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평
1987년 6.29 선언 이후 민주화가 서서히 진전되면서 1988~1989년에 월북/납북 작가들의 작품들이 해금되고 공연사전심의가 철폐되는 등 개방이 시작되었으나 아직도 만화, 영화, 음악에 사전검열이 잔존하고 있었고, 특히 1989년 문익환과 임수경 등의 무단 방북 사건으로 공안정국이 형성되어 사회주의 계열 서적 상당수가 금서처분을 당하는 수난을 겪었다.
2 일지
2.1 1988년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8년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1988년 3월 | 문학 | 경찰은 블라디미르 레닌의 저서 <좌익소아병의 두 가지 전술>을 판매한 서점주 2명을 구속했다. |
1988년 3월 12일 | 신문, 잡지 | '정기간행물의 등록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제정되었다. |
1988년 3월 17일 | 문학 | 서울 YWCA 어린이 만화모니터 모임이 지난해 12월부터 동년 1월까지 초등학생 자녀를 둔 서울시내 어머니 228명을 대상으로 <보물섬>, <소년중앙>, <새소년> 등 3개 어린이 잡지에 실린 만화들을 조사한 결과 유익한 내용을 지닌 만화는 59편 중 19편에 불과했다. |
1988년 4월 4일 | 문학 | 법원은 1심에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에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
1988년 4월 19일 | 방송 | 방송법 시행령이 부활하였다. |
1988년 5월 16일 | 문학 | 법원은 1심에사 친구출판사의 대표 이상경 씨에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받았다. |
1988년 6월 4일 | 연극 | 서울대학교 교직원들은 6월 1일에 학생회관 라운지 2층에서 6.10 남북학생회담에 앞서 조통특위가 투쟁선언식장에서 인공기를 휘날리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학생들과 실랑이가 벌어졌는데, 사실 문제의 인공기는 북한 인공기가 아닌 연극 <통일밥>에 쓰일 1946년 조선인민공화국 깃발임이 밝혀졌다. 당시 기사 반박 기사 |
1988년 6월 6일 | 연극 | 경찰은 서울대학교 오월제에서 개최될 희곡 <통일밥> 소품 중 인공기 발견 건으로 대본작가인 주인석과 연극반 회장을 연행해 조사했다. |
1988년 6월 10일 | 서적 | 경찰은 '조국통일학생추진위원회(이하 통학추)'가 편집한 책 <우리는 결코 둘일 수 없다>를 펴낸 도서출판 남풍을 압수수색하여 책 1천여권을 압수하고 영업부장 박완규 씨를 연행했다. |
1988년 6월 11일 | 연극 | 경찰은 희곡 <통일밥>의 내용과 관련하여 필자인 주인석 씨와 서울대 연극부장을 불러 조사했다. |
1988년 6월 22일 | 서적 | 문화공보부는 <잠들지 않는 남도(노민영 엮음)>, <제주민중항쟁(아라리연구원 엮음)>, <해방조선> 등 7종에 대해 북한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주장하여 검찰에 고발했다. |
1988년 6월 23일 | 서적 | 검찰은 <잠들지 않는 남도>, <제주민중항쟁>, <해방조선> 등 6종의 사회과학서적에 국보법에 저촉되는지를 심사해달라는 문화공보부의 사법심사의뢰를 받고 '불온좌경서적' 여부의 검토에 나섰다. |
1988년 7월 19일 | 문학 | 노태우 대통령이 발표한 7.7 특별조치의 후속조치로 문화공보부는 백석, 박태원, 임화, 이태준 등 1백 20여명에 달하는 월/납북 문인들의 작품들을 해금 조치시켰다. |
1988년 8월 9일 | 연극 | 경찰은 <통일밥>의 작가인 주인석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
1988년 8월 25일 | 만화 | 서울 YMCA/YWCA, 대한어머니중앙연합회,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한국청소년도서출판협의회, 한국소비자연맹 등 7곳의 시민/사회단체가 불량도서 추방운동을 동년 10월부터 연말까지 한국도서출판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 주관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
1988년 8월 26일 | 문학 | 법원은 항소심에서 <한라산>의 작가 이산하에 대해 원심대로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
