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엘 갤러거

이름노엘 토머스 데이비드 갤러거(Noel Thomas David Gallagher)[1]
가족관계페기(어머니) 토머스(아버지) 폴(큰형) 리암(동생)
새라(아내) 아나이스(딸) 도노반(아들) 소니(아들)
성별남자
신장173cm
출생일1967년 5월 29일
직업작사가, 작곡가, 가수, 기타리스트, 맨시티 서포터

1 개요

2007년 영국에서 가장 멋진 남자(100 Coolest British Men of 2007) 1위, 2008년 3위

2013년 스튜어트 런던에서 투표한 가장 스타일리쉬한 락스타 (Most Stylish Rock Star) 1위

2013년 칼리지 타임즈에서 선정한 지난 25년 동안 가장 뛰어난 작곡가(Top Songwriters of Last 25 Years) 1위

지금은 해체된 영국의 로큰롤 밴드 오아시스의 (사실상)리더, 메인 송라이터이자 기타리스트.

오아시스 탈퇴 후,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라는 독자적인 백밴드를 결성하고 성공적인 음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를 부르는 별명은 The Chief(대장)

2 음악

"노엘 갤러거는 그의 세대에서 가장 뛰어난 작곡가이다."

- 조지 마틴 경(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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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 And Then DVD로 널리 알려진 1996년 4월 28일의 메인 로드 공연에서)[2]

오아시스의 거의 모든 히트곡은 그가 작곡했다. 그의 창작력이 절정을 치달았던 90년대 당시엔 정규 앨범뿐만이 아니라 싱글의 B-side 곡들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당시 노엘은 "우리 B-side 곡들은 웬만한 밴드들의 싱글보다 훌륭하다. 그들의 가장 훌륭한 곡들을 전부 다 합해도 우리 B-side 수준도 안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다. 밴드의 프로듀서였던 오웬 모리스는 그 당시 대중들은 오아시스의 B-side곡들을 듣기 위해서 싱글을 구매했다고 회상했다. 결국 애초에 미국 시장을 겨냥해 발매될 예정이었던 B-Side 모음집인 The Masterplan이 전세계에 발매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크리에이션 레코드 사장 앨런 맥기는 "이 노래를 들어봐. 이게 B-side라고. 노엘 갤러거는 천재임에 틀림없어."라며 감동했다고. 2000년대 이후론 노엘이 더 이상 많은 노래를 쓰지 못함과 동시에, 시장의 추세에 맞추어 싱글의 B-side 곡 수를 줄이게 되면서 예전과 같은 퀄리티가 나오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4집 싱글 Go Let It Out의 B-side인 Let's All Make Believe는 Q매거진이 선정한 '500 Best Lost Tracks'에서 당당하게 1위를 차지했고, 5집 첫 싱글인 Hindu Times의 B-side인 Idler's Dream은 무수한 팬메이드 영상까지 쏟아내면서 명곡으로 추앙받고 있다. 여기에 솔로로 나선 노엘이 한층 왕성해진 창작력을 보여주면서, 여전히 'B-side에 좋은 곡을 숨겨두고 있다'는 혐의를 받는 중.

Q) 지난 내한 공연에서 'Don't Look Back In Anger'를 따라 부르는 관객들을 마이크에서 입을 떼고 한참동안 바라보더라.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이 노래는 더 이상 오아시스의 것도, 당신의 것도 아닌, 세상의 것이 된 노래라고. '노엘 갤러거'라는 이름과 당신의 수많은 노래들, 무엇이 더 오래 남을까?

A) Don't Look Back In Anger라는 노래를 쓴 그날 밤의 그 순간은 변치 않고 지금까지 25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 반대로 나는 생에서 그 순간을 단 한 번 겪었고, 그 이후로 계속 나이 들고 있다. 음악은 영원하다. Live Forever 역시 '영원히 사는 것'에 대해서가 아닌 '영원히 기억되는 것'에 대해 쓴 노래다. 그게 바로 음악이다.
-2015년 9월호, 아레나옴므플러스와의 내한 인터뷰에서#

그의 말에 따르면, 맨체스터에서 노동자로 살던 시절엔 항상 돈이 없었지만 일어나면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기대되고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너바나의 노래를 비난하는게 아니다.) 너바나의 'I hate myself and I want to die' 같은 부정적인 노래를 쓰기보다는 긍정적인 곡을 쓰고 싶다고 했다.[3] 그래서 나오게 된 곡이 오아시스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인 Live Forever였다.

'Supersonic', 'Shakermaker', 'Live Forever'를 연이어 발매하며 주가를 높인 그들은 데뷔 앨범 Definitely Maybe로 스타덤에 오른 이후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로 쐐기를 밖으며 단숨에 당대 최고의 밴드로 올라선다. 하지만 이후 발매된 세번째 앨범 Be Here Now는 여전히 큰 세일즈와는 달리 초기의 열광과는 별개로 낮은 평가를 받으며 상승세를 잃기도 한다. 이후 그는 밴드에 찾아온 여러 대격변, 시대의 변화, 한 번의 이혼 그리고 마약 후유증 등의 영향으로 작곡에 대한 의욕을 잃었으며 밴드는 점점 정상에서 내려오는 듯 했다. 노엘은 마약을 끊었고, 브릿팝의 광풍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2000년대에 들어서자 그와 밴드는 전체적으로 차분해지고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밴드 멤버가 변경되고 실력이 향상되면서 한층 어른스러워짐에 따라, 노엘은 다양한 방식의 작곡 성향을 드러냈고 음악적 변화에도 꾸준히 싱글 차트 1위와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하며 그 성과를 인정 받았다.

"지금이라도 Little By Little이나, Champagne Supernova 같은 곡들은 집에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앞으로도 마음만 먹으면 쓸 수 있어.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난 이제 그런 싱얼롱 조의 곡들은 질렸다고. Lyla나 Don't look back in anger 같은 곡을 도대체 몇백곡이나 써줘야 직성이 풀리나? 나도 이쯤에서 기분 전환이 필요했어. 이번에 그런 전환점에 서 있던 나를 앞으로 나아 갈 수 있게 해준 것이 데이브[4]야. 내가 새로운 타입의 곡을 써서 들려줄 때마다 '이거 좋군!, 좀 더 이런 자신의 숨겨진 면을 보여 달라고.'라고 해서 나도 이후론 지금까지의 오아시스의 스타일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어. 좀 더 자신의 표현 영역을 넓히고 싶었고 만약 우리가 어떤 타입의 곡을 낸다고 해도 위화감 없이 "오아시스의 클래식이었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앞으로의 이상이기도 해." (2008년 11월 rockin'on : oasis)

데뷔 때부터 꾸준히 '노엘 표 발라드'라고 할 수 있는 어쿠스틱 발라드 곡들을 써왔으며, 목소리도 하드한 보다는 포크 계열의 발라드 곡에 더 어울리는 편이다. 리암이 날카롭고 락킹한 목소리라면 노엘은 서정적인 음색이면서도 다소 건조한 톤이며[5], 음역대도 동생에 비해 폭이 넓은 편. Acquiesce가 두 사람의 듀엣 곡이 된 이유가 후렴 코러스 파트 녹음 당시 리암의 고음이 안 나와서 노엘이 대신 불러서일 정도이니. 열성팬들이 B-side를 듣기 위해 oasis 싱글을 구매하는 이유 중 하나가 노엘이 보컬을 담당한 곡은 상당수 싱글 B-side로 발매되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형제가 굉장히 대조적인 목소리를 지녔던 게 오아시스의 인기 요인이기도 했다. 1집 수록곡으로 오아시스 최고의 노래로 손꼽히며 대선배 폴 매카트니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Slide Away의 경우 원곡은 리암이 불렀고 콘서트에선 노엘의 어쿠스틱 공연이 인기를 모았는데, 리암의 Slide Away는 '자, 떠나자'며 확고한 느낌이 든다면 노엘의 Slide Away는 '나와 같이 떠나지 않겠니?'와 같은 애달픈 느낌이 든다고 한다. 리암의 창법이 직설화법이라면, 노엘의 창법은 반어법 적인 느낌을 준다는 평가.

