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
1 프로필
본명 | Mark William Calaway (마크 윌리엄 캘러웨이) |
별칭 | The Deadman The Lord of Darkness Ministry of Darkness The American Bad Ass Big Evil[1] The Last Outlaw[2] The Phenom The Demon of Death Valley The Best Pure Striker in the History of WWE The Apocalyptic Warrior[3] |
생년월일 | 1965년 3월 24일 |
신장 | 199cm(6 ft 6.5 in)[4][5] |
체중 | 134kg (300lbs) |
출생지 | 미국 텍사스 휴스턴[6] |
피니쉬 무브 | 초크슬램 툼스톤 파일드라이버 라스트 라이드 헬즈 게이트[7] |
테마곡 | Funeral March (1990~1994) The Grim Reaper (1994~1995) Graveyard Symphony (1995~1998, 1999) Dark Side (1998) Ministry(1999) Unholy(1999) American Bad Ass[8] (2000) Rollin[9][10] (2000~2002, 2003) Dead Man (2002) You're Gonna Pay (2002~2003)[11] Rest in Peace (2004~현재)[12] Ain't No Grave (2011)[13] |
파일:U2tpMQ1.jpg |
그의 T자형 상징 로고. |
2007년 WWE 로얄럼블 우승자 | |||||
레이 미스테리오 | → | 언더테이커 | → | 존 시나 |
아메리칸 배드 애스 시절 | 빅 이블 시절 | 현재 데드맨 |
1.1 경력
너무 길어져서 하위항목으로 분리했다.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경력 참조.
1.2 경기력
언더테이커(프로레슬러)/경기력 참조.
2 그 외에
- 만화적인 기믹이 대세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기믹치고도 상당히 독특한 기믹이라서 그런지 그의 존재 덕분에 만들어진 기믹 매치가 꽤 된다. 대표적인 것이 헬 인 어 셀 매치이고, 캐스킷 매치, 배리드 얼라이브 매치[14], 인페르노 매치[15] 등이 있다. 게다가 이런 경기들이 대부분 WWE에 정착화되어 있다는 점에서도 여러 가지로 공이 크다.
그레이트 칼리 덕에 만들어진 펀자비 프리즌 매치가 결국 먼지처럼 사라진 것을 보자[16]
- 입지가 어느 정도 있음에도 본인 스스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유망주에게 적극적으로 잡[17]을 해주는 편이다.
누구랑 참 비교된다과거의 케인이나 한 때 최고의 푸쉬를 받던 브록 레스너 및 존 시나, 에지 등등도 언더테이커와의 대립을 통해 듣보잡에서 가능성 있는 유망주로 성장해 결국 포텐셜이 폭발했다.
- 물론 터프 이너프 1기의 메이븐이나 2004년 하이든라히
그리고 무하마드 하산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었지만. 일단 언더테이커가 이겨도 결국 그 상대를 상당히 띄워주는 식으로 이기기 때문에, 승패와 관련없이 언더테이커와의 경기를 갖는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사실상 WWE 내에서 볼 수 있는 최고급 자버의 역할도 겸직하고 있으며 그 때문인지 잡을 잘 안 해주는 다른 선수들(단적인 예로 트리플 H)과는 달리 비난 받는 것을 볼 수 없다.
- 이러한 특징 때문인지 몰라도 언더테이커의 커리어는 생각보다 스탯 면이 아쉬운 편인데 그 긴 커리어 동안 그것도 메인 이벤터급으로 뛴 기간이 상당한 데도 그랜드슬램은 커녕 트리플 크라운도 달성하지 못 했다. 여기에 스티브 오스틴이 로얄 럼블 3회 우승하고 헐크 호건, 숀 마이클스, 존 시나, 바티스타, 트리플 H가 2회 우승하는 동안, 언더테이커는 1회 우승밖에 하지 못 했다.[18] [19]
- 몬트리올 스크류잡 사건 당시 당사자 외의 선수들 중 가장 먼저 나서 빈스 맥맨를 직접 찾아가 브렛 하트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으며, 이 때
멱살잡혀끌려온 빈스는 결국 브렛에게 얻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WF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해서 당시 WWF보다 잘나가던 WCW에서 엄청나게 러브콜을 보냈지만 언더테이커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WWF에서 뛰며 애티튜드 시대를 받쳐주는 버팀목으로 활약했다.
