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전

1 개요


해당 영상은 시리아 내전 중 FSA(자유 시리아군) 입장에서 촬영된 것이니 유의.

과거보다 현대에 들어 더욱 빈번히 벌어지는 전투.급격한 도시화가 이루어진 현대 사회에서는 도시의 각종 건물들과 고층 빌딩 등은 시야의 확보와 뛰어난 엄폐 진지의 기능을 해줄 수 있으며, 이에 따라 건물을 엄폐삼아 적을 저지하고 또 그를 소탕하는 시가전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전투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이러한 시가전은 앞으로의 전쟁에서도 가장 중요한 형태의 전쟁이 될 것이다. 즉 도시나 마을 별로 상대의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 아닌, 건물 하나씩 점령해나가는 전쟁이 되는 것. 그래서 만에 하나 한국전쟁이 다시 벌어진다 하더라도 서울이 순식간에 함락당할 일은 없다고 한다. 고층빌딩 하나하나를 벙커로 활용해 적의 진격을 늦출 수 있으니.

몇몇 사람들은 건물 따위 포격이나 폭격 몇 번 하면 와르르 무너지는 거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하는데, 비용은 둘째치고 현대식 건축물들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설사 몇몇 건물, 몇몇 동네야 그렇게 무너뜨린다 쳐도 드넒은 도시 전역을 엄폐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깡그리 초토화시킬 수는 없다. 도시 전역을 한개의 엄폐물도 남기지 않고 깡그리 날려버리는 방법은 오직 핵무기뿐이다.(..) 게다가 도시의 중요 시설인 건물들을 마구잡이로 부숴대면 점령 후 처리 역시 고역이 된다.

게다가 멀리서도 피아 구분이 용이한 야전(野戰)과 달리 건물은 적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환영하거나 직접 수색하기 전까진 안에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르기에 건물안에 꼭꼭 숨어 농성하는 적군을 탐색하고 소탕하는 것은 거의 보병이 전담하게 되는데, 매복병이나 부비트랩에 당할 위험이 있어 요즘은 탐색 같은 경우 바퀴달린 무인 드론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밀집한 곳에서 교전이 발생되면 수십 미터 간격으로 적과 아군, 그리고 해당 도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잔류하던 민간인들까지 한데 뒤엉켜 건물 내의 적 및 상대 전차를 상대로 각종 화기포격이 난무하는, 말 그대로 도그파이트가 일어난다.

당장 역사적으로 손꼽히는 시가전인 스탈린그라드 전투경우만 해도 스탈린그라드 시내에서 치고 받던 독일군과 소련군은 윗층에는 독일군이 있고 아랫층은 소련군이 있고 서로 수류탄 투척거리 안에서 밥먹고 잠자고 총쏘고 수류탄 던지고 급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화염방사기, 총검, 야전삽 하다못해 벽돌이나 쇠파이프등으로 급조한 조잡한 근접무기를 들고 개돌하며 싸워대는 식의 난장판이었다.

그리고 전차가 제 성능을 발휘하기 힘들다. 먼거리에서 포격해 적을 섬멸하고 맷집과 기동성을 바탕으로 적진을 향해 돌격 혹은 보병을 엄호하는게 전차의 임무인데, 시내의 밀집된 건물들은 포의 발사범위를 좁히고, 거기에서 떨어진 잔해들도 전차의 시야와 행동을 방해하는데다 대전차 무기를 든 적군과 대전차 지뢰IED가 전차의 약점을 노리며 늘 도사리고 있다. 앞서 말한 스탈린그라드 전투 같은 경우도 탱크와 포격-폭격을 유기적으로 운용하는 독일군의 장기를 봉쇄하기 위해 소련군은 시가지와 무너진 건물들을 기민하게 움직이며 독일군에게 거친 육탄전을 걸었고 그 결과 연이은 패배에 장비도 변변치 않고 훈련도 제대로 못 받은 소련군이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독일군을 상대로 몇 달 동안 양측 모두 수십만명의 사상자를 내는 소모전을 벌이면서 방어해냈다. 그리고 여기서 상당한 손실을 입은 독일군도 결국 전략 목표도 달성하지 못하고 골골대다가 패주했다.

