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William John Paul "Liam"[1][2] Gallagher (윌리엄 존 폴 "리암" 갤러거) |
가족관계 | 페기(어머니) 토머스(아버지) 폴(큰형) 노엘( 니콜(전처) 몰리(딸) 레논(아들) 진(아들) |
성별 | 남자 |
신장 | 175cm 추정 |
출생일 | 1972년 9월 21일 |
기자 : 사람들이 당신의 거만한 태도에 대해 말하던데...리암 : 아, 그래. 그게 지금의 오아시스를 만들었잖아. 안 그래?
록밴드 오아시스 및 비디 아이의 전 보컬이자 딜러프론트맨이었으며 이제는 작곡도 한다. 남성 의류 브랜드 프리티 그린의 사장이기도 하다. 당연하게도 리암 갤러리에서 활동하는 네티즌이 아니다 모드 문화 전도사
목차
1 인물
어린 시절 둘째 형과 함께 있는 리암. 뭐야 이거 무서워
1994년도의 젊은 리암.
오아시스가 해체한 2009년의 리암.
90년대 후반 최고의 프론트맨
"노엘의 동생이 얼마나 예쁘게 생겼는지, 그 애가 그룹의 프론트맨을 하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얘기가 늘상 떠돌아 다녔다. 그때는 훨씬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마음이 약해 불평 한마디 못할 정도였고, 무척 연약해 보였다... 오아시스의 성공으로 리엄은 껍질을 깨고 나온 것 같다." ㅡ인스파이럴 카페츠의 보컬 클린트 분(Clint Boon), 1997년에 오아시스 매니지먼트 회사의 요구로 방영이 금지된 TV 다큐멘터리에서.
리암을 막는 흑형 표정이 '하, 이 가소로운 새끼'라고 말하는 것 같다
Q 매거진 선정 싸움꾼 Top 10 리스트 중 1위(...) 하여간 매번 이런 것만 1위
역시 Q 매거진의 독자 투표에 의해 선정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런트맨 리스트 중에서도 1위였지만 이런건 묻히는듯
그 외 각종 짤방 및 문제 발언에 대해서는 이쪽으로.
기본적으로는 록밴드의 프런트맨이나 뮤지션보다는 싸움꾼 이미지가 강하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엘은 가끔 인터뷰나 쇼 프로에서 독설을 퍼붓거나 비꼬는 것뿐이지만, 리암은 직접 행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사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든 어김없이 큼직하게 헤드라인으로 뽑곤 하는 영국 언론의 영향이 크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기행이 과장이 되면 됐을지 몰라도 절대로 평범하지는 않다(...).
오아시스의 전성기 시절에는 비행기에서 빵(스콘)을 자기만 안 준다고 스튜어디스에게 윽박을 질러대어 캐세이퍼시픽 항공에서 영구 출입 금지를 당할 정도로 툭하면 말썽을 부리고, 그들이 페리를 타고 투어에 가던 중 노엘을 제외한 멤버들이 카지노에서 룰렛의 공을 집어들며 난투가 일어나 실제론 5초 만에 경비원들한테 제압당했지만 공연이 취소되는 상황도 있었다. 또한 2009년 방한때 리암은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릴리 앨런과 퍼스트 클래스에서 난동을 부렸다고 하지만, 크게 회자되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비틀즈의 멤버 조지 해리슨의 '오아시스는 30년이면 잊혀질 밴드다. 노엘은 재능있는 친구지만. 그도 노래를 할 줄 아는데 왜 굳이 리암을 데리고 있는지 모르겠다. 리암은 쓸모없다.'는 식의 발언에, MTV에 출연해 '내가 아직 비틀즈와 조지 해리슨을 좋아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이 젖꼭지같은 늙은이야 그가 나보고 웃긴 녀석이라고 했지? 그가 나에 대해 뭘 아는데? 그냥 신문만 보고 다 아는 듯이 나불대는 거 그게 진짜 병신같은 짓이라고.'[3]라고 하고 잡지에서는 네 머리통으로 골프를 치겠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후 한참이 지나고 '그땐 화가 나서 그랬고, 조지는 좋은 작곡가며 난 그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뿐만아니라 친형인 노엘에게 딸인 아나이스가 친자식이 아닌 바람펴서 낳은 애라는 식에 막말을 해버려 큰 싸움이 나기도 했다. 이렇듯 대단한 성격이니 어떤 식으로든 까이는 것도 무리는 아닐터이다.
그러나 사실 리암의 싸움에 대해선 독설을 제외하곤 과장된 면이 조금 많은데, 정작 그의 행동으로 직접적인 상해를 입힌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상대를 겁주기 위한 협박성이기 때문. 싸움꾼이라는 평판은 이것이 언론을 통해 지나치게 회자되고 웃음거리가 된 결과이다. 거침없는 성격에 직설적인 발언과 행동은 자극적인 소재를 원하는 언론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떡밥거리. 때문에 2011년 현재조차도 그의 호불호에 관련된 사소한 발언 하나 하나는 물론 그의 형과 더불어 언제나 영국의 음악 매체 및 연예 가십성 황색언론의 좋은 소잿거리가 되곤 한다.
