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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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게 아니다

1 개요

자위(수음)을 끊는 행위. 금같이 귀한 딸이라 카더라 일본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이쪽은 순서를 바꿔 オナ禁으로 쓴다. 영어로는 gold daughter NoFap. 영미권에도 금딸 커뮤니티가 있다. 유튜브만 봐도 금딸의 정당성을 설파하며 끊어치기를 비판하는 흑형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에서 흔히 쓰이는 끊어치기가 아니라 Edging(접?이불루)

금딸 앱도 있다(..), 금딸의 십자가 [1]

여기서의 자위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남성의 자위행위를 가리킨다. 여성에게서도 자위를 자발적으로 그만두려고 하는 은 꽤 발견되나, 여성의 자위는 딸딸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 여자가 자위행위를 끊으려는 것은 밈 정도를 넘어서 정말 진지하고 고통스러운 자기혐오심리에 의한 경우가 많은지라[2] 금딸에 담긴 반쯤은 장난스런 느낌과는 좀 다르다. 비슷한 수준이라면 남자 청소년들이 종교적 이유에서 자위행위를 끊으려는 경우. 여성의 자위는 사회문화적으로 남성보다 더 죄악시 되는 경우가 많으나, 점점 '여자니까' 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경우는 줄어들고 있다. 또한 종교적 이유에서 '사람은' 자위를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여자니까' 해선 안된다고 하는 관점은 제대로 된 종교에서는 사실상 멸종했다.

보통은 금딸이라 하면 반쯤은 장난스러운 느낌이며, 반쯤은 건강이나 외모, 인기등을 위해 하는 것이다.고래를 잡던가 손이나 음경에 상처가 난다거나(!) 해서 그런 비슷한걸로 강제로 하게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주기적으로 배출하는 것이 아닌 본인의 최대 사정량을 알아보고 싶어서 시도하는 사람도 있으며, 스스로의 의지력을 테스트하고 향상시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사정 직전에 멈춰서(사정을 하는데 성기를 잡아서 막는 것이 아니라 오르가즘 자체를 느끼지 않고 멈추는 것)는 행동을 하면서 의지력을 테스트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은근히 어렵다고 한다.. 이런 의미의 금딸은 10대부터 20대까지를 가리지 않고 널리 시도된다. 사실 20대가 시도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그리고 이런 경우 금욕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서 여친과 섹스하는 것은 괜찮다고 한다. 근데 여친이 없잖아? 우린 안될거야 아마

하지만 정말로 과도한 자위행위와 성욕 때문에 생활에 지장이 커서 자위행위를 끊으려는 경우들도 있다. 남자 청소년 중에 많지만 여자 청소년들도 은근히 많이 그런 고민을 한다. 사회문화적 이유와 생물학적 이유가 합해져서 여성이 성에 눈을 뜨는 것은 남자보다 훨씬 늦은 편이지만, 빨리 각성하기만 한다면 2차성징 자체는 여성이 더 빨리 오므로 자위를 더 빨리 시작하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오르가즘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느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금딸을 하면 여러 좋은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명확한 과학적 근거는 별로 없다.[3]. 너무 잦은 자위행위(를 비롯하여 성생활 전반)도 건강에 좋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성생활을 아예 버려야 할 필요는 없으며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그럴 경우 건강을 더 해칠 수 있다. 물론 성욕 자체를 딱히 강하게 느끼지 않거나 해서 자위행위는 물론 성생활을 하지 않는 경우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뭐든지 과유불급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2 찬반

금딸을 권유하는 이들은 흔히 다음과 같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 키가 커진다
아니다.[4]
▶ 이상분비가 일어나고 있는 자위 중독자들에게만큼은 맞는 이야기다. 여성호르몬의 이상분비 역시 안정시킬 수 있다.
▶ 상관없다. 애초에 머리결과 피부는 유전적 성격이 매우크다. 자위 행위 후 피부가 나빠졌다면 자위 행위보다 충분한 수면과 에너지 보충이 되지 않아서이다.
아니다. 대머리의 경우 유전적 형질이 가장 영향이 크다. 남성 호르몬이 대머리를 유발하기는 하지만 이건 자위중독증 정도가 아니라면 별로 상관없는 이야기다. 이로 인한 대머리는 호르몬 밸런스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회복된다. 참고로 최초로 남성 호르몬이 대머리를 유발한다는 걸 증명한 '해밀턴의 실험'으로 유명한 해밀턴 박사[5]자위로 인해 증가하는 남성호르몬은 대머리를 유발하는 남성호르몬과는 다른 종류이므로 대머리와는 상관없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이미 탈모인 사람의 경우, 인체는 머리털보다 정액을 우선시하므로(…) 정액의 생성을 위해 두피에 영양소가 가지 않아 탈모가 가속될 염려는 있다.
▶ 위의 대머리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남성 호르몬 이야기가 과장 및 와전된 것.
▶ 사정 후 피로, 기력저하, 허무감(흔히 말하는 현자타임)에 시달리지 않으므로 좀더 활동량이 증가하면서 보다 활동적인 성격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1일 1딸 같은 것을 하고 있으면 사람을 만날 기력이 없다.
깔끔한 구라다. 페로몬 항목 참조.
경우에 따라 다르다. 물론 자위를 못 하게 되면 다른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이야 당연하다. 하지만 자위를 안 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스트레스 해소법이 찾아지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늘어나서 공부나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자위로 풀라는 것도 아니다. 스트레스를 자위로 풀게되면 일시적으로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스트레스가 배로 쌓이는 악영향만 초례하게 된다.
사실이다. 절대로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냥 생리학적으로 사실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건강한 사람이면 몇 분만에 떨쳐내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 조루를 예방할 수 있다.
관계없다. 오히려 스톱 & 스타트 기법 등, 자위를 하면서 조루를 치료 혹은 예방할 수 있는 훈련이 존재하며, 조루 항목에도 나와있듯이 주기적인 자위는 실전에서의 테크닉을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된다.
  • 종교적 만족감
사실이다. 의외로 금딸의 이유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경우이다. 승려, 신부, 수사, 수녀, 목사와 같이 특정한 종교를 이끄는 종교 지도자들은 말할 필요도 없고, 일반 평신도들 중에서도 이러한 종교적 만족감 때문에 금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위 상당수 주장에 대한 정확한 근거는 찾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금딸의 실시 전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 사회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어렵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금딸의 효과는 상당수가 과학적 근거 없이 경험담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인증할 방법도 없고, 그 효과 역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케바케라고 할 수 있겠다.