때문에 야전보다 시가전에서의 피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만으로도 공략하는 측에 상당한 부담이 되며 해당 도시가 정치나 전술, 문화역사나 경제적으로 중요한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마지노 선 마냥 우회 혹은 가자 전쟁처럼 무차별 포격이나 폭격으로 절망의 땅을 만들어 버리거나[1] 도시를 포위해버리고 자원 공급망들을 싹다 끊어버려서 아사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는데,[2] 실제로 레닌그라드 공방전, 스탈린그라드 전투, 바르샤바 봉기에서 드러났듯 도시는 포위당해 외부로부터 격리될수록 보급에 상당한 난항을 겪을 수 밖에 없다.[3] 물론 이 방법을 위해선 도시를 포위하는 군대의 규모가 도시의 적보다 일정 수준 이상이고 적의 포위망 돌파 시도를 (기동전 등으로 꽉 잡아) 충분히 저지시킬 정도여야 한다. 여담으로 소설 남북의 경우 한국군이 평양 포위에 동원한 병력은 무려 11개 사단에 달했다.[4]

그리고 최근에 벌어지는 시가전들은 국제 사회의 여론과 해당 지역의 주민들 사정을 고려해(이라크, 아프간전) 시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상술했듯 도시의 물자 공급 루트를 철저하게 봉쇄한 다음 항복을 권하는 쪽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 도시는 그 자체로 최소 수십만, 많게는 수백만이 거주하는 거대한 소비 집단이기 때문에 아무리 평소 쌓아둔 것이 많아도 주요 보급 루트를 끊은 채 작정하고 포위하면 얼마 가지 않아 전부 다 식량 및 물 부족으로 굶어죽기 때문이다. 물론 본국의 지원 및 항복할 경우 닥칠 결말이 비참해 결사항전을 외치거나, 적이 굴복 혹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시민들이 어떻게 되건 상관없다거나 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를 수락할 수밖에 없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전에서 마천루가 넘쳐나는 대도시 규모에서 시가전이 벌어진 경우는 없다. 다만 중동이나 동유럽 등지의 내전을 중심으로 정부군과 반군 사이에서 시가전이 벌어지는 경우는 종종 발생한다.

상술한 이유들 때문에 비교적 후진국이나 후진국에서 활동하는 무장 단체 상대로 전쟁을 하는 강대국 입장에서는 가장 골치아프고, 피하고 싶은 전략적 상황이 직접적인 도시 점령과 시가전이다. 전차를 비롯한 기갑 전력도 제대로 활동하기 힘들고, 항공 폭격 등으로 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으며, 결국 어느 시점 부터는 유권자, 납세자의 아들이자 남편인 보병들이 맨몸으로 걸어 들어가 폐허 속에서 오히려 더 설치는 부비 트랩, 저격수, 자폭 테러병, IED 등을 상대해야 한다. 도시를 방어하는 측이 아예 미래고 경제고 기반이고 다 박살날거 각오하고 무한 시가전으로 나와버리면 당장 강대국이 가지는 기술적, 자원 우위가 상당수 무효화되는 개싸움에서 자국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되는 손실을 강요 당하기 때문이다. 체첸 전쟁에서 그로즈니 시가전도 이랬고, 테러와의 전쟁 중 바스라, 팔루자 같은 곳에서는 그 최첨단 막강 우주방위대 미군도 큰 출혈을 겪었다.

만약 마천루가 좍 깔린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가전이 일어나기라도 한다면, 그 스탈린그라드와도 비교가 안되는 헬게이트가 펼쳐질 것이다. 당시와 비교조차 안되는 현대의 빌딩들의 공간은 수많은 병력들이 숨바꼭질을 해댈 장소를 제공하고, 헬기 등의 근접 항공지원이 마천루들 사이에 들이닥치는 데다가, 포격과 폭격으로 빌딩과 도로는 작살이 난다. 만약 거기에 그 커다란 마천루들 중 하나라도 무너진다면, 주위 일대에 퍼진 먼지 구름으로 코앞조차 볼 수 없는 상황까지 펼쳐진다. 당장 9.11 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주변 상황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보면 말 그대로 지옥도.

미군은 시가전 사상률을 20%로 잡고 있으며(분대원이 10명일 때 2명은 죽는)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별도의 시가전 훈련소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다. SWAT 역시 대표적으로 시가전에 특화된 작전 수행을 위해 훈련을 받으며, 건물 안에서 방마다의 안전확보를 위한 진입 절차, 건물 외부를 확인할 때의 안전 절차 등을 중요하게 교육 및 훈련한다. 방 내부 진입시와 베란다의 경우 사상률이 가장 높은데 방으로 들어갈 때는 안쪽에서 노리고 있는 경우가 위험하고 베란다는 머리 내밀고 나가면 저격당하기 때문으로 반드시 벽에 붙어서 나가도록 교육 및 훈련시킨다. 또 한가지 더 건물 내에서 건물밖으로 사격할 때 절대 총구가 구멍을 넘어가서는 안된다고 가르치는 데 적의 입장에서 위치 파악이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서는 안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는 것…

또한 미군은 건물 점령을 위해 사다리를 담당해서 들고 다니는 병사도 있고, 미 해병대산탄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시가전에 필수인 문따기를 위해서이며 이스라엘제 M100 총류탄도 사용할 정도로 신경쓴다.

