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에이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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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東映アニメーション / Toei Animation

주식회사 토에이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마스코트는 '장화신은 고양이', '장화 삼총사', '장화신은 고양이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인 페로이다.

정식 명칭은 토에이 주식회사 산하의 '토에이 애니메이션 주식회사'가 맞다. 하지만 줄여서 토에이로 부르고 있다. 설립일은 1948년 10월 1일이다.

원래 1948년에 설립된 회사는 일본 동화 주식회사(日本動画株式会社)이었으나 1952년에 일동영화주식회사로 상호가 변경되었으며, 이를 당시 토에이의 사장이었던 오오카와 히로시가 사원체로 흡수(1956년 7월)하여 만든 것이 토에이 동화 주식회사이다. 오오카와 사장은 미국의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전을 내다본 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토에이 동화를 설립했다.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을 제작한 바 있었고(1958년작), 이후부터 장편 애니 시장을 주도했다. 1998년에 토에이 애니메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애니메이션 산업부분은 디즈니와 많이 닮은 편이다.[1] 그러나 제작비에 비해 수익률이 저조하게 된 나머지 결국 리미티드 방식으로 사업을 전향한다.

2 역사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전신인 일본 동영상 주식회사(일동)이 설립되었을 땐 재정적 문제로 인해 한 고등학교의 빈 교실 약 100평을 사용해 작업하기도 했었다. 당시 국제 영상 작업으로 큰 잠재력을 느꼈던 토에이의 사장은 동양의 월트 디즈니가 되자고 결심해 일동을 인수하기로 마음먹었고, 1956년 1월 토에이는 토에이 동화의 설립을 준비하는 '만화영화 제작 연구위원회'를 출범했다.(위원장은 오오카와 히로시 토에이 사장이 맡았고, 설립 준비 실무 담당 위원은 아카가 코이치 관리 과장과 이마다 치아키 등이 맡았다.) 장래의 사업 계획안을 회의하는 중 아카가 코이치와 이마다 치아키의 방안이 대립하기도 했는데, 이마다 치아키는 '컬러 장편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월트 디즈니사를 비롯한 미국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와 제휴하여 그 제작 기술을 도입해보자', '작품을 제작하는 사업뿐만 아니라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등 광범위한 사업 전개를 도모해보자', '절대로 총천연색인 장편 만화가 아니면 수입은 오르지 않는다' 등의 여러 방안을 제안하였으나 그의 의견은 채택되지 못했다.

같은 해 7월 모리 야스지, 야부시타 타이지 등을 신규로 영입한 토에이 동화 주식회사가 공식 발족하였다. 1950년대 당시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무척 드물었고, 장편 애니 제작 경험도 전무했던 가운데, 도쿄도 네리마 구의 토에이 토쿄 촬영소에 스튜디오를 완성해 이듬해 1월 9일부로 스튜디오를 이전하였으며, 완성과 동시에 새로 채용된 토에이 동화 1기생 중에는 오오츠카 야스오(大塚康生), 쿠스베 다이키치로(楠部大吉郎) 등이 있었다. 이 스튜디오에서 백사전 제작을 위한 직원 규모 증가와 CM 필름의 수요 증가에 대응할 방안을 내부 직원들이 마련하기 시작했고, 1957년 말 스튜디오 1차 증설 공사에 들어가 1959년 6월에는 2차 증설 공사를 준공하였으며, 늑대소년 켄 등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응하기 위해 1964년 6월, 3차 증설 공사를 준공하면서 완전한 스튜디오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런 증축 과정들을 거치며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체제를 완성시킨 토에이 동화는 1957년 5월에 첫 단편 작품인 '고양이 낙서'를 제작했고, 이듬해 10월에는 백사전을 공개하였다. 그후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몇몇 애니메이터들이 제작에 참여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장화 신은 고양이' 등과 토호의 애니메이션 극장판 발표로 인해 토에이 동화는 1960년대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주요 제작사 중 1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시간이 흐른 1970년대엔 TV판 애니메이션의 제작 증가로 인하여 장편 영화의 제작이 줄어들었고, 토에이 동화엔 주간 소년만화 잡지 원작으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의뢰들이 접수되기도 했다.