예외적으로 드라이 오르가즘을 개발하기 위해 일부러 금딸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훨씬 더 큰 쾌감을 느끼기 위해 사정이라는 작은 쾌감을 일정기간 자의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하는 금딸의 효과와는 의미가 매우 많이 다르다.

[6]

인터넷 포르노에 대한 TED 강의. 딸의 화학-심리적 작용에 대해 설명한다. (글로벌 TED는 아닌 영국 내 지역 TEDx로 강의자 Gary Wilson은 교수는 아니고 과학 선생이라고 한다)
우리는 여기서 야동을 안 본 대학생이 없어서 대조군을 못 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뇌 속의 보상 회로에서 도파민으로 보상심리를 자극하는데, 예를 들자면 DDR을 치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된다. 그러나 지나친 도파민이 분비될 경우 델타-포스비(ΔFosB) 라는 분자 스위치를 작동시키고, 앞선 보상 회로에 따라 행동하여, 결과적으로 도파민 과다 분비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국 도파민에 무감각해지고, 야동에 과잉 반응을 하여 야동 외의 모든 것이 지루하다. 최후에는 뇌 전두엽 피질이 변화하여 의지력이 소실되게 된다. 일반적인 검열삭제의 경우에는 한 번 하고 바로 다시(...) 하기가 힘든 편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적지만, 인터넷 포르노의 경우에는 클릭 한 번으로 다른 대상을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기제가 이루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과정을 요약하자면, 보상(음식, 안전, 성행위, 유대, 기쁨)을 얻기 위해서 뇌가 노력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보상이 과도해지면 화학작용(도파민, 델타-포스비)에 의해 세 가지 물리적 변화가 뇌에 일어난다.

  1. 보상을 찾기 위한 노력이 감소된다.(의욕상실)
  2. 더 높은 강도의 흥분에만 만족하게 되고 점점 작은 것에는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중독 현상)

-도파민이 분비되면 행복이나 성취감 기쁨을 느낀다. 도파민 수치가 높은 상태로 있으면, 뇌가 적응하여 도파민 수용체가 감소하게 되고,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특히 성행위의 도파민 수치에 뇌가 적응하여 수용체가 감소한다. 성행위 할 때의 도파민 수치보다 적은 도파민이 분비되는 행위는 시시하다.

3. 특정 보상에만 반응하게 된다.

근성과 만족이 상실된다.


위 영상에서 언급하고 있는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1. 포만 기전의 무효화
엄청 매력적인 이성이나 맛있는 음식들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소비, 탐닉하게 된다.
  1. 짐바르도의 "남자들의 종말"에서 언급되는 '흥분 중독 현상'과 연관된 정신병들
ADHD, 사회적인 불안, 우울증, 무대 공포증, 집중력 문제, 강박증
  1. 특정 행동의 반복
혼자 있기, 관음증, 클릭, 검색, 새로운 것을 계속 찾음, 놀라운 것을 찾음.

그러나 도파민 보상이란 포르노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활동에 해당되는 것이고, 이런 중독은 비단 포르노뿐만 아니라 다른 중독에도 해당한다.

비단 포르노뿐만이 아니라 뭐든지 지나치게 자극을 받으면 도파민 과다 분비로 인해 중독이 심화되는 건 똑같으므로 적당히, 지나치게 새로운 자극을 수용하지 않는 게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3 의학

사정을 하지 않으면 프로락틴[7] 수치가 내려가고 카테콜아민계 호르몬이 높아져서 집중력 향상과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되며 자위를 오래 해온 사람은 고농도 프로락틴 수치에 대응하기 위해 부신에서 남성호르몬 분비가 과도하기 마련이다. 그러다 자위를 억제하게 되면 남성호르몬이 필요이상으로 분비되며 이는 도파민과 같은 카테콜아민[8]계 호르몬의 효율을 높이게 돠며 그러다 5개월 정도 지나면 알아서 남성호르몬 분비가 조정되고 도파민의 효율이 줄어드는 데 그땐 예전보다 각성도가 떨어질수도 있다. 도파민은 많이 분비될수록 두뇌 활동이 활발해지지만 강박증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는데, 금딸수기에서 공격적으로 되고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하는 것은 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위와 같은 얘기가 있으나 근거는 없고 위에서도 나오듯이 머리숱과 자위행위와의 상관관계도 부정확하다. 실제 연구 두 가지를 보면 1번 자위에 호르몬이 0.3ng/ml 정도가 분비된다고 한다. 성인이 하루에 분비하는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량이 3~12ng/ml인 걸 감안하면 저 정도는 적은 양이다. 그러니까 하루에 자위행위를 열번을 해야 최소 분비량인 3ng/ml을 겨우 넘는다는 소리.[9]

부작용은 자위행위 항목 참조.