90년대에 한창 유행하였던 MTV Unplugged에서 리암을 대신하여 보컬까지 소화해냈고 (리암이 어쿠스틱 공연을 싫어해서 공연 직전에 노엘이 부르기로 결정되었다.), 특히 최고의 전성기였던 96년도 공연 등에선 리암의 컨디션 난조와 공연 불참가 등등으로 보컬리스트 부재 중일 때엔 전부 노엘이 불렀기 때문에 오히려 oasis 팬들은 이러한 노엘이 보컬을 담당한 부틀렉까지 찾아서 구매할 정도로 노엘은 열성적인 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솔로 데뷔 이전 노엘의 온전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앨범은 로열 앨버트 홀에서의 자선 공연 실황을 녹음하여 itunes를 통해 5일 동안 무료 배포된 'The Dreams We Have as Children – Live at the Royal Albert Hall'이다. 절친한 동지인 폴 웰러가 함께 무대에 올랐을 뿐 아니라 oasis의 히트곡과 B-Side곡, 앨범 수록곡, 리메이크곡을 총망라하였고, 당연히 부틀렉과는 격이 다른 사운드와 녹음 수준을 보여주어서 [6] 아름다운 관현악 세션과 함께 하는 노엘의 어쿠스틱 공연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노엘은 기타, 베이스,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다. 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로디 시절엔 스탭 명단에 드럼 테크니션으로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7집 Dig Out Your Soul에서는 본인이 드럼을 친 곡도 꽤 있고(Bag It Up, Waiting For The Rapture, Soldier On) 농담조로 "내가 체력만 되면 이생키들 다 내쫓고 나 혼자 밴드할텐데."라고 말했는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외 X-Files: Fight The Future의 OST(Teotihuacan)와 영화 Goal!의 OST(Who Put The Weight Of The World On My Shoulders) 등에 참여한 경력이 있다.

The Guitars of Noel Gallagher

2.1 표절과 오마주의 경계

노엘은 무수히 많은 곡을 써내면서 표절 시비에도 자주 휘말렸는데, 이는 영국 락음악 씬에서 선배 음악인에 대한 존경의 의미에서 오마주로 여겨지는 것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오아시스와 노엘의 솔로 프로젝트의 표절 의혹 곡들 모음. 오마주나 트리뷰트의 곡들, 표절로 판명된 곡, 단순히 표절 의혹만 제기된 곡, 원곡과의 유사성을 찾을 수 없는 곡들이 모두 섞여 있다.

대표적인 표절곡들로는, 당시 코카콜라 광고 삽입곡이었던 'I'd Like to Teach the World to Sing'을 표절한 Shakermaker[7]스티비 원더, 헨리 코스비, 실비아 모이의 'Uptight'를 표절한 'Step Out', 닐 이네스의 'How sweet to be an idiot'을 표절한 'Whatever', 조지 해리슨의 'My Sweet Lord'에서 기타 리프를 훔쳐온 'Supersonic', [8]역시 조지 해리슨의 명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링고 스타의 대표하는 노래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에서 따온 She's Electric[9], 티렉스의 'Get It On'의 리프를 가져와 만든 'Cigarettes and Alcohol', Wham!의 'Freedom'에 영향을 받은 'Fade Away'등 이 밖에도 많은 곡들이 있다. 또한 노엘의 솔로 앨범들에서 역시 여러 노래들과의 유사성이 드러나기도.

노엘은 오마주에 대해서 매우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표절 시비가 제기될 때마다 "응 맞아. 이 노래는 여기서 가져왔고, 이 노래는 저기서 가져왔어"라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Cigarettes and Alcohol이 표절 시비에 걸렸을 때 "그래도 우리 때문에 사람들이 티렉스를 알게 됐잖아?"옘병 라고 말했는데 대선배인 로드 스튜어트는 데뷔 1년차 신인 록밴드의 싱글 Cigarettes and Alcohol을 극찬하며 커버 버전을 자신의 앨범에 수록했다. 표절곡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노엘은 '누군가 우리 곡을 베껴도 아무 상관 없다'는 자신의 생각을 몸소 실천했다. 트래비스가 2집 The Man Who의 히트곡 Writing To Reach You 발매 당시 리더 프랜 힐리는 '라디오에서 Wonderwall을 듣다가 그 코드를 훔치고 가사를 빌려왔다'고 밝혔는데 아무도 표절이라고 안 했고, 원래 트래비스의 광팬이었던[10] 노엘은 트래비스 무대에 함께 올라 All I Wanna Do is Rock을 함께 공연했다. 이렇듯 영국 록 음악 씬에서 오마주는 선후배 간의 긍정적인 교류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노엘의 작곡 기법에 대한 매우 절묘한 평가로 배철수씨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멜로디에 강한 스파이크로 되받아치는 듯한을 꼽을 수 있겠다.

2.2 솔로 활동 -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2.2.1 솔로 데뷔 관련

오아시스 시절은 오아시스 참조. 같은 오아시스의 멤버이자 동생인 리암과의 충돌 끝에 결국 2009년 8월 28일, 노엘은 밴드의 공식 웹사이트에 오아시스를 탈퇴한다는 글을 올린다.

"약간의 슬픔과 굉장한 안도감과 함께 여러분께 내가 오늘 밤 오아시스를 그만둔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쓰고싶은대로 써갈기겠지만, 난 간단하게 '더 이상 리암과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파리, 콘스탄츠와 밀란에 있을 예정이었던 공연의 표를 구입한 모든 사람들에게 사과를 표합니다."

오아시스 해체 이후 노엘은 겜과는 자선 공연도 함께 하고 연락을 주고 받았지만 그를 제외한 오아시스 멤버들과는 별다른 교우 관계가 없는 듯 했다. 그렇지만 비디아이의 해체 이후에는 페스티벌 장에서 전 멤버들과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리암과도 크리스마스에 문자를 주고 받는 등 시간이 잘 해결해주고 있다.

2011년 7월 6일, 솔로 활동 발표 기자회견을 연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 및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내용과 현재까지 인터뷰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정보들을 취합해서 작성한 것임을 밝힌다.

2011년 7월 5일 기자회견의 구체적인 내용이 노엘의 공식 트위터와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올라왔는데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리암이 없는 게 잘된 일이냐고? 아마도 아닌 거 같다. 난 스스로를 프론트맨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고, 프론트맨 역할을 한다는 건 X나 성가신 일일 테니까."
"Am I better off without Liam? Probably not. I've never seen myself as a frontman & I can see it being a right pain in the arse."
  • 당장 돈 버는데 목적을 두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상업적 성공은 괴상하고 그건 네가 X같다는걸 의미하니까." (상업적 성공을 거둔 요즘 곡들을 비꼬는 말로 생각된다.)
Not chasing money now because: "Commercial Success is weird because it normally implies you are shit!"
Noel giving a blow by blow account of the end of oasis. "I regret it really, cos there was only two gigs left"
  • "내가 오아시스 노래를 몇 개라도 부르지 않는다면 난 공연장을 떠나지 못할 것이다(사람들이 날 보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건 내 노래들이고 나에겐 마약과 같다.
"I wouldn't be let out of the venue if I didn't play some Oasis songs. They are my songs, they are like drugs to me"
  • 비디 아이에 대해 : 비디 아이에 있는 내 친구들을 생각해서, 말하지 않는 편이 좋겠어... It's...alright.
Noel's opinion of Beady Eye: "out of respect for the friends I've still got in the band, I'd rather not say...It's...alright."
  • 솔로와 오아시스의 차이점에 대하여: "티백 상자가 더 오래 가겠지..."[11]
on the differences between solo and Oasis: "the boxes of teabags last longer..."

위의 발언과 더불어 노엘은 오아시스가 2009년 첼름스퍼드에서 열린 V Festival의 헤드라인 자리를 취소한 이유가 리암의 숙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는 발언 때문에 리암에게 명예훼손으로 소송당하게 된다. 그러나 노엘이 팬들과의 채팅에서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12]한 이후로 소송은 취하된 상황.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이쪽으로.

이 날 노엘은 비디 아이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앨범을 들어본 적은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곡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그놈들은 몇 년 전에는 오아시스 앨범을 위해 돌아다니곤 했으니까. 리뷰 몇 개를 읽어보니 네놈들(평론가나 기자들)이 오아시스 앨범에 줬던 것들보다 훨씬 낫더군. 그게 얼마나 사람을 빡치게 하는 건지 당신들은 모르겠지."

앞으로 오아시스 곡도 7~8곡 정도 계속 부를 생각이라고 한다. 물론 Rock'N'Roll Star 같은, 리암이 부른 로큰롤한 곡들은 부를 수 없겠지만, 본인이 보컬을 맡았던 곡이나 어쿠스틱 셋 위주로 간다고.

2.2.2 1집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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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데뷔앨범 타이틀은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이며, 2011년 10월 17일 발매되었다. 오아시스 7집 시절 같이 프로듀싱을 진행했던 프로듀서 데이브 사디가 이 앨범에도 참여했다고 한다. The High Flying Birds는 10월에 있을 예정인 공연 투어를 같이 진행할 노엘의 백 밴드 이름이다. 본인은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고 있으나 이름때문에 많이 까이고 있다. 주로 촌스럽다고 까이는듯 다만 50년대 스키플 밴드들은 이런 식의 네이밍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비틀즈의 전신인 쿼리맨도 정확히는 john lennon's Quarry Men이였다. 요즘에도 활동 중인 장기하와 얼굴들과 비슷하다. 노엘이 이렇게 밴드 이름을 지은 이유는, 자신의 이름으로만 나오는 건 뭔가 쇼비즈니스에 적합하지 않았다고 느꼈고 그래서 Peter Green's Fleetwood Mac처럼 자기도 이름 뒤에 뭔가를 붙여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60년대 싸이키델릭 밴드인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앨범을 듣던 중 'High Flying Bird'라는 곡을 발견하고 이 제목의 어감이 마음에 들어서 자신의 이름앞에 붙였던 것이다.