토에이 동화는 애니메이션 제작 편수의 증가와 애니메이터들의 노동조합 관련 파업 심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3년부터 대원미디어(구. 대원동화)나 세영동화같은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에게 하청 작업을 의뢰하게 된다. 이 시기에 크리에이터 중 일부가 다른 제작사로 이동하면서 토에이 동화를 떠난다. 이듬해 이마다 치아키가 토에이 본사에서 파견된 사장으로 취임하였고, 이마다 치아키는 1993년까지 역대 최장으로 20년간 토에이 동화의 사장직을 맡아 2개의 성과를 남겼는데, 첫번째는 노조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검토를 지시한 컴퓨터 작업 도입이었다. 두번째는 토에이 동화 사내에 프로젝트 팀을 발족시켜 일본 내의 대형 가전 업체들과 연계한 연구 개발 진행이었다. 1985년에 일본 IBM과 연계해서 처음으로 시도하기 시작했지만, 초기 비용과 유지 비용도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여 실현될 순 없었다. 1991년에 후지쯔와 연계하여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인 CATAS (Computer Aided TOEI Animation System)를 개발해냈지만, 비슷한 문제로 역시 실패했다.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면서 가격이 하락하게 되자 1992년에 '북두의 권' 게임 데이터 작성을 시작으로, 1997년 '게게게의 키타로' 4월 방영분부터 디지털 제작으로 완전히 전환시킨다.

토에이 동화는 1970년대의 대표적인 일본 애니메이션 해외 수출 추진 기업이었고, 이마다 치아키는 스스로 전세계의 영화제들과 배급사들을 찾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출을 촉진하도록 기여하였다. 동시에 필름 수출과 해외 저작권 ​​판로 확장을 병행 추진했으며, 10여년이 지난 1992년엔 필리핀 현지 기업 EEI와의 합작으로 EEI-TOEI ANIMATION CORPORATION(1999년부터 TOEI ANIMATION PHILS, INC. 약칭 : TAP, Toei Phils)를 설립하였다. 이로써 80년대 중반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전반적으로 일본과 질적으로 크게 비슷해진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하청을 맡기지 않는 대신 필리핀 등지의 해외 국가에서 하청 제작하는 위탁 체제를 마련하였다.

1996년 토에이 그룹의 대규모 인사 개혁으로 TV 애니메이션 작품 전체를 일시적으로 중지했으며, 1998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 그보다 몇년 전인 1995년엔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를 개설해 디렉터 애니메이터 미술 디자이너 CG 크리에이터의 연구생을 모집하기도 했었다(현재는 폐쇄). 2000년부턴 작화 공정의 디지털화 시스템을 도입시켰고, 필리핀과 일본의 프로덕션을 광섬유 통신으로 연결하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작 네트워크 시스템'의 운용을 시작해 소재 수송 시간을 대폭 단축시켜 생산성을 이전보다 향상시켰다. 이는 토에이 애니메이션이 TV 시리즈 및 극장판 작품을 아울러 2010년대 현재까지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 최다 수준의 제작 편수를 유지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2003년, 오이즈미 스튜디오에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를 개관했으며, 이 스튜디오엔 역대 애니메이션이 패널로 전시되어 있고 시기에 따라 특정 작품에 초점을 맞춰 클로즈업한 기획전이 진행되기도 한다.(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사옥에 출입하게 되면 관계자들한테, 입장시에는 수위한테 신청을 수속해야 한다.) 2006년에는 환동사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다른 영상 카테고리 "화이안(가니메)" 라벨을 시작하였다. 2013년 7월 영업 관리 부서 및 자회사인 토에이 애니메이션 음악 출판 사무실을 카구라 자카에서 나카노 센트럴 파크 이스트로 이전했다. 2014년에는 주주 총회의 승인을 얻은 후 등기상의 본점을 실질적인 본사 기능이 있는 나카노 사무실로 이전했다. 이외에 같은해 9월부터 노후화된 오이즈미 스튜디오를 재건축하는 것을 포함한 부지의 전면 리뉴얼을 실시하기 위해서 스튜디오의 기능을 2017년까지 약 3년간 네리마구 히카리가오카에 있는 스튜디오로 임시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오이즈미 스튜디오에 있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에 대해서도 같은해 9월 23일부터 휴관 중이다.)