4 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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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딸은 치되 요도나 회음부를 눌러서 오르가즘은 느끼되 사정은 하지 않는 방법을 취하는 경우도 있다. 몇몇 사람들이 부르길 일명 "끊어치기". '어디까지나 싸지 않으면 금딸!'이라는 자기타협의 결과인데, 오르가즘을 느끼고 사정을 참으면 정액이 정낭에서 배출은 됐으나 관속에 고여있는 정액은 전립선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불알이 터질때도 있다

이런 방식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사정전에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조직에 무리가 간다는 것이다. 요도로 배출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관에 고여 있는 정액은 소변으로 배출되므로 본인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이미 당신의 금딸봉인은 깨진 상태이다. 진정한 정신승리법

이 방법은 접이불루(接而不漏)라고 해서 도교 방중술 서적이나 소녀경 등에서 정력을 키우는 테크닉으로 당당히 소개된 방법이기 때문에 많은 중년 남성들이 도사가 되려고 도전하다가 전립선염에 걸리곤 한다. 이는 암으로 발전할 수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접이불루는 피스톤 운동만 하고 오르가즘도 느끼지 않고 사정도 하지 않고 빼는 것이지, 오르가즘 느끼고 내부적으로 사정을 하면서 겉만 막는 것이 아니므로 이것은 무지에서 비롯된 촌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한의학에서는 정액 자체에 정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잦은 사정은 좋지 않다고 본다.

참고로 자위 도중 사정감이 들 때 멈추기를 반복한 후 "사정하는 식"의 조루 극복 트레이닝도 있다. 마스터즈&존슨 테크닉 혹은 스톱 스타트 기법이라고 불린다. 이건 진짜로 비뇨기과에서 조루 극복을 위한 행동치료로 권장하는 것이다. 단, 3~4회정도 사정을 멈추다가 마지막에는 결국 사정을 한다는 것. 다시 말하지만 사정 안 하면 문제 생긴다.

게다가 전립선염이 있을 경우 금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자위행위나 성관계를 통하여 정액을 배출해야 전립선의 염증물질도 어느정도 배출되기 때문이다.[10]

5 카페

금딸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인터넷 카페도 있다. 그 중 하나가 2006년[11]에 설립되어서 2011년에 회원수 22,000명을 돌파한 네이버의 <금딸카페>. 금딸 카페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네이버에서 접근 제한을 걸어버렸다. 결국 2014년 3월 3일에 약 4개월 간에 걸친 접근 제한 끝에 결국엔 카페가 폐쇄되고 말았다.

카페는 금딸 일수에 따라 게시판 이름을 군대 계급으로 정했는데 훈련병(0일)부터 도전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계급이 올라갈수록 그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개 보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광탈 훈련병에는 한 페이지에 같은 사람이 쓴 글이 없다시피한데, 소위가 넘으면 거의 전용페이지 수준이었다. 수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섹스는 (특히 배우자와의 섹스) 자위행위로 취급하지 않아서 정말 말 그대로 금딸만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최고 계급은 대장인데 금딸 501일 이상하면 도달 가능. 과연 가능한 사람이 있나 싶으나 거기에 이름을 올린 사람도 몇 명 존재했다.

그 수기를 보면 금딸에 대한 각오가 거의 해탈의 경지에 이르른 걸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누군가가 저장해 놓지 않은 이상 볼 수가 없게 되었다.

다른 금딸 관련 카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던 카페. 다른 금딸을 다루는 카페를 보면 게시판을 모방한 경우가 많다. 금딸카페 출신이 나와서 만든 경우가 많은 점도 있고.

현재 공식은 아니나 금딸카페중 그나마 제일 높은 회원수를 기록한카페가 남아있다. <금딸공식카페>

카페가 네이버검색등의 이유로 이동하였다 <금딸검찰청>

6 종교

6.1 기독교

많은 종파에서 자위를 금지하거나 최소한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데, 사실 비종교인의 가치관과는 매우 큰 차이가 나는 분야이다. 이는 세속의 죄악 개념은 가해자-피해자라는 개념을 통해서 선악을 판별하며, 피해자가 없다면 아청법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죄로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행위'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쁜 마음'을 먹기만 하더라도 좋지 않은 것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기독교의 주장대로 '생명과 격리된 성'을 죄악이라 가정한다면, 이러한 마음을 먹는 자위행위는 죄에 해당한다. 참고로 신약을 찾아보면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마태 5,28)라는 예수의 언급이 있다. 아무튼 자위할 때는 보통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할텐데 예수의 저 언급을 기준으로 하면 그런 것을 모두 간음으로 간주할 수 있다.[12]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하는 게 아니면 괜찮긴 한데 가능한가 2D 캐릭터들을 보면서 하면 된다
그런데 사실 신의 관점에서 까다롭게 따지는 죄에 대한 문제를 제외한 인간 사이의 도덕에 대해서는 기독교도 세속의 윤리학의 기본 관점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13] 특정한 행위의 발생을 놓고 그 행동의 결과와 그 행동의 의돌르 심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윤리학의 관점이 아니라 법학의 관점이다. 윤리학의 일부 분야에서는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 것도 대상으로 삼는다. 가령 칸트적 관점에서는 행위와 무관하게 의지의 선악을 따진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설령 성경적 입장에서 자위행위가 죄악이라 할지라도, 자위행위 자체가 죄악이라기보다는 음욕을 품는 것을 죄악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음욕을 품는 것만이 죄악인 것이 아니라 타인을 증오하고 시기하며 조롱하려는 마음 모두가 똑같은 수준의 죄악이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로마서)을 보면 타락한 인간의 대죄들을 열거적으로 사실상 동어반복까지 하면서 무수히 나열하고 있다. '음욕'이 강간의 음욕인지, 간통의 음욕인지, 구체적으로 행위를 상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성적 흥분상태에만 빠져도 음욕으로 보는 것인지(...)는 전혀 나와 있지 않다. 결국 예수의 핵심 메시지를 통해서 해석해야 한다.

