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ØWY 초반(1980년대)의 호테이 토모야스.
Zodiac Works 라는 기타회사에서 나온 본인의 시그네쳐 "Main"[1]을 들고
목차
1 개요
일본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 布袋寅泰 (Tomoyasu Hotei). 1962년 2월 1일생.
190cm에 달하는[2] 장신과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압적인 인상을 풍기는 기타리스트. 후술되어있지만 한일 혼혈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잃어버린 형제가 있다고 한다
2 뮤지션 활동
2.1 BOØWY 활동 시절
BOØWY 항목 참조.
2.1.1 히무로와의 관계
BOØWY 해산 원인은 아직도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실상 밴드의 투 톱이었던 호테이와 히무로의 음악적 견해로 인한 해산이 정설. BOØWY가 해산한지 어느덧 20년이 넘어, 팬들은 다시 재결성을 바라고 있다. 마침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본 록계는 해산했던 밴드들의 재결성 열풍이 불고 있었다. 혹은 완전 재결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기간 한정 재결성 같은 이벤트성 재결성을 하는 밴드의 수도 상당수 있을 정도였다. 전자는 DEAD END, D'ERLANGER, ANTHEM 등, 후자는 VOW WOW, 聖飢魔II 등이 그 예.
하지만 BOØWY는 재결성이 요원한 일로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히무로가 제공. BOØWY의 노래는 일부곡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판권은 호테이와 TOSHIBA EMI 쪽에 있고, 해산 이후로 4명이 뭉친 것은 카메라맨 카토 마사노리 결혼식 때 한 번일 정도로 서먹서먹한 사이. 이런 상황에 히무로는 2004년 8월 22일, 21st Century BOØWY VS HIMURO라는 도쿄돔 라이브에서 멋대로 BOØWY의 악곡을 갖다 썼다.
일명 보위의 링고 스타로 불리는 타카하시 마코토는 당일 라이브를 관람하며 '순수하게 즐길 수 있었다'라고 코멘트했지만, 호테이는 '보위 악곡 연주해도 되냐고 언제 물어봤는데?', 마츠이마저 '저건 아니지'라고 대놓고 부정적인 발언을 했을 정도.
여기서 끝이 아니라, 2011년 6월 11~12일 도호쿠 대지진의 부흥지원 체리티 라이브에서도 히무로는 또 보위의 악곡을 무단으로 사용. 호테이는 '재결성을 바라는 기분은 팬 여러분과 같았습니다만… 히무로의 부흥 지원을 향한 행동은 그의 신념에 근거한 선택이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는 커녕 오히려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 속에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도 재결성은 없고, 그런 비현실적인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말자고.'라고 코멘트. 저기 아저씨, 존경한다면서요. 앞뒤가 안 맞잖아요.
히무로 본인은 '가능한 관객들이 많이 모이는 것으로, 수익이 증가하여 자선효과는 보다 높아짐. 청중을 많이 모으기 위해, 보다 강한 임팩트를 주자는 발상으로 ‘BOØWY’로 연결했으나… 멤버의 기분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건 잘못이었다.'라는 반성의 멘트를 띄웠다지만… 이로써 호테이와 히무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었다. BOØWY의 재결성 또한 마지막 희망마저 날아간 상태.
히무로 쿄스케가 2016년에 기존에 누적되어 왔던 청력 손실이 심각해져(한쪽 귀는 이미 들리지 않는다고..) 은퇴 투어를 발표했기에 이번 기회가 지나면 사실상 다시는 재결성할 수 없다. 호테이는 '마지막 순간에 한 번이라도 옆에서 기타를 치고 싶다'라고 밝히고 나머지 멤버들도 히무로에 대한 걱정과 재결성 의사를 밝혔지만 투어가 이미 시작된 5월 시점에도 완전체 BOØWY의 등장은 아직 없다.