1988년 9월 9일 | 도서 | 경찰은 서울 종로구 당주동 소재 '논장서적'에 대해 영장 없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김일성사상비판> 2권, <조직전략전술> 2권, <해방조선 II> 2권 등을 압수했다. 이날 숙명여대 앞 창조서점과 젊은예수서점에서 <김일성사상비판> 2권, <민족해방철학> 2권을 압수했다. |
1988년 10월 6일 | 방송, 도서, 신문 | 법무부는 교도소 내 재소자들의 일일 TV시청 허용, 신문구독 허용, 도서반입 자유화 등의 내용을 담은 '행형제도개선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
1988년 10월 11일 | 도서 | 이종남 검찰총장은 국회 법사위원회 감사에서 북한의 실상을 단순 소개하거나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해 객관적으로 해석해도 처벌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1988년 10월 27일 | 음악, 미술 | 문화공보부는 김순남, 안기영, 이건우 63명의 작곡가와 김주경, 길진섭 등 미술인 41명 등 총합 104명의 월/납북 예술인들의 작품들을 해금 조치시켰다. |
1988년 12월 31일 | 시민, 패션 | 경범죄처벌법 개정으로 장발과 미니스커트 착용 등이 완전 합법화되었다. 아울러 '유언비어 유포금지' 조항 역시 삭제되었다. |
2.2 1989년
2.2.1 상반기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9년 상반기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1989년 1월 1일 | 공연, 연극 | 공연윤리위원회는 공연법 시행령 개정에 따라 무대공연물/대본에 대해 사전심의를 폐지하였다. |
1989년 1월 9일 ~ 1월 13일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 아카데미'를 개최했다. # |
1989년 1월 16일 | 독립영화 | 문화공보부는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16mm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를 만든 홍기선 감독 등 제작진들에 영화법 위반혐의를 씌워 경찰에 고발했다. 이러한 탄압 조치에 대해 영화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
1989년 1월 20일 | 독립영화 | 법원은 소형영화 <오, 꿈의 나라>를 상영한 '예술극장 한마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반사회성이 드러나지 않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
1989년 1월 31일 | 독립영화 | 주한독일문화원은 당일부터 2월 2일까지 개최하려던 소형 독립영화제 '민족영화를 위하여'를 "한-독 문화협정에 어긋난다"는 당국의 상영금지 요청에 따라 중단했다. |
1989년 2월 20일 | 문학, 음악 | 북한으로 월북 뒤 고위직을 지냈다는 이유로 1988년 해금 조치에서 제외된 홍명희, 조령출, 이기영, 한설야 등 5명이 해금되었다. |
1989년 2월 24일 | 민중미술 | 1985년 당시 '20대 힘전'에서 발생한 경찰의 압류사태에 대해 법원은 '유번비어 유포조항' 폐지를 이유로 면소 판결을 내렸다. 이후 압류되었던 작품은 그해 3월에 경찰이 반환의사를 밝히면서 당사자들에게 반환되었다. |
1989년 2월 25일 | 문학 | 검찰은 서울형사지방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받아 도서출판 아침 등 2개 서점과 대학가 앞 3개 서점들을 상대로 수색을 벌여 <지리산(이기형 저)> 등 3종의 사회과학계열 서적을 압수했다. |
1989년 2월 28일 | 시민 | 사회정화위원회가 해체되면서 민간단체인 '바르게살기운동본부'로 바뀌었다. |
1989년 3월 27일 ~ 3월 29일 | 문학 | '남북작가회의예비회담'에 참석 예정인 시인 고은, 이기형, 신경림, 백낙청 등 문인 26명이 판문점으로 가던 중에 경찰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가 이틀 뒤에 훈방 조치되었다. |
1989년 4월 24일 | 영화 | 코스타 가브라스가 1973년에 제작한 영화 <계엄령>에 대해 공연윤리위원회 측이 잔혹성을 이유로 수입불가 의견을 밝혔다. |
문학 | 공안합동수사본부는 당시 방북 중인 황석영이 귀국할 즉시 구속한다고 밝혔다. |
1989년 5월 9일 | 독립영화 | 문화공보부는 5.18 민주화운동 진압 도중 탈영한 계엄군 병사의 양심선언을 다룬 소형영화 <황무지>의 비디오테이프를 서울 혜화동 예술마당 '금강'에서 상영 도중에 압수했다. 이에 제작/연출자인 김태영씨는 이미 당월 4일에 우진필름으로부터 필름을 뺏긴 상태라 비디오로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며 상영 강행 의사를 밝혔다. |