신학적으로 보면 자위행위가 죄악이라 할지라도 본질적인 죄악도 결코 아니며, 자위행위를 하는 청소년 크리스챤을 깔보고 교만한 태도를 품으며 날선 답변을 하는 인터넷상의 답변자들이 더 대죄를 저지른 것이다.[14] 물론 더 큰 죄악이 있다고 해서 작은 죄악은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는 것도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더 큰 죄악의 마음을 일상적으로 저지르면서 더 작은 죄악에 집착하는 것은 예수가 가장 증오했던 율법학자 바리새인들처럼 위선과 모순의 태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어진다.

사실 이는 자위행위 뿐만 아니라 성도덕 전반에 그대로 적용된다. 복음주의적이며 정통적이라고 분류될 수 있는 성공회 신자이자 유명한 작가인 C.S 루이스의 저서에서도 교만한 도덕가가 사실은 창녀보다 더 지옥에 떨어질 죄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15] 또한 혼전순결을 어기는 것을 일군의 기독교인들이[16] 집요하게 집착하는 것은 순결 이데올로기와 보수적인 감성 등 딱히 기독교가 아닌 요소의 영향이 크게 더해진 것이다.[17] 사실 교회의 전통 등을 논외로 하고 성경만 보면 낙태도 명확히 죄악이라고 명시되지는 않았고,[18] 피임의 죄악성은 더더욱 성경에 근거가 없고(오난의 지뢰사정질외사정이 심판받은 이유는 피임을 금지한 것과는 별 관계가 없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패스.[19]

결국 종교적 신념은 개인의 자유이자 취향[20]의 문제에 들어가며, 자신이 따르는 종파와 신학적 경향에[21] 따라 판단하면 된다. 하지만 너무 자기 주변의 신앙 공동체에서 권위적으로 강요하는 것만을 듣고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폭넓게 경청해보고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분명 자위행위는 기독교적 입장에서 죄악일 수 있고, 다른 여성을 상상하며 음욕을 품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본다면 자위행위도 죄악이 맞다. 그러나 그런 보수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자위행위보다 더 크고 피해야 할 죄악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 이왕이면 모두 다 피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태도이겠지만 적어도 큰 죄악은 대충 넘어가고 작은 죄악에만 집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점은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특히 현실적으로 설령 자위행위가 죄악이라고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22]] 적어도 청소년기에는 정말 자위행위를 한번도 안해 본 경우는 매우 적을 것이며, 사실 한번 뿐만 아니라 여러번 해 보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때마다 고해성사나 회개를 했더라도 말이다. 특히 생물학적 특성상 성욕의 절정기가 일반적으로 빠르게 오는 남성 청소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23] 이런 청소년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며 고아적으로 대하는 것은 청소년들에게 심각한 자기혐오와 심지어 신경증이나 인격장애를 낳는 경우가 많다는 점, 그것에 대해서 책임을 질 생각이 있느냐는 점, 정작 자기도 청소년기에는 종종 했으면서 이제 나이를 더 먹어서 성욕이 줄고 결혼을 해서 성욕해소가 쉬워져서 그렇게 "나도 힘들었지만 이제 초탈했어"라고 말할 뿐이 아니냐는 점 등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들의 개인적 성숙이나 신앙생활, 그리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올바른 방향은 아닐 것이라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위선자는 성경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가볍게 타성적으로 발언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24]

참고로, 모세의 행위의 율법이 활동하던 시기에는 선민의 성행위는 곧 하나님의 자녀를 생산하는 행위였기 때문에 유출에 관한 죄가 존재하였다.[25] 레위기에 당당히 적혀있는 부분이며, 당연하지만 유대인이 선민으로 인정되던 시절에는 수음은 명백한 죄였다. 다루는 영역이 행위에서 마음으로 넘어간 성령의 법 하에서는 좀 다른 문제이지만.

