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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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텔 단말기. 한국의 하이텔 단말기를 생각하면 된다.

1 개요

Minitel

1980년대부터 2012년 6월까지 30년간 사용된 프랑스PC통신 서비스. 사실 프랑스의 PC통신 서비스 네트워크의 이름은 '텔레텔'이고 '미니텔'은 단말기의 이름이지만, 사람들이 단말기의 이름을 네트워크를 부를 때도 사용하는 바람에 의미 확대가 일어나(...) 프랑스의 PC통신 서비스는 '텔레텔' 대신 '미니텔'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게 된다.

90년대에 초/중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기술이나 정보 같은 해묵은 콤퓨타기술 정보가 실린 교과서에서 가족이 어색하게 개다리 소반 앞에 모여앉아 브라운관 TV에 연결된 이상한 상자를 손가락질하며 뭔가를 하고 있는 듯한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비디오텍스'라고 불리는 전화선을 통한 정보 송수신 기술이며, 미니텔에 적용된 기술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VT 기반 PC통신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날씨 정보를 제공하는 서비스나 시설예약 서비스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때는 대단히 흥했지만, 적절한 갈아타기에 실패한 나머지 정부주도적 인프라 개발의 한계를 보여주며 갈라파고스화의 전형적인 사례가 되었다.

2 개발 과정

1982년 도입되었다. 1976년부터 개발이 시작되었으나 초기에는 자금 부족으로 지지부진 하였는데, 당시 종이값 폭등으로 공중전화전화번호부를 찍어내는데 어려움을 겪던 프랑스텔레콤이 VT를 이용해서 전화번호를 배포함으로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을 노리고, 영국의 통신회사와 협력하여 막대한 투자를 했다. 여기엔 갓 집권한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정보격차 축소 의지도 강했다. (따지고 보면 지스카르 데스탱 시절부터 개발을 시작하긴 했다.)

그 결과 3년 만에 터미널, 통신 프로토콜, 통신망을 모두 개발하고, 영국에서는 프레스텔(Prestel), 프랑스에서는 미니뗄(Minitel)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단말기 값이 비싸게 책정되었고 정부에서도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단말기 보급에 그리 열의적이지 않아 애초에 당시 영국 수상이 마가렛 대처였다 부유층 아니면 주요기업에서 사무용품으로 쓰는 물품이 되어서 별로 성공을 거두지 못한 반면에 반해 프랑스에서는 단말기를 무료로 보급한데다가 당시로써는 그야말로 최첨단 기술이었던지라 정부나 각계 각층에서 엄청난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3 역사

3.1 보급

프랑스 정부는 미니텔 단말기를 선착순으로 무료 배포했으며[1], 게다가 미니텔은 이용료도 무료였다. 물론 새 전화체계가 미니텔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미니텔에 음성전화가 따라오는 것이며, 단말기는 전화번호부 대용이었으므로 이 정책에도 일리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또 터미널에서 출력되는 텍스트 끝에는 기업 광고를 넣기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텔레콤의 독점 사업이라 다양성에 위배될 수 있으며, 안정성 문제에 의문을 제기받기도 했으나 아무튼 공짜라서 엄청나게 보급됐다.

3.2 전성기

1988년 프랑스에는 560만대의 미니텔 단말기가 보급되었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서비스였다. 90년대 초반엔 미국에 수출되기까지 했다고. 참고로 월드 와이드 웹1990년에 개발되었다.

1994년 120만 명의 프랑스인들이 '미니텔'로 전자상거래로 물건을 구매할 때, 미국인들은 이제 막 80만 명이 '인터넷'으로 전자상거래를 이용했다. 프랑스 내 수익은 60억 프랑(=12억 달러)에 달했다.

최전성기는 1999년으로, 단말기 900만대(2002년 정점값)에 사용인구 1500만, 1년간 총 통화수는 1950억통. 10억 유로 가량의 이득을 가져다 주었다.

기본 서비스인 음성통신, 메시지 전달, 전화번호부[2] 이외에 다음과 같은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미니텔로 제공되는 서비스는 약 25,000가지에 달했다.

유료 서비스 요금을 전화요금 통지서로 간단히 청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니텔의 유료 결제 서비스는 굉장히 발달하였다.

3.3 몰락

그러나 인터넷이 대세가 되면서 정점을 찍은 1999년 이후 2005년까지 미니텔은 연간 30%의 가입자 유출을 겪게 된다.

한동안은 폐쇄회로 덕분에 보안이 우수하다는 이점 때문에 항공권, 연극 티켓 예약&결제, 미니텔 뱅킹, 주식거래에서는 우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결국 줄어드는 가입자수 때문에 기업들이 미니텔을 외면하게 된다.

프랑스 텔레콤은 1998년 인터넷 접속도 되는 'MINITEL Magis'란 단말기를 보급하면서 미니텔의 몰락을 막으려고 저항했지만, 이 단말기는 정부의 소외계층을 위한 인터넷 단말기 취급이나 받게 된다. 넷북의 초기 모델이라고 보기엔...너무 느렸다. 되려 미니텔에 대한 인터넷의 승리를 증명하는 관광 사례나 되었을뿐.[3] 아래 한겨레 97년도 기사에서는 30만~40만원 상당의 미니텔 매지스[4]을 상당히 매력적으로 소개했으나, 현실은 시궁창.