1989년 5월 27일 | 문학 | 경찰은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펴낸 노동문학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사인 씨와 편집장 임규찬 씨를 국보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1989년 6월 30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 등 재야 미술가들이 공동으로 제작한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가 당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범국민 진군대회'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백골단들에 의해 파괴/소각되었다. |
2.2.2 하반기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89년 하반기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1989년 7월 | 문학 | 의 저자 이기형과 이를 출판한 도서출판 아침 대표 정동익 씨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
1989년 7월 1일 | 영화 | 노동문제를 다룬 박종원 감독의 영화 <구로아리랑>이 공윤의 사전심의 과정에서 21개 장면이 삭제된 채로 개봉되었다. |
1989년 7월 31일 | 민중미술 | 민족민중미술연합 건설준비위원장 겸 광주민중문화운동협의회 지도위원을 지낸 홍성담 화백이 평양축전에 걸린 자신의 작품 '민족해방운동사' 대형걸개 그림 슬라이드 사진이 북한으로 유출되었다는 혐의로 안기부 소속 기관원 10여명에 의해 연행되었다. |
1989년 8월 6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홍성담 화백과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를 공동작업한 '가는패' 대표 차일환과 민미련 공동위원장 정하수 씨를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구속했다. |
1989년 8월 12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홍성담 등 3명의 변호를 맡은 김선수 변호사 등 3명의 접견요청을 거부했다. |
1989년 8월 14일 | 민중미술 | 홍성담 등 3명의 화가들과 김선수 등 3명의 변호사들은 서동권 안기부장을 상대로 '변호인 접견 금지처분 취소 준항고'를 냈다. |
1989년 8월 17일 | 만화, 출판 | 한국도서출판주간신문잡지윤리위원회가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로 개편되었다. |
민중미술 | 민족미술협회장 신학철 화백이 자신의 작품 <모내기(1987년작)>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시경에 수감되었다. |
안기부에 구속된 차일환 씨의 부인은 남편과의 접견 과정에서 남편이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폭로했다. |
1989년 8월 24일 | 민중미술 | 안기부에 구속된 차일환 씨는 서울구치소 면회 과정에서 안기부에서 보복고문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날 홍성담 화백과 정하수 역시 고문사실을 폭로했다. |
법원은 안기부를 상대로 변호인 접견금지 처분 준항고에 관해 "이유 있다." 고 판결했다. |
1989년 8월 26일 | 민중미술 | 국가안전기획부는 평양축전에 전시된 '민족해방운동사'의 일부를 그린 전국대학미술운동연합(이하 학미련) 대표 전승일 씨를 구속했다. |
1989년 9월 11일 | 만화 | '서울 YMCA 건전비디오문화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이하 건비연)'이 창설되었다. # |
1989년 9월 21일 | 민중미술 | 서울대 의대 조교수 이윤성씨 등은 홍성담 화백과 관련한 신체감정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당시 감정서에 따르면, 홍 화백의 오른쪽 무릎과 정강이 및 왼쪽 귀 등에 생긴 상처는 '둔기에 의해 2~6주 전에 생긴 것'이라고 결론짓고 상처 발생 시기가 안기부에서의 조사 시기와 일치해 안기부에 의한 고문피해 주장을 뒷받침했다. |