6.1.1 가톨릭

가톨릭에서는 자위행위중죄, 즉 '무거운 죄'라고 교도권(!)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다. 가톨릭 교리서 2352항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으며, 당연히 교황청 공식 입장이기도 하다. 가톨릭에서 자체적으로 시행하는 성교육에서도, 자위를 나쁘지 않다고 하는 외부 성교육과 달리 가르친다. 이는 자위행위를 십계명"간음하지 말라"를 어기는 행위로 보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생명창조와 격리된 성'을 가톨릭에서는 죄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가톨릭이 인공피임을 반대하는 이유도 이러한 관점 때문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인이라면 원칙적으로는 자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가톨릭 청년들은 오늘도 고민에 빠져 있다.(…)

다만 세상 일이 FM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신자들의 사생활에 대한 제재를 가급적 피하는 추세에 따라, 옛날처럼 예비자 교리반이나 강론 등에서 신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자위행위를 죄악으로 규정하여 가르치며 죄책감을 심어주는 성직자수도자는 보기 힘들다. '금욕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피임(콘돔 등)'도 엄연히 교리상으로는 중대한 위반이지만, 좀처럼 터치하지 않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이다. 성당에서 뭐라 한다고 어떻게 컨트롤될 사안도 아니고, 괜히 냉담자만 양산할 우려가 있기 때문. 이에 따라 많은 성직자/수도자들은, 너무 죄책감에 빠지지는 말되 고해성사를 보라고 가르친다. 영성체를 하거나 성사에 참여할 때는 무조건 그 전에 한 자위행위를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아야 한다. 자위행위와 수음죄 역시 무거운 죄악이기 때문.

이 점에 대해서는 가톨릭 내부에서 (신학적) 보수 성향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분명히 안좋은 일인데, 신자수 줄어들까봐 겁나서 터치 안하는건 너무한 거 아니냐?"는 비판 의견이 있는 한편, 자위행위는 교회법으로 금지된 다른 것들[26]과 달리 성서에 직접적으로 절대 하지 마라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도 (신학적) 진보 성향의 신자들을 중심으로 "낙태는 몰라도, 자위정도는 가능하지 않냐"는 의견도 있다.

그럼에도 가톨릭에서 자위는 죄에 속하므로, 만약 당신이 가톨릭 신자라면 설령 금딸은 못하고 미사때마다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고해소로 가지는 못 할 지언정, 그 의미에 대해서는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왜 피해자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위를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하지 않는지 생각해본다면 더 뜻 깊을 것이다. [27]

이러한 여러 관점들 때문에, 가톨릭에서는 자위 문제로 고해성사를 받게 되면 사제에게 "자위는 하지말아야 할 행위이지만,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욕이므로 자기혐오에는 빠져서는 안된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다. 또한 사제들이 교육을 받을때도 "이 문제로 고해를 하는 평신도에게 자기혐오를 심어주어서는 안되다"고 교육을 받는다. 적어도 현대에는 "자위를 했다고요? 믿음이 약하네요 ㅉㅉ"라는 식으로 말하는 사제는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정말로 믿음이 약하면, 자위 문제로 고해성사를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너 모령성체

간혹 가톨릭에서는 자위행위를 대죄[28]라고 해석한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가톨릭 교도권은 자위를 중죄(重罪)라고 해석하기는 하여도, 대죄(大罪)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대죄와 중죄의 개념을 혼동하는데, 둘은 다른 개념이다. 또한 어느 한쪽이 어느 한쪽보다 더 센 개념이라거나 그런 것도 아니며, 기준 그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6.1.2 장로교

장로교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는 자위가 죄라는 언급은 없다. 성경에 나온 것만 인정하는 개신교 신학의 대원칙에 따라, 금딸 규정이 성경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하여 금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게 이상적이긴 하지만, 끓어오르는 성욕을 참지 못하고 성경에서 금지한 혼전성교[29]나 매춘을 하느니 차라리 좋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금하지는 않은 딸이라도 쳐서(…) 풀어 버리라는 개념이다. 즉 섹파가 없는 미혼자가 성욕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에서, 최악을 피하기 위한 차악으로 이해하는 것. 물론 여기에도 신학자나 목회자 개인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집안이군요

6.1.3 정교회

정교회의 경우 일단 정교회의 공식 교리문답엔 없다. 구체적인 것은 정교회 교인이 추가바람.

6.1.4 사도 성 바오로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 디모데 전서 4장 7-8절

금식, 금딸 등의 각종 수행과 헌금[30]이 바로 이 육체의 연습에 해당된다. 이것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다스림으로써 흔히 말하는 성화되어 나가는 과정에 유익을 주는 행위이지만, 워낙 괴롭기 때문에 부작용도 많다.

당장 그나마 쉬운 연보만 따저도 의, 식, 주에서 넘치는 것을 제하는 것으로 그야말로 필요한 의, 식, 주 이외의 것은 포기하는 행위로 상당히 괴로우며, 금식 수준으로 오면 의, 식, 주에서 식을 날려버리는, 흔히 (개신교든 아니든) 교회에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것과는 급이 다른 고행이다.

여기서 금딸은 수음이 필수적이지 않은 행위이므로 별로 안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안타깝게도(?) 사실 성욕은 인간의 욕구중 충족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 욕구중 하나이다.[31]적절한 금딸이야, 수음좀 안 하면 그만이지만, 금딸을 계속 이어간다는 것은 금식 저리가라하는 고행이다.

여기까지면 그냥 어려워서 문제이므로, 육체의 연습이 유익이 있긴 하니까 별 문제가 아닌 것 같지만, 실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육체의 연습으로 고행을 해놓고 경건에는 이르지 못하면 유익한게 아니라 해로운 것이 맞는 것이다![32][33] 마음이 아직 육체의 연습을 할 경지가 아닌 사람이 금딸을 하다간 거기에 자만하여 경건에 이르는 길을 그르칠 수 있다.[34]

그러나 금딸은 결론적으론 할 수 있으면 하는 것이 좋다.
예수는 의를 위하여 고자가 될 수 있으면 그리하라고 각종 욕구에 대한 답을 제시한 바가 있다. 세상 그 어떤 욕구가 중요한들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는, 천국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바라는 욕구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무엇이 우선순위인지 정확히 안다면 그만큼 금딸같은 수행도 편해진다.