3 특징

일본에서 TV의 대중적인 보급이 완료된 1970년대 중반부터 주로 저연령층-청소년 대상의 TV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고 있다. 지금이야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매니아 계층에 어필해서 덕후들한텐 '애들 만화나 만드는 곳'이라며 은근히 평가절하 당하는 경향이 있는데[2]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큰손. 지금은 업계 탑을 달리는 선라이즈도 설립초기에는 토에이 하청으로 먹고 살았을 정도이며[3] 일본 애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업계에 투신한 곳도 이곳이다. 사실 이들이 제작한 작품은 매니아층을 넘어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만 해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은하철도 999, 프리큐어, 세일러문, 세인트 세이야, 근육맨 등등... 이 작품들의 개별적인 인지도만 생각해봐도 무시무시하다.

물론 꼭 이런 애니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우로부치 겐미즈시마 세이지 조합으로 '낙원추방'이라는 극장판을 만들거나 TV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같이 실험적으로 성인 취향의 애니를 시도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 애니판에 밀려 인지도가 낮지만 AIR카논, 클라나드 애니판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의 특징으로는 유명 원작들의 판권을 사서(원피스, 드래곤볼) 작품을 만드는 편이지만[4][5] 요즘에는 유명 원작이 아니거나(금색의 갓슈, 세일러문) 또는 새롭게 원작을 만드는 편이다.(프리큐어, 오쟈마녀 도레미)[6]

과거에는 주로 아오니 프로덕션의 성우를 독점적으로 많이 기했지만 최근들어 그 정도는 아닌듯.

제작을 맡아 진행하는 감독 역시 전체 시리즈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각 화(단편)의 감독으로 분류한다. 덕분에 '감독'이라는 표기 대신 시리즈 디렉터라는 표기[7]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때문에 작품은 아는데, 감독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8] 그 예로 디지몬 시리즈의 팬들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개봉한 뒤에야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80~90년대에 자사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이하자, 업계에 온갖 횡포를 부렸고 이러한 일로 인해 현재까지 토에이의 작품들은 일본의 에니메이션 잡지에서 표지는 물론, 잡지 본문 내용에서도 수록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부터 그나마 좀 나아진 듯하며 프리큐어 시리즈는 아니메쥬 등에 표지로 나온적이 있다. 또 세일러문이 표지를 장식한적은 있으니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듯.[9]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중에서 상당히 오랜기간 3D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해온 업체이기도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자 사이에서 일본 3D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풀 3D로 된 애니메이션은 방영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CG 삽입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3D 애니메이션의 개발은 본사가 영화사이기 때문에 영화 CG와 함께 진행하였다. 특히 '표정'이라는 부분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카툰 렌더링과 같이 질감을 표현하는 렌더링이 아니라 아예 표정을 실제 인간의 표정을 따고 그 표정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맞추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3D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나 드림웍스같은 서양 회사에서 주도하였는데 미국 애니메이션식 캐릭터와 서양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표정은 실제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런 기술은 주로 영화에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표정이 지금까지 나와온 3D 애니메이션과 토에이의 3D 애니메이션은 겉보기에도 감각이 다르다.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트라이 앤 에러로 토에이만의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는 것 같다.[10]

캡틴하록3D를 개봉했을 때, 역시 일본 3D애니메이션은 자국내에서 인기가 없어서인지 성적이 나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3D가 인기가 없고 기존 3D애니메이션과 괴리감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프랑스이탈리아에서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2차 수익까지 합하면 적자는 줄일 수 있을것이라 한다. 왜 미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지만(...)

참고로 아무래도 상관 없을거 같지만, 이 회사에서 제작한 작품의 음반은 대부분 일본 콜롬비아가 발매하고 있다.[11][12]

4 평가

최악의 퀄리티와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제작사 안티 히어로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같은 시대에 인기만화 애니화, 그 외 디지몬, 세일러문 애니메이션 등의 작품을 제작하면서 점차 계속되는 호조를 누리고 있지만 문제는 다들 한정적인 투자가 보이는 저퀄리티가 대다수라는 점이라 원작품의 명성에 걸맞지 않는 초저퀄리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중에 디지몬은 애초에 저예산이었고, 구작 세일러문은 원작이라기보단 처음 만든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리티가 성공한 것으로 예외.

특히 이 문제의 대표적인 사례가 드래곤볼/애니메이션. 해당작은 당시에 원작이 원작인만큼 인기를 끌었으나, 현재에 들어서 논란이 많이 되고 있다. Z 이전 편까지만 해도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자체는 평타는 치던 퀄리티 였다만 원작 연재 6개월 만에 성급한 애니화로[13] 거의 오리지널 비중로 진행되다 Z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부터가 터졌다.