구성 멤버는 노엘 갤러거(기타, 보컬), 오아시스 투어에서 라이브 세션으로 오랜 인연을 맺었던 마이키 로(Mikey Rowe, 키보드), 밴드 Zutons의 베이시스트였던 러셀 프리처드(Russell Pritchard, 베이스), 영국의 90년대 팝밴드 The Lemon Trees 출신의 제러미 스테이시(Jeremy Stacey, 드럼) 그리고 팀 스미스(Tim Smith, 기타)이다. 다만 하이 플라잉 버즈의 밴드 구성은 유동적으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팬들이 부르는 애칭은 높나새 혹은 하플버.

그리고 The Amorphous Androgynous와의 두 번째 콜라보레이션 앨범이 2012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결국 무산되었다. 참고로 The Amorphous Androgynous는 오아시스 7집 시절 Falling Down 싱글에서 Falling Down (A Monstrous Psychedelic Bubble Mix)를 통해 이미 한 차례 작업을 같이 했던 적이 있는 댄스 듀오이다. 예스와 버글스의 만남에 비견되기도...

당시 Q 매거진에서 인터뷰한 구체적인 솔로앨범 관련 주요 내용들 중, 2012년 여름 즈음 발매 예정이었던 The Amorphous Androgynous와의 콜라보레이션 앨범 이야기가 나왔는데 매거진에 실린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참고로 이 두번째 앨범의 이름은 Space Bound Ball Of Fury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 "다른 하나 같은 경우엔, 이건 존나 멀리 간 거라고, 친구. (프로듀서인) The Amorphous Androgynous가 마지막 오아시스 녹음을 가지고 리믹스 작업을 했고, 용케 곡 하나를 23분 짜리로 늘여놓았지. 그 앨범은 총 18개 트랙인데, 어떤 부분은 보드빌 공연[13] 같을 것이고, 어떤 부분은 사실상 우주 느낌의 재즈에 가깝고, 어떤 건 크라우트 락[14]인데다, 소울 음악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건 펑크고... 근데 이게 모두 첫번째 곡에 다 들어가 있다. 이건 정말이지 내가 해봤던 것들 중에, 가장 멀리 나가본 것이다."

2011년 7월 19일 공식적으로 앨범의 첫 번째 싱글 컷은 'The Death Of You And Me'임을 밝혔으며, 같은 달 25일 인터넷을 통해 공식 뮤직비디오를 공개하였다. 싱글 발매일은 2011년 8월 21일. 공개 이후 이 곡은 UK Radio Airplay 차트 36위를 기록하였다. 9월 18일 UK 싱글 차트 중 15위.

2011. 09. 5. What A Life!가 나왔다. 9월 18일 기준 UK Top 40 싱글 차트 중 20위를 기록하였다.

그리고 The Death Of You And Me에 이어서 If I Had A Gun, AKA...What A Life!의 뮤직비디오가 각각 공개되었는데 이 뮤직비디오들은 3부작 구성으로 다시 'Ride The Tiger'라는 하나의 뮤직비디오로 다시 연결된다.[15] 내용은 요약하자면 현실을 탈출해 새로운 삶을 찾으려는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 Ride The Tiger는 노엘의 콘서트 Blu-ray/DVD에 수록되었다.

발매 이후 이 앨범은 발매 첫 주 UK 앨범 차트 1위, 아일랜드 차트 1위, 일본 차트 5위, 호주 차트 16위, 네덜란드 차트 11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발매 첫주만에 17만장을 판매했다. 참고로 발매 첫주 판매량 1위는 27주 연속 No.1의 자리를 지킨 아델의 '21'.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는 28위, US Top Rock Albums과 US Top Alternative Albums는 5위를 기록했다.

노엘의 솔로 활동은 노엘이 더이상 기존의 로큰롤 스타일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1집 앨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 앨범에서 노엘은 그야말로 댄스, 사이키델릭 등 다양한 장르에 다 손을 대서 자신의 작곡 능력을 실험했고 또 그 실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The Death Of You and Me에서는 금관악기의 사용, AKA...What a Life!의 댄서블함은 성공적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세일즈에서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팬들의 호응도 열광적이어서 1집 투어는 1년 이상 연장되어 진행되었다. 덕분에 2집 발매가 한 동안 연기되기도 했다.

음악잡지 Mojo와 American Songwriter는 이 앨범을 'Top 50 Albums Of 2011'에 46위, 42위에 랭크시켰고 Q매거진은 'Top 50 Albums Of 2011'의 21위, 롤링스톤지는 'The Best Albums of 2011'에서 9위에 랭크시켰다.

노엘의 1집은 2012년 2월까지 600,000장 이상 판매되었다. 참고로 세간의 비디 아이와의 경쟁을 부추기는 시선에 대해서, 자신은 밴드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 반면 비디 아이는 훌륭한 밴드이므로 솔로인 자신과 밴드인 비디 아이를 비교하는 것은 서로에게 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 Everybody's On The Run
  • Dream On
  • If I Had A Gun
  • The Death Of You And Me
  • (I Wanna Live In A Dream In My) Record Machine
  • AKA...What A Life!
  • Soldier Boys And Jesus Freaks
  • AKA...Broken Arrow
  • (Stranded On) The Wrong Beach
  • Stop The Clocks
  • A Simple Game Of Genius
  • It's Never Too Late To Be What U Might Have Been

2.2.3 2집 Chasing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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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14일, 드디어 2집 Chasing Yesterday가 공개되었다! 음반 발매는 2015년 3월 2일로 확정. 수록곡은 총 10곡으로 보너스 트랙 4 곡이 추가되어있다. 싱글 In The Heat Of The Moment #로 시작, Ballad Of The Mighty I개쎈 나의 발라드라는 곡과 함께 순차적으로 공개되었다. 반응은 대체로 "노엘이 돌아왔다 (The Chief Is Back)" 와 "Noel Gallagher is god" 등 좋은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수록곡의 뮤직비디오에 대한 반응이 좋지 못하다. 유튜브 댓글 중 추천을 많이 받은 댓글의 다수는 노래는 좋은데 뮤직비디오가 끔찍할 정도로 별로라는 내용이다. 언제는 안그랬나?

In The Heat Of The Moment의 뮤직비디오가 2014년 10월 24일 공개되었다. 또한 11월 17일에는 7인치 바이닐 싱글로 발매됐다.

그 뒤 Ballad Of The Mighty I가 두번째 싱글로 발매되었다. 오랜 절친인 조니 마가 피처링으로 참여했는데 노엘은 '그가 믿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연주를 들려줬으며, 곡에 담긴 폭발적인 에너지는 ‘Ballad Of The Mighty I’가 내가 지금까지 썼던 최고의 노래 중 하나가 되는 것을 도와줬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스튜디오에서 두 사람은 별 말도 주고 받지 않고 단숨에 기타를 연주했다고 한다. 노엘은 자신의 인스타그램 ID를 'themightyi'로 만들어서 이 곡에 대한 애착이 남다름을 과시했다.

그란데 3월에 발매 예정이었던 'Chasing Yesterday'가 2월에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미 앨범은 급속도로 퍼져나갔고, 앨범은 발매도 안 됐는데 전세계에서 팬들의 커버곡들이 올라오는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마침내, 'Chasing Yesterday'는 UK 차트 1위로 데뷔하였다. 이로써 오아시스 시절의 정규 앨범 7장을 포함한 본인의 정규 앨범 2장까지 총 9장의 앨범이 연속으로 정규 앨범 차트 1위를 달성하는 기록을 이어가게 되었다. 두번째 앨범은 오아시스 시절부터 자신의 솔로 데뷔 앨범까지 함께 일해왔던 프로듀서 데이브 사디가 참여하지 않았으며 노엘이 셀프 프로듀싱하였다. 데뷔 앨범에선 오아시스의 분위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았었지만 두 번째 앨범에선 이제 오아시스의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으며, 좀 더 멜랑콜리한 미디엄 템포의 사이키델릭 락 앨범이 되었다. 객관적인 평가는 데뷔 앨범과 비슷한 편이며, 전반적으로 무난한 점수를 얻었다.