팁 : 진짜 오늘 딸을 치면 엄청난 쾌감을 느낄것 같은 수준의 성욕이 오지 않으면 참아보자. 육체의 연습으로 이정도도 상당한 경지일 뿐더러, 수음의 쾌감(음?)과 실제 성교의 쾌감까지 증가하는 긍정적인 영향이 있다. 이왕 딸을 치는 거 퀄리티 있게 친다고 각오하고 조절하는 것으로 부터 시작해서 육체에게 영이 휘둘리지 않도록 천천히 단련해 나가는 것이 억지로 금딸 한답시고 야동을 싹 지워버리는 것 보다 육적으로도 영적으로도 효과적이다. 그런대 실제 해보면 1일 1딸을 금하는 것만으로도 버틸 수가 없을 것이다. 1일 3딸을 2딸로 줄이는 것도 버티기 힘들다.

6.2 불교

불교도 원칙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이다. 사실 석가모니 역시 모든 나쁜 행위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가진 죄악들 역시 크나큰 죄악이라고 가르쳐 왔으며, 음욕 역시 마찬가지이다. 음욕에 대한 금기는 스님들을 보면 알듯이 기독교보다 더 직접적이다. 다만 수행자와 재가 신도를 구별하고 지켜야 할 점을 구별하기 때문에 재가 신도들이 지켜야 할 점은 좀 다른 문제이기도 하다. [35] 하지만 불교가 철저한 금욕주의 사상이 아니라 중도 사상인데다가, 기독교처럼 어떤 신의 계시 하나하나에 절대적으로 매달리기보다는 깨달음 자체를 탐구하는 철학적 종교라는 것을 생각하면 발상의 전환이 더 유연할 수도 있다.

하여간 출가 수행자들은 대부분의 불교 종파에서 결혼을 해서도 안 되고 성행위를 해도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모든 음행을 금지하는 이른바‘불음계’(不戒)에 따르면, 출가자는 이성간의 성행위는 물론 동물과의 성행위, 오럴 섹스, 기구를 사용하는 등의 일체의 성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율전 (律典)에서도‘자위 행위를 하지 말라’‘여인의 몸을 만지지 말라’‘여자들과 음담패설을 하지 말라’는 등의 계율 조항도 발견된다. [36] 출가자들에게 결혼을 금하는 것은 그것이 수행과 전 법의 출가 공동체의 생활에 장애가 되기 때문이요[37] 성행위를 금하는 것은 궁극적 깨달음을 향한 수도 정진에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동서양의 금욕주의적 신비주의 종파들과 달리 성관계를 하는 순간 무슨 절대적인 진리와 분리되어버린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라, 그러한 욕구가 아주 강한 방해가 된다는 것. 석가보니 부처님조차 성욕 같은게 둘만 있었으면 부처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하였고, 달라이 라마도 수행에 뭐가 가장 힘들었냐는 질문을 받자 아랫도리(..)를 가리키면서 이것이오!라고 담담히 대답해 주셨다고 한다. 오오 솔직함.

하튼 조계종에서만 해도 살인이 아니라면 살생은(즉 육식을 하거나 직접적으로 동물을 죽이면) 웬만큼 악질이 아니라면(동물학대를 즐기고 다녔다든지) 한번만에 파계를 시키지는 않지만, 성에 대한 계율은 한번만에 파계를 시킨다. 그런데 이것이 자위행위에도 해당되기 때문에 한번만 해도 파계이다. 적발이 쉬운지는 논외로 하고.. 이 맛은 자위를 한 맛이구나! 머라고요?

다음으로 재가자들은 오계(五戒), 십선계(十善戒)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불사음계’(不邪戒)를 지켜야 한다. 아내와 남편 이외의 이성과의 성관계는 그릇된 음행, 즉 사음(邪) 이다. 따라서 결혼한 부부 사이의 성행위만이 올바르다고 가르치고 있다.

「범망경」보살계의 세 번째 조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설해져 있다.

불자들아, 너희는 스스로 음행하거나 남을 시켜 음행하거나 모든 여인(아내 이외의)과 음행 하지 말지니, 음행하는 인이나 연이나 방법이나 업을 통해 음행하지 말라. 짐승의 암컷이나 천녀나 여아 등과 짐짓 음행하지 말며 제 길이 아닌 곳에 음행하지 말라. 보살은 항상 불성(佛性)에 효순하는 마음을 내어 온갖 중생을 구원하고 제도하여 깨끗한 법을 일러 주어야 함에도 온갖 중생에게 음행할 마음을 내어 짐승이나 어머니나 딸이나 자매나 육친을 가리지 않고 음행을 하여 자비로운 마음이 없으면 보살의 큰 죄가 되느니라.

따라서 경전의 많은 곳에서 “성적 행위의 단절인 범행(梵行)의 실천으로 완전히 고(苦)을 멸한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출가자와 재가자가 구분되는 결정적인 경계로서 성행(性行)을 차단할 수 있는 마음자세와 환경을 가졌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구분할 수 있다. 『율장』에 여러 조항에 의하면 출가 비구는 이성 또는 동성 간의 직접적인 성행위는 물론 자위행위를 포함한 그 어떠한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도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상대 성을 말로 희롱해서 성적 쾌감을 얻는 경우나 상대성의 자태에 대한 기억이나 상상을 통해서 얻는 것도 포함된다.