- 스티브 오스틴이 시대의 아이콘이 된 것은 빈스 맥맨과 언더테이커 두 명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는 평이 있다. 실제로 애티튜드 당시 WWF를 보면 언더테이커는 스티브 오스틴 전용 자버에 가까웠다. 거기에다 케인, 믹 폴리 등을 키워준 일등공신에 더 락, 빅 쇼 등의 성장에도 도움을 주었으니... 여러모로 WWF - WWE 입장에서도, 동료 선수들 입장에서도, 팬들 입장에서도 존경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인물.[20]
- 또한, 짬이나 경력이나 레슬러들이 누구나 납득하는 권위를 가져서 백스테이지에서 레슬러들을 훈계하는 레슬링 재판은 언더테이커의 암묵적인 허가가 있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실제로도 재판장 역할을 하며 어찌보면 선배들이 후배 굴린다고 욕먹을 수도 있지만, 회사와 레슬러 사이에 갈등이 생기면 언더테이커는 언제나 선수들의 편을 선다. 사실상 레슬러 노동 조합의 조합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인데, 위 몬트리올 스크류잡 일화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 이 점만 보면 빈스와 사이가 나쁠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는데, 오히려 반대로 둘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커트 앵글이 자서전에서 말하기로 (영문 페이지) 한 번은 비행기 안에서 빈스가 장난삼아 커트 앵글의 뒤에서 몰래 접근한 뒤 아마추어 레슬링 식 기술을 걸은 적이 있었다.[21] 둘의 장난에 주변 선수들이 환호하기라도 한 건지 마침 커트가 빈스에게 공격하는 순간 언더테이커가 잠에서 깼고, 커트가 빈스를 팬다고 오해한 언더테이커는 바로 커트를 공격해서 떼어냈다. 다행히도 빈스가 상황을 설명해서 웃으며 끝났다고.
- 뿐만 아니라 레슬매니아 30 당시 경기가 끝나고 백스테이지 카메라가 찍히지 않는 고릴라 포지션에 들어서자마자 언더테이커가 뇌진탕 증세로 혼절하자 그를 병원으로 옮길 때 빈스가 직접 구급차에 동승해 병원으로 데려갔다. 그것도 일반적인 레슬매니아도 아니고 30주년을 기념하는 레슬매니아 무대에서! 그 이후 쇼는
삼사장트리플 H와 스테파니 맥맨이 지휘했다고 한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면 빈스는 자기 아버지가 위독할 때도 감독하느라 가지 않았던 인물이다! 사실 그럴만도 한게 언더테이커는 단 한 번의 이적도 없이 25년동안 WWE에 헌신한 인물이다.
- 비슷한 시기에 엄청난 활약을 했던 숀 마이클스와는 서로 상극의 성격이었지만 레슬러로서는 서로 존중했던 관계였다고 한다. 90년대 무렵에 "링 밖에서의 너는 별로 마음에 안 들지만, 링 안에서의 너는 존경한다."는 말을 마이클스에게 했다고 한다. 마이클스 자서전을 보면 마이클스는 언더테이커가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고 두 사람은 성격적인 차이 때문에 친구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마이클스는 언더테이커가 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흥분했다고. 마음을 터놓는 친구 사이는 아니었지만 레슬러로서는 서로 존중하는 사이였다.
- 언더테이커는 항상 숀 마이클스에게 "숀, 너는 링 위에서 너의 모습을 보여주지. 나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숀 마이클스 역시 브렛 하트와 자신의 대우 문제로 한참 빈스와 언쟁을 할때 "이 업계에서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언더테이커 밖에 없다." 라는 말을 빈스에게 하기도 했다고. 그 후에 업계에서 서로 비할 바가 없는 베테랑으로서 경력을 쌓은 이후에는 개인적인 친분도 어느 정도 생긴 듯.
그래서 자기 커리어를 끝내줄 선수로 언더옹을 고른 걸까
- 강력한 기믹으로 데뷔하였고, 곧 메인이벤터로 활약했으며, 이후 선수들을 이끌어나갈 경력이 되어서는 후배들을 위해 잡까지 하고 있다. 게다가 대표적인 WWE 충성파이기도 하다. 그러한 연유로, 회사에서 각본상의 우대를 해주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공식적으로 탭아웃패를 당한 적이 없다.
- 1996년 King of the ring에서 맨카인드의 맨디블 클러[22]에 걸렸으나 탭아웃하지 않고 KO로 패배를 당했고, 2002년 폭주족 기믹일 때 커트 앵글과의 타이틀 매치[23]에서 커트 앵글의 트라이앵글 초크와 언더테이커의 핀이 동시에 들어갔는데 심판이 3을 세는 순간 탭아웃을 하면서 무승부 처리가 됐다. 통상적인 경우, 핀폴과 서브미션으로 인한 KO와 탭아웃에만 챔피언이 바뀌게 된다. 따라서 해당 경기 이후 챔피언이 바뀌지 않았다. 그리고 2015년 섬머슬램에서 브록 레스너와 맞붙었을 땐 브록의 기무라 락에 걸려 탭아웃을 하긴 했다. 그리고 이를 본 타임 키퍼가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벨을 울리긴 했지만 심판이 언더테이커가 탭아웃을 하는 걸 보지 못해서 패배로 처리되지 않았으며 브록을 로우 블로우와 헬스 게이트로 실신시켜 승리를 따냈다. 결국 공식적인 경기 결과로는 탭아웃 패배가 없는 셈.
