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늑대아이> 감독 인터뷰 中)
"미야자키 하야오 이후는 확실히 호소다 마모루."
1 경력
プロフェッショナル 仕事の流儀 アニメーション映画監督 細田守さん 자막 | トップランナー アニメ監督 細田守 |
1967년, 후에 감독을 하고 연출한 늑대아이의 무대이기도 한[2] 토야마현 카미이치마치(上市町)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자랐다. 외동아들.
철도직원이었던 아버지는 일에만 몰두해서 항상 집에 없었고, 어릴 적에 말더듬이 장애가 있어 초등학교 1,2학년은 특별지원학교를 다녔다.
1979년 여름 린타로 감독의 극장판 은하철도 999를 보고 충격을 받고, 그해 겨울에는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던 그에게 어머니가 보여준 한 편의 영화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리고, 칼리오스트로의 성 극장용 팸플릿에 실린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림 콘티를 보고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심을 갖는다. 소학교 졸업 기념 문집에는 '장래 희망은 애니메이션 디렉터가 되고 싶다. 미야자키 씨와 린타로 씨의 연출 방법과 화면 구성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라는 글을 남긴다
중학교 3학년 때, TV방송에 나온 자작 애니메이션 특집을 보고 자신과 같은 학생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A4 용지 1000장 정도를 준비하여 비행기가 총을 쏘는 약 1분 분량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여 학교 내 문화제에서 상영했다.
고등학교 1학년에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제작한 카도카와 영화 <소년 케니야> (1984년,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 공개 애니메이터 모집 소식을 알게되어 중학교 때 만든 자작 애니메이션을 보내서 응모, 프로듀서가 그 재능을 인정해서 도쿄로 와서 만나기를 권유받았으나, 학생 신분이라 학교 시험 때문에 포기한다.
1986년, 카나자와 미술 공예 대학에 진학, 화가를 꿈꾸며 유화와 아크릴화를 전공. 5년만에 졸업한다. 대학 시절에는 레오 카락스 등의 프랑스 영화를 접하고,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화가보다는 영상,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다고 한다. 영화 동아리에서 실사 영상물을 50편 이상을 만들었다. 작품의 대부분은 비디오 아트로, 영화의 형태를 갖춘 작품은 2편이고 필름 페스티벌에 출품했으나 낙선했다.
대학 졸업 즈음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턴채용시험에 응시하나 불합격한다.[3] 그 뒤에 카나자와에 있는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하다가, <소년 케니야> 때 알게된 프로듀서의 소개로 1991년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입사한다.[4]
본래 연출을 하고 싶었으나 먼저 애니메이터부터 시작하라는 말을 듣고 동화와 원화를 그리는 애니메이터의 길에 들어선다. 신입 시절에는 실제 현장의 주변 동료 애니메이터의 능숙한 실력을 보고 자존심은 구겨질대로 구겨져 애니메이터를 계속 해나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애니메이터로 경력을 쌓아가기를 6년, 우연히 사내에서 연출 채용 시험이 있다는 공고가 적힌 벽보를 본다. 시험 내용은 1개월 안에 TVA 20분의 그림 콘티를 그려서 제출하라는 것이었고, 평소 하던 일을 하면서 잠자는 시간을 쪼개서 그림 콘티를 그려 응모해 합격, 1997년 게게게의 키타로(제4기)로 연출가로 본격 데뷔한다.
그 후, 비밀의 아코짱(제3기)의 연출에 참여한 후, 1999년에는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을 극장판 첫 감독작을 연출한다. 디지몬 어드벤쳐 TV 시리즈의 제21화를 연출. 2000년에는 디지몬 어드벤쳐 극장판 우리들의 워 게임!를 감독하여, 그 연출력으로 업계 안팎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토에이 시절 참가한 작품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작품은 극장판 슬램덩크로 배운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이즈음 2000년 8월, 미야자키 하야오가 호소다를 지명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라는 기획이 있는데 감독을 맡아보지 않겠냐며 제의가 온다. 드디어 장편을 그것도 한 번 채용에서 떨어진 지브리에서 맡는다고 리턴 매치라며 기뻐하며 의욕적으로 도전했지만, 기상천외한 원작을 어떻게 영화로 구상해야 할까 실마리를 잡지못하고 난관에 처해 시간을 허비하다가 겨우겨우 그림 콘티 C파트까지 완성했지만[5], 제작은 난황을 겪고 감독 제안을 받고 제작에 매달린지 2년 결국 2002년 4월 21일 담당 프로듀서한테 "이건 더이상 무리겠어."라는 말을 듣고 감독직에서 강판당하고 호소다가 이끌던 제작팀은 해체된다.