2015년 7월 5일 발표된 The Official Top 40 Biggest Selling Artist Albums of 2015 so far에서 'Chasing Yesterday'는 7위에 랭크되어 있다. 특이 아마존 UK에서는 노엘의 2집 앨범이 2015년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자 가장 빨리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2집으로 Q어워드 베스트 앨범 상을 수상하며 여전히 전성기임을 입증했다. 역시나 노엘답게 "프로듀서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그게 저죠."라고 유머러스하게 수상 소감을 밝혔다.

  • Riverman
  • In The Heat Of The Moment
  • The Girl With X-Ray Eyes
  • Lock All The Doors
  • The Dying Of The Light
  • The Right Stuff
  • While The Song Remains The Same
  • The Mexican
  • You Know We Can't Go Back
  • Ballad Of The Mighty I
  • Leave My Guitar Alone (일본반 한정)


아래의 네 곡은 디럭스 에디션 한정 보너스 CD에 수록된 곡들이다.

  • Do The Damage
  • Revolution Song
  • Freaky Teeth
  • In The Heat Of The Moment (Toy Drum Remix)

2.2.4 솔로 내한

지난 번에 서울에 왔을 때가 내 생일이었지? 그런데 서울에 올 때마다 매일이 내 생일 같아.

(So last time I was in Seoul, it was my birthday, right? but it would seem that everyday is my birthday every time I come to Seoul.)
- 2015년 4월 3일 서울 공연에서

2012년 5월 28일 솔로 데뷔 이후 첫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장소는 전 해에 비디아이가 공연을 했던 AX-KOREA. 그리고 티켓팅 시작 2분만에 매진. 희망은 취소표밖에 없는 상황에서 새로고침 전쟁이 벌어졌었다 그리고 이런 뜨거운 반응 덕에 5월 29일의 추가공연 결정. 프로필에서 보다시피 그날은 노엘의 생일이다! 솔로 앨범 발매 후 첫 생일날의 공연이 한국이라니 팬들로서도 굉장히 의미가 각별한 날이 되었고, 노엘 또한 자신의 생일에 콘서트를 한 것은 처음이라고 밝혔다. 생일날 콘서트 도중 팬들이 떼창으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고, 무대 위에서 노엘에게 케이크도 전달이 되었다. 투어일기에서도 "생일 선물 모두 고마워. 특히 케이크 선물에 감사해. 케이크는 분장실에서 끝장났어. 완전 예술작품이던데!! 마지막 곡 무대에서도 누가 생일 케이크를 무대로 전해줬지!!"라고 적은 걸 보면 정성스레 생일을 챙겨준 한국 팬들에 대한 노엘의 고마움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노엘의 입국에 맞춰 공항에 몰려 있던 팬들에 의해 일본에서 산 자켓에 테러를 당했는데, "한국 최정예 요원들을 투입하여 범인을 찾아 달라." 분통을 터뜨리며 범인의 인상착의를 설명하는 인터뷰가 워낙 재미있어서 팬이 아닌 사람들도 즐겨 찾는 영상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노엘의 한국 인지도가 음악 팬들을 넘어 한층 더 급증하게 된 훈훈한 사건. 그런데 범인이 자수한 모양이다

2012년 5월 25일 뮤직 스테이션에 출연, 후지 록 페스티벌에도 참여한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같이 출연했던 AKB48을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여자애들이라고 깠다 이후 후지 록 페스티벌 둘째날 헤드라이너로 공연하였다.

2015년 4월 3일/4일 내한공연이 확정되었다. 장소는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시어터, 오프닝 밴드는 바이바이배드맨이 맡았다. 공연 앵콜을 부르기 전 앵콜브레이크 때 팬들이 Live Forever를 불러달라고 떼창을 하며 불러달라고 성원했지만 세트리스트에 충실했는데, 후일 인터뷰에서 노엘은 이날 한국 팬들의 Live Forever 떼창을 찬양했다. 공연 당일 노엘은 기자회견에서 "건강이 많이 안 좋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질문에 여전히 건강이 좋지 않다고 답해서 걱정을 많이 샀는데, 3년 전의 내한 공연보다 10분 더 길게 공연했고, 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에 아빠 미소이제 노엘도 이렇게 불릴 나이가 됐다를 지으며 팬들을 바라보는 노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내한 기념으로 인터뷰를 했는데, 주체는 피키캐스트에 인터뷰어는 에릭남. 센스 넘치는 에릭남의 노엘의 특징을 활용한 알찬 인터뷰와 훔친 베개 처음엔 점잔 빼다가 뒤로 갈수록 노엘의 거침없는 독설과 재치 넘치는 자막이 압권. 3년 전 자켓에 매직을 그은 범인을 여전히 용서하지 않는 중이다. 다만 Gigs를 Goods로 잘못듣고 번역하는 등 오역이 눈에 띄었다.

2015년 7월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공연했다. 주최측에서 발표하기 전에 인천공항에서 팬들에게 사인을 해줄 때 7월에 한국에 올 거냐는 질문에 노엘이 "Yeah!"라고 대답해주면서 오피셜을 능가하는 본인피셜, 노피셜 발표가 되었다. 1년에 두 번 한국에 공연하러 온다는 사실에 팬들은 물론 국내 언론도 흥분하였고, 실제 페스티벌에서도 모든 관중을 독점하며 헤드라이너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18곡의 세트리스트는 단독 내한 공연과 버금갔고, 특히 Champagne Supernova 플래시 이벤트는 노엘이 음향을 조율하느라 1분 가까이 관객석을 등지고 있었는데, 돌아보면서 마주하게 된 수많은 '초신성'들의 향연에 정말 환한 미소를 지으며, Amazing이라는 표현으로 화답했다. 이 영상은 한국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끌었다.

3 축구 사랑

축구[16]는 내 전부지. 내 전부야. 어쩌면 음악보다 축구를 더 사랑할지도 몰라.

Noel+Gallagher+Manchester+City+v+West+Ham+5UHYmf9Z0aDl.jpg
(맨체스터 시티가 2013-2014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결정지은 2014년 5월 11일, 그라운드에 내려온 노엘이 주장 완장을 차고 기뻐하는 모습. The Chief라는 그의 별명과도 잘 어울린다. 이날의 엔딩 BGM도 오아시스의 Whatever가 울려퍼졌다)

동생 리암과 함께 맨체스터 시티의 골수팬이자 지독한 축덕. 오아시스에 있을 때도, 나온 후에도, 틈만나면 스포츠 방송 Talksports에 나와 그 특유의 입담을 과시하며, 심지어 FA 컵 조추첨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팬카페만큼이나 축구 커뮤니티인 알싸에서 관련 게시글이 자주 올라오고 해외 축구 기사에도 그 이름이 등장하며, 심지어 EPL 중계 시 관객석의 노엘이 카메라에 잡히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기록하곤 했다.

노엘의 말에 따르면 음악적 재능은 원래 주어진 것이지만, 축구는 자신이 무엇보다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만약 밴드를 하지 않았으면 축구 암표 판매원이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든 축구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이는 영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겐 흔한 일이다. 영국 노동계급 젊은이들에게 축구는 거의 종교에 가까우며, 어릴때 같이 나고 자란 동네친구들은 같은 동네 팀을 좋아한다. 말 그대로 동네 문화의 한 축이 축구인 셈.[17]

노엘은 그야말로 맨체스터 시티를 사랑한다. 팀이 3부리그를 왔다갔다하던 90년대 후반에도 노엘은 바쁜 시간을 쪼개서 꼬박꼬박 맨체스터 시티 경기를 찾았다고 한다. 모두가 맨유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반골의식으로 맨시티팬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고[18], 사촌들이 모두 맨유를 좋아해서 그에 대한 반항으로 아버지와 함께 맨시티의 팬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지만 정확한 사실은 알려진 바가 없다.[19] 공연을 할 때에도 항상 맨시티의 저지를 걸어두며 심지어 유로2012에 잉글랜드 경기를 보러 갔을 때에도 맨체스터 시티를 나타내는 걸개를 걸고 경기를 관람했다.

사실 노엘이나 리암의 축구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는데, 자신들이 어린 시절 자라왔던 맨체스터 버니지에서 유일하게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라디오에서 축구 경기 중계를 듣는 것뿐이었다 한다. 노엘은 "맨체스터에서 자란다면 가질 수 있는 꿈은 두가지 밖에 없다. 축구 선수가 되거나 락스타가 되거나"라고 말하였으며, 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신의 집에서 맨체스터 시티 경기장의 불빛이 보였다고 한다.

당연히 지역 라이벌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무척 싫어한다. "유나이티드 팬들이 기름을 살 때마다 우리 수중으로 돈이 들어온다니 너무나 기쁘다." 라며 맨유 팬들을 조롱하였다. 또 맨유에서 수비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던 게리 네빌의 수염을 모두 뽑아버리겠다며 으르렁거린 적도 있다. 형제 모두가 게리 네빌을 특히 싫어했는데 훗날 게리 네빌과 대면하며 별 문제 없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80년대 노동자로 살아갈때는 맨시티의 훌리건짓[20]을 하기도 했으며 때문에 국내 오아시스 팬들은 맨체스터 시티에 당연히 높은 호감을 보인다.