- 나이와 그간 누적된 부상들 때문에 경기력이 나빠졌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가 꽤 오래됐는데, 흠좀무한 퀄리티와 몰입력을 가진 경기를 만들어낸다. 망할 뻔한 레슬매니아를 본인의 경기 하나로 살린다는 평을 받을 때가 수두룩하다.
역시 클래스는 영원하다다만 2009년 레슬매니아 25 당시 숀 마이클스와의 경기에서 숀의 피니쉬 무브인 스윗 친 뮤직을 잘못 접수해서 숀이 미처 다리를 다 들기도 전에 뒤로 쓰러지는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단순히 타이밍이 맞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몸이 닿지도 않은 상태에서 넘어진 상당히 큰 실수였는데, 다행히 숀이 접수 실수인 것을 빠르게 눈치채서 피겨 포 레그 락으로 연결했고, 언더테이커 역시 이를 헬즈 게이트로 반격하며 마치 자신이 스윗 친 뮤직에 맞지 않으려고 일부러 뒤로 넘어진 것 처럼 보이도록 무난하게 넘어갔다. 역시 연륜은 절대 무시할 수 없다.
- 그런데 재미있게도 숀 역시 그 경기에서 언더테이커의 툼스톤을 토네이도 DDT로 반격하면서 자신은 땅에 떨어졌는데 정작 언더테이커는 어깨만 바닥에 닿도록 하는 실수를 했다. 그리고 언더테이커 또한 여기서 기술에 맞은 것마냥 옆으로 돌아누워서 무마했다.
훈훈한 정이 오고가는 레슬매니아이 정도 레벨의 선수들이라면 사소하다고 볼 수 없는 큰 실수가 나와도 얼마든지 명경기가 나올수 있다는 좋은 예다.
- 본디 1989년에 조디 린과 결혼하여 사이에 아들까지 얻었지만 결혼 10년만인 1999년 이혼하고 2000년 새라와 재혼[24]하여 두 명의 딸을 뒀다. 두 번째 아내인 새라는 이름을 목에 문신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으나[25]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2007년 이혼했으며 이후 미셸 맥쿨과 사귀기 시작하여 2010년 세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미셸 맥쿨도 재혼.) 당연히 목에 새겨져 있던 문신은 지워졌다.
- 미셸 맥쿨과 함께
- 할리 데이비슨과 같은 오토바이 매니아이기도 하다. 폭주족 기믹으로 활동했을 때에는 언제나 오토바이를 타고 링에 입장했었고. 2001년 WWE에서 출시한 비디오에 의하면 할리를 꽤나 많이 가지고 있고 자주 타는 듯. 이 중 일부는 자선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 90년 초반 아이큐점프로 연재된 장태산 만화 "스카이 레슬러"에선 최강 보스급 적 레슬러로 나왔다. 대부분 등장 레슬러들이 실제인물의 이름을 살짝 비틀었던 것과 달리 언더데이커는 그대로 나왔다. 1, 2부에선 그야말로 최종 보스급이었지만, 3부에선 시작하자마자 사망 크리.
- 개인 페이스북이 있다. 한국엔 그다지 알려져 있진 않다.
- 이 글(영어 페이지)의 5번 항목에 의하면 폴 베어러는 언더테이커가 텍사스 레드라는 링네임으로 데뷔할 때에도 매니저를 했다. 폴은 이 풋내기를 과대포장했고 이는 언더테이커가 데뷔전에서 패배하면서 실패로 끝났는데, 만약 성공했다면 지금의 언더테이커를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WWE에서 언더테이커가 장의사로, 폴은 그 옆에서 소환자 혹은 추종자 때로는 배신자로 활동하면서 서로 캐릭터를 확립했다. 폴은 언더테이커의 생머리가 붉은 기 띄는 것을 보고 웬디스 로고 캐릭터에서 따온 별명으로 웬디라고 불렀다고 한다.[26]
- Jim cornete가 폴 페어러 생전에 했던 인터뷰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한데, 오이 알러지가 있다.[27] 저 험상궂게 생긴 아저씨가 오이를 면전에 들이대면 질겁하고 도망갈 정도라니 거부 반응이 상당한 모양인데, 그다지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대충 이런걸지도
- 이에 관해서 폴 베어러와의 재미있는 일화(영어)가 있다. 언더테이커가 장의사 기믹으로 활동한 초창기 시절에 그는 Old school, 즉 전통적인 설정된 레슬러였기 때문에 특유의 기괴하고 신비한 캐릭터를 확립하기 위해서 WWE 일정에 맞춰 이동할 때 항상 폴과 함께 다녀야 했다. 어느 날 둘이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폴은 소변이 급해졌고, 마침 둘은 기름도 넣을 겸 주유소에 잠시 들렀다.