이때 지브리는 당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제작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제대로 지원도 받지 못해, 호소다는 자신의 인맥으로 여러 스튜디오를 찾아다니며 인력을 데려왔는데, 계획이 무산되버리자, 신뢰와 인망은 실추되고, 데려왔던 스탭들의 급료의 미지급 문제며, 이후의 일자리 문제 등으로 호소다는 이때를 돌이켜 "이제 애니메이션 업계에서는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인생의 큰 좌절을 맛본다.
2002년 토에이로 복귀한 뒤, 영화의 기획을 계속 내보지만 채택되지 않았고, "호소다는 끝났다"라고 업계에선 수근거렸다. 토에이에서는 오쟈마녀 도레미와 내일의 나쟈등의 연출, 루이비통의 프로모션 애니메이션 SUPERFLAT MONOGRAM를 제작하고, 2005년에 원피스 극장판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6]을 만든다.
2005년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 매드하우스의 사장 마루야마 마사오[7]가 우연히 호소다가 연출한 TV 시리즈 오자마녀 도레미 콰~앙! 40화를 보고, 장편 감독직으로 발탁해서 14년간 근무한 토에이 애니메이션을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어, 2006년 7월,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발표하고 일본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고 6개의 스크린에서 개봉했지만,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9개월 동안 100군데 이상의 극장에서 로드쇼 상영되었다. 흥행 수입은 2.6 억엔.
2009년 8월에는 3년 걸쳐 만든 두 번째 감독작 썸머 워즈도 좋은 평과 흥행에서도 16.5 억엔의 히트를 기록했다. 그 뒤에 애니메이션 제작사 스튜디오 치즈를 설립하고, 2012년 7월, 신작 "늑대아이 아메와 유키(국내 개봉명 늑대아이)"를 발표하였고 42.2억엔의 자신의 최고 흥행 기록을 달성했다. 이른바 포스트 미야자키의 선두주자로 작품성과 흥행성에 성공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의 위치에 오른다.
2015년에는 괴물의 아이를 공개 또 다시 흥행 성적을 개신했다.
2 연출기법
호소다 감독의 연출을 설명한 영상. 11분 25초 부터
세밀하게 구성된 이야기의 구성이 높이 평가받고 있다. 같은 컷을 되풀이하는 동(同) 포지션, 실사의 카메라워크(광각렌즈 등)를 의식한 연출, 그림자를 그려넣지 않는 작화, CG의 움직임을 셀화의 움직임에 접근시키는 등, 실사・애니메이션・디지털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자적인 연출수법을 가졌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멀티로 여러가지 큰 것을 잘 다룬다면 호소다 마모루는 세세한 개인적 표현을 잘 한다는 의견이 있다.
작품 속에서 비행운・교통 표지판・갈림길・소녀・노파・쥬스・디지털의 둥근 공간이 빈번히 나온다. 그 외에, 비슷한 상황을 몇 번씩 반복하거나, 개그 연출로 인물의 얼굴이 만화적으로 되는 등의 표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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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전부 본 사람이면 연출상이나 장르적인 공통점이나 클리셰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들자면 가상 세계를 자주 소재로 차용하는 것도 특징. ('우리들의 워 게임'의 디지털 월드,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 타임리프 할때 묘사된 시공간의 세계, '썸머 워즈'의 인터넷 세계 OZ, '괴물의 아이'의 또다른 세계 주텐가이 등등. 그리고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단편인 'SUPERFLAT MONOGRAM' 에서도 가상 세계 설정이 차용되었다.)