축구로는 관람하는 것만 지독히 좋아할 뿐, 잘 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노엘이 축구를 하면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뻗어 버린다고. 집에서 축구를 보면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한다고 한다. 안절부절하면서, 왔다갔다하며 끊임없이 혼잣말을 중얼거린다고... 딸인 아나이스가 그 모습을 볼때면 아빠 무섭다고 좀 가만히 앉아서 보라고 얘기를 한다는데 고쳐지지 않는 모양이다.

노엘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도 좋아한다. 월드컵 7회 연속 진출, 2002년 4강까지 역시 축덕답게 알고 있고, 판타스틱하고, 헤어 스타일도 멋있는 팀이라고 칭찬한다. 2009년 7월 내한 인터뷰 맨유에 있던 박지성에 대해서는 묘한 감정일듯심지어 남한과 북한이 경기하는 일정까지 알고 있다. 일정이 맞았으면 (공연 다음날이 축구 경기인데, 아침에 출국) 보러 갔을 것이고, 당연하지만 남한이 이기길 바란다고. 2009년 4월 내한 인터뷰

알싸 같은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인터뷰가 올라올 때, 예전에 노엘을 잘 모르는 네티즌들이 "도대체 노엘 갤러거가 누구길래 인터뷰를 하면 기사가 됨?"이라고 묻기도 했다. 사실 다른 밴드의 뮤지션들도 좋아하는 축구 클럽이 있긴 하지만, 노엘처럼 열정적으로 축구계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은 거의 없다. 이제는 아예 무려 축구 전문가 타이틀을 달고서 전현직 축구 스타들과 함께 축구 방송 패널로 출연한다. 그리고 노엘이 한국에서 재미난 형님으로 통하게 되면서 축구 커뮤니티에서도 노엘의 인터뷰를 당연하게 여기고 꾸준히 번역 업로드 중. 맨 시티 외의 EPL 다른 클럽 팬카페에도 노엘의 인터뷰는 인기가 좋다

지독한 축덕이지만 생각만큼 잉글랜드 국대를 안 좋아한다. 물론 가끔 응원을 가고 우승을 바라기도 하지만, 생각만큼 간절하게 바라지는 않는다는 뜻. 우승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식이다. 아무래도 잉글랜드 국대에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선수가 거의 없고[21] 노엘이 싫어하는 맨유, 첼시, 리버풀 소속의 선수들이 다수 포진해있다 보니 마음놓고 응원하기 껄끄러운듯.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피식 웃으며 "4강만 가도 잘한거지"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잉글랜드의 축구 문화는 클럽 축구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축구 팬들 중에는 국대에 그렇게 열정적이지 않다. 또한 그는 아이리쉬 혈통이며 잉글랜드인의 피가 한방울 섞여있지 않다고 한다. 부인인 사라 또한 스코틀랜드인이다. 모 다큐에서는 한 맨유팬이 "잉글국대의 2번의 월드컵 우승보다 맨유의 1번의 리그 우승이 더 중요하다." 라고 말한 적도 있다. 그리고 잉글국대의 행보를 보라, 과연 응원할 맛이 나겠는가

또한 2010년에 맨체스터 시티의 선수 영입에 대해서 인터뷰를 했는데 맨체스터 시티 사장인 개리 쿡이 자기랑 밥 먹으면서 영입할 선수들 목록을 냅킨에 써서 보여줬다고 한다 본격 사장이랑 같이 밥먹는 서포터

맨체스터 시티의 구단주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종종 밝혔고, 1997년 인터뷰에서는 Be Here Now의 높은 판매량 덕분에 현금을 많이 확보해서 구단 인수에 대해 변호사와 상의하고 있다고 말히고 했는데, 지금은 현재 구단주가 어마어마한 자본을 뿌리면서 클럽을 발전시키고 있는 바람에 그 꿈은 이루기 힘들게 되었다. 물론 이에 불만은 없고 만수르 구단주가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는 중이며, 맨체스터 시티가 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비난에 "X발. 우리는 그동안 거지였으니까 돈 좀 써도 돼."라고 반응하기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쓰자면 "윤리? 시장 원리? 귤까. 시발 너네들은 돈 물쓰듯 써놓고 우리가 쓰기 시작하니까 난리네. 전통? 우리가 30년동안 거지였다는 그 빌어먹을 전통?"이라고 반응했다.

2011년 4월 17일(한국 시각)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FA컵 4강전 맨체스터 더비에서 모습을 보였는데, 야야 투레의 선제골을 보자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축구 관련으로 인터뷰는 심심하면 하는 수준이고 1년에 한두번씩 EPL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인 BBC의 매치 오브 더 데이에 출연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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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_영국의_맨시티빠.jpg 시상식에 올라도 저렇게 좋아하지는 않는데

맨체스터 시티 공식홈페이지에는 친절하게도 동영상까지 올라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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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맨체스터 시티의 유니폼 모델로 나서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성공한 덕후

인생의 의미란 프로그램에 나와서 가장 먼저 한 얘기가 축구 얘기였다. 이때 진행자가 "맨시티의 우승이 섹스나, 명성, 가족보다 좋은가요?"라고 묻자 물론이죠. 제 아내도 이해해줍니다라고 대답했다(...)

'적중률 100%' 갤러거, 맨시티 승부차기 우승 예언 화제 캐피털 원 컵 결승적 직전의 인터뷰가 경기 내용과 승부차기 순서, 결과까지 정확하게 예측하여 영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맨시티 리포터 스컬리와 투어에도 함께할 만큼 절친에다가 공식 채널로 독점 인터뷰 영상, 전용캠 영상까지 갖고 있고 우승 직후 맥주병을 들고드레싱 룸에 난입하여 선수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얼싸안으며 필드에서 함께 기념사진 촬영도 하는 등, 유명인 서포터의 차원을 넘어서 아예 팀의 일원처럼 어울리고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인터뷰를 하며[22] 하도 공식채널에 얼굴을 비추다 보니 공식 홍보대사같이 느껴질 지경(...)

3.1 유명한 축구 선수들과의 인연

축구 선수들과도 친분이 깊은데 리버풀 FC의 캐러거와 맨체스터 시티 선수였던 조이 바튼, 그리고 유벤투스의 레전드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도 매우 친분이 깊다고 한다. 예전에는 친구인 델 피에로에게 전화해 맨시티로 이적하라고 땡깡을 놓는다던지 온다면 주급을 자신이 내겠다고 한다던지...한 적이 있었다. 물론 술 먹고 술주정부린 거였지만, 델 피에로의 에이전트는 이 제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실제로 맨시티 행을 고민했었다고. 2006년에는 델 피에로의 초대로 2006 독일 월드컵 4강전과 결승전을 보러 가기도 했다. 4강전에서 이탈리아가 이기자 델 피에로는 노엘에게 결승 보러 올때 꼭 똑같은 옷 입고 와달라고 요청했고 노엘은 같은 옷을 입고 갔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우승했다.

축구에 대한 애정이 깊은 만큼 칭찬 뿐만 아니라 비판도 날카롭다. 노엘은 첼시의 주장 존 테리를 상당히 안 좋아한다. 존 테리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존 테리는 사생활에서 문제가 많은 사람인데 그런 면이 노엘에게는 무척 좋지 않게 비추어진 듯. 2009년 여름 존 테리와 맨체스터 시티가 접촉했다는 뉴스가 떴을 때도, 노엘은 존 테리의 영입을 반대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다가 존 테리의 불륜 행각이 까발려졌을 때 노엘의 반응은... 게다가 존 테리가 불륜을 저지른 여자는 맨체스터 시티 소속의 웨인 브리지의 약혼녀였다. 평소에 존 테리를 싫어했던 노엘이 이 사건으로 노발대발한 건 당연했던 일. 대충 노엘 갤러거가 했던 인터뷰를 요약하자면 "존 테리 그 자식은 완전히 씨X놈이야. 내가 그 개X끼를 만나면 무슨 짓을 벌일지 모르겠어."

반대로 첼시 출신의 조 콜은 오아시스의 열성 팬으로, 14살 소년 시절 처음 CD플레이어를 구입한 계기가 오아시스 2집 앨범의 Wonderwall을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때 이미 오아시스 콘서트 장에 갔었고 그 안에서 자신이 가장 어린 팬이었을 거라 회상했다. 노엘이 무척 좋아하고 극찬을 아끼지 않는 감독 중 하나가 주제 무리뉴인 것을 보면 첼시의 주장 존 테리를 싫어하는 것이 맨유와 달리 첼시 팀에 대한 노엘의 생각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듯. 물론 첼시는 쓰레기라고 깐적이 있지만 그것은 일종의 장난이다.