1989년 9월 26일 | 도서 | 1986년에 문공부로부터 판매금지 종용도서에 올라 재판을 못 내게 된 <김형욱 최후의 그 얼굴>의 저자 손충무 씨와 이우석 문학예술사 대표 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법원이 저자와 출판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판매금지 종용이 불법으로 판정되었다. |
1989년 10월 12일 | 문학 | 검찰은 이기형과 정동익 씨에 대해 각각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
1989년 10월 26일 | 문학 | 법원은 이기형과 정동익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
1989년 11월 8일 | 민중미술 | 홍성담 화백은 9일 공판에 앞서 자신을 고문한 안기부 수사관 2명의 몽타주를 그려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
1989년 11월 14일 | 민중미술 | 법원은 구속중인 신학철 화백에 대해 보석을 허가해 석방시켰다. |
1989년 11월 23일 | 문학, 서적 | 국가안전기획부는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실린 황석영의 북한방문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의 이적성을 문제삼아 창작과비평사 주간 이시영을 구속했다. |
1989년 11월 29일 | 문학, 서적 |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검찰에 '좌익출판물/유인물 단속지침'을 내려 <지리산(이기형 저)>, <붉은 산 검은 피(오봉옥 저)>, <사람됨의 철학(채광석, 채희석 저)>, <한국민중사>, <주체사상비판>, <현대 민족사의 재인식>, <월간 노동해방문학> 5~7월호 등 1백30종의 서적들을 '좌익출판물'로 규정하였다. 6공 당시의 금서들 |
1989년 12월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 모임은 <만화자료집>을 작성하여 만화 탄압의 기틀을 닦았다. |
1989년 12월 14일 | 민중미술 | 검찰은 차일환 화백에 대해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구형했다. |
1989년 12월 20일 | 만화 | 서울 YWCA는 '일본만화 수입개방에 대한 간담회'를 열어 만화가와 만화잡지 편집자, 서울 YWCA 산하 만화 모니터회 회원 등을 모아 한국 만화가 나아가야 할 방안에 대해 토의했다. |
1989년 12월 29일 | 문학 | 문화공보부는 <월간 노동해방문학>에 대해 3개월 정간처분을 내렸다. |
민중미술 | 법원은 차일환 화백 등 3명에 징역 1년 6개월과 자격정지 2년, 집행유예 3년을 내렸다. |
1989년 12월 30일 | 문화 | 문화공보부가 문화부와 공보처로 분리되었다. |
2.3 1990년
2.3.1 상반기
2.3.2 하반기
2.4 1991년
대한민국의 문화탄압과 관련 사건 일지 1991년 |
시기 | 관련 대상 | 상세 |
1991년 1월 31일 | 민중미술 | 서울고등법원은 홍성담 화백에 대해 간첩죄 부분에서 무죄 판결을 내리고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을 내렸다. |
1991년 3월 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외국 수입만화에도 사전심의제를 확대했다. |
1991년 3월 8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종전의 '음반에 관한 법률'이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하 음비법)'으로 바뀌어 제정되었다. |
1991년 4월 3일 | 민중가요 | 경찰은 1989년부터 <노동가요 모음집> 2~4집, <포항제철 노동가요모음집> 1집 등의 노동가요 테이프 1만 2천여개를 제작해 판매했던 서울노동자문화예술단체협의회 의장 박인배 씨를 음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연행했다. |
1991년 4월 6일 | 민중가요 | 서노문협 의장 박인배 씨가 법원에 구속적부심을 신청했다. |
1991년 4월 9일 | 독립영화 | 서울 마포경찰서와 마포구청 직원들은 사설 시네마테크 '영화공간 1895' 사무실을 압수수색하여 이날 시사회를 개최하려던 16mm 소형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청년영화제작소 제작.)>이 공윤의 사전심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필름을 압수하고 이에 항의한 회원 2명을 강제 연행했다. |