2 음악
비록 평소 하는 짓은 망나니같아 보이지만 영국에서 가장 개성있는 목소리를 갖고 있는 사람 중 한명이고 작곡 천재인 형에게 묻히지만 좋은 노래도 쓸 줄 아는 재능있는 뮤지션이다. 오아시스를 국민적 스타로 만든 데에는 노엘의 작곡실력이 가장 큰 역할을 했지만 만일 리암의 보컬이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는게 중론.
형 노엘과 함께 자타공인 비틀즈빠. 성공한 덕후의 좋은 예 60년대 음악을 상당히 좋아하며 특히 존 레논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한다. 닐 영도 좋아한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뽑는 인터뷰에서도 뽑았던 것들이 비지스(Bee Gees), 조지 해리슨그래놓고 맞장뜨자고 하냐, 더 킹크스 등 6~70년대에 활동했던 밴드나 뮤지션들이 대부분. 당신 72년생 아니었나 그리고 대표적인 모드 밴드 더 후와 더 잼을 선호하는 모습이나 프리티 그린의 스타일을 보건대 모드족 스타일과 음악을 추종하는 것으로도 보임. 하지만 80-90년대 밴드인 더 라스(The La's)도 좋아한다고 밝혔다.
잘 알려졌다시피 섹스 피스톨즈와 스톤 로지즈의 팬이기도 하다. 그가 16살 때, 처음 밴드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바로 스톤 로지즈의 공연을 보고 난 이후라고. 스톤 로지즈 재결합 발표 이후로는 전형적인 밴드 덕후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카사비안에 대해 호평을 하고, 레이디 가가를 좋아한다고 하거나 인터뷰 중 악틱 몽키즈의 곡인 Cornerstone에 대한 감상을 짧게 언급하는 등 요즘 곡이라 해서 모두 기피하지는 않는 듯. 최근에는 요즘 나온 밴드들 중에서는 컬츠[4]를 좋아한다고 하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심심하면 라디오헤드를 까기도.
2011 비디 아이 내한 당시 오프닝 밴드로 섰던 국카스텐을 좋아했다 카더라. 국카스텐은 라디오헤드를 좋아한다 카던데?
리암의 작곡 스타일에 대해서 겜 아처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략) 리암은 곡을 만들어도 훨씬 변화가능성이 많다고 할까. 그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어떤 사운드가 맞는지 틀린지 잘 알아. 훌륭한 프로듀서이기도 하지. 누군가 잘못한 게 있으면 바로 알아차리거든. 물론 그런 역할은 노엘이 훨씬 많이 하고 정말 열심히 하지. 리암은 노엘보다는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더 관심이 있는 편이야." (2008.9 NME Dig Out Your Soul 특집 인터뷰)
스톤 로지즈의 기타리스트인 존 스콰이어가 1996년에 결성했던 록밴드 더 시호시즈(The Seahorses)의 곡 중 97년 무렵에 발표된 Love Me and Leave Me는 리암 갤러거와 존 스콰이어가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다. 다른 밴드의 곡인데다 공동 작곡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 무렵에 작곡가로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고, 2000년 오아시스의 4집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수록곡 Little James로 처음 단독 작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2.1 오아시스
형과 비교되어 노래는 잘하는데 작곡실력은 시망이란 이미지가 강하지만 오아시스의 히트곡 중 Songbird와 I'm Outta Time은 리암이 만든 곡이다. 참고로 둘 다 싱글컷 되었고 Born on a Different Cloud와 더불어서 노엘에게 유례없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사실 노엘이 리암의 '작곡 능력'을 깐 적은 생각보다 드문 편이다. 그리고 대부분 B사이드로 머물긴 했지만 의외로 좋은 곡들이 많다. 리암 갤러거가 작곡을 못한다기보다는 노엘 갤러거가 사기캐천재라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굳이 두 사람을 비교해보자면, 멜로딕하면서 귀에 익숙한 곡 전개가 특징인 노엘에 비해, 리암의 곡은 부분 부분의 멜로디는 잘 뽑아내지만 형에 비하면 전개를 잘 못하는 편. 아니면 좋은 멜로디 구간을 하나 만들어놔서 곡 끝날 때까지 계속 반복한다.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Guess God Thinks I'm Abel에서는 아예 반복만 하다가 중간에 끊어버린다. 이쯤되면 정말 못하는 것인지 나름의 작곡 컨셉인건지 써놓은 곡들을 보면 의외로 3분 이내의 짧고 맑고 예쁜 곡을 쓰는 것에 재능이 있는 듯 하다.
작곡한 곡 일람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 Little James
- Songbird
- Born On A Different Cloud
- Better Man
- Love Like A Bomb (겜 아처와 공동 작곡)
- The Meaning of Soul
- Guess God Thinks I'm Abel
- Won't Let You Down (싱글 Lyla의 B-side)
- Pass Me Down the Wine (싱글 The Importance Of Being Idle의 B-side)
- I'm Outta Time
- Ain't Got Nothin
- Soldier On
- Boy with the Blues (Deluxe Boxset 보너스 트랙/iTunes exclusive EP 수록)
- I Believe in All (Deluxe Boxset 보너스 트랙/iTunes exclusive EP 수록/Japan Limitid Edition, Korea Tour Edition B-side)
2.2 비디 아이
비디 아이에서는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작곡에 나선다. 물론 여지없이 혹평도 있고 멜로디 반복도 계속되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일취월장 했다는 평. 정말로 확실히 나아졌다.