그것뿐만 아니라 캐릭터 해석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하고 주인공 손오공을 바보 캐릭터로 만들고 조연들의 비중을 늘리긴 해도 대우는 안 하느니만 못한 스토리 내적 문제까지 있다. 이 문제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드래곤볼 구극장판. 작화는 좋은 극장판이나 그것 외에도 다 좋지 않다는 평가가 대부분. 뭐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때문에 드래곤볼은 유난히 원작만 고집하거나 애니메이션을 혐오 수준으로 싫어하는 매니아 팬이 유독 많은 편이다.

같은 시기에 슬램덩크 애니 또한 늘어지는 전개로 인한 스토리 연장, 잦은 작화 붕괴, 원작에 비해 상당히 괴기한 연출로 질 저하가 일어나고 있었다. 후에는 원피스 애니 또한 같은 방식으로 비판을 받으며 토에이의 이러한 인기작들 애니메이션에 대한 무성의함과 모욕은 지금도 원작팬들과 추억을 갖고 있는 팬들에게 용서할 수 없는 만행으로 남아있다. 참고로 원피스 또한 질질끌기는 지금도 한 없이 여전한데다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드래곤볼 애니를 계승하는 회상씬 질질끌기와 에니에스 로비 편에 갑작스런 과거 회상은 10대 초반 시청자들조차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원피스 자체는 그래도 퀄리티 높은 편이 드래곤볼에 비하면 약간 많은 편이란 게 다행. 스릴러 바크 편 후반부터 유난히 펜선이 얇아지며 밋밋한 작화가 본적인 액션 연출에서 밋밋함이 느껴져서 문제되고 있다. 2부 이후는 원피스 애니 15주년 기념으로 드레스 로자 편에서 퀄리티가 높아졌으나 그 후에 본격적인 싸움에서 질질끌기와 저퀄리티 연출로 다시 비판받고 있다.

디지몬 시리즈 또한 극장판이 아닌 TVA 본편은 주요시청층이 아동용이라 그런지 저예산 티가 팍팍 났으며 2006년에 방영한 디지몬 세이버즈는 유난히 화마다 작화가 들쑥날쑥하고 저예산 연출도 여전했다.[14] 참고로 디지몬 애니가 퀄리티에 대한 문제로 비판받기 시작한 것도 2006년 당시 디지몬을 시청한 아이들이 자라게 되어 그들 중 오덕이 되고 나이를 먹으며 작화에 대해 의식하기 시작한 것. 지금도 디지몬 시리즈의 관한 저예산에 대한 비판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최신작인 디지몬 크로스워즈는 초~중반까지 평가가 굉장히 좋았으나 후반 디지몬 헌터 편은 스토리 템포 조절로 인한 미흡한 전개 구성으로 까이며 전작 주인공들이 활약하던 화도 가볍게 보기에도 구린 연출들이 많았다.

토에이에서 나온 인기작 중 유일하게 낫다 싶은 것이 세일러문이었다. 세일러문이 가장 이질적인 게 오히려 원작 요소를 배제하고 어린이들이 다가가기 쉽게 설정을 바꿔 애니의 오리지널리티로 성공하며 찐빵 작화로 당시엔 욕을 많이 먹어도 어떻게 보면 가장 무난히 성공한 셈이다.[15] 정작 이 문제에 해당되는 것은 이 구애니 시리즈가 아닌 세일러문 크리스탈이다.

구 세일러문 시리즈를 2014년에 리부트한 세일러문 크리스탈에서 애니 재현이 힘든 원작의 그림체로 인물 작화를 그리는데다 후원사가 없는 답 없는 무리수와 변신 씬을 재탕하고 미묘한 3D 모델링을 계속 뱅크씬으로 이용해 오며 오프닝만 고퀄리티였지 옛날에 비해 심각한 저퀄리티로 제작되어 팬들의 비난이 거세었고 세일러문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이 분 오프닝에서 마스 못 보셨답니다

그리고 2000년대 중반부터 다른 것도 문제가 되고 있는데 디지털 방식의 16:9 HD로 완전히 들어서면서 색감에 대한 호불호가 본격적으로 갈리기 시작했다. 위에서 말한 원피스 애니의 작화에 대한 불만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이다. 다만...