사실 재결성해서 나타난다고 해도 이미 록 보컬리스트로서, 성량 감소 등의 기량 하락을 겪은 히무로가 과거의 열기를 재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며[3] 호테이의 음악성도 상당히 변하였기 때문에 기억하던 형태의 공연이 될 확률은 상당히 적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팬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며 올드팬들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옛 시절을 100%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한 그룹으로 다시 뭉치는 것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위의 의문은 의미가 없다. 애초에 2004년도에 도쿄 돔에서 개최된 "21st Century Boowys VS HIMURO"는 보위가 뭉친 것이 아닌 히무로의 개인 콘서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히무로가 솔로 활동을 개시한 이래로[4] 처음으로 한 공연에서 수많은 보위 곡을 불렀기에[5] 당시에 이미 40대에 진입한 상태[6]에서 어느정도 성량하락을 겪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보위 곡을 불렀다는 그것만으로 큰 호응을 이끌어냈는데 만약 실제로 4명이서, 그것도 히무로의 은퇴기념 투어에서 뭉치게 되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이끌어낸다면 과거의 열기는 충분히 재현되고 남을 것이다... 그러나, 5월 23일 도쿄 돔 공연 3일차를 마지막으로 그럴 일은 없게 되었다.
2.2 COMPLEX
BOØWY 해산 이후, 호테이는 일본 음악계에서 사람 좋기로 소문났던 킷카와 코지(吉川晃司)와 일명 '장신 유닛'으로 불린 컴플렉스(COMPLEX)를 1988년에 결성했다. 당시 떠돌던 소문과는 다르게 이 둘은 의외로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Be My Baby의 히트 등으로, 그에게 포르쉐 911을 끌 수 있는 대중적인 성공을 주었다.
COMPLEX 역시 보위 못지 않게 일본 록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로가 '이나바와 컴플렉스의 도쿄돔 라이브를 갔었어요. 훌륭했습니다. 그대로 컴플렉스가 계속되었다면 우리들은 아무것도 못 했을 거에요.'라는 찬사에 가까운 회상을 호테이 토모야스의 자서전 비밀(秘密)에 남겼을 정도였다. 근데 이렇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였어요"라고 한 사람이 현재 일본 락 최강의 괴수 유닛 중 한 팀의 멤버이고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대열에 진입한 사람 중 한 명이다.
COMPLEX는 비록 활동기간은 짧았지만 당시로는 상당히 새로웠던 일렉트로니카나 컴퓨터 음악들을 하드 록에 조합한 시도, 그리고 보위 시절보다 더욱 마초적이고 동서양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하드 록을 보여주었다는 점(이것은 보위의 보컬이었던 히무로 쿄스케와 COMPLEX의 보컬이었던 킷카와 코지의 스타일 차이에서 기인한 것)에서 양악과 방악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일구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음악을 들어보면 알겠지만, 서양의 정통 하드 록(에어로스미스, 더 후, 레드 제플린 등등...)과는 확연하게 다른, 일본적 멜로디 진행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당시 일본의 수많은, 대중적 하드 록을 표방하는 어느 그룹보다도 형식적인 측면에서 훨씬 정통 하드 록에 가까운 리프와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 음악 특유의 '뽕끼'를 상당 부분 도려낸 긍정적이고 참신한 스타일의 결과물을 낳았다. (호테이 토모야스의 전 밴드였던 보위의 음악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컴플렉스 시절이 훨씬 더 서구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후에 등장하는 B'z의 경우 일본적 하드록으로 정점을 찍긴 했지만 밴드 스코어(보컬과 주 멜로디를 제외한 나머지 세션) 대부분이 '양악의 도작'(당장 나무위키의 B'z 항목에도 서양의 하드 록 파쿠리에 대한 언급이 있고, X JAPAN의 요시키도 이를 비판한 바 있다고...)이라는 폄하를 받을 정도로 서양 음악을 카피했으면서도 멜로디 면에서 벗어나지 못한 특유의 일본적 뽕끼가 너무 강해 해외 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일으키거나 평론의 면에서 절하되는 경우가 있음을 생각하면 컴플렉스의 음악은 동서양 록 조화의 성공적인 결과물 중 하나였음이 명확해진다..
활동 당시 대표곡은 정말 거친 음악으로는 GOOD SAVAGE, COMPLEX에게 오리콘차트 1위를 안겨준 싱글의 타이틀곡 Be My Baby 오프닝과 후속 싱글인 19901990년 해산당시, 콘서트 분위기를 절정으로 끌어올리던 강렬한 사랑노래인 恋をとめないで1990년 해산당시, 킷카와 코지가 만든 감성적인 곡인 CRY FOR LOVE가 있다.