작곡한 곡 일람
Different Gear, Still Speeding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곡)
- Beatles and Stones
- Bring The Light
- For Anyone
- Wigwam
- The Morning Son
- Man Of Misery (
프리티 그린 테마곡/싱글 Millionaire의 B-side/iTunes 보너스 트랙)
BE (리암 갤러거/겜 아처/앤디 벨 공동 작사/작곡)
2014년 10월 25일 자신의 트위터로 비디아이가 해체함을 알렸다.
15년 3월 14일 오후 11시 55분, 노엘 갤러거의 공연 입장권으로 보이는 것과 함께 셀카를 찍어 올렸다.
[1]
이걸 본 사람들은 '얘네 화해 하는 것 보다 남북통일이 더 빠를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정도의 반응(...)
이 둘이 화해를 한 건지, 단순히 리암의 어그로인지는 아직 다음 트윗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추가바람
...이었는데 노엘이 리암에게 티켓을 준 적이 없다고 밝히며 어그로장난 트윗으로 밝혀졌다.
2.3 비디 아이 해체 이후
그의 근황.
노래해라 노래해
노래하면 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비디 아이 해체 이후에는 대중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며 조용히 지내고 있다. 조용히 휴식기를 보내고 있는 듯하다. 방송 출연도 거의 하지 않아 근황을 알기 어렵다. 다만 가끔씩 트윗을 올려주며 팬들과 어느정도의 소통은 하고 있다.그런데 이제는 트위터 프로필 사진만 바꾸고 글을 안 올린다 글을 심지어 그 사진 찍은 시기가 오아시스 7집 시기 전후(...)로 추정된다 팬들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유벤투스의 자선 축구경기에 참여하였는데 OME급의 트래핑을 보여주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의 모습을 ㅂㅎㄴ 팬들의 반응은 '그동안 얼마나 운동을 안 했길래 저렇게 배가 나왔지?'(...) 배가 많이 나오기는 했다 뚱리암. 피트 도허티와 함께 제1의 외모 관리는 다이어트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교체 아웃되면서 인터뷰에서 남긴 경기 소감은 "심장마비 걸릴 것 같아요".
2015년에 솔로 앨범을 낼 것이라는 루머가 돌았으나 NME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리암의 솔로 앨범을 기대하던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으나 아일랜드의 한 술집(...)에서 미발표곡을 혼자 기타치며 노래하는 동영상이 올라오며 그나마 위로를...동영상 댓글의 절반 이상은 '리암 갤러거가 노래해주고 있는데 조용히 듣지 못할 망정 떠드는 놈들은 뭐냐', '저 XX가 되도 않는 드럼쳐서 직캠 퀄리티 망쳤네'등의 내용이 차지하고 있다. 위 아 더 월드
솔로 공연은 하고있지 않으나 더 후의 무대에 가끔씩 게스트로 나왔다. My Generation을 부르는데 굉장히 높은 퀄리티의 목소리를 보여주었다. 휴식기에도 목관리를 소홀히 하고있지 않은듯. TFI Friday에서도 더 후와 함께 My Generation을 부르며 정말 오랜만에 방송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때 무대에는 초창기 오아시스 멤버 본헤드와 오아시스 6집과 7집 드럼 세션에 참가한 잭 스타키가 함께 올랐다.
이혼 재산분할 소송에서 재산의 절반인 550만유로(약 70억원)을 전 부인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덤으로 법정에서 소란을 일으킨 죄로 벌금 80만유로(약 10억원)까지 받게 되었다.
이후 트위터에 벨리즈에 휴가를 간 사진이 올라왔다.하도 팬들이 살아있냐고 울어대서 벨리즈로 말장난(...)을 쳤다가 리암어인줄 알고 팬들이 휴가를 간 줄 모르고 계속 울어대자 그냥 인증샷을 올렸다
2016년 2월 28일, 트위터에 I'm coming이라는 말을 썼다.
2016년 5월 24일에 트위터에 형 노엘의 옆모습 사진을 올려놓고 감자(Potato)라고 적어놓았다. 이런 트윗을 두 번이나 올렸다.노엘은 X나 감자같이 생겨먹었어. 외워. 두 번 외워. 7월 9일에도 같은 짓을 반복했다.
게다가 형을 감자라고 놀려먹은 그 날에 F**K OASIS라는 트윗을 올렸다.그와중에 누군가가 "취했으면 집에나 가."라는 답글을 달았다.
8월 23일 발매되는 Q 매거진 표지가 리암으로 정해졌고 복귀에 대한 코멘트가 쓰였다고 한다.
결국 2017년에 솔로로 복귀를 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2.4 자세와 창법
마이크에 의지한 채 목을 쭉 뺀 상태에서 뒷짐지고 노래 부르는 특유의 자세가 유명하다.