그놈의 기믹 때문에기름을 넣는 것도 늘 폴 담당이었는데, 폴은 화장실을 먼저 가고 싶었지만 언더테이커는 폴이 급한 줄 몰랐는지 아니면 친구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는지 먼저 기름을 넣으라고 했고 기름을 넣던 폴은 주유하던 중 생각보다 빨리 한계가 와서 화장실에 갈 필요가 없게 됐다.(...) 그걸 본 언더테이커는 미친듯이 웃더니 전화로 빈스에게 그 웃긴 이야기를 해줬는데, 문제는 빈스가 이야기를 퍼뜨리고 다녔는지 그 일이 사내 전체에 퍼졌다. 이후 폴은 그 일에 대한 복수로 언더테이커가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그가 마시던 아이스 티에 오이 조각을 넣어서 와플 하우스에서 성대하게 구토하게 만들기도 했고, PPV 백스테이지에서 언더테이커의 모자에 몰래 오이를 숨겨둬서 모자를 쓰다가 구토하게 만들기도 했다.어째 죄다 구토 이야기 뿐이다. 분명 오줌싼 친구나 구토한 친구가 놀림감이 되는건 흔하지만 보통 어릴 때로 끝나는데... 어째 둘다 초딩 같다.아마도 둘이 매우 친한 친구여서 그랬을지도.
- 미국 최고의 포르노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전 포르노 스타이자 현 미국 기업가 제나 제임슨과 사귀다가 차인 적이 있다. 제나의 자서전 How to Make Love Like a Porn Star (포르노 스타처럼 사랑하는 방법) 에 의하면 제나가 16세이던 시절[28] 언더테이커는 제나의 남자친구 소유의 문신 영업소의 단골 고객이었고, 이후 둘은 곧 1년간 사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언더테이커가 '네 남자친구를 박살내고 널 데려가겠다' 는 투의 말을 한 탓에[29] 제나가 언더테이커를 차고는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고 한다.(...)
거 왜 그런 말을 해서는
- 중후한 이미지지만 술(특히 잭 다니엘 위스키)과 스트리퍼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빈스가 회사 이미지에 문제가 된다고 스트립 클럽에 가는 것을 금지시켰을 때, 마찬가지로 스트리퍼를 좋아하는 케빈 내쉬가[30] 몰래 빠져나가서 술과 스트리퍼를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냈더니 이미 언더테이커가 구경하고 있었다.(...) 이 거대한 두 레슬러는 곧 서로를 축하하고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서 구경했다.
2미터 넘는 두 거한이 숨어서 스트리퍼를 구경하는 꼴이라니 웃기는 상황이랄지 무서운 상황이랄지...
- 숀 마이클스, 트리플 H, 케빈 내쉬, 스캇 홀이 사조직 클릭을 결성해 어울려다닐때 이 모습을 탐탁치 않게 여겼다. 언더테이커도 친한 선수들과 사조직을 결성하긴 했지만,[31] 주요경기를 자신들이 독점하는 등 권력욕이 강했던 클릭과는 달리, 그냥 먹고 마시는 그런 단순한 친목다지기 정도. 그렇다고 저 클릭 멤버들과 사이가 나쁜건 아니다. 케빈 내쉬와는 절친한 사이이며, 케빈 내쉬 본인도 인터뷰에서 언더테이커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위 스트리퍼 일화도 있고, 서로 죽이 잘 맞는 상대라고 여겨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가했다. 지명자는 아내인 미셸 맥쿨. 원래 미셸 맥쿨에게 물을 부었던 사람이 언옹인데, 미셸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찬 물을 부었기 때문인지 미쉘이 물을 맞은 후 지명했다. 딸과 함께 서서 자신의 장남을 포함한 여섯 명을 지목한 후 물벼락을 맞았는데, 맞고 호들갑을 떤 미셸과는 다르게 시크하게 Very Cold 한마디를 하고 퇴장했다(...)