그러나 컴플렉스 또한 호테이와 킷카와의 음악성에 관한 의견 차이로 인해 활동 중지(라고 쓰고 실질적 해체라고 읽는다.)를 선언하게 된다. 하지만 보위 때와는 달리 분쟁의 소지가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되었고 3년간의 짧고 굵은 활동이 그렇게 끝났나 싶었다.
그러다가 2011년 당시 여러 밴드들의 한정 재결성 열풍과 함께 21년만에 마지막 콘서트를 했던 도쿄돔에서 다시 뭉쳤다. 중년이 된 킷카와와 호테이가 등장하여 악수를 하는 장면이 오프닝에서 명장면. 이 콘서트는 일본의 위성방송사 WOWOW가 편집본으로 방영하고 이후에 DVD/블루레이로도 발매되었다. 팬도 관객도 모두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1990년 당시의 열정만큼 뜨거운 콘서트였다고 평이 나있다.
오프닝부터 BE MY BABY까지.
7분부터 곡이 시작되고 21년만의 콘서트 재개라는 걸 보여주는 오프닝 내용이 인상적이다.
CRY FOR LOVE
호테이 토모야스의 더블넥 기타가 인상적이고 감성적인 기타연주가 특징이다.
PROPAGANDA
바로 위의 CRY FOR LOVE가 발라드에 가깝다면 이 노래부터는 전형적인 거친 락유닛의 모습이다.
GOOD SAVAGE
BE MY BABY보다 더 거친 음악이다. 호테이 토모야스가 클래식 기타로 속주를 하는 부분이 특징인 곡.
2.3 솔로
이후 POISON, 스릴, 밤비나 등의 명곡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며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가진 베테랑 아티스트로 인정받게 되며 특히 그 기타 실력을 인정받아 다수의 영화나 행사 등에 음악을 제공하며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부상하게 된다. 호테이 토모야스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연주곡이 바로 킬빌 OST에 추가된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그리고 호테이 토모야스가 솔로로 활동하면서부터 콘서트에서 BOØWY 시절의 노래와 COMPLEX 시절의 노래도 섞어서 연주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시의 원곡과 다른 표현력을 보여준다. 자신의 베스트 앨범에서도 이 시절의 노래를 셀프 커버하였다.
기타리스트치고 퍼포먼스가 크기로도 유명한데 특징으로는 초장신의 몸으로 매우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여서 동작이 굉장히 돋보인다. 퍼포먼스 중에 하나로 기타를 칠때 왼다리를 니킥이나 미들킥 정도로 높게 차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실제로 따라해보면 이러면서 정확하고 날카롭게 연주한다는 것이 진짜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괜히 베테랑이 아니다. 그리고 팬들의 떼창을 유도할 때의 모습이 어떤 면에서는 예술이다(…). 감성을 매우 잘 드러난다고 봐도 무방할 듯. スリル 같은 노래를 연주할 때는 하체는 춤을 추고 상체는 연주를 하는 묘기를 보여주기도 한다.
2.4 음악 스타일
음악 스타일은 호쾌하고 마초한 사운드와 가사가 특징. 특히 기타 사운드가 매력적이다. 연주 테크닉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정확한 연주를 하며, 이펙터와 앰프를 기가 막히게 만져서 영혼이 징징 울리는 기타 소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호테이의 최대 강점이다. 맛있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는데는 가히 천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장르 구분은 애매한 면이 있다. 호테이하면 호쾌한 로큰롤이 떠오르지만 의외로 일본 일렉트로니카의 고참이기도 하며 간간히 블루스 & 재즈 풍의 음악도 하는 등 폭넓은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싱글 Liberty Wings의 자켓에는 나가이 고가 직접 그린 데빌맨과 큐티 하니를 박아 넣기도 했으며, 이번 북두의 권 201X의 테마곡인 STILL ALIVE의 작업도 맡는 등(물론 자켓엔 켄시로가 그려져 있다) 마초한(…) 만화 & 애니메이션 쪽과도 인연이 있다. 또 의외로 미야비와 친분이 깊은데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그리고 히데와의 친분으로도 유명하다. 히데의 사망 이후 트리뷰트 앨범의 2번 트랙인 ROCKET DIVE를 호테이 토모야스가 커버했고, 이 버전에는 원곡에 없는 가사가 추가되어 있다. 해석의 내용은 히데 항목에 있고 친분에 관한 것은 아래에 이모저모 항목에서 상술한다.
