버나시아와 데이라의 연합왕국인 북부의 패자 노섬브리아, 남부의 패자 웨식스 등 4개 왕국이 번갈아가며 웅자(雄者)로 군림했다.

그러나 9세기 무렵, 앵글로색슨 왕조들은 데인족 바이킹의 침략을 받아 잉글랜드 함락의 위기를 겪게 되나 알프레드 대왕의 격퇴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이은 10세기 초, 웨식스애설스탠 왕이 등장해 통합 앵글로색슨 왕국, 즉 잉글랜드 왕국의 최초의 왕으로 즉위하며 브리튼 제도는 새 시대를 맞이한다.

다만 이후에도 이민족의 침략은 계속되어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노르만 왕조까지는 정복 왕조가 반복된다.

4 명칭은 적당한가

20세기에 이르러 본국 영국의 역사학자들은 "이 시대를 칠왕국으로 표기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를 두고 여러 논쟁을 거쳤다. 고대, 중세 등의 시대 구분도 아니거니와 애초에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한 7개 국가도 아니었으며,[3]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의 깃발 아래 스코틀랜드, 웨일스 등지의 역사 또한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래에 곧잘 사용된 보편성 탓에 여전히 사용되고는 있다고. heptarchy를 번역기로 돌리면 칠두 정치라는 괴상한 게 튀어나온다더라

5 창작물

아무튼 간에 영국 역사에 보기 드문 전국시대인 탓에 이후의 영국 문학 등에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다.

  1. 실제로는 로마 본토인뿐 아니라 브리튼 현지인 역시 부대에 다수 속해 있었다.
  2. 현존하는 모든 당대의 기록들이 브리튼 토착민이 아니라 북해에서 배타고 하일랜드 지역으로 상륙한 외부 침략자로 기록한다. 언어도 켈트어인 게일-브리소닉어와 상이해서 통역없인 대화가 안 통했다고. 단지 남아있는 유적 유물들이 워낙 켈트족과 비슷해서 어쨋든 켈트족이라고 하기도 한다.
  3. 비슷한 관점에서 한국사삼국시대에 대한 명칭 논쟁도 있다. 가야의 흥망이 제법 길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