- 위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여러 레슬러들 사이에의 언더테이커에 대한 평판은 무척 좋은 편으로, 그를 개인적인 면 혹은 인격적인 면에서 함부로 비판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고인이 된 얼티밋 워리어는 처음에 언더테이커와 붙었을 때 그의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했으며, 그와의 관 경기에서 관에 갇혔을 때 꿀맛같은 휴식을 취했다는 농담을 던졌다. 또한 더 락은 자신이 신출내기였을 때 언더테이커가 자신에게 거리낌없이 잡을 해주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또한 언더테이커를 가르켜서 "이 바닥에 있기에는 너무도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출처 블로그
- 빈스 맥맨은 보디빌딩 전문 잡지인 머슬 앤 피트니스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슈퍼스타가 누구냐는 질문에 언더테이커를 꼽았다. 그 이유는 충성심, 꾸준함, 그리고 본인 캐릭터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헌신하기 때문이며 언더테이커는 진정한 인격자이자 프로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프로레슬링 뉴스레터에 게시된 빈스 맥맨의 인터뷰
3 주요 커리어
3.1 WWE 이전의 기록
- USWA 통합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 WCWA 텍사스 헤비웨이트 챔피언[32] (1회)
3.2 WWE 상에서의 기록
- WWF/E 챔피언 (4회)[33]
-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 WWF 하드코어 챔피언 (1회)
- WWF 월드 태그팀 챔피언 (6회)
- WCW 월드 태그팀 챔피언 (1회)[34]
- 2007 WWE 로얄럼블 우승[35]
- 2009 WWE 슬래미 어워드 : 매치 오브 더 이어 - 레슬매니아 25에서의 대 숀 마이클스 전
- 2010 WWE 슬래미 어워드 : 올해의 순간 - 레슬매니아 26에서 벌어진 숀 마이클스와의 경기
- 2011 WWE 슬래미 어워드 : 올해의 충격적인 순간 - 레슬매니아 27에서 벌어진 트리플 H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맞고 킥 아웃 하는 장면
- PWI 선정 1991년의 퓨드(vs. 얼티밋 워리어)
- PWI 선정 1998년의 경기(vs. 맨카인드 - 헬 인 어 셀)
- PWI 선정 2009년의 경기(vs. 숀 마이클스)
- PWI 선정 2010년의 경기(vs. 숀 마이클스)
- WWE 선정 최고의 스타 2위 [36]
3.3 레슬매니아 전적
PPV | 상대 | 당시 언더테이커의 기믹 | 경기 시간 | 비고 |
레슬매니아 7 | 지미 "수퍼 플라이" 스누카[37] | 장의사 (with 폴 베어러) | 4분 20초 |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경기중 가장 경기시간이 짧은 경기 |
레슬매니아 8 | 제이크 '더 스네이크' 로버츠 | 장의사 (with 폴 베어러) | 6분 36초 | 이 경기를 계기로 DDT#s-3가 점차 피니쉬 무브에서 일반 기술화된다. |
레슬매니아 9 | 자이언트 곤잘레스 | 장의사 (with 폴 베어러) | 7분 33초 | 사람이 끄는 채리엇을 타고 등장했고, 곤잘레스의 반칙으로 반칙승. 최초이자 유일하게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반칙승으로 남아있다. |
레슬매니아 11[38] | 킹 콩 번디 | 장의사 (with 폴 베어러) | 6분 36초 | 특별심판으로 메이저 리그 심판인 래리 영이 참가.[39] |
레슬매니아 12 | 디젤 | 장의사 (with 폴 베어러) | 16분 46초 | 최초로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경기가 10분 넘게 이뤄진 경기. |
레슬매니아 13 | 사이코 시드[40] | 장의사 | 21분 19초 | WWF 챔피언쉽 No DQ 매치[41] 최초로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경기가 20분 넘게 이뤄진 경기. |
레슬매니아 14 | 케인 (with 폴 베어러) | Lord of Darkness | 16분 48초 | 브라더 VS 브라더 3번의 툼스톤 파일드라이버 끝에 승리.[42] |
레슬매니아 15 | 빅 보스 맨 | Ministry of Darkness | 9분 46초 | 헬 인 어 셀 매치[43] |
레슬매니아 17[44] | 트리플 H | American Bad Ass | 18분 57초 | 라스트 라이드로 경기 종료.[45] |