토에이가 작정하고 그린 애니는 다른 애니 회사들보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연출과 절륜한 작화를 자랑한다. 안해서 문제

풀 3D 그래픽을 이용한 낙원추방에서 펼쳐지는 메카닉 전투씬은 2014년 방영한 작품은 물론 종래에 나왔던 메카물 전투씬 중에서도 단연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Go! 프린세스 프리큐어에서도 절륜한 작화력을 보여주며 오히려 다른 작품 예산 아낀다고 팬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이 나올 정도가 되었으며 드래곤볼 슈퍼 39화에서의 오공과 히트의 전투씬은 '드래곤볼' 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전투씬을 보여 주었고 원피스에서도 루피의 기어 4의 작화가 여태까지의 퀄리티와 비교가 안되게 절륜하게 나오고 세일러문 크리스탈 3기에서 절륜한 작화를 보여주고 이후 원피스에서 절정을 찍은 역대급 포스와 작화를 보여준 사황 카이도의 등장씬이 나오면서 토에이 진심모드라는 별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때문에 토에이가 마야를 사용한 1쿨 예정인 신작 正解するカド를 발표하자, 팬들은 너무나도 비교되는 퀄리티에 왜 드래곤볼이나 디지몬 시리즈는 이런 퀄리티로 안만드냐고 불평을 했다. 프리큐어 시리즈正解するカド는 희망편이고 드래곤볼 超는 절망편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5 작품 일람

비디오 게임이라면 ◇ 표시.
※ 이 표에 들어있지 않은 작품들은 이 곳을 참조.