조준호 고려대 연구교수는 “출가자와 달리 재가자의 경우 성욕을 충족하는 오욕락을 누리는 삶은 인정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출가자처럼 성의 속성을 깊이 통찰해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역설한다”고 밝혔다. 궁극적으로는 같지만 수행만 하고 사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하고 사회에서 생활하는 사회인들에게 지켜야 할 선을 다르게 제시한다는 말이다. 사실 정말 철저하게 부처님의 말씀을 따른다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는 것은 형용모순일 수가 있다. 혁명가가 되지 않는 한에는 세속적인 가치관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을 수밖에 없기 때문. [38]

7 몽정

그러나 아무리 철저한 금욕을 하더라도 몽정은 의지로서 막을 수가 없는 부분이며, 몽정을 할 때 음란한 꿈을 꾸는 것도 완전히 막지 못한다. 천하의 간디 조차도 노년이 되기 전에는 폭풍몽정을 피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기독교든 불교든 주류종파에서는 죄악으로 보지 않는다. 애초에 죄라는 것이 '자유의사'로 행하는 것에 해당하는데, 무의식중에 음란한 꿈을 꾸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자기전에 야한 생각을 하는식으로 몽정과 야한 꿈을 유도한다면, 얄짤 없이 죄 맞다. 세속의 눈으로 봐도 자위보다 훨씬 변태적이다
  1. 실제 저런 상품이 있는 건 아닌데 SNS 등지에서 퍼져서 진짜로 착각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설명이 있다.
  2. 여자들도 인터넷에서는 반 농담식으로 이거 끊고 싶은데 못끊겠다고 징징댈 때는 있다. 청소년들에게 이거 시작을 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3. 한의학적인 근거는 있지만, 그렇다고 한의학에서도 특별한 질병이나 약을 복용할 때가 아니면 성생활을 아예 금하라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4. 질문 밑 답변 참조 [1]
  5. J. B. 해밀턴. 실험의 실시 연도는 1942년이며, 박사 본인은 2000년도 중반에 타계
  6. 단, 이 영상에서는 모든 종류의 중독에 다 해당되는 문제를 거론하고 있기에 자위에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있다. 가려서 듣자. 아래 내용 참조.
  7. 유선 발달 호르몬이라고도 하며 테스토스테론과 도파민 수치를 낮춘다
  8. 각성과 의욕의 중추인 신경전달 물질이다.
  9. 1. pulsatile secretion and testosterone blood levels are influenced by sexual arousal in human males. Psychoneuroendocrinology 1993;18:205-18, 2. Becker AJ, Uckert S, Stief CG, et al. Cavernous and systemic testosterone levels in different phases of human penile erection. Urology 2000;56:125-9
  10. 그러나 지나친 성관계나 자위행위 또한 전립선염을 악화시키거나 유발한다.
  11. 아마도 금딸 관련 카페 중 제일 먼저 생긴 것으로 아는데, 혹시나 더 빨리 만들어진 곳이 있다면 추가바람
  12. 다만 이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기독교계에서 널리 회자되기는 한다. '우리는 새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지 않게 할 수는 있다.' 마르틴 루터가 한 이야기로 알려져있으나 정확한 출처는 검색을 통해서도 찾을 수 없다.
  13. 애초에 다르면 이상하다. 그리고 신학과 윤리학도 근대 이전에는 거의 한덩어리로 발전했기도 하고.
  14. 교만이 기독교에서 얼마나 큰 죄악인지는 항목 참조.
  15. 게다가 성경이 학술서가 아니므로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핵심 주제등을 고려하여 해석해야 하는데, 진보적 관점에서는 결코 혼전순결 자체가 성경에서 내세우는 도덕률이라고 보지 않는다. 물론 해석이 갈릴 수 있는 부분이며 가톨릭 등에서는 성경 외에도 거룩한 전승, 교회의 전통을 강조하므로 또 좀 달라지게 된다.
  16. 전쟁, 착취에 대해 그것만큼 적극 저항하지 않거나, 교만, 증오 등의 죄악의 마음에는 그리 자유롭지 못하는 경우도 많으면서
  17. 심지어 모 기독교 심리학자는 혼전순결에 집요하게 집착하고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은 취존을 넘어서 정신의학적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진지하게 지적했는데, 심리학적 관점에서는 틀린 말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이자 가톨릭 신자인 영국의 테리 이글턴은 근본주의적 개신교에서 연 아버지들과 딸이 참석하는 혼전순결 서약 행사에 담긴 아버지와 딸들의 근친상간적 감성을 조롱했다(...) 사실 우리 딸이나 여동생의 순결을 엄한 놈에게 줄 수 없다는 흔한 딸바보 시스콘 심리를 진지빨고 분석해 보면 여성지배적 심리와 어느정도 연관이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자기 남동생이나 아들의 동정 여부에는 그렇게까지 집착하진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18. 생명윤리적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하며, 당연히 어디부터가 생명인지는 생명과학도 없던 성경 시대에 제대로 논해질 수는 없었다.물론 낙태가 죄악이 아니라는 근거 역시 없다. 