레슬매니아 18 | 릭 플레어 | American Bad Ass (Big Evil) | 18분 47초 | 레전드 VS 레전드 No DQ 매치 세리머니로 손가락 10개를 펼치며 레메 10연승을 표현 |
레슬매니아 19 | 빅 쇼&A-트레인 | American Bad Ass (Big Evil) | 9분 42초 | 핸디캡 매치[46] 림프 비즈킷의 Rollin'으로 특별 등장씬이 있었다.[47] |
레슬매니아 20 | 케인 | 데드맨 (with 폴 베어러) | 7분 47초 | 브라더 VS 브라더 최초로 레슬매니아에서 언더테이커를 두 번 상대 |
레슬매니아 21 | 랜디 오턴 | 데드맨 | 14분 14초 | 레전드 VS 레전드 킬러 인터프로모셔널 싱글 매치[48] |
레슬매니아 22 | 마크 헨리 | 데드맨 | 9분 28초 | 캐스킷 매치[49] |
레슬매니아 23 | 바티스타 | 데드맨 | 15분 48초 |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매치 |
레슬매니아 24 | 에지 | 데드맨 | 24분 3초 |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쉽 매치 헬즈게이트#s-2로 승리 경기 순서상 메인 이벤트 경기 |
레슬매니아 25 | 숀 마이클스 | 데드맨 | 30분 44초 | 빛 VS 어둠 최초로 30분을 넘긴 경기 |
레슬매니아 26 | 숀 마이클스 | 데드맨 | 23분 59초 | Streak VS Career[50] 경기 순서상 메인 이벤트 경기 |
레슬매니아 27 | 트리플 H | The Last Outlaw | 29분 24초 | 노 홀드 바드 매치 [51] 헬즈게이트#s-2로 승리 이 후, 언더테이커는 레슬매니아에서만 경기를 뛰게 된다.[52] |
레슬매니아 28 | 트리플 H | The Phenom[53] | 30분 53초 | 헬 인 어 셀 매치 부제 The end of Era 특별 심판 숀 마이클스 현재까지 언더테이커가 뛴 최장기 경기 대 트리플 H전 3번째 대결이자 마지막 대결[54] |
레슬매니아 29 | CM 펑크 | The Phenom | 22분 7초 | 경기 후, 폴 베어러를 추모 |
레슬매니아 30 | 브록 레스너 | The Phenom | 25분 12초 |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첫 패배 |
레슬매니아 31 | 브레이 와이어트 | The Phenom | 15분 12초 | 언더테이커의 레슬매니아 첫 패배 이후의 승리 |
레슬매니아 32 | 셰인 맥마흔 | The Phenom | 30분 5초 | 헬 인 어 셀 매치 셰인이 이기면 WWE RAW의 운영 권한을 갖게 되며 언더테이커는 더 이상 레슬매니아에서 경기를 가질 수 없다. |
레슬매니아 현재 전적 : 24전 23승 1패 |
- ↑ American Bad Ass 시절 중,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던 2002~3년 때 붙인 그의 별명. 이 별명 때문에 이 시기의 언더테이커를 Big Evil 기믹이 따로 존재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실제로는 스타일의 변화 외에는 큰 차이는 없다.
- ↑ 2011년에 트리플 H와 대립할 당시에만 쓰인 일회성 별칭이다.
- ↑ 2012년경 트리플 H와 대립하던 시기에 잠깐 사용하였다.
- ↑ CelebHeights.com
- ↑ 젊은 시절에는 202cm 정도였다.
- ↑ 각본상 죽음의 계곡(데스 밸리), 다만 폭주족 기믹 때는 정상적으로 휴스턴이 출신지로 소개되었다.
- ↑ 2002~3년 빅 이블 기믹 시절에 트라이앵글 초크를 잠시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 2007년 말부터 이 기술도 피니쉬로 쓰고 있다. 이 기술도 피니쉬로 쓰게 된 이유는 언더테이커가 나이가 들면서 힘이 많이 줄었기 때문. 이 시절부터 라스트 라이드를 스스로 직접 들지 못 하고, 상대가 텐 펀치를 먹이는 상황에서 반격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 ↑ Kid Rock의 곡으로 2000년 저지먼트 데이에서 폭주족 기믹으로 첫 컴백할때의 테마곡.
- ↑ 림프 비즈킷의 곡으로 폭주족 기믹 시절의 대표격인 테마곡. 2003년에는 레슬매니아 XIX 당일만 사용했는데 림프 비즈킷이 레슬매니아 XIX의 메인테마곡인 Crack Addict을 부르러 나온김에 언더테이커의 경기 때 라이브 공연을 통해 이 노래를 다시 사용한 것이다.
- ↑ 이 곡의 라이센스 기간 만료 이후에 제작된 영상물이나 DVD에서는 Rollin'을 들을 수 없다. 대신 WWE 자체제작 음악인 Going Postal이 덧씌워진다. 이런식으로
타이탄트론엔 여전히 프레드 더스트와 언니들이 덩실덩실 - ↑ Dead Man 노래에 보컬이 추가된 테마곡.
