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튀르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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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o-Turkish War

1 개요

근세 이후 수 백년 동안 동유럽캅카스의 운명을 두고 벌어진 지역 패자 둘의 충돌. 러시아-튀르크 전쟁은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걸친 기간 동안 러시아 제국오스만 제국 사이에 벌어진 도합 13차례의 크고 작은 전쟁들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다만 그렇다고 맨처음부터 러시아가 오스만이랑 대등하게 싸운것은 아니었다. 오스만의 전성기인 16세기엔 러시아는 변방의 소국에 불과했고 17세기 말에도 러시아는 오스만 변방의 타타르족들의 노략을 막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오스만 술탄에게 침략당하지 않으려고 공물을 바치는 약소국이었다. 특히 오스만 제국과 그들의 하수인 바르바리 해적은 심심하면 러시아에 쳐들어가서 러시아인을 2~3만 명씩이나 노예로 잡아가 오스만의 노예 공급처라 할 정도였다.[1]

2 제1차 전쟁 (1568-1570)

러시아 제국의 전신인 루스 차르국 (1547-1721)과 오스만 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군사적으로는 오스만 제국이 패배했으나 러시아의 피해가 막심했기에 실질적으로는 승리하였다. 결국 러시아는 테레크 강[2] 연안의 요새를 자진철거하여야 했다.

3 제2차 전쟁 (1571-1574)

오스만 제국의 속국인 크림 칸국과 루스 차르국인 러시아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러시아가 승리하여 크림 칸국의 주 민족이던 타타르 인들은 모스크바 일대에서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손실도 엄청나서 대공국 측은 수도인 모스크바가 완전히 파괴되고 시민들이 노예로 끌려가는 피해를 입었다. 한마디로 피로스의 승리.

4 제3차 전쟁 (1676-1681)

루스 차르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무승부로 끝났고 바크치사라이[3] 조약을 통해 루시와 오스만 제국 간의 경계는 드네프르 강으로 확정되었다. 1683년의 2차 빈 포위로 이어지는 대 전역 중 일부로 본다.

5 제4차 전쟁 (1686-1700)

2차 빈 포위의 실패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한 신성로마제국, 폴란드-리투아니아, 베네치아 공화국 등 유럽의 여러 강대국들이 신성동맹으로 루스 차르국이었던 러시아가 같이 오스만 제국과 벌인 전쟁이다. 오스만 제국이 크게 패하였다.

전후 처리를 위하여 카를로비츠[4] 조약을 체결하였고, 조약의 결과로 오스만 제국은 발칸 반도에 대한 종주권은 그대로 인정받았으나 영향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어 쇠락의 계기가 되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은 트란실바니아, 헝가리(슬로바키아 포함), 몬테네그로 일대를 획득하였고 폴란드-리투아니아는 포돌리아(우크라이나 서부와 몰도바 동북부 일대.)를, 베네치아 공화국은 아드리아 해 연안의 달마티아(오늘날의 크로아티아 해안지대) 지방과 그리스펠로폰네소스 반도를 획득하였다. 다만 베네치아에게 뺏긴 영토는 코앞의 영토였기 때문에 오스만 제국은 나중에 다시 전쟁을 해서 그 일대를 탈환하였다.

러시아는 카를로비츠 조약에 참여하지는 않고 1700년에 콘스탄티노플 조약을 따로 체결하여 아조프를 획득하는데 성공한다.

6 제5차 전쟁 (1710-1711)

러시아 제국과 스웨덴 간의 대북방전쟁[5]의 일부로, 폴타바 전투에서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 스웨덴 왕 칼 12세가 오스만에 망명해 러시아를 칠 것을 종용함으로 인해 벌어졌다. 몰다비아의 프루트 강[6] 일대에서 주로 전투가 벌어졌다. 표트르 1세가 친정했으나 1711년 프루트 강 전투에서 오스만군에게 패배하였다. 러시아는 꽤 심각한 피해를 입어 표트르 1세마저 죽거나 사로잡힐 뻔했다.[7] 그래서 이 전쟁은 오스만의 승리로 돌아갔다. 전후 처리를 위해 체결된 프루트 조약의 결과 오스만 제국이 아조프의 영유권을 되찾고 몰다비아 일대의 러시아 요새들을 점거하였다.

7 제6차 전쟁 (1735-1739)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와 연합한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여 니시[8]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크림 반도 북부를 획득하고 오스트리아 황제는 오스만 제국 영토 내의 기독교도에 대한 보호자로 인정받았다. 이 전투 이후로는 오스만은 더이상 러시아를 이기지 못하기 시작했다.

8 제7차 전쟁 (1768-1774)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에 벌어진 전쟁이다. 러시아가 크게 승리하여 우크라이나 남부와 캅카스 북부, 체르케스 지방을 할양받았으며 오스만 제국의 속국으로 존속해온 크림 칸국을 완전독립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크림 칸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하고, 1783년에 완전히 합병하였다. 오스만으로서는 최악의 굴욕을 당했다.

9 제8차 전쟁 (1787-1792)

크림 칸국의 문제에 대해 오스만 제국이 항의함으로써 시작된, 러시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 간의 전쟁이다. 러시아가 또 크게 승리하였으며, 전후 처리를 위해 이아시[9]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흑해 연안의 에디시아 지방[10]을 할양받았으며,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간의 흑해 인근 국경선이 드네프르 강에서 쿠반 강[11]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크림 칸국의 병합을 오스만으로부터 공인받았다.