왠지 등신같지만 멋있어 보인다고 함부로 따라하지 말자. 이 자세는 부르는 사람의 목에 엄청난 압박을 주어 목 관리가 생명인 보컬로서는 최악의 자세이다. 실제로 많은 팬들이 곧잘 이 자세를 시도하지만, 곧이어 엄청난 목의 압박을 느끼고는 그만두곤 한다. 리암이 이 자세로 노래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이렇게 노래를 부르면 좀 더 파워풀한 목소리를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오아시스의 필수 구성요소로 흔히 노엘의 곡과 리암의 보컬을 꼽을 정도로 리암의 보컬은 밴드의 음악색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어떤 노래를 부르든 자기만의 스타일로 바꿔버린다. 한 예로, 더 잼의 Carnation을 커버한 적이 있는데 들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자기 노래로 만들어버렸다. 해당 영상 그리고 비틀즈의 Within You Without You마저도 자기 색깔로 덮어버렸다. 이 커버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발매 40주년 기념으로 이루어진 이벤트이다. 해당 영상[7]
의외로 일렉트로니카 장르와도 인연이 있는데, 데스 인 베이거스의 Scorpio Rising과 The Prodigy의 Shoot Down에 각각 보컬 피처링으로 참여했다. 프로디지의 리엄 하울릿과는 동서지간. 프로디지의 smack my bitch up 커버도 했다 깬다
무엇보다도 리암 보컬의 힘을 잘 알 수 있는 예로 오아시스의 곡들 중 유일하게 디지털 싱글로만 공개된 Lord Don't Slow Me Down을 들 수 있는데, 원곡인 노엘 버전과 미공개된 리암 버전을 비교해보자.
실제로 리암 갤러거의 목소리는 같은 밴드 멤버였던 본헤드로부터 천사의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을 정도로 유니크했다. 프로듀서 마크 코일[8]은 녹음실에서 리암의 노래를 듣고 존 레논이 살아 돌아왔다는 평을 했다. 당시 목소리를 알 수 있는 초창기 Live Forever 데모성가대 대원 리암
이와 같은 천부적인 목소리는 대중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는데, 그 예로 리암의 유명한 별명인 나이팅게일[9]은 오아시스 인디 시절 소공연장에서 울려퍼지는 리암의 목소리에 감동한 관객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맨체스터에서 온 나이팅게일'은 오아시스 데뷔 후에도 오랜 기간 리암을 지칭하는 별명이었으나, Definitely Maybe와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가 나오고 오아시스가 범국가적인 히트를 치면서 리암도 Mr. Wonderwall, Mr. Mad fer it[10]로 불리게 되었다.
처음 그의 독특한 창법은 섹스 피스톨즈의 자니 로튼을 따라한다는 말도 있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구성하여 지금은 고유의 창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현지에서는 "존 레논과 자니 로튼의 멋진 결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데뷔 이후 맑고 시원하게 내지르는 특유의 보컬 스타일로 인기를 끌었으며, 세월이 흐르면서 술담배와 개인적인 취향의 영향으로 허스키한 톤으로 변화한 점은 있지만 지금도 그 스타일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리암은 Live Forever의 후렴부까지 전부 소화할 정도로 폭넓은 음역대를 갖고 있었으나, 지속적인 락앤롤 생활과 더불어 술담배에 자세 크리까지 겹쳐 6집 시기에 이르러서는 허스키를 넘어선 그야말로 듣기 괴로운 소리를 내게 될 정도로 보컬이 크게 망가진 적도 있었다. 때문에 언제부턴가 리암은 고음 파트를 부르지 않게 됐고, 라이브에서는 노엘이 대신 그 부분을 부르곤 했다.[11] [12] 노엘은 리암이 고음 파트를 그만둔 이유에 대해서 "일단 리암놈이 고음을 부르려하질 않음"이라고 밝힌 바 있다.
리암의 목소리 변화 (1994-2009) [13]
한때 일부 팬들 사이에선 "리암의 목소리는 이미 맛이 갔다"며 사형선고까지 내린 적도 있었으나, 비디 아이의 앨범 작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금주를 선언, 최근의 잇따른 라이브에서 어느 정도 목소리를 복원하는데 성공했음을 인증한다. 리암은 인터뷰를 통해 크리스마스나 연말 정도를 빼면 앞으로 20년 동안 금주를 하겠노라고 약속을 하고[14], 애완견이나 아내와 같이 조깅을 하거나, 건강을 위해 차나 비스킷, 연어 따위를 먹는다고 말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건강과 목 컨디션에 신경을 쓰는 모양.
사실 오아시스 앨범녹음과 7집 투어 전에도 리암이 약을 끊고 짧은 금주를 하는 등 목소리 관리를 해왔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90년대 후반 ~ 00년대 초반에 내던 목소리까지 되찾고 그 목소리를 투어 동안 큰 변동 없이[15] 유지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리암에게 목소리를 되찾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리암은 처음으로 그 이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난 그동안 제대로 당하고 있었던 거야!" 그가 상처받은 목소리로 말한다. "난 내 목소리가 그렇게 쓰레기 같았던 줄은 몰랐지만, 지금 설명해줄게. 난 예전엔 인-이어 모니터를 썼었고, 그게 날 밴드로부터 고립시켰어.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건, 노엘이 기타 볼륨을 900까지 올렸기 때문이야. x나 시끄러웠지." (2011/04/02, NME)
비디 아이에 이르러 그의 보컬 스타일은 조금씩 바뀌게 되는데, 몇 몇 곡에서 약간 목에 힘을 빼고 편하게 부르려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특히 B사이드 곡인 World Outside My Room[16]에서는 오아시스 시절의 Married With Children 때보다 한 단계 더 힘을 뺀 부드러운 보컬로, 포럼이나 팬카페 등에서는 처음에는 다들 리암이 불렀는지를 의심하는 반응을 보일 정도였다.