활동 기간도 길고, 그에 비례해 앨범도 엄청나게 많다. 그런데 한국의 J-POP 팬덤에서 인지도는 거의 0에 수렴해 앨범 물량도 적을 뿐더러 오래된 건 가격도 엄청 비싸다. 덕질하기 여러모로 곤란한 사람(…).
3 배우활동
1998년 영화 '사무라이 픽션'의 주역인 카자마츠리 란노스케 역으로 분하여, 특유의 흉악한 얼굴을 맘껏 어필한 바가 있으며(…) 그 덕분에 한동안 네이버 인물정보에는 배우로 등재되어 있는 굴욕을 겪기도 했다. 심지어 2016년 기준으로도 직업은 가수, 기타리스트인데 데뷔는 1998년 영화 '사무라이 픽션'으로 되어있다.(...) 사무라이 픽션 영화 자체의 음악도 모두 호테이 토모야스가 작곡.
新 仁義なき戰い(신 의리없는 전쟁)이라는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OST작업에도 참여하였는데,(전부 작업인지는 불명. 추가 바람) 사실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는 이 영화의 OST 수록곡이다. 新 仁義なき戰いのテーマ라는 곡명으로 수록되어 있고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는 이 곡의 영제인 셈.
4 친숙한 노래들
4.1 TV,영화
한국 사람들이 가장 친숙한 호테이의 곡이라면 역시 킬빌과 무릎팍도사(…)에 삽입되었고 혼다 어코드(한국 런칭 당시 일본명 인스파이어)가 혼다코리아를 통해 한국에 처음 출시될 당시 TV 광고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 본래는 호테이 토모야스가 출연하고 음악감독도 담당한 영화 <신 의리없는 전쟁>의 OST에 있던 곡이다. 이후 트랜스포머에서도 잠깐 쓰이기도 하였다.범블비가 샘의 투정(?)에 삐져서 카마로 5세대로 새로 스캔해서 등장 할 때 브금으로 깔렸다.
무한도전에도 상당히 자주 나왔다. 화면이 느려지고 긴박한 상황에서 쓰였던 노래는 대부분 사무라이 픽션 OST와 Electronic Samurai곡에서 나왔다. 2015년 12월 26일 방송된 무도 공개 수배변 도입부를 보면 Strangers 앨범의 How The Cookie Crumbles이 나온다. 2015년에 발매된 앨범인데....팀 내에 팬이 있을 수도?
MBC GAME의 워크래프트3 프라임 리그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았던 시즌 4의 오프닝에 쓰였던 곡도 호테이 토모야스의 Frozen Memories. 원래는 영화 KT의 주제가이기도 하다.
2006년에 개봉했던 폭력써클이란 영화에서는 GUITARHTHM 앨범의 수록곡인 GLORIOUS DAYS가 삽입되었다. 이 곡의 가사가 100% 영어였기 때문에 넣는 데 거부감이 없었을 지도 모르고, 아니면 영미락인줄 알고 넣었을 가능성도 있다. 엘르가든이 알려진 사례와 비슷하다고 추정한다.
4.2 게임,만화
닌텐도 DS 유저라면 응원단 시리즈 1편의 스릴과 2편의 밤비나에 익숙할 것이다. 밤비나는 드럼매니아 2nd에서도 판권곡으로 등장해 익숙하다. 커버 보컬로 수록되었고 그나마 국내 정발판은 보컬이 짤려서 MIDI음으로 대체되었다.
스릴(スリル)은 리듬 게임인 리플렉 비트 콜레트와 유비트 소서에 수록되었다. 자세한 설명은 항목 참조.
귀무자2의 메인 테마곡으로 쓰인 Russian Roulette도 나름 유명한 편. 이 곡도 드럼매니아에 판권곡으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북두의 권 201X에서는 테마곡인 STILL ALIVE를 불렀다.
2013년에는 게임 진삼국무쌍7에서 사실루트 엔딩곡인 "폭풍의 언덕(嵐が丘)"을 불렀다. 게임 자체도 재밌다는 평가에 맞물려 반응이 제법 괜찮은 편.