파일:Attachment/bluemoon guitar.png

2008년 웨인 루니와 벌어진 기타 해프닝은 유명하다. 오아시스의 팬인 루니에게 보낼 선물을 위해 루니의 부인 콜린이 노엘에게 깁슨 레스폴을 보내 그의 사인을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이에 노엘은 기타를 맨시티의 상징인 파란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맨시티의 응원가인 Blue Moon 가사를 잔뜩 적어 돌려보낸다. 이에 루니는 크게 재미있어하며난 어차피 에버튼 서포터거든 그 해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시원하게 100호 골을 넣은 다음 세리머니 사진을 찍어 노엘에게 보답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기타는 2015년까지 루니의 집에 잘 보관되어있는 것으로 드러났다.[23]

2015년 2월 27일, 2집 발매를 앞두고 그레이엄 노튼쇼에 출연했는데 맨유의 레전드 데이비드 베컴과 같이 출연했다. 이때 뮤직비디오 찍기 싫다고 투덜대던 노엘은 갑자기 옆에 앉은 베컴을 향해 "내 뮤직비디오에 나올래요?"했는데 베컴은 약간 당황했다가 "좋죠!!(would be lovely)"라고 답했고, 자신은 물론 아이들도 오아시스의 팬이며 맨체스터에서 경기가 있을 때 노엘과 만나 악수도 했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역시 오아시스 열성 팬으로 이적 직후인 2009년 인터뷰에서 맨체스터가 그리운 이유 중 하나로 오아시스를 꼽았다. 처음 맨체스터에 왔을 땐 오아시스가 누군지 모르고 테크노 음악을 좋아했지만, 맨체스터에 있으면서 그들이 누군지 모르고 계속 지낼 수는 없죠. 영국 선수들은 드레싱 룸 안에서 오아시스 노래 듣는 걸 좋아해요. 저는 맨체스터에서 그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어요. 너무 긴장해서 말을 걸어보긴 힘들었고요. 쉽게 친근하게 다가갈 외모는 아닌 듯 하지만 창조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아요.라고 진솔하게 인터뷰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Champagne Supernova라고 한다. 친한 선수들끼리 돈을 모아 오아시스를 초청, 자신들만을 위한 오아시스 공연을 개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고. 맨유 선수로서 오아시스 공연장에 가긴 여러 모로 힘들었을 테니 이런 차선책까지 떠올렸던 모양이다.

축구 천재 리오넬 메시 역시 국대 동료 테베즈의 소개로 오아시스의 팬이 되었고 Don't Look Back In Anger와 Roll It Over를 좋아하는 노래로 꼽았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축구클럽 중 하나와 상박 하는 선수 둘 을 자신의 영향 아래 둔 위엄.

요즘은 노엘이 맨시티 선수들 중에서 다비드 실바를 가장 좋아하는지 인터뷰마다 다비드 실바를 칭찬하고 있다. 물론 실바는 칭찬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2015년 5월 초, NBC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다비드 실바는 내 아내와 함께 자도 된다."고 과격한 애정 표현을 해서 노엘의 지극한 아내 사랑을 알던 한국의 노엘 팬들과 축구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상당히 충격을 주는 듯 했으나, 이런 류의 비유는 영국 현지에서는 축구 팬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고 무엇보다 당사자인 사라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ㅎㅎ 이미 흑발의 작은 남자(노엘)와 함께 하고 있으니 키가 크고 금발을 원해. 데이비드 베컴 같은?"하고 더더욱 쿨한 유머로 받아주면서 한국의 누리꾼들까지 빵 터지고 말았다. 그렇게 실바는 사라에게 차였지만, 캐피털 컵 우승 직후 실바의 유니폼을 선물 받은 노엘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4 국내의 인식

노엘 갤러거, 한국에서 가장 친근한 48세- 2015년 5월 21일 오전에 기사가 게재되고 며칠 동안 네이버 메인 뮤직란에 걸려 있었다.

90년대 브릿팝 열풍에 힘입어 제2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두주자가 oasis였기에, 당시 PC통신 락음악 동호회에서 노엘은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는 당시 일본 음악 잡지의 인기 투표에서 노엘이 동생 리암을 압도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아시아에서의 인기는 노엘이 리암보다 많았으나, 같은 시기 영국 음악 잡지를 보면 표지 모델로 등장해도 리암이 센터이고 노엘이 살짝 밀렸다. 오아시스 초기에는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를 제외하면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건 리암이었다.

그러나 오아시스 후기로 갈수록 탄탄한 작곡 실력만큼이나 보컬 면에서도 노엘이 인정받으면서 리암이 뒤로 밀리는 경향을 보였고, 영국의 주간 남성 잡지인 Zoo Magazine 독자들이 선정한 '2007년 영국에서 가장 멋진 남자(100 Coolest British Men of 2007)' 1위에 노엘 갤러거가 선정되었다.# 이때 2위가 스티븐 제라드, 3위가 닥터 후의 데이비드 테넌트, 4위가 007 주인공을 맡은 다니엘 크레이그였고 리암은 22위였다. 이듬해에도 노엘은 3위에 랭크. 여기에 2010년 이후로는 노엘의 성공적인 솔로 활동과는 반대로 1집과 2집의 연이은 저조한 판매량에 비디아이가 해체하면서 지금은 완전히 역전된 상태. 노엘 갤러거의 인기는 기존부터 워낙 높았기에 그 인기가 급작스러운 것은 아니다.

거친 언행의 인터뷰와 별개로, 팬들에게 친절하고 사인도 잘 해주는 등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걸로 유명하다. 오아시스 첫 내한 당시 Mnet 인터뷰에서 노엘이 먼저 시계를 풀어 테이블에 내려놓고 손으로 잡고 인터뷰에 응해서 기자가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사연이 있다. 녹음기에 시계로 인한 잡음이 들어갈까봐 기자를 배려해준 것. 비단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노엘의 인터뷰 준비는 언제나 훌륭하며, 언제나 인터뷰할 때는 핸드폰을 꺼놓고 상대방이 편하게 인터뷰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고 한다.

솔로로 내한왔을 때도 혼자서 코엑스로 쇼핑을 나갔던 노엘답게, 처음으로 한국에 왔을 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숙소에서 가까운 압구정으로 나갔다가 마침 SM엔터테인먼트의 사옥 앞을 지나게 됐는데, 그 앞에 모여있던 동방신기의 소녀팬들 중 몇 명이 노엘을 알아보고 따라갔다. 차마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하고, 거리를 유지한 채 열심히 따라오는 한국 소녀들을 보다못한 노엘이 너희들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가 자신의 팬임을 알고 선선히 사인을 해주었다고 한다. 아이돌 가수의 플카를 들고 서있던 소녀팬들인 만큼 자신을 좋아하고 알아볼 줄은 노엘이 생각을 못했던 모양이다.

몇번의 한국의 투어 방문 후 노엘의 한국 팬들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이다. 2015년 최근 BBC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색소폰 연주자일거야! 한국에 가봤나? 말그대로 아시아의 아일랜드야. 거기서 공연하면 더블린 공연같아. 한국 팬들은 미쳤어. 아주 정신이 나갔다고. 진짜로." [24]라고 한국에 대해 언급했다. 다른 국가에 비해 10대 팬층(교복을 입고 공연장에 온 관객들도 있었다!)이 두터운 것도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냈다. 출처


(2015년 7월 23일, 노엘이 내한 직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한 사진)

5 노엘의 실제 키는?

프로필상 키는 173cm이다. 연예인들은 프로필 키를 조금씩 부풀리는 게 상례이다 보니 노엘도 실제 키는 170cm가 안 될 거라 추측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아래 사진들을 보면 정직하게 프로필 그대로 173cm이거나, 이보다 더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진은 찍는 각도와 서는 위치, 헤어스타일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올 수 있음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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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cm인 제이크 버그와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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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semblée Générale dans les locaux de l'Entreprise Lainé le 19 Novembre 2014.jpg

프로필상 같은 키인 세르히오 아구에로와 비교해도 노엘이 조금 더 크다. 다만 축구선수들은 스터드가 있는 축구화를 신고 측정한 키를 등록하기에 이는 감안해야 할 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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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of Mian Ghulam Kalhoro 11.jpg

마찬가지. 174cm인 사발레타와 비교해도 살짝 더 큰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키높이구두에 깔창까지 썼다면??
애초에 축구 선수들은 스터드 달린 축구화 신고 키 재잖아 그러니 축구 선수들이 키를 뻥튀기한거 아닐까?

6 그 외

부의 상징 블랙 아멕스를 사용한다. 2015년 기준 순자산액(net worth)은 $60 million(6천만달러, 한화 약 680억원)정도로 추정된다.