인터넷 상에서 리암의 목소리 변화의 원인을 술, 담배, 약물로 단정짓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술, 담배, 약물의 영향이 전혀 없었던것은 아니겠지만 술, 담배, 약물만으로 목소리가 맛이 갔으면 리암처럼 다시 회복될 수 없다고 한다. 리암의 목소리 변화는 술, 담배, 약물같은 Rock'n'Roll 라이프보다 리암이 스스로 보컬 스타일을 바꾼것에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그리고 리암의 생목으로 노래부르는보컬 스타일상 목 관리를 했냐 안했냐가 목소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보컬 컨디션이 최상일 때 녹음을 하는 스튜디오 레코딩과 연이은 공연·장거리 이동으로 피로에 쩔어있을 투어 말미의 라이브를 비교해서 들어보면 정말 딴판. 라이브 공연도 컨디션이 좋을 투어 초반이나 공연전에 충분한 휴식기간이 있었을 경우 완벽한 라이브를 보여주지만 너무 빡빡하게 일정이 잡혀있거나 많이 지쳐있을 투어 후반에는 듣기 안좋을 정도의 라이브를 보여준다.기복
3 국내의 인식 및 한국 관련
대한민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싱어송라이터이자 감성적인 보컬 톤을 지닌 노엘의 인기가 압도적이다. 그룹 해체 후 각자 솔로 아티스트와 비디아이의 일원으로 내한 왔을 때 노엘은 몇 분만에 티켓을 매진시키고 하루 더 공연을 추가하여 또 매진시켰지만, 비디아이 공연에는 빈 자리가 보일 정도[17]. 하지만 그 동안의 오아시스 콘서트에서 리암은 정말 인기가 많았다. 콘서트 때 리-암! 리-암!하고 부르짖는 서역 남덕들의 목소리는 가히 소덕들을 뛰어넘을 위압감을 주었다.
리암 본인도 일본과 더불어 한국 관객을 굉장히 사랑하는 록스타 중 하나이다. 물론 오아시스 활동 시절, 첫 내한이었던 2006년만 해도 '한국에 온 소감은 어떻냐'는 질문에 '좋아요' 한 마디로 무심하게 대응하던 리암이었으나, 2011년 9월 3일 비디 아이 첫 내한 공연 이후 이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공연 기획사인 나인엔터테인먼트 관계자의 입을 통해 전해졌는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리암이 2009년도 4월 내한공연 당시 유튜브에 올라왔던 한국 지하철 원더월 떼창 동영상을 보고 감명을 받아, 한국 관객들을 정말로 '내 사람들(My kinda people)'이라고 여기게 되었다고. 그래서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계속 내한 공연을 오고 싶어한다고 한다.
이후로는 모두가 알다시피 2009년 4월 오아시스 단독 내한공연과 7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공연, 그리고 11년 9월 비디 아이 단독 내한공연을 거치면서 각각 트위터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 관객들에 대한 애정을 가득 드러낸 바 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에피소드는 각각 이쪽과 이쪽을 참고할 것.
참고로 비디 아이 내한 당시 한국 관광차 이태원동을 돌아다녔으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태원엔 굴러다니는게 외국인인데다가 다들 비슷하게 닮은 사람이려니 하고 지나쳐 갔다고... 굴욕 이태원 프리덤
역시 비디 아이 내한 때, 공연 마지막에 "다음 목요일에 보자"고 인사를 했다. 물론 다음주 공연 예정같은 건 없었기에 다들 무슨 뜻인지 몰라 그냥 리암 식 인사로 치부하고 넘어갔는데, 나중에 사정을 알고 보니 리암은 정말로 다음 목요일에 한국에서 다시 공연을 한다고 알고 있었다고 한다. Far East 투어의 마지막 공연인 대만 공연이 그 다음 목요일에 열리는데 투어 매니저가 대만과 한국을 착각해서 잘못 알려준 모양이라고. 거기다 그 마지막 공연에선 한국 팬들을 위해 스페셜 앵콜로 일본 공연에서 부르지 않는 곡을 서비스할 예정이었다고. 사정을 물어본 사람에게 펩시콜라까지 사주었다고 한다. 부럽다
이름의 이니셜 때문인지 왠지 모르게 종종 LG와 연관지어지기도 한다. 2000년대 초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앨범 시기에 뉴욕[18]에서 다큐멘터리를 촬영할때 LG의 광고판을 가리키며 "이것 봐 내 이름이 온 세상에 깔렸잖아 ㅋㅋㅋㅋ"라고 한 적도 있다.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하면서 비디스타일이라는 패러디 영상이 만들어졌는데 당시 배우자였던 니콜 애플턴과 함께 감상했다. 니콜이 트위터에 올렸다. LOVED IT! 이라고 했다고. 이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후 2013년 프리티 그린 Ask Liam 인터뷰에서 강남스타일을 두고 "Absolute Classic"이며, 신곡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동영상(0:52부터)
4 축구 관련
형 못지 않게 굉장히 열성적인 맨체스터 시티 팬이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증오한다. 인터뷰에서 싫어하는 것 10개를 묻자 맨유 x 10이라고 대답한 적도 있다.