5 트리비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데뷔 25년이던 2005년에 발간한 자서전 비밀(秘密)에서 처음으로 밝힌 내용이다. 그리고 어머니는 일본인과 러시아인의 혼혈. 즉, 호테이는 한국(하프)과 일본(쿼터), 그리고 러시아인(쿼터)의 피도 흐르고 있다. 아버지는 한국과 일본을 넘어다니며 무역 일을 하던 사람이였다. 당시 호테이의 집에 달린 명패에는 "야나가와"라는 명패와 "호테이"라는 명패가 같이 있었다고 한다. 어린 호테이는 왜 자신은 엄마의 성씨인 호테이인지 궁금해했고 어머니는 "호테이의 아버지는 한국인이란다."라고 알려줬다고 자서전에서 털어놓았다. 여기에 큰 충격을 받은 호테이 토모야스는 평생을 "나는 누구지? 일본인인가? 한국인인가?"를 고민하였다 하고 그 계속된 고민으로 자신의 대표곡 중 하나인 IDENTITY를 만들었다고도 밝혔다.
나중에 자신의 아버지는 한국에도 가정이 있는 사람이였는데 일본에 살림을 또 차렸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호테이네는 '일본용 가족'. 결국 호테이가 고교 3학년 무렵 두 사람이 결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 국적이 없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가 아버지의 빚을 몽땅 떠앉게 되어 힘든 생활을 보냈다고 당시의 상황을 밝혔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나중에 보위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호테이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회사의 직원을 통해 아버지가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기 전에 호테이 가족을 만나 용서를 구하고 싶다고 연락이 닿은 적이 있었던 때, 호테이의 여동생은 이제는 만나서 용서를 받자고 했지만 호테이는 끝까지 절대 만나지 않겠다고 결사반대를 해서 무산됐다.
사무라이 픽션이 국내 개봉되고 배우 자격으로 부산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어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이때 아버지의 또다른 가족(즉, 호테이의 이복형제)이 편지를 보내왔다.
그 편지 내용에 아버지는 1992년에 지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는 내용과 함께, 아버지가 일본의 가족들에게 늘 사죄하며 후회했으며 자신이 버리고 온 아들 호테이에 대한 미안함과 일본내 최고의 락밴드인 보위의 기타리스트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활동에 관련한 모든 것을 소장하면서 보위의 기타리스트 호테이 토모야스를 자랑스러워했단 사실, 당뇨병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었던 1988년 당시에 보위의 마지막 도쿄돔 콘서트를 찾아갔다는 사실 등의 호테이가 몰랐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이 편지를 받고서 그 당시에 엄청나게 울었다고 자서전에 기록하였다.
현재는 자신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를 자서전 발매 이후 추가로 밝힌 적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단지 이전보다는 조금 누그러들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내용을 보고 어설프게 호테이 토모야스가 한국계라고 함부로 이야기를 하지는 말자. 쓰더라도 가족사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본인에게 큰 혼란과 상처를 준 내용이고, 그다지 자랑할 만한 내용이 아니기도 하니까.
내한 당시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위에 내용을 밝히기도 했으며, 삼계탕을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이날 스튜디오에는 최근 기타 연주 앨범을 내고 방한한, 일본의 뮤지션 호테이 토모야스가 7시부터 40여 분간 ‘초대손님’으로 그의 곁을 지켰다. 이야기를 주고받는 도중, 토모야스가 던진 한마디에, 멋쩍은 웃음과 반짝이는 눈빛이 묘하게 그의 얼굴에 교차했다.
“당신 또한 한국의 유명한 뮤지션이었다고 들었는데, 기타 2개만 있으면 같이 세션(연주)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 당시 기사 中. 찰스 배는 패기 넘치게 거절. 대선배 찰스 배의 패기. 그보다 호테이가 이런 요청을 했다는건 배철수가 한국의 거장 락밴드의 기타리스트 출신이였다는걸 알고 있으니까 가능한 요청인데? 배철수 형님 사랑이야기 CD를 선물해 드려야 겠어요.
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을 다녔다. 교풍이 엄해서 록 스피릿이 끓어넘치는 바람에 퇴학을 당하기도 했다. 퇴학 원인은 호테이의 장발 때문이었다고. 그 때 교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흥, 예수님 머리도 장발이었잖아."라고 중얼거렸다는 간지나는 일화도 있다. 이탈리아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도 같은 발언이 나온다. 거기선 바로 예수님 본인이 그렇게 말하지만.