또한 썸머 워즈 이후로 은근히 수인과 쇼타 코드가 자주 나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썸머 워즈의 이케자와 카즈마, 킹 카즈마 / 늑대아이 - 아메, 늑대인간 / 괴물의 아이 - 큐타, 쿠마테츠 등등. 이 외에도 자주 사용되는 클리셰로는 여자 캐릭터는 다소 평범한 설정인 것에 비해 남자 캐릭터들에게 특별한 설정이 씌워지는 경우가 많다.[8]
이때문에 호소다 마모루 작품이 연출, 내용등을 다소 우려먹는다는 지적이 있기도한데 이는 썸머 워즈가 우리들의 워 게임!을 답습한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서 그런듯 하지만 사실 썸머 워즈는 우리들의 워 게임의 정신적 후속작에 해당한다. 사실 썸머 워즈 소설판에는 우리들의 워 게임이 원작이라 표기되어 있다. 사실상 리메이크판이라 봐도 좋으며 또한 같은 소재를 차용하더라도 스토리나 캐릭터면의 차별화는 상당히 잘 이뤄낸다. 괴물의 아이가 전작인 늑대아이와 같은 수인을 소재로 차용했다는 점에서 이번에도 또 소재 우려먹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늑대아이와는 상당히 차별화된 스토리를 짜내었기에 '답습'한다거나 '우려먹는다'는 평가는 다소 비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참고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은 모두 감성 드라마 -> 액션 순서를 번갈아가면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2006, 감성) -> 썸머 워즈(2009, 액션) -> 늑대 아이(2012, 감성) -> 괴물의 아이(2015, 액션) 등등. 개봉 년도를 보면 알겠지만 시간을 달리는 소녀부터 3년을 단위로 차기작을 개봉하고 있다.[9]
3 이야깃거리
- 2009년 썸머 워즈 개봉 기념으로 내한한적이 있다. 차기작인 늑대아이때는 첫 아들이 태어나서 내한을 못했지만 다음 작품인 2015년 괴물의 아이 국내 개봉때도 내한을 했다. 괴물의 아이 내한때는 11월 11일 괴물의 아이 라이브톡, 11월 12일 늑대아이 시네마톡 및 티브이데일리와의 인터뷰로 총 2박 3일의 일정을 마쳤는데 티브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차세대 미야자키라는 평가는 달갑지 않다는 입장#과 함께, 현재 한국영화의 수준은 일본영화가 쫓아갈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있으며 봉준호, 나홍진 감독등의 작품에 자극을 많이 받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 시간을 달리는 소녀 이후로 사다모토 요시유키(캐릭터 디자인)와 오쿠데라 사토코(각본)를 항상 동반한다.
어째서인지 괴물의 아이에서는 참여하지 않았다
- 카도카와 쪽에서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연출을 제안했었다고 하는데, 왠일이지 그 뒤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 썸머 워즈, 늑대아이, 괴물의 아이 모두 우리말 더빙이 되었는데 시간을 달리는 소녀만 더빙이 없었다가 2016년에 드디어 더빙판이 나왔다.
- 2012년 9월 24일 오후 11시 25분에 첫 아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4 작품 목록
- 1999년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 1999년 게게게의 키타로: 키타로의 유령전차 3D
- 2000년 디지몬 어드벤처: 우리들의 워 게임!
- 2000년 디지몬 어드벤처 3D: 디지몬 그랑프리
- 2003년 SUPERFLAT MONOGRAM : 루이비통의 프로모션 애니메이션[12]
- 2005년 원피스 극장판 6기 :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
- 2006년 시간을 달리는 소녀
- 2009년 썸머 워즈
- 2012년 늑대아이
- 2015년 괴물의 아이
5 TVA 참가 작품
- 디지몬 어드벤처 21화[13] 감독
- 내일의 나쟈 OP, ED, 5화, 12화, 26화
- 오자마녀 도레미 콰~앙! 40화, 49화[14]
- 원피스 199화 [15]
- 스파이럴 추리의 띠 OP[16]
- 사무라이 참프루 OP[17]
- ↑ 참고로 이동진 평론가는 2009년과 2015년에 호소다 마모루 감독이 각각 썸머 워즈, 괴물의 아이 개봉 기념으로 내한했을때 두 내한 행사 모두 사회자를 담당하였다.
- ↑ 늑대아이의 무대는 사는 집을 비롯한 초등학교, 폭포, 논밭 모두가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화면으로 옮겼다.