리암은 데뷔 전 올드 트래포드(맨유 홈구장) 근처에서 세차원으로 일한적이 있었는데 맨유에 대한 증오행위로 해고되었다.형이나 동생이나 훌리건 칸토나의 차를 긁고 폴 인스의 BMW를 쇠수세미로 문질렀으며 라이언 긱스에게 물 한 바가지를 퍼부었다.미래를 예견한 정의구현 칸토나는 이 때 오아시스 1집 데모 테입을 받았다고. 이 기사의 제일 밑에 다행히도 리암의 음악 경력은 그보다는 더 오래 지속되고 있다고 쓰여져있다.
리암은 아이폰 유저지만 트위터를 쓰레기 같다고 까면서 잘 하지 않는 편인데, 본인이 기분이 완전 좋을 때나 그 날의 공연이 엄청나게 흥했을 때, 혹은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사람을 언급할 때가 아니면 평소에는 죽어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리암의 트위터도 맨체스터 시티 혹은 맨체스터 더비 경기가 흥할 때는 인증샷을 올리기도 하는 등 깨알같이 업데이트 되곤 한다. 팬들은 리암의 트윗을 보기 위해 맨씨의 승리를 기원한다.
BBC 풋볼 포커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마리오 발로텔리가 유스 선수에게 다트를 던진 일에 "다트를 던지는 것이야말로 남자다운 행동이지"라고 말하며 그를 옹호했다는 식의 내용이 축구 커뮤니티에 퍼지면서 가루가 되도록 까였으나, 원문을 보면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왠지 모르게 오역 쪽이 훨씬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러하다. 관련 동영상(이탈리아어 자막 버전)
"What a geezer. I mean, all that throwing darts at people. That's not cool - a water balloon would have done. You know what I mean? But I like characters. If the world was full of f***ing Gary Neville's man, it would be bobbins, wouldn't it? He just looks like an estate agent"
"이상한 녀석이야. 사람들한테 다트를 던지고 그런 건 쿨하지 않지. 물풍선이라면 모를까. 하지만 난 개성있는 사람들이 좋아. 세상이 빌어먹을 게리 네빌 같은 녀석들로만 가득차 있다면 쓰레기 같지 않겠어? 걘 복덕방 사장처럼 생겼잖아."
그 와중에도 게리 네빌을 깠다.
맨시티 광팬답게 에티하드 스타디움에 종종 모습을 드러낸다.
2011년 5월 15일 스토크 시티와의 FA컵 결승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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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맨체스터 시티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1위 탈환을 한 날.
5 패션 관련
음악만큼이나 패션에 대한 관심도 상당하며, 그런 만큼 베스트와 워스트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엄청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4집 시절의 존 레논 코스프레는 이미 유명하고, 5~6집 시절의 헤어스타일과 패션은 한창때 외모와 맞물려 그야말로 좋은 포스를 뿜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암 갤러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특유의 자세와 8자 걸음걸이와 더불어 아래와 같이 사시사철 입는 야상[19]과 이브 생로랑 호피무늬 슈즈 뿐.
파일:Attachment/SNF14BIZC-580 907884a.jpg [20]
그 때문인지 몰라도 국내에 오아시스 팬이 급증하면서 거리에서 이 패션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다. 물론 야상은 보편적인 패션 아이템이기 때문에 야상을 입는다고 해서 무조건 팬인 것은 아니지만, 그럴 날씨가 아님에도 야상을 굳이 턱까지 잠궈 입고 여기에 호피무늬 슈즈를 갖춰 입는다면, 그 사람은 99.99%...
그렇지만 야상의 길이 때문에 다리가 짧아 보이기 마련이라, 정말이지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패션이다. 저렇게 입고 다니는 본인마저도 소화를 못한다. 코스프레를 할 생각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따라하지 말자.