왠지 원곡보다 좀 경쾌하다.~ - ↑ Graveyard Symphony를 21세기 식으로 리메이크 한 테마곡.
- ↑ Johnny Cash의 곡으로 2011년 트리플 H와의 대립을 위해 사용한
일회용단발성 테마곡. 원래는 스팅을 위해 WWE가 준비한 테마곡이였으나 스팅이 TNA와 재계약함에 따라 이대로 버리기는 아까웠는지 여기서 쓰게 되었다. - ↑ 생매장하는 컨셉의 경기로, 상대를 깊은 구덩이에 넣은 뒤에 흙으로 묻어버리면 승리한다.
- ↑ 사실 이 경기는 케인 덕에 생긴 이유가 더 크지만
- ↑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펀자비 프리즌 매치마저도 가장 먼저 치른 선수가 언더테이커다. 정작 그레이트 칼리는 부상 때문에 빅 쇼가 대신 뛰었다. 칼리는 2007년에 바티스타와 이 경기를 치뤘는데 그 반응은......
- ↑ 대개 신인 선수들을 띄워주기 위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베테랑들이 경기에서 져 주는 것
- ↑ 그것도 WWE에서 활동한 지 17년 만에.....
- ↑ 그렇지만 비록 깨졌다해도 레슬매니아 연승은 언더테이커 이외엔 허락되기 힘든 기록이란 걸 생각해보면 벨트나 우승에선 아쉽지만 기록인 면에선 당대 1위들과 어깨를 나란히할 만한 유일한 존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 ↑ 레슬매니아에서는 연승 기록 유지 때문에 언더테이커의 승리가 뻔한데도 팬들이 환호할 정도다. 그랬기에 브록한테 패했을 당시 팬들의 반응이 과할 정도로 극렬했던 것도 그가 그동안 성실하게 쌓아올린 이미지 때문.
그리고 하필 파트 타임 레슬러 브록이어야했냐는 절망감도 있었겠고 - ↑ 원문은 On a plane ride, Vince decided to sneak up behind Angle and take him down amateur-style, starting an impromptu match in the aisle.
- ↑ 손에 Mr. Socko(미스터 삭코)라는 이름의 양말을 끼고 입 안에 넣어서 턱을 공격하는 기술이다. 손을 물면 손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은 아랫턱 부분을 손아귀로 꽉 잡을 경우 아파서 물기는 불가능해진다.
- ↑ 앵글이 도전자
- ↑ 99년 싸인회를 할 당시 처음 만났다고 한다. 당시 양로원에서 일을 하던 새라가 할머니를 모시고 갔고 여기에 첫눈에 반한 언옹의 데이트 신청을 받았다. 두 사람 다 운동을 좋아하여 금방 친해지고 곧 결혼.
- ↑ 한편 새라는 WWF의 역대급 병신 각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인베이전 시절 DDP의 스토킹 각본에 투입되었다.
- ↑ 영문 페이지 밑에서 8번째 줄. Paul Bearer’s nickname for the Undertaker is “Wendy” because of his natural red hair and freckles like the little girl on the Wendy’s logo.
- ↑ 한국에서 가장 알려진 사람으로는 제시카가 있다.
- ↑ 언더테이커는 65년생으로 띠동갑
도둑이다. - ↑ 원문은 ‘I’m going to kick your boyfriend’s ass and take you away with me’.
- ↑ 6번 내용(영어 페이지)
- ↑ 이 사조직 이름은 백 스테이지 크루로, 언더테이커 복부에 새겨진 B.S.K 문신은 바로 이 조직의 이름이다. 주요 구성원은 요코즈나와 찰스 라이트(갓파더), 사비오 베가
- ↑ 현 NWA 텍사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 ↑ 이 중 WWF 시절 획득한 것은 3회
- ↑ 인베이전 각본 당시 2001 섬머슬램에서 케인과 함께 딴 것이다. 이 당시 두 사람은 이미 WWF 태그팀 챔피언이었기 때문에 동시에 양 세력의 태그팀 타이틀을 획득한 것이다.
- ↑ 30번으로 출전해서 우승. 최초로 30번은 우승하지 못한다는 징크스를 깼다.
- ↑ 당시 1위는 숀 마이클스였다. 이 리스트가 발표된 건 2010년 숀 마이클스의 은퇴 경기 직후여서 약간의 보정이 들어갔다는 해석을 할 수는 있으나, 그렇다고 딱히 반박을 할 만한 순위도 아니다. 헐크 호건이나 스티브 오스틴 등과는 달리 두 선수는 WWE 성골이기 때문. 결정적으로 이 순위는 선수들이 뽑았다.