결국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의 존엄성이라는 기본 가치를 두고 여러가지 세속 학문의 도움을 받으며 진지하게 토론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사실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피임을 해도 만에 하나 임신되었을 경우 태아의 인권이 보장되기 힘들다는 근거로 대는 경우가 많은데(비기독교인들 중에도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이건 다른 비합리적인 감성과 달리 나름 합리적인 근거가 있으니), 임신의 위험만 피하는 걸 목적으로 하면 애무나 유사성행위를 하면 된다(...) 물론 가톨릭이나 보수적 개신교에서는 성에서 쾌락만 분리하는 것 자체를 위험하게 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반박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진도를 어디까지 나간 것이 혼전순결 위반인지가 의문이 된다. 뭐 소수의 신자들은 애널하면서 혼전순결을 지켰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엄격하게 하자면 음욕을 품으면 전부 혼전순결 위반인데, 애인을 보면서 음욕을 안 품을 수 있는지, 몸에서 성적 반응가 안 나올 수 있는지, 설령 반응이 없다 해도 사랑과 성욕이 허위의식이나 낭만적 감성 등을 떨쳐내고 사실 그대로 따지자면 과연 완전히 분리된 것이기만 한지 등의 여러 의문이 속속들이 나오게 된다.
  19. 여기에 대해서는 여기서 말하기보다 동성애 항목을 참고하자.
  20. 어감이 좀 가볍지만, 넓은 의미에서이다.
  21. 하나의 종파인 가톨릭만 하더라도, 자위에 대해서는 많은 신학적 견해가 있다. 죄라는 관점에서는 대부분 합의가 되어있지만, 이것이 고해성사가 필수인 대죄인지 혹은 참회기도로 용서가 되는 소죄인지는 논란이 있다. 소죄라는 견해를 간단히 말하자면, "너희들은 거짓말 할때마다 고해를 보냐? 사람의 입은 거짓말하라고 만들어진 부위가 아니야. 그런데도 거짓말에 사용하는게 모두 대죄인 것은 아니잖아? 이게 성욕을 이상한데 쓰는 자위와 뭐가 달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엄연히 가톨릭의 교도권은 자위를 중죄로 보지만, 자위를 소죄로 보는 관점이 무슨 이단 사이비의 관점인 것은 아니다.
  22. 타고난 무성욕자, 고자, 성욕이 적은 사람, 초 근성가이(...)라면 예외
  23. 그렇다고 해도 2차성징은 오히려 여성이 빨리 오므로 성적으로 빨리 눈떴을 경우에는 여성 청소년도 남성 청소년과 별 다를바가 없이 고민을 하게 된다. 게다가 교회나 사회에서 여성에게 강요하는 성적 금기가 훨씬 차별적으로 가혹하므로 더더욱 자기혐오에 시달리게 된다.
  24. 그렇다고 신자수 감소를 막기 위해 "뭐..잘못이긴 한데..고해성사하면 될거에요.." 정도로 말하는 태도 역시 비겁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진지하게 청소년들의 고민을 끌어안는 태도가 선배 크리스챤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25. 극단적으로 말하면 정자 1개라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26. 혼전성교, 피임, 낙태등등
  27. '성직자, 수도자는 평신도와 다르잖아?'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혼인'이 금지된 것 뿐이다. '자위'가 금지된 것은 평신도와 같다. 즉 이들이 특별한 무언가가 있어서 자위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단지 가톨릭 신자로서 자위를 안하는 것 뿐이다.
  28.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 받지 않으면, 죽을때 지옥에 가게 될 죄
  29. 혼전성교가 나쁘단 것은 아니고, 기독교에서 금지한다는 팩트를 서술한 것이다.
  30. 사실 현대의 헌금은 극도로 원칙적으로 보면 옳지 못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본래 헌금의 원조는 연보로 재물이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재물을 포기하는 행위였다. 연보의 연이 바로 버릴 연이다.
  31. 생물의 정의 자체에 새 개체를 생산할 것이 존재하는 판이다.
  32. 바울의 디모데전서에서의 조언에서 보듯이 고행과 같은 육체의 연습으로는 바울이 언급하는 생명의 성령의 법, 곧 경건에 이르는 법도를 따를 수가 없다.
  33. 바울이 7절에서 허탄하고 망령된 신화를 버리라고 언급한 바가 있다.
  34. 별것 아닌 것 같은 금딸이 바로 위선으로 가는 아주 좋은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35. 사실 스님들이 결혼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걸 어기면 땡중이라고 하는 곳에서 우리가 살고 있지만, 일본 불교를 보면 알듯이 꼭 그런 곳만 있는 것도 아니며, 한용운 같은 분들이 대처를 주장한 것이 무슨 스섹(...)을 자유롭게 즐기고 싶어서 그러자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요즈음의 더 진보적인 불교도들 중에는 스님도 성관계를 가질 권리가 있다거나, 그것이 진리 추구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도 없지 않다.
  36. 이 부분이 조금 해석의 논란이 되기도 하는데, 그냥 고대 저술의 특성상 논리적으로 엄밀한 것을 반드시 지키지는 않아서 생긴 설정구멍이라고 보기도 한다. 뭐냐하면 성행위를 금지하는 규율은 이미 있는데 여인의 몸을 만지지 말라는 규율이 따로 있는 것은 성행위와 애무를 분리하고 성행위 자체에는 애무는 빼는 것이 아니냐는 것
  37. 사실 조계종에서만 해도 사유재산을 금지하는 규율이 있음에도 어쩌다 보니 사유재산이 생기고 출가 전 가족들에게 보내는 행동들이 문제가 되는 경우들이 문제시 되어 공론화 된 적이 있다, 물론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지만 사유재산을 금지한다는게 무슨 자기 양말도 가지지 못한다는 그런 말은 당연히 아니다.
  38. 참고자료 :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