5.1 프리티 그린
2008년 7월, 남성 패션 브랜드 프리티 그린(Pretty Green)을 런칭했다. 이제는 직접 티셔츠 팔이에 나선다! 그러니까 엿같은 티셔츠랑 다른 옷도 사라고, 씨XX끼들아
로고의 모티브는 러버 소울로 대표되는 60년대 사이키델릭 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며, 브랜드의 이름은 역시나 모드 덕후답게 록밴드 더 잼의 동명의 곡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패션 디자이너 닉 홀랜드[21]와의 동업으로부터 시작된 이 브랜드(NYLON, 2010/05)에서는 리암이 모든 옷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22], 클래식 남성복 라인인 블랙레이블(Black Label)에선 직접 모델로 서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리암룩60년대 모드 스타일을 추구하며, 비틀즈, 스톤즈, 더 킹크스, 스몰 페이시스 등이 활동했던 시대, 특히 주로 1967~69년에 걸쳐 활동한 밴드들의 패션과 그 분위기에서 모티브를 얻는다고 한다. 한 예로 프리티 그린은 모드족의 대부라고 일컬어지는, 더 잼 출신의 폴 웰러와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더 후와 손잡고 영화 콰드로피니아 40주년에 발맞추어 매장 내 전시회와 더불어 콜라보레이션 파카를 출시하기도 했다. 더 후의 피트 타운센드와 로저 돌트리가 이 브랜드를 상당히 좋아한다고. 그 외에도 리암은 인터뷰를 통해 조지 해리슨, 브라이언 존스, 폴 웰러, 스티브 매퀸, 스톤 로지스, 섹스 피스톨즈의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자사 로고 바리에이션 티셔츠를 만들어 팔기도 하며, 이 티셔츠는 이집트에서 공수한 최고급 목화로 한땀한땀 만들어진다. 이처럼 원단에 신경쓰는 만큼, 가격대도 엄청나 팬들에게 욕을 먹는다. 욕하면서도 사는 사람은 다 사는 모양이지만 가장 저렴한 티셔츠 한 벌이 £35. 35파운드면 한화로 6만 원이 넘으니... 참고로 현지 반응이 이렇다. 확실히 노동계층이 사기에는 너무 머나먼 브랜드임은 사실이다. 엿같은 티셔츠
당연한 소리겠지만 야상(Parka)도 판다. 위에서 리암이 입고 있는 야상이 대표적인 것인데, 문제는 가격대가 가장 싼 것이 £150. 이것은 비교적 저렴한 캐주얼 라인인 그린레이블 기준으로, 블랙레이블로 넘어가면 300~400대는 우습게 넘기는 것들이 가득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디자인은 깔끔하고 준수한 편.
프리티 그린은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2010년에는 이태리의 전통적인 패션시상식 20th Anniversary Drapers Awards에서 Polo Ralph Lauren & Tommy Hilfiger, Paul Smith, Boss Orange, Richard Ralph 등 쟁쟁한 후보를 재치고 '올해의 남성복 상(Menswear Brand of the Year)'을 수상하였다. 나름대로 독립된 의류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으며, 까다로운 원단 사용 및 스타 마케팅고가 마케팅의 영향으로 현지에서는 대체로 고급 의류 브랜드라는 인상이 강하다. 실제로 영국 뮤지션 및 축구 선수들 중에서 프리티 그린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종종 나타나며, 특히 록밴드 비디 아이의 멤버들이 이 브랜드의 의상을 많이 입곤 한다.
패션 브랜드 레드오션 가운데서 후발주자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프리티그린은 품질과 디자인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은 브랜드로 각광받고 있다. 실제로 패션에 관심이 많은 덴마크의 황태자비 마리(Crown Princess Mary of Denmark)까지 직접 프리티 그린 샵을 찾아왔을 정도다.
프리티그린은 2011년 'Global Fashion Awards', 'National Business Awards' 두 시상식 모두 노미네이트 되어 그 수상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사실 저 두 시상식에 노미네이트된 것만으로도 신생 브랜드로서는 대단한 영광이다. 최근 유럽 언론에서는 이같은 프리티그린의 성공사례를 보도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에 WGSN Global Fashion Awards에서 Best Breakthrough International Brand(가장 떠오르는 국제 패션 브랜드) 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패션 디자인과는 그 어떤 연관도 없었던 사람이 만든 패션 브랜드가 2년만에 거둔 성과치고는 엄청난 영광이 아닐 수 없다. 롤링 스톤 인터뷰
2012년 첫 해외 스토어를 도쿄 아오야마에 열었다. 관련 링크 내한 이후 들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한다면 서울 지점도 낼 생각도 있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크게 기대하지 말 것
국내에서는 이 브랜드의 로고를 그대로 복사한 짝퉁 티셔츠가 '버블버블'이라는 귀여운 이름으로 인터넷으로 팔리기도 했으며, 실제로도 DIY 티셔츠 판매 사이트에서 여러 사람들이 프리티 그린 로고 카피 이미지를 신청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대구 동성로에서는 데저트 부츠를 파는 가판대에 프리티 그린 홍보용 이미지를 내걸기도 했다.
6 영화 관련
2010년 5월 7일 리암 갤러거는 비틀즈와 관련된 영화를 제작할 것을 밝혔고, 그 해 칸 영화제에서 공식적인 제작 발표회를 열었다. 그러니까 이제는 영화 프로듀싱까지 하는거다(!!) 오오 성공한 덕후 오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앤드루 이튼이라는 공동 제작자와 함께한다. 영화를 위해서 1 Production이라는 회사까지 설립했다고.
영화의 이름은 The Longest Cocktail Party로 애플 레코드 홍보부 부장으로 일했던 Richard DiLello의 동명의 회고록이 원작이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서 비틀즈가 직접적으로 출연하는 영화는 아니고, 비틀즈와 관련된 '애플 레코드'의 이야기가 영화의 핵심이다. 자세한 내용(내셔널 지 기사)
대본은 영국 Channel 4의 시트콤 Peep Show의 각본을 썼던 제시 암스트롱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7~80년대, 일명 매드체스터라고도 불린 맨체스터의 음악 신에 대해 다룬 블랙 코미디 영화 24 Hour Party People을 감독한 마이클 윈터바텀이 이 영화의 감독으로 결정되었다. 출연 배우는 현재 미정.