2008년 2월 1일, JAY Z가 2008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전 페스티벌의 표가 2시간 만에 매진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총 137,500 석중 100,000석도 채우지 못했다. 비평가들은 이에 대해 락밴드와는 상반되는 힙합 가수를 내세운 것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발언 이후 노엘은 집중 포화를 당했으며 자신의 발언을 번복하게 된다.

노엘은 전통적으로 기타 연주가 주를 이루는 페스티벌에서 제이지를 헤드라인으로 지정한 주최 측을 비판하며 이렇게 말했다.

  • "만약 부숴지지도 않았고 문제도 없다면 고치려 들지 마. 만약 네가 부숴버리기 시작한다면 사람들은 가지 않을 거야. 미안하지만 제이지라고? 어림도 없지. 난 글래스톤베리에서 힙합은 안 볼거야."

논란은 몇 달 사이 가수들, 기획자들, 팬들이 각각 찬반을 다투는 상황으로 번져갔다. 제이지는 이에 대해 이렇게 반응했다.

  • "우린 기타를 연주하지 않아, 노엘. 하지만 힙합은 다른 음악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 이 헤드라인 쇼는 당연한 진행 과정이야. 랩은 아직도 진화하고 있지. 플라티늄 앨범이 된 Bronx 와 런 디엠씨의 멤버 아프리카 밤바타의 디제잉에서부터 그래미상 랩부문에서 처음으로 수상한 DJ Jazzy Jeff & The Fresh Prince까지, 난 그저 다음 차례일 뿐이야. 우린 서로의 음악 장르를 존중해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해."

제이지는 그의 2008년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오프닝을 오아시스의 〈Wonderwall〉의 커버버전으로 막을 열었다. 노엘이 이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말했다.

  •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된 건 내가 제이지는 글래스톤베리에서 공연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했을 때 겠지. 그건 진짜 말도 안되는 헛소리였다니까. 전엔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누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글래스톤베리가 티켓 매진 실패했는데 이게 만약 제이지 때문이라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더라구. 거기서부터 내가 Speakers' Corner(영국에 있는 자유발언대)의 주황색 발판 위에 서서 '들어봐, 형제 자매들. 이번년도 글래스톤베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라고 외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까지 오게 된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만약 내가 '맥도날드에 있는 치킨 샌드위치들은 말 그대로 틀려 먹었어'라고 한다 해서 그게 세상 모든 닭들이나 샌드위치를 욕하게 되는 건 아니란 소리야. 전에 도쿄에서 제이지를 만났는데 거기서 그의 공연을 본 적이 있어. 내 취향은 아니었지만 괜찮더라. 우린 모두 크리스 마틴을 친구로 두기도 한걸. 난 그저 힙합의 충격적인 표현을 싫어하는 남자일 뿐이야. 랩퍼나 힙합, 그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싫어하진 않아. 80년대 랩이 한창 영감을 주고 있을 때 맨체스터에서 열린 데프잼 투어에 갔던 적도 있어. 퍼블릭 에네미는 굉장했지. 근데 항상 지위나 재산에 대해서 만 얘기하고 있어서 나한텐 그다지 와닿지 않았어."

제이지가 이러한 노엘의 코멘트에 대해 질문 받았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 "노엘이랑 말해본 지는 꽤 됐지만 그가 연락하려고 한단 소리를 들었어. 난 아무 유감 없고, 모든 게 다 괜찮아. 언제나 말해왔지만 난 그냥 좋은 음악 나쁜 음악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내 초창기 인터뷰들을 보라구. 난 언제나 사람들이 쉽게 파악하기 위해 음악에 규정짓는 선들과 분류 따위를 믿지 않는다고 말해 왔었지."

또한 앞으로 어떤 가수와 작업을 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는 "아무나. 오아시스도 뭐. 상관없어"라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2015년 글라스톤베리 헤드라이너가...

왼손잡이이다. 왼손잡이 항목에서 상당히 늦게 추가되었다. 기타를 오른손으로 치기 때문에 덜 알려져서 그런 듯 하다. 커트 코베인은 원래 오른손잡이지만 왼손 기타를 써서 왼손잡이임이 널리 알려 졌듯 기타 치는 손에 따라 어느 손잡이인지 알려지는 정도가 상당히 다른 것 때문에 그런 것. 본인 말로는 오른손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기타 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한쪽 팔에 관절이 두 개라고 한다

11년 간 동거하던 여친과 결혼했다.

인터뷰에서 종종 케이크, 초코바 등등 달달한 군것질 거리 들을 언급 하다 보니 단 것 덕후 기믹이 붙기도. 요크셔 티[25] 를 굉장히 좋아해 Love Music Love Food : The Rockstar Cookbook이라는 레시피북 겸 사진집 에서는 아예 요크셔 티와 연결지어서 나오기도. 나름의 밀크티 레시피도 가지고 있다. 아래 이미지는 책에서 나온 노엘식 요크셔 밀크티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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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자면,

1. 티백과 설탕을 채운다 (요크셔 티백)
2. 물을 컵 위쪽의 1인치까지만 채우고 적절한 시간 동안 태운다 본격 뮤지션 김대기
3. 차 색이 노란색 봉지에 든 캐러멜(...) 같은 색이여야 한다
4. 우유를 마지막에 넣는다
5. 마신다

참으로 간단하다.

인터뷰에서 초창기의 건방진 이미지에 대해서 설명했다. 당시에는 말로는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없었다고 하지만 여기서 "우리같이 아무도 아닌 무명들이 할수 있으면 너희들도 할수 있다"는 얘기를 전달하고자 싶었다고 밝혔다.

2011년에 작곡의 기술에 대해 인터뷰를 했다 흥미로운 부분은 가사 쓰는 일이 자신에게 악몽이라고 한 것이다. 가사 그거 막 쓰는 거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말할 게 그렇게 많이 없으니까.' 인터뷰어가 '하지만 당신은 엄청난 이야기꾼이잖아요!'라고 하자 그렇기는 하지만 그 모든 것에 대해 일일이 곡을 썼더라면 지금 당신은 나를 인터뷰하고 있지도 않을 거라며 플라시보의 브라이언 몰코 같은 꼴이 났을 거라고 말했다. 당신 앨범에 참여한 음악가들 상당수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냐는 말에 '쟈니 로튼은 결코 쟈니 로튼에 대해 노래하지 않았어. 그들은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했지. 더 스페셜즈도, 더 잼도 우리들에 대해 노래했어'라고 대꾸하며, 이어지는 비판에서 안 좋은 예시로 로비 윌리엄스를 들었다. 모든 게 얼마나 자신이 개 같은지에 대한 곡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필을 하겠냐고(...)랩 음악도 모든 게 래퍼 자신의 고투, 어떻게 길거리를 배회하다가 출세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라서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고. 노엘의 음악관에 대해서 알 수 있게 하는 대목.

2015년 7월에는 NME를 통해 한 록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나온 Avicii디스했는데, 또 그뿐만 아니라 EDM이라는 장르 자체를 디스 하다시피 했다.[26]이게 일파만파 퍼지면서 디스당한 DJ들이 NME를 통하거나 간접적으로 노엘을 디스하는. 그런데 NME 독자들은 "그래서 너네는 누구인데?"하며 듣보잡 취급... 평소엔 이젠 지겹다며 노엘을 깠으면서 그런데 그 깠던 헤드라이너가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와 협업을 했다!!

2013년엔 원 디렉션을 까댔다는 것이 밝혀졌다. 별 다른건 아니지만 특이사항 이라면 노엘에게 한 소리를 들은 원 디렉션은 "노엘 갤러거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아무렇지도 않다"(...)고 초연한 모습을 보였으며, 멤버의 말에 따르면 데이먼 알반도 노엘 갤러거와 함께 원 디렉션을 깠다고 한다. 그런데 2015년 롤링스톤과의 인터뷰에서 원디렉션의 곧 출시될 앨범이 오아시스 풍이라면서 화제가 되었는데, 노엘은 '원디렉션에서 해리만 만나봤는데 좋은 녀석'이라 칭찬하면서 멤버 제인이 탈퇴한 것에 폭언을 동원해가며 맹렬히 비판했다.

인터뷰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리암을 욕하며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정확히는 술 취한 자신의 동생이 Red Indian 같아 보인다고 했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붉은 색(red)"에 비유하는 것은 인종차별에 해당한다.[27]

2012 NME awards에서 "Godlike genius"라는 부문의 상을 받았다. 그야말로 노엘을 위한 상이라 할 수 있다.
수상소감(한국어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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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트로피.[28]

GQ 시상식에서 시상식에 참석한 대사 윌리엄 헤이그를 향해 "지금 세계에서 정리해야 될 일이 많은데 여기에 오고 참 잘 하는 일이다"라는 식으로 얘기해서 물의를 빚었다.