국군JSA 경비대는 주둔지의 특성상 미군과 비슷하게 시가전 대비 건물 진입 훈련을 하고 있다.[5] 특수부대와 해병대를 제외한 나머지 한국군은 제대로 된 시가전 훈련이 없으니 북한과의 전쟁 혹은 해외파병으로 대규모 시가전이 벌어질 경우 많은 사상자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신막사 건설이 완료되면 구막사를 시가전 훈련장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현실은 창고로 써먹는... 또 2차 KCTC 훈련장에는 시가전 시설도 추가할 것이라고 한다.

2 유명 시가전

3 관련 문서

  1. 다만 이 경우 아군 피해는 거의 없지만, 해당 도시의 민간인 피해가 장난 아니라 국내외의 비난 여론이 듫끓게 된다.
  2. 옛날 공성전 방식이 성=도시 개념으로 현대전에서 뜬금없이 부활한 셈. 차이가 있다면 성벽 대신 은엄폐가 가능한 콘크리트 진지 여러개를 두고 싸운다는 점 뿐.
  3. 스탈린그라드 전투 때 공중 보급 드립을 쳤지만, 6군이라는 규모가 꽤 큰 군대의 보급을 공군으로만 한다는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리고 바르샤바 봉기의 경우는 아예 독일군에 포위된 상태에서 자체적으로 도시 안에 우물까지 파가면서 필사적으로 보급을 했음에도 수많은 봉기군과 시민들이 전염병과 기아로 사망했다.
  4. 다만 이 경우는 평양 점령이 목적이었고, 실제 상황에서는 굳이 대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큰 희생을 치를 이유가 없으니 1~2개 사단으로 간단히 봉쇄만 하고는 지하 통로에서의 교전만 일부 진행. 주 전력은 평안북도에 집결한 북한군 전략예비의 격멸에 투입될 것이다.
  5. 한국군에서 유일하게 권총의 사격술에 신경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6. 다만 이 전투는 모가디슈를 점령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아이디드와 그 측근들만 압송하는 게 목적이라 반군에 비해 크게 나을 게 없는 화력으로 맞선 게 피해를 늘린 요인이다.
  7. 국제 사회의 시선과 주민들의 생활을 고려해서 미군 피해가 늘어날 것을 알면서도 전통적인 포격 및 도시 봉쇄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바로 시가전을 강행한 측면도 있다.
  8. 최근에는 폭격과 포격만 죽어라고 하고 도시 진입은 하지 않는다.
  9. 사실 가자와 요르단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지역은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래 계속 시가전 상태였다. 인티파다 항목 참조.
  10. 그 무시무시한 나치 독일군도 이곳에서는 그냥 소모품에 불과했다.
  11. 무기 상으로만 보면 독일군은 수백여 대의 전차와 장갑차를 보유하고 봉기군은 10명당 1명 꼴로 소총이나 기관단총, 수류탄 등으로 무장했지만 2달에 걸친 혈전 결과 독일군과 폴란드 봉기군 손실이 비등할 정도로 독일군도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덤으로 시민 사망자도 25만여 명에 달해 유럽 전선에서 벌어진 단일 민간인 학살로는 최악의 수치였다.
  12. 1차 전투의 경우 러시아가 소련 붕괴 이후 양적 질적 저하가 심각했던 기갑병력을 제대로 된 보병의 엄호도 없이 무턱대로 시가지에 밀어 넣었다가 노련한 체첸 반군의 반격에 전부 다 터져 나가면서 그로즈니시는 연옥이다.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제대로 관광탔고, 2차 전투의 경우 본래는 대규모 포격과 도시 봉쇄를 통한 물자난으로 체첸 측의 투항을 유도했으나 여의치 않은데다가 국민들에게 뭔가 보여줘야 했던 러시아군이 1999년 12월부터 전투를 강행했다. 사전 포격과 작전 준비가 철저했기에 1차 전쟁 때처럼 어처구니없는 삽질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시가전인지라 상당한 인명 손실을 입었다.
  13. 이 전투는 2차대전의 레닌그라드나 스탈린그라드 전투보다 더 긴 시간 포위당했다.
  14. 2014년 9월 부터 벌어진 이슬람 국가와 쿠르드족 인민수비대(YPG)간의 전투로 중동의 스탈린그라드라 불릴정도로 격렬한 시가전을 벌였다.
  15.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시가전에 버금가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6. 해당항목 참조. 시가전에 적합하게 설계된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