4 평가

4.1 약점과 비판

미니텔은 1200bps 정도로 속도가 매우 느렸다.(1990년대 중반 9600bps로 속도가 빨라졌긴 했지만 여전히 느리긴 마찬가지였다.) 또한 미니텔 단말기를 이용해서만 접속할 수 있었지만 타 PC통신들이 그랬듯이 하이퍼터미널이나 에뮬레이터를 사용하면 PC에서도 접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과 달리 쌍방향 통신이 불가능했다.

요금에서도 인터넷에 뒤졌는데, 미니텔을 이용해 AFP통신 속보를 보는 경우 1분에 3백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같은 요금으로 인터넷을 이용하면 30분이나 볼 수 있다. 이는 전화번호 열람같은 기본 서비스는 무료로 제공하기는 했지만 기본 서비스 이외의 서비스 이용요금은 수익성(...)을 위해 비싸게 책정해놓았기 때문이다..

프랑스텔레콤이 미니텔에 과도하게 집착한 탓에 프랑스인터넷 기술 발전을 가로막았다는 비판이 있다. 미국식 인터넷,영국의 월드 와이드 웹에 미니텔이 졌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자부심과 집착이 원인이라는 것. 덕분에 프랑스 인터넷 환경은 MSN, 구글, 야후에 점령되었다. 안습.

결국 2006년 12월을 끝으로 외부 서비스 제공자가 모두 사라졌으며, 2012년 6월 30일, 정확히 30년만에 40만의 단말기가 사용되는 시점을 마지막으로 미니텔 서비스는 중단되게 되었다.

4.2 옹호

고작 토스터 크기(9인치)에 심지어 자판을 접을 수 있는 휴대성까지 있어 각광을 받았다.

BBC 영상 등에도 나타났듯이 노년층에 대한 보급에 대단히 탁월했다.# 1992년광고. 이 점에서 프랑스는 인터넷 노년층 보급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또 농촌산간벽지에서도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건 분명했다. 물론 그 때문에 치러야하는 비용과 대가가 너무 지나쳐서 문제였지...

비디오텍스 기반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체계라고 할 수 있는데, 컨텐츠에 기업 광고를 곁들여셔 광고비로 수익을 충당하고 이용 비용을 무료화 하거나, 전화 요금 통지와 결합하여 유료 컨텐츠의 결제를 간편하게 하는 등. 상당히 선진적인 운용 개념이 많이 도입되었다.

철통같은 보안 때문인지, 가정에 보급된 미니텔 단말기를 해킹(...)하면서 정보기술을 익힌 젊은 세대들이 프랑스 인터넷 CEO로 대성한 사례들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프랑스 인들에겐 아직도 그래도 추억돋는 물건이라고.

4.3 결론

국가 주도로 진행된 폐쇄적 정보 시스템과 선발주자의 몰락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려 30년간 지속된 미니텔의 존속 기간과 그간의 성과를 본다면 결코 실패로 간주할 수 없다. 미니텔의 보급은 인터넷 대중화보다 무려 20년 가까이 앞서 있고, 그 당시에는 전세계적으로 비교 상대가 없을 정도로 유용한 서비스였다.

5 영향

미니텔은 단순히 역사 상에만 기록되는 게 아니라, 인터넷 컨텐츠 제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인터넷은 그저 학술용이나 군사용까지만 생각했던 데에 반해, 미니텔은 프랑스 사람들 취향처럼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택했었다.
미니텔은 인터넷과는 달리 매우 단순한 4자리 숫자로 서비스를 접속하는 형태였다. 이러한 직관적인 사용법은 아이패드를 비롯한 애플 제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카더라 스티브 잡스, 미니텔에 관심 최초의 앱스토어, 미니텔

한국에도 체신부한국통신 주도의 하이텔 단말기 보급 시도가 있었고(300만대 계획, 28만대 시점에서 종료) 2002년에 리빙넷도 있었지만...., 독일에도 BTX라는 비슷한 서비스가 있었다고 한다.

6 참고한 자료

블로그

#1996년 매일경제 기사 - 당시 1400만명.
#1997년 한겨레 기사.

# 2001년 외국 인터넷 언론 기사 - "미니텔, 오래된 신제품."
# 2007년 기사 - 아직도 사용자가 1천만명이라고 나오나, 단말기가 최소 100만대 이하였을 시점이란걸 감안하자. 어디까지나 프랑스 텔레콤이 자체 집계한 "잠재 사용자"로, 6천만 프랑스 인가운데 16.9%가 미니텔을 사용한 적이 있다라는 설문조사에 바탕한 것이다. 이걸 사용자라고는 하지 않지

#2011년 한겨레 기사.
#2012년 BBC, "프랑스식 웹망(French-Wide-Web)의 영광과 몰락"
#2012년 뉴욕 타임즈, "미니텔의 종말". 7분 30초부터.
9분 10초경에 나오는 조립과정에서 망치로 툭 때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프랑스에서 주로 쓰이던 물건이니 당연하겠지만 각 언어 가운데 프랑스어 위키페디아의 문서가 가장 상세하다. 다른 언어판에서는 대부분 토막글이거나, 개략적인 설명 정도.링크
  1. 이 정책은 1989년에 중단되게 된다. 아무래도 투자를 많이한데다가 그만큼의 수익을 거둬들여야 되기는 하니까.
  2. 전화 번호 문의의 3611. 2001년이 피크였다고 한다.
  3. 사회당이 시작한 이 계획을 사회당 총리인 리오넬 조스팽헤드샷을 날렸다는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그 대안이 새로운 미니텔 단말기라니 이게 최선입니까
  4. 매직이 아니다!! 매지스(Magis)다!! 아마 Magis를 Magic의 오자로 생각한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