1991년 4월 10일 ~ 5월 | 독립영화 | 학생 운동권을 주제로 한 16mm 소형영화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전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제 상영되자 필름을 압수하려는 경찰과 학생들 간에 대규모 충돌이 일어났다. 특히 4월 12일에는 경기대생 한 명이 경찰의 영화상영 저지에 맞서다 최루탄에 눈을 맞아 실명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
1991년 4월 17일 | 만화 | 서울 YWCA 만화 모니터회는 서울지역의 초중고 근처 서점 등을 조사하며 일본 만화 실태를 분석했다. 이들은 외국만화심의기구의 심의기준을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 |
1991년 5월 1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청소년의 달인 5월을 맞이하여 서울 YWCA, 서울 YMCA, 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 및 걸스카우트연맹, 전국서적상조합연합회, 한국청소년도서출판협의회, 주부교실중앙회 등 8개 단체는 불량만화폐기식을 시행하며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 행사의 이름은 '불량만화추방시민결의대회'였으며 오후 2시에 서울어린이대공원 야외음악당에서 시행되었다. 당시 신문 기사 당시 MBC 뉴스데스크 자료 |
1991년 6월초 | 도서 | 법무부는 각 교도소를 감사하면서 <녹슬은 해방구(권운상 저.)>, <태백산맥(조정래 저.)>, <완전한 만남(김하기 저.)> 등의 재야계열 소설 32권을 금서목록에 추가시켰다. |
1991년 6월 9일 | 애니메이션, 영화, 가요 |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다. |
1991년 6월 26일 | 독립영화 | 을 제작한 이상인 감독이 경찰에 의해 영화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
1991년 7월 23일 | 문학 | 경찰은 <빨치산의 딸(정지아 저.)>을 낸 실천문학사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하여 해당 서적 2천여권을 압수한 뒤 대표인 이석표 씨를 연행했다. |
1991년 7월 30일 | 가요 | 법원은 노동가요 테이프를 만들어 판 박인배 씨에 대해 음비법 위반을 적용해 징역 2년을 선고했다. |
1991년 8월 1일 | 만화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는 이날을 기해 불량만화의 홍수로부터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동월 10일에 나올 국내만화 단행본에 아동용은 '아동만화'라고 쓰인 연록색 표시를, 청소년용은 '청소년만화'라고 쓰인 청색 표시를 달도록 권장했다. |
1991년 8월 31일 | 만화 | '스포츠신문 음란폭력조장 공동대책협의회'는 스포츠신문 만화의 음란/폭력성을 시정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국내 스포츠신문 3개사에 보냈다. |
1991년 9월 3일 | 영화 |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제작한 이상인 감독에 대해 징역 10개월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
1991년 9월 18일 | 문학 | 문화부는 당해 출판된 도서 중 <빨치산의 딸(정지아 저.)>, <녹슬은 해방구(권운상 저.)> 4~9권, <한국현대사(한국역사연구소 저.)>, <한국사회의 이해(장상환 외 9명 저.)> 등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면부정하거나 김일성 주체사상 등을 찬양하는 등 그 내용이 실정법에 현저히 저촉될 우려가 있다’는 이적표현물 26종을 검찰에 통보했다고 그해 국감자료에서 밝혔다. 참고. |
1991년 10월 1일 ~ 10월 2일 | 만화 | 서울 YMCA는 어린이들에게 좋은 만화 73종을 선별한 뒤 서울 YMCA 회관에서 '좋은만화 비교전시회'를 열었다. |
1991년 10월 11일 ~ 11월 29일 | 만화 | 서울 YMCA는 안양, 대구, 원주 등 8개 도시를 돌며 '좋은만화 비교전시회'의 순회전시회를 열었다. |
1991년 10월 26일 | 민중가요 | 법원은 음비법 위반으로 구속된 박인배 씨에 대해 징역 2년과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해 석방시켰다. |
1991년 12월 31일 | 케이블방송 | '종합유선방송법'이 새로 제정되어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설립되었다. |
2.5 199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