- ↑ 현 WWE 디바인 타미나 스누카의 아버지이며, 레거시 전 멤버였으며 태그 팀 듀스 & 도미노 중 듀스로 활동한 심 스누카의 양아버지이다. 심 스누카는 후에 레슬매니아 25에서 언더테이커의 노 터치 플란차를 맞는 카메라맨으로 레슬매니아에 등장했다.
그 어떤 선수 시절보다 카메라맨으로 특별 출연한 게 더 화제라니!!!하지만 이 때, 진짜 그가 주목받은 이유는 당시 노 터치 플란챠 접수를 심하게 잘못해 언더테이커에게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기 떄문. 직접 보자 - ↑ 10은 등부상으로 인해 참전하지 못했다.
- ↑ 바디슬램 후, 로프반동을 이용한 플라잉 클로스라인으로 승리.
킹 콩 번디의 체구를 보면 툼스톤을 할 수가 없긴 하다. - ↑ 선역 시절에는 시드 비셔스, 시드 저스티스란 링네임으로 활동했었다.
- ↑ 이 경기에서 승리로 2회 WWF 챔피언 등극.
- ↑ 이 경기로 케인은 툼스톤 파일드라이버를 최초로 버텨낸 선수로 인정되었다. 또한, 경기 후 결과에 승복하지 않은 케인이 의자 위에 툼스톤 파일 드라이버를 가했다.
오오 케인 - ↑ 경기 후, 부하인 브루드를 소환하고 보스맨을 교수형에 처했다. 가히 언더테이커의 레매 경기 중 최악의 결말이었다.
이 때만 해도 레매 30이 그리 될 거라고 예지한 사람이 있기나 했을런지... - ↑ 16은 은퇴 위기급 부상 때문에 참전하지 못 했다.
- ↑ 본래 싱글 매치지만, 심판이 쓰러지고 나면서 계속 장외 경기가 된 탓에 스트리트 파이트 매치처럼 흘러갔다.
마지막 라스트 라이드 때 삼사장의 표정과 접수능력은 가히 예술 그 자체라고 봐도 될 정도. - ↑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본래는 네이선 존스를 파트너로 가진 태그 팀 매치였다.
- ↑ 참고로 림프 비즈킷은 레슬매니아 19의 메인 테마인 Crack Addict도 라이브로 불렀다.
- ↑ 브랜드가 다른 선수들 간의 대결. 당시 랜디 오턴은 로우 소속, 언더테이커는 스맥다운 소속이었다. 당일 커트 앵글 vs 숀 마이클스의 인터프로모셔널 경기도 열렸다. 브랜드간 매치업은 레메24에서 우마가 VS 바티스타의 경기로 한 번 더 열리게 된다.
- ↑ 상대방을 관에 집어넣은 뒤, 관뚜껑까지 닫으면 승리하는 경기
- ↑ 언더테이커의 레메 연승 기록과 숀 마이클스의 은퇴를 건 경기
- ↑ 이름만 다르지 No DQ 매치와 룰은 같다.
- ↑ 승리를 하긴 했으나, 패배한 트리플 H가 스스로 경기장을 떠난 것과 달리 언더테이커는 체력이 크게 떨어지다 결국 들것에 실려가는 모습을 보였다. 이 모습이 실제 상황인지 연출인지는 알려진 바 없다. 어쨌든 이런 모습이 나온 관계로 언더테이커가 레슬매니아에서만 경기를 뛰어도 알바라고 비난받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모습을 보이고도 두 번이나 레슬매니아에서 굉장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비난하는 것도 무리지 - ↑ 레메20 이후에 복귀한 기믹을 이 명칭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으나, 편의상 레메 20~27 복귀 이전까지를 데드맨으로 칭하고, 레메28부터의 기믹을 이 명칭으로 칭함. 사실 이 단어 자체는 애티튜드 시대부터 존재했다.
- ↑ 언더테이커는 숀 마이클스, 케인, 트리플 H와 레슬매니아에서 2회 이상 맞붙었는데, 이중 트리플 H만 3번이나 붙었다.
- ↑ 이 날, 일부러 세그먼트를 길게 잡았음에도 기상청의 예보보다 훨씬 해가 늦게 지는 바람에 어둑해야 분위기 살아나는 두 캐릭터의 컨셉이 다소 바래진 감이 있었다. 그런데 레슬매니아 9에서 열렸던 경기도 해가 떠 있었다(이때는 대회가 끝날 때까지 그랬다).