- ↑ 스튜디오 지브리의 인턴채용시험에는, 그림을 2장 이상 그려서 제출하라는 시험에 150 개 이상 제출했는데, 불합격 통보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지브리는 장인의 세계라서 자네처럼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당신을 (지브리에) 채용하면 오히려 재능을 없애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탈락시킨다라는 내용의 직접 쓴 편지를 받았다. 일용직이라도 좋으니 제발 채용해달라고 지브리에 요청했는데, "이번 시험에서 미야자키씨가 직접 편지를 보내준 사람은 모든 응시자 중 두 명 밖에 없다. 그 중 한사람이 당신이니 그것만으로 영광으로 여겨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금도 이 편지는 소중하게 액자에 넣어 보관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미야자키 감독은 분발하라면서 자네도 작더라도 작품을 만든다면 다시 만날 지도 모르겠다고 적었는데, 10여년 뒤 정말로 다시 만나게 되서 깜짝 놀랐다고.
- ↑ 자신이 입사할 당시 토에이는 망해가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버블 경제로 일본 국내는 호황으로 들썩였는데 오히려 힘들게 헐떡이고 있던 곳이 아니메 업계였다고. 이유는 1980년대 일본 아니메 업계의 가장 큰 밥줄은 미국과의 합작(미국이 기획하고 돈을 대면, 일본측이 실제작을 담당)이었는데, 엔고로 인해 제작비가 비싸져서 채산이 맞지 않자, 기획되는 작품 수가 줄어들고 결과 일거리도 줄어들었다. 세일러 문을 준비하는 시기에 입사했는데, 이 작품으로 토에이는 부활했다고.
- ↑ 호소다 마모루는 후에 인터뷰에서 "토에이에서 배웠다구"라는 이상한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싸구려 프라이드 같은 것이 있어서, 미야자키씨와 타카하타씨에게 상담을 받거나 일종의 가르침을 청하는 것도 이제 생각하면 조금 정도는 좋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뭐랄까, 한편 "이거다 저거다" 지적당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야 말로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대선배다 - ↑ 이 작품은 지브리 시절의 쓰라린 경험을 투영하고 있다.
- ↑ SHIROBAKO에 나오는 사장의 모델
- ↑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치아키는 미래에서 왔다던지, 썸머 워즈의 코이소 켄지는 천재적인 수학능력을 가졌다던지, 늑대 아이의 '그 이'는 늑대 인간이라던가, 괴물의 아이의 큐타는 괴물의 세계에서 길러진 아이라던가 등등
- ↑ 이는 우리나라 최동훈 감독도 마찬가지.
- ↑ 호소다 본인말로는 "그냥 친구고 다른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 ↑ 단 토미노는 G레코 공개 전 정보에서 볼 수 있듯 자주적 여성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니, 어머니에 대해 이렇게 조명한 작품을 혹평할 리가 없었다.
- ↑ 무라카미 다카시와의 콜라보. BGM은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이 담당했다. ('Different Colors')
- ↑ 원판 에피소드 제목은 '도쿄 대격돌' 이고 국내판 에피소드 제목은 '현실 세계로 돌아온 태일!' 이다
- ↑ 특히나 40화(더빙판은 삭제된 세 편이 있어 40화가 아니라 37화다)는 사쿠라 미라이가 나오는 중요한 이야기로, 기존의 동화풍의 그림과 전혀 다른 방식의 현실적인 연출을 선보이며 말도 안되는 퀄리티를 뿜어냈는데, 원래 4기 극장판으로 예정된 시나리오였다고 한다. 스폰서의 요구에 의해 일이 수틀리다 보니 TV판 시나리오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도레미 시리즈의 극장판은 재생시간이 26분으로 TV판과 큰 차이는 없다. 극장에서만 볼 수 있는 연출을 사용한 중간 에피소드의 개념이기 때문. 따라서 TV판화 되었다 해도 크게 누락된 부분은 없을 것이다.
- ↑ 극장판 장편 오마츠리 남작과 비밀의 섬의 연출 제의를 받고, 그 전에 먼저 TV용 1편을 연출해 보라고 해서 만들었다. TV 시리즈물이라서 스타일을 맞추기 위해, PAN이라든가 QTB(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사용하는 그림 콘티 전문용어. quick track back의 약자. 카메라가 빠르게 뒤로 물러나면서 피사체를 찍는 것.)라든가 이전과는 다른 카메라 워크 연출을 집어넣었다.
- ↑ 하시모토 카츠요 명의
- ↑ 하시모토 카츠요 명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