연기를 정말 못해서 팬들은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한다. 노엘도 뮤직비디오 촬영이 달갑지는 않은듯. 뮤비 촬영은 재밌냐는 기자의 질문에 뮤비 뻑킹싫어라고 답했었다.
정작 본인은 인터뷰에서 자신이 했던 최고의 연기라고 자랑했다

공연을 할 때 속옷을 입지 않는다고 밝혔다. # 그러나 레딧에서의 AMA(Ask Me Anything)에서 농담이었다고 다시 밝혔다.

런던 지하철에서 자주 보이신다 카더라

2015년 12월 8일 영국 링컨에서 열린 콘서트에 5년만에 전 오아시스 멤버 겜 아처와 함께 무대에 섰다. 같이 Wonderwall을 포함한 오아시스 시절 노래 4곡과 하이플라잉버즈의 곡, 커버곡 등을 연주. [1]

2016년 6월 23일 브렉시트 당시 민중들을 대신해 국정을 운영해야하는 정치인들이 맡은 일을 하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에 대해 질타하기도 했다. # 번역본

7 Discography

  • The Death of You and Me (Single; 2011. 8. 19)
  • AKA... What a Life! (Single; 2011. 9. 9)
  •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Album; 2011 . 10. 17)
  • If I Had a Gun... (Single; 2011. 12. 26)
  • Dream On (Single; 2012. 3. 11)
  • Songs from the Great White North... (EP; 2012. 4. 21)[29]
  • Everybody's on the Run (Single; 2012. 7. 29)
  • International Magic Live at The O2 (Video album 2012. 8. 15)
  • iTunes Festival: London 2012 (EP; 2012. 9. 21)
  • In The Heat Of The Moment (Single; 2015. 1. 19)[30]
  • Ballad Of The Mighty I (Single; 2015. 2. 23)
  • Chasing Yesterday (Album; 2015 . 03. 03)
  • Riverman (Single; 2015. 4. 11)

8 관련 문서

  1. 갤러거(Gallagher)라는 성씨는 아일랜드계 성씨인 Ó Gallachóir(오 골리허)에서 유래한 성씨이다. 이 이름으로 검색해도 이곳으로 들어올 수 있다. Galaga/갤러그 아니다
  2. 매고 있는 기타는 에피폰 1964년 쉐라톤. 노엘이 직접 유니온잭으로 리피니쉬했다.
  3. '내가 그를 좋아하고 그런만큼, 난 씨발 그런게 싫었다고. 사람들이 헤로인에 취해와서, 씨발 자기는 자신이 싫고 죽고싶다고하는거, 우리는 싫다고. 존나 쓰레기거든. 그렇다고 내가 그거에 반발해서 쓴건 아니고, 그냥 그게 내 생각이였어'
  4. 프로듀서 데이브 사디Dave Sardy. 오아시스 7집 Dig Out Your Soul의 프로듀싱 및 믹싱을 담당했다.
  5. 덕분에 케미컬 브라더스 등 테크노 계열에 피처링 할 때 어쿠스틱 곡과는 다른 맛의 보컬을 들려준다
  6. MTV unplugged는 Don't Look Back In Anger 한 곡만 모음집에 수록되었다. 나머지 음원은 전부 부틀렉. 2집 리마스터링 버전에 Round Are Way 언플러그드 버전이 수록됐다.
  7. 코카콜라에서 소송이 걸리자 노엘은 공연에서 어쿠스틱 라이브를 하며 "우리 모두 같이 펩시를 마셔요"라고 한다.
  8. 아이러니 하게도 조지해리슨의 My Sweet Lord도 표절소송에 휘말린 역사가 있다!
  9. 나중에 지드래곤이 표절시비에 휘말렸던 그 곡이다. 웃기게도 표절시비가 난 부분은 노엘 갤러거가 조지해리슨에게서 베껴온 바로 그 소절. 표절을 표절했다
  10. 트래비스가 스코틀랜드 로컬 밴드였던 시절부터 노엘은 트래비스를 오아시스 투어 오프닝 밴드로 세웠다.
  11. 오아시스 투어 주문 사항에 보면 항상 요크셔 티백이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영국인답게 투어 다닐 때 항상 차를 마시는데, 오아시스가 아니라 솔로로 다니면 그 티백 상자가 금방 떨어지지 않고 오래간다는 말로 생각된다.
  12. "If he gets offended by my opinions on such things then you know I apologize."
  13. 20세기 초에 크게 유행했던, 노래와 춤, 희극이 어우러진 짧은 뮤지컬극.
  14. 70년대에 독일에서 발생한 프로그레시브 록의 분파로 현재 테크노의 원조격되는 음악. 대표적 아티스트로 크라프트베르그
  15. 공개순은 The Death of You and Me - If I Had a Gun... - AKA...What a Life! 순이지만 스토리 상으론 If I Had a Gun... - The Death of You and Me - AKA...What a Life!이다.
  16. 여기에서 축구는 맨체스터 시티를 의미한다고 해도 무방.
  17. 다만 굳이 영국만 이런 게 아니라 유럽이나 중남미,아프리카,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상당수가 이렇다.축구 구단 창단 역사를 보면 노동자들이 쉬는 날에 모여 축구하며 만들어진 팀이 그 시작이 많다.아니면 교회에서 운영하거나 군인들이 모여서 축구를 하던 팀이 축구팀 첫 시작이다. 유감이지만 한국은 대기업 위주로 창단되거나 국가 운영 팀(충무라든지 화랑,양지팀같은)으로 시작된 축구단이 많았다. 물론 한국도 노동자 팀들도 많았지만 프로리그 역사에서 이들 팀들은 배제되면서 시작되었다..
  18. 단 노엘이 태어났을 때는 맨시티의 전성기(1960년대에 리그 우승 및 컵 위너스컵 우승같이 맨시티에서 그나마 이전에 전성기라고 해야할 시절이었다.)였고, 지금도 그렇지만 맨체스터에서 두 팀의 팬덤 크기는 차이가 별로 없기 때문에 굳이 이럴 이유는 없다.
  19. 그냥 외국에서는 거주지나 출생지에 맞춰서 지지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게 아마 들어맞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국도 강남이나 서초에서는 FC 서울보다는 성남이 훨씬 가까워서 그리로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20. 이는 오아시스가 패션에 있어서는 캐주얼스(캐주얼족)로 분류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10대 후반~20대 초반 영국의 노동계급 젊은이들중에 의외로 많은 숫자가 훌리건에 가담해 있다. 골수 훌리건 조직인 펌(firm)의 구성원들도 대부분 노동계급 젊은이들이다. 아니, 훌리건 이전에 영국의 축구문화 자체가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21. 2016년 기준에서도 주전은 잉글 국대 NO.1 조 하트정도이고 라힘 스털링이 좀 자주 나오긴 한다. 그 외로 넓히면 페이비언 델프정도다.
  22. 반대로 팀에서 팀 멤버와 인터뷰를 시키기도 한다. 발로텔리와 펩 등에게 그랬다.
  23. 루니의 잉글랜드 국가대표 역대 최다골 기념 다큐멘터리에서 루니가 게리 리네커에게 기타를 자랑했다. 그것 말고도 폴 매카트니가 사인해준 기타도.... 집에 기타(그것도 고가의 기타)기 엄청 많은데 정작 루니는 기타를 잘 못친다 카더라.
  24. "I cannot wait to meet the South Korean guy with a saxophone in hand, lord knows what he'll be dressed in like, but he will be the preeminent saxophonist in all of Korea. Koreans, they are considered the Irish of Asia. They are mental. Have you been to Korea? The gigs are like playing in Dublin. It is insane. Insane." 21:36초부터 나온다
  25. 요크셔 티는 홍차 중에서 가장 서민 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브랜드로 적은 양으로도 향이 진하게 우러나, 주로 스트레이트보단 밀크티로 많이 만들어 마시는 홍차라고. 그러나 노엘이 마시는 요크셔 '레드를 국내에서 구하려면 힘들다. 만약 마셔보고 싶다면 직구를 해서 마셔보자.
  26. EDM을 라이브로 볼 가치가 있느냐, 단순히 무대에서 CD를 재생하는(CD-playing) 것 뿐이라는 발언을 했다. 2011년에는 EDM은 그 어떤 사람Fucker도 만들 수 있다는 말도 했다.
  27. 백인과 흑인을 white과 black으로 지칭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이다. 이전 문서에서 "Red Indian"이 Urban Dictionary에 '술 취한 사람을 묘사하는 단어'로 사용된다는 근거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다는 것이 왜곡된 서술이라고 주장하였으나, urban dictionary에 등재된 표현과 그것의 인종차별적임은 관련이 없다.
  28. 원래 NME어워드 트로피는 다 저렇게 생겼다. NME매거진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어워드 내내 술 퍼먹다가 헤롱헤롱 하면서 수상소감 하는 뮤지션들이 일품.
  29.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싱글컷의 비사이드 모음집
  30.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 트레일러 영상에 삽입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