10 제9차 전쟁 (1806-1812)

나폴레옹 전쟁기, 1805년 12월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그야말로 쳐발린 러시아를 확실히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나폴레옹의 부추김을 받은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러시아가 승리하였으며, 전후 처리를 위해 부쿠레슈티 조약을 체결하였다. 조약의 결과 러시아는 베사라비아[12]를 할양받았으며 다뉴브 강에서의 무해통항권을 인정받았고, 조지아(그루지아) 서부를 차지하게 되었다.

11 그리스 독립전쟁 (제10차, 1827-1829)

그리스 독립전쟁의 일부로서 전쟁이 치러졌다. 러시아가 영국,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오스만 제국과 벌인 전쟁이다. 나바리노 해전[13]에서 연합국은 오스만 제국에 대승을 거두었으며, 결국 오스만 제국이 패배하였다.

전후 처리를 위해 1829년 9월 아드리아노플 [14] 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에 대한 종주권을 얻었으며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의 무해 통항권과 오스만 제국 영내에서의 러시아인의 통상권을 획득하였다. 또한 캅카스 지방 전역과 다뉴브 강 하구 일대를 차지하였다. 아울러 세르비아에 대한 자치권이 보장되고 그리스에 대한 독립 인정이 이루어졌다.

12 크림 전쟁 (제11차, 1853-1856)

항목 참조. 러시아는 오스만은 이겼지만 후에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한 영국, 프랑스 연합군한테 크게패하여 오스만과 영국, 프랑스에 많은 것을 양보해야했다. 오스만 제국은 영국, 프랑스의 지원 덕분에 명목상으로는 승리했으나 실상은 허약한 모습만 보이며 제국의 쇠퇴만을 초래했다. 하지만 러시아도 이 전쟁을 통해 유럽에게 열세라는것을 보여주었고 패배로 인해 황제권이 약화되고 만다.

13 제12차 전쟁 (제2차 동방전쟁, 1877-1878)

러시아가 세르비아, 루마니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독립군과 함께 오스만 제국과 벌인 전쟁이다. 19세기 중반 이후 확산된 범슬라브주의에 입각하여 촉발된 오스만 제국에 대한 적개심에 의해서 벌어졌다. 러시아 제국(諸國)이 크게 승리하여 각국이 영토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때의 패배로 동유럽 영토를 사실상 전부 상실하고 만다.

최초 전후 처리를 위해 1878년 3월에 산 스테파노 조약[15]을 통해 자신들의 영토를 크게 넓혔으나 러시아의 확장을 경계한 영국, 프랑스의 반발과 독일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조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베를린 조약을 통하여 전후 처리를 마무리하였다.

불가리아 공국은 독립은 하였으나 영토가 줄어들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오스만 제국의 종주권 아래에 있어야 했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는 독립국 인정은 되었으나 일부 할양받은 영토를 돌려주어야 했다. 한편 영국은 중재의 댓가로 키프로스의 관할권을 획득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대한 사실상의 지배권을 획득한다. 오스만 제국은 동부 루멜리아와 마케도니아만을 반환받았다.

이 전쟁시기에 불가리아에서는 러시아군에 의해, 전쟁 후에는 불가리아인에 의해 튀르크인, 포마크인, 외뤽 (튀르크계 유목민) 등등 무슬림에 대한 학살이 자행되었으며, 곳곳에서 강제개종 및 인종청소를 목적으로 한 강간이 자행되었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50여만명의 무슬림들이 학살되었으며, 학살과 약탈을 피해 거의 100만에 달하는 불가리아 튀르크인들이 이스탄불로 몰려들었으며, 오늘날 에디르네, 이즈미르를 중심으로 터키 서부지방에 주로 거주하는 불가리아계 튀르크인들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 불가리아에는 9% 정도의 튀르크계 무슬림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크르잘리를 중심으로 남부 불가리아에 모여서 거주하고있다.

하지만 이런 발칸반도의 새로운 민족주의적 불안은 20년 뒤 발칸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배경 항목도 참고.

14 제1차 세계대전 (제13차, 1914-1918)

항목 참조
  1. 그러다보니 오스만의 백인 노예는 주로 러시아인과 동유럽인이었다. 서유럽은 워낙 강력해서 함부로 싸울 상대가 아니다보니 주로 서유럽의 벽촌을 공격해서 노예로 잡아갔다. 물론 이것도 오스만 제국이 서유럽한테 패한 이후로는 안하고 러시아를 주로 털어먹었다.
  2. 북캅카스에 있는 강으로 카스피해로 흘러든다.
  3.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 부근에 있는 도시.
  4. 오늘날의 세르비아 스렘스키카를로브치.
  5. 1700년부터 1721년 사이에 발트 해 연안에서 러시아와 스웨덴이 벌인 전쟁.
  6. 루마니아 내륙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발원하는 다뉴브 강의 지류.
  7. 근데 이때 러시아군은 러시아보다 열세인 스웨덴한테도 패할만큼 형편없었다. 특히 표트르 1세는 오스만이 2차 빈포위와 젠타 전투에서 유럽 군대한테 실컷 얻어맞아 별거 아니라고 깔보다가 호되게 당했다.
  8. ниш/Niš, 니스라고도 한다. 오늘날의 세르비아 영토로 프랑스의 니스(Nice)가 아니다. 여담으로 니시 조약은 1922년에도 동명의 조약이 있다.
  9. 오늘날의 루마니아에 있는 도시.
  10. 오늘날의 몰도바 동남부 일대
  11. 러시아-조지아 국경지대에서 발원하여 흑해의 일부인 아조프 해로 흘러드는 강
  12. 오늘날의 몰도바.
  13. 1827년 10월 20일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쪽 나바리노 만에서 벌어진 해전.
  14. 오늘날의 터키 에디르네.
  15. 오늘날의 터키 이스탄불 부근의 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