1950년대
1958년백사전
1960년대
1966년요술공주 샐리
1968년게게게의 키타로
사이보그 009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1969년비밀의 앗코짱
타이거 마스크
1970년대
1972년데빌맨
마징가Z
1973년바벨 2세
Dororon 엔마군 메라메라
미라클 소녀 리미트
큐티하니
1974년겟타로보
그레이트 마징가
1975년겟타로보G
강철 지그
UFO로보 그렌다이저
1976년대공마룡 가이킹
마그네로보 가킨
1978년SF 서유기 스타징가
은하철도 999
캡틴 퓨쳐
하록 선장
1979년미래로보 달타니어스
1980년대
1980년우주대제 갓시그마
1981년백수왕 고라이온
타이거 마스크 II세
닥터 슬럼프
1982년파타리로
더 카보챠 와인
기갑함대 다이라가XV
1983년근육맨
스톱!! 히바리군!
1986년드래곤볼
강Q초아 잇키맨
세인트 세이야[16]
1989년드래곤볼 Z
1990년대
1991년겟타로보 고
타이의 대모험
1992년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1993년슬램덩크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
1994년마멀레이드 보이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
1995년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uperS
1996년드래곤볼 GT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세일러 스타즈
꽃보다 남자
1997년소년탐정 김전일
꿈의 크레용 왕국
1999년오자마녀 도레미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크로노 트리거
원피스
2000년대
2000년오자마녀 도레미 #
우리들의 워 게임!
디지몬 어드벤처 02
황금의 캡슐 진화
2001년좀~더! 오자마녀 도레미
디아블로몬의 역습
디지몬 테이머즈
2002년카논
근육맨2세
오자마녀 도레미 콰~앙!
디지몬 프론티어
2003년금색의 갓슈
내일의 나쟈
2004년두 사람은 프리큐어
모험왕 비트
2005년디지몬 제볼루션
극장판 에어
2006년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파워퍼프걸Z
디지몬 세이버즈
2007년Yes! 프리큐어 5
모노노케
극장판 클라나드
2008년못말리는 3공주
2009년프레시 프리큐어!
스트롱 월드
드래곤볼 改
2010년대
2010년하트 캐치 프리큐어!
드래곤볼 히어로즈
디지몬 크로스워즈
원피스 기간트 배틀
2011년스위트 프리큐어♪
토리코
쿄소기가
2012년스마일 프리큐어!
탐험 드리랜드
원피스 해적무쌍
세인트 세이야 Ω
원피스 필름 Z
원피스 ROMANCE DAWN
2013년두근두근! 프리큐어
드래곤볼 Z : 신들의 전쟁
2014년드래곤볼 改 마인 부우 편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마진 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크리스탈
월드 트리거
낙원추방
2015년드래곤볼 제노버스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디지몬 스토리 사이버 슬루스
드래곤볼 Z : 부활의 F
드래곤볼 超
디지몬 어드벤처 tri. 「재회」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
2016년마법사 프리큐어!
디지몬 어드벤처 tri. 「결의」
원피스 필름 골드
디지몬 어드벤처 tri. 「고백」
디지몬 유니버스 어플리 몬스터즈
타이거 마스크 W
2017년디지몬 어드벤처 tri. 「상실」
포핀Q
正解するカド
  1. 방송국의 대주주인 것도 비슷하다. 토에이는 TV 아사히의 대주주이며 디즈니는 아예 ABC의 모회사이자 이외에 별도의 방송 채널들을 두고 있다. 토에이도 방송 채널을 두고는 있다. 그렇지만 애니보단 영화 위주인지라... 3D 위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점에도 공통적이다. 단 토에이는 3D의 맛을 알고(...) 최근에야 갈아타기 시작한 것이지만.
  2. 사실 이건 토에이가 인기작들을 제작하면서도 성의없는 작화나 연출을 보여주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밉보인 탓도 있다.
  3. 기동전사 건담 제작 비록을 다룬 만화인 '기동전사 건담씨'의 코너 건담 창세를 보면, 당시 토에이 쪽에서 선라이즈를 구멍가게라면서 무시하는 에피소드가 실려있을 정도.링크
  4. 참고로 이게 와전되어 판권만 잡고 있어도 돈을 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잘못된 말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 판권을 '일부' 사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권리를 차지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되팔거나 일부만 가지고 있는다. 오리지널 애니의 판권은 우선 팔고 시작한다. 제작비는 방송사와 원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스폰서에서 주는 걸로 만든다.
  5. 원피스는 제작하고 몇년 뒤에 판권을 대량 사들였다. 토에이 에니메이션의 매상을 년도별로 보면 원피스의 매상 비중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시기가 있다. 혹자는 원피스 붐의 편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원피스는 원래 인기가 많았고 그 시기에 판권을 사서 장부에서 늘어난 것이다. 이게 순이익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는 판권을 구매한 비용이 있으니 원피스 완결날 때쯤 알 수있을 것이다.
  6. 보통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는 다르게 한 방송사에만 애니메이션 제작을 붙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7. 시리즈 디렉터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였고 이 전에는 아예 표기를 안 하거나(1970년대 중반 이전) '팀 디렉터'라는 명칭으로 표기했다.(1970년대 중반~후반, 1980년대 초반)
  8. 디즈니는 픽사와의 합작으로 이 부분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토에이는 여전하다.
  9.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사는 거의 다 기레기들이라 애니메이션 기사를 실을 때 쓰는 그림에 관한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잡지에 나오는건 광고를 낼 여력이 없고 심야에 방영하는 소형 회사들이야 반길만한 이야기고 5대 방송사중 한개의 2대주주에 전국에 영화관을 30개 이상 가지고 있고 굳이 토에이가 광고를 안내도 판권 가지고 있는 스폰서들이 광고를 하는 상황이니 그림은 내가 그리고 돈은 잡지사가 버는 상황을 반길리가 없다. 무엇보다 토에이는 어린이 시청자를 주대상으로 하는 회사인데 어린이는 이런 잡지 안본다.
  10. 토에이 애니메이션들 중 액션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에서는 작중 간간히 다른 작화와는 다른 역동적인 작화가 그려지는데 토에이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젤을 바르고 마치 액체같이 보이면서도 명암이 뚜렷한 그림체와 명암이 진하지는 않지만 차이가 눈에 띄게 보이며 연기나 효과 등이 매우 역동적으로 보이는 그림체가 있다.
  11. 오쟈마녀 도레미 시리즈나 프리큐어 시리즈 같이 예외인 작품도 있다.
  12. 한때 아사히 신문사의 자회사인 아사히 소노라마 등에서도 발매되었으나, 아사히 소노라마는 연이은 적자로 결국 망했다(..)
  13. Dr. 슬럼프의 대성공으로 '토리야마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화한다.' 라고 결정해서 드래곤볼이 연재된지 2화만에 제작에 들어갔다고 한다.
  14. 다만 디지몬 시리즈가 디지몬 테이머즈가 방영되는 2001년부터 다마고치류 인기가 급격하게 떨어져 수익이 보장되지 못하면서 시리즈를 끝날 일이라 저예산으로 만들수 밖엔 없었다.
  15. 사실 찐빵 작화도 에비사와 유키오의 드래곤볼 작붕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16. 세인트 세이야 THE LOST CANVAS 명왕신화는 TMS(도쿄무비신사)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