잔뼈가 굵은 베테랑 아티스트인 만큼 여러가지 일화도 많다. 94년 멸종 동물 보호 자선 콘서트에 X JAPAN의 요시키가 참석 여부를 자꾸 번복하며 다른 아티스트의 스케줄을 엉망으로 만들고, 공연 당일 백스테이지에서도 거만한 모습을 보이자 참다 못해 한 소리를 했는데 요시키가 대든 사건이 있었다. 화가 난 호테이는 그대로 요시키를 두들겨 팼고, 이거에 앙심을 품은 요시키가 호텔에 비치된 장식용 일본도를 들고 죽여버리겠다고 행패를 부리는 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hide가 말리고 대신 사과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를 하고 서로의 세션을 소개시켜 주는 등의 친분을 쌓은 덕에 사후에 발매된 트리뷰트 앨범에 2번 트랙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13년 호테이의 솔로 전국투어 콘서트에서도 메들리 시리즈로 Rocket Dive를 다시 연주했을 정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폐막식 때 솔로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1986년에 가수 야마시타 쿠미코와 결혼하였으나 1997년 말에 이혼했다. 그리고 1999년 배우 겸 모델 겸 가수, 노래 PRIDE로 유명한 톱스타 이마이 미키와 결혼했다. PRIDE는 바로 호테이가 작사, 작곡한 곡. 이외에도 미키에게 많은 곡을 써줬는데, 그 자신의 노래와는 달리 서정적이고 달콤한 가사로 넘치는… 이렇게 곡을 주다가 그만 미키와 정분이 났는데, 당시 호테이의 부인이던 야마시타 쿠미코와 이마이 미키는 서로 친구사이였다. 즉, 좀 안 좋은 불륜이어서 한동안 미키의 가수활동에 지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야말로 미녀와 야수
한국에 Electronic Samurai가 발매되었다. 이 앨범 안에 바로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무인, #2, #3이 있다.), Frozen Memories가 있다. 참고로 Frozen Memories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김대중 납치사건)을 소재로 한 일본의 작가 나카조노 에이스케의 '납치 - 알려지지 않은 김대중 사건'을 원작으로 하고 김갑수가 주연을 맡아 2002년에 개봉한 영화 KT의 주제가이다.
2010년 가을에는 자신이 곡을 쓴 영화 킬빌의 고고 유바리 역으로 나왔던 쿠리야마 치아키의 두번째 싱글인 <可能性ガール>를 작곡/편곡하고 뮤직비디오에서 기타리스트로 출연, 쿠리야마와 함께 멋진 퍼포먼스를 보였다. 그리고 이 곡은 <선발 은혼씨> 3기 오프닝으로 사용되었다.
2012년 미국 NBC의 오디션 프로그램 The Voice 시즌 2의 홍보 광고(그것도 슈퍼볼 광고에!)에 그의 대표곡인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가 사용되었다.
2014년에는 인피니트의 곡 "딜레마"에서 기타 세션으로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8월 24일, 뜬금없이 아베 아키에와 불륜 중이란 기사가 났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2015년 당시 기준 일본 총리대신인 아베 신조의 부인(...).# 근데 이후 후속 기사가 안뜨는거 보면 찌라시일 가능성이 커보인다.
6 디스코그래피
정규 앨범만 정리.
BOØWY
- - MORAL (1982.03.21)
- - INSTANT LOVE (1983.09.25)
- - Boøwy (1985.06.21)
- - JUST A HERO (1986.03.01)
- - BEAT EMOTION (1986.11.08)
- - PSYCHOPATH (1987.09.05)
COMPLEX 활동
- - COMPLEX (1989.04.26)
- - ROMANTIC 1990 (1990.04.18)
솔로 활동
- - GUITARHYTHM (1988.10.05)
- - GUITARHYTHM II (1991.09.21)
- - GUITARHYTHM III (1992.09.23)
- - GUITARHYTHM IV (1994.06.01)
- - King & Queen (1996.02.28)
- - SUPERSONIC GENERATION (1998.04.29)
- - fetish (2000.11.29)
- - SCORPIO RISING (2002.03.06)
- - DOBERMAN (2003.09.26)
- - MONSTER DRIVE (2005.06.15)
- - SOUL SESSION (2006.12.06)
- - AMBIVALENT (2007.10.24)
- - GUITARHYTHM V (2009.02.18)
- - COME RAIN COME SHINE (2013.02.06)
- - New Beginnings (2014.10.01)
- - Stranger (2015.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