그런데 본인 말로는 조니 뎁이 참여했으면 좋겠다고는 했다. 두 사람이 친구 사이[23]라고는 하지만 과연...
7 관련 항목
- ↑ 절대로 William이라 쓰지 않는다. Liam이다. 심지어 공문서에서도 꿋꿋하게 Liam이라고 적는다.
만약 리암에게 맞고 싶다면 윌리엄이라고 불러도 좋다. 중산층 아들내미 이름 같다나 뭐라나 - ↑ 참고로 리암이란 이름은 William의 아일랜드식 변형인 Uilliam의 애칭이다. 갤러거란 성과 함께 그의 뿌리를 나타내주는 좋은 지표.
이름만으로는 내추럴 본 아이리시 - ↑ [2]
- ↑ 영국의 The Cult가 아니다. 미국 뉴욕의 혼성 듀오
- ↑ 2004년에 'Velvet Building'이란 이름으로 겜과 함께 만든 데모가 다시 쓰였다. 가사는 겜과 앤디가 이후 이 곡을 다시 작업할 때 공동으로 작사한 것이다.
- ↑ 리암은 Shortlist 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이 형제에 대한 곡이며, 노엘(our kid)에 관한 곡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나중에는 폴 갤러거(큰형)의 이야기일수도 있다는 둥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 ↑ 참고로 이 커버 버전의 경우, Within You Without You의 멜로디에 Tomorrow Never Knows의 퍼커션을 얹었다. 이 형식은 the LOVE show/album을 프로듀싱한 자일스 마틴(Giles Martin)에게서 따왔다.
- ↑ 오아시스 1집 Definitely Maybe의 프로듀서
- ↑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이 아니라 안데르센 동화에 등장하는 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심지어 죽어가는 황제까지 살렸다는 새다. 서양에서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에게 나이팅게일 같다는 비유를 쓴다.
- ↑ Mad fer it은 환장하다,미쳐있다란 뜻을 가진 영국의 속어 중 하나이나 리암이 자주 사용함으로써 오아시스를 대표하는 유행어가 되었다.
- ↑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물론 리암의 보컬이 시간이 갈수록 달라진 이유도 있지만, 본인 또한 자신의 일명 '예쁘고 고운 목소리'를 크게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부러 거칠고 그르렁대는 스타일을 추구했던 점도 있다.
- ↑ 실제로 96년 라이브 중 리암이 Live Forever를 부르다 목이 나가버리는 영상이 있다
- ↑ 위에서 말한 6집 시기는 이 동영상에서 2004-2006년 정도이다.
- ↑ 역시나 완전히 끊은 건 아닌 듯. 술을 먹는 것이 해외 팬에 의해 목격되었다고... 다만 라이브를 하거나 음악작업을 할 때는 확실하게 금주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 ↑ 물론 투어 중반 리암이 감기에 걸렸을 때는 노래 한곡 부르고 기침하는 등 감기의 여파로 잠시 거칠어지긴 했다. 그러나 그 감기에 걸린 목소리마저도 오아시스 후기 때보다 좋았다...
- ↑ 이 곡은 싱글 Four Letter Word의 B-side로 수록되었는데, 차라리 다음 정식앨범에 넣지 왜 B-side에 좋은 곡을 넣어버리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가 그러고 싶어서"라고 답한 리암 갤러거. 신인이래봤자 결국 갤러거는 갤러거다.
- ↑ 원래 예정되었던 5월 공연이 토호쿠 대지진의 여파로 연기된 탓도 있다. 처음 5월 공연의 예매율은 양호했다
- ↑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의 앨범 커버가 뉴욕 사진이다.
- ↑ 사실 야상은 60년대에 모드족들이 입기 시작하면서 록음악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드족에 있어서 가장 흔한 클리셰는 "스키니 진에, 닥터마틴(혹은 클락스) 부츠에, 프레드페리 셔츠에 야상"일 정도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오아시스는 멤버 모두가 60년대 음악 빠이기 때문에, 말 다했다.
- ↑ 심지어 이 야상 점퍼를 2009년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때도 입었었는데, 그 삼복 더위 속에서 공연을 쉴새없이 달리는 와중에도 한번도, 단 한번도 벗지 않았다. 정말 단 한번도 벗지 않았다. 이미 등 전체가 땀으로 흥건했는데도 벗지 않았다. 흠좀무.
- ↑ '홀랜드 에스콰이어'의 디자이너. 홀랜드 에스콰이어는 피트 도허티, 레이저라이트 등 수많은 록스타들의 단골 브랜드라고.
- ↑ 물론 직접 디자인하지는 않고, 본인이 어떤 옷이나 스타일을 제시하면 디자이너가 그를 토대로 다시 디자인한다. 디자인 프로세스는 전속 디자이너 팻 솔터와 필릭스 블로에게 대부분 일임되어 있다.
- ↑ 조니 뎁이 오아시스 3집 수록곡 Fade In-Out에서 기타를 친 인연이 있다.
- ↑ 리암 갤러거는 이 회사의 블랙리스트에 올라와 있어 이 회사의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다. 이유는 1998년 오스트레일리아로 가는 비행기에 있던 중 폭언한 사건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